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 6회 <신돈> -6회- #1. 연경의 거리 성벽에 기대듯 주저앉아 입을 우물거리며 되새김질을 하고 있는 낙타. 신돈:....... 뭐가 좋은지 환하게 웃는다. 문득 고개를 돌리는 낙타. 마치 시선이 마주치듯 신돈을 바라보는 낙타. 신돈:....... 저도 모르게 낙타에게 다가가는 신돈. 조심스럽게 낙타의 목을 어루만져 보는 신돈. 기분이 좋다. 스르륵 눈을 감으며 낙타의 목덜미에 볼을 대고 부벼대는 신돈.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키는 낙타. 놀래서 물러나다 주저앉는 신돈. 아라비아 상인의 복장을 한 사내가 낙타를 끌고 간다. 낙타의 거대한 몸집에 놀란 눈을 껌뻑거리는 신돈. #2. 연경의 다른 거리 여러 나라에서 온 여러 종족들이 신기한 물건들을 늘어놓고 팔고 있다. 물건값을 흥정하는 요란한 중국인들의 모습. 신돈, 두리번거리며 온다. 모든 풍물이 신기하기만 하다. 문득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신돈:....... 호기심에 다가간다. 빼꼼한 사람들의 어깨 너머로 웃통을 벗어던진 한 사내가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휘두르고 있다. 옆에는 서역의 한 여인이 얌전히 앉아있다. 서역의 사내가 뭐라고 소리치며 사람들에게 칼을 들이대고 있다. 그 때마다 비명을 지르거나 또는 얼굴을 찡그리며 피하는 사람들. 더욱 핏발이 서서 서역어로 소리치는 사내. 앉아있는 여인의 뒤로 가서 칼을 여인의 목에 대기도 하고 여인의 팔을 잡아 내리치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신돈 옆에서 그 모양을 바라보고 있던 안도치가 혀를 끌끌 찬다. 안도치:(혀를 차며) 저, 저런 신돈:(눈이 번쩍해서) 고려인이십니까 안도치:(또 한번 혀를 끌끌 찬다) 순간 서역의 사내가 안도치에게 칼을 들이밀며 뭐라고 소리친다.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안도치. 또 다른 사람에게 칼을 들이대는 서역의 사내. 신돈: 도대체 뭐라고 하는 겁니까 안도치: 고깃간에서 고기를 팔 듯 저 여인을 팔겠다는 거요. 통째로 살 돈이 없으면 부위별로 짤라서 팔겠다는 거요 신돈: 부위별로 팔겠다니오 안도치: 팔 한 쪽만 사겠다고 하면 한 쪽팔만 짤라주고, 다리가 필요한 사람에겐 다리를......(찡그리며 혀를 찬다) 신돈:(웃으며) 재미난 사람이군요 안도치:(정색하고) 재미난 사람이라니. 지 에편네의 팔 다리를 짤라서 팔아먹겠다는 사람이 제 정신이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돌아서가는 안도치. 신돈:...... 서역의 사내를 바라본다. 여인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악을 쓰고 있다. 마치 당장이라도 여인의 목을 칼로 벨 기세다. #3. 동. 다른 거리 안도치, 온다. 신돈: 사람을 끌어모으는 방법도 가지가집니다. 설마하니 정말 팔다리를 짤라 팔지는 않겠지요 안도치: 그러고도 남을 거요 신돈:(멈춘다)....... 안도치:(돌아보더니) 연경엔 그보다 더 미친 놈들이 많소이다. 세상천지의 별의별 인종들이 다 모여드는 곳이니 우리 생각으론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지요 신돈:(웃으며) 나보고 그 말씀을 믿으라는 겁니까 안도치:(놀리듯) 아마 지금쯤 팔 다리는 고사하고 지 에편네 모가지를 짤라서 손에 들고 마지막 흥정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르지 신돈:........ 숨이 멎는다. 뒤돌아서 왔던 길로 달려가는 신돈. #4. 연경의 다른 거리 달려오는 신돈. 멈춰서 둘러본다. 숨이 차다. 구경꾼도 칼을 휘두르던 사내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신돈:..... 안도의 숨을 내쉬며 허리를 꺾고 두 손으로 무릎을 잡고 가뿐 숨을 진정시킨다. #5. 동. 다른 부근 안도치:....... 힐끔 옆에 앉은 신돈을 바라본다. 좀 무안해서 고개 돌리는 신돈. 안도치: 보기보단 순진한 양반이군 신돈: 점잖아 보이는 분이 거짓말을 하시니 속아 넘어갈 수밖에요 안도치:(웃으며) 보아하니 연경에 돈벌이를 하러 오신 고려분 같으신데 그냥 돌아가시는 게 좋을 거요. 여긴 사람 살 곳이 못 되오 안도치, 일어나 간다. 바라보고 있던 신돈이 벌떡 일어나 다급하게 안도치를 쫓아가서 잡는다. 신돈: 그나저나 말씀 좀 물읍시다. 고려촌이 어디에 있습니까 안도치: 다리 건너외다 다리를 가리킨다. 신돈: 거기가면 강릉대군이라는 고려 왕족한테 술과 고기를 배불리 얻어먹을 수 있다는 게 사실입니까 안도치:(찡그린다) 신돈: 사흘을 굶었더니 눈앞에 헛 것이 보입니다. 어딜 가야 강릉대군인가 뭔가 하는 밸 빠진 위인을 만날 수 있는지 좀 알려 주십시오 안도치; 뭐, 배, 밸이 어째 두 눈을 부릅 뜨는 안도치. 