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 39회 <신돈> -39회- #내불당의 안 팔랑이는 촛불. 불상. 바라보고 있는 노국공주. 노국공주:.......(마음의 소리) 화살을 맞고 신음하는 짐승의 눈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 눈은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이 아닙니다. 누구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이지요. 저는 그렇게 보았습니다. 전하의 두 눈에 가득한 두려움이 제 마음을 갈기 갈기 찢어놓고 있습니다. 부탁입니다. 제가 힘이 되게 해주세요. 제가 전하의 두려움을 다 씻어주게 해주세요. 그러기 위해선 아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전하께서 다시 일어납니다. 아들을 주십시오. 전하의 자손들이 자자손손 대를 이어 살아야 할 고려가 아니옵니까 애원하듯 불상을 바라보는 노국공주. #선경전의 안 공민왕:(비아냥거리듯) 이거 큰 일이 아닙니까. 원의 비위를 맞추려면 연경에 사신을 보내야겠는데 한 사람도 자청을 하는 사람이 없으니 눈치만 보는 대신들. 공민왕: 허면 내가 다녀오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염제신: 전하. 망극하옵신 말씀을 거두어주시옵소서 공민왕: 그렇지 않습니까. 기황후의 눈밖에 난 사람이 직접 찾아가서 백배사죄를 드리는 수밖에요 유인우:(나서며) 전하. 소신이 다녀오겠습니다 공민왕:.....(물끄러미 본다) 웅성거리는 대신들. 그런 대신들을 눈치 보며 헛기침하는 유인우. 공민왕: 압록강을 건너 연경으로 가자면 홍건적이 차지하고 있는 요동 땅을 지나가야 하는데 자신이 있소이까 유인우: 소신은 평생을 전쟁에서 보낸 무인이옵나이다 공민왕:(벌떡 일어나며) 고맙소이다. 그렇게 하세요 용상을 내려오는 공민왕. 좌우로 갈라서는 대신들. 공민왕:(불쑥 염제신에게) 문하시중께선 홍건적을 막을 대책이 있으십니까 염제신:(당황) 공민왕: 고려가 원과 손을 잡으면 홍건적은 고려를 먼저 쳐서 후환을 끊으려 할 겁니다. 그건 어찌 생각하십니까 경천흥: 그렇다고 도적떼나 다름없는 홍건적과 손을 잡을 수는 없지 않사옵니까 공민왕: 도적떼면 어떻고 의병이면 어떻소이까. 나는 고려 땅이 전쟁 터가 되는 것이 두려울 뿐이오 휑하니 나가버리는 공민왕. 웅성거리는 대신들. #강안전의 안 방문이 열리고 화가 나서 들어오는 공민왕. 황급히 시립하는 안도치. 공민왕: 대전문을 걸어잠그고 한놈도 들이지 마라. 대신들이란 자들의 얼굴만 봐도 구역질이 치민다 안도치:...... 공민왕: 눈앞의 적을 놔두고 원의 비우나 맞추기에 급급하는 꼴이라니. 홍건적이 압록강을 넘어 다시 침입해오면 배를 얻어타고 연경으로 도망칠 위인들이 아니냐 안도치:(분이 터져) 황공하오나 전하, 한탄만 하지 마시고 그런 자들은 모두..... 제자신이 놀라 손으로 입을 가린다. 공민왕: 니 눈에도 내가 한심하게 보이느냐 안도치: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공민왕: 망극할 것이 무엇이냐. 네 놈이 바로 보았거늘 낄낄대며 웃는 공민왕. #선경전의 앞 나와서 흩어지는 대신들. 유인우, 나오더니 힐끔힐끔 눈치보며 간다. #대궐의 길 유인우, 온다. 김용:(나서며) 연경으로 도망을 치시려고 유인우:(놀라는) 김용: 오늘 밤에 내 집으로 오시오. 먼 길을 떠나시는데 이별주나 한잔 나눕시다 웃어대더니 가버리는 김용. 유인우:(불안한) #중서문하성의 회의실. 안 염제신: 으흠. 전하께서 원과 다시 친교를 맺고 원나라의 제도와 풍습을 다시 들여오자고 하시니 이인복: 전하께서 진심으로 하신 말씀이겠습니까 김원명: 허면 전하께서 농담을 하셨단 말씀입니까 이인복: 원의 제도와 풍습은 전하의 손으로 폐하신 게 아니오. 헌데 다시 원과 손을 잡자고들 하니 자조를 하시는 거겠지 경천흥: 어찌됐든 홍건적이라는 공동의 적을 앞에 두고 원과 고려가 힘을 합해야 하는 게 근래의 정세가 아닙니까 정세운: 전하께선 우리 힘만으로 홍건적을 막았으면 하시는 거외다 김원명: 우리 힘만으론 안돼지요 경천흥: 원의 국력이 다시 막강해졌습니다. 홍건적이 총력을 다해 상도를 공격했는데도 맥도 못쓰고 패전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원과 다시 손을 잡아야 합니다 김원명: 이번 사절에 유인우만 보낼 것이 아니라 기황후에게 바칠 공물도 두둑히 실어 보내야 할 겁니다 #강안전의 안 이색이 부복했다. 공민왕: 그래 뭐라고 떠들고들 있더냐 이색: 오가는 논의는 많으나 공민왕: 그저 말만 무성하다 그 말이지? 그렇겠지.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했는데도 힘을 합할 생각은 안하고 (한숨 쉬더니) 익재대감께선 어떻게 지내고 계시느냐 이색: 한가롭게 지내고 계십니다 공민왕: 언제 한번 대궐로 들어오시라고 해라. 