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 9회 <신돈> -9회- #어느 사막 지대 노국공주와 공민왕이 말을 타고 온다. 노국공주: 아침에 먹은 음식은 보르츠라는 몽골 음식에요. 소나 양고기를 말려 가루로 만들어서 소의 오줌보로 만든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다 끓는 물에 타서 마시죠. 몽골의 전사들은 보르츠를 옆구리에 차고 다니면서 전쟁을 했어요 문득 말을 멈추는 노국공주. 앞에 펼쳐진 사막. 노국공주:(공민왕을 보더니) 날 이길 수 있어요? 공민왕:.......(마주보더니 가만히 끄덕인다) 노국공주:(빙긋) 공민왕:...... 천천히 말고삐를 움켜쥔다. 순간 박차를 가하며 먼저 달려 나가는 노국공주. 뒤따르는 공민왕. #다른 사막 공민왕, 말을 몰아 달려온다. 앞서가는 노국공주. 공민왕이 겨우 쫓아와 노국공주의 말고삐를 잡으려는 순간, 노국공주의 말이 앞으로 꼬꾸라지며 땅에서 떨어져 뒹구는 노국공주. 급히 말을 세우는 공민왕. 노국공주에게 달려간다. 한쪽 다리가 아픈지 발을 내밀며 신음하는 노국공주. 얼른 노국공주의 신을 벗기고 부벼주는 공민왕. 그런 공민왕을 바라보는 노국공주. 문득 미소. 열심히 노국공주의 발을 부벼주다가 괜찮냐고 물어보듯 노국공주를 쳐다보는 공민왕. 다시 아픈 시늉하며 다른 발을 내미는 노국공주. #초원의 게르 촌 일단의 유목민들이 말을 몰아 달려온다. 게르 앞에서 몽고의 여인과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말 위의 노국공주. 유목민들이 달려와 환호하며 노국공주를 에워싼다. 공민왕:....... 그 모양을 바라보는 말 위의 공민왕. 유목민들에게 둘러싸여 행복한 노국공주. 힐끔 공민왕을 바라보더니 손을 흔들어 보이려다 멈추는 노국공주. 공민왕:.......(가만히 손을 흔들어준다) 이윽고 활짝 웃어 보이며 손을 크게 흔들어 보이는 노국공주. 환호하는 몽골의 유목민들. ------------------------------------------------------------------ #기황후의 처소. 방 안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기황후. 문가에 공손히 서있는 덕녕공주. 박불화: 황후폐하 기황후:......(여전히 생각에 잠긴) 박불화: 진서무정왕의 셋째 공주시며 얼마 전에 하세한 고려 충목왕의 모후인 덕녕공주마마십니다. 진서무정왕께서는 황제폐하와는 가까운 인척이 되시는 분이셨습니다 기황후: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박불화: 황공하오나 황후폐하 기황후: 신방을 꾸미러 몽골로 갔다는 것은 핑계고 몽골의 부족들을 모아 쿤란을 도와주자는 심보가 아니냐. 괘씸한 것. 애비를 살려주고 시집까지 보내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고 들어? 박불화: 으흠 민망해서 덕녕공주를 본다. 덕녕공주:..... 가만히 미소하며 고개 숙여 보이고 뒷걸음쳐 나가는 덕녕공주. 기황후:(던지듯) 고려의 풍속이 그렇다고 합니까 덕녕공주:......(멈춘다) 기황후: 자식 잃은 어미를 친정으로 내쫓는 게 고려 왕실의 법도냐고 물었습니다 덕녕공주:.......(가만히 숙여보이는) 기황후: 자주 들리세요. 어려운 일 있으면 말씀을 하시고 고개 돌리더니 분하다는 듯 파르르 떨며 한숨을 내쉬는 기황후. ---------------중국 촬영분 중 ---------------------- #어느 곳 - 공민왕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노국공주의 모습이 담긴 - ---------------------------------------------------- #게르. 안(밤) 등잔불이 타오른다. 양털 이불 위에 누운 공민왕. 공민왕:...... 구석에 처진 장막을 바라본다. 등잔 불빛에 장막 속에서 머리를 빗고 있는 노국공주의 모습이 보인다. 공민왕:....... 그 요염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신음하며 돌아눕는 공민왕. 괴로운지 몸을 뒤척인다. 노국공주:(소리) 이것이 고려 왕실의 예복인가요 공민왕:....... 돌아본다. 노국공주가 고려 옷을 입고 서있다. 저도 모르게 몸을 일으켜 앉는 공민왕. 머리를 풀어헤쳐 길게 늘어뜨린 노국공주의 모습이 요염하다. 황홀해서 쳐다보는 공민왕. 노국공주: 고려 여인의 옷을 급하게 마련했으나 고려 여인의 머리 모양은 본 적이 없는 지라..... 공민왕: 믿어지지가 않소, 이것이 공주의 모습이라곤 노국공주:........ 수줍게 살며시 고개를 돌리는 노국공주. 그 얼굴 위에 활활 타오르는 등잔불. #같은 곳(밤) ‘술상’ 양가죽으로 만든 술통을 집어들고 잔에 술을 따르는 노국공주. 바라보는 공민왕. 술잔을 올리는 노국공주. 공민왕:.......(바라본다) 노국공주: 몽골의 여인은 남편을 모시는 첫날 밤에 복종의 의미로 술잔을 올립니다 공민왕:....... 술잔을 받아 한모금 마시고 노국공주에게 내민다. 공민왕: 신혼 초야에 술을 나눠마시는 것은 고려에선 합환주라고 합니다 노국공주:..... 잔을 받아 한모금 마시는 노국공주. 그리곤 공민왕을 향해 수줍은 미소. 타오르는 촛불. #같은 곳(밤) 양털 이불 속에서 공민왕의 품에 안긴 노국공주. 공민왕: 일 년은 기다릴 작정이었소. 아니, 십 년은 걸리겠지 하고 체념을 하고 있었소 공민왕의 가슴 위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노국공주. 