신돈: 원에 볼모로 끌려온 주제에 주색질이나 일삼는 게 밸이 빠지지 않고서야 할 짓이 아니지요. 명색이 고려의 왕족이거늘 안도치: 네 이놈. 그 더러운 주둥이를 다물지 못할까 신돈을 향해 악쓰듯 소리치는 안도치의 두 눈에 피눈물이 솟구친다. #6. 고려촌의 술집. 안 왁자지껄 술을 마시고 있는 공민왕과 김용과 조일신. 그리고 주위를 둘러싼 아부꾼들. 신돈이 굽실거리듯 서있다. 공민왕: 공술을 얻어먹으려면 무언가 재주가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신돈:(얼른) 소인이 이래뵈도 힘깨나 씁지요. 소인을 곁에 두고 부리시면 공민왕: 힘쓰는 장사패는 조일신과 김용으로도 충분하지. 안 그런가 이 사람들 김용: 여부가 있습니까. 대군을 위해서라면 열 길 불 속이라도 뛰어들 겁니다 조일신: 제 목숨은 대군의 수중에 들어있는 지 이미 오래지요 와아 웃음이 터진다. 공민왕: 힘깨나 쓰는 걸로는 안 되겠다. 달리 무슨 재주가 있느냐 신돈:(당황해서) 소인이 관상을 좀 볼 줄 압니다 공민왕: 그래? 어디 그럼 내 관상부터 보거라 짐짓 얼굴을 내미는 공민왕. 신돈:(더 당황) 공민왕: 어째서 꿀 먹은 벙어리냐 (주위를 둘러보며) 이 자가 아무래도 허풍쟁인 모양일세 다시 와아 웃음이 터진다. 신돈: 소인이 장담하건데 대군께서는 황제가 되실 관상이십니다 공민왕: 황제? 임금도 아니고 황제 (신돈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웃어대며) 대원제국의 속방인 고려의 왕족이 황제가 된다? 네 놈의 아부가 지나쳤다 와아 터지는 웃음. 김용: 저자가 어지간히 배가 고팠던 모양입니다. 요기나 채워서 돌려 보내시지요 물러가라고 손짓하는 김용. 신돈, 말석으로 간다. 술과 고기를 갖다주는 잡부. 정신없이 먹기 시작하는 신돈. 공민왕: 사람 사는 게 일장춘몽이라고 하질 않는가.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는 자나, 배를 곯으며 사는 자나 죽으면 다 썩어문드러질 몸뚱아리가 아닌가 말야. 서슬퍼런 권력을 휘두르던 제왕이나 천군만마를 호령하던 장군이나, 저자거리의 이름 없는 백성이나 천하기 그지없는 종놈이나, 황천 가는 길은 참으로 공평한 게 아닌가 감탄하듯 탄성을 지르며 박수까지 치는 아부꾼들. 공민왕: 자, 그러니 마시자구. 뼈속까지 취해서 정신이 몽롱해지면 그것이 무릉도원이거늘 술잔을 높이 쳐드는 공민왕. 왁자지껄 마시는 아부꾼들. 구석에 앉아 아랑곳하지 않고 정신없이 먹고 있는 신돈. 김용: 대군. 청이 하나 있습니다. 송도에서 전갈이 왔는데 아들 놈이 장가를 들게 됐다는 겁니다 공민왕: 그래요. 그럼 다녀오셔야지 김용: 대군을 혼자 연경에 두고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공민왕: 내 걱정은 마세요. 나는 꼼짝않고 여기 앉아 있을 겁니다. 나는 술과 계집만 있으면 여한이 없는 사람이에요 옆에 앉은 계집을 얼싸안으며 볼을 부비는 공민왕. 김용: 그럼 저는 맘 편히 다녀오겠습니다 (공민왕이 얼싸안고 있는 계집에게) 네 이년, 나 없는 동안 우리 대군마님을 잘 모셔야 한다. 알겠느냐 낄낄 웃으며 계집의 엉덩이를 두드려주는 김용. 계집이 찡그리며 몸을 비튼다. 김용: 허허 그년, 토라지기는 정세운:(불쾌해서) 취하셨소이까 공민왕:(손 내저으며) 상관 없소이다. 술과 계집은 원래 나눌 수록 맛이 나는 법이외다 와아 웃음이 터진다. 찡그리는 정세운. 공민왕: 그나저나 조공도 한번 다녀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노모께서 병환이 깊으시다고 조일신:(한숨 쉬듯) 허긴 임종도 못하게 생겼습니다 공민왕: 다녀들 오세요. 여기 걱정은 마시구요 조일신:(환해지며) 그럼 차제에 공민왕:(정세운에게) 정공께서도 같이 가시지요. 셋이서 함께 가면 적적하지도 않고 좀 좋습니까 조일신: 그럽시다 정세운: 갈 때는 셋이 가나 돌아올 때는 나 혼자일 터이니 돌아오는 길이 심심할 거 같애서 사양하겠소이다 김용:(버럭)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시나. 내가 우리 대군을 버릴 사람 같소이까 정세운:(지지 않고) 내가 자네들 속마음을 모를 것 같나 공민왕:(벌떡 일어나며) 그럼 우리 넷이 다 같이 송도로 갑시다. 설마하니 새로 즉위하신 국왕전하께서 내 목이야 치시겠소. 내가 이래뵈도 국왕전하의 숙붑니다 (웃으며) 안 그렇습니까. 어머니. 조카님께 부탁을 좀 드려보세요. 불쌍한 숙부를 송도로 불러달라구요 미친 듯이 웃어대는 공민왕. 신돈:....... 정신없이 먹으며 그런 공민왕을 힐끔거리며 보는 신돈. #7. 동. 앞(밤) 밖으로 빠져나오는 사람들. 거나하게들 취해서 웃고 떠들며 흩어져간다. 김용과 조일신이 나온다. 조일신: 말씀 잘 꺼내셨네. 자칫 잘못하다간 우리까지 연경의 귀신이 될 판이야 김용: 어허, 그것 참 조일신: 한숨은 왜 내쉬나 김용: 그 동안 들인 공이 아까워서 그렇지 조일신: 아까울 것 없네. 백 번 죽었다 깨어나도 강릉대군은 고려의 국왕이 되긴 글렀으이 김용: 허긴 쓸데없는 미련이지 투덜대며 가버리는 김용과 조일신. 