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 13회 <신돈> -13회- #대궐의 문. 앞 대궐문이 활짝 열린다. 노국공주의 가마가 나온다. 따르는 안도치와 박상궁. 가마 위에 우뚝 앉은 노국공주. #강안전의 복도 시립한 최만생. 환관 하나가 허겁지겁 달려온다. 최만생: 어허. 여기가 어디라고 뛰어오는 게야 이환관: 하도 급한 일이온지라 안을 살피더니 이환관에게 귀를 가져가는 최만생. 속삭이는 이환관. 최만생: 저런 마른침 삼키고 안에다 고하려는 최만생. 공민왕:(안에서) 그러니 나더러 어떡하라는 겁니까 공민왕의 고함소리에 입을 다무는 최만생. #동. 안 공민왕: 좋습니다. 말씀들을 해보세요. 어찌하면 내가 왕권을 바로 세울 수가 있는지 정세운: 가장 시급한 것은 정방을 폐하는 일입니다 (*정방; 고려 후기에 관리들의 인사를 담당하던 기구) 조일신: 정방을 폐하다니오 정세운: 기철이 저처럼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것은 정방을 통해 자신의 심복들을 요소요소에 심어놓은 탓입니다. 그러니 정방을 폐지하면 기철의 한쪽 날개를 꺾어 놓는 거나 다름이 없소이다 조일신: 안돼지요. 정방을 폐지해서는 안 됩니다 정세운: 정방을 폐지하지 않으면 왕권을 바로 세울 수가 없어요. 정방이 대소신료들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데 전하께서 무슨 힘을 쓰실 수가 있겠습니까 조일신: 권력은 칼의 양날과 같다고 했습니다. 칼의 날카로움이 우리 쪽을 향하고 있을 때는 흉기가 되나, 반대쪽을 칠 때는 그보다 더 좋은 무기가 없는 겁니다. 정방을 폐지하는 것보다는 정방에서 기철을 내쫓는 방도를 먼저 찾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 정방을 우리 손으로 장악한 뒤 조정 곳곳에 깔려 있는 기철의 인맥을 모두 찾아내서 제거해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방을 폐지해도 기철의 신세를 진 자들이 기철의 눈치를 보며 전하를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공민왕:(신음하더니) 상호군의 생각은 어떻소이까 김용: 강화도에 유배를 간 전왕부터 죽여야지요 공민왕:(움칠하는) 김용: 전왕이 강화도에 살아 있는 한 누가 목숨을 걸고 전하께 충성을 바치겠나이까.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고 정세운: 그걸 말씀이라고 하시오 김용: 전왕의 복위를 꾀하는 자가 어디 한 둘이겠소이까 (공민왕에게) 전하. 지금 조정에 전하를 따르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기철만 해도 그렇지요. 기철이 제 뱃속을 채우느라고 전하를 국왕으로 옹립했으나 언제 마음이 변해 전하께 등을 돌릴지 모르는 처집니다. 그러니 강화도에 있는 전왕을 먼저 죽여 후환을 없애야 합니다 공민왕: 그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조일신: 상호군의 말이 일리가 있습니다 정세운: 안 될 소리 조일신: 더 좋은 방안이 있으면 말씀을 해보시게. 무조건 반대만 하지 말고 공민왕:(버럭) 모두 물러들 가세요 부르르 떠는 공민왕. #동. 복도 나오는 세 사람. 눈치를 보는 최만생. 공민왕:(안에서) 내가 할 일이 그것 뿐입니까 #동. 안 공민왕: 친구든 적이든 나는 등 뒤에 비수를 꽂는 그런 짓은 하기 싫습니다 #도성의 길 노국공주의 가마가 온다. 우르르 몰려드는 백성들. 호기심에 차서 노국공주를 바라본다. #남대가의 거리 국수집에서 국수를 먹고 있는 신돈과 원현. 사내가 달려온다. 사내: 여보게들. 새로 오신 왕비전하께서 행찰 하시네 국수를 먹다말고 몰려가는 사람들. 신돈:.... 국수를 입에 문 채 바라보더니 부리나케 뒤쫓아간다. 원현: 편조스님 대답도 않고 달려가는 신돈. #동. 부근 거리 달려오는 신돈. 노국공주의 가마가 온다. 반가워서 환하게 웃는 신돈. 응양군들이 가마로 몰려드는 백성들을 밀쳐내며 두들겨 패기 시작한다. 엎드리는 백성들. 신돈:.... 노국공주와 눈이라도 마주치려는 듯 목을 길게 뽑고 기웃거린다. 그 어깨를 내리치는 몽둥이. 군졸: 엎드리지 못하겠느냐 신돈, 납작 엎드린다. 주위의 눈치를 살피다 고개를 살짝 든다. 가마가 신돈을 지나쳐 앞으로 가고 있다. 그 가마를 따르는 안도치. 신돈:(반가워서) 안환관 어른 부르며 몸을 일으키는 신돈. 또 다시 신돈을 내려치는 몽둥이. 군졸: 어디서 고갤 쳐드는 거야 또 다시 얼굴을 땅바닥에 파묻듯 숙이는 신돈. 멀어지는 가마. 엎드려 있던 백성들이 일어나 가마 뒤를 따라간다. 