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 40회 <신돈> -40회- #도성의 거리(밤) 여기저기 불을 지르고 있는 홍건적들. 술취한 홍건적들이 백성들의 시신을 질질 끌고 다니며 장난을 치고 있다. #대궐의 안(밤) 미처 도망치지 못하고 숨어있던 궁녀들을 끌고 나오는 홍건적들. 옷을 찢고 비명을 지르는 궁녀들을 희롱하는 홍건적들. #강안전의 안(밤) 여기저기 뒤지고 다니는 홍건적들. 바닥에 나뒹군 노국공주의 초상화. #임진강 부근(밤) 최만생과 이환관 등이 말을 타고 달려온다. 어둠 속에 잠긴 강. 최만생: 배를 구해오너라 사방으로 흩어지는 환관들. #부근. 어느 민가의 대문 앞(밤) 마당에서 웅성거리는 환관들과 나인들. 이환관이 말을 타고 달려와 멈춘다. 안도치: 배를 구했느냐 이환관: 피난민들이 벌써 배를 타고 강을 건넜는지 한 척도 보이지가 않습니다 안도치: 날이 밝기 전에 강을 건너야 한다. 무슨 수로 써서라도 배를 구해 오너라 다시 말을 타고 달려가는 이환관. #동. 건넌방 안(밤) 비좁은 방 안에 모여 앉은 명덕태후, 덕녕공주, 혜비. 박상궁과 유나인이 음식 몇 가지를 올려진 소반을 내려놓는다. 명덕태후:(밥상 보더니) 이것도 상이라고 들여왔느냐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박상궁. 명덕태후: 물리거라 고개 돌리는 명덕태후. 덕녕공주: 참고 허기라도 채우시지요 마마 명덕태후: 이게 다 기황후의 눈밖에 난 탓이 아닙니까. 기황후의 비위를 맞춰줬으면 홍건적이 고려를 범하도록 놔두진 않았을 겁니다 덕녕공주:(한수저 뜨며) 먹을만 하옵니다 명덕태후: 으음 못마땅해서 흘킨다. 박상궁: 마마 명덕태후: 나는 못 먹겠다고 하질 않느냐 상을 밀어버리는 명덕태후. #동. 안방(밤) 밥상. 공민왕:..... 물끄러미 밥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공민왕. 마주앉은 노국공주. 안도치: 전하. 부근에 민가가 보이지 않사옵고 급히 대궐을 빠져나오느라고 미처 피난 준비를 못했사옵니다. 소찬이긴 하오나 노국공주: 이만하면 진수성찬이다. 죽지 않고 살아서 이만큼 도망쳐 온 것만 해도 부끄러운데 뭘 더 바라겠느냐 안도치: 망극하옵나이다 마마 노국공주: 드세요 전하. 하얀 쌀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니 신첩은 침이 절로 넘쳐흐릅니다 공민왕:(고개 푹 숙인) 노국공주: 전하 공민왕:(숙인채) 내가 무슨 면목으로 밥을 먹겠습니까. 열성조가 물려주신 대궐과 백성을 버리고 도망친 죄인이 노국공주: 이럴 때일수록 힘을 내셔야지요 공민왕:...... 노국공주: 지금은 세가 불리하여 피난길에 올랐으나 전하께서 기운을 차려 형세를 잘 살피셔야 홍건적을 물리칠 것이 아닙니까 공민왕: 죄없는 백성들이 임금을 잘못 만나 홍건적에게 도륙을 당하고 있습니다 노국공주: 눈물을 흘리실 때가 아닙니다 전하. 괴로워도 전하께서 강건한 모습을 잃지 않고 계셔야 모두 힘을 낼 것입니다 (밥 한 수저 떠서) 드세요 전하 공민왕:........ 안도치: 언제 또 양식을 구해 전하께 수랏상을 올릴 지 알 수가 없나이다. 든든히 잡수시고 힘을 내시옵소서 전하 노국공주: 전하 수저를 내미는 노국공주. 겨우 받아먹는 공민왕. 찬을 고르는 노국공주. 공민왕에게 먹여준다. 목이 메이는 공민왕. 이인복:(밖에서) 전하를 이런 누추한 곳에 뫼셨단 말이냐 공민왕:(안도치에게 반가워서) 저건 성산군의 목소리가 아니냐 #동. 마당(밤) 이인복: 아무리 경황이 없어도 그렇지 전하를 이런 곳에 뫼시다니 공민왕:(안에서) 성산군이냐 이인복:(엎드리며) 전하. 신을 죽여주시옵소서. 신이 전하를 바로 뫼시지 못하여 전하께서 이런 수모를 당하게 해드렸나이다 #동. 안방(밤) 공민왕: 도치야. 내가 성산군과 함께 다시 도성으로 올라갈 것이니 차비를 하거라 노국공주:(본다)..... 공민왕: 뭘 꾸물대고 있느냐. 어서 차비를 하지 않고 안도치: 도성이 이미 홍건적의 손에 떨어졌거늘 어딜 가신다는 말씀이옵나이까 전하 공민왕: 내가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쳤느니라. 내가 다시 도성으로 가서 적과 싸울 것이야 벌떡 일어나 나가는 공민왕. 안도치: 전하 #동. 마당(밤) 나오는 공민왕과 안도치. 이인복: 전하 공민왕: 어서 일어나 나하고 도성으로 올라갑시다 안도치: 전하 공민왕: 백성들이 날 얼마나 원망하고 있겠습니까. 임금이란 자가 혼자서만 살겠다고 도망을 쳤으니 이인복: 서둘러 강을 건너셔야 하옵나이다 공민왕: 내가 어리석었어요. 내가 대궐을 버리지 않았으면 군신이 함께 죽기로 홍건적과 싸웠을 것이 아닙니까. 도치야, 말을 준비해라. 내가 대궐로 돌아갈 것이야 안도치:(엎드리며) 못가시옵나이다 전하 환관 나인들이 모두 엎드려 통곡한다. 공민왕:(울부짖듯) 내가 죽어서 무슨 낯으로 열성조를 뵌단 말이냐 #법왕사 올라가는 길(밤) 도망쳐 오는 백성들. 뒤쫓는 홍건적. 칼을 맞고 쓰러지는 백성들. #동. 마당(밤) 도망쳐 들어오는 아낙. 주위를 둘러보다 법당 안으로 들어간다. 뒤쫓아 들어오는 홍건적. 법당으로 달려간다. 