안도치:.... 그 모양을 바라보는 안도치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정세운:(나오며) 이 사람 안도치, 왜 그러고 서 있나 안도치:.......(얼른 눈물 훔친다) 정세운: 들어가서 대군을 집으로 모셔가게. 몹시 취하셨네 안도치: 소인은 안에는 얼씬도 못하게 하시는 지라.... 정세운: 말씀만 그리하시지 대군껜 자네 밖에 없네 가만히 웃어보이고 가는 정세운. 또 다시 눈물만 짓는 안도치. #8. 동. 안(밤) 공민왕:..... 식탁에 두 손을 짚어 몸을 의지한 채 그대로 고개 푹 숙이고 있는 공민왕. 텅빈 가게 안. 인기척에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공민왕. 신돈이다. 공민왕: 먹을 만큼 얻어먹었으면 돌아갈 것이지 왜 아직 남아 있느냐 신돈:(황급히 앞으로 나와 반쯤 엎드리며) 소인은 고려에서 건너 온 장사칩니다. 돈이 될만한 물건을 잔뜩 배에 싣고 오다 풍랑을 만나 겨우 목숨만 건졌습지요 공민왕:...... 신돈을 바라보는 눈빛에 취기가 사라졌다. 그 눈빛이 섬칫해서 더 몸을 낮추는 신돈. 신돈: 이 놈이 풍랑에 전 재산을 잃었는지라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공민왕:(바라보더니) 돌아갈 곳이 없다...... 신돈:(더 다급하게) 마침 고려촌에 가면 인자하신 고려의 왕족이 한분 계시는데 신분의 고하를 묻지 않으시고 거두어주신다는 소문을 듣고 공민왕:(막듯이) 그렇게 쑤군대고들 있겠지 신돈:..... 흠칫해서 고개를 조금 들어 공민왕을 바라본다. 공민왕:(미소 지으며)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까닭이 거기에 있느니라. 사방에서 날 비웃는 소리가 들린다. 벽 속에서도 웃음소리가 들리고, 잠을 청하면 꿈속에서 비웃고, 길을 걸어가면 등이 무거워 허리가 휘도록 비웃음 소리가 쌓인다...... 신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공민왕:(훽 노려보듯) 조금 전까지 이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아첨꾼들이 술과 고기와 계집이 떨어졌다고 하니까 마치 썰물이 빠져나가듯이 사라져버렸다. 이것이 세상인심인 것이야 신돈:(마른 침 꿀꺽).......(눈치를 본다) 공민왕: 하지만 난 그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만일 술과 고기와 계집으로 그놈들을 이 자리에 붙잡아 둘 수만 있다면 난 세상의 모든 술과 고기와 계집을 가져와 저들의 입속에 퍼 넣어주고 먹여주고 품에 안겨주고 할 것이야. 그러면 잠잠해지겠지. 마시고 먹고 계집질 할 때는 내 등 뒤에 비수와도 같은 비웃음을 찔러 넣지는 않을 테니까 단숨에 내뱉고 숨죽여 낄낄거리고 웃는 공민왕. 그러더니 불쑥, 공민왕: 너는 내 말을 어찌 생각하느냐 신돈: 소인은 무식한 장사치라 대군마님의 심오한 말뜻을 공민왕:(버럭) 네 이놈 신돈:(숨이 막히는) 공민왕: 네 놈이 장사치라고 했느냐 신돈: 네 소인은 공민왕: 장사치라는 건 하는 소리고 날 죽이러 온 개경의 자객이 아니냐 신돈: 자, 자객이라니오 공민왕: 심오한 말뜻을 모르겠다? 네 놈이 그 말뜻이 무언지나 알고 심오라 했느냐 신돈:(당황) 공민왕: 먹물 깨나 먹은 놈이 아니면 심오니 뭐니 하는 고상한 비유를 들이대지는 않을 것이야. 그냥 말뜻을 모르겠다고 했겠지. 그러니 네 놈이 자객이라는 것이야 공민왕이 어느새 품 속에서 단검을 꺼내 신돈을 향해 내 던진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는 단검. 순간 엎드렸던 신돈이 몸을 솟구쳐 오르며 단검을 피한다. 기둥에 가서 박히는 단검. 신돈:(다급하게 엎드리며) 소인은 편조라는 비구온데 본의 아니게 사람을 죽이고 쫓겨다니는 몸이옵니다 엎드려 진땀을 흘리는 신돈. 공민왕의 대꾸가 없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조금 들어 공민왕을 바라보는 신돈. 공민왕:...... 빙긋이 미소짓고 있는 공민왕. 신돈:.......(숨이 막힌다) 공민왕: 돌아갈 곳이 없다..... 재밌다는 듯 웃어대는 공민왕. #9. 공민왕의 처소. 마당 안에서 안도치 나온다. 마당을 쓸고 있는 신돈. 못마땅해서 노려보는 안도치. 신돈: 내가 안환관의 전생을 한번 맞혀볼까요 안도치: 흥 신돈: 본성이 어질고 착하시니 앞의 전생은 나 같은 스님이 분명하시고, 마음이 곱기가 비단결 같으시니 앞의 앞의 전생은 필경 팔선녀 중의 한분이신데 어찌어찌하여 천상에서 죄를 짓고 안도치: 니 놈이 스님이면 나는 부처다 이놈 #10. 연경의 거리 음식거리를 고르는 안도치. 물건을 사서 신돈의 팔에 안긴다. 한아름 잔뜩 안고 싱글거리며 안도치를 따라가는 신돈. 신돈: 헌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말씀은 어폐가 있습니다. 