원현이 온다. 원현:...... 여전히 엎드려 있는 신돈. 원현: 그래 인살 나누셨습니까 편조스님 신돈:(원현을 보더니 옷을 툭툭 털고 일어나며) 허허, 그 놈들. 불문곡직 사람을 두들겨 패대니 원현:(못마땅해서) 연경에서 당한 일을 벌써 잊었습니까. 강릉대군의 수족들도 편조스님을 사람 취급을 안 하는데 하물며 임금이 되신 강릉대군이 아는 척을 하겠습니까, 고려의 국모가 되신 공주께서 아는 척을 하시겠습니까 신돈: 약속을 했대두 그러시네. 한자리 주시겠다구 원현: 그렇다고 뭘 주겠습니까. 고관대작 벼슬자리를 내줄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돈이나 몇 푼 던져주겠지요 화가 나서 가는 원현. 신돈: 사람 취급이야 해주시겠지. 설마하니 면전에서 날 모른다고야 하시겠나? 껄껄 웃어대는 신돈. #명덕태후의 사저. 대문. 앞 활짝 열린 대문. 명덕태후가 버선발로 달려나온다. 가마에서 내리는 노국공주. 그 손부터 덥썩 잡는 명덕태후. 명덕태후: 어서오세요 중전. 중전 덕분에 내 아드님이 고려의 왕이 되셨습니다. 이 신세를 어찌 다 갚을꼬 웃어대는 명덕태후. #동. 방 안 노국공주: 절부터 받으시지요 어머님 명덕태후: 절은 무슨 절. 절을 하자고 들면 내가 먼저 해야지 웃어대면서도 절 받을 자세를 취하는 명덕태후. 두 손을 이마에 갖다대는 노국공주. 김상궁과 박상궁이 재빨리 노국공주를 부액한다. 절하는 노국공주. 명덕태후:(절 받으며) 아이고 곱기도 해라. 어쩌면 이렇게 곱게 생겼누 호들갑을 떠는 명덕태후. 흐믓해서 바라보는 안도치. 절하고 다시 일어나려는 노국공주. 명덕태후: 그냥 앉아 계세요. 일어날 거 없습니다 앉으라고 손짓해대는 명덕태후. 노국공주, 일어났다가 다시 앉는다. 그 동작이 서툴러서 위태롭다. 명덕태후: 고려의 절은 언제 배우셨누. 원나라 식은 그저 뻗정 서서 절하는 시늉만 하더구만 노국공주: 연경에 와 계시는 덕녕공주께 배웠습니다 명덕태후:(놀라는 시늉하며) 덕녕공주가 연경에 가 계신가? (혀를 차며) 대궐에 있는 것들은 대체 뭘 하고 있기에 충목왕의 생모를 먼 오랑캐 땅으로 보냈담 김상궁:(흠칫한다) 안도치, 잔기침하며 노국공주를 바라본다. 노국공주:(웃으며) 근간 다시 개경으로 모셔올까 합니다 명덕태후: 그래야지. 암 그래야지. 덕녕공주도 내 며느리가 되니 나하고 같이 지내면 되지 웃더니 문득 웃음을 그치며 노국공주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노국공주:...... 좀 불편하다. 명덕태후: 내가 당찬 며느리를 맞았다 노국공주:(좀 웃으려는) 명덕태후: 장검을 빼들고 기철의 관모를 내리치셨다구요? (머리를 젖히고 깔깔거리고 웃으며) 어디에 그런 담력이 숨어있을꼬 노국공주를 요모조모 뜯어보며 웃어대는 명덕태후. 눈물이 날 지경이다. 민망해서 바라보는 김상궁과 안도치. 노국공주:..... 가만히 미소 짓는 노국공주. 명덕태후:....... 웃음을 그치더니 불쑥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조금 돌리는 명덕태후. 노국공주: 전하께서 어젯밤에 어머님을 모시러 대궐 밖으로 나오려 하셨으나 명덕태후:(쌀쌀맞게) 그 얘기는 나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노국공주:...... 명덕태후: 아직도 대궐 밖 출입을 하실 계제가 아니지요. 몇 년 사이에 임금이 두 번이나 바뀌었으니 민심이 편안할 리가 없지요 안도치:(보다 못해) 마마. 중전마마께옵서는 명덕태후:(버럭) 나도 알고 있다고 하질 않느냐 안도치:(숙이는) 명덕태후:(노국공주를 보더니 다시 환하게 웃으며) 어디 손 한번 다시 잡아보자 손을 내민다. 노국공주, 가까이 와서 앉는다. 명덕태후:(노국공주을 어루만지며) 이런 웬 살결이 이리도 고우냐. 원나라 공주들은 몽골의 척박한 기후 탓인지 한결같이 거칠고 투박하더니 (웃으며) 내 며느리 손은 백옥같을세그려 김상궁을 보며 웃어보이는 명덕태후. #강안전의 방 안 공민왕: 그걸 왜 이제야 말을 하느냐 최만생: 전하께옵서 몹시 노여워하고 계시온지라 공민왕:(고개 돌리며) 중전께서 덕경부로 내 어머니를 만나러 가셨다? 최만생:(눈치 보며) 전하께옵서도 덕경부로 납시겠나이까 공민왕:(버럭) 나더러 또 한번 웃음거리가 되란 말이냐 #동. 대문. 앞 노국공주, 나온다. 따라나오는 박상궁, 안도치, 김상궁 등. 가마에 오르던 노국공주. 힐끔 문가에 서있는 혜비를 바라본다. 노국공주:.... 혜비:...... 가만히 숙이는 혜비. 노국공주:...... 무심히 바라보더니 가마에 오른다. 노국공주:(안도치에게) 올 때 보니 응양군이 백성들을 너무 거칠게 다루더이다. 