신돈 18회 <신돈> - 18회- #강안전의 방 안 공민왕:(차라리 애원하듯) 어째서 말끝마다 나를 버리라고 하십니까 노국공주:(미소짓고 있는) 공민왕: 예. 조일신의 말이 백번 천번 옳겠지요. 기철을 비롯한 부원배들을 처단하고 원과 맞서 고려가 저들의 속국아 아님을 분명히 밝혀야겠지요. 허나 노국공주:(막듯이) 전하. 전하께서는 이번 일의 중심에 서 계셔야 합니다 공민왕:..... 노국공주: 기회가 있었다면 조일신은 전하를 시해하고 다른 왕족을고려의 왕으로 내세웠을 겁니다 공민왕: 조일신은 내 수종공신입니다 노국공주:(피를 토하듯) 참으로 전하께서는 조일신을 믿고 계시옵니까 공민왕:.....(흠칫) #선경전의 안 조일신: 가십시다. 대전으로 가서 전하께 중전을 폐하고 원과 맞서 싸우시라고 말씀을 올립시다 웅성거리는 대신들. 조일신: 죽는 것이 두렵습니까. 팔십여 년간 원에게 당한 수모를 생각해보세요. 나는 그런 치욕을 참고 사느니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동요하는 대신들. 염제신: 좋소이다. 전하를 뵈러 가십시다 염제신이 앞장 서서 밖으로 나간다. 이제현과 이인복, 정세운 등이 남는다. 조일신: 정승께서는 안 가시겠습니까 이제현:..... 그저 지그시 눈 감고 있는 이제현. 조일신: 늙은 것이 그만큼 부귀영화를 누렸으면 됐지. 꽁무니를 빼기는 바닥에 침을 탁 뱉고 나가는 조일신. 미동도 없는 이제현. 바라보는 이인복과 정세운. #대궐의 길 염제신을 선두로 대신들이 몰려간다. #강안전의 방 안 노국공주: 제 말씀을 그렇게도 모르시겠습니까 공민왕:(괴로운) 노국공주: 조일신은 부원배들을 죽여 명분을 세웠습니다. 어차피 시위를 떠난 화살입니다. 전하께서 명분에 밀리시면 그 화살은 전하의 가슴에 꽂힐 겁니다. 그러니 저를 내세우세요. 제가 그 화살을 맞을 겁니다 공민왕: 내가 중전을 지켜주지 못하면서 어찌 고려의 왕이라고 할 수가 있겠소이까 노국공주: 전하께서는 어린 조카를 지켜주지 못하셨습니다. 차라리 전하께서 어린 조카를 먼저 버리셨다면 독살까지 당하진 않았을 겁니다. 전하의 마음 속에 어린 조카를 측은히 여기는 인정이 가득차 있는 것을 보고 누군가 폐주를 독살한 것이겠지요 공민왕:(본다) 노국공주:.....전하. 인정은 군주의 덕목이 아니옵니다. 군주가 강하면 대신들은 딴마음을 먹지 않습니다. 어미 양을 따르듯 전하를 믿고 의지하고 복종을 하겠지요. 허나 전하께서 인정에 흔들리면 모두가 불안해할 겁니다 공민왕:(괴롭게 고개 돌리는) 노국공주: 나를 내치시고 조일신을 죽이세요. 군주의 목밑에 칼을 들이댄 자를 살려두시면 안 됩니다 공민왕:...... 노국공주: 누구도 전하를 의심하지 못하게 만드세요. 전하의 의지와 힘을 시험하게 만드시면 안됩니다 공민왕:....... 노국공주: 앞으로 닥쳐올 난관들을 생각하세요. 기철은 필경 연경으로 도망쳐 기황후의 도움을 청할 겁니다. 기황후는 문책사를 보내 전하를 시험하려고 들 거구요. 그러니 어찌 맞설지 대비를 하셔야 합니다 공민왕: 나는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수종공신인 조일신이 내 등뒤에 비수를 들이댔어요. 하물며 고려의 권신들이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습니까 노국공주: 전하께는 전하를 지켜보고 있는 백성들이 있지를 않습니까 공민왕:....... 노국공주: 폐주가 독살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백성들이 대궐로 몰려와 통곡을 했습니다. 이것이 폐주를 위한 통곡이겠습니까. 백성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 어린 임금이었습니다 공민왕:....... 노국공주: 전하. 백성들이 하늘처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전하뿐이십니다. 전하가 아니면 누가 있어 저들을 위해줄 것입니까 공민왕:......(눈물 같은) 노국공주: 전하. 부디 강건한 군주가 되세요. 그래야 백성들의 통곡이 멎을 겁니다 공민왕:..... 노국공주를 바라보는 공민왕. 그 눈에 눈물이 치솟는다. 공민왕: 예. 내가 내 백성들을 잊고 있었습니다 어린애처럼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으며 웃으려고 애쓰는 공민왕. 비로소 기쁨의 눈물을 따라 흘리는 노국공주. 염제신:(밖에서) 전하. 부원배들을 모두 잡아 죽이시고 원에 맞서 싸우셔야 하옵니다. 연호를 새로 세워 고려가 더는 원의 속국이 아님을 만천하에 알리셔야 하옵나이다 (*연호 임금의 재위 연대에 붙이는 칭호. 이 당시 고려는 원순제의 연호인 ‘지정’을 사용하고 있었다) #동. 뜰 염제신을 필두로 부복한 대신들. 조일신과 정천기는 보이지 않는다. 염제신: 궁중에 남아 있는 원의 공주들을 모두 내쫓으시고 중전을 폐하시옵소서. 전하께서 고려인으로 새 중전을 맞으셔야 만백성이 전하를 믿고 따를 것이옵나이다 대신들: 중전을 폐하시옵소서 전하 #영수전의 안 명덕태후: 그래 주상께선 어찌하고 계시다고 하더냐 김상궁: 전하께선 눈물만 흘리고 계시다고 하옵니다 명덕태후: 눈물을 흘리고 계시다니. 조일신이 부원배들을 죽여 주상의 위엄을 높이세웠거늘 김상궁: 조정대신들이 강안전으로 몰려와 중전마마를 폐하라고 주청을 드리고 있다고 하옵니다 명덕태후: 그래? 김상궁: 원나라 공주이신 중전마마를 폐하고 고려인을 중전으로 삼아야 백성들이 승복을 할 것이니 그리 하시라고 생떼를 부리고 있다고 하옵니다 명덕태후:....... 힐끔 혜비를 본다. 혜비:......(고개 숙인다) 명덕태후: 딴은 틀린 말은 아니지 김상궁:(흠칫해서 본다) 명덕태후: 그래서 백성들이 중전의 가마에 돌을 던진 게 아니냐 기가 막히다는 듯 짧게 웃으며 또 한번 혜비를 힐끔 보는 명덕태후. 