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 28회 <신돈> -28회 - #선경전의 안 공민왕: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토벌군이 연경에 잡혀 있다니 이제현: 원의 황제가 토벌군의 전공을 치하하다는 명목으로 귀국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고 하옵나이다 공민왕:(신음) 웅성거리는 대신들. 이제현: 하오나 전하,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오래 잡아두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이인복: 기황후의 농간입니다 웅성거리는 대신들. 이인복: 왜구를 막기에도 급급한 고려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저들이 토벌군을 연경에 잡아두려는 속셈이 뭐겠나이까. 이는 필시 도성의 치안이 허술한 틈을 타서 변을 꾀하려는 농간이 아니겠나이까 동요하는 대신들. 이제현: 설마하니 덕성부원군이 딴마음을 품고 있겠나이까 이인복: 덕성부원군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는 천하가 다 아는 일입니다 소란스러워지는 대신들. 문득 조용해진다. 기철이 안으로 들어온다. 뒤따라 들어오는 권겸, 노책, 기륜 등 부원배들. 흠칫하는 공민왕. 기철: 전하. 신 기철이 그 간에 전하를 자주 찾아뵙지 못하였나이다. 신의 무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허리를 굽히는 기철. 권겸 등이 따라서 허리를 굽힌다. 공민왕:(신음) 기철: 전하. 신들은 누구보다 대원제국의 은혜를 입었나이다. 그런 신들이 그 은혜를 갚지 않는다면 금수와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나이까 싱긋 웃더니 최만생을 손짓해 부른다. 최만생이 온다. 기철: 올리시게 기륜에게 눈짓한다. 기륜이 문서 뭉치를 최만생에게 건넨다. 기철: 전하. 신들이 전답을 조금 거둬들였나이다. 전하께서도 대원제국의 은혜를 하늘 같이 입으셨을 것이니 그 보답을 하셔야 할 것이 아니겠나이까 최만생에게 어서 올리라는 손짓. 최만생이 공민왕에게 문서를 가지고 간다. 공민왕: 고맙소이다. 그런 염려까지 해주시니 기철: 왕실의 재정이 여러모로 어렵다고 들었나이다. 신이 무심하여 미처 살펴드리지 못하였나이다 공민왕: 고맙게 쓰겠소이다 기철:(대신들에게) 전하를 모시려면 똑바로들 모셔야지요. 세상 물정 모르고 날뛰면 그 누가 모두 전하에게 돌아가는 걸 모르시는가 이인복: 말씀을 가려하시지요. 전하께 누가 돌아간다니오 기철: 몰라서 물으시는가 이인복:(신음) 기철:(대신들을 훑어보며) 진나라의 시황제가 입이 화의 근본이라고 했소이다. 공연히 전하를 부추겨서 화를 부르지 말라는 말씀이외다 기철의 사나운 눈길을 피하기에 급급한 대신들. #선경전. 앞 기철과 부원배들이 나온다. 기철:(뒤돌아보며) 호랑이 굴인 줄 알았더니 여우굴이 아닌가 와아 웃음이 터진다. 권겸: 그러게 내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입만 살아 나불거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다시 와아 웃음이 터진다. #동. 안 부원배들의 웃음소리. 공민왕:..... 치욕에 부르르 떠는. #기황후의 처소. 뜰 초조하게 서성거리는 정세운. 정세운: 곡성부원군대감. 오늘이라도 당장 개경으로 떠납시다. 전하께서 얼마나 초조해 하시겠습니까 염제신: 기왕지사 지금까지 기다린 거 조금만 더 기다려보세 정세운: 고려군을 하루라도 더 붙잡아 두려는 기황후의 속셈을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염제신: 난들 그걸 왜 모르겠나. 황제를 배알하지 않고 그냥 떠나갔다간 무슨 문책을 당할 지 모르니까 하는 소리지 박불화가 안에서 나온다. 염제신:(반가워서) 어떻게 됐습니까 박불화:(한숨쉬며) 오늘도 안 되겠습니다 정세운: 오늘도 안 되다니오 박불화: 황제폐하의 환후가 차도가 없으시니 난들 어쩌겠나. 일어나실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정세운: 대체 우릴 얼마나 더 붙잡아 둘 작정입니까 박불화:(싱긋 웃으며) 오래야 걸리겠는가 정세운: 벌써 한 달이 지났소이다 박불화:(무시하고 염제신에게) 고려군의 뛰어난 무용이 없었다면 강소성 전투에서 승리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황제폐하께서 그 노고를 치하하시겠다고 하시는데 그냥 떠나셔서야 되겠습니까. 그 동안 고생이 많았으니 겸사겸사 푹 쉬었다 떠나시지요 또 한번 싱긋 웃어보이는 박불화. #연경 부근 숲. 염제신의 막사 안 들어오는 염제신과 정세운. 최영 등 젊은 장군들이 기다리고 있다. 최영: 어떻게 됐습니까 정세운: 내일 당장 개경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시게 염제신: 며칠만 더 기다리세 정세운: 우리가 여기서 꾸물대고 있는 동안 부원배들이 난이라도 일으키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염제신: 그나저나 안성군은 통 보이질 않으니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겐가 딴청을 부리는 염제신. #고려촌의 술집(밤) 벌써부터 술에 취해서 여자를 끼고 깔깔거리며 술을 마시고 있는 김용. 최유: 안성군대감 제 술 한잔 받으시지요 김용: 좋지요 (술잔 내민다) 따르는 최유. 김용:(손 저으며) 됐습니다. 반만 따르세요. 반만. 밤새도록 마시기로 했는데 잔을 가득 채우면 이 긴긴 밤을 어찌 다 세우겠습니까 최유: 제가 듣기로는 술로는 안성군을 이길 사람이 없다고 들었는데 벌써부터 꽁무니를 빼십니까 김용: 그야 그렇지요. 내가 술내기를 해서 진적이 없소이다. 