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 10회 <신돈> -10회- #강릉대군의 사저. 방 안 공민왕: 소원 성취를 했다? 신돈:...... 공민왕: 내가 외롭고 의지가지가 없을 때는 나를 버리고 떠난 자가 내가 왕위에 한발 가까이 다가갔다고 하니까 허겁지겁 달려와서는 소원성취를 하셨습니다? 신돈:..... 잔잔한 미소를 띤 채 공민왕을 바라보는 신돈. 공민왕:(비아냥거리듯) 그래 어디 니 놈의 변명이나 들어보자 안도치:(얼른 나서며) 대군마님. 편조스님은 그 동안 서역에 가서 불도를 닦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공민왕:(놀리듯) 오오라. 등에 큰 혹이 달린 낙타라는 짐승이 부처님이란 말이렷다 신돈: 대군마님 가만히 무릎을 꿇는 신돈. 공민왕:...... 신돈: 대군께서는 미천하기 그지없는 소인을 친형제처럼 대해주셨습니다 공민왕:(웃으며) 그건 내가 널 우롱한 것이야 신돈: 소인은 대군께서 용상에 우뚝 앉아 계시는 모습을 수없이 그려보았습니다. 노비의 자식을 흉허물없이 대해주시는 이런 분이 고려의 왕이 된다면 백성들을 얼마나 애껴주실까? 안도치:...... 감동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공민왕을 본다. 공민왕: 그런 자가 한마디 말도 없이 나를 떠나? 안도치: 편조스님께선 대군마님께 인사를 올리옵고 공민왕: 내 말은 네 놈이 갑자기 떠난 이유를 묻고 있는 거야 신돈:......(미소) 안도치: 바른대로 말씀을 올리세요 편조스님 신돈:(일어나며) 대군께서는 원나라 공주와 혼인을 하셨습니다. 고려는 원의 속방이나 다름없으니 대군께서 원하시면 고려의 왕위를 얻으실 수가 있을 겁니다. 허나 백성들이 승복을 하겠습니까? 노국공주:...... 방으로 들어서려던 노국공주가 엿듣고 있다. 공민왕:........ 안도치:(안타까워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는) 신돈:....... 공민왕: 승복을 안 한다? 신돈: 고려가 원에 짓밟힌 지 구십 년이 넘었습니다. 왕실과 귀족들은 원에 당하는 수모만큼 부귀영화를 대신 얻었으나 나라 잃은 백성들의 서러움은 무엇으로 대신 할 수가 있겠습니까 노국공주:....... 그 얼굴 위에, 공민왕:(소리) 백성들의 생활이야 다를 게 무엇이냐. 나라의 주인이 누가 되든 고달프기는 마찬가지지 신돈:(소리) 백성 없는 나라가 어디 있으며 나라 없는 백성이 또한 어디에 있겠나이까 공민왕:.....(가만히 바라보는) 신돈: 태조께서 고려를 세우신 이래 하룬들 편한 날이 없었나이다. 끝없는 내우외환에 시달리면서도 백성들은 꿋꿋이 고려를 지켜왔나이다. 흉년이 들면 하늘을 원망하고 고관대작의 착취가 심해지면 팔자거니 체념하고 살아왔나이다. 한번도 왕실을 원망하고 나라를 원망한 적이 없었나이다. 그러기에 외침이 있으면 죽기를 각오하고 나가 싸운 것이 아니옵니까 공민왕:(웃으며) 네 놈이 서역으로 불도를 닦으러 간 것이 아니고 왕도를 배우러 갔었구나 신돈:(다시 엎드리며) 대군께서 고려의 국왕이 되시면 부디 잊지 마시옵소서. 대군께서 어려운 때에 편조라는 천민을 만나 잠시나마 혈육의 정으로 대해주셨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리만 하시옵소서 일어나 또 한번 허리굽혀 절하고 뒷걸음질 쳐 문으로 간다. 공민왕: 나더러 어찌하라는 거냐 신돈:.....(멈춘다) 공민왕: 백성들이 나를 부를 때까지 여기 앉아서 기다리란 말이냐 신돈:.....(바라본다) 공민왕:.....(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흐르는) 신돈:....... 또 한번 머리 숙여 보이고 나가는 신돈. 공민왕:(내지르듯) 내가 너 같은 천민들을 가엾게 여겨 고려의 왕이 되고자 한다. 그것만으론 부족하단 말이냐 신돈이 나가버린 문. 힘이 빠지는 공민왕. 안도치: 대군마님. 편조스님께선 공민왕:(문밖을 가리키며 악쓰는) 저 놈은 중이 아니라 모사꾼이야. 일부러 내 화를 돋구고 있질 않느냐 부들부들 떠는 공민왕. 노국공주:..... 엿듣는. #동. 앞 거리 신돈, 간다. 원현:(입이 부어서) 좋으시겠습니다 편조스님. 서역에서 고생만 하다 돌아왔는데 앞으론 호의호식하게 생겼으니 신돈:(멈추더니) 주머니에 돈이 얼마나 남아 있나 원현: 돈이 어디 있습니까 신돈: 그럼 할 수 없지. 대관사 주지 스님한테 먹여주고 재워달라고 부탁을 하는 수밖에 앞서 간다. 원현:(환해져서) 대관사로 가실 겁니까 신돈: 대관사에서도 안 받아주면 빌어먹을 수밖에 비로소 웃어보이는 신돈. 원현: 염려마십시오. 동냥은 제가 해 올테니까요 좋아서 웃는 원현. 장난치며 가는 신돈과 원현. #강릉대군의 사저. 노국공주의 방 노국공주: 편조라고 했습니까 안도치:(신나서) 예, 공주마마. 고려에서 건너온 스님인데 행색은 그리 뵈도 보통은 넘는 스님입니다 노국공주:(생각에 잠기는) 안도치:(눈치가 이상하니까 더 적극적으로) 처음에는 대군께서도 편조를 멀리 하셨습니다. 스님이 술 마시고 고길 먹으니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노국공주: 스님이 술 마시고 고길 먹는다구요 어처구니도 없고 재밌기도 하다는 듯 반문하는 노국공주. 