지효가 나와 두 손을 쳐들어 막는다. 지효: 못들어간다. 여긴 부처님을 모시는 법당이다 주춤하는 홍건적들. 지효: 물러들 가시오 홍건적들 마주보더니 지효를 내팽개치고 법당 안으로 들어간다. #동. 법당. 안(밤) 들어오는 홍건적들. 보우가 불상을 마주하고 앉아있다. 그 경건한 모습에 흠칫하는 홍건적들. 홍건적 하나가 칼을 치켜들더니 보우를 내려치려 한다. 순간 그 눈이 번쩍한다. 불상으로부터 강렬한 빛이 쏟아져 나온다. 두 눈을 가리고 비틀거리며 법당 밖으로 도망치는 홍건적들. #동. 마당(밤) 도망쳐 나오는 홍건적. 지효:..... 법당을 바라보는 지효. 법당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 비틀거리며 도망치는 홍건적들. 지효:..... 다시 법당을 본다. 그저 어둠 속에 잠겨있는 법당. 황급히 일어나 합장하는 지효. 지효:(빠르게 중얼거린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동. 법당 안(밤) 보우:.... 독경을 시작하는 보우. 고요한 불상의 모습. #어느 민가의 대문. 앞(밤) 환관들과 나인들로 북적거리는 마당. 염제신이 종자 서넛을 거느리고 허겁지겁 들어선다. 안도치:(달려오며) 어서오십시오 문하시중대감 염제신: 전하께선 어디 계시냐 (둘러보며) 전하. 전하 통곡하듯 부르는 염제신. 안에서 이인복이 나온다. 이인복: 큰일났습니다 문하시중대감. 적의 추격이 급한데 강을 건널 배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염제신: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오. 내가 노모를 모시러 도성 밖으로 나갔다가 도중에 홍건적을 만나 겨우 도망쳐오는 길이요. 배가 없으면 걸어서라도 강을 건너야하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 경천흥과 이색이 들어온다. 이인복: 배를 구했소이까 경천흥: 못구했습니다 염제신: 걸어서라도 강을 건너야 한다니까 이색: 임진강의 수심이 깊어 걸어서는 건널 수가 없습니다 경천흥: 혹시 상류로 올라가면 수심이 얕은 곳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염제신: 그렇게라도 하십시다.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릴 수는 없지 않소이까 이인복:(안도치에게) 어서 전하와 태후마마를 뫼시고 나오게 안으로 달려들어가는 안도치. 부산하게 이동할 준비를 하는 환관들과 군사들. #동. 안방(밤) 벽에 기대 잠이 든 공민왕. 바라보고 있는 노국공주. 안도치:(밖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마마. 소인 안도치이옵나이다 노국공주: 무슨 일이냐 #동. 마당(밤) 안도치: 배를 구할 수가 없어 걸어서 강을 건너기로 하였나이다 노국공주:(안에서) 알았다 #동. 안방(밤) 노국공주:...... 공민왕을 본다. 여전히 잠든 공민왕. 눈가에 말라붙은 눈물. 차마 깨우지 못하고 바라만 보는 노국공주. #동. 건넌방(밤) 명덕태후: 이 밤중에 어딜 간다는 게냐 김상궁:(문가에서) 수심이 얕은 곳을 찾아 강을 건너기로 했다고 하옵나이다 명덕태후: 걸어서 강을 건넌단 말이냐 김상궁: 예, 마마 (굽히며) 서두르시옵소서 마마 당황해서 더 굽히는 김상궁. #동. 안방(밤) 여전히 벽에 기대 잠든 공민왕. 바라보는 노국공주. 공민왕:......(눈 감은 채) 편조가 있었다면.....죽어도 대궐에서 죽자고 했을 겁니다 노국공주:...... 공민왕:(눈을 떠서) 백성을 버린 임금이 무슨 임금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두 눈을 부릅뜨고 대들었겠지요 (보더니) 안 그렇습니까 울듯이 미소 짓는 공민왕. 노국공주: 그 전에 대비를 단단히 했겠지요. 원과의 국교를 끊고 군비를 늘여 원이든 홍건적이든 고려를 넘보지 못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공민왕: 그랬겠지요? 애타게 되묻는 공민왕. 노국공주: 홍건적이 고려를 침공한 건 고려와 원이 한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고려가 원의 핍박을 받듯 홍건적 역시 원의 핍박을 받는 한족들이 아닙니까. 고려가 원과의 국교를 끊었다면 홍건적은 오히려 고려의 도움을 청했을 겁니다 공민왕:....(벽에 머리를 기대고) 기황후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노국공주:...... 공민왕: 통쾌하겠지요. 홍건적의 손을 빌려 고려를 짓밟고 있으니..... 소리 없이 허탈한 웃음. 바라보는 노국공주. 안도치:(밖에서 조심스럽) 마마. 떠나실 차비를 하였나이다 이윽고 소리내어 웃는 공민왕. 회한의 괴로운 웃음이다 #동. 대문. 앞(밤) 말 위에 오르는 공민왕과 노국공주. 명덕태후를 부축해 나오는 혜비와 김상궁. 그 뒤에 덕녕공주. 명덕태후:(수레에 오르며) 이게 무슨 처량한 꼴이냐 (김상궁과 혜비 뿌리치고) 주상. 