허나 그 동안 오랜 유배생활을 하다보니 기가 많이 허해졌는지 몸이 옛날 같지가 않아오 최유: 유배라니오? 수종 공신인 안성군을 누가 유밸 시켰다는 겁니까? 김용: 그런 일이 있었소이다 최유: 고려의 국왕이 측근들을 소홀히 대한다고 하더니 그게 사실인 모양입니다. 얼마 전엔 조일신은 죽이더니 안성군까지 유배를 시켰다는 말씀입니까? 어허, 세상에 이런 배은망덕한 일이 있나? 안 그렇습니까? 덕흥군대감 덕흥군: 그, 그러게 말일세 최유: 덕흥군과 고려 국왕과는 하늘과 땅 차입니다. 덕흥군께서는 항상 주위에 있는 사람을 먼저 챙기시지요. 콩 한쪽이 생겨도 나눠 잡수시는 분이시니 웃으며 덕흥군을 보는 최유. 어줍게 따라 웃는 덕흥군. 김용: 하긴 내가 주인을 잘못 만났지 홧술을 들이키는 김용. 최유: 안성군대감. 우리 한번.....잘해 봅시다 김용:(덕흥군을 보더니 술잔을 내민다) 제 술 한잔 받으시지요 덕흥군: 나, 나는 됐소이다 김용: 술을 못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거절을 하시는 겁니까 덕흥군:(난처) 최유: 받으시지요 덕흥군대감. 든든한 후원자를 얻으신 겁니다 마지못해 술잔 받는 덕흥군. 김용: 말은 주인을 잘 만나야 명마가 되는 겁니다. 예, 나는 주인을 잘못 만났어요 최유: 옳거니 맞장구치며 웃어대는 최유. #도성의 성문. 안 장정 한 패거리가 성문 안으로 들어온다. 공철:....... 숨어서 지켜본다. 장정들의 옷 속에 숨겨진 무기들. 눈이 번쩍하는 공철. #초선의 집. 안방 초선: 덕성부원군의 사병들이 옷속에 무기를 감추고 도성 안으로 들어오고 있단 말이냐 공철: 그 뿐이 아닙니다. 부원배들의 노비들도 무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초선:(신돈에게) 일이 급하게 돌아가나 봅니다 신돈:..... 신음하더니 일어난다. 초선: 어딜 가시려구요 신돈: 전하를 지켜드려야지요 #기철의 사랑방. 안 기철: 얼마나 모았느냐 청지기: 그럭저럭 칠팔백은 넘사옵니다 권겸: 더 모아야지. 그거 가지곤 안돼지 청지기: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까지 합하면 그 배가 넘습니다요 기철: 그거면 됐다 권겸: 대궐에서도 대비를 하고 있을 텐데 그 정도 가지고 되겠소이까 기철: 조소생이 있질 않소이까. 내가 쌍성총관부에 기륜이를 보냈으니까 머잖아 좋은 소식이 올 거외다 권겸: 그렇다면 몰라도 #쌍성총관부의 관저. 안 조소생: 이장군은 어찌하겠소 이자춘:(신음) 조소생: 날자를 정해 우리가 개경을 포위하면 덕성부원군이 사병을 몰아 대궐을 점령할 거요. 지금 개경과 대궐을 지키는 군사래야 몇 안 되니 이야말로 식은 죽 먹기가 아니오 이자춘: 원에서 군사를 보내면 모를까 섣불리 우리가 나섰다가 일이 실패로 돌아가면 평생 고려와 원수로 지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조소생: 그렇게 마음에 걸리면 이장군은 빠지시오. 내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개경으로 갈 것이니 이자춘: 좀 더 신중히 하시는 것이 조소생: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떠시오 배석한 무장들을 둘러보는 조소생. 이자춘의 눈치만 보는 무장들. 조소생: 이번 기회를 놓치면 우리는 죽는 날까지 고려의 유민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오 여전히 망설이는 무장들. 조소생: 어허, 손 안에 굴러들어온 복을 차버릴 생각들이신가 #동. 앞 조소생, 나온다. 기륜: 어찌 됐습니까 조소생: 오늘 당장 결정을 내리긴 힘들 것 같소이다 기륜: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개경에선 이미 만반의 준비를 끝내놓고 장군의 화답만 기다리고 있는데 조소생: 나 혼자 힘으로 되는 게 아니오. 며칠만 기다려주시오 (가버린다) 기륜: 어허. 이런 낭패가 있나 안절부절하는 기륜. #대궐의 문. 안(밤) 김첨수가 궁수들을 데리고 와서 사방에 배치한다. #동. 성루 위(밤) 성루로 올라와 화살을 활에 메기고 사방을 경계하는 궁수들. #선경전의 뜰(밤) 이인복:..... 전각 위에서 마당을 내려다보고 있다. 김첨수가 응양군들을 회랑에 매복시키고 있다. 얼마 안 되는 숫자다. 가만히 한숨 내쉬고 안으로 들어가는 이인복. #동. 안(밤) 초조하게 서성이고 있는 이제현. 김원명과 대신 서넛이 구석에서 귓속말을 건네고 있다. 이인복, 들어온다. 이제현: 우리 쪽 군사가 얼마나 되는가 이인복: 해가 진 뒤에 점검을 해보니 반은 도망을 치고 없더이다 이제현: 어허, 이 일을 어쩐다 이인복: 대궐의 성곽이 견고하니 부원배들의 사병들도 쉽게는 넘지 못할 것입니다. 그보다는 대궐 안에 숨어 있는 변절자들이 문제지요 이제현:(구석의 대신들 보더니) 전하의 안위가 경각에 달렸거늘 입궐한 대신들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니 이인복: 그것이 세상 인심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라도 힘을 합쳐 전하를 지켜드려야지요 #곤성전의 뜰(밤) 무장한 환관들이 모여있다. 안도치: 이놈들. 대궐에는 세 분의 웃전 마마가 계시느니라. 중전마마와 영수전의 대비마마 그리고 덕녕부의 대비마마시니라. 세 분 가운데 한분이라도 역적놈들에게 욕을 당하시면 내가 저승까지 쫓아가서 네 놈들의 주리를 틀어버릴 것이야. 알겠느냐 윽박지르듯 다짐하는 안도치. #동. 안(밤) 끄응 신음하며 노국공주를 흘키는 명덕태후. 명덕태후: 원 세상에. 이런 곤욕이 있나 노국공주:...... 가만히 숙이고 미소. 명덕태후: 중전께서 일을 크게 만드신 겁니다 덕녕공주:(웃으며) 이게 어디 중전의 잘못이겠습니까 명덕태후: 부원배들을 가만히 내버려뒀으면 사생결단까지 하겠다고 나섰겠습니까 또 한번 노국공주를 흘키고 돌아앉는 명덕태후. 안쓰러워 노국공주를 바라보는 덕녕공주. 