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 11회 <신돈> -11회- #연경의 어느 호숫가(밤)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신돈:......(바라보는) 노국공주:.....(대답을 기다리는) 신돈:..... 그 눈길을 피하듯 싱긋 웃으며 몸을 돌리는 신돈. 노국공주:(잡듯이) 백성들이 승복하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까? 신돈:(다시 본다) 노국공주: 나는 누구보다 고려의 백성들이 전하와 같은 왕다운 왕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승복을 하지 않을 거라니오 신돈: 그 까닭을 알고 싶으십니까 노국공주: 예. 나는 알고 싶습니다 신돈:(허리 굽히며) 말씀을 낮추십시오. 소승은 노비의 자식입니다 노국공주: 전하께서 마음을 터놓고 대하는 사람은 스님뿐이십니다. 전하께서 귀천을 따지셨다면 그리하셨겠습니까? 그러니 나 역시 스님을 믿고 의지하고 싶은 겁니다 신돈: 자비로우십니다 합장해보이는 신돈. 노국공주: 나는 고려의 왕비가 되기 전까지 고려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먼저 살펴본 것은 전하의 심복들입니다 신돈:..... 노국공주: 하나같이 부귀영화를 구할 뿐 직언을 서슴지 않는 충복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신돈:(웃으며) 소승은 잃을 것이 없으니 직언을 드린 겁니다 노국공주:(막듯이) 어찌하면 전하께서 당당한 고려의 국왕이 되시겠습니까 신돈:..... 노국공주: 어찌하면 백성들이 전하를 믿고 의지하고 따르겠느냐고 묻는 겁니다 신돈:..... 가만히 바라보는 신돈의 미소. 신돈의 대답을 기다리는 노국공주. 신돈: 고려에 가시기 전에 고려의 역사를 먼저 배우십시오. 그러면 고려인이 어떤 민족인지 아시게 될 것입니다 노국공주:.... 신돈: 그런 다음 고려의 말과 풍습을 배우십시오. 그러면 고려인의 마음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 두 가지를 다 아시게 되는 날 왕비전하께서는 고려와 고려인을 사랑하시게 될 것입니다 허리 숙여 합장하고 돌아서 가는 신돈. 노국공주: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신돈:.......(멈춘다) 노국공주: 어찌하면 전하의 사랑을 얻을 수가 있습니까 신돈:......(돌아서본다) 노국공주: 나는 전하의 마음을 얻는 것이 더 시급합니다 신돈:....(빙긋 미소) 노국공주:(애타게 대답을 기다리는) 신돈: 고려는 원의 속국입니다. 그 치욕을 면하기 전에 어찌 국왕전하께서 왕비전하께 당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고려가 원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이루는 날 비로소 국왕전하께서는 당당한 사나이로 왕비전하 앞에 설 것입니다 빙긋 웃고 홀연히 가는 신돈. 바라보는 노국의 눈이 빛난다. #강릉대군의 사저. 문 앞(밤) 서성거리는 홍화. 노국공주가 온다. 홍화: 마마. 어딜 다녀오시는 겁니까 노국공주: 전하께서는 들어오셨느냐 홍화: 예, 마마 노국공주: 나를 찾으시더냐 홍화:(머뭇거리다) 황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몹시 침울해 하시옵니다 노국공주:..... 가만히 한숨 쉬고 안으로 들어가는 노국공주. 홍화:(따라가며) 앞으로는 어디 간다는 말씀도 없이 나가시면 아니되옵니다. 전하께서 공주마마를 찾으실까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르옵니다 #동. 뜰(밤) 노국공주를 따라 오던 홍화가 멈춘다. 노국공주가 강릉대군의 방문 앞에 서있다. 뭐라고 하려다 안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입을 다무는 홍화. 공민왕:(소리) 나는 사랑하지도 않는 여인과 혼인을 해서 고려의 국왕 자리를 얻었다 #동. 안(밤) 괴로운 공민왕. 안도치: 전하. 역대 선왕의 처지가 모두 그러하옵니다. 어째서 그리 자책을 하시는지 공민왕:(노려보듯 본다) 안도치:(얼른 웃으며) 설령 그렇다하셔도 무엇이 걱정이옵니까. 고려의 국왕이 되어 금의환향하신 다음 마음에 드시는 여인을 골라 후궁으로 삼으시면 공민왕:(버럭) 몽골의 여자니라 #동. 뜰(밤) 노국공주:....... 공민왕:(소리) 내가 몽골의 여자와 혼인을 했으니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느냐. 고려의 임금 자리가 탐이 나서 그리했다고 할 것이 아니냐 안절부절하는 홍화. 노국공주를 바라본다. 노국공주:..... 오히려 미소같은. #동. 안(밤) 공민왕: 내 아버지신 충숙왕께서도 왕위를 지키기 위해 몽골여자와 혼인을 하고 고려의 여인인 내 어머니를 버리셨다. 그 때문에 부왕께선 평생 백성들의 조롱을 받으면서 사셨느니라 안도치: 전하 공민왕: 내 아버지의 꼴이라니. 왕위를 지키고 싶어 몽골 여자와 결혼을 해놓고는 밤마다 대궐을 빠져나와 내 어머니를 만나셨다. 