몸둘바를 모르는 혜비. #강안전의 뜰 염제신: 전하. 중전을 폐하시고 고려인으로 새로 중전을 맞으시옵소서. 원의 공주를 국모로 삼는 것은 고려의 수치이옵나이다 대신들: 중전을 폐하시옵소서 전하 노국공주가 안에서 나온다. 순간 술렁이는 대신들. 노국공주:..... 염제신을 바라본다. 염제신:(흠칫해서 고개를 숙인다) 노국공주: 판삼사사대감께선 과연 충신이십니다 염제신:...... 흠칫해서 고개를 들어 노국공주를 바라본다. 노국공주: 내가 물러나 고려의 독립을 얻을 수 있다면 물러나고 말고요 미소 짓는 노국공주. #선경전의 안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이제현. 이인복: 뭐라고 말씀을 해보십시오 이제현:.....(가만히 한숨) 이인복: 조일신이 중전마마를 폐하라고 선동을 하고 있는데 그냥 구경만 하고 계실 겁니까 이제현:(눈 뜨며) 중전마마가 문제가 아니지. 그보단 전하를 지켜드리는 일이 더 시급하이 (정세운에게) 자네는 어찌 생각하나 정세운: 익재대감께서 바로 보셨습니다. 조일신은 거기서 멈출 위인이 아닙니다 이제현: 문제는 조일신의 명분이 힘을 얻고 있다는 게야. 원에 맞서 싸우자는데 누가 반대를 할 수 있겠나 이인복: 그게 가당한 일입니까.지금 우리가 무슨 힘이 있어 원과 맞서 싸운다는 겁니까 이제현: 사람들이 거기까지야 생각하겠나. 당장은 속시원하니까 조일신의 선동에 맞장구를 치는 거지 한숨을 쉬는 이제현. #대궐의 길 전각에 올라 강안전을 기웃거리는 조일신. 정천기:(불안해서) 전하께서 승낙을 하시겠습니까 조일신: 거절할 명분이 없잖은가 정천기: 우리가 너무 앞서 나가는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부원배들이나 서넛 처치하고 조일신: 두려우신가 정천기:(우물쭈물) 조일신: 명심하시게. 자네나 나나 벼랑 끝에 서있는 거야. 한발만 뒤로 물러나면 벼랑 밑으로 떨어지게 돼있어. 아시겠는가 염제신을 비롯한 대신들이 힘없이 오고 있다. 정천기: 어찌 됐습니까 판삼사사 대감 (*판삼사사 - 나라의 재정과 회계를 담당하던 기관인 ‘삼사’의 우두머리) 염제신:(입맛 다시는) 정천기: 중전을 폐하신다는 허락을 받으셨는지 염제신: 중전께서 물러나시겠다고 하시네 조일신:(나서며 버럭) 그래서 그냥 나오셨단 말씀입니까 염제신: 그럼 어쩌겠소이까 조일신: 결판을 짓고 나오셔야지요 염제신: 중전께서 스스로 물러나신다는데 더 이상 뭐라고 말씀을 올리겠나 조일신: 답답하십니다. 중전을 폐한다는 전하의 칙서를 받아내셔야지요 염제신: 우린 할만큼 했네 염제신, 도망치듯 간다. 우르르 따르는 대신들. 조일신:(대신들 막으며) 쇠뿔은 단김에 뽑아야 한다는 말이 있잖소이까. 다시 가서 전하의 칙서를 받아내세요. 전하의 손으로 직접 중전을 폐하셔야 딴소리를 못하십니다 조일신을 피해 도망치는 대신들. 조일신: 이런 비겁한 놈들 같으니라구. 원나라 공주를 중전으로 모시고 살면서 원과 맞서 싸우겠다니. 하늘이 부끄럽지도 않느냐 이놈들 미친 듯이 날뛰는 조일신. #곤성전의 안 덕녕공주: 참으로 답답하십니다. 어쩌자고 스스로 물러나시겠다고 하셨습니까 노국공주: 전하의 처지가 어려우니 그리할 수밖에요 덕녕공주: 중전께서 물러나시면 전하의 처지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덕성부원군이 연경으로 도망을 쳤어요. 머지않아 황후께서 문책사를 보낼 겁니다. 그리되면 황후께선 조일신 대신 전하에게 그 죄를 물을 겁니다 노국공주: 조일신이 마음만 먹으면 전하를 해치고도 남을 겁니다. 그러니 조일신이 내세우는 명분을 없애버려야지요 덕녕공주:..... 노국공주:(웃으며) 염려하지 마세요. 전하께서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실 겁니다 덕녕공주: 만에 하나 전하께서 조일신의 청을 받아들이면 어쩌시겠습니까 노국공주:..... 덕녕공주: 두 분의 혼인은 전하께서 원한 게 아니었습니다 노국공주: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고려에 왔습니다. 고려가 언제까지 원의 속국으로 남아 있겠습니까. 언젠가 원에 맞서 싸우겠지요. 그러면 전하께선 고려의 여인을 부인으로 새로 맞으실 것이 아닙니까 덕녕공주: 그런데도 전하께 원과 맞서 싸우라고 하십니까 노국공주: 싸워야지요. 전하께서 당하는 치욕을 나는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동. 복도 안도치:...... 눈물을 훔친다. #동. 안 노국공주: 전하께서 그런 치욕을 면할 수만 있다면 조일신의 손이라도 잡으셔야 합니다 #강안전의 안 조일신:(엎드린 듯 만 듯 하고) 전하께선 원의 볼모로 끌려가 당하신 치욕을 벌써 잊으셨습니까. 신은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립니다. 전하께서 당하신 치욕을 씻는 길은 원에 맞서 싸우는 길 뿐입니다 공민왕:..... 조일신: 아무리 마음이 아프셔도 중전마마를 폐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백성들이 전하를 따를 것이옵니다 공민왕: 알았으니 물러가시게 조일신: 밖에 우대언 있느냐 (*우대언 - 왕명을 전달하던 직책으로 조선시대의 승지와 같은 역할) 우대언이 급히 안으로 들어온다. 조일신: 칙서를 내려주시옵소서 전하 공민왕:......(괴롭다) 조일신: 그렇게 힘이 드시면 신이 직접 쓰겠나이다 공민왕: 그 사람이 아니면 내가 이 자리에 오를 수가 있었겠느냐. 그러니 조일신: 그러니 백성들이 전하를 원의 꼭두각시라고 비웃는 것이옵니다 숨이 막혀 공민왕을 바라보는 안도치와 우대언. 공민왕:......(창백한) 조일신: 하루만 말미를 드리겠습니다. 