노국공주: 그 분을 내 마음 속에서 다 지워버린 건 아녜요 공민왕:.....(끄덕이는) 노국공주: 하지만 당신을 하늘처럼 섬길 거예요 공민왕의 품속에 파고드는 노국공주. 타오르는 등잔불. #원순제의 처소. 방 안 공민왕:......... 바라본다. 원순제와 기황후가 나란히 앉아있고, 옆에 아유시리다라가 서있다. 박불화가 잔기침을 한다. 노국공주가 앞으로 나선다. 노국공주:(절하며) 폐하, 그간 평안하셨사옵니까 원순제:(끄덕이며) 신혼을 몽골에서 보내고 왔다지? 노국공주: 예, 폐하 원순제: 나도 어려서 부왕을 따라 몽골에 가본 적이 있었지. 광활한 초원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린 마음에도 힘이 불끈 치솟았다 노국공주: 몽골은 우리 민족의 고향입니다 폐하 원순제:(끄덕이며) 잊지 말아야지 기황후: 쿠빌라이 황제께서 비옥한 중원을 취하지 않으셨다면 우리 몽골족은 아직도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원순제: 그것도 옳은 말이요. 몽골은 쓸모 없는 황무지와 사막이 전부니 (웃고는 공민왕 보고) 아리따운 보탑실리 공주를 신부로 맞은 행운아가 자넨가 공민왕:(앞으로 나서 원나라식으로 예를 올리며) 고려에서 온 왕기라고 하옵니다 박불화: 고려 충숙왕의 둘째 아들인 강릉대군이옵나이다. 어려서 연경에 유학을 와서 노국공주:(나서며) 폐하. 소원이 있나이다 기황후:(힐끔 보는) 노국공주: 폐하께선 제가 시집을 가면 큰 선물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원순제: 그래, 약속을 했지 (웃으며 기황후에게) 보탑실리가 요만한 어린아이였을 때 내 무릎 위에 앉아서 재롱을 피우곤 했어요 기황후: 으흠 못마땅한 미소. 원순제: 그래,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어서 말을 해보아라 노국공주: 고려를 주십시오 폐하 원순제:..... 박불화를 본다. 박불화: 고려는 요동과 왜국 사이에 있는 작은 나라이옵나이다. 보탑실리 공주와 결혼한 강릉대군의 고향이지요 원순제:(짐짓 웃으며) 황후의 고향 역시 고려가 아닙니까 (기황후에게) 안그렇습니까 기황후:.......(마지 못해) 예, 폐하 #기황후의 처소. 안 기황후:(들어오며) 앙큼한 것. 끝까지 해보겠다 (따라 들어온 박불화에게) 아무래도 안 되겠다. 위안을 다시 잡아들이고 사람을 보내 쿤란을 없애버려야지 박불화: 고정하시지요 황후폐하. 보탑실리가 고려를 얻은들 무엇을 하겠나이까 기황후: 보탑실리가 원하는 게 고려겠느냐. 황제폐하의 의중을 떠보려는 거지 박불화:...... 기황후:(파르르 떨며) 황제폐하께서 보탑실리의 소원을 들어준다면 그건 마음 속으로 쿤란을 측은히 여기고 있다는 증거야 #노국공주의 처소. 뜰 공민왕:....... 안에서 들려나오는 소리를 듣고 서있다. 불안한 안도치와 홍화. 노국공주:(격한 소리) 황후의 마음 속에는 독이 들어 있어요. 인정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여잡니다 #동. 안 노국공주: 두고 보세요. 기어코 쿤란태자와 아버지를 죽이려고 들 겁니다 위안: 참거라. 자꾸 말썽을 일으키면 쿤란태자만 위험에 빠진다 노국공주: 난 싸울 거예요.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순 없어요 나가는 노국공주. 위안:...... 깊은 한숨. #원순제의 처소. 방 안(밤) 여인들에게 둘러쌓인 원순제. 약에 취해 몽롱하다. 박불화:....... 시녀들에게 물러가라는 손짓. 물러가는 시녀들. 원순제, 잠이 든 듯 눈을 감고 있다. 조심스럽게 물러가는 박불화. 원순제:(눈 감은 채) 쿤란은 어찌하고 있느냐 박불화:(흠칫 멈춘다) 원순제:......(몽롱한 시선으로) 요즘은 그 애 꿈을 자주 꾼다....꿈 속에서..... 할 말이 많은 모양이야 가만히 한숨을 쉬며 늘어지듯 다시 눈을 감는 원순제. #강릉대군의 처소. 방 안(밤) 공민왕: 난 고려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노국공주:(본다) 공민왕: 내 어린 조카가 왕위에 오른지 겨우 일 년이 넘었습니다. 나보고 그 자릴 뺏으라는 겁니까 노국공주: 그럼 연경에서 평생을 낭비하며 사시겠어요 공민왕:(터지듯) 그건 당신의 욕심이오. 황후가 될 뻔했던 당신의 자존심이 나같은 사람으론 만족이 안 되겠지요. 이름 없는 변방의 그것도 곁가지나 다름없는 왕족의 부인이 된 게 얼마나 모욕적인 건지는 나도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난 어린 조카의 왕위를 빼앗는 파렴치한 인간이 되긴 싫소이다 안으로 들어가버리는 공민왕. 노국공주:....... 여전히 멍하니 바라보듯 앉아있는 노국공주. 안도치가 들어선다. 노국공주를 바라본다. 노국공주:...... 참고 있는. 안도치:....... 뭐라고 하려는데 문득 노국공주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 흠칫 숨이 막히는 안도치. #개태사의 방 안 보우:...... 단정히 앉은. 큰스님:(힐끌힐끔 눈치보며) 죽을 날만 기다리고 앉은 늙은이가 뭘 안다고 예까지 찾아오셨수 보우: 고려의 불교는 그 기운이 다 쇠하였습니다 큰스님: 달이 차면 기우는 법이니 그것이 자연의 섭리가 아니오 보우: 고려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불교를 먼저 일으켜 세워야 할 것이 아닙니까 큰스님: 그걸 물어보러 보우선사님 같은 고명한 스님께서 이 늙은이를 찾아왔단 말입니까 보우: 부디.....