안환관이 전생에 부처였으면 부처님께서 고자였단 말씀이시오 안도치: 엣끼 이놈. 중놈이 부처님을 두고 농을 하냐 신돈: 내가 언제 중이라고 했습니까. 땡중이라고 했지요 웃어대는 신돈. 안도치: 이 놈. 터진 입으로 말을 잘한다 들고 있던 채소 묶음을 신돈의 입에 처넣는 안도치. #11. 공민왕의 처소. 부엌 채소를 다듬고 있는 신돈. 음식을 만들고 있는 찬모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안도치. 안도치: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꼬. 생선을 다듬을 때는 비늘을 다 벗겨내되 속살을 다치지 않게 하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비키시게 (칼 뺏어들고) 원 소귀에 경읽기지 힐끔, 신돈을 본다. 신돈: 아직도 제가 밉습니까 안도치:..... 신돈: 보면 볼수록 정이 들지요? 안도치:(혀를 차고 생선을 다듬는다) 신돈: 대체 어디가 미워서 그러십니까 안도치:(신돈의 볼을 쥐어잡고 흔들며) 요기가 밉상이다 이놈아 볼 잡힌 채 헤헤 웃는 신돈. 안도치:.....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마는 안도치. 그러더니 얼른 혀를 끌끌 찬다. #12. 동. 방 안(밤) ‘등불.’ 공민왕이 반듯하게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차를 달이고 있는 안도치. 조심스럽게 찻잔을 탁자 위에 놓는다. 물러나려다 멈칫 서는 안도치. 안도치: 주위에 사람을 두실 때는 백번 조심을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공민왕:......(책만 들여다보는) 안도치: 편조라는 자는 아무리 봐도 산사에서 불도를 닦은 스님 같지가 않습니다. 만에 하나 개경에서 보낸 자객이면 공민왕:......(힐끔 안도치를 바라본다) 안도치: 개경에 변이 생기면 왕위를 이을 적통은 대군마님 뿐이십니다. 그러니 만사에 조심하시는 것이 공민왕:....... 말을 막듯이 고개를 돌려 책장을 넘기는 공민왕. 바람이 부는지 등불이 팔랑인다. 안도치:...... 창문이 조금 열려있다. 안도치:..... 가만히 한숨 내쉬고 가서 창문을 닫으려고 한다. 공민왕: 그냥 두어라 안도치:(바라본다) 공민왕:..... 책장을 넘긴다. 문득 눈물이 솟구치는 안도치. 옷소매로 눈물을 닦는다. 공민왕: 오늘은 왜 또 눈물을 흘리느냐 안도치: 오랜만에 대군께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뵈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공민왕:(짖궂게) 집안에 값이 나갈 만한 물건은 모두 팔아서 술을 마셔버렸으니 책이나 읽을 수밖에 안도치: 대군마님 공민왕: 쓰고 또 쓰고 다 써버려서 밑바닥까지 비어버려야 한다. 그것이 재물이든 명예든 욕심이든 정욕이든 생명이든 쓰고 또 쓰고 다 써서 밑바닥까지 탕진해버려야 비로소 새처럼 가벼워질 것이야 안도치: 희망을 버리시면 아니됩니다 대군마님 공민왕:......(보더니) 희망? 안도치: 반드시 송도로 돌아가실 날이 올 겁니다 대군마님 공민왕: 그래. 바로 그거였구나 안도치:...... 공민왕: 아무리 쓰고 또 써서 탕진해버려도 지워지지 않는 미련이 바로 그 희망이란 놈이었구나. 그래 그걸 버려야지. 그것마저 버려야 새처럼 가볍게 허공을 날아오를 수 있는 것을 저도 모르게 치솟는 서글픔 같은. #13. 동. 마당(밤) 창문 아래 벽에 기대앉아 있는 신돈. 안도치:(안에서) 대군마님. 기철의 동생 기원이 연경에 와 있다고 합니다. 들리는 소문엔 새 국왕의 외척들이 만만치가 않은 지라 기철의 위세가 한풀 꺾였다고 합니다 #14. 동. 안(밤) 안도치: 기황후의 위세를 등에 업은 기철이 그냥 꺾일 리가 없지요. 필경 개경에 한바탕 풍운이 일 것이니 공민왕:(버럭) 언제부터 네 놈이 책략가가 됐느냐 안도치:(흠칫해서 바라본다) 공민왕:......(사나운 눈길) 안도치:......(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떠는) 공민왕:.......나는 너의 그 때묻지 않은 마음을 사랑한다 안도치를 바라보는 공민왕의 입가에 서글픈 미소가 감돈다. #15. 동. 마당(밤) 여전히 벽에 기대 쪼그리고 앉아있는 신돈. #16. 동. 안(밤) 침상에 반듯이 누운 공민왕. 등불을 끄는 안도치. #17. 동. 마당(밤) 신돈:........ 문소리에 바라본다. 안도치가 나와서 조심스럽게 문을 닫는다. 정원을 가더니 숨죽여 울기 시작하는 안도치. 바라보는 신돈. 점점 어린애처럼 두 손으로 눈을 부비며 흐느껴 우는 안도치. #18. 개경의 승평문. 앞 황급히 대궐문을 여는 응양군들. 기철의 채여가 달리듯 다가온다. 그 앞을 가로막는 중랑장. 중랑장: 멈추시오 급히 멎는 채여. 청지기: 어느 행차라고 앞을 가로 막느냐. 어서 대궐문을 열지 못할까 중랑장: 누구든 가마와 말을 타고 대궐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소. 