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 12회 <신돈> -12회- #선경전의 뜰(밤) 칼을 치켜세우고 기철을 노려보는 노국공주. 주춤주춤 물러서던 기철이 발을 헛딛고 자빠지듯 주저앉는다. 노국공주: 내가 너를 죽이려는 까닭이 다음과 같다. 민심이 어지럽다는 핑계로 전하를 도둑고양이처럼 도성에 드시게 하시고, 만백성과 만조백관의 축복을 받으며 성대하게 치러야 할 즉위식을 마치 역적모의하듯 치르라 하고, 또한 네 놈이 큰 인심이나 쓰듯이 옥새를 전달하려고 하니 이것만 가지고도 백 번 죽어도 그 죄를 다 씻지 못할 것이다 기철에게 달려드는 노국공주. 주저앉은 채 뒤로 도망치는 기철. 겨우 일어나 도망치려는 기철.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노국공주의 칼이 기철을 내리친다. 기철의 비명소리. 두 눈을 질끈 감으로 고개를 돌리는 안도치. 부복한 대신들이 놀래서 바라본다. 꼬꾸라진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기철. 노국공주: 오늘은 좋은 날이니 전하께서 너를 살려주신 것이야 기철:..... 정신이 나서 온 몸을 만져보는 기철. 상처가 없다. 그러다 관모를 만져본다. 두 쪽으로 갈라져버리는 관모. 또 한번 비명지르듯 놀라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 기철. 노국공주:....... 공민왕을 바라본다. 공민왕:.... 웃는 듯 마는 듯 기묘한 표정의 공민왕. 기원: 형님, 괜찮으십니까 달려들어 기철을 부축해 일으키는 기원. 기철:(기원을 뿌리치며) 왕비전하 엉금엉금 기듯이 노국공주에게 와서 엎드리는 기철. 기철: 소인의 충정을 알아주시옵소서. 소인은, 전왕을 따르는 무리들이 준동하고 있어 만에 하나 전하께서 변이라도 당하실까 그것이 염려되어 야밤에 궁중에 드시게 한 것이옵고, 서둘러 옥새를 전해드리려 한 것은 전하께서 이 나라의 주인임을 한시라도 빨리 천하에 알리려고 한 것이옵나이다. 다만 소인이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은 야밤에 대신들이 모여 전하를 맞이한 것이오나 어찌 신들이 전하의 즉위식을 이것으로 대신하려고 하였겠나이까. 그리 생각이 되셨다면 신을 백번 천번 죽이셔도 원망치 않을 것이옵나이다 머리를 땅바닥에 처박듯 조아리는 기철. 공민왕: 일어나시오 이제현을 비롯한 대신들이 공민왕을 바라본다. 공민왕: 모두들 일어나라고 했소이다 이제현을 필두로 일어나는 대신들. 공민왕: 덕성부원군도 그만 일어나시오 기철:......... 힐끔 공민왕을 보더니 다시 얼굴 처박는 기철. 공민왕:...... 바라보더니 기철에게 다가간다. 마른침 삼키며 바라보는 대신들. 노국공주:........ 그 시선에 공민왕이 손을 내밀어 기철의 손을 잡아 일으키는 모습이 보인다. 공민왕을 마주보지 못하는 기철. 공민왕: 내가 경의 노고를 잘 알고 있소. 결코 잊지 않을 것이오 기철: 전하 흐느끼는 시늉하는 기철. 공민왕:....... 기철의 손을 놓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선경전을 바라본다. 우뚝 솟은 용마루. 천천히 선경전을 향해 가는 공민왕. 갈라지는 대신들. 노국공주:....... 바라본다. 선경전 계단 앞에서 멈추는 공민왕. 빙긋 웃더니 돌아선다. 공민왕: 부왕께서 어린 내 손을 잡고 이리로 데려오시곤 했습니다. 그때 올려다본 선경전의 모습이 참으로 크고 웅장하였소...... 다시 한번 선경전을 올려다보는 공민왕. 이제현:....... 공민왕을 바라보다 노국공주를 바라본다. 노국공주:...... 섰던 자리에 혼자서 서있는 노국공주. 이제현:(신음 같은) 공민왕: 헌데 오늘 보니 별로 커보이지가 않소이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구쳐있는 원나라의 대궐에 비하면 참으로 작고 보잘것 없소이다 염제신:(불현 듯 나서며) 전하. 오백년 사직을 이어온 고려이옵나이다. 그런 고려를 아직 백 년도 되지 않은 원과 비하겠나이까 이제현:(급히 나서며) 전하께서 높이 세우시옵소서 공민왕:....... 힐끔 이제현을 본다. 이제현: 신들과 만백성이 전하께서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린 까닭이 거기에 있나이다. 부디 고려를 다시 우뚝 일으켜 세우시옵소서 부복하는 이제현. 모두 따라서 부복하는 대신들. 대신들: 고려를 우뚝 일으켜 세우시옵소서! 뒤늦게 황급히 엎드리는 기철. 기철: 세세천년 강녕하시옵소서 전하 염제신: 만세 만세 만만세 미친 듯이 두 손을 쳐들었다 땅을 치며 외쳐대는 염제신. 그리곤 엎드려 통곡하는 염제신. 대신들이 따라서 통곡한다. 