가르침을 주시지요 큰스님:(갑자기 힘주어) 더 내려와야지 보우:...... 큰스님: 중이 누대에 높이 앉은 부처님 흉내를 내서야 쓰나. 중놈이 비단으로 만든 가사를 입고 거들먹거리는 꼴이라니......(하다가) 아이구 이 주책바가지. 내 입이 방정이다 입을 손을 때리는 큰스님. #동. 뜰 나오는 큰스님과 보우. 반야를 업고 얼르고 있는 덕운스님. 보우를 보더니 휑하니 도망쳐버리는 덕운. 큰스님: 아, 이 놈아 뛰지 말어. 뛰다가 넘어지면 큰일 나 펄펄 뛰는 큰스님. 슬며시 보우의 눈치를 본다. 보우: 나무관세음보살 큰스님: 절간에 업동이가 하나 들어왔우 보우: 사내앱니까 큰스님: 계집애야 보우: 나무관세음.......(합장하며 숙인다) 큰스님: 뭔가 집히는 거라도 있우 보우: 편조가 살아있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큰스님: 저런 저런 보우: 스님께선 못들으셨습니까 큰스님: 마음 속으로는 죽었거니 했는데 마른 눈물 찔끔 들어마시는 큰스님. 보우: 연경에서 편조를 봤다는 사람이 여럿 있습니다 큰스님: 이런 죽일 놈 같으니라구. 살아있으면 제일 먼저 나한테 연락을 줘야지 펄쩍 뛰다가 별채쪽을 본다. 덕운이 반야를 업고 쩔쩔 맨다. 큰스님: 아, 이 놈아. 왜 자꾸 얼쩡거려 덕운: 또 오줌을 눈 모양입니다. 제 등어리가 축축한 게 큰스님: 저런 미련한 놈. 그러기에 기저귈 채우래도 (혀를 차고 보우에게) 나는 기저귈 갈아주러 가야하겠우 보우가 대답할 사이도 없이 부리나케 덕운에게 달려가는 큰스님. 큰스님: 이 미련한 놈아. 애가 칭얼거리면 쉬부터 뉘어야지 덕운의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포대기를 풀러 반야를 안는 큰스님. 보우:...... 빙긋 바라보고 서있다. #언덕 길 큰스님, 꼬꾸라지듯 올라온다. #산 위 올라오는 큰스님. 가뿐 숨. 끊임없이 펼쳐진 산. 큰스님: 엣끼 이 못된 놈. 살아 있으면 살아 있다고 소식부터 전해야 할 것이 아니냐. 이 못된 놈 마른 눈물 찔끔찔끔 삼키는 큰스님. #티벳 사원의 전경 티벳승들의 독경소리. ----------------------------중국 촬영분 중에서 ------------- #동. 사원의 한 방 티벳승들이 왼손엔 딜부(튜율립 모양의 종, 여성 에너지를 상징하는), 오른손엔 금강저(남성 에너지를 상징)를 들고 흔들면서 독경을 하고 있다. 마치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바라보는 신돈과 지효. 열심히 따라하려고 애쓰는 원현. #동. 사원의 다른 방 티벳승들이 오색 모래로 만다라를 만들고 있다. 지켜보는 신돈과 원현, 지효. 티벳승:(티벳어로) 만다라는 우주의 모든 덕을 망라한 공간으로, 불보살님만이 아니라 청정한 불성을 가진 중생들도 원래는 부처였음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문양입니다. 그 문양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자신이 이 세계의 중심이요, 곧 자신이 부처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말을 마치자 갑자기 손으로 애써 만든 만다라를 쓸어버리는 티벳승. #티벳사원의 마당 티베승이 한가롭게 온다. 신돈이 기다리듯 서있다. 티벳승:(웃으며)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까 신돈:.....부탁이 있습니다 티벳승:......예 신돈: 연경에서 만난 이곳 스님 한분이 라마의 사원을 찾아가면 온갖 주술을 배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티벳승:......(미소) 신돈: 제가 태어난 고려는 궁핍하기 그지없는 나랍니다. 더구나 원제국의 속국이지요. 그러니 백성들의 삶이 오죽 고단하겠습니까 티벳승: 주술은 배워서 뭘 하시려구요 신돈: 세상을 바꿔놓고 싶습니다 티벳승:(웃으며) 가난하기는 여기나 그곳이나 다를 게 없습니다 합장하고 간다. 신돈: 스님 티벳승:.....(멈춘다) 신돈: 부디 소승에게 그 비법을 전수해주십시오 티벳승:..... 돌아선 채 미소 짓는. ---------------------------------------------------------- #동. 사원의 한 방(밤) 웅크리고 잠이 든 원현. 옆에는 지효가 반듯이 누워 잠이 들었다. 원현:...... 가만히 눈을 떠서 바라본다. 흐릿한 촛불 아래 티벳승이 준 주술법이 든 낡은 책을 읽고 있는 신돈. 혼자서 심각하고 빙긋하고 그러다 벽에 머리를 기대고 생각에 잠기는 신돈. 원현:....... 빙긋 웃고 다시 옆으로 누우며 잠이 든다. -----------------------------------중국 촬영분 중에서 ----------------- #동. 사원의 앞 어린 라마승들과 햇볕을 쪼이며 놀고 있는 티벳승. 신돈이 온다. 주술서를 잔뜩 안고 있다. 티벳승: 그걸 벌써 다 읽었습니까 신돈: 예. 한자도 빠짐없이 머릿 속에 담아 두었습니다 책을 내민다. 티벳승:(책 받아들고)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책을 안고 사원 안으로 들어간다. 어린 라마승들이 티벳식 놀이를 하고 있다. 바라보고 있는 신돈. 티벳승이 책을 한아름 안고 나온다. 