안도치:(좋아서 웃으며) 술과 고기가 뭡니까. 고려에 있을 때는 사람을 죽인 적도 있다고 합니다 무슨 자랑이라도 하듯이 웃어대는 안도치. 노국공주:...... 물끄러미 본다. 안도치, 얼른 입을 막으며 웃음을 그친다. 안도치: 모르긴 해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겠지요. 나라의 기강이 무너지고 탐관오리가 판을 치니 스님이 살생하는 고얀 일까지 벌어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예, 고려의 형편이 그렇습지요 끄덕이고 또 끄덕이며 노국공주의 눈치를 보는 안도치. 한숨 쉬듯 생각에 잠긴 노국공주. 홍화:(들어오며) 마마. 덕녕부의 마마께서 오셨습니다 노국공주:(환해져서) 그래 반갑게 문으로 간다. 덕녕공주, 들어온다. 노국공주: 어서오세요 형님 (덕녕의 손을 잡으며) 오늘은 안 오시나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덕녕공주: 저를 기다렸습니까 노국공주: 예 덕녕공주:(웃으며) 하긴 낯선 곳으로 시집으로 가셨으니 궁금하신게 한 두 가지가 아니겠지요 노국공주: 이리 앉으세요 형님 자리를 권하는 노국공주. 안도치:(초조하게 눈치를 보다) 마마. 소인이 편조스님을 한번 불러올까요 노국공주: 그러세요 (건성으로 대답하고) 홍화야. 차부터 내오너라. 오늘은 내가 형님하고 할 얘기가 많다 홍화: 예, 마마 덩달아 신나서 움직이는 홍화. 안도치: 저, 마마. 편조스님은 나이에 비해 학식도 많을 뿐더러 노국공주: 알았으니 그리 하라고 하잖습니까 귀찮다는 듯 뒤돌아보며 말을 끊는 노국공주. #동. 뜰 나오는 안도치. 힘이 없다. 김용과 조일신이 웃으며 온다. 묵묵히 따라오는 정세운. 김용: 안환관. 왜 그리 축 늘어져 계시는가 안도치: 아, 아닙니다 김용: 불원 반가운 소식이 들려올 모양인데 자넨 뭐 들은 게 없나 안도치: 반가운 소식이라니오? 조일신: 이 사람 도치, 우리 고생도 끝인가 보네 웃어대는 조일신과 김용. 입맛이 쓴 정세운. #동. 노국공주의 방 노국공주:(열심히 듣고 있는) 덕녕공주: 처음엔 저도 심란했지요. 들어본 적도 없는 변방의 작은 나라로 시집을 가게 생겼으니 그저 눈 앞이 캄캄하지 뭡니까 노국공주: 그래서요 덕녕공주: 허나 막상 고려에 도착해보니 생각과는 달리 우리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노국공주: 고려엔 산이 많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덕녕공주: 어디 산뿐입니까. 사람도 많고 인심도 후한 나라지요 노국공주:(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는) 덕녕공주: 걱정이 되셨습니까? (웃으며) 염려마세요. 고려는 머리에 뿔이 난 야만인들이 사는 나라가 아닙니다 웃는 덕녕공주. 따라웃는 노국공주. #동. 강릉대군의 방 안 그림을 그리고 있는 공민왕. 조일신: 조만간 반가운 소식이 있을 거라고 자정원사가 넌지시 귀띔을 하더이다 웃어대는 김용과 조일신. 말없이 붓만 놀리는 공민왕. 김용: 그만 붓을 놓으시고 서둘러 환국하실 준비를 하셔야지요. 한가하게 그림이나 그리고 계실 때가 아니옵니다 공민왕: 고향에 돌아가는데 따로 준비할 게 뭐 있나. 다 훌훌 털어버리고 몸만 가면 되는 거지 조일신: 참으로 딱하기도 하십니다 대군마님. 국정을 어찌 운영하실 건지 미리 계획도 세우시고 미리 사람을 보내 고려의 형편도 살피시고...... 김용: 처 죽일 놈이 한 둘이 아니지요. 대군마님을 연경에 귀양살일 보낸 놈들부터 찾아내서 처죽이고 정세운: 말씀들을 삼가시게 김용:(발끈해서) 자네는 왜 사사건건 시빈가. 자넨 우리 대군마님께서 고려의 국왕이 되시는 게 못마땅한가 #동. 노국공주의 방 덕녕공주: 자신이 있으십니까 노국공주: 예. 황제폐하께서 단단히 약속을 하셨습니다 덕녕공주: 강릉대군에게 고려의 국왕 자리를 주시겠다구요 노국공주: 예 덕녕공주: 분명히 그렇게 약속을 하셨습니까? 노국공주:(환하게 웃으며) 예 덕녕공주:.....(문득 눈물이 치솟는) 노국공주: 믿어지지가 않으십니까 덕녕공주: 아닙니다 가만히 눈물을 훔치는 덕녕공주. 덕녕공주: 우연히 길을 가다 두 분의 혼인 행렬을 봤습니다. 문득 예전의 제 모습이 생각이 나더군요.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충혜왕과 혼인하여 고려에 가서 아들을 낳고 살던 일들이.... 노국공주: 그렇게 어려웠습니까 덕녕공주: 아닙니다. 충혜왕께서는 제게 끔찍이도 잘해주셨지요 (웃어보인다) 허나.... 노국공주:(유심히 바라보는) 덕녕공주: 그 분이 세상을 떠나고 나니 고려는 하루 아침에 낯선 곳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노국공주의 손을 잡으며) 두 분께서는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사셔야 합니다. 백년해로를 하셔야지요.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요 눈물이 글썽해서 웃고 또 웃어보이는 덕녕공주. #동. 