공민왕:....... 그런 대신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공민왕. 문득 궐문 앞에 홀로 서있는 노국공주를 바라본다. 노국공주:....... 공민왕:...... 또 한번 떠오르는 공민왕의 기묘한 미소. #강안전의 뜰(밤) 공민왕을 에워싼 김용, 조일신, 정세운. 최만생의 안내로 온다. 뒤따르는 대신들. 이제현, 기철, 염제신, 이인복, 윤시우 등. 공민왕:...... 멈춰서 바라본다. 최만생: 전하. 역대 제왕께서 대전으로 쓰시던 강안전이옵나이다 공민왕: 알고 있느니라. 내가 어찌 이곳을 기억하지 못하겠느냐. 내 아버님께서 계시던 곳이니 문득 눈물이 핑도는 공민왕. #곤성전의 뜰(밤) 내인 두 사람이 등불을 밝히고 앞서오고, 노국공주와 안도치가 온다. 전각에서 기다리던 박상궁이 아래로 내려온다. 박상궁: 왕비전하. 소인 박상궁이옵나이다. 앞으로 소인이 왕비전하를 뫼실 것이옵나이다 노국공주:...... 전각을 바라본다. 안도치: 마마. 곤성전은 역대 중전마마께서 중궁전으로 쓰시던 전각이옵나이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노국공주: 전하께서는 안도치:(얼른) 전하께서는 강안전에 머무시면서 국사를 보시게 되옵나이다 노국공주:...... 다시 한번 전각을 바라본다. 전각의 모습이 왠지 노국공주의 눈에는 쓸쓸하다. 안도치: 어서 안으로 드시옵소서 마마 물끄러미 전각만 바라보는 노국공주. #동. 안(밤) 방문이 활짝 열린다. 노국공주:..... 안을 바라본다. 넓은 방 안. 그 눈에 띄는 보료. 안도치를 본다. 안도치:(웃으며) 원나라에 계실 때는 방 안에서 교의를 사용하셨으나, 고려는 방안에 온돌을 들여 불을 지피는 까닭으로 보료에 앉아 계셔야 하옵나이다 노국공주: 온돌이라? 안도치: 어디보자. 방에 불을 넉넉히 지펴놓았느냐 안으로 들어와 방바닥을 손으로 만져보는 안도치. 안도치: 따뜻하구나 (박상궁에게) 뭘 하고 있느냐. 왕비전하를 어서 안으로 뫼시잖구 박상궁: 예 얼른 노국공주를 양 옆에서 부액한다. 안으로 들어선다. 안도치: 잠깐만 계시옵소서 마마 (얼른 가서 무릎 꿇고 앉아) 황공하오나 방 안에 드실 때는 신을 벗으셔야 하옵나이다 노국공주의 신을 벗겨주는 안도치. 노국공주, 안으로 들어온다. 보료로 간다. 안도치: 조심하시옵소서 마마. 방바닥이 미끄럽사옵니다 조심스럽게 노국공주를 부액하는 박상궁과 나인. 보료에 노국공주를 앉힌다. 다리를 어떻게 할지 몰라 당황하는 노국공주. 안도치:(앞에 앉아 시범을 보인다) 앉으실 때는 다리를 이렇게 하시고 치마 속에 감추시면 되옵니다 겨우 자리잡고 앉는 노국공주. 안도치: 어떠십니까 왕비전하 노국공주: 이러고 하루 종일 앉아 있어야 된다는 겁니까 안도치: 불편하시옵니까 마마 노국공주: 으음 자세를 편히 하려다 뒤로 기우뚱하는 노국공주. 안도치:(놀래서) 마마 박상궁과 나인이 얼른 노국공주를 부축한다. 안도치: 괜찮으시옵나이까 마마 노국공주: 오늘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 다리를 쭉 펴고 앉아야지 다리를 쭈욱 펴는 노국공주. 치마 밖으로 두 발이 나온다. 놀래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얼굴을 돌리는 박상궁. 노국공주:...... 민망해서 다리를 다시 치마 속으로 거둬들인다. 안도치:(웃으며) 차차 익히시기로 하시고 오늘은 편한대로 하시옵소서 노국공주:..... 자세를 잡고 앉으려고 애쓰는 노국공주. 그 모습이 우스워 웃음을 참는 안도치. #강안전의 복도(밤) 이인복과 윤시우를 비롯한 대신들이 시립해 서있다. 위협하듯 노려보고 있는 김용과 조일신. #강안전의 안(밤) 공민왕:...... 앉았다. 이제현, 염제신, 기철이 부복했다. 공민왕:(기철을 보더니) 아직도 서운하시오 기철:(보더니) 아, 아니옵나이다 전하 공민왕:(싱긋 웃으며) 잊어버리세요. 중전께서 아직 고려의 풍습에 익숙치 않은 지라 기철: 신의 불찰이 더 크옵나이다 공민왕: 이핼 해주시니 고맙소이다 이제현: 전하. 우선 시급한 것이 공민왕: 오늘은 그만 물러들 가세요. 좀 쉬어야겠습니다 이제현: 우선 옥새를 거두시고 공민왕: 쉬어야겠다고 했습니다 이제현:...... 공민왕: 기왕지사 익재대감께서 섭정승을 맡아 국사를 전담하고 계셨으니 당분간 그리하세요 이제현: 전하 공민왕: 갑자기 고려에 돌아왔으니 내가 아는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익재대감께서 좀 도와주세요 웃어보이는 공민왕. 희비:(밖에서) 전하. 내 아들을 살려주세요. 전하 #동. 뜰(밤) 상궁 내인들의 제지를 뿌리치고 땅바닥에 엎드리는 희비. 희비: 전왕께서는 전하의 조카가 되지 않습니까. 