티벳승: 여기에 들어 있는 주술들은 사람에게 쓰면 안되는 것들입니다. 허나 고려에서 수만리 길을 오셨다니 공부나 하시라고 빌려드리는 겁니다 신돈:(환해져서) 고맙습니다 책을 받아들고 가는 신돈. 다시 어린 라마승들과 놀이를 하는 티벳승. ----------------------------------------------------------- #사원의 한 방 짐을 꾸리고 있는 지효. 원현:(들어오다 놀라서) 지효스님. 짐은 왜 꾸리십니까 지효: 저는 그만 떠나야겠습니다 원현: 어디로요 지효: 글쎄요. 갈 수만 있다면 혜초스님의 발자취를 따라 천축국까지 가보고 싶습니다만.....그게 될른지요 원현: 여기까지 같이 와서 고생했는데 떠날 때도 같이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효: 저는 아무래도 편조스님과 가는 길이 다른 것 같습니다 웃어보이는 지효. 부지런히 짐을 꾸린다. ------------------------------중국 촬영분 중에서 --------------- #티벳 사원. 마당 티벳승들이 불공을 드리러 사원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 속에 섞여있는 신돈과 원현. 티벳승의 복장을 하고 있다. 지효:........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망루에서 티뱃승 두 사람이 둥첸을 불고 있다. 사원 안으로 들어가는 신돈과 원현. 지효, 그 모습을 향해 합장하고 등에 짊어진 행장을 추스르고 뒤돌아서 간다. #동. 티벳 사원. 앞 지효, 나온다. 뒤돌아본다. #동. 사원의 방 안 열심히 몸을 흔들며 독경하는 티벳승들. 신돈과 원현도 제법 딜부와 금강저를 흔들며 독경을 따라하고 있다. #동. 사원. 앞 지효:........ 또 한번 합장하고 길을 꺼난다. 그 뒤로 언덕에 우뚝 솟은 티벳의 사원. #선경전의 안 희비: 정방을 폐하려고 하는데 어찌 생각하십니까 (*정방; 고려 후기에 관리들의 인사를 담당하던 기구) 이제현: 정방을 폐하다니오 놀래서 본다. 용상의 충정왕과 희비. 윤시우:(나서며) 조정 대신은 고사하고 지방의 말단 관리까지 정방의 재가를 받아 시행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고서야 어찌 국왕전하께서 나라를 다스릴 수가 있겠습니까 이제현: 현재 정방은 원나라의 지휘를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지라 윤시우: 허나 정방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원나라가 아니라 기철의 형제들이잖습니까 최만생:...... 고개 숙이고 시립한 최만생의 눈이 반짝한다. 윤시우: 기철이 상국의 명을 빙자하여 이 나라 인사를 제멋대로 주물러왔다 그 말씀입니다 이제현:(신음) 희비: 정방을 폐해야겠습니다 이제현: 대비마마. 지금당장 정방을 폐하면 원과 충돌할 것이 불을 보듯 환한 일입니다. 그것을 감당할 대책이 있으신지요 희비: 그러니 판삼사사 대감과 의논을 하는 게 아닙니까 이제현: 말인즉은 정방을 폐지해야 옳을 것이나.... 신음하듯 한숨을 내쉬는 이제현. #기철의 사랑방. 안 기철: 정방을 폐해? 최만생: 제 두 귀로 분명히 들었습니다 기철: 이 년놈들이 내 손과 발을 짤라버리겠다 최만생:(앞으로 기어 나오며) 아무래도 대감께서 연경에 한번 다녀오셔야겠습니다. 대비께서 연경으로 온갖 패물을 바리바리 실어서 보내고 있는지라 기철:(탁상 치며)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 내 누이가 딱 그 짝이다. 원의 황후가 되었으면 부족한 것이 없겠거늘 희비가 바치는 금은보화에 두 눈이 멀었으니 최만생: 대비와 윤시우가 귓속말을 주고받기는 황후폐하가 저희들 수중에 들어있다고 하였습니다 기철:(버럭) 지가 누구 덕에 그 자리에 올랐는데. 내가 아니었으면 지금도 대궐의 마루바닥이나 닦고 있을 년이 이 오래비 덕에 원의 황후가 됐거늘 #동. 집. 앞 뒤뚱거리며 말 위에 오르는 기철. 몸이 무거워 자꾸 떨어지는 것을 받쳐주는 청지기. 기원: 형님. 갑자기 어딜 가신다는 겁니까 기철: 야, 이놈아. 밀어올리지 않고 뭘 하고 있는 게냐 청지기: 예, 대감마님 기철의 엉덩이를 미는 청지기. 겨우 말에 타는 기철. 기원: 형님 기철: 기원아. 내 말 잘 듣거라. 내가 없는 동안 그저 죽었소 하고 있거라. 윤가 놈들이 무슨 짓을 하든 그저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하고 있으란 말이다 (집 안에 대고) 어머니. 집안 망하게 생겨서 연경의 누이 좀 만나러 갑니다. 몸 조리 잘하세요. 이럇, 가자 뒤뚱거리듯 말을 몬다. 따르는 시종들. #희비의 방 안 희비: 급하긴 했나 봅니다. 체면 불구하고 연경으로 떠난 것을 보니 윤시우: 지 놈이 가봤자 별 수가 있겠습니까 희비: 손은 써 놓으셨겠지요 윤시우: 염려마십시오. 기황후의 입이 쩌억 벌어지게 벌써 한 보따리 실어 보냈습니다 희비: 잘하셨습니다 웃어대는 희비와 윤시우. #대궐의 길 이제현, 온다. 염제신이 헐레벌떡 달려온다. 염제신: 익재대감. 그게 사실입니까. 강릉대군이 원나라 공주와 정혼을 했다는 게 이제현: 으흠 염제신: 원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나라 꼴이 제대로 되려면 강릉대군이 돌아와서 보위를 이어야겠거늘 강릉대군마저 원의 꼭두각시가 돼버렸으니 이인복:(오며) 강릉대군이 돌아온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습니까 염제신: 대궐의 아녀자가 어린 왕을 앞에 세워놓고 섭정을 하는 꼴은 안볼 거 아닙니까 이인복: 강릉대군 뒤에는 덕경부의 홍씨가 있잖습니까. 