여전히 가만히 고개 숙이고 미소 띤 노국공주. #강안전의 안(밤) 초조한 공민왕. 공민왕: 부원배들의 사병이 얼마나 된다고 하더냐 신돈: 오륙 백은 넘는다고 하옵니다 공민왕: 그거 밖에 안 되겠느냐. 부원배들이 집에서 부리는 노비만 해도 그 정도는 넘을 터인데 신돈: 그 정도는 대궐 안에 있는 군사들만 가지고도 막고 남을 것이옵니다 공민왕: 모두가 오합지졸이야. 정예군은 염제신이 모두 징발해서 원으로 데리고 갔고 눈치 빠른 자들은 벌써 도망을 처버렸네 신돈:...... 공민왕: 조정의 대신들이란 자들도 그렇지. 형세가 불리하다 싶으니까 모두 기철의 눈치만 살피고 있네. 언제 등을 돌릴 지 모를 위인들이야 신돈: 소신이 있지를 않사옵니까 공민왕:(본다) 신돈: 부원배들의 노비와 사병은 소신이 막아드리겠습니다 공민왕: 자네가 무슨 힘으로 신돈:(빙긋) 공민왕: 또 그 백성 타령인가. 이번엔 백성들 힘 가지곤 안 되네 신돈: 어디 백성들 뿐이겠습니까 전하 공민왕:...하면 신돈: 개경 안팎에 흩어져 있는 사찰만 해도 백 여개가 넘사옵니다. 몽고가 고려를 침공했을 때 저들을 맞아 끝까지 싸운 것이 승병들이 아니옵니까 공민왕:(마른침 삼키며) 보우 왕사가 날 도와주겠느냐 신돈: 전하께서 한 말씀만 내리시면 기꺼이 도와드릴 것이옵니다 공민왕: 왕실의 불심을 돈독히 하겠다고 약속을 하란 말이냐 신돈: 그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잖습니까 전하 공민왕: 승병들만 가지고도 막을 수가 있겠느냐 신돈: 남대가의 거상들은 그 휘하에 수많은 등짐장수들을 거느리고 있사옵니다. 이들은 장사를 다니면서 도적도 막아야 하니 모두 힘께나 쓰는 자들이옵니다 공민왕:(다급하게) 그들에겐 뭘 해주겠다고 약속을 해야 되느냐 신돈: 이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저 마음 놓고 장사나 하게 해주시면 그만이지요 공민왕: 더는 바라는 것이 없단 말이냐 신돈: 예, 전하 공민왕: 그런 약속이야 못해주겠느냐 신돈:(정색하고) 전하 (바라본다) 공민왕:.... 신돈: 군주의 약속은 반석과도 같이 단단한 것이어야 하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약속들을 지키시겠사옵니까 공민왕: 지키고 말고 신돈:......(바라보는) 공민왕: 날 믿거라.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을 지킬 것이니 지금 당장 승병들과 장사치들을 모아 대궐을 지켜달라고 하거라 #동. 뜰(밤) 이제현과 김원명이 서있다. 김원명:(전각 힐끔 보며) 누가 들어있다고 하셨는가 최만생: 편조거사님이 들어계십니다 김원명: 네 이놈. 어느 어른 앞에서 편조를 높여 부르느냐. 미천한 파계승이거늘 이제현: 언성을 낮추시게. 전하께서 들으시면 김원명:(아랑곳 없이) 전하께 고하거라. 우정승께서 드셨다고 최만생: 예 안으로 가는데 신돈이 나온다. 이제현 등을 보더니 공손히 허리를 굽힌다. 이제현: 수고가 많으이 신돈:..... 또 한번 허리 굽히는 신돈. 김원명: 안으로 드시지요 우정승대감 앞서가는 김원명. 신돈이 허리를 편다. 김원명:(멈추더니) 어느 안전이라고 허리를 빳빳이 세우느냐 신돈:....... 김원명: 어허 신돈:.... 보일 듯 말 듯한 미소지으며 다시 허리 굽힌다. 김원명: 뭘 하고 계십니까 우정승대감. 어서 안으로 드시잖구요 이제현:....... 김원명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는 이제현. 여전히 허리 굽히고 있는 신돈. #기철의 집. 별채 마당(밤) 국밥들을 먹고 있는 사병들. 기철이 술병을 들고 돌아다니며 술을 따라주고 있다. 기철: 고생들이 많다. 이번 일만 성공하면 내가 너희들 소원을 다 들어줄 것이야. 자, 자, 마시거라 술을 따라준다. 사병1: 부원군대감마님. 정말 이놈들의 소원을 다 들어주시는 겁니까요 청지기: 암 들어주시다마다. 어서 소원들을 말씀해 올리시게 사병1: 이놈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호군이나 시켜주십시오 청지기: 이놈 노비 주제에 통도 크다. 아예 용호군의 대장을 시켜달라고 해라 와아 웃음. 사병2: 저는 다른 건 다 싫고 장가나 보내주십시오 기철: 대궐에 들어가면 예쁜 계집이 좀 많으냐. 맘에 드는 계집을 골라 가지면 되지 와아 웃음. 사병2: 아무 계집이나 골라도 된다는 말씀이옵니까요 기철: 암 되구말구 사병3: 기왕이면 중전마마를 골라라 기철: 옳거니. 그게 좋겠다 왁자지껄 웃고 떠들며 마신다. 원현:.... 담 위에 얼굴을 내밀고 그 모양을 지켜보고 있는 원현. 눈이 둥그래진다. #동. 담 밖(밤) 등을 대고 원현을 받치고 있는 공철. 공철: 그만 내려오게. 허리가 끊어질 지경일세 원현: 저런 죽일 놈들이 있나 공철의 등 위에 그대로 주저앉는다. 그 바람에 나뒹구는 공철과 원현. 공철: 왜 그렇게 놀래나 원현: 고귀하기 그지없으신 중전마마를 두고 추잡스런 소릴 늘어놓다니 공철: 세상이 뒤집히면 중전마마가 무슨 소용인가. 저놈들이 닥치는대로 겁탈을 하고 욕을 보일 텐데 원현: 그걸 말씀이라고 하시나. 그런 소릴 듣는 것만으로도 벼락을 맞을 걸세. 에이 더럽다 한손으로 귀를 잡고 한 손으로 벽을 잡고 깡충깡충 뛰며 침을 뱉는 원현. 놀래서 보는 공철. 어둠 속에서, 사병4: 웬놈들이냐 소리치며 달려온다. 부리나케 도망치는 원현과 공철. #강안전의 안(밤) 김원명: 편조를 너무 믿지 마시옵소서 전하 공민왕:(웃으며) 스스로 돕겠다고 나서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질 않소이까 김원명: 편조는 이제현: 그만하시게 김원명: 으음 이제현: 언잖게 듣지는 마십시오 전하. 승병들은 몰라도 원래 행상들은 믿을만한 자들이 못되는 지라 공민왕: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제현:...... 공민왕: 어제만 해도 부원배들의 생사를 내 손에 쥐고 있었는데 오늘은 내가 대궐의 아녀자들조차 지켜주지 못할 처집니다 이제현: 드릴 말씀이..... 