고려의 새 국왕이 되신 전하의 손에 어린 조카의 피부터 손에 묻히셔야 되겠습니까. 전하. 내 아들을 살려주세요 통곡하는 희비. 윤시우가 달려 나와 당황해서 말린다. 윤시우: 대비마마. 어쩌자고 이러십니까 희비: 염려하지 마세요. 내가 사사롭게는 새 임금이 되신 전하의 형숩니다. 설마하니 우리 모자를 다 죽이시겠습니까 (울며) 전하. 내 아들을 살려주시고 대신 저를 죽이세요 전하. #동. 안(밤) 공민왕: 누가 저리 슬피 울고 있는 겁니까 난처한 세 사람. 공민왕: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최만생: 전왕의 모후가 되시는 희비 윤씨옵나이다 공민왕: 허면 대비가 아니시냐 최만생:(대신들 눈치보며) 예.....전하 공민왕: 안으로 뫼셔라 이제현: 전하. 밝은 날 불러보심이 공민왕: 아니구나. 대비께서 사사롭게는 내 형수가 되시니 내가 직접 나가서 맞는 것이 예의가 아니겠느냐 벌떡 일어나는 공민왕. 황급히 따라 일어나는 이제현 등 세 사람. 최만생:(황급히) 전하. 희비께서는 죄를 짓고 근신 중이신 지라 공민왕:(버럭) 네 이놈. 내 형수께서 무슨 죄를 지었다고 하느냐 최만생:....... 공민왕:(이제현에게) 희비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이제현:(신음) 공민왕: 말씀을 해보세요 이제현:.......(더 숙인다) 기철: 전왕이 무능하고 횡포하여 폐위당한 것은 섭정을 맡은 희비의 잘못이 크옵나이다 공민왕: 왕실의 일은 간섭하지 마세요. 당분간 국사는 섭정승에게 맡겨놓을 것이나, 왕실의 일은 내가 직접 추스릴 겁니다 밖으로 나가는 공민왕. #동. 복도(밤) 공민왕이 나간다. 우르르 비켜나는 대신들. 최만생이 급히 따른다. #동. 안(밤) 기철:(이제현에게) 어젯밤 꿈자리가 사납더니 내가 오늘 왕비전하께 목이 날아갈 뻔했습니다 킬킬 웃는 기철. #동. 뜰(밤) 희비: 전하 엎드려 흐느끼는 희비. 공민왕:(손 잡아 일으키며) 일어나세요 형수 희비: 먼저 약속을 하세요. 내 아들을 죽이지 않으시겠다구요 공민왕: 그럴 리가 있습니까. 어린 조카를 죽이다니오 희비: 약속을 하셨습니다 공민왕: 예.....(끄덕이며) 무슨 일이 있어도 조카를 지켜주겠습니다 희비를 잡아 일으키는 공민왕. 희비: 전하 (다시 주저앉으며) 이 은혜는 죽어서도 잊지 않을 것이옵니다 다시 통곡하는 희비. #곤성전의. 방 안(밤) 촛불. 노국공주:...... 혼자 앉아있다. 시립한 안도치와 박상궁. 깊은 생각에 잠기 노국공주. 박상궁: 왕비전하. 침수 드실 준비를 하올까요 노국공주:(불쑥) 어찌 생각하실꼬 안도치:...... 노국공주: 내가 경솔하였다 안도치: 잘하셨나이다 마마. 마마께서 칼을 뽑아드시고 기철의 무례함을 나무라실 때에 어찌나 통쾌하고 속이 시원한지 노국공주:(고개 돌리며) 전하께서 나를 바라보시는 눈빛이........(문득 목이 메인다) 눈물을 참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안도치:...... 박상궁에게 가만히 눈짓하는 안도치. 조용히 나가는 박상궁. #동. 복도(밤) 나오는 박상궁.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는 나인들. #동. 안(밤) 고개 돌리고 눈물 참고 있는 노국공주. 안도치: 마마. 그만 심려를 거두시옵소서. 전하께옵서도 노국공주:(막듯이 보며) 전하께서 나를 찾지 않으시면 어찌하느냐 안도치:...... 노국공주: 연경을 떠난 이래 전하께선 내게 눈길 한번 주지 않으셨다. 어째서 내 마음을 몰라주시는지 안도치: 생각이 많으시니 미처 마마를 돌봐드리지 못한 것이옵나이다 노국공주: 어찌하면 되겠느냐 안도치:...... 노국공주: 어찌하면 전하의 사랑을 얻을 수 있느냐 눈물이 글썽해서 바라보는 노국공주. #대궐의 일각(밤) 이제현, 염제신, 이인복이 온다. 염제신: 전하께서 어찌 보이십니까 이제현: 어찌 보이다니오 염제신: 강한 듯 유약하고 유악한 듯 하면서도 강해 보이시니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소이다 이인복: 부처님 손바닥이지요 염제신: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 이인복: 기철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염제신: 기철이 쩔쩔매는 꼴을 못보셨는가 이인복: 전하가 무서워 그렇겠습니까. 세상물정 모르는 왕비전하의 칼이 무서워 죽는 시늉을 한 것 뿐이지요 염제신: 하긴 왕비전하께서 보통분이 아니시네 (이제현의 눈치를 보며) 이걸 어찌 봐야할 지...... 이인복: 이 나라를 망쳐놓은 건 몽골의 공주들입니다. 충렬왕 때부터 몽골 공주의 눈치나 보면서 제대로 임금 노릇을 못해봤으니 이제현:.......