백성들을 함부로 다루지 말라고 이르세요 안도치: 하오나 마마 노국공주: 나는 백성들이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고개 돌려 가자는 몸짓. 가마를 들어올리는 가맛꾼들. 안도치: 물럿거라. 왕비 전하 행차시다 가마가 간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혜비. 가마위의 노국이 문득 혜비를 뒤돌아본다. 그 눈길. #동. 방 안 조심스럽게 차를 따르는 혜비. 명덕태후:(한숨 쉬며) 어디서 저런 며느리가 내 집에 들어왔을꼬 혜비:..... 명덕태후: 내 아드님의 체면이 어찌 되라고 지가 나서 #남대가의 거리 응양군들의 호위를 받으며 오는 노국공주의 가마. 몰려드는 백성들. 응양군이 가마를 에워싸고 백성들을 막느라고 정신이 없다. 신돈:...... 바라보고 서있다. 원현: 뭘 하고 계십니까 편조스님. 가마를 막고 큰절을 올리시잖구요. 그래야 벼슬 자리를 얻든지 말든지 할 게 아닙니까 신돈:(웃으며) 내 꼴이 그렇게도 아니꼬우셨습니까 원현스님 원현:(신돈 흉내내며) 서역까지 가서 불도를 닦으며 고생한 게 겨우 벼슬자리 하나 얻어가지려고 그러신 겁니까 편조스님 신돈: 원현스님께서 단단히 화가 나셨구만 웃는 신돈. 노국공주의 가마를 바라본다. 어디선가 돌멩이가 가마에 날아온다. 응양군 장군이 칼을 빼들고 가마를 에워싼다. 장군: 돌을 던진 놈을 찾아내라 다시 날아드는 돌멩이. 돌을 대신 맞고 있는 응양군들. 노국공주:...... 꼼짝 않고 앉아있다. “오랑캐 국모는 필요 없다. 몽골로 돌아가라!” “전왕을 복위시켜라!” 외치고 도망치는 백성들. 장군: 저기다. 저 놈들을 잡아라 응양군들이 인파를 헤치고 쫓아간다. 다른 곳에서도 돌멩이가 날아온다. 돌을 막는 응양군들. 그 중 돌 하나가 노국공주의 치마 위에 떨어진다. 안도치: 뭣들 하느냐. 왕비전하를 어서 안전한 곳으로 뫼시잖구 가마를 에워싸고 대궐로 달려가는 응양군들. 신돈:....... 그 모양을 바라보는 신돈. #대궐의 문. 안 대궐문이 급히 열리고 노국공주가 탄 가마를 에워싼 안도치 등과 응양군 등이 급히 들어온다. 가마가 멎고 내리는 노국공주. 장군:(엎드리며) 왕비전하. 왕비전하에게 위해를 가하려던 자들을 모두 찾아내 엄벌에 처하겠나이다. 그런 연후에 왕비전하의 안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소인을 죽여주시옵소서 노국공주: 그냥 덮어두세요 장군:(놀래서 본다) 노국공주: 오늘 일로 다치는 백성이 한 사람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안도치: 아니되옵니다 마마. 저들을 모두 풀어주시면 중전마마의 위엄이 바로 서지를 않사옵니다 노국공주: 나는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왕비가 아니라 백성들의 사랑을 받는 왕비가 되고 싶습니다 쏘아붙이고 가는 노국공주. #남대가의 거리 신돈과 원현이 온다. 수군거리는 백성들. “원나라에만 있던 왕족이 원나라 공주와 혼인을 해서 임금이 됐으니 오죽하겠나” “그러게 말일세. 어린 조카를 내쫓고 임금 자리를 뺐었으니 볼장 다 봤지” “덕성부원군 덕분에 임금이 됐다니 기씨 일가의 행패가 더 심해지겠군” 백성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를 귓전에 흘리며 가는 신돈. 과일을 파는 노점상을 지나치며 슬며시 과일 하나를 훔치는 신돈. 시침 떼고 간다. 주인: 저, 저, 저런 주인이 신돈을 잡으려고 하는데 원현이 얼른 돈을 꺼내 값을 치른다. 미안해서 굽실거리는 과일가게 주인. 과일을 어기적어기적 먹고 있는 신돈. 원현:(오며) 훔치는 버릇은 여전하십니다 신돈: 그 덕분에 과일장사가 과일 한 개를 팔아먹었으니 이게 보시가 아니고 뭔가 원현: 또 한번 남의 물건에 손을 대면 다시는 대신 물어주지 않을 것이니 그리 아세요 편조스님 신돈: 날 먹여 살리겠다고 큰소릴 치더니 그새 마음이 변하셨나 웃으며 과일을 먹던 신돈이 멈춘다. 공철이 어느 가게 앞에서 탁발을 하고 있다. 원현:(보더니) 저, 저놈은 공철에게 달려가려는 원현을 꽉 잡는 신돈. 공철이 시주를 하는 가게 주인에게 공손히 절을 하고 돌아서 나온다. 신돈:..... 노려본다. 가게를 나오던 공철의 손이 물건을 스치는가 싶더니 그 물건이 공철의 소매 속으로 사라진다. 원현: 저런 도둑질까지 신돈:(싱긋 웃는다) 원현: 보고만 있을 겁니까 편조스님 신돈: 좀 더 두고 보세 공철의 뒤를 따라가는 신돈. #동. 다른 거리 다른 가게 앞에서 제법 염불을 읊어대는 공철. 주인이 시주를 한다. 절하고 돌아 나오는 공철의 손이 물건을 집어 소매 속으로 집어넣는다. 원현: 저거보세요 편조스님. 탁발을 한답시고 도둑질을 하고 다니잖습니까 여전히 싱긋 웃고 공철의 뒤를 따라가는 신돈. #어느 움막집. 