사사롭게는 내 빙부가 되시지 않느냐 (웃는다) 안도치: 전하 공민왕: 너는 나서지 마라. 내가 익재대감의 그리워서 하는 농이야 (이색에게) 좌승선은 좋은 스승을 두셨다. 그분이 우유부단해 보인 것은 말을 아끼고 생각을 깊이 하시는 까닭이다 이색: 스승께서도 전하를 뫼시던 얘기를 자주 하십니다 공민왕: 그래? 이색: 어려운 시절에 성군이 계시니 고려의 장래가 밝다고 하셨습니다 공민왕:(웃으며) 익재대감께서도 그런 아부를 하실 줄 안단 말이냐 안도치: 전하 공민왕: 또 나선다 안도치:(샐쭉) 공민왕: 지금 나한테 익재대감과 편조만 있다면 무슨 걱정이겠느냐 쓸쓸한 미소. 그런 공민왕을 가만히 바라보는 이색. 최만생:(밖에서) 전하. 보우왕사님께서 드셨사옵니다 공민왕:(반가워서) 어서 뫼셔라 벌떡 일어나 방문쪽으로 가는 공민왕. 문이 열리고 보우 들어선다. 공민왕: 어서오세요 왕사님. 앉으시지요 보우를 안내해 자리를 권하는 공민왕. 일어나 물러나 서있는 이색. 공민왕:(앉으며) 편조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보우:(앉으며) 며칠 전에 동안거를 끝내고 잠깐 법왕사를 다녀갔습니다 공민왕: 그래요? 그런데 대궐엔 들어오지도 않았단 말씀입니까 보우:(싱긋) 공민왕: 그렇게 사람을 보내 보자고 했거늘 보우: 나무관세음보살 공민왕: 아무래도 왕사님께서 편조를 못오게 막으시는 모양입니다 보우:(웃으며) 수행하는 중이 중도에 고행을 멈추면 도루아미타불이 된다고 하는 겁니다 공민왕: 다시 개태사로 내려갔습니까? 보우:(싱긋) 공민왕: 편조가 어디로 갔는지 말씀이나 해주십시오 왕사님 #어느 암자. 마당 작은 암자. 신돈:...... 바라보고 서있다. 지효: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신돈:...... 문을 연다. 안에 놓인 작은 불상이 보인다. 신돈:....... 지효: 이 안에서 편조스님 혼자 삼 년을 지내셔야 합니다. 자신이 있으십니까 신돈:....... 지효: 도중에 나오시면 파계를 하시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신돈이 성큼 안으로 들어간다. 지효, 얼른 가서 방문을 닫는다. #동. 안 신돈:..... 불상을 바라보고 서있다. 문뒤에서 나는 소리. #동. 마당 지효가 문에 흙반죽을 바르고 있다. #동. 안 신돈:..... 문의 빛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동. 마당 부지런히 문에 흙을 바르는 지효. #동. 안 신돈:...... 점점 어두워지더니 마지막 빛이 사라진다. #동. 마당 흙으로 완전히 막혀버린 문. 흙묻는 손으로 합장하는 지효. #동. 안 어둠 속에 불상을 향해 앉아 있는 신돈. #곤성전의 안 노국공주: 부탁입니다 보우왕사님. 편조스님을 전하께 보내드리시지요 보우: 부탁은 제가 드리려고 찾아뵜습니다. 편조의 수행이 이제 막 중턱을 넘어섰으니 그냥 놔주십사하고 노국공주: 전하께서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보우: 편조를 중을 만들어 달라고 한 것은 개태사의 월선스님이십니다. 편조를 큰 그릇으로 보신 것이지요 노국공주: 그러니 나라를 먼저 구해야지요 보우: 부처님 세상이 먼접니다 노국공주:..... 보우: 한나라의 흥망성쇠는 티끌과도 같은 것입니다. 부처님 세상에 비하겠습니까 노국공주의 말을 막듯이 두 손을 모아 합장하는 보우. #강안전의 안 공민왕: 편조도 날 버린 것이야 안도치: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공민왕: 그렇겠지. 날 보고 싶지가 않겠지 괴롭게 고개 돌리는 공민왕. #이제현의 사랑방. 안(밤) 이색: 옆에서 뵙고 있기가 민망할 지경입니다 이제현:......(보더니 신음) 이색: 한번 대궐로 드시지요 스승님 이제현: 내가 전하께 큰 죄를 지었다. 전하께서 전민변정도감을 세우셨을 때 편조를 도와줬다면 나라의 기강이 바로 잡혔을 텐데 이색: 그게 어떻게 스승님 탓이겠습니까. 권문세도가들이 한사코 개혁을 반대하니 이제현: 전하께 부지런히 젊은 인재를 추천해 올리거라. 젊은 사람들이 나서야 나라가 바로 설 것이야 가만히 한숨을 내쉬는 이제현. #영수전의 안(밤) 명덕태후:(환하게 웃으며) 오라버니 되시는 분이 원나라 승상의 벼슬에 있다고 들었는데 아직도 그 자리에 있습니까 덕녕공주:(웃으며) 물러나신지 오래됐습니다 명덕태후:(한숨 쉬며) 그래도 연경에 이런 저런 연줄이 있을 게 아닙니까 덕녕공주: 연경에 부탁할 일이 계십니까 명덕태후:(바싹) 덕흥군 말입니다. 기황후 입에서 덕흥군 이름이 오르내린다길래 덕녕공주: 별 걱정을 다하십니다. 덕흥군은 충선왕의 총애를 받던 궁녀가 사가로 쫓겨난 뒤 원나라 사람과 혼인해서 낳은 자식이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 아닙니까 명덕태후:(반가워서) 대비께서도 알고 계셨습니까 덕녕공주:(빙긋) 명덕태후: 기황후께서도 그걸 알고 계실까요? 