마치 도둑 고양이처럼 몽골 계집의 눈을 속여 가며 대궐을 빠져나오던 내 아버지 꼴을 상상해보거라 안도치: 전하. 왕비 전하께서는 다르시옵니다 공민왕: 다르긴 뭐가 다르단 말이냐 #동. 뜰(밤) 공민왕:(소리) 보탑실리의 마음 속에는 쿤란태자가 살아 있느니라 노국공주:..... 문득 치솟는 눈물. #대관사의 뒷 뜰(밤) 웃통을 벗어던진 신돈이 물을 퍼서 머리에 붓는다. 신돈: 어, 시원하다 원현: 대체 어디서 이런 봉변을 당한 겁니까 신돈: 봉변이라니 원현: 온 몸에 멍투성인데 누굴 속이려고 그럽니까 신돈: 그럴 일이 있었네 허허 웃으며 다시 물을 파서 끼얹는 신돈. #동. 방 안(밤) 새 옷 입는 신돈. 원현: 어디 좀 봅시다. 얼마나 다쳤는지 신돈:(원현의 손 뿌리치며) 그럴 일이 있었대도 원현: 이게 보통 일입니까 신돈: 보통 일이 아니면? 동냥질이나 해먹는 중놈이 일진이 사나워서 성질 고약한 놈들한테 매를 좀 맞았기로서니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구 원현: 편조스님이 보통 분이냐 그 말입니다.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편조스님이 그렇게 맞았을 때는 때린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거지요 신돈: 이 사람. 설마하니 강릉대군께서 날 두들겨 패셨겠는가 원현: 그런데 왜 맞고만 있었단 말입니까 신돈: 어허. 꼬치꼬치 캐묻기는 벌렁 누워버리는 신돈. 원현:(들여다본다) 신돈:(코 고는 시늉) 원현: 편조스님 신돈을 흔든다. 신돈:(벌떡 일어나며) 그래. 원현스님 말이 맞았네. 행여 벼슬자리라도 하나 얻어 볼까 하고 강릉대군을 만나러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하고 매까지 얻어맞고 돌아왔네. 그래 이제 속이 시원하신가 다시 누워버린다. 원현:...... 갑자기 눈물을 닦는다. 신돈:(다시 벌떡 일어나 앉으며) 이젠 눈물까지 짜시는가 원현: 분해서 그러지요 신돈: 분하다니 원현: 사실대로 말하면 편조스님께서 강릉대군을 만나러 간다기에 은근히 속으론 좋아했습니다. 벼슬까지는 안 바래도 환대는 받겠지 하고 신돈: 이제야 이실직고를 하시는군 웃으며 벌렁 누워버리는 신돈. 원현:(울면서) 아무리 발버둥치면 뭘 합니까. 개 꼬릴 삼 년 묻어둔다고 황모가 되겠습니까? 천한 것은 천한 것이고 귀한 것은 귀한 것이지, 천민이 춤추는 세상이 오긴 다 그른 것 아닙니까 어린애처럼 우는 원현. 그런 원현을 눈을 징끗 떠서 바라보는 신돈. #연경의 거리 신돈이 온다. 짐을 잔뜩 짊어지고 뒤에서 부지런히 따라오는 원현. 원현: 배를 타고 가다 또 풍랑을 만나면 어떡합니까. 차라리 육로를 따라 돌아가는 게 좋을 듯 싶습니다 신돈:...... 문득 멈추는 신돈. 고려촌의 주점이 보인다. 원현:(심통 부리듯) 또 술 생각이 나십니까? 신돈:(불쑥 합장하며) 부디 성군이 되십시오 주점을 향해 절하는 신돈. 어이없어 바라보는 원현. 신돈:(툭툭 털 듯) 가시지요 원현스님. 큰스님께서 목이 빠지게 우릴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웃으며 앞서가는 신돈. 부지런히 따라가는 원현. #강릉대군의 사저. 부엌 음식을 만드는 노국공주. 거드는 안도치. 노국공주: 오늘도 무슨 음식 맛이 이러냐고 눈을 찡그리시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다 안도치: 마마. 그래서 소인이 따로 준비를 해놨사옵니다 숨겨놨던 음식을 꺼내놓으며, 안도치: 마마. 이건 전하께서 제일 좋아하시는 산더덕구이옵고 이건 육전이옵나이다. 소인은 모른척 하고 있을 터이니 마마께서 만드신 거라고 시치미를 떼십시오 노국공주: 나보고 전하를 속이란 말이냐 안도치:(웃으며) 전하께선 알고도 속으시는 척 하실 것이옵니다. 마마를 끔찍이 애끼시는 전하께서 설마하니 면박을 주시겠사옵니까 노국공주:(웃으며) 고려의 남자들은 다정다감한가 보구나. 몽골의 남자들은 투박하기 그지 없거늘 안도치: 고려 남자들이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전하께서 그러시다는 거지요 더 웃어대는 안도치. #동. 방 안 마주앉은 노국공주와 공민왕. 공민왕이 음식을 한입 집어 넣는다. 바라보는 안도치. 안도치: 입맛에 드시옵니까 전하 공민왕:(맛보는 척 하더니 노국공주에게) 고려 음식은 언제 배우셨습니까. 아주 맛이 좋습니다 노국공주:...... 안도치:(얼른) 왕비전하께선 틈만 나시면 소인에게 고려 음식 만드는 법을 묻고 배우십니다. 어찌나 소인을 귀찮게 하시는지 공민왕: 이건 산더덕구인가 본데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노국공주:(뭐라고 하려는데) 안도치: 소인이 고려촌에서 우연히 구했습니다 공민왕: 고려에 돌아가면 모두들 날 부러워하겠습니다. 지엄하기 그지없는 중전께서 손수 음식을 만들어 주시니 조금은 이죽거리듯 웃어대는 공민왕. 영문도 모르고 따라 웃는 안도치. 웃고 있는 공민왕을 보며 가만히 미소 짓는 노국공주. #연경 부근의 길 기철 일행이 온다. 기철: 연경까지 얼마나 남았느냐 호위병: 오늘 안에 당도할 겁니다 기철:(말 멈추더니 기원에게) 넌 여기서 돌아가거라 기원: 예, 형님 기철: 개경에 돌아가거든 내가 일러준대로 해야 한다. 