공민왕:(공민왕에게) 더는 내 앞에서 편조를 헐뜯지 마라. 편조는 일신의 안위나 공명을 좇아다니는 자가 아니니라 김원명:(신음) #동. 뜰(밤) 나오는 김원명과 이제현. 김원명: 그래 믿을 사람이 없어서 이제현: 그만 하래도 그러신다 김원명: 우정승대감. 전하께서 저러시다 편조를 중용하면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명문 사대부가의 후예들이 노비의 자식에게 허리를 굽히게 될 지도 모르잖습니까 이제현:(신음)..... #법왕사의 법당. 안(밤) 보우:..... 지그시 눈감은. 신돈: 전하께선 고려의 마지막 희망이십니다. 이번에 전하를 잃게 되면 고려는 그 명운이 끊기고 말 것입니다 보우:..... 신돈: 왕사님께서 도와주셔야겠습니다 보우:(한숨 쉬다 눈 감은 채) 전하께서 부처님의 법을 세울 분이시라고 믿느냐 신돈:.... 보우: 수차례에 걸친 몽고의 침공 때 우리 불가가 치른 희생이 얼마나 컸느냐. 몽고 장수 살례탑은 처인성 전투 때 승려인 김윤후의 화살을 맞고 죽었다. 덕분에 몽고가 고려를 정복하는데 수십 년이 걸리지 않느냐. 헌데 불가에 대한 고려 왕실의 대접이 어떠했느냐. 나는 차제에 급하면 불가에 도움을 청하고 위기를 벗어나면 등을 돌리는 왕실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 놓을 것이야 큰스님:(소리) 네 이놈 보우야 눈을 번쩍 뜨는 보우. 큰스님이 안으로 들어선다. 큰스님: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난 이유만으로 왕사의 자리에 오른 것은 부처님의 법이드냐. 중생은 고해에 빠져 신음하고 있는데 너는 토굴을 파고 들어앉아 저들의 고통을 모른다고 하질 않았느냐 보우:.....(두 눈을 부릅뜬) 큰스님: 어리석은 놈. 절만 세우면 뭘 하느냐. 중생의 고통을 절 속에 가득 담아야 비로소 부처님의 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들고 있던 회초리를 신돈 앞에다 던진다. 신돈:(회초리를 본다) 큰스님: 내 종아리를 치거라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는 큰스님. 신돈:.... 큰스님: 뭘 하고 있는 게냐 이놈. 어서 내 종아리를 치지 않고 신돈:.... 회초를 잡는다. 큰스님: 어서 치지 못하겠느냐 신돈이 큰스님의 종아리를 친다. 큰스님: 이 놈. 그렇게 처셔야 저 미련한 중놈이 부처님의 법을 깨우치겠느냐. 피가 나도록 힘껏 처야지 신돈: 용서하십시오 스님 힘껏 큰스님의 종아리를 치는 신돈. 보우:..... 두 눈 부릅뜨고 꼼짝 않는 보우. #동. 마당(밤) 회초리 치는 소리. 큰스님:(소리) 아이구 시원하다. 힘껏 처라 이놈 신돈:(소리) 용서하십시오 스님 큰스님:(소리) 옳지. 옳지. 그 놈 종아리 한번 시원하게 친다 그때마다 자라목이 돼서 움칠움칠하는 덕운. 합장하고 있는 지효. 지효:..... 하늘을 본다. 먼동이 트고 있다. #곤성전의 안(새벽) 노국공주:..... 바라본다. 이불 펴고 잠이 든 명덕태후. 덕녕공주도 앉아서 조는 듯 잠이 들었다. #동. 복도(새벽) 가만히 방문을 열고 나오는 노국공주. 여기저기 쓰러져 잠이 든 환관과 내인들. 바라보는 노국공주. 김상궁:(달려온다) 마마 노국공주: 깨우지마라. 몇 날 며칠을 뜬 눈으로 밤을 세우고 있으니 오죽 피곤하겠느냐 김상궁: 망극하옵나이다 마마 노국공주: 대비전에서 자네보고 날 돌봐주라고 했다지 김상궁: 황공하오나 노국공주: 나를 좀 부축해다오. 밤새도록 토기를 참느라고 어찌나 고생을 했는지 몸을 가눌 수가 없구나 김상궁: 토기라고 하셨사옵니까 노국공주:.... 문득 토기가 치밀어 입을 손으로 막는 노국공주. 얼른 노국공주를 부축하는 김상궁. #동. 뜰 공민왕이 최만생 등을 거느리고 급히 온다. 안도치: 전하 공민왕: 밤새 별고 없었느냐 안도치: 예, 전하. 이 곳은 무사하옵나이다 공민왕: 어젯밤에도 세 분 마마께서 함께 지내셨느냐 안도치: 예, 전하 공민왕:..... 한숨 쉬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안도치:(급히 막으며) 황공하오나 전하, 잠시만 밖에서 기다리시옵소서 공민왕: 아직도 기침을 안 하셨느냐 안도치: 그런 것이 아니옵고.... 공민왕: 어허, 사람을 막아놓고 왜 말을 못하느냐 안도치: 중전마마께서 세수간에서 구토를 하고 계신지라 공민왕: 중전께서 구토를 하시다니. 어디가 편찮기라도 하시다는 거냐 안도치:..... 공민왕: 어허 안도치: 중전마마께옵서 회임을 하신 듯 하옵나이다 공민왕: 회임이라니 안도치:(웃으려는) 공민왕: 중전께서 아이를 가지셨단 말이냐 안도치: 예, 전하 공민왕: 그걸 왜 이제야 말을 하느냐 안으로 달려가는 공민왕. 안도치: 황공하오나 전하, 당분간은 모른 척 하고 계시옵소서 공민왕: 그게 무슨 소리냐. 중전께서 그렇게도 기다리던 아이를 가지셨는데 모른 척을 하라니 안도치: 이번 고비를 넘기면 중전마마께서 먼저 대비전에 고하고 전하께도 말씀을 올릴 것이니 입을 열지 못하게 아랫것들을 단속하라는 엄명을 내리셨나이다 공민왕: 그래? 전각을 바라본다. 전각. 공민왕: 내가....지켜줘야 할 사람이 또 한 사람 늘었습니다 눈물이 글썽해서 웃음을 참는 공민왕. #선경전의 뜰 해가 뜨고 있다. 전각 위에서 바라보고 서있는 이제현과 이인복. 이인복: 어젯밤도 무사히 넘겼습니다 이제현: 큰일이 아닌가. 토벌군이 돌아오지 않으면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 지.... 이인복: 눈이라도 조금 붙이시지요 우정승대감 기지개를 켜는 이인복. 선경전 대문이 열린다. 놀래서 보는 이인복. 스님들이 합장하고 줄줄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합장한 두 손에 목탁과 염주 대신 몽둥이들을 들었다. 기가 막히다는 듯 웃는 이인복. 이인복: 우정승대감. 스님들이 나섰습니다 이제현: 그러게 말일세 따라서 안도의 숨 내쉬는 이제현. #대궐의 문. 앞 여기저기서 등짐장수들이 떼를 지어 질서정연하게 몰려온다. 