그걸 알고 계시면 덕흥군을 입에 올리지 않으실 게 아닙니까 덕녕공주: 설마하니 덕흥군을 고려 왕으로 삼자고야 하겠습니까 명덕태후: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소리도 못 들어 보셨습니까 안절부절 못하는 명덕태후. #김용의 집. 사랑방 안(밤) 술상. 김용: 자, 한잔 받으시오 (술 따르며) 장군께서 그 동안 서운한 게 많으셨지요? 유인우: 으음 김용: 전쟁에 나가 승전고를 올리고도 옥살이를 한 건 아마 장군뿐이지요? (웃는다) 유인우: 그 생각을 하면 이가 갈리오 김용: 속이 좀 좁은 분이지요. 그 분께선 유인우:(몰라서 본다) 김용: 전하 말씀이외다. 내가 연경에서부터 모신 분이라 그 속을 잘 알지요. 밑에 사람이 큰 공을 세우는 꼴을 못 봐요. 조일신을 보세요. 전하를 위해서 충성을 바쳤거늘 결국은 전하의 손에 개죽음을 당하지 않았소이까. 인당장군도 그렇고 유인우: 으음 홧술을 들이키는 유인우. 김용: 참 딱한 분이십니다. 왜 그런 성격이 됐는지. 그러니 편조같은 노비의 자식을 끼고 도시는 게 아닙니까 유인우:(정색하고) 뭐든지 시켜주시오. 내가 이 원수만 갚을 수 있다면 뭐든지 하겠소 김용:(힐끔 본다) 유인우: 대장부의 명예를 걸고 약속을 지키리다 김용: 연경에 가시거든 덕흥군을 먼저 만나 보세요 유인우:..... 김용: 내가 준비를 단단히 해놓고 있으니 기황후의 대답만 받아내시라구요 유인우: 그 소문이 사실입니까? 김용:....(웃으며) 강릉대군께선 벌써 기황후의 눈밖에 났소이다 유인우와 자기 잔에 술을 따른다. 김용: 자, 우린 한 배를 탄 운명이니, 죽어도 같이 죽고 부귀영화를 누려도 같이 누리는 겁니다. 마십시다 술잔을 들어보이는 김용. 웃어댄다. #강안전의 뜰(밤) 달려나오는 이환관. 노국공주와 김상궁이 서있다. 굽히는 이환관. 노국공주: 전하께선 안에 계시느냐 이환관: 황공하오나..... 노국공주:..... 전각을 본다. 불이 꺼져있다. 노국공주: 전하께서 만령전에 드셨느냐 이환관: 그런 것이 아니옵고 김상궁: 뭘 꾸물대시나. 어서 바른대로 아뢰시게 이환관: 전하께선 후원에 나가계시옵니다 #동. 후원(밤) 높이가 다른 말뚝을 두 줄로 박아놓고 그 위에 사람의 머리 모양을 한 짚단을 묶어 놓았다. 공민왕:...... 칼을 움켜쥐고 노려보는 공민왕. 마른침 삼키고 바라보는 안도치. 공민왕:...... 기합과 함께 달려가 짚단을 차례차례 베는 공민왕. 칼이 번뜩일때마다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짚단들.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공민왕. 환해지는 안도치. 그러나 이내 웃음을 거두는 안도치. 마지막 짚단이 그냥 올려져있다. 다시 칼을 휘두르는 공민왕. 그러나 짚단의 일부만 떨어져나간다. 가뿐숨 내쉬는 공민왕. 지쳤는지 칼을 거두고 몸을 일으킨다. 안도치: 잘하셨습니다 전하 얼른 달려와 칼을 받으려고 손을 내미는 안도치. 공민왕: 마지막 하나를 베지 못했다. 다시 짚단을 올려놓거라.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다 안도치: 잠시 쉬었다 하시지요. 벌써 여섯 차례나 쉬지 않고 공민왕이 몸을 돌려 칼을 휘두른다. 마지막 볏단이 짤려나간다. 비로소 휴우 숨을 내쉬는 공민왕. 노국공주:(소리) 이번엔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돌아보는 공민왕. 노국공주와 김상궁이 서있다. 공민왕:(웃으며) 번번이 마지막 하나가 말썽입니다. 단숨에 다 베어야하는데 #같은 곳(밤) 두 줄로 나란히 늘어선 말뚝. 새 볏단을 올려놓았다. 두 손을 칼을 받쳐든 노국공주. 말뚝들을 노려본다. 공민왕: 단칼에 다 베셔야 합니다. 마지막 하나까지. 그래야 뿌리를 다 뽑을 수가 있어요 노국공주가 몸을 날린다. 번뜩이는 칼날. 날아 올랐단 주저앉았다, 말뚝의 주위를 원을 그리기도 하며 빠르게 짚단을 베어나가는 노국공주. 여기저기 뒹구는 사람의 목을 한 짚단들. 공민왕:....... 바라본다. 빙그르르 허공을 날아오르더니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노국공주. 짚단과 함께 말뚝이 반으로 갈라져 쓰러진다. 놀래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 안도치. #선경전의 뜰(밤) 뜰 복판에 서서 선경전을 바라보는 공민왕. 그런 공민왕을 바라보는 노국공주. 떨어져 바라보고 있는 안도치와 김상궁. 공민왕:........ 어둠 속에 솟아있는 선경전의 지붕을 바라보다, 문득 마치 눈물을 감추기라도 하듯 고개를 돌리는 공민왕. 노국공주: 조카 생각을 하십니까 공민왕:.....예 노국공주:...... 공민왕: 내가.....