알겠느냐 기원아 기원: 염려마십시오 형님 기철: 똑똑히 해 이놈아 기원: 예, 형님 일단의 호위병을 데리고 말을 돌려 왔던 길로 달려가는 기원. 기철:...... 바라보고 있더니 끄응 신음하며 입을 씰룩이는 기철. #강릉대군의 사저. 뜰 부리나케 들어오는 조일신. 조일신: 전하. 전하. 어디 계시옵니까. 덕성부원군이 전하를 뫼셔가기 위해 연경으로 오고 있다고 하옵나이다 전하 법석을 떠는 조일신. 안에서 안도치가 나온다. 조일신: 이 사람 안환관. 전하께서는 어디 계신가 안도치: 전하께선 왕비전하와 함께 사냥을 나가셨습니다 조일신: 어허. 지금이 한가하게 사냥이나 다니실 땐가. 하루라도 빨리 서둘러 환국을 하셔야지 호들갑을 떠는 조일신. #연경의 어느 숲 길 천천히 말을 몰아 오는 공민왕과 노국공주. 말을 멈추고 공민왕을 바라보는 노국공주. 짐짓 감회가 깊은 듯 숲과 하늘을 둘러보는 공민왕. 공민왕: 연경의 숲과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웃으며) 고려에 가면 공주께서 향수병이 걸리지나 않을까 그게 걱정입니다 노국공주: 편조라는 고려에서 온 중을 만나봤습니다 공민왕:(여전히 웃으며) 그래요? 노국공주: 전하의 소원이 첫 번째도 고려의 독립이요, 두 번째도 고려의 독립이라고 했습니다 공민왕:(웃으며) 대체 뭐라고 물으셨기에 그 자가 그리 대답을 하더란 말입니까 노국공주:....(바라보는) 공민왕:......(그 눈길에 웃을 수만은 없는) 노국공주: 어찌하면 내가 전하의 사랑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공민왕:...... 노국공주:....(대답을 기다리듯 본다) 공민왕:(다시 웃으며) 그런 거라면 나한테 직접 물어보시지 않구 노국공주: 지금 전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공민왕:.....(웃음이 사라진다) 노국공주: 전하께선 술잔 두 개를 앞에 놓고 우리의 운명을 시험하셨습니다. 그러니 나 역시 전하의 대답을 기다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민왕:(지그시 미소를 지으며) 그 말씀은 내 대답 여하에 따라서는 나를 따라 고려로 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노국공주: 고려는 내게 낯선 곳입니다. 내가 누굴 믿고 의지하며 살겠습니까 공민왕: 살다보면......정이 쌓이겠지요 노국공주:...... 공민왕: 부부란 것이 그런 것이 아닙니까 (웃으며) 공주께서는 별 걱정을 다 하십니다 또 한번 웃어보이는 공민왕. 그러다 말고삐를 나꿔 채 왔던 길로 돌아가는 공민왕. 노국공주:...... 그대로 서있다. 공민왕:(말 머리를 다시 돌리더니) 한가지만은 약속을 하리다 노국공주:...... 공민왕: 내가 평생 공주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덕분에 고려왕이 되었으니 말을 마치기 무섭게 말고삐를 나꿔채 달려가기 시작한다. 눈물이 치솟는 노국공주. 노국공주:(외친다) 어째서 원나라에 정복당한 고려의 나약함은 탓하지 않고, 고려를 정복한 원나라를 원망하십니까 멀어지던 공민왕의 말이 말발굽을 쳐들며 멎는다. 공민왕:........ 노국공주를 바라본다. 멀리 노국공주의 모습. 공민왕:.... 부르르 떨더니 말머리를 돌려 달려간다. 멀어져가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노국공주. #기황후의 처소. 방 안 기철이 환하게 웃으며 선물 상자를 내려놓는다. 기철: 황후폐하. 신이 연경에 간다고 하니까 노모께서 이걸 황후폐하께 전해드리라 하셨습니다 기황후:(살짝 찡그리고 있는) 기철:(박불화에게) 뭘 하고 계신가. 안에 든 걸 보여드리지 않으시고 박불화: 예, 부원군대감 상자를 열려고 하는 박불화. 기황후: 그냥 두시게 박불화:(흠칫해서 본다) 기황후:(미소) 기철:(장난인 줄 알고 장난치듯) 신의 노모가 되면 또한 황후폐하의 노모가 되시는 분이 아니옵니까 (웃으며) 어서 열어보시지요 기황후: 그 양반이 어디서 돈이 났겟습니까. 오라버니가 모아드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철:(웃으며) 저를 생판 남으로 대할 작정이십니까 기황후: 앞으론 오라버님 한테는 은전 한 잎도 받지 않을 겁니다 기철:(펄쩍 뛰며) 아니 왜요. 제 돈엔 뭐 더러운 것이라도 묻었습니까 박불화:(얼른 혀를 차는) 기철: 대체 왜 자꾸 날 구박하시는 겁니까 기황후: 그게 다 백성들의 고혈이 아닙니까 기철: 희비가 보낸 금은보화는 하늘에서 떨어진 건 줄 아십니까 기황후: 그거야 고려 왕실의 재산이지 오라비처럼 백성들한테서 강탈한 것이 아니지요 기철: 으흠 기황후:(바라보더니) 명심하세요. 오라버니의 피가 섞인 내 아들이 원의 태자가 됐습니다. 장차 원 제국의 황제가 되실 거구요 기철: 그거야 기황후: 아직도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까 기철: 태자전하에게 누가 돌아가지 않게 하라 그 말씀이 아니십니까 기황후: 또 한번 백성들의 원성에 오라버니의 이름이 오르내리면 기씨 문중과는 인연을 끊을 것이니 그리 아세요 추상같다. 