그게 그거지요 염제신: 희비가 대비랍시고 날뛰는 꼴이 원 이인복: 희비 덕분에 기철의 코가 납작해졌으니 고마운 일이 아닙니까. 예, 그 놈이 그놈입니다. 이 놈이 물러가면 저 놈이 와서 해먹고, 저놈이 밉다 싶으면 이제현: 그만 빈정대시게 성산군 이인복:(정색하고) 익재대감. 왕실이 돌아가는 꼴만 보고 한숨만 내쉴 때가 아닙니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나라를 바로 잡아야지요 염제신: 옳거니 이제현: 으흠 이인복: 익재대감께서 나서시면 따르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겁니다 이제현: 그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닐세 염제신: 우유부단하시기는 이제현:(버럭) 고려가 원나라를 상국으로 섬기고 있는 동안은 택도 없는 소리다 그 말씀이에요 염제신:(멀쓱) 이제현: 생각을 해보세요. 우리가 언제 우리 손으로 국왕을 세운 적이 있소이까. 저들 마음대로 고려의 왕을 세웠다 폐했다 하지 않았소이까. 나라의 기둥인 국왕이 허수아비거늘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염제신: 그러니 강릉대군이라도 모셔와서 이제현: 강릉대군은 기황후 사람입니다. 강릉대군이 오면 다시 기철이의 세상이 됩니다 이인복: 그러니 그 놈이 그 놈이라는 거지요 웃어대며 가는 이인복. 염제신:(뒤에다 대고) 자네들이 나서. 젊은 사람들이 나서야 나라가 바로 서지 못들은 척 가버리는 이인복. #이인복의 사랑방 안 최영(호군): 익재대감께선 뭐라고 하십니까 이인복: 틀렸네. 늙은이가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느라고 최영: 그래도 그 어른밖엔 없습니다. 그 어른이 앞장을 서줘야 일을 도모할 수가 있습니다 이인복:(한숨) 최영: 문신들이 나서주고, 젊은 무인들이 힘을 합치면 그까짓 희비와 기철을 못당하겠습니까 이인복: 설마 우리의 거사가 성공한다고 해도 원이 군대를 보내면 우리가 무슨 힘으로 막겠나 최영: 그렇게 쉽게 군대를 보내질 못할 겁니다. 몽골족에게 눌려 살던 한족들이 여기저기서 난을 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이인복:(눈이 번쩍) 최영: 문제는 고려의 기상이 땅에 떨어져 있다는 겁니다. 그것부터 살려놔야 희망이 있지요 이인복: 차곡차곡.....하나씩 해나가보세 최영: 그래야지요. 이 나랄 일으켜 세워야지요 마주치는 눈길. #법왕사. 법당 안 불상. 절하는 명덕태후. 불상을 바라본다. 명덕태후:(마음의 소리) 이대로 죽으라 하시는 겁니까. 이 사무친 한을 다 가슴에 안고 이대로 죽으라 하시는 겁니까. 지아비와 큰아들과 손주 둘이 다 고려의 왕입니다. 그런데도 대궐 문턱을 넘어보질 못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 두 눈을 부릅뜨고 불상을 노려보는 명덕태후. 그 눈에 고이는 피눈물. 명덕태후:(마음의 소리) 전생에 지은 죄가 커서 그렇습니까. 어미의 죄가 커서 그 아이를 오랑캐 땅에 잡아 두시는 겁니까. 차라리 제 몸에 벼락을 내리치시지요. 풀지 못할 업보라면 제 몸을 태워서 풀어주세요. 그러면 혼이라도 날아서 대궐을 들어가겠습니다 부들부들 떠는 명덕태후. #동. 뜰 나오는 명덕태후. 김상궁이 얼른 달려가 부축한다. 힘이 빠져 김상궁에게 의지해 계단을 내려오는 명덕태후. 그러다 계단을 헛딛고 휘청한다. 멈칫 서있던 혜비가 달려가 명덕태후를 부축한다. 그 손을 매정하게 뿌리치는 명덕태후. 다시 계단을 내려온다. 멈춘다. 보우가 서있다. 명덕태후:(환하게 웃으며) 보우선사님 보우:(합장하며) 날씨가 화창합니다. 무엇을 그리 열심히 비셨습니까 명덕태후:(웃으며) 늙은이 소원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손주 되시는 국왕전하께서 그저 만수무강하시고 (웃음으로 얼버무리는데) 보우: 나무관세음보살 또 한번 허리를 굽혀 합장하는 보우. #기황후의 처소. 방 안 기철:(흥분해서) 이 오래비의 충정을 그렇게도 몰라주십니까 기황후:(싱긋 웃으며 듣고 있는) 기철: 황후 폐하께서 뭐가 필요하다 한마디만 하시면 이 오래비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황후폐하께서 원하시는 걸 구해서 올렸습니다. 이 오래비가 황후폐하를 한번이라도 소홀히 대접한 적이 있었습니까 기황후: 예, 잘 압니다. 알구말구요 기철: 요즘 우리 기씨 문중이 당하고 있는 일을 일일이 다 고해바치면 황후폐하께서는 눈물을 흘리시고야 말 겁니다. 저는 그래도 좀 낫습니다. 기씨 문중의 어른으로서 아녀자처럼 눈물만 흘리고 있을 순 없지 않습니까. 허나 연로하신 어머니께선 (얼른 눈물 훔치며) 요즘은 웬 잔병이 그리도 많으신지......이, 이 가슴속에 홧병이 드셔서 식음을 전폐하고 계시니 가슴을 치는 기철. 기황후:(냉정하게) 오라버니. 그 일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기철:(놀래서 보는) 기황후: 강릉대군을 고려로 보내줄 순 없어요. 거기다 고려의 국왕이라니 (고개를 돌린다) 기철: 황후폐하. 이대로 놔두면 나라가 망하게 생겼어요. 