내 조카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원나라 연경에서 강릉대군을 새 임금으로 삼을 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들려올 때마다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보더니) 헌데 지금 내가 그 꼴이 아닙니까 노국공주: 전하 공민왕:(돌아서며) 마차게 실려온 어린 조카의 시신이 저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마차가 놓였던 자리. 공민왕:....... 문득 그 시선에 마차에 실린 충정왕의 시신. 공민왕: 내가 어린 조카의 시신을 안고 통곡을 했습니다. 그 때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대신들이 마음 속으로 얼마나 나를 비웃었겟습니까. 너라고 별 수 있느냐. 우리들 눈밖에 나면 다음 번엔 니가 그 관 속에 누워 있을 것이다 노국공주:....... 공민왕: 그 때 다 해치워야 했습니다. 편조와 손을 잡고 단칼에 베듯이 썩은 무리들을 다 베어버려야 했습니다 다시 떠오르는 마차 위의 충정왕의 시신. 그 자리에 무릎을 꿇는 공민왕. 공민왕: 내가 스스로 내 손발을 다 잘라버렸습니다.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칼을 거뒀으니 이 수모를 당하는 게 아닙니까. 수랏상을 받을 때마다 독이 들었을까봐 전전긍긍하며 물 한 모금 편히 마시질 못합니다 노국공주: 전하 공민왕: 머지않아 덕흥군이 내 시신을 바라보고 있겠지요. 나는 저기에 누워있고 덕흥군은 머리 위에 왕관을 쓰고 누가 불쌍한 임금을 죽였느냐고 눈물을 흘리는 시늉을 하겠지요 노국공주: 전하 마주 꿇어앉아 공민왕을 손을 잡아주는 노국공주. 노국공주: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전하 공민왕:(고개 돌리며) 연경으로 돌아가세요. 나는 중전을 지켜드릴 힘이 없습니다 노국공주: 전하 공민왕: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피할 길이 없어요. 홍건적이 원에 패하면 고려를 침공할 것이고, 홍건적을 물리치고 나면 기황후가 군대를 보낼 것이 아닙니까. 고려는 살아남을 길이 없어요. 그러니 내가 물러나야지요. 그러니 연경으로 돌아가세요. 내가 죽어야 백성들이 전쟁의 화를 피할 수가 있습니다 노국공주: 제가 전하를 지켜드릴 겁니다. 오늘 부터는 제가 수랏상을 차려 전하께 올리고, 따뜻한 차를 달여 올리고, 전하께서 편히 주무시도록 대전을 밤새도록 지키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싸우세요. 홍건적과 싸우고 기황후와 싸우고 권신들과 싸우세요 공민왕: 내가 다 망쳐놨습니다. 나는 왕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노국공주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오열하는 공민왕. 그런 공민왕을 안아주는 노국공주. 통곡하는 공민왕. 눈물 짓는 안도치와 김상궁. 어머니처럼 공민왕을 어루만져주는 노국공주. 눈물 대신 미소가. #남대가의 거리 초선과 박서방이 온다. 상전에서 물건을 내와 수레에 싣고 있는 점원들. 상인1: 뭘 꾸물대고 있는 게야. 부지런히 실어 나르지 않고 짐 실은 수레는 떠나고 다른 수레에도 계속 짐을 싣고 있다. 재촉하는 상인. 박서방과 초선을 보더니 흠칫한다. 박서방: 장살 걷어치우시는 게요 상인1: 으음 박서방: 물건은 왜 실어 나르시오 상인1: 난리가 터질 지도 모르니까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거요. 아, 뭣들 해. 이러다 해 떨어지겠다 점원들을 재촉하는 상인1. #다른 거리 초선과 박서방, 온다. 여기저기 상전 문을 닫고 있다. 박서방: 아무래도 홍건적이 다시 쳐들어 올 모양입니다. 남대가의 상인들이 그런 소식엔 빠르지 않습니까 초선: 겸사겸사 물건을 옮기는 거겠지. 난리도 피하고 물건값도 올릴겸 #초선의 집. 앞 안에서 달려나오는 박의처. 들어서는 초선과 박서방. 박의처: 무사히 다녀오셨네요 마님. 전쟁이 터진다고 난리들이 났습니다요 초선: 혹시 편조스님께서 다녀가시지 않으셨나 박의처: 아니요 박서방: 수행길 떠난 분이 여길 들리셨겠습니까요 초선:...... 생각하더니 돌아서간다. 박서방: 어딜 가시려구요 초선: 문단속 잘하시게 나가버리는 초선. #동. 대문. 앞 나오는 초선. 짐 보따리 짊어지고 피난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초선:...... 한숨 쉬고 간다. #중서문하서의 회의실 염제신: 어허, 이 일을 어쩐면 좋소이까. 원에 패한 홍건적이 압록강으로 몰려오고 있다니 김원명: 염려할 거 없습니다. 원의 대군이 홍건적을 추격하고 있으니 압록강을 건너기 전에 모두 섬멸을 당할 겁니다 정세운: 원이 홍건적을 막아주길 기다리겠다는 겁니까 김원명: 으흠 정세운: 전하께서 걱정하시는 것이 바로 그것이외다. 