뜰 덕녕공주, 나온다. 가만히 한숨 쉬고 눈물 훔치는 덕녕공주. #동. 노국공주의 방 안 홍화:(삐죽하며) 덕녕부의 마마께서는 참으로 이상한 분이십니다 노국공주:(본다) 홍화: 그렇잖습니까. 공주마마께서 고려의 왕자와 혼인을 하신 게 잘됐다는 건지, 잘못됐다는 건지 원 노국공주:..... 미소 띤 채 가만히 생각에 잠기는 노국공주. #동. 강릉대군의 방 안 붓을 놓고 멍하니 앉아있는 공민왕. 정세운: 무슨 근심이라도 계시옵니까 공민왕:..... 정세운: 김용과 조일신의 말은 마음에 두지 마시옵소서. 속없이 하는 말들이오니 공민왕: 백성이 승복을 하지 않는다...... 정세운:(본다)...... 공민왕:(한숨) 정세운: 그게 무슨 말씀이시온지 공민왕: 결국은 허수아비 임금이다?..... 머리를 젖히고 소리없이 웃어대는 공민왕. #원순제의 처소. 방 안 꼿꼿이 앉아있는 원순제. 옆에 아유시리다라가 서있다. 위안을 비롯한 중신들이 일제히 원나라식 인사를 올린다. 옆에 빙긋이 미소를 띤 채 서있는 박불화. 순제:(또렷한 말씨로) 오늘 내가 경들을 보자고 한 것은 다름이 아니요. 쿤란태자가 덕이 없어 변방에 나가 근신하라고 일렀으나 여러 대신이 번갈아가며 이르기를 쿤란태자가 후회하는 빛이 없고 아비인 나를 원망함으로 죽이라 하였소 위안:(멈칫해서 보는)........ 순제: 허나 쿤란태자의 죄가 크다고 해도 아비로서 자식을 차마 죽일 수 없으니 대신 영원히 변방에 추방함으로써 그 죄를 묻기로 하였소 중신들: 폐하의 자비로움이 하해와도 같사옵니다 장막 뒤의 기황후. 기황후:.......(싱긋 미소하는) 순제: 이리오너라, 이유시리다라야 순제에게 가는 아유시리다라. 기황후:...... 마른침 꿀꺽. 순제: 아유시리다라가 아직 어리니 경들이 각별히 돌봐줘야 할 것이요. 장차 원 제국을 이끌어갈 재목으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조금 동요하는 중신들. 순제: 위안 위안: 예, 황제폐하 조금 앞으로 나온다. 순제: 아유시리다라에게 충성을 맹세하시오 위안:...... 진땀이 흐른다. 기황후:...... 장막 틈으로 흘키듯 위안을 바라본다. 위안이 앞으로 나와 아유시리다라에게 절하는 모습이 보인다. 위안: 신 위안 신명을 다해 태자전하를 지켜드릴 것을 맹세하나이다 또 한번 절하는 위안. 고개를 숙인 채 물러간다. 뒤이어 중신들이 차례차례 인사와 맹세를 올린다. 기황후:...... 소리 없이 활짝 웃는 기황후. #기황후 처소. 뜰 아유시리다라와 오는 기황후. 뒤따르는 박불화. 기다리고 있던 궁녀들과 환관들이 인사를 올린다. “경하드리옵니다 황후폐하” “경하드리옵니다 태자전하”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일일이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가는 기황후. #원순제의 처소. 방 안 순제:..... 괴롭다. 숙이고 서있는 위안. 순제: 미안하오. 쿤란을 살리는 길은 이 방법 밖엔 없었소 위안:....... 순제: 내가 보탑실리와 혼인을 한 고려의 왕자를 고려의 왕으로 봉할 것이니 서둘러 떠나게 하시오 위안: 폐하 무릎 꿇고 흐느끼는 위안. 순제: 조정의 안팎이 모두 황후의 심복들로 가득하오. 지금은 내가 쿤란의 목숨을 지켜줄 수가 있으나..... 말끝을 맺지 못하고 고개 돌려 눈물 짓는 순제. 그저 흐느끼는 위안. #기황후의 처소. 방 안 기황후:.....(생각에 잠긴) 박불화: 경하드리옵니다 황후폐하. 원제국은 이제 황후폐하의 소매자락 속에 들어있사옵니다 기황후:(흘키듯 본다) 박불화: 아유시리다라 왕자께서 태자가 되셨으니 기황후: 그런다고 한이 풀리겠느냐 박불화:(본다)...... 기황후: 그 때가 열 네 살이었다. 철부지나 다름없는 어린 나를 내 부모가 팔아먹었다 박불화:(안쓰러운) 기황후: 지금도 그 때의 광경이 눈 앞에 선하다. 내 또래 계집 아이들 수 백명이 울며불며 연경으로 끌려왔다. 그나마 나는 운이 좋아 황궁의 시녀로 뽑혀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만은...... 박불화: 그간의 사정이 오죽 험하고 서러우셨겠나이까 기황후: 공녀로 끌려온 고려의 계집이 원의 황후가 되었으니 그를 시기하는 무리가 어디 쿤란과 위안 뿐이겠느냐. 더구나 내 아들이 장차 원제국의 황제가 될 것이니 앞날이 내 생각대로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야 박불화: 심려치 마시옵소서 황후폐하. 황궁의 환관들은 거의 다 고려인으로 채워놓았나이다. 황후폐하의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황제폐하를 뵐 수가 없나이다 기황후:(보더니 싱긋 웃으며) 오늘부터 다시 라마승들의 방중술을 시작하거라. 폐하께서 무릉도원을 거니시게 깔깔거리고 웃는 기황후. ------------------------------------------------------------------------------ #개경으로 가는 길 원의 사신 ‘완자불화’가 온다. 중무장한 원의 호위병들. 그 뒤를 박불화가 건들거리며 따르고 있다. #개경의 성문. 앞 파발마가 달려온다. 전령: 성문을 열라. 성문을 열라 외치며 달려온다. 