열 세 살짜리 어린 아이가 용상에 앉아 있으니 나랏 일이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더구나 어미란 자가 섭정이랍시고 친정 식구 챙기기에 급급해서 조정의 요직이란 요직은 모조리 윤씨 일색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러니 백성들의 생활은 또 얼마나 고달프겠습니까 기황후: 오라버니께서 언제부터 그렇게 나라 걱정을 하셨습니까 기철: 끄응 기황후: 그 동안 그만큼 부귀영화를 누리셨으면 됐습니다. 그만 돌아가세요 기철:(대들듯) 대체 강릉대군을 보내줄 수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디 그 까닭이나 말씀을 해주세요 기황후:(비웃듯 본다) 기철: 아예 이 오래비와 인연은 끊으실 작정입니까 기황후: 내 아들이 먼접니다 기철:........ 기황후: 내 아들이 태자가 되고 나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보십시다 아예 고개를 돌려버리는 기황후. #동. 뜰 나오는 기철. 씨근대며 전각을 노려본다. 기철: 대체 만리 길을 마다않고 달려온 이 오래비를 이렇게 홀대를 해도 되는 겁니까. 어머니가 홧병으로 돌아가시면 집안 꼴 보기 좋겠습니다 #고려촌의 술집. 앞(밤) 화려한 등불들. 정세운을 강제로 끌고 오는 김용과 조일신. 정세운: 이 손 놓으시게. 난 가기 싫으이 뿌리치는 정세운. 김용: 이 사람. 덕성부원군이 연경까지 와서 고생하는 우리들을 위해 주석을 마련했는데 그걸 마다해서야 되겠나 정세운: 기철이 어떤 놈인지 몰라서 그러나. 나라를 말아 먹은 놈이야 조일신: 난 뭐 밸도 없는 줄 아나. 속에선 구역질이 치밀지만 강릉대군을 위해서 참는 거야 김용: 기철이 강릉대군을 왕으로 옹립하기 위해서 왔다고 하질 않나. 그러니 기철의 비위를 맞춰줘야 강릉대군께서 소원성취를 하실 게 아닌가 장세운: 대군께선 그런 자의 도움은 원치 않으시네 김용: 답답하기는. 대군께서도 속으로는 좋아하고 계셔. 그러니 당신께서는 안 가시겠다고 하면서도 우리 보고는 넌지시 가보라는 눈빛이 아니셨나 정세운: 으음 김용: 들어가세. 덕성부원군의 미움을 받아서 좋을 게 뭐 있나 조일신: 옳은 말일세.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대단한 농이나 한 듯 웃어대는 조일신. 김용: 어서 들어가세 망설이는 정세운을 끌고 안으로 들어가는 김용. #동. 안(밤) 들어서는 세 사람. 고려인으로 가득한 안. 한꺼번에 웃음이 터지고 있다. 기철: 내 말이 틀렸나. 중국을 정복한 건 몽골국이지만 그 몽골의 황제를 정복한 건 내 누이동생이니, 진짜 중국을 정복한 건 우리 고려다 그 말이지 또 다시 터지는 환성과 박수. 기철: 날 욕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소. 누이의 권력을 믿고 온갖 행패를 부리는 개망나니, 그게 나 기철이요 수군수군 눈치를 본다. 기철:(손 들며) 내가 오늘 황후폐하와 담판을 짓고 나왔소. 이대로 가다간 고려가 망하게 생겼으니 왕다운 왕을 고려에 세워야겠다고 말이오 와아 터지는 환성과 박수. 신나게 박수치는 김용과 조일신. 정세운:..... 입 꽉 다물고 바라본다. 기철: 자, 마십시다. 오늘밤은 맘껏 마시고 취해봅시다 술잔을 높이 들더니 벌컥벌컥 들이키는 기철. 풍악이 울리고 춤추는 기녀들. 기철: 크윽 다 마시고 술잔을 내려놓는 기철. 김용:(다가와서) 정말 대단하신 열변이었습니다 조일신: 고려에 왕다운 왕을 세워야하신다는 그 말씀이 정말 통쾌하였습니다 기철:...... 못마땅해서 훑어본다. 김용:(웃으며) 덕성부원군대감 (나서는데) 기철: 강릉대군은 보이질 않는군 조일신: 대군께서는 마침 고뿔에 걸리시는 바람에 기철: 고뿔이 아니라 염병에 걸렸어도 인사는 와야지. 내가 누구 때문에 이 먼 길을 달려왔는데 정세운: 말씀이 좀 과하십니다 기철: 뭐, 뭐야 조일신: 정공 (눈을 부라리는데) 정세운: 덕성부원군께서 정녕 강릉대군을 위해서 여기까지 오셨다면 응당 먼저 강릉대군을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는 것이 예의가 아니겠습니까 기철: 으음 좀 당황해서 얼른 콧털 뽑는 기철. 김용:(얼른 나서며) 하긴 그렇습니다. 강릉대군께선 왕족이시니 기철: 그러지 뭐. 강릉대군께서 그렇게 격식을 따지시겠다면 내가 인살 가지. 가자구. 가면 될 거 아닌가 손을 내젓는 기철. #강릉대군의 사저. 방 안(밤) 반듯이 앉은 공민왕. 기철: 나는 그저 무심히 생각을 하였소이다 안도치:(찡그리는) 기철: 내가 나이 많이 먹은 것만 생각하고 왕족이니 뭐니 하는 서열 같은 건 미처 생각을 못했소이다 공민왕:.....(차겁게) 그래요 기철: 우리가 초면이지요? (주정부리듯) 대군께서 어려서 볼모로 끌려간 것만 아는 지라 이렇게 반듯하게 장성을 하셨는지는 몰랐소이다 안도치:(잔기침) 기철: 자네는 왜 아까부터 오줌 마려운 강아지마냥 킁킁거리나 안도치: 덕성부원군께서 은근슬쩍 대군마님께 하대를 하시는 지라 기철: 하대라? (껄껄웃으며) 그럴 리가 있나 이 사람아. 강릉대군을 고려왕으로 추대하려고 온 사람이 하대라니 공민왕: 그건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닙니다 기철:(무슨 소리냐는 듯 우스꽝스럽게 보는) 공민왕:(가만히 웃으며) 덕성부원군께서 나를 오해하셨습니다. 