우리 땅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김용: 패잔병들을 두려워할 게 뭔가. 오합지졸에 불과한 도적뗄 가지고 정세운: 백성들이 당할 곤욕을 생각해보시게. 벌써 피난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하질 않는가 경천흥: 피난 행렬부터 막아야 합니다. 민심이 더 동요하기 전에 정세운: 조정을 믿지 못하니 피난을 가는 게 아닌가 #대궐의 문. 안 말타고 안으로 달려들어오는 최영. 이인복이 기다리고 서있다. 말에서 내려 이인복에게 가는 최영. 예를 올리는 최영. 이인복: 어서오시게 최영: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이인복: 홍건적의 동태는 어떤가 최영: 곧 압록강을 넘을 기셉니다 이인복:(신음) 최영: 무슨 일인지 말씀을 해주십시오. 소장은 곧 압록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인복: 그보다 급한 것이 있네. 따르시게 앞서가는 이인복. #법왕사. 보우의 방 안 초선: 남대가의 상전들이 모두 철시를 했습니다. 태풍이 불기 전엔 새들이 이동을 하고 지진이 나기 전엔 땅위의 축생들이 피신을 한다고 합니다. 세상 물정에 기민한 상인들이 장사를 거뒀으니 이보다 더 확실한 전쟁의 기미가 어디 있겠습니까 보우:(미소 짓고 있는) 초선: 홍건적의 숫자가 이십 만 대군이라고도 하고 삼십 만이 넘는 대군이라고도 합니다. 지난 번엔 서경에서 겨우 홍건적을 물리쳤으나 이번엔 개경을 지키기도 힘이 들 겁니다 보우: 보살님께서 전략에도 눈이 밝으십니다 초선: 편조스님을 놓아주십시오 왕사님 보우:..... 초선: 만에 하나 개경이 홍건적에게 함락당하면 원이 처음 고려를 침공했을 때와 사정이 비슷할 것입니다. 하루 이틀에 물러날 홍건적이 아니지요. 일년 이년 어쩌면 십 년 넘게 홍건적과 싸워야 할 지도 모릅니다 보우:(웃으며) 아무리 설득을 해도 편조는 안 됩니다 보살님 초선: 왕사님 보우: 편조는 나라보다 불교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 초선: 왕사님이 계시질 않습니까 보우: 월선스님이 어째서 그렇게 편조를 아끼셨는지 아십니까. 편조의 재주와 인품을 아껴서가 아닙니다. 편조는 요기를 타고난 잡니다 초선:..... 보우: 편조가 그 요기를 다 벗어던지고 불심을 얻어야 고려의 불교가 살아납니다 초선:(다시 애원하듯) 왕사님 보우: 편조가 불심을 얻지 못하면 지귀로 돌아갈 것이고, 속세로 들어가면 헛된 죽음을 당할 겁니다. 그러니 편조가 살 길은 부처님을 모시는 길밖엔 없습니다 #어느 암자의 안 신돈:..... 면벽하고 상념에 잠긴 신돈. 덜커덩하는 소리. 문 아래에 뚫린 구멍으로 밥그릇이 들어온다. 신돈:..... 밥그릇. 다시 구멍이 닫힌다. #강안전의 뜰 최영이 서있다. 그 위에, 이인복:(소리) 전하. 원나라 상도를 공격하다 패한 홍건적이 압록강 부근으로 모여들고 있다고 하옵니다 #동. 안 공민왕: 내가 군권을 모두 문하시중에게 넘겼습니다. 그런 일이라면 묘의에 붙여 논의를 하세요 이인복: 시간이 없사옵나이다. 전하께서 직접 나서서 방비를 하셔야 할 것이옵나이다 공민왕:(본다)....... 이인복: 나라의 운명을 원을 추종하는 무리들 손에 맡겨두실 작정이시옵니까 공민왕:(한숨 쉬며) 내가 어찌하면 좋겠소이까 이인복: 최영을 총병관으로 삼으시고 전하께서 직접 고려군을 지휘하셔야 할 것이옵니다 공민왕: 최영이 총병관이 되면 서북면은 누가 지킨단 말입니까. 내가 그래도 서북면에 최영이 있고 동북면엔 이자춘이 있어 마음을 놓고 있었거늘 이인복:(울먹이며) 동북면 병마사 이자춘이 급서를 하였다는 전갈이옵나이다 공민왕: 이자춘이 죽었단 말씀입니까 이인복: 예, 전하 공민왕: 이자춘이 없다면 동북면을 누가 지킨단 말입니까 이인복: 슬픔에 잠겨 있을 시간이 없사옵니다 전하. 서둘러 대책을 세우셔야 하옵나이다 공민왕: 최영을 부르라. 내가 최영을 총병관으로 삼을 것이야 #동북면병마사의 회의실 이자춘의 시신이 놓여있다. 이성계:.... 눈물을 훔치더니 밖으로 나간다. #동. 앞 나오는 이성계. 부관들이 모여있다. 이성계: 앞으로 너희들은 나와 함께 동북면을 지켜야 한다. 고려에 충성하라는 아버님의 유훈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나를 따르라 와아 함성을 지르는 무관들과 군사들. #강안전의 마당 김용이 화가 나서 온다. 김용: 전하. 이러실 수가 있사옵나이까. 신이 전하를 위해 견마지로를 다했거늘, 소신을 놔두고 새파랗게 젊은 최영을 총병관으로 삼으신단 말씀입니까 #동. 안 지도를 펴놓고 이인복, 최영과 작전회의를 하고 있는 공민왕. 김용:(소리) 최영을 총병관으로 삼으시면 군령이 서지 않을 것이옵니다 공민왕:(부르르) #동. 마당 김용:(무릎 꿇으며) 전하, 소신에게 총병관을 맡겨주시옵소서. 