급히 성문을 여는 군졸들. 문이 열리고 무섭게 안으로 달려들어가는 전령의 파발마. #선경전의 뜰 대문이 열리고 전령이 전각을 향해 달려간다. 전각 앞에서 초조하게 서성거리고 있는 기원. 기원: 어디쯤 왔느냐 전령: 해질녘까지는 당도할 것이니 황제폐하의 칙서를 받들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전갈입니다 기원: 수고했다 신바람이 나서 선경전 안으로 들어간다. #동. 안 들어오는 기원. 기원: 원의 사신이 개경부로 들어서고 있다고 합니다 기철: 그래? 희색이 만면해서 돌아서는 기철. 이제현, 염제신, 이인복 등 중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리고 있다. 기철:(최만생에게) 강안전으로 가서 전하를 뫼시고 오게 최만생: 예, 덕성부원군대감 부리나케 옆문으로 달려가는 최만생. 염제신: 대체 무슨 일인데 이 난리요 기철: 낸들 압니까. 원의 사신이 당도하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요 이인복:(나서며) 원의 황제가 칙서를 보내 우리 전하의 죄를 묻는다는 소문이 떠돌던데 그게 사실이외까 염제신:(펄쩍 뛰며) 전하의 죄를 묻다니? 이인복: 심지어는 우리 전하를 폐위하고 연경에 있는 강릉대군을 새 국왕으로 세운다는 소문도 있더이다 염제신: 안 될 소리 이인복: 안 될 것도 없지요. 고려의 국왕을 저희들 맘대로 세우고 바꾸고 한 것이 한 두 번이었습니까 염제신: 그러니 그런 수치를 더 이상 당해선 안 된다는 거요 기철: 도첨의 평리 대감께선 누구보다 앞장서서 새 국왕을 옹립하자고 떠들고 다니시더니, 오늘은 딴소리를 하시니 어째 앞뒤가 안맞소이다 염제신: 새 임금을 세워도 우리 손으로 세워야지 두 손을 펴들고 흔들어대는 염제신. 이인복: 우리 손으로 새 국왕을 세우면 역적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염제신: 도대체 자네는 어느 쪽이야 이인복: 돌아가는 꼴이 한심해서 하는 소립니다 염제신: 익재대감. 뭐라고 한마디 해보세요. 또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합니까 울부짖듯 외치는 염제신. 이제현:..... 신음하며 가만히 고개를 돌린다. #강안전의 복도 최만생: 전하. 속히 선경전으로 납시어 원의 사신을 맞을 준비를 하시옵소서 희비:(안에서) 네 이놈. 선경전에 나가 원의 사신을 맞으라니 #동. 안 희비: 어느 나라 국왕이 외국의 사신을 맞으러 나간단 말이냐 최만생:(밖에서) 원나라 사신 완자불화가 황제폐하의 칙서를 받들고 온다 하나이다 희비: 원나라 사신이 도착하면 그 때 가서 다시 아뢰어라. 그러면 전하께서 선경전으로 납실 것이니 #동. 복도 최만생: 미리 나와서 기다리라는 분부시옵니다 희비:(안에서) 어느 놈이 그런 해괴망칙한 분부를 내렸다는 게냐 최만생:(당황) #동. 안 희비: 이 나라의 주인은 우리 전하시니라. 헌데 어느 놈이 우리 전하께 이래라 저래라 한다는 게냐 악 쓰는 희비.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충정왕. 충정왕: 어머니 그만 두세요. 제가 나가면 그만 아닙니까 희비: 가만히 앉아 계세요. 원의 사신은 이 어미가 나가서 맞을 겁니다 분해서 파르르 떠는 희비. 앞에 앉은 윤시우를 노려본다. 희비: 오라버니는 대체 뭘하고 계셨습니까? 윤시우: 하도 당치 않은 소문인지라 희비: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소문의 진위를 미리 알아보셨어야지요 윤시우: 대비마마.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설마하니 폐위까지야 하겠습니까 희비: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소리도 못 들어 보셨습니까 악이 받쳐 내지르는 희비. #동. 복도 최만생: 전하. 속히 선경전으로 납시옵소서 방문이 와락 열린다. 흠칫 물러서는 최만생. 희비:(나오며) 선경전엔 내가 갈 것이야 손을 휘젓고 나가는 희비. 당황해서 그 뒤를 따르는 윤시우. 최만생:..... 힐끔 열린 방문 사이로 안을 들여다본다. 고개를 푹 떨구고 앉아있는 충정왕이 모습이 보인다. 기묘한 최만생의 미소. #선경전의 안 용상 옆에 버티고 앉은 희비. 완자불화: 대원제국 황제 폐하의 칙서요. 고려왕은 직접 나와서 받으시오 희비: 우리 전하께서 아직 연소하시어 어미인 내가 섭정을 맡고 있소이다. 그러니 내게 전하면 됩니다 완자불화: 고려왕에게 내리는 황명이니 고려왕이 직접 받아야 할 것이오 염제신:(나서며) 이런 전례가 없소이다. 아무리 황명이라고 해도 한 나라의 국왕이 무릎을 꿇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니오 비로소 술렁이기 시작하는 대신들. 희비:(의기양양해서) 어찌하리까. 내가 밑으로 내려가서 칙서를 받을까요 완자불화:...... 당황해서 뒤에 있는 박불화를 본다. 웃으며 앞으로 나서는 박불화. 박불화: 대비마마. 아무리 작은 나라의 국왕이라고 해도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는 대비마마의 말씀은 백번 천번 옳으십니다 희비: 알아주시니 고맙구려 박불화가 손을 내민다. 