경련이 일 듯 얼굴을 씰룩이는 기철. #강릉대군의 사저. 뜰 안에서 짐을 내오는 일꾼들. 안도치: 조심들 하시게. 함부로 장을 다루다 흠집 하나라도 나면 내가 가만 두지 않을 것이야 신이 나서 악쓰는 안도치. #동. 방 안 공민왕: 겨울이나 나고 개경으로 들어갈까 했는데 이렇게 먼 길을 와줘서 참으로 고맙소이다 기철:(펄쩍 뛰며) 겨울을 나고 가시겠다니오. 안 될 말씀이지요. 용상을 그렇게 오래 비워두시면 백성들이 불안해서 살 수가 없지요 공민왕: 익재대감께서 섭정승을 맡고 계시다니 뭐가 걱정입니까 기철: 큰일 날 소리. 큰일 날 소리. 그 늙은이에게 무슨 힘이 있다고 나랏일을 맡겨두시겠다는 겁니까 김용: 옳으신 말씀입니다. 전하께서 하루라도 빨리 환국을 하셔야지요 공민왕:(웃으며) 나는 연경에 와 있은 지가 하도 오래 돼서 고려의 형편이 어떤지 기철: 신이 있질 않사옵니까. 신이 하늘처럼 전하를 떠받들어 뫼실 것이니 전하께서는 아무 걱정 마시고 편안히 지내시기만 하면 되옵나이다 (웃어대는) 정세운:(찡그리는) 공민왕: 하긴 그렇습니다. 덕성부원군 더분에 내가 용상에 앉게 되었으니 나는 그저 덕성부원군만 믿겠습니다 (웃는다) 기철: 제 덕분이 아니라 제 누이 되시는 황후폐하 덕분이지요 웃으면서도 끙끙거리며 위세를 부리는 기철. 그러면서 김용과 조일신을 힐끔거리며 본다. 따라서 웃는 김용과 조일신. #동. 노국공주의 방 안 덕녕공주: 저도 아우님을 따라 고려로 가고 싶으나 오히려 아우님께 폐가 되겠기에 노국공주: 부탁입니다 덕녕공주: 아우님 혼자서도 잘 해내실 겁니다. 그래도 불편하고 힘이 드시면 다시 전갈을 주세요 (웃어보인다) 노국공주:(머뭇 눈치를 본다) 덕녕공주:(웃으며) 궁금한 게 계십니까? 노국공주: 고려 풍습에 시집살이가 호되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덕녕공주:.....(미소) 노국공주: 말씀을 해주세요 덕녕공주: 고려에 가시면 두 분 어른을 뫼시게 될 겁니다. 전왕의 생모인 경순공주와 전하의 생모이신 덕경부의 홍씨 부인입니다. 경순공주는 아들이 왕위를 잃었으니 이것저것 간섭할 경황이 없을 겁니다. 허나 전하의 생모이신 덕경부의 홍씨 부인은 지금은 사가에 나가계시나 전하께서 등극을 하시면 대궐로 들어와 대궐의 큰 어른이 되실 겁니다 노국공주:....(열심히 듣더니) 그러면 덕경부의 홍씨부인이 제 시어머님이 되시는 겁니까 덕녕공주: 그렇지요 노국공주: 어떤 분이신지..... 덕녕공주: 겪어 보시면 차차 아시게 될 겁니다 노국공주: 자세히 말씀을 해주세요. 고려에선 시어머님을 어떻게 모셔야 되는지, 그 분의 성격은 어떠신지......궁금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덕녕공주:(정중히) 중전, 잘 들으세요. 지금까지는 고려의 국왕이 되면 몽골의 공주들을 왕비로 삼았습니다. 우리 황실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는 고려의 왕들이니 당연히 그리 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덕분에 나는 고려에서 편히 지냈습니다. 내 아드님이 용상에 앉아 있을 때는 섭정을 맡아 권세도 누렸구요. 허나 앞으론 사정이 달라질 겁니다. 우선 원의 국력이 예전같지 않을 뿐더러..... 문득 노국공주를 보더니 가만히 한숨을 내쉬는 덕녕공주. 노국공주:(빙긋) 나는 몽골의 공주가 아닙니다. 고려의 왕비가 되었으니 고려인이 된 것이 아닙니까 덕녕공주:(바라본다)...... 노국공주: 예. 나는 다 버리고 떠날 겁니다. 고려의 것이 아닌 것은 모두 다 버리고 떠날 겁니다 #동. 뒤뜰(밤) 타오르는 불길. 홍화가 울면서 노국공주의 원나라식 옷들을 불길 속에 던지고 있다. 노국공주:...... 손에 들고 있던 몽골식 장신구를 불길 속에 던진다. 자신의 몸에 걸친 장신구를 하나씩 떼어서 불길 속에 던진다. 홍화: 마마 노국공주:....... 말없이 옆에 놓여 있던 활과 화살을 불길 속에 던진다. 홍화: 저까지 버리고 가실 겁니다 마마. 절 데려가 주세요 마마 노국공주: 아버지께 전해라. 아버지의 딸인 보탑실리는 오늘 밤 저 불꽃과 함께 죽었으니 작별 인사는 드리지 못하고 떠난다고 홍화: 마마 노국공주:....... 입고 있던 몽골의 공주 옷을 벗어 불길 속에 던진다. 타오르는 불길. 겉옷을 벗어던지고 흰옷만 걸친 순백의 노국공주. 그런 모양을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공민왕. 공민왕:...... #연경의 부근. 숲 이삿짐을 실은 마차와 호위병들이 멎어있다. 노국공주가 탄 마차 옆에 말을 타고 있는 공민왕. 김용, 조일신, 정세운, 안도치 등이 시종하고 있다. 거드름을 피우며 박불화에게 다가가는 기철. 기철: 황후폐하께서 인사를 받지 않으시겠다니 그냥 떠나겠소이다 박불화:(공민왕에게) 황후폐하의 뜻을 달리 생각지 마십시오 공손히 머리 숙여 보인다. 기철: 만사를 고려의 새 국왕에게 맡긴다는 뜻이 아니겠소이까. 안 그렇소 자정원사 박불화:(공민왕에게) 부디 큰 뜻을 이루시옵소서 또 한번 공민왕에게 정중히 머리 숙이는 박불화. 공민왕: 고맙소이다 목례하는 공민왕. 기철: 가자 앞서 나간다. 모두 앞으로 나간다. 바라보고 서있는 박불화. #부근. 다른 길 공민왕의 일행이 온다. 