소신이 전하를 대신하여 군령을 세워 홍건적을 물리치겠나이다 #동. 안 공민왕:(피를 토하듯) 내가 어쩌자고 조일신을 죽이고 저 놈을 살려줬단 말인가 #중서문하성의 회의실 김원명: 안성군을 총병관으로 삼아야 합니다. 최영이 총병관이 되면 백전노장들이 최영의 명령을 따르겠습니까 정세운: 김용은 안 됩니다. 조일신의 난 때도, 기철의 난 때도 제일 먼저 몸을 피신한 게 김용이 아닙니까 김원명: 참지정사께선 최영의 군령을 따르시겠습니까 정세운:(신음) 경천흥: 전하께 말씀을 올리시지요. 최영 대신 안성군을 총병관으로 삼으시라고 염제신: 으흠 김원명: 그래 조정에 사람이 없어 새파란 최영에게 군권을 맡긴단 말씀입니까 #강안전의 마당 김용:(울면서) 전하. 전하께서 신을 믿지 못하시는 걸 잘 알고 있사옵니다. 신에게 기회를 한번만 더 주시옵소서. 신이 홍건적을 격파하고 나라를 구해 전하께 끼친 누를 다 갚겠나이다. 전하 통곡하는 김용. #동. 안 공민왕:(신음) 최영: 황공하오나 전하, 신이 물러나겠나이다 이인복: 안 될 소리. 김용은 모사꾼이지 무인이 아닐세 최영: 안성군의 지시가 아니면 군이 움직이질 않사옵니다 공민왕: 저 놈이 나를 죽이려고 단단히 준비를 해놨구나 최영: 전하. 시급한 것은 압록강 일대와 동북면을 지키는 것이옵니다. 압록강과 동북면을 지키지 못하면 이번엔 개경을 지키기가 힘이 들 것이옵니다 김용:(소리) 전하 #동. 마당 김용: 소신의 충정을 살펴주시옵소서 흐느끼는 시늉하는 김용. #기황후의 처소. 안 기황후:..... 박불화: 어찌하올까요 황후폐하 기황후:......(생각에 잠긴) 그런 기황후를 마른침 삼키며 바라보고 있는 덕흥군, 최유, 유인우. 박불화: 심양으로 도주했던 홍건적이 압록강으로 향하고 있다고 하옵나이다. 군사를 보내 고려를 지키라 하올까요 황후폐하 기황후: 내버려두어라 박불화:(환한) 기황후: 홍건적에게 짓밟혀야 내 고마움을 알 것이야 최유:(엎드리며) 황후폐하의 하늘같은 은혜는 죽는 날까지 잊지 않겠나이다 덕흥군과 유인우에게 눈짓하는 최유. 얼른 엎드리는 덕흥군과 유인우. 기황후:(덕흥군에게) 너는 다르다고 했느냐 덕흥군:(엎드린) 최유가 덕흥군을 쿡 찌른다. 덕흥군:(놀래서) 예, 황후폐하 기황후: 내가 널 고려왕으로 만들어주면 날 위해서 뭘 해주겠느냐 덕흥군: 원하시는 건 뭐든지..... 기황후: 고려를 달라고 해도 주겠단 말이냐 덕흥군: 소, 소인을 고려왕으로 만들어주시면 드리고 말고요 박불화:(찡그리는) 기황후:(깔깔 웃는다) 기특하구나 #동. 뜰 나오는 덕흥군, 최유, 유인우. 최유: 벌벌 떠시기는 덕흥군: 기황후 앞에만 나가면 나도 모르게 진땀이 나고 손발이 떨리는 걸 어찌하겠나 최유:(혀를 차고 유인우에게) 안성군에게 사람을 보내 황후폐하의 승낙을 받았다고 전하시게 유인우: 알겠소이다 최유: 이 놈, 어디 두고보자. 개경으로 돌아가면 내가 강릉대군의 뼈와 살을 씹어 먹을 것이야 #동. 안 기황후: 고려가 저런 자를 왕으로 섬기겠느냐 박불화: 무능한 군주니 더욱 반길 것이옵니다 기황후: 허긴 강릉대군처럼 내 속을 썩이지야 않겠지 싱긋 웃는 기황후. #압록강 부근의 언덕(밤) 경계를 서고 있는 고려군들. 사방을 둘러본다. 고요한 숲. 안심해서 자리를 옮기는 보초병.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진다. 가슴에 화살이 박혔다.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화살들. 쓰러지는 고려군들. #동. 부근 길(밤) 달려오는 말발굽들. 횃불을 든 홍건적들이다. #도성의 앞 김첨수가 달려온다. 급히 멈추더니, 김첨수: 성문을 열라. 성문을 열라 급히 성문을 여는 군졸들. 안으로 달려들어가는 전령. #선경전의 안 염제신: 홍건적이 서경까지 당도했단 말이오 김첨수: 예, 문하시중대감 염제신: 홍건적이 압록강을 건넌 지가 며칠이나 됐다고 김첨수: 홍건적의 숫자가 삼십 만이 넘는다고 하옵니다 웅성거리는 대신들. 김원명:(나서며) 삼십 만이 넘는다니. 홍건적의 주력이 상도에서 거의 궤멸을 당했거늘 김첨수: 삼십 만은 안되도 이십 만은 넘습니다 김원명: 근거없는 소문을 퍼뜨려 민심이 동요하면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오 다시 웅성거리는 대신들. 김용: 염려들 마십시오. 내가 서경으로 나가 홍건적을 격파할 것이니 #강안전의 안 이인복: 이십 만은 과장일 지 모르나 십 만은 넘는 듯 싶사옵니다. 그 정도 군세라도 힘이 부치옵니다 공민왕: 김용이 큰 소릴 치고 떠났으니 기다려 보십시다 이인복: 전하. 의병을 모집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공민왕: 내가 무슨 면목으로 백성들에게 힘을 빌려달라고 하겠소이까 이인복: 전하 공민왕: 나는 못합니다 고개 돌려버리는 공민왕. #동. 뜰 나오는 이인복. 