(신음) #다른 대궐의 일각(밤) 기원: 형님. 개망신을 당하고도 가만 계실 겁니까 기철:(웃으며) 철이 없어서 그러는 걸 어떡하느냐. 좀 참고 있으면 기가 꺾이겠지 기원: 누이도 참. 어디서 저런 개망나니를 왕비로 정해주셨는지 기철: 걱정할 거 없다. 그 기세가 며칠이나 가겠느냐 느긋한 기철. 기원:(뒤에다) 형님은 정말 분하지도 않으십니까 기철:(이를 갈듯) 분하다고 쪽박을 깰 수야 없지. 살살 달래가면서 해나가는 수밖에 #강안전의 방 안(밤) 주안상. 공민왕:...... 김용, 조일신, 정세운이 마주앉았다. 조일신:(취해서) 왕비전하께서는 참으로 대담하십니다. 기철의 목에 칼을 들이대시는 모습을 뵈니 십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앉는 기분이었습니다 김용:(취해서) 기철이 벌벌 떠는 모습이라니. 바지에 오줌이나 안 쌌는지 모르겠네 웃어대는 두 사람. 공민왕:......(엷은 미소) 김용: 전하. 참으로 든든하시겠습니다. 대장부 못지 않은 왕비전하를 곁에 두셨으니 (웃는다) 정세운: 취하셨으이 김용: 그렇지 않은가. 기철이 아무리 분해도 원나라 공주에겐 꼼짝을 못할 것이니 조일신: 전하. 먼저 군권을 틀어잡으셔야 합니다. 그런 다음 전하께 거역하는 놈들을 한놈한놈 찾아서 모두 처단을 해야 합니다 김용: 저희들에게 맡겨주십시오. 저희 두 사람이 군권을 장악한 다음 모조리 목을 베어버리겠다는 시늉하며 웃는 김용. 공민왕:....... 조일신: 그나저나 그런 약속은 뭣하러 하십니까. 어차피 죽여야 할 희비의 자식이거늘 정세운: 그만들 일어나세. 밤이 늦었으이 일어나려는 정세운. 조일신: 그렇지 않사옵니까. 강화도에 안치한 전왕을 없애버려야 딴마음을 품은 놈들이 없어질 것이옵니다 공민왕:..... 여전히 깊은 생각에 잠긴 공민왕.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동. 복도(밤) 나와서 가는 공민왕. 최만생: 전하 공민왕: 곤성전이 어디냐. 곤성전으로 가자 #동. 뜰(밤) 나오는 공민왕. 최만생:(따라나오며) 전하. 잠시만 기다리시옵소서. 옥교를 대령하겠나이다 공민왕: 앞장 서거라. 걸어서 갈 것이야 사납게 내지르는 공민왕. #동. 안(밤) 정세운: 참으로 생각들이 없으시네. 전하의 심기가 불편하신 까닭을 그렇게도 모르겠는가 여전히 영문을 몰라 마주보는 김용과 조일신. #대궐의 길(밤) 화가 나서 달려가듯 가는 공민왕. 미처 등불을 밝히지 못해 쩔쩔매는 최만생. #명덕태후의 사저. 대문 앞(밤) 활짝 열린 대문. 안과 밖에 불을 환하게 밝혔다. #동. 방 안(밤) 명덕태후:....... 방문만 노려본다. ‘방문’. 명덕태후:(부르르 떨며) 아직도 소식이 없느냐 #동. 뜰(밤) 김상궁:...... 명덕태후:(소리) 아직도 소식이 없느냐고 하질 않느냐 김상궁: 예, 마마 #동. 안(밤) 명덕태후:...... 부르르. 김상궁:(밖에서) 그만 대문을 닫으올까요 마마 명덕태후: 내버려두어라. 내 아드님이 날 모시러 올 때까지 일 년이고 십 년이고 열어둘 것이야 #곤성전의 복도(밤) 들어오는 공민왕. 당황하는 박상궁. 안에서 안도치의 웃음소리. 공민왕:..... 멈춘다. #동. 방 안(밤) 걷는 연습을 하고 있는 노국공주. 안도치:(웃으며) 치마 밖으로 그렇게 발이 나오시면 아니되옵니다. 치마 끝에 발등이 보일 듯 말 듯 조금씩 앞으로 내미셔야 하옵나이다 노국공주: 이렇게 말이냐 안도치의 말대로 해보이는 노국공주. 안도치: 예, 마마. 잘 하고 계시옵니다 균형을 잡지 못해 기우뚱하면서 발걸음을 조금씩 옮기는 노국공주. 웃는 안도치. 방문이 활짝 열린다. 공민왕:...... 노려본다. 노국공주:..... 천천히 공민왕을 바라본다. 순간, 공민왕:(버럭) 여긴 연경이 아니라 고렵니다 노국공주:.......(웃음이 사라지는) 공민왕: 몽골의 풍습은 어떤 지 몰라도 고려에서는 여자가 칼을 뽑아들고 설쳐대는 꼴을 본 적이 없습니다 훽 돌아서 가버리는 공민왕. 노국공주:...... #동. 복도(밤) 나가는 공민왕. 급히 다시 따라나오는 최만생. #동. 안(밤) 노국공주:...... 망연자실 서있다. 안도치:......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안도치. #동. 뜰(밤) 공민왕, 나온다. 최만생: 전하. 발 밑을 조심하시옵소서 안절부절하며 따라나오는 최만생. 공민왕: 말과 가마를 대령하라. 내가 어머니를 모시러 갈 것이야 최만생:(당황) 공민왕:(버럭) 뭘 꾸물대고 있느냐. 어머니를 모시러 간다고 하질 않느냐 #동. 안(밤) 노국공주:..... 그대로 서있다. 안도치: 마마 노국공주: 염려하지 말거라. 내가 고려의 풍습을 따를 것이니 발밑을 내려다보며 다시 걷기 연습을 하는 노국공주. 