나는 어린 조카의 왕위를 탐내는 그런 비열한 인간이 아닙니다 기철: 비열하다니, 원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십니까. 무능한 왕을 몰아내는 건 공민왕: 하여간 나는 그럴 생각이 없으니 그만 돌아가시지요 일어나 등을 돌려버리는 공민왕. 기철: 으흠 공민왕:..... 기철: 그게 진심이오이까 공민왕:...... 기철: 이거야 원 내가 헛고생을 했구만 돌아서 나가려는 기철. 공민왕: 명분이 있어야지요 기철:(멈추더니) 명분? 명분이라 하였소이까 공민왕:........ 돌아서는 공민왕. 기철:...... 공민왕: 아무리 쓰러져가는 나라의 왕이지만 명분도 없이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잖습니까, 그 자리가 #동. 뜰(밤) 기철:(나오며) 제기랄. 명분은 무슨 명분. 힘있는 놈이 힘으로 뺐는데 무슨 얼어죽을 놈의 명분이 필요하다는 게야 김용: 강릉대군의 그 말씀은 기철: 그만 두라고 그래. 저 없으면 사람이 없을까봐 화가 나서 나간다. 김용: 잠깐만 제 말씀을 들어보시지요 덕성부원군대감 부지런히 따라나가는 김용과 조일신. 정세운:..... 방을 바라본다. #동. 안(밤) 강릉대군:.......(생각에 잠긴) 안도치:(눈치 보며) 대군마님도 참. 못이기는 척 하시고........ 강릉대군:....... 안도치: 하긴 급하게 먹은 음식이 체한다는 속담이 있기는 있습니다만 아쉬워서 공민왕의 눈치를 보며 한숨 내쉬는 안도치. #기황후의 처소. 안(밤)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 기황후. 박불화: 황후폐하. 이러시면 어떻겠습니까 기황후:(본다) 박불화: 강릉대군을 심왕으로 삼으시면 기황후: 심왕이라니 박불화: 황실에선 대대로 심양과 요양지역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을 다스리기 위해 고려왕족에게 심왕이라는 봉작을 내렸습니다. 대개는 고려왕이 심왕을 겸했으나 고려의 충선왕이 충숙왕에게 보위를 넘겨주면서 심왕의 자리는 조카인 왕고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기황후: 고려의 국왕이 두 사람이란 말이냐 박불화: 그런 셈이지요 기황후: 으음 박불화: 강릉대군을 심왕으로 봉하시면 보탑실리 공주의 소원을 들어주는 셈이고, 고려의 왕은 그대로 두고 황후폐하께서 부리시는 셈이니 기황후: 심왕은 명목뿐인 왕이란 말이냐 박불화: 예, 황후폐하 기황후: 딴은 좋은 생각이구나. 내일 노국공주를 불러 그리 일러야겠다 #원순제의 처소. 안 원순제: 어째서 싫다는 거냐 노국공주:........ 원순제: 고려왕보다는 심왕이 더 좋은 자리가 아니냐 노국공주:(무릎 꿇으며) 폐하. 강릉대군을 고려의 국왕으로 봉해주세요. 딴 자리는 싫습니다 원순제: 으음 노국공주: 당분간은 연경을 멀리 떠나있고 싶습니다. 자꾸만 쿤란태자의 얼굴이 떠올라서 흐느끼는 시늉하며 힐끔 원순제를 본다. 원순제:(당황해서) 그렇겠지. 나도 쿤란 생각이 자꾸 나는데 너는 오죽하겠느냐 노국공주:(더 눈물 닦으며) 고려는 남편의 나랍니다. 거기서 새출발을 하게 해주세요 폐하 울면서 어리광부리는 노국공주. #동. 복도 살며시 나오는 공주. 홍화: 승낙을 받으셨습니까 노국공주:(생긋 웃으며) 폐하께선 자나깨나 쿤란태자 걱정만 하시는 모양이다. 좋은 소식이 있을 거야 (가는데) 홍화: 그나저나 공주마마. 강릉대군한테 그런 모욕을 당하시고도 이 고생을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노국공주: 그 분은 내 남편이야. 그런 모욕 쯤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나가는 노국공주. 삐죽하는 홍화. #강릉대군의 처소. 안(밤) 촛불. 조심스럽게 차를 따르는 노국공주. 공민왕:......(가만히 한숨 쉬며) 미안하오 노국공주:...... 공민왕: 일전엔 내가 심했소. 내 본의가 아니었으니 노국공주: 차나 드세요 찻잔을 올린다. 공민왕:....... 노국공주: 고려는 원의 속방이라고 들었습니다. 대군께서 원의 볼모로 끌려와 온갖 수모를 당하셨으니 고려의 국왕이 되시면 명군이 되고도 남으실 겁니다 공민왕: 어째서 마음의 문을 연 거요 노국공주: 사슴을 향해 쏜 제 화살을 대군께서 막으셨습니다 공민왕:....... 노국공주: 그 자비심으로 고려의 성군이 되세요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올리는 노국공주. 공민왕도 찻잔을 들어올린다. 문득 미소 짓는 공민왕. 공민왕: 고맙소.....부인 단숨에 차를 마시는 공민왕. 뜨거워서 쩔쩔 맨다. 그 바람에 웃는 노국공주. 뜨거워서 어쩔 줄 모르면서도 따라 웃는 공민왕. #동. 뜰(밤) 웃음 소리. 마주보는 안도치와 홍화. 방의 불이 꺼진다. 환하게 웃는 안도치. 삐죽하는 홍화. 안도치: 걸핏하면 입을 삐죽거리니 그러다 요 입이 돌아가면 어쩌려고 그러누 홍화의 입을 잡아 흔드는 안도치. #동. 방 안(밤) 어둠 속에 -. 나란히 누운 공민왕과 노국공주. 노국공주: 몇 살 때 고려를 떠나오셨습니까 공민왕:.....열 두 살이오 노국공주:(돌아누우며) 고향 땅이 기억이 나십니까 공민왕:......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공민왕의 미소. 노국공주:....... 팔베개를 하고 공민왕의 대답을 기다리는 노국공주. 공민왕: 고려는 산이 많은 나라지요. 첩첩산중이란 말을 들어봤습니까.....산 위에 오르면 또 다른 산이 가로 막고 있고....높고 낮은 산들이 겹겹이 늘어서있지요..... 