정세운: 뭐라고 하십니까 이인복: 의병을 모을 면목이 없다고 하십니다 정세운: 지금 그런 걸 따질 땝니까 이인복: 우선 조정대신들에게 집에서 부리는 노비를 내놓으라고 하고 그런 연후에 의병을 모아 보십시다 공민왕:(안에서) 대체 백성들을 위해서 해준 게 뭐가 있다고 나가 싸우라고 한단 말입니까 #동. 안 공민왕: 기황후에게 사람을 보내 애원을 해보세요. 원이 고려의 상전이니 도와달라고 하면 고려를 지켜줄 게 아닙니까 #‘금교역’의 김용의 군막. 안 작전회의를 하는 김용. 최영, 이방실, 김득배. 김용: 서경만 지키면 개경은 안전할 것이니 서두를 거 없네. 병력이 더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최영: 서경이 포위된 지 벌써 며칠이 지났습니다. 서둘러 원병을 보내지 않으면 김용: 한줌도 안 되는 도적떼가 무서워 벌벌 떤단 말인가 안우가 들어온다. 안우: 장군 큰일 났습니다. 서경이 함락을 당했다고 합니다 김용:.......뭐, 뭐라고 했느냐 안우: 서경을 함락한 홍건적의 만행이 차마 눈뜨고는 못 볼 지경이라고 합니다. 부녀자를 겁탈하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죽여 그 시신을 끌고 다닌다고 합니다 최영: 이런 죽일 놈들 김용:(슬며시 겁이 나는) 이방실: 지금 당장 서경으로 출병을 하시지요 김용: 지금 가서 뭘 하겠나 최영: 한 사람의 백성이라도 구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김용:(최영에게) 지금 당장 개경으로 가서 원병을 청하게 최영: 도성에 남아 있는 군사가 있겠습니까 김용:(버럭) 대궐을 지키는 응양군이라도 끌고 오란 말야 최영:...... 김용: 군령을 어길 셈이냐 칼을 뽑아드는 김용. 오히려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다. 최영이 나가자 이마의 땀을 훔치는 김용. #도성의 거리 피난민들이 넘친다. 원현:(잡으며) 어디로들 가는거요 피난민: 홍건적이 서경을 함락하고 개경으로 오고 있다우 원현이 피난민들을 가로막는다. 원현: 도망치면 안 됩니다. 홍건적과 싸워야 합니다 원현을 밀어버리고 도망치는 피난민들. 다시 일어나 피난민들을 막는 원현. #대궐의 길 슬금슬금 도망치는 대신들. 이인복: 어디로들 가는 게요.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을 내놓으라니까 이인복을 피해 도망치는 대신들. 이인복:(한사람 잡고) 도망치려거든 노비들이나 내놓고 가시게 대신: 도망을 치다니오. 집에 노모가 계셔 노비들을 시켜 우선 안전한 곳으로 모시려는 거외다 이인복: 안전한 곳이 어디 있겠소이까, 나라가 망하면 피를 토하듯 외치는 이인복. #중서문하성의 회의실 염제신: 우선 전하를 안전한 곳으로 뫼셔야 하지 않겠소 정세운: 안 될 말씀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민심이 흉흉한데 전하께서 도성 밖으로 나가시면 그 혼란을 어찌 감당하려고 그러십니까 김원명: 그러다 개경이 함락당해 전하께서 해를 입으시면 어찌합니까 정세운: 그러니 죽기로 각오를 하고 싸워야지요 경천흥: 시간이 없습니다. 우선 성 안의 노약자들부터 피신을 시키고 정세운: 이미 피난민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어요 #도성의 문. 앞 쏟아져 나오는 피난민들. 그 속에 원현과 공철도 끼어있다. #어느 암자. 앞 암자의 문 밑 구멍으로 밥그릇을 꺼내는 지효. 돌아선다. 초선과 박서방, 박의처가 서있다. 지효: 여긴 웬일이십니까 초선:..... 지효: 편조스님께선 삼년 기한으로 수행에 들어갔습니다. 방해하지 말고 돌아가시지요 박서방: 마님께선 홍건적의 난을 피해 오신 겁니다 지효:..... 한숨 쉬고 가버린다. 초선:.... 암자를 바라본다. 흙으로 봉한 문. #동. 안 신돈:..... 고요하다. #개태사의 법당. 앞 곰순네와 스님들이 법당 안에서 불기구와 불상을 들고 나온다. 덕운: 조심해라 이놈들. 잘못하다 땅에 떨어뜨리면 죽어서 지옥에 떨어질 거야. 어허, 조심하래도 그런다 발이 삐끗해서 불상을 떨어뜨릴 뻔한 스님을 부축하며 울상이 되는 덕운. 원현:(소리) 그걸 다 어디로 옮기실 겁니까 원현과 공철이 온다. 덕운: 마침 잘왔다. 홍건적이 오면 절에 불을 지를 게 아니냐. 부처님이라도 산에 굴을 파고 원현:(버럭) 도망칠 궁리부터 하면 어떡합니까 덕운:(놀래서 눈만 껌벅거리는) 원현: 편조스님은 어디 계십니까. 승병을 모아서 싸워야겠습니다 (스님들에게) 불상을 법당 안에 다시 모시세요. 우리 힘으로 법당을 지킬 겁니다 덕운의 눈치만 보는 곰순네와 스님들. 원현: 귀들이 먹었습니까. 불상을 모두 법당 안으로 들여가라고 했습니다 놀래서 우르르 다시 법당으로 불상과 불기구를 옮기는 곰순네와 스님들. #강안전의 복도 염제신, 김원명, 경천흥이 부복했다. 방문이 열렸고 안에 앉은 공민왕이 보인다. 공민왕: 파천을 하라니오. 나보고 홍건적을 피해 도망을 치라는 말씀입니까 경천흥: 망극하오나 전하, 총병관 김용이 금교역 부근에서 패해 생사가 모연하다고 하옵나이다. 