조심조심 발등이 보일까 치마 끝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내미는 노국공주. 노국공주: 이젠 됐느냐 웃으며 안도치를 바라보는 노국공주. 안도치: 마마 울먹이는 안도치. #궐문의 안 뜰(밤) 말을 타고 가마를 대동해서 오는 공민왕. 급히 따르는 최만생과 환관들. 기철: 멈추어라 막아서는 기철. 공민왕: 내 길을 막는 자가 누구냐 기철:(나서더니) 전하가 아니시옵니까 공민왕: 내가 어머니를 모시러 가는 길이다. 비켜라 기철: 못 가십니다 두 손을 쳐들어 막는 기철. 기철: 전하의 생모이신 덕경부의 홍씨 부인은 평민이나 다름이 없사옵나이다 공민왕:(버럭) 내 어머니께서는 충숙왕의 부인으로서 내 형님이신 충혜왕과 나를 낳으셨다. 또한 충목왕과 전왕의 할머니가 되시느니라. 헌데 평민이나 다름이 없다니 기철: 전하. 홍씨 부인은 한번도 왕비로 책봉을 받으신 적이 없나이다 (싱긋 웃는다) 공민왕:(부르르) 기철: 황공하오나 충혜왕과 전하께서는 낳기는 홍씨 부인이 낳으셨으나 홍씨 부인은 생모에 불과하옵고 공민왕: 나는 그렇게 못한다. 나는 대궐로 어머니를 모셔와 대비로 봉할 것이니 또 한번 내 어머니를 두고 평민이라 부르면 이번에 내가 너를 죽일 것이야 말을 몰아 기철에게 달려든다. 싱긋 웃으며 피하는 기철. 대궐문이 열린다. 급히 멈추는 공민왕의 말. 궐문을 빈틈없이 막아선 응양군들. 기원이 버티고 서있다. 공민왕: 물러가지 못하겠느냐 꼼짝 않는 기원과 응양군들. 공민왕: 내가 누군 줄 아느냐. 고려의 왕이니라 이리저리 말을 모는 공민왕. 꼼짝도 않는 기원과 응양군들. 기철: 전하. 전하를 고려의 국왕으로 봉한 분이 누군지 벌써 잊으셨습니까. 연경에 계시는 황후폐하십니다 공민왕:...... 기철: 그 은혜를 잊으시면 안 되지요 공민앙:....... 부들부들 떨기만 하는 공민왕. #명덕태후의 사저. 대문 앞(밤) 여전히 활짝 열린 대문. #법왕사의 방 방문 여는 지효. 짐을 꾸리고 있는 신돈. 지효: 가시려구요 신돈: 오늘부터는 중이 아니니 더 이상 절밥을 축낼 수가 없지요 지효: 중이 아니시라니요 (원현을 본다) 원현: 오늘부터 승복을 벗고 장삿길로 들어서겠다고 저 고집입니다 지효:(웃으며) 돈을 벌어보시려구요 편조스님 신돈: 서역까지 가서 불경을 공부하고 왔는데도 오라는 절이 없으니 불도는 더 닦아 뭘 하겠습니까 (짐 꾸려 들고 일어나더니) 지효스님, 원현스님 좀 부탁합니다 나오는 신돈. #동. 뜰 신돈:(신발 신으며) 보우선사님께서는 출타 중이십니까 지효: 뒷 뜰의 채마밭을 가꾸고 계십니다 신돈: 보우선사님은 참으로 훌륭하신 분이십니다. 조금 있으면 왕사나 국사가 되실 귀한 분께서 아직도 손수 채소밭을 갈고 계시니. 나무관세음보살 장난치듯 합장하고 간다. #동. 뒤뜰의 채소밭 신돈, 온다. 밭을 가꾸고 있는 보우. 신돈:(대뜸) 혹시 선사님께서는 먼 훗날의 일을 미리 내다볼 수 있는 천리안을 갖고 계십니까 보우:(일하며) 꼭 천리안의 신통한 능력이 아니더라도 현재를 제대로 볼 수 있는 혜안만 있다면 미래는 저절로 보이는 것이 아니겠느냐 신돈:(털썩 주저앉으며) 그럼 선사님의 혜안으로 보실 때 고려의 앞날은 어떠하옵니까 보우: 소 떼가 강물을 건널 때 길잡이 소가 길을 바로 가지 못하면 뒤따르는 소들이 물에 빠지게 되니, 이는 길잡이 소가 길을 잘못 선택했기 때문이다. 물을 건너는 길잡이 소가 길을 잘 인도하면 뒤따르는 많은 소들이 물에 빠지지 않고 강을 건너듯 나라의 임금이 바로 법을 행하면 모든 백성들이 편안하고 즐거울 것이다 신돈:(웃으며) 그건 부처님의 말씀이잖습니까. 저는 보우선사님의 생각을 물었습니다 보우:(일손을 놓고 대궐을 향해 합장하며) 국왕전하. 전하를 위해서나 전하의 가족이나 나라를 위한다고 죄업을 짓지 마시고, 임금의 자리를 위해서 악행을 저지르지 마시옵소서. 또한 법으로 다스리시고 법이 아니면 행하지 마시옵소서. 나무관세음보살 신돈: 말로는 누군들 요순 시절을 만들지 못하겠습니까. 저 같은 땡초도 말로는 태평성대를 수천 번 만들고도 남을 겁니다. 그러니 뭔가 실질적인 방법을 제시하셔야 전하께서도 알아 들으실 것이 아닙니까 보우:(또 합장하며) 전하. 그저 우리 백성들 배곯지 않고 편히 살게 해주시옵소서 신돈:(툭툭 털고 일어나며) 나무관세음보살 돌아서가는 신돈. 보우: 편조야 (길게 부른다) 신돈:(돌아선다) 보우: 큰스님께서 어째서 너를 거두시는지 아느냐 신돈:...... 보우: 너의 마음 속에서 타고 있는 증오심의 불을 끄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것이기에 그리하는 것이다 신돈:...... 흠칫하는 신돈. 돌아서 다시 일을 하는 보우. #법왕사에서 내려가는 길 신돈, 온다. 부지런히 따라오는 원현. 멈추는 신돈. 따라서 멈추는 원현. 