대궐 담 밑에 멍석을 깔고 봇짐을 내려놓는다. 봇짐 속에서 각종 무기들을 꺼내 즐비하게 늘어놓는 등짐장수들. #기철의 집. 마당 청지기, 뛰어 들어온다. 청지기: 대, 대감마님. 큰일 났사옵니다 기철, 안에서 나온다. 기철: 웬 소란이냐 청지기: 중놈들하고 행상 놈들이 대궐로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사옵니다 기철: 뭐, 뭐라고 청지기: 중놈들의 손엔 목탁 대신 몽둥이가 들려있고, 행상놈들의 등짐 속엔 칼이며 철퇴를 숨겨 놓고 있사옵니다 기철: 이, 이놈들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기철. 청지기: 아무래도 때를 놓친 것 같사옵니다 기철: 네 놈이 뭘 안다고 초를 쳐 청지기의 뺨을 후려치는 기철. 청지기: 아이구 뺨을 움켜잡고 주저앉는 청지기. 기철: 통문을 돌려 모두 모이라고 해라. 내 이놈들을 당장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기철. #강안전의 안 공민왕:(기분 좋아서) 그거 보십시오. 편조는 믿을만하다고 하질 않았습니까 이제현: 예, 전하. 덕분에 부원배들도 경거망동을 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공민왕: 이젠 토벌군들만 돌아오면 됩니다 웃는 공민왕. #초선의 집. 안방 신돈: 고맙습니다 보살님 초선: 거사님의 소원은 다 들어드렸습니다 신돈: 염려하지 마십시오. 전하께서도 약속을 다 지키실 것이니 활짝 웃는 신돈. #법왕사의 마당 법당에서 나오는 보우. 보우:...... 신돈이 서있다. 신돈:.... 합장하고 허리를 깊숙이 숙인다. 보우: 명심하거라 편조야. 너는 천년 동안 땅 속에 묻혀있던 지귀가 환생을 한 것이니 하루 빨리 그 업을 다 씻고 다시 땅 속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야 신돈: 공평한 세상이 온다면 땅 속이 아니라 불속인들 못들어가겠습니까 또 한번 허리를 굽힌다. #동. 큰스님의 방. 앞 신돈, 온다. 큰스님:(안에서) 아이구 아야. 그렇게 박박 문지르면 어떡하냐 이놈 #동. 방 안 큰스님 종아리에 고약을 발라주고 있는 덕운. 덕운: 좀 참으세요 스님. 박박 문질러야 약기운이 뼛속까지 스며들 것이 아닙니까 문지르는 덕운. 큰스님: 아, 살살 좀 문지르래도 싱글거리며 더 문지르는 덕운. 큰스님: 그만둬라 이놈 (다리 덮으며) 이 놈이 이거 가만히 보니 일부러 날 골탕을 먹이고 있는 게야 덕운: 스님 종아리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건 편존데 왜 절 원망하십니까 큰스님: 그 미련한 놈이 때리는 시늉만 할 것이지 그래 피가 나도록 내 종아릴 쳐 #동. 앞 신돈:.....(웃고 있는) 덕운:(소리) 종아리 내놓으세요 스님 큰스님:(소리) 아이구 싫어 이놈아 덕운:(소리) 스님 킥킥 웃는 덕운. 큰스님:(소리) 아, 저리 못 가 이놈 덕운:(소리) 조금만 참으세요 큰스님의 엄살 떠는 소리. 신돈:..... 나오는 눈물을 참으며 한껏 미소 짓는 신돈. #기철의 집. 사랑방 안 기철모:(혀를 차며) 못난 녀석. 그런 일 하날 처릴 못해서 쩔쩔매 기철: 으흠 기철모: 그래 앞으로 어떡할거냐 기철: 그까짓 중놈들하고 행상놈들이 무슨 힘을 쓰겠습니까 어머니 기철모: 그래도 큰소리는 기철:(부원배들에게) 염려들마시게. 쌍성총관부에 간 기륜이 군사를 이끌고 오는대로 대궐을 엎어버리세 기철모: 올 놈들이면 벌써 왔지 권겸: 대부인마님 말씀이 옳으십니다. 조소생을 믿고 있다간 큰 일 나겠습니다 기철모: 이럴 게 아니라 우리 다 보따리 싸가지고 연경으로 들어가자. 그게 사는 길이야 노책:(무릎 치며) 옳습니다 대부인마님. 여기서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살게 뭡니까. 먹고 살만큼 모았겠다 원나라에 가서 두 다리 쭉 뻗고 편히 사는 게 낫지요 맞장구치는 부원배들. 기철: 우릴 곱게 보내 줄 거 같은가 노책:(놀래서 본다) 기철: 고려 왕은 그럴 지도 모르지. 허나 그 앙칼스러운 중전이 우릴 곱게 보내주겠느냐 그 말일세. 어림도 없는 소리. 지 애비 죽은 원수를 갚자고 나설 텐데 우릴 살려줄 리가 없지 기철모: 국왕의 어미가 있질 않으냐. 돈을 모아 듬뿍 안겨주면 입이 쩌억 벌어질 텐데 노책: 돈으로 되겠습니까 기철모: 세상에 돈 싫다는 사람 보셨나 노책: 예. 그렇게 하면 되겠습니다 (웃는) 기철: 글쎄 우릴 곱게 보내줄 중전이 아니래도 그러신다 다시 울상이 되는 노책. 기철: 며칠만 기다려 봅시다. 틀림없이 기륜이 조소생을 데리고 돌아올 것이니 불안해서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고 바쁜 노책. #쌍성총관부의 마당(밤) 조소생: 이놈들이 노려본다. 이자춘을 비롯한 장수들이 길을 막고 버티고 서있다. 불안해서 눈치 살피는 기륜. 조소생: 비키지 못하겠느냐 이자춘: 못가십니다 조소생: 내 명령을 거역할 셈이냐 이자춘: 우리가 고려에 원한이 없는데 고려를 칠 이유가 없질 않습니까 조소생: 군령을 어기는 자는 모두 참할 것이다 칼을 빼드는 조소생. 반대편 전각에 서있던 이성계가 화살을 빼서 힘껏 활시위를 잡아당긴다. 흠칫 물러서는 조소생. 이성계의 화살이 조소생을 따라 움직인다. 이자춘: 우리를 다 죽이기 전엔 한 사람의 군사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조소생:..... 부들부들 떨며 이성계의 활을 노려보는 조소생. 조소생: 에잇 칼을 높이 쳐든다. 활시위를 놓는 이성계. 화살이 날아와서 조소생의 투구 끈을 맞춘다. 끊어져 나가는 투구 끈. 당황하는 조소생. 두 번 째 화살이 날아와 조소생의 투구를 맞춘다. 땅에 뒹구는 조소생의 투구. 마른침 삼키며 부들부들 떠는 기륜. #연경 부근 숲. 정세운의 막사 안(밤) 정세운: 이렇게 하세. 