일이 다급하오니 우선 공민왕: 나는 못갑니다 김원명: 황공하오나 전하, 원에 전령을 보내 고려의 급박한 사정을 알렸사오니 머잖아 원의 지원군이 도착을 할 것이옵나이다. 그 때까지 잠시 피신을 하셨다가 공민왕: 내가 내 백성을 다 버리고 어디로 도망을 치라는 게냐 눈물이 주르륵. 염제신: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흐느끼는 염제신. #영수전의 뜰 안에서 물건을 내오는 환관들과 궁녀들. #동. 안 명덕태후: 주상께선 뭘 하고 계시느냐. 나는 떠날 준비를 다 끝냈거늘 김상궁: 전하께옵서는 도성을 떠나지 않으시겠다고 하시옵나이다 명덕태후: 홍건적이 금교역을 지났다고 하거늘 무슨 봉변을 당하시려고 김상궁:...... 명덕태후: 당장 주상께 고하거라. 해지기 전에 서두르시라고 김상궁:...... 명덕태후: 뭘 꾸물대고 있느냐 굽히고 나가는 김상궁. 명덕태후:(혜비에게) 자네는 나하고 같이 가자 혜비: 소인은 전하를 뫼시고 따르겠나이다 명덕태후: 옳지. 그래야지 #강안전의 뜰 안에서 나오는 염제신, 김원명, 경천흥. 이인복이 급히 온다. 이인복: 파천이라니 김원명:(막으며) 왕명이 떨어졌으니 더는 말씀하지 마시오 이인복: 참지정사 정세운이 응양군을 이끌고 금교역으로 떠났소이다 김원명: 만에 하나 전하께서 꾸물대시다가 홍건적에게 길이 막혀 변을 당하시면 성상군께서 책임을 지시겠소이까 이인복:(전각을 향해) 전하, 도성을 지키고 계셔야 하옵나이다 #동. 안 공민왕:....... 이인복:(소리) 전하께서 도성을 떠나시면 홍건적을 막을 수가 없사옵니다 #동. 뜰 흐느끼는 이인복. 김원명: 전하의 안위만 문제가 아니외다. 대궐의 아녀자들을 생각하셔야지요. 홍건적에게 몸을 더럽히면 이인복: 네 이놈. 네 놈이 염려하는 것이 그것이냐. 나라가 망하든 말든 그저 걱정이 되는 건 니놈의 부귀영화와 목숨이 아니냐 김원명: 이 놈이 마주 눈을 부릅 뜨는 김원명. #동. 안 공민왕:...... 김원명:(소리) 혼자서만 깨끗한 척 하기는. 너와 편조 같은 놈들이 원의 비위를 거슬리는 바람에 우리가 이 곤욕을 치르고 있는 걸 모르느냐 이인복:(소리) 내가 니놈부터 죽이고 나서 홍건적과 싸울 것이야 #동. 마당 김원명의 멱살을 잡은 이인복. 김원명:(멱살 잡힌 채) 천벌을 받을 것이야 이 놈. 대원제국의 은혜를 저버리고 잘난 척을 하더니 이인복: 그 더러운 입을 닥치지 못하겠느냐 멱살을 더 움켜쥐는 이인복. 김원명: 그래 죽여라 이놈. 어디 죽여봐 대드는 김원명. 경천흥: 왜들 이러십니까. 그만들 놓으세요 말리는 경천흥. 그저 어쩔 줄 모르는 염제신. #동. 안 공민왕:...... 스르륵 눈 감는 공민왕. 바라보는 안도치. 감은 공민왕의 두 눈에서 배어나오는 눈물. #법왕사의 보우의 방 안 무릎 꿇은 지효. 보우: 편조는 어찌하고 지효:......(숙이는) 보우: 소활동 보살이 내려갔구나 지효:(보더니 애써 미소 지으며) 죄송합니다 보우: 어쩌겠느냐. 그것도 끊지 못할 인연이니...... 지효: 그보다 왕사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보우:(본다) 지효: 잠시 피신을 하시지요 왕사님 보우: 중이 절을 버리고 어디로 간단 말이냐 가만히 웃어보이는 보우. #어느 암자. 앞(밤) 암자를 향해 참선하듯 앉아있는 초선. #동. 안(밤) 신돈:..... 고요한. 초선:(소리) 스님 #동. 앞(밤) 초선: 전하께서 도성을 버리시고 피난길에 오르셨다고 하십니다 #동. 안(밤) 신돈:...... 초선:(소리) 나라부터 구하셔야지요 스님 #동. 앞(밤) 초선: 부처님의 도리는 내일 깨우쳐도 늦지 않습니다 스님 문을 바라본다. 단단히 봉한 문. #동. 안(밤) 신돈:..... 문득 눈가에 배어나오는 눈물. 그 눈물을 지우려는 듯 벌떡 일어나 절하고 또 절하는 신돈. #도성 부근의 길(밤) 왕실의 수레가 온다. 안에 타고 있는 명덕태후와 덕녕공주. 그 뒤를 따르는 노국공주와 혜비가 탄 말이 가고 있다. 노국공주, 혜비를 본다. 말타는 것이 서툴러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혜비. 노국공주:..... 혜비 옆으로 오더니 말고삐를 잡아준다. 고마워서 웃어보이는 혜비. 그렇게 간다. #동. 부근의 언덕 위(밤) 공민왕:....... 도성 쪽을 바라본다. 멀리 불길이 치솟고 있다. #도성의 안(밤) 홍건적들이 햇불을 집에다 던지고 있다. 도망치는 백성들. 술에 취한 홍건적이 닥치는대로 백성들을 죽이고 있다. #강안전의 뜰(밤) 텅 빈. 강안전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는 홍건적들. 전각을 향해 횃불을 던진다. #도성부근의 언덕 위(밤) 공민왕:...... 멀리 치솟는 불길이 기세를 더하고 있다. 공민왕:...... 분노의 눈물이 흘러내린다. <신돈39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