전하께서 결단을 못 내리시면 내일은 신의 손으로 중전마마를 폐한다는 칙서를 쓰겠나이다 일어나 나가는 조일신. #동. 복도 조일신, 나와서 문 닫는다. 재빨리 허리 굽히는 최만생. 안도치:(안에서) 전하. 전하 안도치의 다급한 목소리. 뒤돌아보는 조일신. 안도치:(안에서) 괜찮으시옵나이까 전하 조일신: 흥. 원 저렇게 마음이 약해서야 코웃음 치고 나가는 조일신. #동. 안 탁자에 손을 짚고 겨우 앉아있는 공민왕. 차마 잡지 못하고 바라보고 서있는 안도치. 공민왕:..... 문득 눈물이 치솟는다. 공민왕: 내가 믿을 사람이 이렇게도 없단 말이냐 그 위에, 신돈: 백성들이 승복을 하겠습니까 신돈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공민왕: 그래, 편조가 있었구나 ------------------------------------------------------------------------------- - <신돈 제10회 중에서> - #강릉대군의 사저. 방 안 신돈: 대군마님 가만히 무릎을 꿇는 신돈. 공민왕:...... 신돈: 대군께서는 미천하기 그지없는 소인을 친형제처럼 대해주셨습니다 공민왕:(웃으며) 그건 내가 널 우롱한 것이야 신돈: 소인은 대군께서 용상에 우뚝 앉아 계시는 모습을 수없이 그려보았습니다. 노비의 자식을 흉허물없이 대해주시는 이런 분이 고려의 왕이 된다면 백성들을 얼마나 애껴주실까? ------------------------------------------------------------------------------------ 공민왕:....... 다시 떠오르는 신돈의 얼굴. -------------------------------------------------------------------------------------- - <신돈 제8회 중에서> - #어느 숲(밤) 사방에서 튀어나와 두 사람을 에워싸는 사내들. 등을 대고 선 공민왕과 신돈. 공민왕:(돌아보며) 좋은 생각이 있느냐 신돈: 아무래도 줄행랑을 놔야겠습니다 마주보더니 동시에 사내들을 헤치고 도망치기 시작하는 공민왕과 신돈. ----------------------------------------------------------------------------------- 공민왕:....... 저도 모르게 떠오르는 미소. 공민왕: 내가 너를 잊고 있었구나...... --------------------------------------------------------------------- -<신돈 제6회 중에서> #고려촌의 술집. 안 신돈: 소인이 장담하건데 대군께서는 황제가 되실 관상이십니다 공민왕: 황제? 임금도 아니고 황제 (신돈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웃어대며) 대원제국의 속방인 고려의 왕족이 황제가 된다? 네 놈의 아부가 지나쳤다 와아 터지는 웃음. ------------------------------------------------------------------------- 공민왕:......... 환하게 웃는다. -------------------------------------------------------------------------- - <신돈 제6회 중에서> - #고려촌의 술집. 안 공민왕: 먹물 깨나 먹은 놈이 아니면 심오니 뭐니 하는 고상한 비유를 들이대지는 않을 것이야. 그냥 말뜻을 모르겠다고 했겠지. 그러니 네 놈이 자객이라는 것이야 공민왕이 어느새 품 속에서 단검을 꺼내 신돈을 향해 내 던진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는 단검. 그 단검을 손으로 잡는 신돈. ------------------------------------------------------------------- 공민왕: 어디서 뭘 하고 있느냐. 이럴 때 내 곁에 있으면 이 무거운 짐을 모두 벗어던지고 허공으로 훨훨 날아오를 것이 아니냐 숨죽여 웃는 공민왕. 점점 미친 듯이 웃는다. #기황후의 방 안 기황후:(혀를 차듯) 도대체 그 몰골이 뭡니까 기철:(눈 부라리며) 수천리 길을 밤낮을 도와 한숨도 못자고 달려온 오래비를 보고 기껏하시는 말씀이 그 말씀입니까 기황후:(놀리듯) 그렇게 허둥지둥 달려올 까닭이 없으니까 하는 소리지요 기철: 집안이 쑥대밭이 됐는데 그걸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박불화: 언성을 좀 낮추시지요 덕성부원군대감 기철: 자네는 나서지 말게. 내가 사생결단을 하러 달려왔으니까 기황후:(웃으며) 단단히 화가 나셨습니다 기철: 그렇게 웃으실 일이 아닙니다. 마마의 셋째 오래비 기원은 조일신에게 맞아죽었고, 어머닌 그놈들한테 끌려가서 생사가 묘연하십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웃을 일입니까 기황후:(정색하고) 일을 그 지경으로 만든 사람은 오래비가 아니십니까 기철:(대들 듯) 내가 그렇게 만들다니오 박불화: 덕성부원군대감 기철: 자넨 나서지 말라니까 기황후: 휘하의 그 많은 사병은 다 어디다 두고 그런 봉변을 당했습니까 기철: 말도 마십시오. 그놈들이 설마하니 나를 죽이려고 덤벼들 줄 알았겠습니까. 그저 원나라와 가까운 부원군 몇 명을 혼내주려는 것이려니 하고 기황후:(재밌다는 듯 웃는다) 기철: 왜 또 웃으십니까 기황후: 둘러대는 오라버니 모습이 눈물이 나도록 가엾으니 웃을 수밖에요 기철:(울먹으며) 마마. 기원이가 비명횡사를 했습니다. 노모께서는 생사가 묘연하시구요. 그런데 위로의 말씀은 한마디도 없으시고 이 늙은 오래비를 희롱만 하실 작정이십니까 기황후:..... 웃음이 사라지고 가만히 기철을 바라보는 기황후. 그 눈빛이 섬칫해서 킁킁거리는 기철. 