신돈:(장난치듯) 나는 오늘부터 중이 아니니 원현스님께선 따라오지 말라고 하잖습니까 원현:(웃으며) 주머니에 땡전 한푼 없는 편조스님이 무슨 돈으로 먹고 자고 하겠습니까. 이 놈이 해결을 해드려야지요 신돈: 날 따라 다니면 지금보다 더 많은 험한 꼴을 보게 될 텐데 그래도 좋으십니까 원현스님 원현: 술 마시고 고기 먹고 계집질 하는 거 말고 더 험한 꼴을 본다는 겁니까 신돈: 그건 약과지요 원현:(한숨 쉬듯) 그럼 할 수 없군요. 오늘부터 나도 머릴 기르고 승복을 벗는 수밖에요 신돈:..... 물끄러미 본다. 원현:(정색하고) 편조스님께서 강물에 빠진 나를 구해주셨으니 나는 편조스님 겁니다. 편조스님을 따라다니다 비명횡사를 해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니 제발 돌아가라는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신돈:....... 보더니 들고 있던 짐보따리를 훽 원현에게 던진다. 얼굴에 부딪치며 짐보따리를 받는 원현. 좋아서 웃는다. 신돈:...... 씨익 웃고 앞서간다. #개태사. 마당 가마가 멎어있다. 가마의 화려한 장식을 부러운 듯 만져보고 있는 곰순네. 큰스님:(안에서 고함소리) 밖에 곰순에미 있느냐 곰순네: 예, 스님 큰스님:(소리) 가서 반야를 데리고 오너라 곰순네: 예, 스님 부리나케 달려간다. #동. 방 안 큰스님:...... 목을 빼서 앞을 본다. 앞에 무릎 꿇고 앉은 초선. 덩달아 윗목에 무릎 꿇고 앉은 덕운. 무릎이 아파 좌불안석이다. 큰스님: 올 해 차 농사는 잘 지으셨습니까 초선: 올해도 망쳤습니다 큰스님: 아니 왜요. 다들 차 농사가 잘 됐다고 좋아들 하던데 초선: 저야 그 농사를 짓는 사람이 아니지요 큰스님: 옳거니. 초선 보살께서는 차를 사고 파는 장삿꾼이시니 (웃고는) 그나저나 편히 앉으세요 덕운, 살았다 싶어 다리는 펴려는데, 초선: 스님 앞에서 평좌를 할 수는 없지요. 스님은 생불이신대요 큰스님:(혀를 차며) 또 사람을 면박주신다 초선:(미소) 다시 무릎을 꿇고 앉는 덕운. 큰스님: 반얄 데려왔느냐 밖에다 내지른다. 덕운:(살았다 싶어) 제가 나가보고 오겠습니다 얼른 일어나는 덕운. 덕운: 어이구 다리가 저려서 쩔쩔 매며 밖으로 나가는 덕운. 혀를 차는 큰스님. 큰스님: 중이 욕심이 없으면 절이 크질 않고 임금이 욕심이 없으면 나라가 크질 않아요 초선: 임금의 욕심이 지나치면 백성들이 고달프지 않습니까 큰스님: 아이구 우리 보살님이 바깥 양반 대신 장사를 하더니 도통을 하셨구만 뭐가 좋은지 몸까지 흔들며 웃어대는 큰스님. 덕운:(밖에서) 스님. 반야를 데리고 왔습니다. 데리고 들어갈까요 큰스님: 거기 그냥 있거라 (초선에게) 데리고 가시지요 초선: 그냥 보내시려구요. 얼굴이나 한번 보시잖구.... 큰스님: 아, 그냥 보내지..... 시큰해서 이리저리 얼굴 돌리는 큰스님. 초선: 섭섭하신가 봅니다 큰스님: 정이 조금 들었지요 초선: 보시고 싶으면 언제든지 개경으로 올라오세요 큰스님:..... 뭐라고 말을 못하고 고개를 돌리고 빨리 데려가라는 손짓하는 큰스님. #동. 마당 반야:.... 초롱초롱 서있다. 초선:....... 바라보더니 오라고 손짓. 곰순네를 뒤돌아보는 반야. 어서 가라고 손짓하는 곰순네. 반야:.......(초선을 본다) 초선:(웃어보인다) 반야, 쪼르르 마루로 달려간다. 덕운이 반야를 잡아 번쩍 들어올린다. 발버둥치며 울기 시작하는 반야. #동. 방 안 큰스님:...... 반야의 울음소리. 어린애처럼 눈물 닦는 큰스님. #동. 마당 가마가 가고 있다. 안에서 반야의 울음소리. 눈물 훔치는 곰순네. 곰순네: 잘 살아라 반야야. 좋은 데 가는 거니까 울지말구 #동. 가마. 안 초선의 무릎에 앉아 울고 있는 반야. 절 밖으로 나간다. #동. 방 안 코를 휑 푸는 큰스님. 덕운: 그렇게 우실 걸 반야를 왜 보내셨습니까 큰스님: 이놈아 울기는. 코에 사레가 들려서 그렇지 또 한번 코를 휑 푸는 큰스님. #개태사. 앞 길 가마가 간다. 아스라이 멀어져가는 -. #남대가의 거리 노상의 찻집. 그 거리 너머로 대궐의 지붕들이 보인다. 신돈:....... 가만히 한숨 내쉰다. 원현:(차 마시다) 아까부터 뭘 그리 열심히 보고 계십니까 신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기로 들어가야겠는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뾰족한 수가 없으니.... 원현:(힐끔 신돈이 보는 곳을 보더니) 대궐 말씀입니까 신돈: 임금이 사시는 곳 아닌가 원현:(웃으며) 아직도 그 약속을 믿고 계십니까 신돈: 약속을 어길 분이 아니래두 그런다 입맛을 다시며 다시 대궐 쪽을 본다. 대궐의 지붕들. 신돈: 세상을 바꿔 놓으려면 힘이 있어야 되는데 그 힘이란 게 바로 권력이 아닌가. 