지금 당장 연경에 사신을 보내 기황후의 도움을 청하세요. 이러다간 다 죽습니다 눈을 흘키며 제 발로 수레에 오른다. 덕녕공주를 부축해 수레에 태우는 혜비와 김상궁. 덕녕공주:(혜비에게) 자네도 이리 오르게. 그 솜씨론 말을 타기가 어렵겠다 혜비: 소첩은 전하와 중전마마를 뫼시고 걷겠나이다 물러서는 혜비. 최만생: 불을 밝혀라 환관들이 횃불에 불을 붙여 앞선다. 주위를 에워싸는 군졸들. 수레가 떠나고 그 뒤를 따르는 공민왕과 노국공주. 염제신, 이인복, 경천흥, 이색 등이 말을 타고 그 뒤를 따른다. 걸어서 따르는 안도치 등 환관과 김상궁 등 나인들. #강가의 길(밤) 공민왕 일행 온다. 어둠속의 강. 앞에서 달려오는 일단의 군사. 긴장하는 공민왕 일행. 이인복과 경천흥이 말을 몰아 앞으로 간다. 김원명이 장수 서넛을 거느리고 달려온다. 김원명: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이인복: 배를 구할 수가 없어 강의 상류로 가는 중이요 김원명: 홍건적의 선봉이 이미 강을 건넜소이다 경천흥: 그럼 포위를 당했다는 겁니까 최만생이 급히 말을 몰아온다. 최만생: 성산군대감. 저쪽을 보십시오 최만생이 강의 하류쪽을 가리킨다. 멀리 일단의 횃불이 보인다. 공민왕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 최만생:(공민왕 쪽으로 달려가며) 홍건적이다. 빨리 태후마마의 수레를 돌려라 황급히 명덕태후가 탄 수레의 방향을 바꾸는 군사들. 소란이 일어난다. 명덕태후: 아이구 이 일을 어쩌나. 꼼짝없이 죽게 생겼구나 혜비가 품에서 단검을 꺼내 가슴을 찌르려 한다. 노국공주: 무슨 짓이냐 혜비를 가로막는 노국공주. 혜비: 몸을 더럽히느니 노국공주: 홍건적인지 아닌지 확인을 한 후에 자결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이야 말에서 몸을 굽혀 혜비의 손에서 칼을 뺏는 노국공주. 흐느끼는 혜비. 노국공주:....... 횃불 쪽을 바라본다. 군마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노국공주가 말을 몰아 하리를 굽히더니 이환관이 들고 있는 칼을 빼든다. 노국공주:(안도치에게) 태후마마와 전하를 뫼시고 먼저 떠나거라 말을 몰아 이인복 쪽으로 간다. 공민왕: 칼을 다오. 내가 싸우다 죽을 것이야 노국공주:(말머릴 급히 돌리며) 전하. 전하께선 살아계셔야 합니다 공민왕: 뭘 하고 있느냐. 칼을 달라니까 노국공주: 어서 전하를 뫼시지 않고 뭘 하고 있느냐 안도치와 이환관이 공민왕의 말머리를 돌린다. 말을 몰아 이인복 쪽으로 달려가는 노국공주. 그 뒤를 따르는 군졸들. 노국공주:(이인복 등에게) 전하께서 몸을 피하실 동안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성산군께선 전하를 따라가세요 (군졸들에게) 나를 따르라 칼을 치켜드는 노국공주. 경천흥: 마마. 홍건적이 아니라 고려군인듯 싶사옵니다 노국공주:.... 다가오는 횃불을 본다. 고려군이다. 선두에 선 정세운. 가까이 달려온다. 경천흥: 고려군이다. 고려군이 구원하러 왔다 수레로 달려가는 경천흥. 환성을 지르는 환관들과 나인들. 공민왕이 노국공주 쪽으로 온다. 정세운이 말을 멈추고 황급히 말에서 내려 엎드린다. 정세운: 전하. 배를 구해놓고 전하께서 오시기만 기다리고 있었사옵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옵나이까 전하 (흐느낀다) 공민왕:(말에서 내려 정세운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경이 내 목숨을 구했소 정세운:(다시 엎드리며) 신들이 불민하여 전하께서 이런 치욕을 당하시게 해드렸사옵니다. 신들을 모두 죽여주시옵소서 통곡하는 정세운. 공민왕: 경의 잘못이 아니오. 내가 어리석은 탓이요. 내가 누구를 원망하겠소이까 정세운: 전하 더 통곡하는 정세운. #도성의 거리 고요하다. 여기저기 시신들. 몰래 기어나와 시신을 치우는 백성들. #법왕사의 마당 피난민들이 여기저기 모여있다. #동. 보우의 방 안 지효: 아무리 말려도 미처 피난을 못 간 사람들이 경내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보우: 난세에 찾을 곳이 부처님 품밖에 더 있겠느냐 지효: 무엇보다 저들을 다 먹일 일이 걱정입니다 보우: 나무관세음보살 지효:(일어나려다 보우 보더니 빙긋 웃으며) 왕사님께서 법력을 일으키신 겁니까 보우:..... 지효: 법당 안에서 빛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보우: 내 눈엔 아무 것도 보이질 않았다 지효:....... 보우: 홍건적은 불심이 깊은 한족들이 아니냐. 나라를 잃고 도적이 되었으나 본성은 선하니 부처님을 마주하는 순간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야. 나무관세음보살 지효:...... 합장하며 허리 굽히는 지효. #어느 암자의 안 어둡다. 쪽문이 열리고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 빛에 -. 