기황후: 내가 다시 부를 때까지 물러가 계세요 차겁다. #동. 뜰 투덜거리며 나오는 기철. 기철: 살아서 왔다고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려도 시원치 않을 판인데 면박이나 줘? 어허, 우리가 한 뱃속에서 나왔다고 누가 믿을꼬 #동. 안 기황후: 생각보다 일찍 일이 터졌구나 가만히 한숨을 내쉰다. 박불화: 심려치 마십시오 황후폐하. 설마하니 고려 왕이 반기를 든 것이겠습니까 기황후: 그러니 더욱 마음이 안 놓이지 박불화:.....(몰라서 본다) 기황후: 수종공신이란 자가 반기를 들었다. 나더러 그걸 믿어달라는 게 아니냐 박불화: 강릉대군은 우유부단한 자가 아니옵니까? 기황후: 그 자가 보낸 굴욕의 세월과 원에 공녀로 끌려온 내 치욕이 다른 것이겠느냐 박불화:..... 기황후: 나는 누구보다 그 자를 잘 알고 있느니라. 그러기에 왕위를 구걸하는 그 자의 비열함 뒤에 숨어있던 분노를 나는 똑똑히 보았다. 나 역시 그 분노의 힘을 빌려 이 자리까지 왔으니 내가 어찌 그를 모르겠느냐 박불화:...... 기황후: 내가 그 자를 잘 알 듯이 그자 역시 나를 잘 알고 있을 것이야. 그러니 어디 이게 만만한 싸움이겠느냐 또 한번 빙긋 웃는 기황후. #광화문. 앞 원현이 두리번거리며 온다. 궐문을 바라보다 흠칫 놀라는 원현. 신돈이 궐문을 향해 참선을 하듯 앉아있다. 원현: 편조스님 (달려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신돈:..... 가슴을 펴고 두 눈을 질끔 감은 신돈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길게 내뿜는다. 원현: 편조스님. 여깄다간 큰 봉변 당하십니다 신돈:..... 대꾸없이 숨만 크게 내쉬는 신돈. 원현:(기가막혀) 대체 뭘 하시는 겁니까 신돈: 전하께 기를 좀 불어 넣어드리려고 원현: 예? 신돈:(일어나 옷 툭툭 털면서) 가세 앞서가는 신돈. 기가막혀 바라보고 서있는 원현. #남대가의 거리 철시를 해서 한가하다. 신돈을 따라오는 원현. 원현: 전하께 기를 불어넣어 주다니오. 대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신돈: 원 이렇게 말귀가 어두워서야. 전하께서 큰 곤욕을 치르고 계실 것이니 힘을 내시라고 기를 좀 넣어드렸다는데 꼬치꼬치 캐묻기는 원현: 그러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모두가 고소해하는데 기를 불어 넣어주긴요 신돈: 고소해하다니 원현: 여기저기서 조일신을 칭찬하는 소리가 자자합니다. 서슬퍼런 부원배들을 쳐죽였으니 얼마나 속들이 시원하겠습니까 신돈:(웃으며) 원현스님도 통쾌하신가 원현: 통쾌하구 말구요 신돈:(혀를 차는) 원현: 혀는 왜 차십니까 신돈: 귀찮게 물어대는 빈대를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워서야 되나 옷고는 앞서가는 신돈. 원현:(따라가며) 사람들이 뭐라고 그러는 줄 아십니까. 왕씨만 임금이 되라는 법이 어딨냐. 조씨면 어떻게 김씨면 어떠냐 신돈:(멈춘다)..... 원현:(흠칫한다) 신돈: 그런 소리까지 나온단 말인가 원현: 원나라 눈치만 보는 임금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신돈: 조씨면 어떻고 김씨면 어떠냐? #초선의 집. 앞 대문이 열리더니 내다보는 공철. 신돈과 원현이 서있다. 신돈: 공철스님. 밥 한끼 얻어먹으러 왔네 공철:...... 훑어보더니 얼른 대문을 닫아버린다. 신돈: 밥 한 끼 얻어먹으러 왔다는데 대문을 왜 잠그시나 원현이 달려가 대문을 두드린다. 원현: 공철스님. 공철스님 응답이 없다. 신돈: 그만 돌아가세. 이댁 인심이 변했나보이 원현:(오며) 오죽 답답했으면 조일신이 나서겠느냐 그말입니다. 임금이 원나라 눈치만 보고 있으니 신돈: 그래서 대궐에다 대고 그렇게 돌팔매질을 하셨나 원현:(얼굴 붉히며) 그걸 보셨습니까 신돈: 마치 신들린 사람 같더이 놀리듯 웃는 신돈. 대문이 다시 열린다. 공철: 들어오시랍니다 #동. 마당 공철을 따라 들어오는 신돈과 원현. 공철: 편조스님은 안으로 드시고 원현스님은 날 따라오시지요 행랑채로 가는 공철. 공철을 따라가며 댓돌을 바라보는 원현. 신발들. #동. 안방 밖에서 신돈의 헛기침. 초선: 들어오시지요 신돈, 들어선다. 초선을 중심으로 빙 둘러앉은 사람들. 신돈:...... 하급관리같은 중인들과 상인들이 섞여 앉았다. 초선: 말씀들 계속 하시지요 눈치보는 사람들. 초선: 편조스님은 믿을만 하니 개의치 마시고 말씀들을 하세요 상인1: 가구소에서 걷어가는 세금만 해도 견디기 어려운데 권문세도가들이 저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뜯어가니 이래서야 어디 장사를 해먹겠느냐 그 말입니다 신돈:..... 조용히 뒷전에 자리잡고 앉는다. 상인2: 뒤집어 엎어야지. 방법이 뭐 있나 관리1: 좀 더 두고봐야 할 거요 상인2: 수종공신이란 자가 반기를 들었다면 임금의 체통이 땅에 떨어진 거 아닙니까 관리1: 사태가 분명치 않네 상인1: 분명치 않다니오 관리2: 지금으로선 지극히 유동적이다 그 말씀이오. 조일신이 정권을 확실히 잡은 건지 아닌지 (관리1에게) 안 그렇소 관리1: 그렇다고 봐야지요 상인2: 폐주를 애도하는 백성들을 보지 않았습니까. 새 임금이 오죽 미웠으면 대궐에다 돌을 던졌을꼬 상인1: 중전의 가마에도 돌멩이가 날아 들었지요 상인2: 때가 무르익었어요. 이판사판 지금 들고 일어납시다 관리1: 아직은 때가 아니래두 상인2: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사람들. 초선:...... 빙긋 미소 지은 채 얘기만 듣고 있는 초선. 신돈을 본다. 고개 푹 숙이고 앉아있는 신돈. #동. 