왕명이요 중랑장의 손짓을 따라 응양군이 겹겹이 대궐문을 가로막는다. 기철:...... 부르르. #19. 동. 안 대궐문이 열린다. 기철이 씨근거리며 들어온다. 성큼성큼 선경전을 향해 걸어가는 기철. #20. 선경전. 안 용상에 어린 충정왕과 나란히 앉아 다과상을 받고 있는 희비 윤씨. 충정왕에게 다과를 먹여주며 귓속말을 주고 받으며 가만히 웃고 있다. 기철:...... 부르르 떨며 주위를 살핀다. 앉는 의자가 보이질 않는다. 두 눈을 부릅뜨고 최만생을 노려본다. 최만생:(급해서) 대비마마. 덕성부원군께서 드셨습니다 희비윤씨:(비로소 보듯) 어서오세요. 전하께 다과를 올리고 있는 중입니다. 좀 앉으시지요 기철: 으흠 희비윤씨:(충정왕과 히히덕거리더니) 왜 그러고 서 계십니까 기철: 앉을 자리가 없는 지라 희비윤씨: 저런 (최만생에게) 덕성부원군의 의자는 누가 치웠느냐 최만생:(당황해서 우물쭈물) 희비윤씨: 덕성부원군께서 정사를 보시기 편하게 항상 장의자를 준비해두지 않았느냐 윤시우:(옆문으로 들어오며) 덕성부원군의 의자는 소인이 치웠습니다 희비윤씨: 아니 왜요 (놀란 척 한다) 윤시우:(기철에게) 오늘부터 대비마마께서 정사를 보시게 되었는지라 부득이 의자를 치웠습니다 기철: 그래요? 윤시우: 앞으로는 정방에서 하시는 일도 대비마마의 재가를 얻어 시행하셔야 할 것입니다 기철: 정방은 대원제국의 칙명을 받아 인사 문제를 처리하는 곳이오. 고려의 국왕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지 윤시우: 국왕전하께서 사소한 인사까지 연경의 간섭을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기철:(터지듯)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희비윤씨:(발끈해서) 말씀이 참으로 고약하십니다. 누굴 빗대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하시는 겁니까 기철: 신은 이만 물러갑니다. 앉을 자리가 없어 다리가 무거운 지라 인사도 없이 훽 돌아서 나가는 기철. 그 뒤에다 대고, 희비윤씨: 덕성부원군은 대체 누구의 신합니까 #21. 동. 앞 문을 박차듯 나오는 기철. 악쓰는 희비윤씨의 고함 소리. 희비윤씨:(고함 소리) 명심하세요. 내 아드님이 고려의 국왕입니다. 그 명을 거스리는 자는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기철:(뒤돌아보더니) 흥. 니 년이 누구 덕에 그 자리에 앉아 있는데. 어디 두고 보자. 누가 죽고 사나 계단을 내려가는데 최만생이 급히 달려나온다. 최만생: 대감마님. 대감마님 기철:(최만생의 멱살을 틀어잡더니) 이놈아. 윤가 년놈들이 무슨 음모를 꾸미는지 미리 전갈을 달라고 하지 않았느냐. 대궐문을 닫아 걸고 가마에서 내려 걸어오게 하더니, 용상 밑의 내 의자를 치워? 최만생을 집어 던진다. 꼬꾸라져 구르는 최만생. 최만생: 아구구구 기철:(선경전에 대고) 내가 당한 수모는 연경에 계시는 내 누이동생이 당하는 수모와 같다는 걸 모르느냐. 대 원제국의 황후마마를 욕보이고도 니 년의 아들이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내가 마른 하늘에 벼락을 맞겠다 갑자기 천둥소리. 흠칫 놀라 하늘을 바라보는 기철. #22. 명덕태후의 처소. 방 안(밤) 빗소리. 천둥번개가 장짓문을 울린다. 명덕태후:......(창을 바라보더니) 장짓문을 활짝 열거라 김상궁: 비바람이 심하옵니다 명덕태후:(버럭) 열라 하지 않느냐 김상궁:...... 가서 장짓문을 연다. 바람이 몰아치며 등잔불이 꺼진다. #23. 동. 마당(밤) 명덕태후, 마루로 나온다. 마당에 쏟아붓는 비. 꼬욱 다문 입술이 부들부들 떨린다. 김상궁: 안으로 드시지요. 바람이 차갑습니다 명덕태후: 시원하게 쏟아 붓는구나 김상궁: 마마 명덕태후: 다 쓸어가버려라. 이 놈의 세상을 다 쓸어가 버려. 만월대의 주춧돌 하나 남기지 말고 다 쓸어가 버려 뇌성과 번개. 쏟아지는 빗줄기. 성큼 맨발로 마당으로 내려서는 명덕태후. 김상궁: 마마 잡는다. 뿌리치고 마당 복판으로 나가는 명덕태후. 명덕태후: 왕기야. 에미가 어찌 눈을 감느냐. 평생 대궐의 용마루만 바라보며 살았다. 에미는 원통해서 못 죽는다. 하룬들 어떠냐. 대궐 문 턱을 넘다 죽는 한이 있어도 에미는 대궐로 들어가고야 말 거다 김상궁: 마마 천둥과 번개. 명덕태후: 그래 퍼부어라. 저 놈의 대궐을 삼켜버려라. 그래야 내 아드님이 돌아오신다 통곡처럼 웃어대는 명덕태후. #24. 대궐의 전경(밤) 비 내리는 -. #25. 희비 윤씨의 처소. 뜰(밤) 비를 피하려고 처마 밑에 몸을 숨기며 오들오들 떨고 있는 최만생. 방 안에서 나는 소리를 엿들으려고 바싹 귀를 갖다댄다. #26. 동. 안(밤) 희비윤씨: 이러고도 무사하겠습니까. 기철이 연경에 사람을 보내 기황후에게 고하기라도 하면 윤시우: 염려하지 마세요 대비마마. 그쪽엔 이미 손을 써 뒀습니다 희비윤씨: 그래요? 윤시우:.... 밖을 살피듯 보더니 희비 윤씨의 귀에 귓속말을 건넨다. 끄덕이는 희비윤씨. 점점 화색이 돈다. #27. 동. 