앞 공철이 온다. 주위를 둘러보더니 집 안으로 들어간다. 숨어서 지켜보는 신돈과 원현. 원현: 저기가 도둑들의 소굴인가 봅니다 신돈이 주위를 살피더니 몽둥이를 하나 찾아 집어든다. 원현:(신나서) 아주 단단히 혼을 내주십시오 편조스님 #동. 안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신돈. 신돈: 이 놈들. 내가 도둑놈들을 잡으러 온 순군만호부의 만호시다 소리치던 신돈이 입을 다문다. 병든 노인들과 아이들이 공철이 가져온 음식을 나눠먹고 있다. 그 모양을 바라보고 있는 신돈.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에게 밥을 먹여주고 있던 공철이 신돈을 힐끔보더니 벽으로 달려가 목검을 꺼내 움켜쥔다. 신돈: 네 놈이 땡중 중에도 상 땡중인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생불이십니다그려 허허 웃으며 들고 있던 몽둥일 던지는 신돈. 순간 공철이 기합소리와 함께 신돈에게 달려든다. 목검으로 신돈의 머리를 내려치는 공철. 슬쩍 피하며 달려오던 공철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신돈. 그 바람에 문밖으로 튕겨나가는 공철. #동. 앞 공철이 나뒹군다. 엉덩이를 부여잡고 낑낑대는 공철. 원현: 꼴 좋다 그놈 좋아서 웃어대는 원현. #어느 냇가 빨래감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빨래를 하고 있는 공철. 원현:(눈물이 글썽해서) 사형 혼자 힘으로 저 많은 노인네와 아이들을 먹여살렸단 말입니까 공철: 처음엔 구걸을 하러 다녔는데 점점 인심이 야박해져서 하루에 한 끼 먹기도 힘이 들었소. 헌데 머리 깎고 스님 행세를 하니까 동냥질이 좀 쉬워집디다 원현:(눈물 닦으며) 참 대단하시우. 난 그런 것도 모르고 사형을 땡중이라고 오핼 했으니 신돈: 땡중은 땡중이지. 거기다 남의 물건까지 슬쩍했으니 도둑이 틀림없구 원현: 편조스님도 참. 공철스님이 자기 배를 불리려고 훔친 게 아니잖습니까 신돈:(놀리듯 입을 삐죽해 보인다) 원현: 그나저나 이걸 언제 다 빨려고 그러십니까 팔 걷어붙이고 달려들어 빨래를 같이 하는 원현. 신돈:....... 그 모양 바라보며 싱긋 웃는 신돈. #강안전의 뜰(밤) 전각에 불이 꺼져 있다. #동. 복도(밤) 불꺼진 방 안. 최만생: 전하.....방 안에 불을 켜올까요 전하 #동. 방 안(밤) 어둠 속에서. 공민왕:...... 어둠 속을 노려보고 있다. 최만생: 날이 어두웠나이다 전하 #곤성전의 방 안(밤) 수라상. 노국공주:..... 밥그릇이 두 개다. 안도치:..... 눈치만 보는 안도치. #어느 전각. 앞(밤) 윤시우, 몰래 온다. 주위를 살피더니, 윤시우: 대비마마. 소인 윤시웁니다 희비:(안에서) 오라버님이십니까 윤시우:(울먹이며) 어찌 지내고 계신지요 #동. 안(밤) 희비: 내 걱정은 마세요.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을 겁니다. 그래야 내 아들을 지켜줄 수가 있습니다 #동. 앞(밤) 윤시우: 소인이 미련하여 연경에서 강릉대군을 미처 죽이지 못한 탓으로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흐느끼는 윤시우. #동. 안(밤) 희비: 염려마세요 전하. 무서워도 꾹 참고 계셔야 합니다. 그러면 이 어미가 반드시 전하를 구해드릴 겁니다 밖에서 천둥소리. #강화도. 초가 마당(밤) 하늘을 가르는 번개. #동. 방 안(밤) 충정왕이 오들오들 떨고 있다. 번개에 이은 뇌성. 충정왕: 어머니 꺼이꺼이 우는 충정왕. #어느 집의 처마 밑(밤) 비가 온다. 신돈과 원현이 처마 밑에 서있다. 낙숫물. 원현: 편조스님. 하다 못해 공철스님의 움막 신세라도 좀 지지요 신돈:...... 원현: 편조스님 신돈: 쉬잇 원현:(주위를 둘러본다) 신돈:..... 원현: 뭐가 있다고 입을 막으십니까 신돈: 젊은 부부가 밥상을 마주하고 앉아 나누고 있는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원현:..... 놀래서 둘러보다가 집안 쪽을 쳐다보는 원현. 원현: 편조 스님 귀에는 집 안에서 나누고 있는 말소리가 들린단 말입니까 신돈: 늙은 부모가 함께 병석에 누웠는데 그 약값을 대느라고 고리채를 얻어 썼네그려. 헌데 이자가 새끼를 치고 또 그 이자가 새끼를 쳐서 집이고 세간이고 다 뺏기고 늙은 부모와 함께 길거리로 나앉게 생겼네그려. 