대문. 앞(밤) 대문이 열리고 내다보는 공철. 인적이 없다. 대문을 활짝 여는 공철. 관리들과 상인들이 나와 사방으로 흩어져간다. #동. 안방(밤) 말차를 갈고 있는 초선. 신돈:....... 초선:(찻잔 내밀며) 미안합니다. 스님을 믿을 수가 없어 사람을 풀어 스님의 뒷조사를 좀 했습니다 신돈: 그러셨습니까 초선: 연경에 계실 때 강릉대군과 가깝게 지내셨다고 하더군요 신돈: 헌데 역적모의를 하는 자리에 저를 왜 불러 앉혔습니까 초선:(웃으며) 역적모의라니오 신돈: 조씨든 김씨든 고려의 왕이 될 수 있다면 초선:(막듯이) 새로운 나라를 세워보자는 게 역적모의일 수는 없지요 신돈:....... 초선: 놀라셨습니까 신돈:(웃으며) 지금 당장 대궐로 달려가 고해바치면 두둑한 상을 받겠습니다 초선:(가만히 바라본다) 신돈: 못할 사람으로 보입니까 초선: 그 양반이 편조스님을 만나 주시겠습니까 신돈: 만나주고 말고요. 저와는 흉허물 없이 지내던 막연한 사이니 초선: 지금은 고려의 왕입니다. 왕관을 머리에 쓰고도 천민을 친구처럼 대해주겠습니까 신돈:.......(빙긋) 초선: 스님께서 권문세도가의 집을 찾아다니신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번번이 문전박대를 당하셨지요 신돈: 그런 제 꼴이 측은하셨겠습니다 초선: 임금이 바뀔 때마다 기대를 했지요. 허나 무엇하나 달라진 것이 없질 않습니까. 강릉대군은 처음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기황후의 꼭두각시나 다름없는 강릉대군에게 뭘 기대할 게 있겠습니까 신돈:......(빙긋) 초선: 강릉대군과 가까운 사이였다니 어디 변명이라도 한마디 해주시지요 신돈: 나라를 새로 세우는 일이 쉬운 일입니까 초선: 허면 어째서 세상을 뒤집어 놓겠다고 큰 소릴 치고 다니신 겁니까 신돈:(웃으며) 차를 사고 파는 장삿꾼인줄 알았더니 나라를 사고 파는 장삿꾼이셨습니다 (일어난다) 차는 잘 마시고 돌아갑니다 나가는 신돈. #동. 마당(밤) 나오는 신돈. 박서방과 장정들이 버티고 서있다. 신돈:...... 무시하고 마당으로 내려서는 신돈. 신돈을 에워싸는 장정들. 험악하다. 박서방:(안에다 대고) 마님. 이놈을 어찌할까요 #동. 안방(밤) 초선:....... #동. 마당(밤) 박서방: 마님 초선:(안에서) 보내드리시게 박서방: 마님. 이놈이 밖에 나가 입을 열면 어찌하려고 그러십니까 #동. 안방(밤) 가만히 찻잔을 들어 마시는 초선. #동. 대문. 앞(밤) 원현을 끌고 나와 팽개치는 공철. 원현: 어구구구 공철:(손 털며) 미안하네 대문 닫아버린다. 신돈이 빙긋 웃고 서있다. 원현: 갑자기 왜 저러는 겁니까. 머리 맞대고 밥을 먹다가 사람을 끌고나와 패대기를 치니 신돈: 그만한 것도 다행으로 여기시게. 하마터면 황천 구경 떠날 뻔했네 껄껄 웃어대는 신돈. #남대가의 국수집. 국수 먹고 있는 신돈. 원현:(놀래서) 소활동 보살님이 꾸미고 있는 일이 역적모의다 그 말씀입니까 신돈:(큰소리로) 나라를 뒤엎자고 쑥덕거리고 있으니 그게 역적모의가 아니고 뭐겠나 원현: 편조스님 당황해서 주위의 눈치를 살피는 원현. 아랑곳 없이 국수만 먹고 있는 사람들. 국수집 주인이 국수를 나르고 있다. 신돈: 주인장. 말씀 한마디 물읍시다. 조일신이 충신입니까 역적입니까 국수 먹던 사람들이 쳐다본다. 주인장: 그걸 말씀이라고 하시오. 그 놈이 그 놈이지 와아 웃음이 터지고 다시 국수를 먹는다. 신돈: 보게나. 부원배를 때려죽였는데도 조일신을 칭찬하기는커녕 욕밖에 돌아가는 것이 없질 않나 원현: 그래서 동참을 하시겠다고 했습니까 신돈: 그랬으면 자넬 대문 밖으로 내동댕일 쳤겠나 원현:(바싹 다가 앉으며) 좋은 기회가 아닙니까 (비아냥거리듯) 입으로만 세상을 뒤집어 엎겠다고 떠드실 게 아니라 신돈: 큰스님께서 허락을 해주시겠나 원현:(입맛 다시는) 신돈:(한숨 쉬고) 어쩌면 그 양반이 먼저 이 놈의 세상을 뒤짚어 엎어 놓을 지도 모르지 원현: 그 양반이라니오 신돈: 누군 누구. 저 큼지막한 집에 앉아 계시는 어른 말씀이지 (대궐을 가리킨다) 원현: 편조스님도 참. 그럴 양반이 부원배들 눈치나 보고 있다 조일신이한테 뒤통수를 얻어 맞습니까 신돈:(놀라는 시늉) 원현: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신돈: 세상풍파를 좀 겪으시더니 우리 원현스님 입이 걸쭉해지셨습니다 (웃는) 원현: 예. 그 놈이 그놈이지요 비로소 국수 먹는 원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달려간다. 장정1:(국수 먹는 사람들에게) 뭣들 하고 있나. 나라에서 부원배놈들 집하고, 역적놈들 집을 마음대로 털어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네 먹다말고 우르르 달려가는 사람들. 신돈도 남은 국수 얼른 삼키고 일어난다. 원현: 어딜 가시려구요 신돈: 원현 스님은 여기 앉아 계시게. 명색이 스님인데 남의 물건을 훔치러 갈 순 없잖은가 웃어대고 성큼성큼 따라가는 신돈. #기철의 집. 앞 난장판이다. 집안의 물건을 가지고 나오는 백성들. 서로 차지하려고 아우성이다. 호군:(말 위에서) 좌정승께서 부원배들의 재산은 원래 백성들의 것이었으니 마음대로 가져가도 좋다고 허락을 하셨다 #김용의 집. 앞 집안에서 물건을 가지고 나오는 백성들. 서로 뺏고 뺏기고 아우성이다. 그 바람에 물건이 망가지기도 한다. 구경꾼들을 박수치며 좋아한다. 그 속에 평복을 한 김용이 안절부절하고 있다. 그 어깨를 툭 치는 신돈. 깜짝 놀라는 신돈. 신돈: 상호군대감이 아니십니까 김용: 쉬잇 손으로 입을 막는 김용. 신돈: 그 동안 많이도 모으셨습니다 김용: 이 사람이 신돈: 이러니 전하의 체면이 말이 아니지요 김용: 아구구구. 저, 저, 저놈들이 백성들이 도자기를 서로 뺏으려다 놓쳐서 깨트린다. 