뜰(밤) 입이 타서 더 바싹 귀를 갖다대는 최만생. 안에서 희비 윤씨의 간드러진 웃음소리. 더욱 입이 타는 최만생. #28. 동. 안(밤) 희비윤씨: 잘하셨습니다 윤시우: 그 오라비에 그 누이동생입니다. 재물을 탐하기는 기황후가 훨씬 윗길이지요 마주 웃어대는 윤시우. 희비윤씨: 오라버니 슬며시 몸을 기울이는 희비윤씨. 윤시우: 예, 대비마마 희비윤씨: 덕녕공주는 어찌할 건지요. 명색이 선왕의 에미니 대궐 밖으로 쫓아낼 수도 없고 윤시우: 돌아가야지요. 덕녕공주는 원래 몽골의 여자가 아닙니까. 그러니 당연히 원나라로 돌아가야지요 희비윤씨: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환하게 웃는 희비윤씨. #29. 법왕사의 뜰(밤)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덕녕공주가 탑돌이를 하고 있다. 그 모양을 지켜보고 있는 보우. 탑을 돌아 보우와 마주치는 덕녕공주. 보우: 나무관세음보살 덕녕공주도 마주 합장을 한다. #30. 동. 법당. 안(밤) 마주앉은 보우와 덕녕공주 보우: 어째서 그렇게 서두르시는지요 덕녕공주:...... 보우: 비를 맞으시며 선왕의 명복을 비는 대비마마의 모습이 소승의 눈에는 측은해 보였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덕녕공주: 어미마저 이 곳을 떠나면 가엾은 어린 원혼이 구천을 떠돌겠기에 보우: 떠나시다니오 덕녕공주: 고려엔 한점 혈육도 남아있지 않으니 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가 아니겠습니까 쓸쓸한 덕녕의 미소. #31. 기황후의 처소. 방 안 손톱을 다듬고 안마를 해주는 궁녀들에게 몸을 맡기고 있는 기황후. 그 앞에 엎드려 훌쩍훌쩍 울고 있는 기원. 눈살을 찌푸리는 박불화. 기원: 황후마마. 이러다 우리 기씨 집안은 망하게 생겼습니다. 윤씨 일족의 행패가 어찌나 심한지 기황후:........ 못들은 척 양귀비 액을 찍어 입으로 가져간다. 눈치보듯 보는 기원. 한껏 들이마시는 기황후. 나른하다. 기원: 마마 기황후:........ 길게 누워버린다. 기원: 마마께서 고려 왕을 연경으로 불러 다짐을 받으셔야 합니다. 마마가 아니었으면 그 어린 것이 어찌 고려의 왕이 되었겠습니까 기황후:........ 약에 취해 몽롱해지는 기황후. 기원: 마마 박불화: 그만 물러 가시지요 기원:(기황후를 본다) 환관들에게 손짓하는 박불화. 환관들이 끌어내듯 기원의 양팔을 잡아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가만히 혀를 차는 박불화. 기황후:(눈 감은 채) 얼마나 됐지 박불화:.....(몰라서 바짝) 기황후: 고려에 새 왕을 세운 지가 일 년도 못 됐지 박불화: 예, 마마 기황후: 으흠 박불화: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질 않사옵니까. 만에 하나 결단을 미루시다 쿤란 태자가 보탑실리 공주를 태자비로 맞게 되면 위안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것이옵니다. 그리되면 기유시리다라 왕자께서는 영영..... 기황후:.....(긴 한숨) 박불화: 서두르셔야 합니다 기황후: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묘안이 떠오르질 않으니 박불화: 어려울 것이 무엇입니까 (싱긋 웃으며) 역모로 모시면 기황후: 역모? 박불화: 애비가 자식을 죽이는 이유가 달리 무엇이 있겠습니까 기황후: 하기는 싱긋 웃으며 더욱 길게 누워버리는 기황후. #32. 어느 초원 말을 달리는 노국공주와 쿤란태자. #33. 어느 숲 길 숲 길을 거닐 듯 천천히 말을 몰아오는 노국공주와 쿤란태자. 쿤란태자: 아무래도 우리들의 혼인을 서둘러야 하겠소. 황제폐하의 정신이 날로 황폐해지고 있으니 노국공주:....... 쿤란태자: 폐하께서 정사를 보시는 날은 한 달에 하루도 안 되고, 만사를 자정원에 맡기시니 노국공주: 기황후가 폐하께 이상한 약을 드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요 쿤란태자: 나도 알고 있습니다 노국공주: 무엇보다 기황후의 야심이 문젭니다. 기황후가 노리는 것은 태자마맙니다 쿤란태자: 그러니 우리의 혼인을 서두르자는 거요 노국공주에게 손을 내미는 쿤란태자. 그 손을 잡고 말을 건너타는 노국공주. 노국공주를 앞에 태우고 숲길을 달려가는 쿤란태자. #34. 노국공주의 처소. 뜰 달려들어오는 노국공주. 노국공주: 아버지. 태자마마께서 제게 정식으로 청혼을 하셨어요 홍화: 공주마마.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노국공주: 무슨 일이 있느냐 홍화: 그런게 아니옵고 난처한 홍화. #35. 동. 방 안 조심스럽게 들어오는 노국공주. 지필묵을 앞에 놓고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위안. 노국공주: 상소를 올리시려구요 위안:(신음) 노국공주: 지금은 때가 좋지 않습니다 아버지. 