공민왕:...... 노국공주가 탄 마차를 본다. 마차 안의 노국공주. 고려 왕비의 평상복을 입고 고려식 머리를 했다. 노국공주:......(마음의 소리) 예. 이제부터 나는 고려의 여잡니다 그 눈에 오히려 기쁨의 눈물이 맺힌다. ----------------------------------------------------------------------- #개태사 가는 길 꼬불꼬불 아래로 이어진 길. 큰스님이 쭈그리고 앉아 길 아래를 바라보고 있다. 지궁스럽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큰스님. #개태사. 앞 주위를 살피며 오는 원현. 신돈:(웃으며) 그것봐라. 그 놈들이 할 일이 없어서 우릴 잡으려고 절간을 지키고 있겠냐 원현: 조심해서 나쁠 게 뭐 있습니까. 이번에 잡히면 편조스님하고 나는 꼼짝 없이 참수형을 당할 겁니다 신돈: 어허, 답답하기는. 고려의 새 국왕이 되신 그 양반하고 내가 흉허물 없이 지내는 막역한 친구 사이라는 걸 잊으셨는가 원현: 제발 그 소리는 다신 하지 마십시오. 남들이 들으면 편조스님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신돈: 미쳤다고 하겠지 원현:(기막혀서 보며) 알긴 잘 아십니다 신돈:(안을 보며) 오랜만에 개태사를 보니 마치 날 낳아준 어머니 뱃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원현:(이죽거리듯) 편조스님은 어머니 뱃속에 있었던 때도 기억이 나십니까 신돈:(원현의 말 흉내내며)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원현스님 (시침 떼고) 자, 들어가세 앞서 들어가는 신돈. 원현:(따라가며) 큰스님 뵙거든 제발 그 이상한 소린 하지 마세요. 큰스님께는 그저 서역에 가서 불도를 닦고 왔습니다, 그렇게만 말씀을 올리세요. 그래야 쫓겨나지 않습니다 편조스님 성큼 앞서가는 신돈을 부리나케 따라가는 원현. #동. 마당 덕운이 곰순네와 쭈그리고 앉아 실갱이를 하고 있다. 덕운: 사람도 못 먹는 고기 덩어리를 개밥으로 주다니 원 곰수네:(개밥통에 뼈에 붙은 살코기를 발라서 던져 넣으며) 이 녀석이 어디가 아픈지 통 밥을 안 먹는 걸 어떡해요 그럼 덕운: 그래도 그렇지 곰순네: 그렇게 아까우시면 덕운 스님도 한 점 드실라우 뼈다귀를 하나 들어보인다. 밥통 앞에 힘없이 엎드려 있던 강아지가 덕운을 향해 맹렬히 짖어댄다. 덕운: 이, 이, 이 놈 보게 질겁해서 일어나 피하던 덕운이 더 깜짝 놀란다. 신돈과 원현이 서있다. 신돈:(웃으며) 덕운스님, 식탐은 여전하십니다 덕운: 아이구 살아 돌아왔구나 신돈을 얼싸안고 좋아서 울먹이는 덕운. 신돈:(웃으며 원현에게) 그것보시게 원현스님. 덕운스님이 좋아하실 거라고 하지 않았나 덕운:(얼른 떨어지며) 이 놈아. 니 놈이 살아돌아온 게 반가운 게 아니라 허구헌날 눈이 빠지게 니 놈을 기다리고 계신 큰스님이 가엾어서 그런 거야 신돈: 큰스님은 여전하시지요 곰순네: 덕운스님 말씀도 못들었냐. 허구헌날 니 놈 돌아오기만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계신다고 하지 않아 덕운:(느닷없이 훌쩍이며) 큰스님두 참 걱정도 팔자시지. 이놈 얼굴을 보니까 그 동안 어디서 잘 먹고 잘 살다왔는지 개기름이 좌르르 흐르는구만 신돈:(웃으며) 덕운스님만큼 잘 먹고 잘 사는 스님이 또 어디 있을라구요. 오죽하면 개밥통에 든 고기까지 탐하실까 놀리듯 웃어대는 신돈. 덕운: 말두 말거라. 요즘은 큰스님이 어찌나 단속을 하시는지 고기 맛은커녕 냄새도 못 맡고 살았다 헤헤 웃는 덕운. 신돈: 그나저나 큰스님은 어디 계십니까 곰순네: 큰길에 나가서 니 놈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계신다니까 #개태사 가는 길 꼬불꼬불 이어진 길 위에 큰스님이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멀리 보인다. 큰스님:...... 잠이 오는지 꾸벅꾸벅 졸고 있다. 신돈:...... 그런 큰스님을 바라본다. 웅크리고 졸고 있는 큰스님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신돈. 신돈:....... 코를 훌쩍이며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는 신돈. 큰스님:(웅크린 채) 무슨 소리가 나길래 바람이 나뭇잎 흔드는 소린가보다 했더니 니 놈이 눈물을 흘리는 소리였구나 신돈: 스님 뒤에서 큰스님을 얼싸안는 신돈. 큰스님: 놔라 이놈아. 간지럽다 신돈: 보고 싶었습니다 스님 큰스님을 얼싸안고 등 뒤에서 얼굴을 부비는 신돈. 간지럽다는 큰스님. 웃어대는 신돈. #부근 산 중 잡초가 무성하다. 신돈과 큰스님이 온다. 큰스님: 여기 어디다 묻어줬는데 (둘러보더니) 옳거니. 여기구나 잡초를 헤치고 가는 큰스님. 따르는 신돈. 멈추는 큰스님. 땅바닥에 봉분 미슷하게 흙이 돋아있고, 그 위에 나뭇대기 하나가 꽂혀 있다. 바라보는 신돈. 신돈: 어쩌다 죽었습니까 큰스님: 해산을 하다 잘못됐지 (한숨 쉬며) 다행히 한점 혈육은 남기고 죽었으니 신돈:..... 