칙서를 건네주는 완자불화. 박불화: 외람되오나 소인이 황명을 전하겠습니다 두루마리를 좌악 펴는 박불화. 일순 감도는 긴장감. 박불화: 나는 고려를 각별히 대했다. 무엇보다 고려가 부강하고 평온하기를 바랬다. 허나 근자에 들어 고려의 국왕이 어리어 궁중의 여인이 국사를 섭정하는 폐단이 있었다. 내가 그 죄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고려왕을 폐하고 강화도에 안치하였다가 적당한 때에 연경으로 압송하여 그 죄를 논할 것이다. 술렁이는 대신들. 흐뭇한 미소 짓는 기철. 부들부들 떨고 있는 희비. 박불화: 또한 후사는 강릉대군 왕기로 이을 것이니 충숙왕의 차남이다 희비:(벌떡 일어나며) 누구 맘대로 내 아들을 폐위한단 말이냐. 내가 당장 네 놈의 목부터 칠 것이야 악쓰는 희비. 충정왕:(밖에서) 어머니. 어머니 충정왕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희비: 전하 계단을 구르듯 달려내려와 밖으로 달려나간다. #동. 뜰 달려나오는 희비. 희비: 전하. 어디 계십니까 충정왕: 어머니 충정왕을 가마에 태워 에워싸고 밖으로 나가는 응양군들. 희비: 전하 달려간다. 환관들이 희비를 붙잡는다. 희비: 놔라 이 놈들. 뉘 몸에 손을 대는 거냐 더욱 꽉 잡는 환관들. 충정왕: 어머니, 살려주세요 가마에서 뒤돌아보며 울부짖는 충정왕. 희비: 전하. 전하 울부짖는 희비. 멀어지는 충정왕. #도성의 길 가마를 에워싸고 달려가는 응양군들. 영문도 모른 채 길을 비켜주고 있는 백성들 누군가 소리친다. “국왕전하께서 원나라로 잡혀 가신다” 동요하는 백성들. 누군가 또 소리친다. “막아라” 우르르 길을 막기 시작하는 백성들. 당황하는 응양군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지효. 지효:...... 가마를 에워싼 백성들. 그 앞에 엎드리며 울부짖는다. “못 가십니다 전하” “이놈들. 우리부터 죽여라” “원나라 사신을 때려죽이자” 기세등등해지는 백성들. 어디선가 무장한 군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삽시간에 백성들을 에워싸고 짓밟을 기세다. 충정왕: 물러들 가거라 일순 조용해진다. 충정왕: 내 길을 막지 마라. 내가 내 길을 막던 너희들을 잊지 않을 것이니 그만하면 됐다 통곡하는 백성들. 충정왕: 어서 가자 재촉하는 충정왕. 비로소 울면서 길을 터주는 백성들. 충정왕의 가마가 천천히 백성들 사이를 빠져나간다. 지효:....... 가만히 합장 배례하는 지효. #법왕사의 법당. 안(밤) 보우:..... 지긋이 눈을 감은 보우. 바라보고 앉은 지효. 보우: 어디로 가신다고 하더냐 지효: 강화도에 머물렀다 연경으로 간다고 하였습니다 보우:.......으음 지효:....... 보우: 연경엔.....못가시겠구나 (나직이) 나무관세음보살 지효: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보우: 부자지간에도 나눠가질 수가 없는 것이 왕의 자리다. 하물며 조카와 숙부가 나누겠느냐 지효:(안됐다는)..... 보우: 팔관회 때 뵌 두 형제가 다 같이 단명할 상이었느니.... 또 한번 입 속으로 나무관세음보살을 되뇌는 보우. #명덕태후의 사저. 방 안(밤) 명덕태후:...... 웃음을 꾸욱 참고 있는 명덕태후. 그런 모습이 민망해서 가만히 고개 숙이는 김상궁. 몇 번 헛웃음을 웃던 명덕태후. 기어코 코웃음이 터지고 만다. 명덕태후: 아무리 웃음을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가 없구나. 이게 꿈이냐 생시냐. 내 아드님께서 국왕이 되셨으니 허리까지 굽히며 웃는 명덕태후. 김상궁: 경하드리옵니다 마마 김상궁이 조아리는데 벌떡 일어나 나가는 명덕태후. #동. 뜰(밤) 마루로 나와 대궐 쪽을 쳐다보는 명덕태후. 따라나오는 김상궁. 명덕태후:.... 그 눈길에 멀리 대궐의 지붕들이 보인다. 명덕태후: 나는 평생 대궐의 지붕들만 바라보며 살았다. 저놈의 대궐이 이승과 저승 사이만큼이나 멀게만 보이더니 이제는 모두 내 것이 되질 않았느냐 김상궁:.....(눈물 짓는다) 명덕태후: 울지 마라. 다시는 내 눈에서 피눈물이 나올 일이 없을 것이니 눈물을 흘리며 다시 대궐을 바라본다. 어둠 속의 대궐 지붕들. #강안전의 방. 안(밤) 희비: 뭘 꾸물대고 있느냐. 어서 옥새를 가지고 오라고 하질 않느냐 방문이 열리고 젊은 환관 하나가 옥새가 든 함을 가지고 들어온다. 희비: 이리 내놓아라 젊은환관:...... 부들부들 떨고 있다. 희비: 어허 젊은환관: 옥새를 마마께 올린 것이 발각되면 소인은 살아남지 못하옵니다 희비: 이런 무엄한 놈을 보았나. 내 손에 먼저 죽는 것은 무섭지 않구? 벌떡 일어나 환관의 뺨을 후려치도 옥새함을 뺏어드는 희비. #동. 복도(밤) 도망치듯 쫓겨나오는 젊은 환관. 희비: 나를 죽이기 전엔 못 가지고 간다 #동. 안(밤) 치마 밑에 옥새를 밀어 넣더니 방문을 노려보는 희비. 희비: 어디 뺏어갈 테면 뺏어가 보거라 #동. 복도(밤) 젊은 환관의 뺨을 후려치는 최만생. 최만생: 이런 미련한 놈. 어쩌자고 옥새를 대비전에 갖다 바친 게야 오히려 당황해서 안절부절하는 최만생. #동. 