그때마다 눈을 찔끔찔끔 감으며 아까워 어쩔 줄 모르는 김용. 신돈:(혀를 차며) 아까워서 어쩌나 김용: 조일신이 이놈. 어두 두고 보자 이를 가는 김용. 신돈:....... 대문을 본다. 원현이 안에서 탁자 하나를 들고 나온다. 희열에 차서 가뿐 숨 내쉬며 신돈을 찾는다. 원현:(신돈을 보더니) 편조스님 탁자를 번쩍 들어보이며 미친 듯이 웃는 원현. 뒤에서 밀고 나오는 백성들과 부딪쳐 그만 탁자를 놓치고 마는 원현. #어느 집. 헛간(밤) 짚더미를 뒤집어 쓰고 웅크리고 잠이 든 원현. 신돈:...... 바라본다. 잠꼬대처럼 히죽히죽 웃고 있는 원현. 신돈:.......그렇게도 좋으셨나 원현:......(꿈 속에서 웃고 있는) 신돈:....... 문득 치솟는 눈물. 윗옷을 벗어 원현을 덮어주는 신돈. #개태사의 뜰(밤) 큰스님의 방 쪽마루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덕운. 곰순네가 보더니 혀를 차고 간다. 덕운:..... 꿈을 꾸고 있었는지 깜짝 놀라 깨며 손을 내저으며 푸푸거리는 덕운. #동. 큰스님 방 안(밤) 윗목의 지효. 마주앉은 보우와 큰스님. 보우: 천년 동안 땅 속에 묻혀 있던 지귀가 환생을 한 것이 편조라 하셨습니까 큰스님:(몸만 흔드는) 보우: 그러니 스님께서 편조를 거두셔야지요 큰스님: 편조가 무슨 말썽이라도 부렸습니까 보우: 시치미를 떼실 작정이십니까 큰스님:(정색하고) 시치미는 보우 선사께서 떼고 계시지 보우:... 큰스님: 불법은 세상을 편하게 만드는 것이지 새것을 담는 그릇이 아니지 보우가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차며 돌아앉는 큰스님. 보우: 스님. 편조를 거두어들이세요 큰스님:...... 보우: 스님께서 편조를 거두어들이지 않으시면 편조는 세상을 뒤흔드는 악귀가 될 것입니다 큰스님:(노해서) 뿌리가 썩어빠진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데 그걸 보고만 있으란 말씀입니까 #동. 마당(밤) 푸푸거리며 자고 있는 덕운. 보우:(소리) 그거야 불가에서 간여할 일이 아니지요 큰스님:(소리) 불가의 법이란 게 무슨 바위 덩어리 같은 건가. 흐르는 물처럼 세상을 따라 흘러가는 것이지 보우:(소리) 허면 편조를 세상에 내보낸 건 다름 아닌 스님이셨습니다 방 안에서 터져 나오는 고함 소리는 아랑곳 없이 푸푸거리고 자고 있는 덕운. #강안전의 대문. 앞(밤) 대문을 지키고 있는 군졸들. 정천기가 온다. 정천기: 별 일 없었겠지 장교: 예, 찬성사대감 정천기: 내 허락 없이는 누구도 안으로 들여보내선 안 된다 장교: 예, 찬성사대감 정천기:.... 강안전을 바라본다. 입맛을 다시며 신음하는 정천기. #대궐의 길(밤) 불도 없이 안도치를 따라오는 이제현과 이인복. 계단을 내려간다. 안도치: 조심하십시오. 발 밑이 어둡습니다 이제현: 어이쿠 이제현이 발을 헛딛고 휘청한다. 얼른 부축을 해주는 이인복. 이제현: 난 안 되겠네. 밤눈이 어두워서 이인복: 제 손을 잡으시지요 이제현:(계단에 주저앉으며) 자네 혼자 다녀오시게. 이 늙은이가 무슨 재주로 담을 넘겠나 이인복:.......(신음) 안도치: 삼사좌사대감만이라도 어서 가시지요 (*삼사좌사 - 나라의 재정과 회계를 담당하던 기관인 ‘삼사’의 정2품 관직) 이인복: 그럼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이제현: 그러시게. 난 여기 앉아서 자넬 기다리고 있겠네 안도치: 이쪽으로 오시지요 안도치를 따라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이인복. 이제현:...... 가만히 안도의 숨을 내쉬는 이제현. #도첨의사사. 회의실(밤) 술 마시는 조일신. 조일신: 대전으로 들어간 놈이 한 놈도 없으렷다 정천기: 예, 좌정승대감 조일신: 대전 안으로 들어가려는 자가 있으면 누구든 베어버리게. 대비든 중전이든 가리지 말고. 아시겠는가 정천기: 예, 좌정승대감 조일신: 전하만 지키고 있으면 되네. 김용을 잡아 죽이고 정세운만 없애버리면 전하의 수족을 다 자른 것이니 만사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야 정천기: 대신들의 눈치가 이상합니다 조일신:(본다) 정천기: 삼삼오오 모여 수군대다가 나만 보면 꽁무니를 빼는 것이 조일신: 내가 밝은 날 아침에 대전으로 가서 전하에게 우정승 자리를 달라고 할 거야. 그런 다음 폐비 전교를 받아내야지 (*우정승 - 도첨의사사의 최고 높은 자리) 술 들이키는 조일신. 정천기: 좌정승대감. 이쯤에서 한발 물러나시는 것이 조일신: 이놈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벽에 걸어놓은 칼을 빼든다. 정천기: 좌, 좌정승 대감 조일신: 또 한번 꽁무닐 빼려고 들면 니 놈부터 죽여버릴 거야 허공에 대고 칼을 휘둘러보이는 조일신. #동. 앞(밤) 정천기, 도망치듯 나온다. 겁에 질려 떨고 있다. 조일신:(안에서) 강안전이나 잘 지켜. 여차하면 전하의 목이라도 베어 버리라 그 말이야 #동. 안(밤) 칼을 내던지고 술을 들이키는 조일신. #강안전의 뒷길(밤) 이인복: 이걸 넘으란 말인가 안도치: 이 길밖엔 없습니다 이인복: 원 세상에 안도치:(엎드리며) 제 등을 밟고 넘으시지요 안도치의 등을 밟고 담 위로 기어오르는 이인복. #강안전의 뒷채. 뜰(밤) 서성거리는 최만생. 불안하다. 쿵!하는 소리. 최만생:(소리 낮춰) 익재대감이십니까 어둠 속을 바라본다. 옷을 털며 걸어오는 이인복. 이인복: 날세 최만생: 삼사좌사 대감께서 오셨습니까 (주위 살피며) 이리로 오시지요 뒷채문을 여는 최만생. #강안전의 대문. 앞(밤) 정천기, 온다. 정천기: 안에 들어간 자가 있었느냐 장교: 물샐 틈 없이 지키고 있습니다 정천기: 대문을 열어라 대문 급히 연다. 