스치고 지나가는 허씨의 딸의 모습. - 관군의 칼에 맞아 죽은 아버지를 잡으려고 달려가는 허씨의 딸 - 신돈:(신음같은) 큰스님:(힐끔 보며) 그 애가 뉘 애냐 신돈:....... 큰스님:(신돈 옆구리 쿡 찌르며) 니 애냐 신돈: 아닙니다 스님 큰스님: 너 이놈. 거짓말 하면 죽어서도 두고두고 불벼락 맞을 거야 신돈: 공녀로 끌려가다 도망치는 낭자를 구해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큰스님:(얼굴들 디밀며) 나한테만 말을 해. 내가 다 용설 해줄 테니까 신돈: 아니래두요. 스님도 참 큰스님: 아니면 그만이지 이놈이 역정을 왜 내고 그래 (투덜대더니) 가만있자, 니 에미도 여기 어디다 묻어줬는데..... 두리번 찾아가는 큰스님. 막대기 꽂힌 봉분을 바라보는 신돈. - 여막에 숨어 겁에 질려 신돈을 바라조던 허씨의 딸 - 그 위에, 큰스님:(소리) 찾았다 큰스님이 손짓한다. 큰스님: 니 에미 무덤에 절이나 한차례 올려라 역시 나무막대기 하나 꽂아놓은 평토나 다름없는 무덤. #동. 부근 길(석양 무렵) 큰스님을 업고 오는 신돈. 신돈: 제가 온다는 걸 어떻게 알고 거기서 기다리고 계셨습니까 큰스님: 알긴 내가 그걸 어찌 알겠냐 이놈 신돈: 스님은 천리안을 갖고 계시잖습니까 큰스님: 천리안? 신돈:(웃으며) 스님은 마음의 눈으로 천리 앞을 내다보시잖습니까 큰스님: 내려놔라 이놈 신돈의 등을 두드리는 큰스님. 큰스님을 내려주는 신돈. 큰스님: 너 이놈. 삼 년 동안 어디 가서 뭘 하다 돌아왔기에 그따위 괴상한 소릴 늘어놓는 게냐. 사람까지 죽이고 도망쳤으니 어디 틀어박혀서 불공을 쌓고 있겠지 했더니. 뭐야 이 놈, 마음의 눈으로 천리 앞을 내다봐 신돈:(웃으며) 서역의 고승들은 천리 밖에 있는 사람들의 말소리도 들을 수가 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도 서역의 고승 못지 않으시니 천리 밖은 내다보시는 게 당연하잖습니까 큰스님: 엣끼 이놈. 요즘은 눈이 어두워져서 발밑의 돌부리도 못보고 걸려 넘어진다 신돈:(웃으며) 서역엔 별의별 고승들이 다 있는데 그 중 한분은 평생 땅도 밟지 않고 날아다니며 살았다는 겁니다 큰스님: 이놈이 이놈이 또 괴상한 소릴 지껄여대네 (쥐어 박으며) 너 이놈. 그따위 소릴 늘어놓으려면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라 호령호령하는 큰스님 #개태사. 앞(저녁무렵) 어둑어둑해진. 신돈이 큰스님을 업고 온다. 신돈의 등 뒤에 볼을 대고 어린애처럼 잠이 든 큰스님. #동. 뜰(밤) 밤이다. 불꺼진 큰스님의 방. #동. 큰스님의 방 안(밤) 잠든 큰스님. 신돈:..... 바라본다. 그 눈에 미소. 문득 눈물이 치솟아 차마 더는 큰스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옆에 놓인 바랑에서 큰스님이 물려준 발우와 가사를 꺼내 놓는 신돈. 정성껏 반듯하게 놓는다. 그러다 다시 큰스님을 바라본다. 잠꼬대 하듯 입맛까지 다시더니 등을 보이고 돌아눕는 큰스님. 신돈:(마음의 소리) 스님. 아무래도 저는 좋은 불자가 되기는 글렀나 봅니다. 불도를 닦으면 닦을수록 제 마음 속의 미움 또한 함께 커지니 이러고서야 어찌 스님 같은 좋은 불자가 되겠습니까 등 돌린 채 잠꼬대하며 덥고 있던 이불을 걷어차는 큰스님. 일어나 이불을 잘 덮어주는 신돈. 눈물이 핑 돈다. 얼른 일어나는 신돈. 돌아서 나가는데, 큰스님:(소리) 이 놈 편조야. 발우와 가사는 어째서 놓고 나가느냐 신돈:...... 흠칫해서 돌아본다. 등돌린 채 잠든 큰스님. 발우와 가사를 바라보는 신돈. 큰스님이 잠꼬대를 하며 돌아누우며 덥고 있는 이불을 다시 걷어찬다. 그리곤 음냐 음냐 잠꼬대를 한다. 신돈:...... 가만히 한숨 내쉬고 다시 돌아서는 신돈. 큰스님:(소리) 어째서 발우와 가사는 놓고 가느냐고 물었다 신돈:..... 다시 돌아서는 신돈. 네 활개를 쫙 펴고 잠든 큰스님. 신돈:(엎드리며) 스님. 이 미련한 놈이 세상의 반쪽만이라도 보게 된다면 스님께 달려와 발우와 가사를 받을 겁니다 머리를 바닥에 대고 절을 하는 신돈. #동. 수련장(밤) 스님들이 모여있다. 덕운: 난 못한다고 하지 않았나 스님1: 덕운스님이 못하시겠다면 우리가 직접 큰스님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덕운: 큰스님께서 편조를 내쫓으실 것 같은가 스님2: 사람까지 죽인놈하고 어떻게 같은 도량을 씁니까 스님1: 밖에서 애 밴 여잘 데려다 놓질 않나 덕운: 그 앤 편조의 애가 아닐세 스님2: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스님1: 편조를 내쫓지 않으면 큰 봉변을 당할 겁니다. 지금도 관에서 눈에 불을 켜고 편조와 원현을 찾아다니고 있을 텐데 스님1: 모두 함께 가서 큰스님께 말씀을 드리세 우르르 일어난다. 덕운: 어허, 정말 왜들 이러나. 그만들 두래두 스님들을 막는 덕운. 실갱이가 벌어진다. #동. 뜰(밤) 큰스님의 방문이 열리고 신돈 나온다. 조용히 방문을 닫고 신을 신는 신돈. 신돈:.... 본다. 어린반야:..... 마당에 반야가 서있다. 신돈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신돈:..... 마른침을 삼킨다. 신을 신고 일어나 반야를 다시 보려는데, 쪼르륵 달려와 마루로 올라서는 어린 반야. 