뜰(밤) 기철, 기원 형제가 기세등등하게 수종들을 데리고 서있다. 안에서 나오다 기철 형제를 보더니 덜덜 떠는 최만생. 기철: 옥새는 어찌하고 빈 손으로 나오느냐 최만생:(입이 타는) 기철: 이놈이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됐나 넓은 손바닥을 쫙 펴서 최만생을 후려치려는 기철. 최만생: 아이구, 살려주십시오. 대궐에 갓 들어온 환관 하나가 대비전의 재촉이 추상같은 지라 기철: 대비께서 가지고 계시다? 최만생: 예, 부원군대감 기철: 으음 손을 내리며 전각을 바라본다. 희비:(안에서) 네. 옥새는 내가 가지고 있습니다 #동. 안(밤) 희비:(비아냥거리듯) 그렇게 옥새가 탐이 나면 어디 안으로 들어와서 가져가 보시지요 덕성부원군대감 옥새를 치마 속에 더 밀어넣는다. #동. 뜰(밤) 기철: 흥. 못 들어갈 것도 없지 들어가는데 최만생이 급히 길을 막는다. 최만생: 대감마님 기철: 비키기 못하겠느냐 이놈 최만생: 들어가보셨자..... 기철: 대비께서 옥새가 탐이 나면 안으로 들어와서 가지고 가라고 하시질 않느냐. 비켜라 이 놈 최만생을 뿌리치고 안으로 가는 기철. 최만생:(다급해서) 옥새는 대비마마의 치마폭 속에 들어 있사옵니다 기철: 뭐야 씰룩하는 기철. 전각을 본다. #동. 안(밤) 버티고 앉은 희비. #동. 뜰(밤) 기철:(신음) 기원: 형님. 오늘은 그냥 돌아가시지요. 명색이 대빈데 치마 속에 손을 넣을 수는 없잖습니까 히죽이죽 웃는 기원. 기철: 치마 속이 아니라 더한 곳에 숨겼어도 받아내야지 성큼 전각 마루로 올라서는 기철. 이제현:(소리) 이게 무슨 짓이오 돌아보는 기철. 이제현이 온다. 이제현: 옥새는 섭정승인 내가 거둘 것이니 그만들 돌아가시오 (*섭정승; 왕이 어리거나, 국가가 어려울 때 왕을 대신해 국정을 처리하는 신하) 기철: 옥새가 문제가 아니지요. 임금이 죄를 짓고 강화도에 유배됐으니 그 어미의 죄도 물어야 할 것이 아니외까 이제현: 대비의 죄를 묻다니 기철: 황제폐하의 칙서에 궁중의 여인이 섭정한 죄가 크다고 하였소이다 이제현:(버럭) 새 국왕께서 즉위를 하시기 전에 그 손에 피부터 묻히자는 겁니까 기철:...... 이제현: 기다리시오. 강릉대군께서 돌아오시어 용상에 앉으시면 그 때 가서 죄를 물어도 늦지 않을 것이니 기철:..... 끄응 신음하며 전각을 본다. #동. 안(밤) 희비:.... 이를 악문. #동. 뜰(밤) 이제현: 모두 물러가라고 하질 않느냐. 내 영을 어기는 자는 왕명으로 다스릴 것이야 이제현의 서슬퍼런 기세에 슬금슬금 물러서는 기철과 기원 등. #동. 안(밤) 희비:.... 문득 맥이 풀리는 희비.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개태사의 전경 그 위에, 큰스님:(소리) 그거봐라. 그거봐. 그 놈이 그렇게 쉽게 죽을 놈이 아니라고 했잖으냐 (웃음 소리) #동. 큰스님의 방 안 큰스님: 편조가 죽으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지효:(미소) 큰스님: 그래, 편조와 원현인 어디서 뭘 하고 있느냐? 지효: 제가 연경을 떠날 때까진 서역에서 불도를 닦고 있었습니다 큰스님: 불도를 닦고 있었다? 어허, 그 놈 참 신통하다 덕운: 큰스님도 참. 중이 불도를 닦는 거야 당연한 거지, 그게 뭐 대견한 일이라고 감탄, 감탄을 하십니까 큰스님: 그저 이 놈은 하는 짓이라곤 먹고 싸고 남는 시간엔 처질러 자고 입만 열었다 하면 남을 헐뜯기나 하니 (혀를 찬다) 덕운:(입이 삐죽 나온다) 큰스님:(얼른 지효에게) 헌데 어째서 자네만 먼저 돌아왔나 지효:(웃으며) 편조스님을 좋아하긴 하지만 부처님 모시는 법이 저와는 좀 다른 지라...... 큰스님: 부처님 모시는 법이 다를 게 뭐 있다구 지효:(그저 웃는) 덕운: 내 그럴 줄 알았다. 그 놈이 정신을 차렸을 리가 없지 괜히 좋아서 웃다가 큰스님 보더니 얼른 입을 다문다. 큰스님:(지효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저네 스승이 보우 선사시던가 지효: 예, 스님 큰스님: 가서 전하시게. 편조가 중입니까 아니면 속입니까, 하고 물으셨는데 중이 속이요 속이 중이라고 하더라고 덕운: 큰스님도 참. 좀 알아듣기 쉬운 말로 하시면 안 됩니까 큰스님: 뭐라고 (반문한다) 덕운: 편조는 중이 아니라 속인입니다 하시면 얼마나 알아듣기가 쉽습니까 큰스님: 이, 이 놈이. 니 놈 머리 속엔 돌멩이하고 똥만 들어 있냐. 어디 니 놈 그 머리통을 좀 갈라봐야겠다 지팡이 집어들고 일어나는 큰스님. 후당탕 방문 열고 도망치는 덕운. 큰스님: 이놈. 게 섯지 못하겠느냐 지효:........ 웃음이 나온다. #동. 뜰 지팡이를 휘두르며 덕운을 쫓는 큰스님. 머리를 감싸쥐고 이리저리 도망치고 있는 덕운. 지효:....... 그 모습을 바라보다 빙긋 웃고 큰스님을 향해 합장하고 돌아서는 지효. 문득 멈춘다. 어린 반야가 서있다. 지효:..... 어린 반야:..... 눈망울만 굴리며 서있는 어린 반야. 곰순네가 달려와 반야를 번쩍 들어서 안는다. 곰순네: 어딜 싸돌아 다니는 게냐. 꼼짝 말고 부엌에 앉아 있으라는데 지효를 힐끔힐끔 보며 반야를 안고 도망치는 곰순네. 곰순네에게 안겨 지효를 뒤돌아보는 반야. 지효:....... 