안으로 들어가는 정천기. #동. 뜰(밤) 들어오는 정천기. 전각을 본다. 불이 꺼졌다. 정천기: 으음 안도의 숨을 내쉬고 돌아선다. #동. 안(밤) 어둡다. 공민왕: 우정승께선 이인복: 노구를 끌고 담을 넘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공민왕: 내가 믿을 사람이 우정승과 삼사좌사대감밖에 없네 이인복: 말씀만 내려주십시오 공민왕: 일이 잘못되면 이인복: 죽을 각오를 하고 들어왔습니다 공민왕:.......(안도의 숨) 이인복:.......(노려보듯 보는) 공민왕: 어찌하면 조일신을 없앨 수가 있겠나 이인복: 왕명을 내려주시면 방법은 소신이 찾아 보겠습니다 공민왕: 방이 어두우니 왕명을 써줄 수가 없네 이인복: 말씀만으로 받들겠습니다 공민왕: 고마우이 이인복: 조일신을 죽이든 살리든 개의치 않으시겠습니까 공민왕:(멈칫) 이인복: 조일신을 생포하기 힘들면 먼저 죽여야 할 지도 모르옵니다 공민왕: 경우에 따라서 하시게 이인복: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일어나더니 절을 올린다. 뒷걸음질 쳐 물러가는 이인복. 공민왕: 잠깐...... 이인복:.......(기다린다) 공민왕: 조일신은 나를 위해 고생한 자니 이인복: 가능한 한 생포를 하겠으나 장담은 못드립니다 전하 공민왕:.....알았네 이인복:...... 다시 물러나 나간다. 공민왕:..... 문득 눈물이 나서 고개를 돌리는 공민왕. #대궐의 길(밤) 계단에 앉아 있는 이제현. 안도치와 이인복, 온다. 이제현: 다녀오셨는가 이인복: 다친 발은 어떠십니까 이제현: 괜찮으이. 그래 전하께선 뭐라고 하시든가 이인복: 신세한탄만 늘어 놓으시더이다 이제현:(본다)........ 이인복:(시침 떼고 보는) 이제현:(혀를 찬다) 이인복: 천하가 조일신의 수중에 들어갔는데 전하께선들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습니까. 가시지요 익재대감 이제현을 부축해서 일으키는 이인복. 이제현: 내가 전하를 뵈었어야 하는데......그래, 이사람, 전하께서 신세한탄을 하시려고 이 밤중에 우릴 대궐로 부르셨단 말인가 말없이 이제현을 부축해가는 이인복. 시침 떼고 그 뒤를 따르는 안도치. #강안전의 방 안(밤) 어두운 방 안. 공민왕: 이번엔 내가 부인을 지켜주겠습니다 #곤성전의 대문. 앞 대문이 안에서 열린다. 가마가 나온다. 시종한 안도치와 박상궁 등. 가마를 막고 서는 군졸들. 안도치: 물러나시게. 중전마마 행차시네 장교2: 밖으론 못나가십니다 노국공주:(가마 안에서) 내가 대비전에 아침 문후를 올리러 간다 흠칫하는 장교2. 안도치: 가자 가마꾼을 재촉하는 안도치. 가마 간다. 그 기세에 물러서는 군졸들. #정세운의 사랑방. 안 정세운: 도대체 어디 숨어 있다 이제야 나타나시나 김용:.... 사복을 입고 정세운을 바로 보지 못하는 김용. 정세운: 무슨 일이 있어도 전하를 지켜드렸어야지. 자네가 도망을 치는 바람에 전하께서 조일신에게 온갖 수모를 당하고 계시네 김용: 난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나 정세운: 내가 자네 속을 모를 줄 아나. 기철과 조일신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어부지리를 취하려는 자네 속셈을 김용: 면목이 없으이 정세운: 꼴도 보기 싫으니 내 집에서 나가시게 김용: 이 사람. 조일신이가 날 잡아죽이려고 혈안이 돼 있네. 자네가 날 숨겨주지 않으면 난 죽은 목숨이네 정세운: 전하께선 자넬 용서해주실 것 같은가 김용: 내가 어리석은 욕심에 눈이 멀었었네 우는 시늉하는 김용. 정세운:(보더니 측은해서) 못난 사람 같으니. 전하께서 자넬 그렇게 끔찍이 위해주셨거늘 #영수전의 방 안 명덕태후:(환하게 웃으며) 이 난리통에 절은 무슨 절. 그냥 앉으시게 절을 올리는 노국공주. 명덕태후: 으흠 새침 떨고 절을 받는다. 절 올리고 있는 노국공주. 명덕태후:(김상궁에게) 중전께서 궁중 예법을 다 익히셨네 그려. 안 그렇습니까 중전 (웃으며) 처음 대궐에 들어와서는 절을 하다 다리가 꼬여 주저앉고는 하지 않았습니까 노국공주: 밤새 편안하셨습니까 마마 명덕태후: 편안할 리가 있습니까. 주상께선 강안전에 갇혀 계시고 들리는 소문에 대신들이 중전을 폐하라고 소란을 떨고 있다니 잠이 올 리가 없지요 노국공주:(미소) 명덕태후: 마음 고생이 심하겠습니다, 중전께서 웃으며 혜비를 돌아본다. 고개 숙이고 있는 혜비. 명덕태후: 고개는 왜 숙이고 있누. 죄를 진 것도 없는데 혜비:..... 고개 들어 노국공주를 본다. 노국공주:.... 미소 짓고 있는 노국공주. 혜비:...... 미안해서 고개 숙여 인사하는 혜비. 노국공주: 우정승대감 댁의 여식이라 했습니까 혜비: 예, 중전마마 노국공주: 명문가의 여식이 고생이 많으십니다 혜비:(숙이는) 명덕태후: 고생이지요. 나이가 찼는데도 시집도 못가고 늙은이 시중이나 들고 있으니 노국공주: 나 대신 대비전의 시중을 들고 계시니 내가 이 신세는 잊지 않겠습니다 웃어보이는 노국공주. 더욱 몸둘 바를 모르는 혜비. #강안전의 복도 조일신: 고하시게 최만생: 전하. 좌정승께서 드셔 계시옵니다 공민왕:(안에서) 뫼셔라 쾌활한 공민왕의 목소리. 조일신:(의외다) 최만생: 드시지요, 좌정승대감 문이 열린다. 헛기침 하고 안으로 들어가는 조일신. #동. 안 공민왕:(웃으며) 어서오세요. 그러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조일신:..... 오히려 당황해서 둘러본다. 우대언이 전교를 받아쓸 준비를 하고 앉아있고, 안도치가 웃으며 시립했다. 조일신:.... 좀 불안한. 