큰스님의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다 힐끔 신돈을 뒤돌아본다. 신돈:..... 미소. 그 미소를 피하듯 얼른 안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아버리는 어린 반야. 신돈:..... 우두커니 바라보는 신돈. 그 위에, 큰스님:(소리) 아이구 우리 반야가 무서운 꿈을 꿨나 보구나. 그래, 이리 들어와라. 할아버지하고 같이 자자꾸나 좋아서 웃는 어린 반야의 웃음소리. 신돈:....... 또 한번 미소. #동. 수련장. 안(밤) 문을 막고 선 덕운. 실갱이하는 스님들. #동. 개태사 앞(밤) 조용히 나오는 신돈. 흠칫 본다. 짐을 꾸려 둘러 멘 원현이 서있다. 신돈: 원현스님이 웬일인가 원현: 날 두고 도망치려는 걸 모를 줄 알았습니까 신돈: 원현스님이야 무슨 죄가 있나. 여기 남아 계시게 원현:...... 대꾸 없이 앞장서 가는 원현. 신돈: 고생도 팔자라더니 날 따라다녀서 뭘 하려고 그러나 원현:(가며) 동냥질은 내가 해올 것이니 밥 굶을 걱정은 안 해도 될 겁니다 부지런히 앞서가는 원현. 싱긋 웃고 마는 신돈. #개경의 거리 북적이는 인파. 호객하는 장사꾼들. 신돈과 원현이 온다. 신돈:(냄새 맡는 시늉하며) 냄새 한번 좋다 원현: 다른 건 다 돼도 술 마시고 고기 먹고 색을 탐하는 건 안 됩니다 신돈: 엣끼 이 사람. 그럴 바엔 개태사에 있지 개경까지 와서 고생할 게 뭐 있겠나 원현: 법왕사로 가시지요. 거긴 지효스님이 계시니 우릴 내쫓기야 하겠습니까 신돈: 글쎄. 그럴 바엔 개태사로 돌아가서 눈칫밥을 얻어먹겠다니까 (냄새 한번 길게 맡으며) 이게 이게 속세의 냄새렷다 웃어대는 신돈. 응양군들이 말을 타고 달려온다. 비명을 지르며 피하는 사람들. 기원: 이놈들. 철시를 하라는데 뭘 꾸물대고 있느냐. 당장 가게 문을 닫지 못할까 말 탄 채로 노점의 좌판을 걷어차고 가게를 부수는 응양군들. 허겁지겁 가게문을 닫고 좌판을 치우는 장삿꾼들. 바라보는 신돈과 원현. 기원: 다른 명령이 있을 때까진 집 안에서 나오지 마라. 이 시각 이후에 거리를 나다니는 자는 모두 잡아들일 것이야 백성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하는 응양군들. 도망치는 백성들. 신돈과 원현도 따라서 피한다. #개경부근의 숲. 군막 안 공민왕과 노국이 의자에 나란히 앉아있다. 안절부절하는 안도치. 밖에서 들려오는 고함소리. 정세운:(소리) 밤까지 기다려야 한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기철:(소리) 전하의 안전을 위해서 그리 한다고 하지 않소이까 #동. 군막. 앞 정세운: 대체 전하께서 죄인처럼 밤중에 도성으로 들어가셔야 할 까닭이 뭐냔 말이외다 기철: 어허 답답하기는. 개경의 민심이 흉흉하니 소낙비는 우선 피하고 보자는 거지 정세운: 개경의 민심이 흉흉하다니오.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기철: 그걸 내 입으로 말을 해야 되겠나 정세운: 말씀을 해보시지요 기철: 전왕께서 지금 강화도에 구금이 되어 계시오. 전왕의 나이가 이제 겨우 열 넷이니 백성들이 그걸 어찌 생각하고 있겠소 #동. 군막. 안 공민왕을 가만히 바라보는 노국공주. 지긋이 눈을 감고 있는 공민왕. 기철:(소리) 그런 마당에 백주에 전하께서 도성으로 들어가시면 무슨 난이 일어날지 모르니 해가 질 때를 기다려 왕궁으로 들어가자는 게야 #동. 군막. 앞 뒤뚱거리며 말에 오르는 기철. 기철: 내가 먼저 도성으로 들어가 형편을 살피고 올 테니 그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고들 계시오 (응양군의 장군에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전하를 잘 지켜드리고 있거라 말을 몰아 달려가는 기철. 응양군들이 군막을 포위하기 시작한다. 정세운:(김용과 조일신에게) 공들은 어째서 말 한마디 못하고 구경만 하고 계시오 김용: 혼자만 분한지 아신가. 나는 하도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질 않네 조일신: 그래서 내가 뭐랬소이까. 전하께서 환국하시기 전에 저런 놈들부터 때려죽이자고 하질 않았소이까 #동. 군막. 안 공민왕:..... 여전히 두 눈을 감고 있는 공민왕. 노국공주:......(바라보더니) 전하 공민왕: 아무 말씀 말고 계세요 참았던 분이 나직이 터져 나온다. 그러더니 문득 숨죽여 웃는다. 노국공주:...... 공민왕: 썩은 생선을 훔치러 들어가는 도둑 고양이가 밝은 대낮을 택하겠습니까. 낮보다는 밤이 제격이지요 웃어대는 공민왕. 안절부절하는 안도치. 노국공주:....... 가만히 치미는 슬픔. #개경의 거리(밤) 인적이 끊긴 거리를 일단의 기마병들이 달려가고 있다. #선경전의 안(밤) 이제현, 염제신, 이인복, 윤시우 등의 중신들이 도열해 있고, 전각 안을 포위하듯 둘러싼 응양군들. 기철:(위협하듯 둘러보며) 내 누이 되시는 황후폐하의 소생이신 아유시리다라 왕자께서 원의 태자가 되셨소이다. 아유시리다라 태자전하의 핏 속엔 고려의 피가 섞여 있으니 원과 고려는 이제 형제국이 되었소이다. 이것이 내 누이 되시는 황후폐하께서 직접 고려를 통치 하시겠다는 까닭이요 신음하는 염제신. 