상소를 올리셔도 자정원에서 가로 챌 것이 분명합니다 위안: 직접 폐하를 만나뵐 것이야 벌떡 일어나 상소를 들고 나가는 위안. 걱정스러운 노국공주. #36. 원순제의 방 안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누워있는 원순제. 위안:..... 신음한다. 박불화: 상소를 두고 가시지요. 폐하께선.... 박불화의 말을 무시하고 앞으로 나서는 위안. 황제에게 올리는 예를 거칠고 빠르게 올리는 위안. 위안: 폐하. 근래 황하가 수차례 범람하여 화북과 산동지방이 황폐해지고 수년 간 계속된 가뭄과 홍수로 인해 굶주린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있사옵니다. 이대로는 선조들이 세우신 원제국을 보존할 수가 없사옵나이다 기황후:(들어서며) 그렇게 되는 것이 경의 소원이 아닙니까 위안: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기황후: 농민들이 일으키는 반란이야 무력으로 제압하면 그만이지만 원제국을 둘로 나누어 몽골로 돌아가자는 자들이 더 골칫거리지요 위안: 나라를 둘로 가르자는 것이 아니라 칭기즈칸과 쿠빌라이황제께서 당부하신 몽골의 정신을 잊지 말자는 겁니다 기황후: 그래서 이 광대한 중원을 버리고 몽골의 사막으로 돌아가자는 겁니까 위안:(순제에게 무릎을 꿇으며) 폐하. 지금의 우리를 보십시오. 몽골의 말과 풍습은 다 사라지고 한족의 말과 풍습을 따르고 있습니다. 쿠빌라이 황제께서 궁전 마당에 게르를 세우고 침식을 하신 것은 그것을 경계하신 것이옵니다 피를 토하듯 강하게 순제를 보는 위안. 약에 취해서 싱글싱글 웃고 있는 순제. #37. 동. 복도 부들부들 떨며 나오는 위안. 장탄식을 한다. #38. 동. 안 몽롱한 순제. 기황후가 손짓하자 라마승이 나온다. 기황후: 오늘은 방중단을 더 올려라 순제를 보더니 코웃음 치며 밖으로 나가는 기황후. 라마승이 밖에다 손짓하자 다른 라마승이 약을 받쳐들고 들어온다. 박불화: 이 약을 먹으면 정말 하루 밤에도 몇 번씩 여잘 품에 안을 수 있단 말인가 라마승이 싱긋 웃으며 약 쟁반을 내민다. 박불화: 이 사람이 나를 놀리는가. 이 약은 나한테는 무용지물이야 낄낄 웃는 박불화. #39. 노국공주의 처소. 방 안 의자를 차듯이 벌떡 일어나는 쿤란태자. 쿤란태자. 내가 폐하를 만나 뵙고 직접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위안: 안되십니다 태자마마 쿤란태자: 아무리 폐하의 정신이 혼미하셔도 아들은 알아볼 것이 아닙니까 위안: 태자께서 말씀을 올리시다 잘못되면 역모로 몰리십니다 쿤란태자: 역모라니오. 내가 부왕을 해칠 이유가 뭡니까 위안: 진정하시고 이 일은 신에게 맡겨 주십시오 #40. 기황후의 처소. 안 앞에 잔뜩 쌓인 패물들을 바라보는 기황후. 박불화: 고려 왕이 따로 보낸 패물들입니다 기황후:(싱긋) 박불화:(눈치 보며) 황공하오나 마마의 오라비가 되는 덕성부원군한테서는 소식이 뜸하옵니다 기황후: 내버려둬라. 급하면 금은보화를 싸짊어지고 달려오겠지 (지긋이) 박원사 박불화: 예, 아마 기황후: 이 패물들을 대궐 안팎에 골고루 뿌려두어라. 머지 않아 내가 쿤란태자의 숨통을 조일 것이니 깔깔거리고 웃는 기황후. #41. 연경의 거리 공민왕과 신돈이 말을 타고 온다. 신돈:(불안해서) 대체 어디를 가시는지 공민왕: 사람을 죽이고 여기까지 도망쳐 왔다면 힘께나 쓸 것이 아니냐 신돈: 그건 대군마님의 식객이 되고 싶어 얼결에 공민왕:(말을 멈춘다) 내가 던진 단검을 피하는 솜씨가 보통은 아니었다 신돈:....... 공민왕: 네가 사람을 죽인 죄를 지었다고 해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대신 오늘은 그 속죄를 좀 해야될 것이야 말고삐를 나꿔채더니 달려간다. 신돈:..... 망설이다가 말을 몰아 공민왕을 쫓아간다. 원현:...... 사람들 틈에서 원현이 달려나와 달려가는 신돈을 바라본다. 원현: 편조스님. 편조스님 쫓아가는 원현. 멀어져가는 신돈. #42. 부근 길 달려와서 달려가는 공민왕. 그 뒤를 쫓는 신돈. #43. 연경의 거리 원현:..... 멍하니 서있다. 승복의 지효가 온다. 지효: 뭘 보고 계십니까 원현:(정신이 나서) 편조스님이 살아 계시네 지효: 그럴리가요 원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네. 틀림없는 편조스님이셨네 신돈이 달려간 곳을 애타게 바라보는 원현. #44. 연경 외곽의 어느 길 말에서 내려 말고삐를 나무에 묶는 공민왕. 공민왕: 따라오게 다람쥐처럼 숲 속으로 들어가는 공민왕. 신돈도 황급히 말고삐를 나무에 메어놓고 따라간다. #45. 어느 집의 앞 장정들이 드나들고 있다.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공민왕. 신돈: 저기가 뭘 하는 곳입니까 공민왕:(돌아서 숨듯이 누우며) 고려 여자들을 사고 파는 곳이야 신돈:...... 공민왕: 연경의 돈 많은 사내들은 고려 여자를 첩으로 들이는 것이 소원이지 왁자지껄한 소리. 신돈:..... 본다. 고려 여자들을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사내들. 