노국공주:...... 재밌다는 듯 몸을 웅크리는 노국공주. 공민왕: 산뿐입니까. 산마다 깊은 계곡을 품고 있는데 사시장철 물이 마를 날이 없어요 노국공주:.... 조금 졸립다. 나오는 하품을 얼른 집어삼키는 노국공주. 공민왕: 어머닌 어린 제 손을 잡고 산을 오르시곤 했어요. 산중에 숨어있는 사찰을 찾아 부왕의 뒤를 이어 내가 고려의 왕이 되게 해달라고 비셨어요. 무슨 까닭인지 어머닌 내 위의 형님보다 나를 더 사랑하셨어요 문득 노국공주를 돌아본다. 두 손으로 팔 베개를 하고 잠이 든 노국공주. 공민왕:..... 노국공주:..... 공민왕:....... 미소. 바로 눕더니 고향 생각이 나듯 가만히 한숨을 내쉰다. ------------------------------중국 촬영분 중에서 ---------------- #티벳의 사원. 마당 마니통들. 신돈:.... 가만히 손으로 굴려본다. 마니통이 돌아가는 소리. 티벳승:(티벳어로) 떠나실 겁니까 신돈:....... 티벳승: 그래 원하시던 것은 다 얻으셨습니까 신돈:(미소) 티벳승: 따라오시지요 앞서가는 티벳승. #동. 사원의 한 방 마주앉은 티베승과 신돈. 티벳승: 밀라레빠는 위대한 성자이자 시인이었습니다 신돈:..... 티벳승: 밀라레빠는 부유한 유목민의 아들로 태어나 부족함이 없이 살았지요. 그러나 아버지가 죽자 큰아버지에게 재산을 다 뺏기고 길거리로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밀라레빠는 그 원수를 갚기 위해 세상을 헤매다 사람을 죽이는 주술과 우박을 내리게 하는 주술을 배워 고향으로 돌아와 큰아버지의 자식과 형제 등 서른 다섯 명을 죽이고 폭풍우를 일으켜 고향의 농토를 황무지로 만들어버렸지요 신돈:....... 티벳승: 그러나 원수를 갚고나니 그 동안 밀라레빠의 가슴 속에 가득 차있던 원한은 다 사라지고 살인에 대한 죄의식만 대신 가득찼습니다 신돈:..... 티벳승: 또 다시 세상을 방황하기 시작한 밀라레빠는 좋은 스승을 만나 큰 깨달음을 얻었고 이윽고 성자가 됐다고 합니다 신돈:....(바라보더니) 어째서 그런 얘기를 내게 해주시는 겁니까 티벳승:..... 신돈을 바라보더니 가만히 미소 짓는 티벳승. 고개 숙여 두 손을 모아 합장하는 티벳승. 다시 고개 들더니 신돈을 향해 어린애처럼 환하게 웃어 보인다. 그 티벳승의 웃음. #연경의 거리 신돈이 성큼성큼 온다. 뒤늦게 신돈을 부지런히 따라오는 원현. 원현: 어딜 그렇게 급히 가시는 겁니까 편조스님 신돈: 우선 요기부터 채워야 할 게 아닌가 #동. 고려촌의 술집. 앞 신돈, 온다. 원현: 강릉대군과는 상종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신돈:...... 문이 닫혔다. 문에 아예 판자를 대고서 폐쇄를 했다. 원현: 대관사로 가시지요. 어쩌면 지효 스님도 와 있을지 모릅니다 신돈: 이런 낭패가 있나. 오랜만에 술과 고기 맛을 좀 보려고 했더니 원현:(펄쩍 뛰며) 술과 고기라니오. 그 동안 쌓은 불공이 아깝지 않으십니까 신돈: 속세로 나왔으니 속세의 법을 따라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원현스님 원현의 코를 잡아 흔들며 웃는 신돈. #강릉대군의 사저. 앞 신돈과 원현, 온다. 문 앞에 늘어선 사람들. 진상품들을 들고 있다. 신돈, 어리둥절해서 사내에게 묻는다. 신돈: 이 댁에 무슨 경사가 났습니까 사내:(훑어보더니) 보아하니 스님 같으신데 벼슬은 왜 탐하시오 신돈: 벼슬을 탐하다니오 사내: 시치미 떼기는 신돈:(웃으며) 이 댁 어른이 인심이 좋다고 해서 밥 한 끼 얻어 먹으려고 왔는데 웬 벼슬 타령입니까 (장난치듯) 나무.....관세음보살 사내: 이 댁 주인이 고려의 왕자님이신데 원나라 공주와 혼인을 해서 조만간 새 왕이 된다는 소문을 듣고 너도 나도 한 자리 얻을까하고 기웃거리는 거요. 헌데 통 문을 열어주지 않으니 신돈:...... 새삼 대문을 바라보는데 대문이 열리고 안도치가 나온다. 우르르 몰려가는 사람들. 안도치: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누. 대군마님께서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시는데 이렇게 생떼를 부리면 어떡하누. 그러니 모두들 돌아가세요 문을 닫으려고 하는 안도치. 아우성치며 대문을 미는 사람들. 안에서 장정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사람들을 밀어낸다. 안도치: 벼룩이도 낯짝이 있다고 우리 대군께서 외로우실 때는 그림자도 안 비추던 놈들이 무슨 염치로 이러누. 썩 물러들 가요 악을 쓰는 안도치. 신돈: 안환관 어른. 나 좀 봅시다 손을 흔드는 신돈. 두리번거리는 안도치. 신돈: 여깁니다. 여기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신돈. 안도치:(보더니) 아이구 이게 누구신가. 땡초 중의 땡초, 편조스님 아니신가 달려와 반기는 안도치. #동. 방 안 공민왕:...... 지긋이 바라보며 싱긋 웃는 공민왕. 신돈:(웃음이 남아있는) 공민왕: 그래.....등에 큰 혹이 달린 낙타는 찾으셨는가 신돈:(두 손 모아 합장하며) 대군께서는 소원성취를 하셨습니다 공민왕:(버럭) 이런 무엄한 놈을 보았나. 천하디 천한 노비의 자식이 누굴 희롱하는 게야 신돈:....... 공민왕:....... 신돈:.... 기묘한 신돈한 미소 <신돈 제9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