신돈:...... 깊은 상념에 잠겨있는. 밥그릇과 물그릇이 안으로 들어온다. 신돈:..... 미동도 않는 신돈. 초선:(밖에서) 스님. 홍건적이 개경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동. 앞 초선:(합장하고) 개경을 함락한 홍건적들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잡아 불에 구워죽이고 임신한 부녀자의 배를 갈라죽이고, 그 참혹함이 말로 다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동. 안 신돈:....... 눈망울이 조금 움직이다 멈춘다. 초선:(소리) 백성들을 버리고 도성을 떠난 어가는 한밤 중에 겨우 임진강을 건너 남쪽으로 정처 없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고 합니다 신돈:..... #동. 앞 초선: 스님. 스님 눈에는 그런 참상들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동. 안 신돈:...... 초선:(소리) 몽골군에게 짓밟혔던 고려의 산하가 이번엔 홍건적에게 유린을 당하고 있습니다 스님. 스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까 신돈:...... 감은 눈가에 치미는 물기. #동. 앞 초선: 전하께서만 대궐과 도성을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백성들도 고려를 버렸습니다. 누구 하나 홍건적과 싸우려고 들지를 않으니 어느 세월에 홍건적을 물리치겠습니까 #복주의 거리 이색: 전하께서 약속을 하셨다 멀찍이 떨어져 이색을 힐끔거리는 백성들. 자막,“복주(지금의 안동)” 이색: 군역에 응하는 자와 의병에 가담하는 자는 선비나 향리에게는 벼슬을 주고, 노비들은 양민으로 삼을 것이며, 따로 돈과 비단을 내려 나라를 위하는 충성심에 보답을 할 것이다 웅성거리는 백성들. 이색: 자, 앞으로들 나오시오 손짓하는 이색. 슬금슬금 도망치는 백성들. 이색:...... 기가 막혀 바라보는 이색. #복주의 행재소. 문 앞 어수선하다. #동. 회의실 안 염제신: 아무리 모병을 해도 사람이 모이질 않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이까 김원명: 그보다는 원에 사신을 보내는 것이 더 급합니다 정세운:(버럭) 원에 사신을 보내 뭘 합니까. 패주하는 홍건적을 압록강 쪽으로 몰아 고려를 침공하게 만든 게 원이 아닙니까. 그런 원이 고려를 도와주겠소이까 김원명: 그러니 더욱 원에게 간청을 해야지요. 무엇보다 기황후의 노여움을 풀어야 합니다 이인복: 원에 사신을 보내봤자 도움을 받기는 글렀소이다. 우선 우리 힘으로 홍건적을 물리친 다음 김원명: 아니지요, 아니지요, 아닙니다. 원의 도움 없이는 홍건적을 물리칠 수가 없어요. 전하께서 원에 사신을 보내 그간의 잘못을 뉘우치고 원의 도움을 청한다는 정세운: 전하께서 두 번이나 치욕을 당하시게 만들 참인가 김원명: 전하께서 당하는 치욕이 문젭니까. 나라가 절단나게 생겼는데 정세운: 이놈이 벌떡 일어나는 정세운. 염제신: 왜들 이러시는가. 그러지 않아도 전하를 뵐 면목이 없는데 정세운:..... 신음하며 꾹 참는 정세운. #복주의 행재소. 앞 김용이 수하 장수들을 데리고 말을 타고 와서 내린다. 안에서 달려나오는 김림. 김림: 숙부님. 저 좀 보십시오 김용을 구석으로 끌고 간다. 김림: 전하를 뵙기 전에 대책을 세워두시는 게 좋겠습니다 김용: 그게 무슨 말이냐 김림: 정세운이 숙부님을 모함하고 있습니다 김용: 뭐야 김림: 서경 전투에서 패한 건 숙부님이 겁을 먹고 꽁무니를 빼는 바람에 김용: 저런 죽일 놈을 봤나. 저만 살겠다고 도망친 게 누군데 김림: 그렇게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숙부님. 서경 전투에 참가해던 최영, 안우, 이방실, 김득배 등이 모두 그렇게 아뢰고 있습니다 김용: 최영, 안우 등이 복주에 내려와있다는 말이냐 김림: 전력을 정비해 개경을 탈환할 계획을 수립하느라고 여념들이 없습니다 김용: 으음. 패전의 책임을 나한테 뒤집어 씌우고 있다 신음하는 김용. #동. 사랑방 안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앉아있다. 염제신: 황공하오나 전하, 아무래도 봄까지는 기다리셔야 하겠습니다 공민왕: 봄까지 기다리라니오. 홍건적이 도처에서 무고한 백성을 살육하고 있거늘 염제신: 사방에 흩어진 군사들을 다시 모으고 전력을 정비하자면 공민왕: 군사가 부족하면 의병이라도 모집해서 충당을 하라고 하질 않았습니까 염제신:(난처) 김원명: 그보다는 전하, 원에 사신을 보내 구원병을 청하시는 것이 노국공주: 승냥이를 잡자고 호랑이를 불러들이자는 말씀입니까 김원명:(신음) 노국공주: 홍건적만 물리치면 더는 원의 간섭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원을 불러들여 화를 자초해서야 되겠습니까 경천흥: 황공하오나 중전마마, 아무리 좋은 조건을 내걸고 의병을 모집해도 응하는 자들이 없습니다. 