자네가 결사대를 거느리고 몰래 연경을 빠져나가게 최영: 알겠습니다 정세운: 전하의 안위가 자네 손에 달렸네 최영: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개경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정세운: 자네만 믿네 최영의 두 손을 잡아흔드는 정세운. #동. 막사 앞(밤) 최영, 나온다. 최영: 날쌘 군사 백 명을 선발해서 오늘밤에 개경으로 떠난다. 말에 재갈을 물리고 소리없이 연경을 빠져나가야 한다 #동. 막사 안(밤) 정세운:(눈물을 흘리며) 전하. 부디 옥체를 보존하고 계시옵소서 #고려군의 막사. 앞(밤) 말에 재갈을 물리고, 말발굽을 천으로 싼 고려군이 조용히 빠져나간다. #동. 염제신의 막사 안(밤) 염제신: 이 사람. 내 허락도 없이 군사들을 빼돌리면 어떡하나 정세운: 죄송합니다. 일이 워낙 다급한 지라 김용이 달려들어온다. 김용: 최영이 결사대를 선발해서 개경으로 떠났다는 게 사실인가 정세운: 대체 자넨 어디 있다 지금 나타나는 건가 김용: 그럼 안 돼지. 최영같은 풋내기가 가서 어찌 전하를 도와드리겠나. 날 보냈어야지 달려나가는 김용. 정세운: 어딜 가시나 #동. 앞(밤) 나와서 말에 오르는 김용. 기병들이 대기하고 있다. 김용: 날 따르라. 최영보다 먼저 개경에 도착해야 할 것이야 달려가는 김용과 기병들. #동. 염제신의 막사 안(밤) 정세운: 어찌하시겠습니까 곡성부원군대감 염제신:..... 정세운: 최영과 김용에게 공을 모두 뺏기시겠습니까 염제신: 철군 명령을 내리시게 정세운: 잘 생각하셨습니다 곡성부원군대감 비로소 환하게 웃는 정세운. #동. 막사 앞(밤) 달려나오는 정세운. 정세운: 철군 준비를 해라. 개경으로 돌아간다. 와아 함성을 지르는 군사들. #기황후의 처소. 안(밤) 최유: 황후폐하, 지금 당장 전령을 보내 고려군을 떠나지 못하게 막으셔야 하옵니다 기황후:..... 최유: 한달만 더 고려군을 붙잡아두시면 기황후: 고려군이 개경에 도착하려면 보름은 족히 걸릴 것이야 최유:(말문이 막히는) 기황후: 보름이면 태산이라도 옮기겠다 최유: 황후폐하 기황후: 물러가거라 고개 돌려버리는 기황후. #동. 앞(밤) 씨근대며 나오는 최유. 최유: 덕성부원군이나 덕흥군이 고려의 왕이 되면 원을 위해 십만 대군인들 안 보내줄까. 천한 공녀 주제에 뭘 안다고 #동. 안(밤) 박불화:(눈치보더니) 정녕 하늘의 뜻에 맡기시렵니까 기황후: 그건 네 생각이 아니냐 박불화: 너무나 아까운 기횐지라...... 기황후: 위왕을 따르던 무리들이 태자의 출생을 두고 시비를 걸고 있느니라. 원을 잃고 고려를 얻은들 무슨 소용이냐. 더는 고려의 내정에 간섭하지 말거라 박불화:.... 기황후: 그나저나 자네가 수고를 한번 더 해야겠다. 부지런히 고려군을 따라 개경으로 가거라 박불화: 개경으로 가서 어찌하라시는 건지 기황후: 오래비를 죽게 내버려둘 순 없지 않으냐 신음하듯 한숨 토해내는 기황후. #도성의 문. 안 토벌군이 성 안으로 들어온다. 환호하는 백성들. 염제신이 선봉이고 그 뒤를 따르는 정세운, 김용, 최영 등. #강안전의 안 공민왕: 토벌군이 돌아왔단 말이냐 최만생: 예, 전하 공민왕: 어서 자비를 하거라. 내가 대궐 앞에서 맞을 것이야 최만생: 예, 전하 #도성의 문. 안 토벌군의 후미가 성 안으로 들어오고 뒤이어 원의 호위병에 쌓여 박불화가 들어선다. 백성들의 환호성이 야유로 변한다. 아랑곳 없이 싱글거리며 토벌군의 뒤를 따르는 박불화. #기철의 사랑방. 안 권겸: 좋은 기회를 다 놓쳤습니다. 이젠 원으로 떠났던 고려군이 다 돌아왔으니 무슨 수로 국왕을 죽이겠소이까 기철: 낸들 그놈들이 이렇게 일찍 돌아올 줄 알았나. 그놈들을 당분간 연경에 잡아두겠다는 취성군의 약속만 철썩같이 믿고 권겸: 취성군의 약속이라니오. 그 놈은 말만 앞서는 놈이라고 하질 않았습니까 기철:(입만 씰룩이는) 권겸: 이젠 꼼짝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앉아 있게 생겼소이다. 어허 가슴을 치는 권겸. #도성의 거리 토벌군이 대궐로 향하고 있다. 환호하는 백성들. 신이 나서 구경하고 있던 원현이 공철의 등을 탁 친다. 원현: 머잖아 좋은 구경하게 생겼네. 오늘이 덕성부원군을 비롯한 부원배들의 제삿날이렷다 신나서 웃던 원현이 웃음을 멈춘다. 토벌군을 따라 꺼덕거리며 오고 있는 박불화. 원현: 저, 저 놈이 (후다닥 돌을 집어 들더니) 원나라의 개는 뭣하러 따라왔느냐. 먼길 오느라고 수고했으니 이거나 먹어라 박불화에게 돌을 던지는 원현. 그러자 공철을 비롯한 백성들이 닥치는대로 집어들어 박불화에게 던진다. 피할 생각도 없이 맞고만 있는 박불화. 이마를 맞았는지 피가 흘러내린다. 그래도 웃으며 토벌군을 따라가는 박불화. #초선의 집. 안방 차를 데리고 있는 초선. 신돈: 보살님 덕분에 전하께서 위기를 면하셨으니 큰 상을 내리실 겁니다 초선:...... 신돈: 도성이 텅빈 사이에 덕성부원군이 난을 일으킬까봐 얼마나 조마조마 했는지 모릅니다. 전하께서도 그 때문에 덕성부원군을 죽이지 못하신 것인데 이젠 거리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초선: 그 때문에 못 죽이셨겠습니까. 기황후 때문이겠지요 신돈:(웃으며) 아직도 전하를 믿지 못하십니까 초선: 목이 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고 나서도 갈증을 느끼겠습니까? 신돈:..... 초선: 거사님이나 저나 할 바를 다 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면 그만이지요 신돈: 이번엔 약속을 지키실 겁니다 초선:(비로소 보더니) 전하께서 무슨 약속을 하셨습니까 신돈:..... 초선: 저는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다시 차만 데리는 초선. 그런 초선을 가만히 바라보며 미소 짓는 신돈. #대궐의 문. 안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오는 염제신, 정세운, 김용, 최영 등. 공민왕: 어서들 오세요. 고생들 많으셨습니다 염제신:(무릎 꿇으며) 전하 따라서 복창하며 무릎 꿇는 정세운 등. 