헌데 그 권력이란 놈은 임금님 주머니 속에 들어있으니 어떻게든 그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어서 쥐꼬리만한 권력이라도 훔쳐야겠는데 도무지 저 안으로 들어갈 묘책이 떠오르질 않으니......(입맛을 다신다) 원현: 속세의 권력 가지고 세상을 바꿔놓을 수가 있겠습니까. 부처님의 법이라면 몰라도 신돈:(보더니) 부처님의 법 가지고 언제 세상을 바꾸겠나 원현: 그래서 승복을 벗어던진 겁니까 신돈: 옳거니. 이게 바로 그 기회렷다 벌떡 일어나 달려가는 신돈. 놀래서 바라보는 원현. 신돈이 마침 말을 타고 지나가던 김용의 말고삐를 잡고 굽실거리고 있다. 김용:(말 위에서) 누구라고 했느냐 신돈: 절 몰라보시겠습니까. 연경에서 강릉대군의 집을 드나들던 김용: 그러고 보니 니 놈은 편조라는 중놈이 아니냐 신돈: 예, 맞습니다. 소인이 시건방을 떨다가 나으리한테 흠씬 두들겨 맞은 적이 있었지요 김용: 헌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대궐 앞을 어슬렁거리고 있느냐 신돈: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지라 김용: 중놈이 절 밥을 얻어 먹으면 되지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니 신돈: 사정이 그렇게 됐습니다요 웃어보이는 신돈. 김용:(훑어보더니 비웃듯) 근간 집으로 한번 찾아오거라. 내 밥 한 끼는 배불리 먹여 보내줄 것이니 말고삐를 나꿔 채 신돈을 치밀 듯이 말을 몰아 가버리는 김용. 신돈:(뒤에다 대고) 살펴가십시오 나으리 꾸벅 절하는 신돈. 원현:...... 그 모양을 바라보다 한숨 내쉬는 원현. 신돈:(우쭐거리며 오며) 집으로 한번 찾아오라는군. 잘하면 국왕전하는 몰라도 날 끔찍이 좋아하던 안환관은 만날 수가 있을 거야. 그러다보면 그 양반도 만날 기회가 있겠지 원현:(한숨 쉬고 일어난다) 신돈: 어딜 가시나 원현: 탁발이라도 해와야 저녁 한끼는 때울 게 아닙니까 원현, 간다. 신돈: 조금만 기다리시게. 우리 팔자가 늘어질 테니까 웃어대는 신돈. #개경의 초선의 집. 앞 가마가 와서 멎는다. 안에서 달려나오는 박서방. 가마문을 열어준다. 잠든 반야를 안고 내리는 초선. 박서방: 다녀오셨습니까 마님 말없이 반야를 안고 안으로 들어가는 초선. #동. 안방 얼른 아랫목에 이불을 펴는 박의 처. 잠든 반야를 내려놓는 초선. 윗목에서 굽신거리고 있는 박서방. 박의처: 이 아입니까 마님 초선: 스님하고 안 떨어지려는 걸 겨우 데리고 왔다 박의처:(잠든 반야를 들여다보며) 깜찍하게도 생겼네 초선: 복덩이가 굴러들어왔다. 자네가 잘 거둬야 할 것이야 박의처:(좋아서) 예, 마님 초선:..... 잠든 반야를 본다. 잠든 반야. #다른 남대가의 거리 초선을 따라오는 박서방. 초선: 가구소에서 왜 또 박서방: 오나가나 세금 타령입지요 초선: 지놈들이 달라는대로 다 줬구만 박서방: 덕성부원군의 위세가 더 커졌습니다요. 그도 그럴 것이 원나라까지 가서 새 임금님을 모시고 왔으니 오죽하겠습니까요 초선:..... 가만히 끄덕이며 간다. 각종 차를 파는 도매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북적거리는 손님들. 초선에게 인사를 하는 점원들. #남대가의 뒷골목 신돈이 온다. 원현이 공철과 실갱이를 하고 있다. 원현: 탁발하는데 구역이 따로 있다는 소린 처음 들었소.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딨소 공철: 아무리 부처님께서 무소유를 가르치셨지만 스님들끼리도 서로 지켜야 할 예의가 있는 거요 원현:(기가 막혀서) 그래서 여기가 스님의 구역이다 그 말이오 공철: 여러 말 할 것 없이 가시오 원현: 못 가겠다면 어쩔거요 공철: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느닷없이 원현을 훽 잡아던지는 공철. 원현: 아이쿠 엉덩방아를 찧는 원현. 공철: 또 한번 내 구역을 침범하면 그땐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놓을 게다 툭툭 털고 가버리는 공초. 신돈:....... 싱긋 웃는다. 원현:(신돈 보더니) 보고만 계실 겁니까 신돈: 큰스님께서 뭐라고 하셨나. 탁발은 스님이 되는 첫 번째 시험이니 어떤 모욕이나 봉변을 당해도 꾹 참아야 한다고 하시질 않았나 놀리듯 웃어대는 신돈. #개경의 어느 집. 앞(밤) 비가 내리고 있다. 처마 밑에 비를 피해 서있는 신돈과 원현. 원현: 뭣하러 이 고생을 합니까. 법왕사로 갑시다 편조스님 신돈:..... 원현: 편조스님 신돈: 큰스님의 따뜻한 품이 그립지 않으신가 원현스님 원현:....... 