심지어 노비 문서를 폐해준다고 해도 노국공주: 백성들이 믿을 리가 없지요. 땅을 돌려준다고 전민변정도감을 세웠다가 하루 아침에 폐한 조정이 아닙니까 김원명: 하오니 원에 사신을 보내 구원병을 청하자는 것이 아니옵니까 노국공주: 그것만은 안된다고 했습니다 김원명: 전하 이인복:(나서며) 중전마마의 말씀이 옳으십니다. 원의 도움을 받느니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겠습니다 김용:(밖에서) 전하. 신 김용 홍건적을 한수 이북으로 몰아내고 전하의 안위가 염려되어 불철주야 달려왔나이다 공민왕:(부르르) #동. 마당 김용: 하온데 전하께서 강녕하시다 하오니 신 김용, 감격의 눈물이 앞을 가리옵나이다 엎드려 흐느끼는 김용. 그런 김용을 못마땅해서 바라보는 최영, 안우, 이방실, 김득배 등. 흐느끼며 눈물을 훔치는 김용. 정세운이 신음하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린다. #동. 안 부들부들 떨고 있는 공민왕. 김용:(밖에서) 전하. 신 김용, 이 길로 남은 군사들을 모아 개경으로 달려가겠나이다. 신이 개경을 수복하고 전하를 대궐로 모시는 날까지 부디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 공민왕: 이 놈이 벌떡 일어나 달려나가는 공민왕. 황급히 일어나는 염제신 등. #동. 마당 달려나오는 공민왕. 마루에서, 공민왕: 내가 누구를 탓하겠느냐. 너 같이 비열한 자를 총병관으로 삼았으니 김용:(엎드린 채 놀라서 쳐다보는) 공민왕: 다시는 내 눈 앞에 나타나지 마라 김용: 억울하옵나이다 전하. 전하께옵서 임진강을 무사히 건너오신 것은 신이 죽기를 각오하고 홍건적을 막은 탓이옵니다. 그런 신을 비열하다고 하시는 것은 공민왕: 닥치지 못하겠느냐. 네 놈의 거짓말에 진절머리가 난다 (염제신에게) 김용을 파직하고 정세운을 총병관으로 삼을 것입니다 김용: 전하 공민왕: 저 자를 옥에 가두라. 내가 전쟁이 끝난 다음 저자의 죄를 물을 것이야 응양군들이 김용을 끌고 간다. 김용: 전하. 억울합니다. 어째서 신을 모함하는 소리만 들으시옵나이까 공민왕:...... 부르르 떠는 공민왕. #행재소의 회의실 안 입맛만 다시는 염제신. 김원명: 이건 너무 하지 않습니까. 패전의 책임을 김용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은 이인복: 뒤집어 씌우다니. 말조심하시게 김원명: 전쟁 중엔 장수를 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인복: 전장에서 김용의 얼굴을 봤다는 사람이 없소이다 경천흥: 홍건적과의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전장에 나갔던 장수의 책임만 묻는다면 누가 마음 놓고 적과 싸울 수가 있겠습니까 김원명: 문하시중대감께서 전하께 안성군을 풀어주시라고 말씀을 올리시지요 염제신: 누군가는 패전의 책임을 져야 할 게 아닌가 김원명: 그런 식으로 책임을 따지자면 전하의 책임이 더 크옵니다 이인복: 이 사람이 김원명: 일찌감치 원에 도움을 청했으면 이런 꼴은 당하지 않았을 게 아닙니까 오히려 기세등등한 김원명. #행재소. 사랑방 안 공민왕: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정세운: 황공하오나 전하, 서경 전투에서 패한 것은 김용의 잘못 만은 아니옵나이다 공민왕: 경은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요. 그렇게 김용이한테 당하고도 또 두둔을 하십니까 정세운: 누가 총병관이 됐든 홍건적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공민왕: 무슨 소립니까. 동북면의 이성계는 백전백승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세운:(신음) 공민왕: 군사나 많습니까. 겨우 이천 밖에 안 되는 군사를 가지고도 승리를 거듭하고 있어요. 서경에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홍건적에게 패한 건 김용이 무능하고 겁이 많은 탓입니다 정세운: 마지막으로 한번만 김용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전하. 전하께서 이대로 김용을 내치시면 김용은 영영 폐인이 될 것이옵나이다 눈물을 흘리는 정세운. 신음하는 공민왕. #복주의 순군옥. 앞 석방되어 나오는 김용. 흠칫 멈춘다. 정세운이 서있다. 김용: 으음 눈을 희번덕거리는 김용. 정세운:(혀를 차는) 김용: 날 죽게 내버려두지 왜 풀어주시나 정세운: 지금 당장 전하를 찾아 뵙고 다시 한번 용서를 비시게 김용: 그만두시게. 난 어차피 미운 털이 박혔으니 정세운: 옹졸하기는. 아직도 잘못을 깨닫지 못했구만 김용: 날 모함한 자가 누군지 잘 알고 있네 정세운:(신음) 김용:(비웃듯) 양심에 가책이 드시나 정세운:(눈물이 글썽해서) 그렇게도 내 마음을 몰라주시는가 #복주의 행재소 사랑방. 안 김용:...... 엉거주춤 부복해서 공민왕의 눈치를 살피는 김용. 