신음하는 신돈. 공민왕:(누운 채) 원에 공녀로 끌려온 계집이 황제의 정실부인이 됐으니 고려 계집이라면 환장을 할 만도 하지 얼른 몸을 뒤집어 엎드리더니 안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는 여인들을 바라보는 공민왕. 공민왕: 자네도 하나 골라보게 신돈:........ 공민왕: 저 계집이 좋겠다. 앙탈을 부리는 모습이 제법 쓸만하겠군 앙탈을 부리며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고려 여자를 바라보며 쿡쿡 웃어대는 공민왕. 넋이 나간 듯 바라보는 신돈. 공민왕: 뭘 하고 있나. 자네도 골라보래두 신돈: 경비가 삼엄한데 구해낼 길이 있겠습니까 공민왕: 염려마라. 밤중에 담을 넘어 보쌈을 해서 내오면 되니까 신돈: 보쌈이라니오 공민왕: 주인없는 계집을 보쌈하는 건 죄가 아니지 신돈:(영문을 몰라) 공민왕: 잘 골라봐. 계집을 훔쳐다 즐기는 재미가 꿀맛이니 신돈: 그럼 인신매매를 당하는 고려여인을 도와주자는 것이 아니라 공민왕: 돈 주고 사긴 아까우니 훔치자는 거야. 살인까지 저지른 땡중 주제에 도덕군자연하기는 벌렁 누워 두 눈을 감아버리는 공민왕. 그런 공민왕을 바라보다 반점 쪽을 보는 신돈. 또 다른 고려 여인들이 안으로 끌려 들어간다. #46. 연경의 거리 노점에 앉아 국수를 먹고 있는 지효. 원현: 틀림없는 편조스님이었네. 내가 친형제같은 편조스님을 잘못 보았겠나 지효: 풍랑에 살아 남은 사람은 우리 둘뿐입니다. 우리를 구해준 중국 상선이 며칠이나 바다를 뒤지지 않았습니까 원현:(신음) 지효: 잊어버리세요. 편조스님을 사모하는 원현스님의 마음이 워낙 간절해서 헛것을 보신 겁니다 원현:....... 할 수 없이 따라서 국수 먹는 원현. #47. 어느 집. 앞 팔짱을 끼고 누워 아예 코 고는 시늉까지 하며 잠든 공민왕. 웅크리고 앉아 그런 공민왕을 바라보는 신돈. #48. 개태사 부근의 마을 집. 마당 굽실거리듯 서있는 덕운. 아낙이 돌아앉아 함지박에 젖을 짜고 있다. 덕운:....... 고개를 뽑아 아낙의 젖을 보려고 기웃거리는 덕운. 그 머리통을 후려치는 단장. 덕운: 아쿠쿠쿠 큰스님: 이놈. 뭘 훔쳐보는 게야. 젖동냥을 하라니까 이 놈이 눈동냥을 하고 있구나 덕운: 훔쳐보긴요. 아까운 젖을 흘릴까봐 큰스님: 이 놈이 둘러대기는 단장을 다시 쳐드는 큰스님. 도망치는 덕운. 뒤쫓는 큰스님. 그 바람에 업고 있던 갖난아이가 울기 시작한다. 큰스님: 오냐. 오냐. 배고프지. 잠깐만 기다려라 반야야 업고 있는 갖난아이를 달래는 큰스님. #49. 연경의 어느 집. 앞(밤) 잠이 든 공민왕. 엎드려 집 앞을 살펴보고 있는 신돈. 여러 채의 가마가 멎어있고 장정들이 사방을 지키고 서있다. #50. 동. 안(밤) 고려 여인의 인신매매가 이뤄지고 있다. 고려 여자를 하나씩 누대에 올리는 사내들. 흥정하는 사내들. 값이 정해지면 밖으로 끌고 나간다. #51. 동. 앞(밤) 고려 여자를 끌고 나와 가마에 태우는 장정들. 울부짖는 여인도 있고, 순순히 따르는 여인도 있고, 오히려 좋아서 생글거리는 여자도 있다. 신돈:....... 끄응 신음하는 신돈. 공민왕: 양심에 가책이 드느냐. 불쌍한 동족을 보쌈해서 즐기자는 것이 신돈:....... 공민왕:(엎드려 집을 살피며) 너는 세상을 어찌 보느냐 신돈: 대군과 같습니다 공민왕:(본다)..... 신돈: 세상에 대한 미움은 대군 못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공민왕: 그거 반가운 소식이구나. 허나 한 때는 스님이었다는 자의 말 치고는 신돈: 승복을 입기는 했으나 진심으로 염불을 외운 적은 없습니다 공민왕:(호기심이 가득해서 바라본다) 신돈: 대군께서는 귀하게 태어나셨으니 노비의 신분이 얼마나 비참한 지 모르실 겁니다 공민왕: 노비로 태어났다? 신돈: 그것도 절간의 노비로 태어났으니 사람 취급을 받아본 적이 한번도 없었지요 공민왕: 그런데 승복은 어찌하다 얻어 입었느냐 신돈:...... 공민왕:(웃으며) 훔쳐 입었구나 신돈: 늙은 스님의 자비심 덕분이지요 공민왕: 그럼 보답을 해야지 신돈:(훽 노려보듯 보며) 길을 가다 만난 굶주린 개에게 먹이를 던져주면 그것이 자비심입니까 공민왕: 아니라고 할 수도 없지 신돈: 나는 굶주린 개도 잡아먹는 것이 자비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민왕:(섬칫) 신돈:(집 쪽을 흘깃 보며) 조용해졌습니다 장정들이 문을 걸어잠그고 안으로 들어간다. 고요하다. 신돈: 가사지요 대군마님. 소인도 점찍어 놓은 먹잇감이 있습니다 몸을 숙이고 재빠르게 담을 향해 다가가는 신돈. 공민왕:........ 싱긋 웃는다. #52. 동. 마당(밤) 모두 잠들었는지 고요하다. 담 위에 신돈과 공민왕의 얼굴이 나타난다. 눈짓을 주고 받더니 동시에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허공에 날아오른 두 사람의 모습이 정지하며 -. <신돈 6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