그러니 나오느니 한숨뿐이 아닌가 원현:(웃으며) 편조스님한테 남의 말을 엿듣는 재주까지 있는 줄 몰랐습니다 신돈: 서역에서 만난 스님은 천리 밖의 말소리도 듣는다고 하셨네 원현: 그래서 밤마다 궁상맞게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잠을 청하시는 겁니까 신돈: 집집마다 나오느니 한숨 소리요 신음 소리 뿐이니 잠을 이룰 수가 있어야지. 어디 그뿐인가. 세도가들은 어찌하면 천년만년 부귀영화를 누릴까 누군가를 죽일까 궁리를 하고 있고, 부자들은 어찌하면 남의 주머니를 뒤져 재물을 늘릴까 두 눈을 번뜩이고 있고......세상 천지가 음모와 질시와 반목으로 신음하고 있으니...... 원현:(슬그머니 담벼락에 귀를 대보더니) 하긴 천리 밖의 말소리까지 들리면 시끄러워서 어디 잠을 자겠습니까? 하품하더니 쪼그리고 앉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원현. 신돈:...... 멀리서 천둥소리. 신돈, 비내리는 밤하늘을 쳐다본다. 그 눈가에 쓸쓸한 미소. #곤성전의 방 안(밤) 수랏상을 마주하고 앉은 노국공주. 눈치만 보는 안도치. #강안전의 방 안(밤) 공민왕:..... 어둠을 노려보는 공민왕. 번갯불이 잠깐 창문을 밝혔다 사라지고 멀리서 천둥소리. 희비:(소리) 내 아들을 살려주세요 전하 #공민왕의 의식 - <신돈 제12회 중에서> - #동. 뜰(밤) 상궁 내인들의 제지를 뿌리치고 땅바닥에 엎드리는 희비. 희비: 전왕께서는 전하의 조카가 되지 않습니까. 고려의 새 국왕이 되신 전하의 손에 어린 조카의 피부터 손에 묻히셔야 되겠습니까. 전하. 내 아들을 살려주세요 통곡하는 희비. #강안전의 방 안(밤) 번개가 강해지고 가까워진 천둥소리. 공민왕:..... 그 얼굴 위에, #공민왕의 의식 - <신돈 제13회 중에서> - #강안전의 안 김용:(공민왕에게) 전하. 지금 조정에 전하를 따르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기철만 해도 그렇지요. 기철이 제 뱃속을 채우느라고 전하를 국왕으로 옹립했으나 언제 마음이 변해 전하께 등을 돌릴지 모르는 처집니다. 그러니 강화도에 있는 전왕을 먼저 죽여 후환을 없애야 합니다 #강안전의 안(밤) 요란한 천둥번개. 공민왕:........ #공민왕의 의식 - <신돈 제10회 중에서> - #강릉대군의 사저. 방 안 신돈:(일어나며) 대군께서는 원나라 공주와 혼인을 하셨습니다. 고려는 원의 속방이나 다름없으니 대군께서 원하시면 고려의 왕위를 얻으실 수가 있을 겁니다. 허나 백성들이 승복을 하겠습니까? #강안전의 안(밤) 공민왕: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야. 내가 가는 곳마다 백성들이 내 발 밑에 엎드려 만만세를 외치는 모습을 보고야 말 것이야 미친 듯이 외치는 공민왕. 바로 전각 위에서 내리치는 천둥소리. 번갯불에 드러나는 공민왕의 처연한 모습. 순간 굳어지는 공민왕. 방문이 열려있고 그 사이에 노국공주가 서있다. 공민왕:..... 노국공주:..... 공민왕 앞에 다가와 마주앉는 노국공주. 공민왕:(피하듯 고개 돌리는) 노국공주: 전하 공민왕:.......(본다) 노국공주: 전하께서는 술잔 두 개를 앞에 놓고 저를 기다리셨습니다 공민왕:(눈길을 피하려는데) 노국공주: 제가 독이 든 술잔을 고르면 전하께서는 피하실 생각이셨습니까? 공민왕:(신음 같은) 노국공주: 전하께서는 제게 전하의 목숨을 맡기셨습니다 노국공주의 미소. 괴롭게 얼굴을 돌리는 공민왕. 노국공주: 뭘 두려워하십니까. 제게 전하의 목숨을 주고 얻은 고려의 국왕입니다 공민왕:.....(다시 본다) 노국공주:.......(애원하듯 미소) 공민왕: 덕경부에서 돌아오는 길에 중전께서 큰 봉변을 당하셨다구요? 노국공주: 전하 공민왕: 나 대신 죄없는 중전이 돌을 맞은 겁니다. 볼모로 연경에 끌려가 주색질이나 일삼던 왕족이 원나라의 힘을 빌려 어린 조카를 내쫓고 고려의 임금이 되었으니 어느 백성이 나를 왕으로 인정을 하겠습니까 노국공주: 그러니 더욱 당당하셔야지요 공민왕:...... 노국공주: 그러니 더욱 전하께서 고려의 국왕이심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공민왕:(부르짖듯) 어디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느냐 그 말입니다 노국공주: 정방을 폐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시면 정방을 폐하는 게 좋겠냐고 묻지 마시고 전하의 뜻대로 폐해버리세요. 할 수 있는 일은 하시고 할 수 없는 일은 못한다고 말씀을 하세요 공민왕: 나는 강화도에 유배 당한 어린 조카의 목숨도 지켜줄 힘이 없어요. 그런 내가 뭘 할 수 있다, 없다를 정하라는 겁니까 노국공주: 어차피 전하께서는 전왕을 지켜주지 못하십니다 공민왕:......(부르르) 노국공주:....