공민왕: 앉으세요 조일신:(선 채로) 어찌하기로 정하셨는지요 공민왕: 뭘 말씀입니까 조일신: 중전마마를 폐하신다는 전교를 내리시기로 약속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공민왕: 내가 그리 약속을 했습니까 조일신:..... 공민왕:(웃으며) 우선 차나 한잔 합시다. 앉으세요 조일신:....... 공민왕의 환한 얼굴에 더 불안해서 둘러보는 조일신. 안도치:(밖에다) 찻상을 들여 오너라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 웃고 있는 안도치. #선경전의 뜰 전각 위에 서있는 이인복. 뒤에서 최영과 김첨수가 온다. 이인복: 오셨는가 훑어본다. 최영과 김첨수 모두 관복을 입었다. 최영: 염려마십시오 성산군대감. 김첨수는 단검을 잘 쓰는 사람입니다 김첨수에게 눈짓하는 최영. 김첨수, 주위를 둘러보며 소매 속에 감춘 단검을 보여준다. 이인복: 조일신의 무예가 뛰어나다는 건 잘 알고들 있겠지 최영: 명심하고 있습니다 이인복: 조일신은 지금 강안전에 들어 있네 최영: 알겠습니다 (김첨수에게) 가세 김첨수와 가는 최영. 걱정돼서 바라보는 이인복. 최영:(멈추더니) 일이 잘못되면 성산군께선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십시오. 저와 김첨수가 대신 죽을 겁니다 이인복: 반드시 성공을 해야 하네. 전하를 위해서 #초선의 집. 마당 박의처: 이 일을 어쩌나. 마님께선 아침 일찍 법왕사로 불공을 드리러 가셨는데요 신돈: 고맙습니다 (가다가) 반야는 잘 있습니까 박의처: 참 알다가도 모를 앱닌다. 나일 먹을수록 말이 없어지니 (웃으며)어떨 땐 벙어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지 뭡니까 신돈: 그래요? 웃으며 돌아서다 다시 돌아서는 신돈. 방문을 조금 열고 밖을 내다보고 있는 반야. 신돈과 시선이 마주치자 살그머니 방문을 닫아버리는 반야. #법왕사의 마당 초선, 들어온다. 법당에서 지효가 나온다. 초선을 보더니 합장하고 돌아서 간다. 초선: 죽는 날까지 날 피할 셈이냐 지효: 속세의 인연은 끊었다고 했습니다 초선: 그렇다고 날 피할 것까지야 없잖으냐 지효:(돌아서며) 나는 누님의 마음 속에서 끓어오르고 있는 증오심을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초선: 내가 이 미움의 불꽃을 꺼버리면 아버진 영영 지옥의 불꽃을 벗어나지 못하실 게다 지효:...... 눈 감고 합장하며 입 속으로 빠르게 나무관세음보살을 되뇐다. 초선:(합장하며) 성불하십시오 지효스님 법당으로 가는 초선. 지효: 편조스님을 끌어들이지 마세요 초선:......(멈춘다) 지효: 개태사의 큰스님께서 편조스님은 천년 동안 땅 속에 묻혀있던 지귀가 환생을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초선: 한을 품고 목숨을 끊은 아버지가 그 소릴 들으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법당 안으로 들어가는 초선. 지효:...... #강안전의 방 안 전교를 쓰는 우대언. 웃으며 차를 마시고 있는 공민왕. 조일신: 으흠 전교지를 기웃거리며 헛기침하는 조일신. 공민왕: 내가 조일신은 우정승으로 삼는다고 쓰라고 했습니다 조일신: 신은 공민왕: 이제현은 안 되겠어요. 조금 있으면 원에서 문책사를 보낼 텐데 연로한 이제현이 감당이 되겠습니까 조일신: 문책사라니오. 저들이 뭘 문책한다는 겁니까 공민왕:(바라보는) 조일신: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신이 한마디로 그 놈들의 혼을 빼놓겠습니다 공민왕:(바라보더니) 경이 연경으로 날 찾아왔을 때 나는 철부지 어린 아이였습니다 조일신:.....으흠 공민왕: 그때 기억이 나십니까? 조일신:(좀 무안해서) 신이 어찌 그 때를 잊고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실 때마다 신의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팠습니다 공민왕:.....(바라보더니 빙긋 웃는다) 조일신:(떨쳐버리듯) 오늘은 결단을 내리시지요 공민왕: 무슨 일이 있어도 중전을 폐위해야 되겠습니까 조일신: 신은 좋아서 그러겠습니까. 원에 맞서 싸우자면 공민왕: 정이 들어서 그럽니다 조일신:..... 공민왕: 돌이켜보면 중전께서도 가엾은 사람이 아닙니까 조일신: 인정에 매달릴 일이 아니지요 공민왕:.... 다시 물끄러미 바라보는 공민왕. 그 시선을 피하려고 애쓰는 조일신. 바라보는 공민왕. 헛기침하며 공민왕을 바라보는 조일신. 흠칫한다. 공민왕:...... 눈물이 고였다. 또 한번 섬칫한 조일신. #법왕사의. 법당 안 절하는 초선. 뒤에 앉은 신돈. #강안전의 방 안 공민왕:....... 가만히 미소 짓고 있는 공민왕. 두 눈을 부릅뜨고 그런 공민왕을 바라보는 조일신. 공민왕: 내가 선경전으로 가서 중전의 폐위 전교를 내릴 겁니다 환하게 웃어 보이는 공민왕. #법왕사의 법당. 안 염주를 만지며 불상을 바라보고 있는 초선. 신돈: 나라를 새로 세워보자고 하셨습니까? 초선:...... 신돈: 그 대답을 드리러 왔습니다 초선:...... 염주를 만지던 손이 멎는다. 신돈: 예. 조씨가 왕이 되면 어떻고 김씨면 또 어떻겠습니까. 천민이 춤을 추는 그런 세상을 만들면 그만이지요 껄껄 웃는 신돈. #강안전의 방 안 방문이 열리고 허리를 굽힌 채 뒷걸음질 치며 나가고 있는 조일신. 그런 조일신을 바라보는 공민왕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고 있다. #법왕사의 법당. 안 웃고 있는 신돈 -. <신돈 제18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