공민왕:..... 차거운 눈물. 김용:(헛기침하고) 면목이 없습니다 공민왕:...... 김용:(갑자기 울먹이며) 전하께서 배를 구하지 못해 임진강을 건너지 못하고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신이 무능한 탓으로......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는 시늉. 공민왕:......(가만히 한숨) 김용:(엎드리며) 전하. 신은 그만 낙향해서 농사나 지을까 합니다 공민왕:(한숨 쉰다) 김용:(얼른 눈치 보는) 공민왕: 정세운이 하도 간청을 하니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기회를 주겠다 김용:(울면서) 그저 전하 곁에만 있게 해주십시오. 신의 소원은 그것 뿐이옵니다. 전하께서 정세운만 편애하시니 좁은 마음에 시기심이 나서 (보더니) 전하, 신은 관직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전하 곁에만 있게 해주십시오. 연경에서 전하를 뫼실 때처럼 그저 전하의 손과 발이 흐느껴우는 김용. 물끄러미 바라보는 공민왕. 흐느끼면서 연신 공민왕의 눈치만 보는 김용. #동. 행재소의 대문. 앞 김용, 나온다. 기다리고 서있는 김림. 김림: 용서를 받으셨습니까 김용: 한바탕 눈물을 흘렸더니 순군만호의 자리를 내주시더라 (껄껄 웃으며) 전하께선 정이 많으신 게 탈이야. 내가 임금이라면 벌써 나를 죽이고도 남았겠다 웃어대는 김용. #동. 사랑방 안 노국공주: 순군만호면 도성의 치안을 책임지는 자리가 아닙니까 공민왕:(한숨) 노국공주: 아니되십니다. 김용에게 그런 중책을 내리시다니 공민왕: 내 곁에만 있게 해달라고 애원을 해대니 어쩝니까. 그렇다고 응양군을 맡길 수도 없고 노국공주: 내치셔야지요 전하. 김용은 참수당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입니다 공민왕:(한숨 쉬며) 홍건적에게 패한 것은 누구보다 내 잘못이 큽니다. 내가 무능해서 그리 된 것을 가지고 김용의 책임만 묻는다면 노국공주: 김용을 용서해주시는 것은 임금의 관용이 아니라 인정에 불과합니다 공민왕:(본다) 노국공주: 관용과 인정은 다른 것이옵니다 전하 공민왕:(언잖아서) 내가 조일신을 죽인 것을 후회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노국공주:...... 공민왕: 염려하지 마세요. 내가 김용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니 #복주의 순군만호의 집무실. 마당(밤) 김림이 사방을 살피며 온다. 김림:(안에다 대고) 숙부님 김용:(안에서) 들어오너라 안으로 들어가는 김림. #동. 집무실 안(밤) 들어오는 김림. 김용: 알아봤느냐 김림: 예, 숙부님. 마침 복주로 피난을 내려와있는 남대가의 상인 하나가 이달 하순에 연경으로 배를 한 척 띄운다고 합니다 김용:(서찰을 내주며) 네가 직접 다녀오너라 김림:(서찰 받으며 마른 침 꿀꺽) 김용: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서찰을 연경에 있는 덕흥군에게 전해야 한다. 만에 하나 이 일이 발각되면 우리 집안은 떼죽음을 당할 것이야 김림: 알겠습니다 숙부님 김용: 이놈들. 어디 두고 보자. 모두 내 손에 죽을 것이니 이를 가는 김용. #복주. 행재소의 마당 공민왕이 정세운에게 부월을 내린다. 두 손으로 받아들고 뒤로 물러나는 정세운. 최영, 안우, 이방실, 김득배가 공민왕을 향해 서있다. 시립한 염제신과 대신들. 말석에서 힐끔거리고 있는 김용. 정세운: 전하. 신들이 죽기로 싸워 기필코 개경을 수복하여 전하께서 당하신 치욕을 씻어 드리겠나이다 공민왕: 홍건적이 다시는 이 땅을 넘보지 못하게 한 놈도 살려보내서는 안 될 것이오 염제신: 천세천세 천천세 대신들이 염제신을 따라 천천세를 외친다. 마지못해 따라 부르는 김용. #개태사의 마당 피난민들이 우글거린다. 국밥을 끓여 나눠주는 곰순네와 공철, 스님들. 원현: 자, 많이들 먹고 기운들을 내시오 호기를 부리고 있는 원현. 덕운이 울상이 돼서 원현을 끌어당긴다. 덕운: 피난민들을 다 받아들이면 어떡하나. 이러다간 개태사 기둥 뿌리가 뽑혀나가게 생겼네 원현: 그 동안 덕운스님께서 부처님 이름을 팔아 한 재산 끌어 모으셨잖습니까. 그 많은 재산을 스님이 입적할 때 다 짊어지고 가실 겁니까. 이럴 때 중생들을 위해 쓰셔야지요 덕운:(울상이 되는) 원현:(돌아다니며) 전하께서는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을 쳤지만 부처님께선 절대로 중생을 버리는 법이 없습니다 더욱 신바람이 나서 국밥을 나르는 곰순네와 공철 등. #어느 암자의 마당 암자를 향해 참선하듯 앉아있는 초선. 문틈으로 밥그릇을 꺼내는 박의처. 박의처: 마님. 스님께서 수저도 대지 않으셨습니다 초선:........ 박의처: 벌써 보름 넘게 물만 드시고 계시니 #동. 안 신돈:..... 눈감고 고요한. #동. 마당 고요한 초선. 주섬주섬 그릇을 챙기는 박의처. 박서방이 온다. 박서방: 마님. 