이제현을 본다. 지긋이 눈을 감고 있는 이제현. 이인복을 보는 염제신. 싱긋이 미소 짓고 있는 이인복. 기철: 앞으로 만사를 연경에 계시는 황후폐하의 재가를 받아서 시행할 것이오. 태자전하의 앞날에 누가 되는 일이 없도록 고려의 국정을 단속하시겠다는 내 누이 되시는 황후폐하의 결정이외다. 이에 불만이 있거나 불복하는 사람이 있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말씀을 하시오 이인복이 염제신을 본다. 끙끙대기만 하는 염제신. 이인복:(싱긋 웃고 나선다) 허면 원의 황실에서 고려를 직접 통치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기철: 그렇다고 봐야지 (눈 부라리며) 불만이 있으신가 이인복:(이죽거린다) 허면 만사가 편하겠습니다. 대국에서 우리 고려를 보살펴 주시니 기철: 암. 편하구말구 너털 웃음을 터뜨리는 기철. 웅성거리는 중신들. 기철: 명심들 하시오. 연경까지 가서 국왕전하를 뫼시고 온 사람이 나 기철이라는 것을 참지 못하고 염제신이 앞으로 나선다. 그 팔목을 꽉 잡는 이제현. 기철: 내가 또 한번 연경까지 가서 새 국왕을 모셔오는 수고를 하지 않게 잘들 하셔야 할 것이외다 눈을 부라리는 기철. #법왕사의 종루(밤) 보우:..... 도성을 바라보고 있다. 어둠에 잠긴 도성의 지붕들. #개경의 길(밤) 노국공주:...... 마차 안의 노국공주.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인적없는 밤거리. 노국공주:..... 그 창문을 가로막는 응양군들의 군마. 창문을 닫는 노국공주. 공민왕을 에워싼 응양군들. 공민왕이 탄 말의 고삐를 움켜잡고 앞으로 나가고 있다. #법왕사의 종루(밤) 보우:..... 도성의 지붕들을 바라보고 있다. 수심에 가득 찬 모습. #동. 방 안(밤) 원현: 미안합니다 지효스님 지효: 별말씀을요 길게 늘어져 자고 있는 신돈을 본다. 신돈:......(잠든) 지효: 아무 염려 말고 필요한 만큼 묵으세요 (일어난다) 원현: 헌데 도성에 웬 군사들입니까 지효: 새 국왕께서 오늘 밤에 도성으로 들어오시는 모양입니다 원현: 이 밤중에요 지효: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편히 쉬시지요 나가는 지효. 원현: 편조스님, 들으셨지요 신돈: 왕관을 훔쳤으니 그럴 수밖에 돌아누워 버린다. #명덕태후의 사저. 안방(밤) 명덕태후: 이런 죽일 놈들. 내 아드님을 내 집으로 먼저 모시고 오든지 아니면 나부터 대궐로 모시고 가서 내 아드님을 영접하게 해야지. 곧장 내 아드님만 대궐로 모시고 가. 이런 못된 놈들을 보았나 김상궁:..... 안쓰러워서 본다. 명덕태후: 내 말이 틀렸느냐 김상궁: 한밤 중에 대궐로 들어가시는 전하의 마음이 오죽 아프시겠습니까 명덕태후:(움찔해서) 그것도 그렇구 (밖을 노려보며) 고얀 놈들 #희비의 방 안(밤) 방문이 왈칵 열린다. 최만생:..... 들여다본다. 기진해서 앉아있는 희비가 고개를 번쩍 든다. 희비: 이 놈들 어딜 들어오려는 게야 최만생:...... 복도에 있는 환관들에게 눈짓한다. 우르르 안으로 몰려들어가는 환관들. 희비: 이놈들. 물러가지 못하겠느냐 환관들이 희비를 잡아 들어올려 밖으로 들고 나간다. 희비: 이놈들. 놓치 못하겠느냐. 못 가져간다. 내 아드님의 옥새니라 발악하며 밖으로 끌려나가는 희비. 최만생:..... 희비가 앉았던 자리를 본다. 옥새함이 놓여있다. #선경전의 뜰(밤) 대궐 문이 열린다. 응양군의 호위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서는 공민왕과 노국공주. 뒤따르는 안도치와 정세운, 김용, 조일신. “전하” 기다리고 있던 이제현을 비롯한 중신들이 바닥에 엎드린다. 버티고 선 기철. 공민왕:..... 바라본다. 이제현: 전하. 먼 길을 오시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신들이 마땅히 요동까지 나아가 전하를 맞아야 할 것이오나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한다. 염제신: 전하. 신들과 만백성이 가뭄에 단비를 기다리듯 전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나이다. (두 팔을 높이 쳐들며) 천세 천세 천천세 중신들, “천세 천세 천천세” 이어 땅에 엎드려 흐느껴 우는 대신들. 공민왕:..... 고개를 들어 선경전 지붕을 바라본다. 어둠 속에 우뚝 솟아있는 선경전의 모습. 공민왕:.... 지긋이 눈을 감으며 눈물을 참는다. 그런 공민왕을 바라보는 노국공주. 그 위에, 기철:(소리) 뭘 하고 있느냐. 옥새를 가지고 오너라 손을 내미는 기철. 최만생이 급히 옥새함을 가지고 온다. 옥새를 받아들고 기철이 공민왕에게 다가온다. 기철: 전하. 고려의 옥새이옵나이다 그 얼굴 위에, 노국공주:(소리) 무엄하구나! 물러서지 못할까 벼락같은 소리에 흠칫 놀라는 기철. 본다. 옆에 서있던 응양군 장교의 칼을 빼드는 노국공주. 놀래서 주춤 물러서는 기철. 노국공주: 내가 너부터 죽여 전하의 위엄을 바로 세울 것이야 칼을 치켜세우는 노국공주. <신돈 11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