(냉정한) 공민왕: 내가 지켜주지도 못할 약속을 희비와 했다는 겁니까 노국공주: 아들이 아비를 죽이고, 아비가 아들을 죽이는 것이 그 자립니다. 그렇다고 모두 폭군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을 죽이지 않는 아비라고 해서 모두 성군이 되었습니까? 아비를 죽이고도 백성들의 칭송을 받은 군주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공민왕:(부르르) 노국공주: 전하. 왕이 나약하면 백성이 고달픈 법입니다. 백성들은 전하, 무능한 왕보다는 형제의 피를 손에 묻히고 왕위를 찬탈했다고 해도 백성을 위해주고 나라를 지켜주는 왕을 원하는 겁니다 공민왕:(대들듯)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내 조카를 지켜줄 겁니다 노국공주:...... 공민왕:(노국공주의 눈길을 피하듯 고개를 돌린다) 노국공주: 한밤중에 대궐로 들어가시는 전하의 앞길을 막고 서있던 기철을 나는 전하께서 베어버릴 줄 알았습니다 공민왕:(노려본다) 노국공주: 그때 기철을 베지 못하셨으니 어머니를 만나러 가시는 전하의 앞길을 또 한번 기철이 막은 겁니다 공민왕:....... 노국공주: 또 한번 기철이 전하의 앞을 막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베어버리세요. 전하의 체면을 생각해서 그리하시라는 게 아닙니다. 백성들을 위해서 기철을 베어버리시라는 겁니다 말을 마치고 비로소 주르륵 눈물을 흘리는 노국공주. 고개를 숙인다. 공민왕:.....(바라보는) 노국공주:....(고개 숙인) 공민왕:.......(마음이 아파서 뭐라고 하려는데) 노국공주:(숙인채) 지금은 아무 말씀도 하지 마세요. 지금은 전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셔도 믿지 못합니다 공민왕:(터지듯) 약속을 하리다. 앞으로는 기철이든 누구든 내 앞을 막는 자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베어버리겠소 노국공주:..... 천천히 공민왕을 바라본다. 눈물이 걷혔다. 그 냉정한 눈빛에 섬칫한 공민왕. 노국공주: 장님이 길을 잃으면 따르던 사람들이 미리 알고 바른 길을 찾아나설 겁니다. 허나 전하께서 길을 잃으시면 누가 있어 바른 길을 찾아나서겠습니까 공민왕:...... 노국공주:...... 일어나 큰 절을 올리고 나가는 노국공주. #동. 복도(밤) 나오는 노국공주. #동. 방 안 공민왕:..... 저도 모르게 식은 땀이 흘러내리는 공민왕. #동. 뜰(밤) 하늘을 쳐다보는 노국공주. 안도치: 비가 개었나이다 마마 노국공주: 전하를 위로해 드리시게. 외롭고 외로운 분이시니 #동. 안(밤) 어린애처럼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공민왕. #어느 집. 처마 밑(밤) 쭈그리고 고개 파묻고 잠이 든 원현. 신돈:..... 마치 집집마다 들려오는 말소리를 모두 귓속에 담아두려는 듯 두 눈을 지긋이 감고 때로는 미소를 짓고, 때로는 혀를 차기도 하는 신돈. 문득, 그 얼굴 위에, 큰스님:(소리) 백성의 고통을 모르는 중은 중이 아니지 #개태사의 방 안(밤)(회상) 반듯이 앉은 채로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고 있는 덕운. 큰스님 앞에 반듯이 앉은 신돈. 큰스님:(누룽지 오물오물 씹어 먹으며) 중이 고행을 한답시고 산 속으로 들어가는 건 잘못된 거야. 속세로 나가 사대부중의 고통의 깊이를 헤아리고 직접 몸으로 터득하는 것이, 이게 진짜 고행인 것이야 신돈:(씩 웃는다) 큰스님: 웃기는 이놈이 신돈: 그러면서 스님은 왜 평생을 산속에서 지내셨습니까 큰스님: 너 이놈 편조야. 어디 다른 데 가지 말고 나 대신 (덕운 가리키며) 저 미련한 중놈하고 여기서 한 달만 지내봐라. 저 놈 코고는 소리에 귓청이 떨어져 나갈 테니까. 지옥이 따로 있느냐 이놈 덕운:.......(코 골다 음냐음냐까지 한다) 큰스님: 내가 여기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속세의 온갖 신음 소리가 다 들린다. 저 놈 코고는 소리만 아니면 다 들리고 말고 부지런히 누룽지 오물오물 씹어 먹는 큰스님. #어느 집. 처마 밑(밤) 신돈:...... 미소. 그 신돈의 시선으로 잠근 개경의 집들. #기황후의 처소. 전경 그 위에, 기황후:(웃음소리) 생각 잘 하셨네 #동. 방 안 기황후: 자네가 고려로 가준다니 내 마음이 든든하구나 덕녕공주: 연경 일이 정리가 되면 개경으로 돌아가겠다고 보탑실리공주에게 약속을 했었습니다 기황후: 외롭겠지. 보탑실리가. 