스님을 모시고 다른 곳으로 가셔야하겠습니다 초선:(비로소 고개를 조금 돌리는) 박서방: 산 아래로 홍건적들이 까맣게 몰려오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부근에서 전쟁이 벌어질 모양입니다 초선:..... 다시 암자를 향하는 초선의 시선. #동. 안 신돈:...... 박서방:(밖에서) 편조스님, 그만 밖으로 나오셔야겠습니다 #동. 마당 박서방: 여기 계사다간 큰 변을 당하시게 생겼습니다 초선: 자네들이나 몸을 피하게 박서방: 마님 초선: 삼년 기한을 두고 암자에 드셨는데 밖으로 나오시겠나 박의처: 마님이라도 피하시지요 초선:..... 대답 대신 합장하는 초선. 박의처, 박서방을 본다. 박서방:(한숨 쉬며) 난 나무나 해와야 겠네 가는 박서방. 박의처:...... 걱정돼서 초선을 바라보는 박의처. 마음 편한 초선의 미소. #동. 안 신돈:....... 그 얼굴에, 큰스님:(소리) 환란에 빠진 중생의 얼굴이 보이질 않느냐 신돈:....... 가만히 눈 뜨는 신돈. 불상 앞에 큰 스님이 옆으로 누워 손으로 턱을 괴고 누워 있다. 빙긋 미소하는 신돈. 큰스님: 달려가고 싶지. 당장 달려가서 환란에 빠진 백성들을 구해주고 싶지? 신돈:(미소) 큰스님: 그 놈 참기도 잘한다 놀리듯 웃는 큰스님. 신돈:(마음의 소리) 이제 겨우 마음 한 구석을 비웠을 뿐입니다 큰스님: 얼마나 신돈:(미소) 큰스님:(일어나 앉으며) 요만큼 한손으로 손가락 끝을 짚어보인다. 신돈:(미소) 큰스님: 요만큼 손가락 한 마디를 짚어보인다. 신돈:(마음의 소리) 아무리 놀리셔도 저는 밖으로 나가지 않을 겁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있으니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니 이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인연의 고리를 끊는 것이 득도가 아니옵니까 큰스님: 요만큼이구나 손가락 두 마디를 짚어보이는 큰스님. 다시 길게 누워 턱을 괴더니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바라보는 신돈. 까무러지듯 형체가 사라지는 큰스님. 신돈:..... 빈자리. 큰스님:(소리) 아직 멀었다 편조야. 아직도 네 눈에 내가 보이니 너는 여전히 세상의 헛 것을 보고 있는 것이야. 다시는 나를 보려고 하지 마라. 나 역시 인연의 고리니라 신돈:....... 일어나 절하기 시작한다. #동. 앞 초선:...... 고요한. #동. 안 절하고 또 절하며 치미는 눈물을 참고 있는 신돈. #동북면병마사 관아의 마당(밤) 도열한 부관들과 군사들. 이성계: 동북면의 전군을 동원하여 개경 수복 전투에 참가하라는 왕명이 떨어졌다 비장한 군인들과 군졸들. 이성계: 우리가 지금까지 백전백승을 한 것은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는 전우애 때문이었다. 그 동안 우리가 당해온 설움을 잊지 마라. 이번 전투에 승리하면 고려의 유민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가 있을 것이다 와아 터지는 함성. 이성계:(칼을 비켜 쳐들며) 나를 따르라 더욱 커지는 함성. #고려군의 군막. 앞(밤) 군졸들이 여기저기 불을 지피고 몸을 녹이고 있다. 군졸 두 사람이 주위의 눈치를 살핀다. 군졸1:.....(군졸2에게 눈짓한다) 군졸2: 도망치다 잡히면 군졸1: 도망치다 잡혀 죽나 홍건적 손에 죽나 죽기는 마찬가지야. 홍건적의 숫자가 삼십 만이 넘는다는데 우리가 무슨 수로 이기겠나 군졸1:(마른침) 군졸2: 가세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군졸2. 할 수 없이 뒤따르는 군졸1. #동. 정세운의 군막. 안(밤) 작전회의를 열고 있는 정세운. 심각하다. 최영: 더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홍건적이 눈치를 채고 개경으로 군사들을 집결시키기 전에 선제 공격을 해야 합니다 이방실: 지금은 중과부적입니다. 우리 군사가 겨우 오륙만에 불과하니 군사를 더 모은 연후에 안우: 더 모을 군사가 없습니다. 거기다 홍건적이 두려워 도망치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시간을 끌수록 더 불리해질 겁니다 김득배: 날이 좀 더 따뜻해지기를 기다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최영: 더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 하루를 미루면 미룬만큼 백성들만 홍건적들에게 개죽음을 당합니다 안우: 공격을 합시다 총병관대감 정세운: 우리가 고려의 마지막 희망이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패해서는 안 되는 전투외다. 그러니 신중히 결정하는 게 좋겠소이다 밖에서 소란. 모두 본다. 장수 하나가 들어온다. 최영: 웬 소란인가 장수: 탈영병을 잡았습니다 안우: 이런 죽일 놈들. 당장 참수하여 그놈들의 목을 높은 곳에 매달아라! 