염제신: 신들은 오직 전하의 안위만을 염려하였나이다 정세운: 전하의 강녕하심을 다시 뵈오니 신들은 그저 눈물이 앞을 가리올 뿐이옵나이다 김용:(얼른 나서며) 신 김용 전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를 입고 출병하여 고려의 위엄을 사위에 떨치고 돌아왔나이다 공민왕: 고맙소이다. 고마워요 염제신 등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는 공민왕. #곤성전의 안 박불화가 노국공주에게 큰 절을 올리고 있다. 못마땅해서 바라보는 안도치. 박불화:(일어나며) 중전마마. 황후폐하께옵서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올려야 좋을 지 적당한 말씀을 찾을 수가 없다고 전하라 하셨나이다 노국공주: 그래요 박불화: 마마. 황후폐하께서는 진심으로 위왕 전하의 죽음을 애통해하고 계십니다 노국공주: 황후께서 제 아버님 걱정을 그리 해주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박불화: 위왕께서 살아계셔야 양가의 화해가 이루어질 것이기에 황후폐하의 애통함이 더 크신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노국공주: 나는 기씨 문중과 원한진 것이 없는데 황후께서는 어찌하여 내 아버지를 핍박한 것입니까 박불화: 그럴 리가 있겠사옵나이까 노국공주: 그래, 그 말씀을 전하러 그 먼길을 오셨습니까 박불화: 황공하옵나이다 중전마마 뒤로 물러나는 박불화. 방문에 가서 헛기침을 한다. 방문이 열리고 유골함을 든 종자가 들어온다. 박불화가 두 손으로 받아 노국공주에게 간다. 바라보는 노국공주의 숨결이 점점 가빠진다. 노국공주 앞에 유골함을 가만히 내려놓는 박불화. 노국공주: 그것이 무엇이냐 박불화: 위왕전하의 유골이옵나이다 노국공주:..... 숨이 막히는 노국공주. 박불화: 황후폐하께서는 자결하신 위왕 전하의 유해를 몸소 거두셨나이다. 부디 황후폐하의 정성을 생각하시어 지난 일은 모두 잊으시옵소서 일어나서 다시 물러가는 박불화. 노국공주:...... 유골함을 바라보는 노국공주. 방문이 열리고 밖으로 물러가는 박불화. 방문이 닫힌다. 유골함. 노국공주:....... 가만히 손을 들어 유골함에 얹는다. 넋나간 사람처럼 유골함을 어루만지는 노국공주. 울음 참는 안도치. 노국공주:(웃으며) 아버지. 여기 계십니까 안도치: 마마 꼬꾸라지듯 엎드려 흐느끼는 안도치. 노국공주: 아버지를 위해 울지도 못하는 저를 나무라시려고 여기까지 오셨습니까......아버지 넋 나간 사람처럼 유골함을 어루만지는 노국공주. #선경전의 안 연회가 베풀어졌다. 이제현, 이인복과 염제신, 정세운, 김용, 최영 등과 토벌군 장군들이 모두 모였다. 염제신: 뭐니뭐니 해도 일등 공신은 최영이지요 공민왕: 그래요 염제신: 회안성 전투에서 최영은 적의 창을 여섯 번이나 맞으면서도 끝까지 싸워 적을 섬멸하는 큰 전공을 세웠습니다 공민왕: 저런. 하마터면 내가 용장을 한 사람을 잃을 뻔했습니다 (최영에게) 그래 어딜 다치셨는가 최영: 대단치 않사옵니다 전하 공민왕: 고려군의 용맹에 홍건적의 간담이 서늘하였겠습니다 김용: 어디 홍건적 뿐이겠습니가 전하. 원의 간담이 더 서늘하였을 것이옵니다 공민왕:(좀 비꼬듯) 안성군의 활약도 대단하셨다면서요 김용: 전하의 은혜에 보답고저 소신은 죽을 각오로 싸웠나이다 정세운: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정세운의 고함에 모두 조용해진다. 김용:(무안해서)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 정세운: 나를 전장에선 자네 얼굴을 별로 본 적이 없으이 김용: 으흠 (머쓱해지는) 염제신:(얼른 웃으며) 허긴 안성군께선 말솜씨가 좋은 지라 원의 인사들과 두루두루 교분을 쌓고 다니셨지 김용:(웃으며) 알아주시니 고맙습니다 정세운:(불끈해서) 그래서 최유 같은 자와 자주 어울리셨는가 김용: 이 사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취하셨네그려 이제현: 그만들 하시게. 전하께서 주재하시는 연회에서 무슨 망발들인가 김용: 저렇게 사람 속을 몰라주니 답답하잖습니까. 제가 최유와 어울린 것은 덕흥군의 동향을 탐지하려던 거 뿐이지 딴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정세운: 자네가 무슨 말을 하고 다녔는지 내가 모를 줄 아는가 김용:(벌떡 일어나며) 듣자듣자 하니까 정말 너무 하시는군그래 정세운:(따라 일어나며) 내 말이 틀렸는가. 어디 변명이라도 해보시게 이제현: 두 사람 다 취하셨으이. 그만들 하시게 정세운: 전하. 황공하오나 저는 김용같은 소인배와는 더는 술을 같이 못마시겠습니다. 소신의 무례를 용서하여주시옵소서 밖으로 나간다. 염제신: 이 사람 대호군, 어딜 가시는가 비틀거리며 따라 일어나다 취해서 털썩 주저앉는다. 그 바람에 술상 위에 잔과 음식이 흩어진다. 이인복:..... 힐끔 공민왕을 본다. 공민왕:..... 가만히 웃고 있는 공민왕. #기철의 집. 사랑방 안 박불화:.....(웃고 있는) 기철: 나는 죽으면 죽었지 그러곤 못 사네 박불화: 덕성부원군대감 기철: 황후폐하께 전하시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고려왕과 사생결단을 할 것이니 도와주기 싫으시면 쓸데 없는 간섭 말고 가만히 계시라고 박불화: 어린애처럼 왜 이러십니까 기철: 어린애라니. 이 사람이 박불화: 황후폐하께서 얼마나 진노를 하고 계시는지 아십니까 기철:..... 박불화: 당장 사람을 보내 덕성부원군대감을 연경으로 압송해 오라고 하시는 걸 제가 겨우 말렸습니다 기철: 내가 뭘 어쨌다구 박불화:(나무라듯) 원의 사정이 좋질 않습니다. 아유시리다라 태자전하의 몸에 고려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해서 반발이 보통 큰 것이 아닙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태자전하는 물론 황후폐하의 신상에도 해가 미칠지 모를 지경입니다. 