고려엔 아는 사람 하나 없으니 덕녕공주: 고려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하옵나이다 황후폐하 기황후: 그거야 내 부탁인걸 (박불화에게) 덕녕공주를 개경까지 호위해드리고 자정원에서 노자도 듬뿍 내어드려라 박불화: 예, 황후폐하 기황후:(지그시 보며) 내 부탁을 잊지 마시게 #동. 뜰 나오는 덕녕공주와 박불화. 박불화: 황후폐하의 말씀을 달리 듣지 마십시오. 그저 개경의 소식이나 간간히 들으시겠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덕녕공주:(멈추더니) 황후폐하께선 고려인들이 원나라와 황후폐하를 어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박불화: 아시다마다요. 그러니 고려의 사정을 알려달라 넌지시 부탁을 드리는 것이 아니옵니까 (웃어보인다) 덕녕공주: 황후폐하께 전해주세요. 황후폐하께서 걱정하실 일은 보탑실리가 아니라 고려의 민심이라구요 박불화: 으흠 #동. 방 안 기황후: 내가 고려에 여우 한 마리를 더 보낸 꼴이냐? 박불화: 설마하니 덕녕공주가 황후폐하의 뜻을 거슬리겠나이까 기황후: 으음 (생각하더니) 고려에 밀정을 하나 따로 두어라. 고려를 잘못 다루면 두고 두고 후환이 될 것이야 #명덕태후의 사저. 대문. 앞 김상궁과 혜비의 부액을 받으며 거드름 피우며 나오는 명덕태후. 가마를 둘러싼 환관과 내인들. 보우와 지효가 기다리고 서있다. 앞에 놓여있는 가마. 명덕태후: 누가 타는 연이냐 박상궁:(숙이며) 중전마마께서 타시는 연이옵나이다 명덕태후:(혀를 차며) 대비전의 연을 가져왔어야지 못마땅해서 또 한번 혀를 차고 연에 오르려다 보우를 보고 환하게 웃는다. 명덕태후: 선사님 덕분에 오늘에야 소원성취를 했습니다 보우: 나무관세음보살 보우를 따라 합장하는 지효. 명덕태후: 자주 대궐로 들어오세요. 시주도 듬뿍 하고, 큼지막한 절도 지어드리겠습니다 또 한번 합장하는 보우. 가마에 오르는 명덕태후. 명덕태후:(혜비에게) 오늘부터 궐 안에 들어와 내 시중을 들거라 혜비:...... 가만히 고개 숙이는 혜비. 명덕태후: 가자 호령하듯 외치는 명덕태후. 가마를 번쩍 들어올리는 가맛꾼들. 가마가 간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보우. 가만히 한숨을 내쉬며 합장을 한다. #선경전의 안 웅성거리는 대신들. 염제신:(환관들과 귓속말을 주고 받는 최만생에게) 전하께서는 강안전에 계시는가. 늦으시이 최만생: 태후마마를 영접하러 영수전으로 납시었나이다 염제신: 옳거니. 전하께서 효도를 하시게 됐으이 (이제현에게) 익재대감께서 큰일을 하셨습니다 이제현: 별말들이 없으니 일이 순조롭게 된 거 뿐이지요 이인복: 굳이 따지고 들자면 그런 법은 없지요 염제신: 어허, 웬 트집은 이인복: 덕경부의 홍씨 부인께서 전하의 생모이시긴 하나 첩지를 받지 못한 평민이 아닙니까 염제신: 이 사람, 다 된 밥에 재 뿌리지 말고 가만히 계시게 이인복: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는 거지요 기철이 헛기침을 하며 들어온다. 기철: 아이구, 내가 늦었는가 했더니 아직 시작 전입니다 염제신: 오랜만에 좋은 일 하나 하셨소이다 기철: 좋은 일이라니오 염제신: 전하께서 오늘에서야 불효를 면하게 생겼으니 좋은 일이 아니고 뭐겠소이까 기철:(킁킁거리며) 일이 그렇게 됐습니까 이인복: 방금 대비마마께서 영수전으로 드셨답니다 기철: 어허, 그것 잘됐구만. 잘됐습니다 웃어대는 기철. #영수전의 뜰 가마가 들어온다. 기다리고 있는 공민왕과 노국공주. 가마가 멎는다. 달려가는 공민왕. 공민왕: 어머니. 소자 왕기이옵나이다. 소자를 알아보시겠습니까 명덕태후:(가마에 앉아 얼굴 돌리고 눈물부터 흘린다) 공민왕: 소자의 불효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땅바닥에 넙쭉 엎드려 절하는 공민왕. 그 모양을 고개 돌린 채 힐끔 보는 명덕태후. #영수전의 복도 상궁, 나인들이 시립해 있다. 안에서 명덕태후의 웃음 소리. 명덕태후:(소리) 내가 며느리 덕분에 호강을 합니다 #동. 안 상좌에 명덕태후.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마주 앉아있고, 안도치, 김상궁, 혜비가 시립해 있다. 명덕태후:(노국공주에게) 자네가 아니었으면 이런 좋은 날이 왔겠나. 내가 죽어서도 자네 은혜는 잊지 않을 거야 숙이는 노국공주. 명덕태후:(공민왕에게 짐짓) 헌데 소식은 있느냐 공민왕:(영문 몰라서) 무슨 말씀이신지 명덕태후:(혀를 차며) 태기가 있느냐고 물었다 공민왕: 어머니도 참 명덕태후: 무슨 소리냐. 혼인한 지 근 삼 년이 돼가지 않느냐. 그러니 손주를 보고도 남을 햇수지 웃으며 노국공주를 보는 공민왕. 더 고개 숙이는 노국공주. 