그 모양을 바라보고 서있는 지효. #대관사의 방 안 시무룩해서 짐을 꾸리는 원현. 신돈: 고려로 돌아가자는데 왜 또 입이 튀어나오셨는가 원현: 걱정이 되니까 그렇지요 신돈: 이번엔 또 무슨 걱정 원현: 관에서 아직도 우릴 잡으러 다닐 텐데 편조스님은 걱정도 안 되십니까 신돈: 걱정도 팔자라더니 (혀차며) 강릉대군께서 고려의 새 임금이 되셨다는데 무슨 걱정인가. 그 어른하고 나 사이는 형제지간이나 다름 없거늘 원현: 편조스님도 참. 임금이 된 마당에 그 양반이 편조스님을 거들떠보기나 하겠습니까 신돈: 그 어른은 그럴 분이 아닐세 원현:(기막혀 쳐다보는) 신돈: 사람을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시나 원현: 뒷간에 갈 때하고 올 때하고 생각이 다르다는 속담이 있잖습니까. 일찌감치 꿈 깨시지요 신돈: 나한테 약속을 하셨다니까. 나중에 고려의 임금이 되시면 한 자리 주시겠다고 원현: 글쎄, 꿈 깨시라니까요 편조스님 부지런히 짐을 싸는 원현. 벌떡 일어나 나가는 신돈. 원현: 짐 다 싸가는데 어딜 가십니까 신돈: 급하긴. 대군마님께 떠난다는 인사는 드리고 떠나야지. 한자리 주시겠다고 한 약속도 다짐을 받아놀 겸 눈을 찡긋하고 방문 닫아버리는 신돈. #강릉대군의 사저. 대문 앞 신돈, 온다. 대문이 활짝 열려있다. 안을 기웃거리는 신돈. #강릉대군의 사저. 뜰 식탁을 내놓고 그 위에 산해진미를 올려놨다. 각양각색의 관리들과 고려인들이 술과 음식을 먹고 있다. 안을 힐끔거리는 신돈. 신이 나서 부지런히 음식을 내오는 안도치. 얼른 몸을 피하는 신돈. 조일신: 자, 자, 여러분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고 강릉대군께서 고려의 국왕이 되셨소이다. 덕분에 우리도 팔자가 좀 펴지게 생겼구 와아 웃음이 터진다. 김용: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대군보다 우리가 고생이 더 많았지. 대군께서 그걸 몰라주신다면 세상에 그렇게 섭섭한 일이 또 어디 있겠나 조일신: 강릉대군께선 그럴 분이 아니지 다시 웃음이 터진다. 안도치: 말조심들 하시지요. 이제는 대군이 아니라 국왕전하십니다 조일신: 옳거니. 국왕전하 다시 터지는 웃음. 그런 김용과 조일신이 못마땅한 정세운. #동. 노국공주의 방 안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노국공주. 밖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노국공주: 하루라도 발리 고려에 가보고 싶습니다. 새국왕을 기다리는 백성들의 환호성이 하늘을 찌르겠지요? 덕녕공주:.......(미소) 노국공주: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레입니다. 그런데 석 달이나 기다려야 한다니 덕녕공주: 그렇게도 좋으십니까 노국공중: 좋구말구요 밖에서 다시 들리는 웃음소리. 다시 창밖을 내다보는 노국공주. 노국공주: 저것 좀 보세요 형님. 모두들 저렇게 좋아하고 있잖습니까 환하게 웃으며 밖을 내다보고 잇는 노국공주. 그런 노국공주를 안쓰러운 듯 바라보는 덕녕공주. #기황후의 방. 안 기황후:...... 지긋이 바라본다. 공민왕:...... 그 눈길을 피하듯 고개 숙이고 있는 공민왕. 그런 두 사람을 재밌다는 듯 바라보고 있는 박불화. 기황후: 쉽지 않을 것이야 공민왕:(가만히 고개를 들어본다) 기황후: 지금 당장 달려가고 싶겠지. 어린 나이에 원의 볼모로 끌려온 원한이 오죽 했을꼬 놀리듯 바라보는 기황후. 공민왕: 황후폐하께서도 그러셨습니까? 기황후:..... 공민왕: 원나라에 공녀로 팔려오신 원한이 어찌 저보다 작다 하시겠습니까 기황후:.....(바라본다) 공민왕:(버티고 서있는) 기황후:.....(싱긋 웃는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여기 있는 자정원사가 날 궁중으로 데려가지 않았으면 어느 부잣집 소실이나 아니면 어느 유곽의 몸파는 계집으로 팔려갔겠지 박불화:(싱긋 웃는) 기황후: 생각을 했느니라. 어떻게든 황제의 눈에 들어, 황은을 입자. 황제의 총애를 받아 첩이 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들을 하나 낳자. 그러면 나를 궁중에서 내쫓지는 못하겠지 박불화:......(또 한번 싱긋) 기황후: 헌데 어쩌다보니 원나라 황실의 제이 황후가 되었다 깔깔거리고 웃는 기황후. 박불화: 황공하오나 황후폐하, 그것이 어찌 어쩌다 얻은 자리옵니까. 피눈물 나는 긴 싸움이었지요 기황후:(공민왕을 보더니) 나는 고려가 미웠다. 고향 생각이 나고 부모형제가 보고 싶어 눈물이 날 때마다 나를 버린 고려가 밉고 또 미웠다 (다시 싱긋 웃더니) 미움이 지나치면 정이 된다고 했던가. 내 몸엔 아직도 고려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 어찌 고려가 망하길 바라겠느냐 공민왕:..... 기황후: 쉽지는 않을 것이야. 새 국왕이 왔다고 권신들의 기세가 꺾이겠느냐. 그 중에서도 내 오래비의 횡포가 제일 심할 것이야 박불화:(지긋이 웃으며) 황후폐하 기황후: 내 오래비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지금쯤 아마 소원성취를 했다고 춤을 추고 있겠지 웃는 기황후. 