그런 때에 덕성부원군께서 자꾸 말썽을 부리시면 어떡합니까 기철: 이 사람이 누굴 훈계하고 있는 게야 박불화: 이것이 어찌 소인의 말씀이겠습니까. 황후폐하의 당부시지요 기철:...... 박불화: 몸을 낮추고 사세요. 고려왕에게 허리를 굽히면 될 일을 가지고 (혀를 차는) 기철: 으흠 박불화: 또 한번 말썽을 부리시면 황후폐하께선 혈족의 인연을 끊으시겠다고 하십니다 못을 박는 박불화. #선경전의 안 공민왕: 그래 원의 사정은 어떤지 말씀들을 해보세요 염제신:(취해서) 전하. 원의 국력은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있습니다. 이번 토벌에도 우리 고려군과 고려 유민으로 조직한 응원군이 없었다면 백전백패를 하고도 모자랐을 것이옵니다 공민왕: 그러면 원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도 후환이 없겠습니다 염제신: 그렇구말구요 공민왕: 그렇다면 한시름 놓았습니다 (술잔 들며) 자, 드십시다 염제신: 만세. 만세. 만만세 느닷없이 만세를 부르며 술을 옷에 흘리며 웃어대는 염제신. #동. 앞 흩어지는 대신들. 이인복:(최영에게) 곡성부원군의 말이 다 맞는 말인가 최영: 그렇습니다 성산군대감. 원은 지금 밖으로는 홍건적의 난에 시달리고 있고 안으로는 태자를 둘러싼 권력다툼에 남의 일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습니다 이인복: 으음 최영: 이참에 부원배들을 몰아내고 쌍성 이북의 고려 땅을 모두 찾아야 합니다 이인복:..... 끄덕이는 이인복. #대궐의 길 정세운이 온다. 김용: 이 사람 세운이 나 좀 보세 정세운:..... 김용: 자네가 나한테 그럴 수가 있는가 정세운:..... 꾹 참고 간다. 김용: 내가 세운 전공이 그렇게 아니꼬우신가 정세운: 전공이라니 김용:(흠칫) 정세운: 또 한번 최유 같은 역적놈들과 가까이 어울리면 그 땐 내 손에 죽을 줄 알게 가버리는 정세운. 김용: 이놈이 부르르 떠는 김용. #강안전의 안 울먹이며 서있는 안도치. 공민왕: 너는 눈물도 많다.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울먹이고 있느냐 안도치: 전하. 중전마마께옵서 주저앉아 흐느낀다. 공민왕:(놀래서) 중전께서 안도치:(울기만) 공민왕: 중전께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게냐 안도치: 소신의 입으로는 차마 말씀을 올리기가 공민왕: 중전께서 회임을 하셨다더니 유산이라도 하셨다는 게냐 안도치: 그런 게 아니옵고 공민왕: 아니라고만 하지 말고 어서 말을 해보아라 안도치: 원의 자정원사 박불화가 기황후가 보낸 위왕전하의 유골을 중전마마께 전하고 돌아갔나이다 공민왕:(신음) 안도치:(울기만) 공민왕: 중전께서는 어찌하고 계시느냐 안도치: 소신은 차마 뵙고 있을 수가 없어서 공민왕:......... 신음하더니 벌떡 일어나 나간다. #동. 복도 나와서 가는 공민왕. 따르는 최만생 등. 공민왕: 따라오지 마라. 나 혼자 갈 것이야 주춤 멈추는 최만생 등. #대궐의 길 공민왕 혼자 간다. 어린애처럼 눈물을 훔치며 간다. #곤성전의 복도 공민왕, 온다. 굽히는 김상궁 등. 공민왕:..... 멈춰서 방문을 바라보는 공민왕. 손을 들어 방문을 열려다 멈춘다. 눈물이 글썽해서 한숨을 내쉬는 공민왕. 노국공주:(밝은 소리) 밖에 누가 왔느냐 김상궁:..... 고하려다 공민왕을 본다. 또 한번 눈물을 훔치는 공민왕. 차마 입을 못 여는 김상궁. 노국공주:(소리) 누가 왔느냐고 묻질 않느냐 공민왕: 납니다 중전 방문을 연다. #동. 안 방문을 열고 들어서던 공민왕이 멈칫 선다. 활짝 웃고 있는 노국공주. 옆에 신돈이 앉아 있다가 일어난다. 오히려 당황하는 공민왕. 노국공주:(일어나며) 어서오세요 전하. 그러지 않아도 전하를 뵈러 갈까 하던 중이었습니다 공민왕: 무슨.....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노국공주: 예, 전하 (웃으며) 어서 이리로 앉으세요 공민왕:......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앉는 공민왕. 마주앉는 노국공주. 힐끔 신돈을 바라보는 공민왕. 환하게 웃고 있는 신돈. 공민왕: 무슨 일인데 그렇게 웃고 계십니까 노국공주: 기황후가 큰 선물을 보내왔습니다 공민왕:..... 노국공주: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덕성부원군을 죽일 방도가 떠오르질 않았는데 기황후 덕분에 묘안에 떠올랐습니다 공민왕: 무슨 선물인데요 노국공주: 기황후가 아버지의 유골을 보내왔습니다 공민왕:(흑 숨이 막히는) 노국공주: 생각을 해보십시오 전하. 전하를 해치려는 음모가 다 수포로 돌아갔으니 덕성부원군이 꼼짝이나 하겠습니까. 군사를 동원해 덕성부원군을 치면 덕성부원군의 사병들과 큰 혈투가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덕성부원군을 대궐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야겠는데 마땅한 방법이 없질 않습니까 그런 차에 기황후가 아버지의 유골을 보내왔으니 덕분에 덕성부원군을 대궐 안으로 불러들일 수가 있게 됐습니다 공민왕: 어떻게 말씀입니까 노국공주: 내가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를 겁니다 공민왕:...... 노국공주: 왕비가 상을 당했으니 덕성부원군이 문상을 오지 않고 배길 재간이 있겠습니까 활짝 웃어 보이는 노국공주. 공민왕:(바라보는) 노국공주:(웃고 있는) 공민왕: 아버지의 유골을 앞에 놓고 그 생각을 하셨습니까 기가 막혀 노국공주를 바라보는 공민왕. 여전히 웃고 있는 노국공주. 공민왕:(신돈을 본다) 신돈: 신의 생각이 아니옵니다 전하 숙여 보이는 신돈. 여전히 어이가 없는 공민왕. 다시 노국공주를 본다. 노국공주:..... 비로소 눈물 같은 것이 반짝인다. <신돈 28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