정세운이 벌떡 일어나 나간다. #동. 군막 앞(밤) 나오는 정세운. 군졸1, 2가 엎드려 있다. 정세운을 따라나오는 최영 등. 군졸2: 살려주십시오 장군 안우: 닥치지 못하겠느냐 이놈 칼을 빼드는 안우. 손을 들어 제지하는 정세운. 납작 엎드려 떨고 있는 군졸 1, 2. 정세운:(다가가서) 두려우냐 보는 군졸 1, 2. 정세운: 죽는 것이 두렵냐고 물었다 군졸1: 아, 아니옵나이다 정세운: 나 역시 두려우니라 몰라서 서로 마주보는 군졸 1, 2. 정세운: 이 자들을 풀어주어라 장수: 예? 정세운:(주위에 모여 있는 군졸들에게) 죽는 것이 두려운 자는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 나라를 위해 죽을 각오가 돼 있는 사람만 남아라 숙연해지는 최영 등과 군졸들. 정세운: 나는 비겁하게 살아남아 홍건적의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죽어서 자랑스런 고려인이 될 것이다 와아 함성을 지르는 군졸들. 그런 군졸을 바라보는 정세운의 눈에 굵은 눈물이 흐른다. #복주. 행재소의 명덕태후의 방 안. 명덕태후: 그게 무슨 말이냐 김원명: 곡성부원군 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말씀입니다 명덕태후:..... 김원명: 태후마마 (바싹 앉으며) 태후마마의 조카를 문하시중으로 세우시지요 명덕태후: 홍언박이 말이냐 김원명: 덕망이 깊고 신중한 인물이니 문하시중이 되고도 남을 인잽니다 명덕태후: 주상께서 말씀을 들으시겠느냐 김원명: 신에게 맡겨주십시오 태후마마 싱긋 웃는 김원명. #동. 앞 나오는 김원명. 김용: 허락을 받으셨소이까 김원명: 여부가 있겠소이까 김용: 홍언박이를 믿을 수가 있겠소이까. 꼬장꼬장한 성격이라 김원명: 홍언박은 태후마마의 조카가 되니 전하와는 외사촌 간입니다 김용: 그러니 하는 말입니다. 우리 말을 들을 리가 없지요 김원명: 곡성부원군이 우유부단해서 사사건건 우리 일에 방해가 되고 있어요. 우선 곡성부원군을 끌어내리고 나서 홍언박이 말을 듣지 않으면 또 그 때 가서 적당히 조치를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김용: 하긴 김원명: 안성군대감. 개경을 수복하기 전에 전하의 손발을 다 짤라놔야 합니다. 염제신 다음엔 이인복을, 이인복 다음엔 정세운을......그러고 나면 천하가 우리 손에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김용: 정세운은 나한테 맡기시게. 내 손으로 처릴 할 테니까 김원명: 그러시지요 싱긋 웃는 김원명. #동. 행재소의 사랑방. 안 이색이 올린 상소문을 탁상에 올리는 안도치. 탁상에 수북히 쌓인 상소문들. 공민왕: 이게 다 무엇이냐 이색: 황공하오나 문하시중 대감을 탄핵하는 상소문들이옵나이다 공민왕: 문하시중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색:..... 공민왕: 말을 해보아라 이색: 문하시중이 불효를 저질렀다는..... 공민왕: 불효라니 안도치:(나서며) 임진강을 건너기 전에 문하시중께서 달려와 노모를 모시러 갔다가 전하의 안위가 염려되어 먼저 달려왔다고 고하온 것을 잊으셨사옵니까 전하 공민왕:(생각하더니) 그래....그랬었지 안도치: 그 바람에 문하시중 대감의 노모가 개경에 남아 생사가 묘연하다고 하옵나이다 공민왕: 내 걱정이 돼서 노모를 모시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냐 이색: 그러하옵나이다 전하 공민왕: 한심한 사람들 같으니. 그걸 트집 삼아 문하시중을 탄핵하고 있다는 말이냐 안도치:(안쓰러운) 공민왕:(상소문을 밀어버리며) 도로 가져가거라. 문하시중의 불효를 탓할 정신들이 있거든 나라를 지키지 못한 죄나 부끄러워하라고 이르거라 #복주의 행재소. 회의실 염제신: 불효라니. 내가 전하의 안위가 염려되어 노모를 모시지 못했거늘 이인복:(신음) 염제신: 나를 충신이라고 상을 주질 못할망정 불효라니 펄펄 뛰는 염제신. #복주의 행재소의 사랑방 안 노국공주:(바라보는) 공민왕:....... 고개 푹 숙이고 있는. 노국공주: 어째서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까 전하 공민왕:(숙인채) 오백년 도읍이 홍건적에게 짓밟히고 백성들이 도처에서 살육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 터에 조정대신이란 자들이 서로 헐뜯고 저들의 부귀영화만을 꾀하고 있으니.... 노국공주:....... 공민왕:(노국공주를 보더니) 편조가 보고 싶습니다 노국공주:...... 공민왕: 내가 편조를 버리지 않았다면 나라 꼴이 이 꼴이 됐겠습니까 눈물을 흘리는 공민왕. 마주보는 노국공주의 눈에도 눈물이 -. #어느 암자의 안 어둠 속에 쏟아져 들어오는 빛살들. 신돈:...... 바위처럼 앉은 신돈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신돈 40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