공민왕:.... 진땀이 흐르듯 바라본다. 기황후:(웃음을 거두며) 내 오래비는 내가 누를 것이야. 그러니 고려를 강성한 나라로 만드시게. 그래야 내 아들을, 변방의 소국에서 공녀로 끌려온 계집의 피가 흐르는 황제의 후계자라고, 등 뒤에서 비웃고 헐뜯는 무리들이 원의 조정에서 사라질 게야. 단숨에 내뱉고 등을 돌리는 기황후. 그 뒷모습. #동. 복도 나오는 공민왕. 비오듯 흐르는 땀. #동. 안 등 돌린 기황후. 박불화: 황공하오나 황후폐하. 어째서 고려왕을 연경으로 데려오지 않으시고 강화도에 두라 하셨나이까 기황후:(돌아선다)....(미소) 그건 저자의 몫이니라 박불화:...... 기황후: 강릉대군은 평생 어린 조카를 죽였다는 족쇄를 차고 살아야 할 것이야. 그래야 내가 저자를 내 손바닥을 뒤집듯이 부리고 살 것이 아니냐 또 한번 싱긋 웃는 기황후. #연경의 밤거리(밤) 넋나간 사람처럼 가고 있는 공민왕. #강릉대군의 사저. 대문 앞(밤) 대문을 열고 등불을 비춰보는 안도치. 길쪽을 바라본다. 인적이 없다. 한숨 내쉬고 돌아서다 흠칫 놀라 벽쪽에 등불을 비춰본다. 안도치: 편조스님 아니시우 신돈:..... 빙그레 웃어보이는 신돈. 안도치: 왜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거기 서 계시는 건가 신돈: 대군마님께 하직 인사를 올리러 왔습니다 안도치: 하직 인사라니 신돈: 내일 아침에 개경으로 돌아갈 겁니다 안도치: 난 또. 하직인사라기에 아예 세상하고 하직을 하겠다는 줄 알았네 짐짓 놀란 가슴 쓸어보이는 안도치. 안도치: 하여간 들어오시게 신돈: 여기서 잠깐 뵙고 인사나 올리고 떠날까 합니다 안도치:(혀를 차며) 대군께서.....아니 전하께서 섭섭히 대하셨다고 계집애처럼 토라지셨는가 신돈:(웃으며) 그럴리가요 안도치: 마음대로 하시게 밉지 않게 흘키고 안으로 들어간다. 신돈:...... 집을 바라보고 서있는 신돈. 싱긋 웃고 돌아서는데, 김용과 조일신이 뒷짐을 지고 신돈을 가로막듯 서있다. 신돈:(웃으며) 어르신네들, 안녕들 하셨습니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데 신돈의 머리를 후려치는 몽둥이. 비틀하는 신돈. 김용과 조일신이 뒤에 감추고 있던 몽둥이로 신돈을 마구 두들겨패기 시작한다. 몸을 웅크리며 쓰러지는 신돈. 그 몸을 발로 치고 밟고 걷어차는 김용과 조일신. 조일신: 근본도 모르는 천승을 대군께서 어여삐 여겨 상대를 해주시니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어 김용: 니 놈이 뭘 안다고 주제 넘게 나서는 거야. 뭐, 백성이 승복을 하지 않는다? 조일신: 또 한번 함부로 입을 놀리면 그 땐 아예 니 놈을 죽여 버리겠다. 알겠느냐 신돈:.... 두 손으로 몸을 감싸듯 하고 웅크린 채 온갖 매와 발길질을 견뎌내는 신돈. 입을 다물고 신음을 참고 있다. 그 위에 몽둥이를 던지는 김용과 조일신. 조일신: 술 처먹고 계집질 하는 땡중 놈 주제에 분수를 알아야지 신돈에게 침을 탁 뱉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김용과 조일신. 신돈:....... 몸을 웅크린 채 움직이지 않는 신돈. 어둠 속에서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남장을 한 노국공주. #연경의 밤거리 여전히 헤매고 있는 공민왕. #대관사의 앞. 골목(밤) 초조하게 기다리고 서있는 원현. 쓰러질 듯이 휘청거리며 오는 신돈. 원현: 편조스님 (와서 보더니) 어디서 무슨 봉변을 당하셨길래... 신돈:(가까이 오는 원현을 손으로 막으며) 자업자득일세 원현스님. 그러니 날 그냥 내버려두시게 (웃어댄다) 원현: 편조스님. 얼마나 다쳤는지 신돈: 내버려두래두 그러신다. 호랑이 굴에서 자란 여우 새끼가 저도 호랑이 새낀 줄 알고 으르렁 거린다지. 내가 꼭 그 꼴일세그려 점점 미친 듯이 웃어대는 신돈. 노국공주:(소리) 내 눈엔 스님이 호랑이 새끼로 보였습니다 신돈:(흠칫 웃음 그치고 돌아본다) 노국공주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연경의 어느 호숫가(밤)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노국공주:.....(바라본다) 싱긋 웃고 서있는 신돈. 노국공주: 스님을 만나러 대관사에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봉변을 당하고 있는 스님을 보았습니다. 무예가 뛰어난 분이 어째서 맞고만 있었습니까 신돈:(웃으며) 김용과 조일신은 고려의 새국왕이 되신 강릉대군의 심복들이 아니옵니까 노국공주:...... 신돈: 소승의 무예가 아무리 뛰어난들 서슬이 시퍼런 권력의 힘에 비하겠습니까 (웃는) 노국공주:(불쑥) 승복하지 않는 백성은 스님 같은 사람들을 말하는 겁니까 신돈:...... 웃음이 천천히 사라진다. 그런 신돈의 대답을 기다리는 노국공주의 날카로운 눈빛. 신돈:...... 소리없이 환하게 웃는데 -. <신돈10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