신돈: 비를 피해 남의 집 처마 밑에서 밤을 세우고 있자니 큰스님의 따뜻한 품이 더욱 간절해지네그려 원현: 그런데 왜 승복을 벗겠다는 겁니까 신돈: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면서도 나는 고생이라곤 모르고 자랐네. 물론 마음 고생이야 심했지만 먹고 자고 입는 걱정은 해본 적이 없지. 허나 속세로 나와보니 사람 사는 것이 먹고 자고 입는 것이 전부가 아닌가. 큰스님께서 나보고 자꾸 속세로 나가라고 등을 떠미시는 이유가 그것일 거야 원현: 언제 큰스님께서 편조스님더러 절을 떠나라고 했습니까 신돈: 내가 원나라와 서역을 떠돌며 삼 년 동안 갈고 닦은 불도가 오늘 밤 깨달은 이치보다 크다고 할 수가 없으니 이게 바로 큰스님의 뜻이 아니고 뭐겠는가 웃어대는 신돈. 그런 신돈을 보며 기막혀 웃는 원현. 땅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 처마 밑에 서있는 신돈과 원현. #기황후의 처소 기황후: 나는 내 오래비들을 믿을 수가 없네 덕녕공주:...... 기황후: 차마 혈육의 정을 떼어버릴 수가 없어 웬만하면 눈을 감아주고 있지만 저러다 비명횡사라도 당하면 어쩌나 걱정이 태산 같네 덕녕공주:(미소) 기황후: 허기야 자네는 내 오래비들을 직접 겪어봤을 테니 내 말뜻을 잘 알겠지 덕녕공주: 황후폐하. 제가 고려로 돌아간들 무슨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기황후: 보탑실리는 녹녹한 여자가 아니지 덕녕공주:...... 기황후: 분명 고려를 발판으로 쿤란태자의 재기를 꾀할 것이야 덕녕공주:(웃으며) 고려는 작고 보잘것 없는 변방의 왕국입니다 기황후:.......(물끄러미 보며) 역대 중원의 제왕들이 정복하지 못한 나라가 고구려와 고구려의 후예인 고려였네. 몽골이 고려를 정복하는 데도 삼십 년이 넘게 걸렸구. 언젠가는 반드시 일어나서 우리를 향해 창검을 겨누고도 남을 고렬세 덕녕공주:(웃으며) 황후폐하께서는 여전히 고려인이십니다 기황후: 자네는 덕녕공주: 고려엔 제 아들이 묻혀있으니 어찌 고려를 잊겠습니까 기황후: 그러니 고려로 돌아가라는 게야 덕녕공주:...... 기황후: 보탑실 리가 자네를 잘 따른다는 얘길 들었네. 내가 보탑실리의 생각만 미리 알 수 있다면 후환 역시미리 막을 수가 있을 거야 #동. 뜰 덕녕공주를 따라나오는 박불화. 덕녕공주: 황후폐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게 무언지..... 박불화: 황후폐하의 근심은 아유시리다라 태자 전하의 장래입니다 덕녕공주:(본다)...... 박불화: 태자전하께서 무사히 원의 황제가 되실 수만 있다면 고려는 적이 될 수도 있고 또한 형제국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지요 덕녕공주: 나더러 보탑실리의 감시자가 되라? 깊은 한숨 내쉬는 덕녕공주. #강안전의 방 안 공민왕:..... 부복한 김용, 조일신, 정세운. 부들부들 떨고있는 공민왕. 조일신: 전하. 기철을 먼저 죽이셔야 합니다. 기철을 살려두고는 왕권을 바로 세우실 수가 없사옵니다 김용: 지금은 때가 아니옵니다 전하. 기철의 위세가 꺾인 연후에 조일신: 덕경부로 행차하시는 전하의 길을 막은 자야. 그런 모욕을 당하고도 전하께서 참으신다면 누가 전하를 따르겠는가 김용: 기철이 군권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이 마당에 우리가 무슨 힘이 있어 기철에게 대항을 한단 말인가 조일신: 자네 생각은 어떤가 정세운을 바라보는 조일신. 정세운: 때를 기다리세 조일신: 이런 답답한 사람들이 있나. 왕비전하께서 칼을 뽑아드셨네. 우리가 왕비전하의 기개만큼도 못해서야 어찌 전하의 충복들이라 하겠나 김용: 왕비전하께서 나설 일이 아니었네. 전하의 체면이 뭐가 됐느냐 말야 공민왕:(버럭) 그만들 하세요 (고개 돌리며) 내게도 생각이 있으니 모욕감에 부르르 떠는 공민왕. #곤성전의 뜰 늘어선 응양군들. 왕비의 가마가 놓여있다. 싱글싱글 웃으며 가마를 툭툭 쳐보는 기원. #동. 안 노국공주:....... 불안해서 바라보는 안도치. 노국공주: 차비를 하시게 안도치:(놀래서 본다) 노국공주: 내가 덕경부로 가서 시어머님을 뵐 것이야 안도치: 마마 노국공주: 어디 기철이 내 앞길도 막나 두고 볼 것이야 #동. 뜰 노국공주, 나온다. 안도치: 마마 와서 막으려는 안도치. 계단을 내려가는 노국공주. 기원이 달려와 막는다. 노국공주: 비키지 못하겠느냐. 내가 시어머님께 인사를 드리러 가는 길이다 계단을 내려간다. 기원이 그 기세에 피한다. 가마에 올랑앉는 노국공주. 노국공주: 가자 가마를 번쩍 들어올리는 가마꾼들. 가마 위에 당당히 앉은 노국공주. <신돈 12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