명덕태후:(혜비를 손짓하며) 이리 와서 내 어깨 좀 주물러다오. 가맛꾼들이 어찌나 까불어대는지 허리가 결리고..... 어깨를 치는 명덕태후. 혜비가 명덕태후의 뒤로 가 어깨를 주물러 준다. 김상궁:..... 민망한. 명덕태후: 옳지 옳지. 시원하구나 (웃더니) 아가 노국공주: 예, 어머님 (본다) 명덕태후: 내 말을 서운하게 듣지 마라. 중전이 소생을 두지 못하면 대궐에 치맛바람이 불기 마련이다. 그래 그게 걱정이 돼서 하는 소리다 (혜비에게) 옳지 옳지. 시원하구나 #동. 뜰 안으로 다과상을 들여가는 내인들. 이것저것 지시하던 안도치의 눈에 김상궁이 띈다. 안도치: 나 좀 보시게 김상궁: 예 가까이 온다. 안도치:(저도 모르게 불쑥) 원 변덕이 죽 끓는 듯 한다고 하더니 제 말에 놀라 얼른 손으로 입을 가리는 안도치. 놀래서 눈 깜빡이며 전각을 본다. 김상궁:(웃으며) 모시기 까다로운 분이시지요 안도치:(한숨 쉬며) 이 일을 어찌할꼬. 두 분이 다 불같은 성격이시니 #선경전의 안 공민왕과 나란히 앉은 명덕태후. 조아리고 있는 대신들. 공민왕: 내가 십여년 만에 어머니와 해후를 했습니다. 그 동안 행한 불효가 하늘을 찌르고 있어요 명덕태후: 으흠 공민왕: 대궐의 법도가 어떤 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오늘부터 어머니를 대궐에서 모시기로 했습니다 조금 술렁이는 대신들. 공민왕:(웃으며) 달리 하실 말씀들이 있으십니까 기철: 전하 앞으로 나선다. 공민왕:(흠칫) 기철: 경하드리옵나이다 전하. 대비마마 넙죽 절하는 기철. 눈치보고 있던 기원이 얼른 따라서 엎드린다. 기원: 경하드리옵나이다 전하 대신들 따라서 “경하드리옵나이다 전하” 환하게 미소짓는 공민왕. #관아의 거리 최영이 젊은 군인들과 서성거리고 있다. 이인복이 온다. 이인복: 으음 최영: 인사 올리시게. 성산군 대감이시네 꾸벅 절하는 젊은 군인들. 이인복:(끄덕이며) 오늘 따라 덕성부원군이 전하께 공손하더이 최영: 기철의 속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인복:(본다) 최영: 기철의 형제들이 기르는 사병의 숫자가 배로 늘었습니다. 그 많은 돈을 들여가며 사병을 기르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이인복: 기철의 돈줄부터 끊어놔야겠는데 입맛 다시는 이인복. #초선의 집. 마당 차려입고 나오는 초선. 박서방의 처가 반야의 손을 잡고 따라나온다. 박의처: 어서 인사를 올리셔야지요. 어머님 다녀오십시오 인사해보이는 박의처. 얼른 박의처 뒤에 숨어 초선을 빤히 쳐다보는 반야. 박의처: 웬 숫기가 이리도 없누 초선: 어머니란 말이 쉽게 나오겠느냐. 우리 집에 온 지 며칠이나 됐다구 (박의처에게) 다녀오마 나간다. 그 모습을 숨어서 빤히 쳐다보는 어린 반야. #개경의 길 초선이 탄 말고삐를 잡고 가는 박서방. 박서방: 이러다 다점이 모두 거덜이 나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마님. 개경은 고사하고 지방에 있는 다점들도 모두 문을 닫게 생겼으니 말없이 듣기만 하는 초선. #기철의 집. 앞 달려나오는 청지기. 말에서 내리는 초선. 청지기: 소활동마님 오셨습니까요. 그러지 않아도 우리 마님께서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요 박서방에게서 보따리를 받아들고 안으로 들어가는 초선. 청지기:(박서방에게) 자넨 여기서 기다리시게 대문을 닫아버리는 청지기. #동. 안방 기철모: 장산 잘 되구 초선: 예, 마님 기철모: 돈 많이 벌어. 그래야 내 용돈을 두둑이 주지 초선: 마님 용돈이야 못 대드리겠습니까 목을 빼서 초선 옆의 보따리를 기웃거리는 기철모. 웃으며 보따리를 밀어놓는 초선. 기철모: 얼마나 들었누 초선: 쓰시고 남을 만큼 넣어놨습니다 기철모: 요즘은 돈 쓸 데가 좀 많아야지 보따리를 얼른 농 속에 감추는 기철모. 기철모: 어디다 돈들을 쓰는지 요즘은 세 형제가 나만 보면 돈을 내놓으라고 졸라대. 그러다 에미 간도 빼먹을라 웃어대는 기철모. #개경의 거리 초선의 말고삐 잡고 오는 박서방. 박서방: 그래 부탁을 하셨습니까? 초선: 한번에 될 일인가. 서너 번은 더 드나들어야지 박서방: 죽일놈들 초선: 들인 만큼 받아내면 되지 무슨 걱정인가 싱긋 미소짓는 초선. #김용의 사랑방. 안 신돈을 훑어보는 김용. 단정하게 무릎 꿇고 앉은 신돈. 김용: 용케도 내 집을 찾으셨네 신돈: 웬걸요. 요즘 도성에 상호군댁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국왕전하의 오른팔이나 다름이 없으시니 김용: 하긴 그렇지. 그런데 무슨 일로 날 찾아왔나 신돈: 어려운 일 있으면 한번 찾아와보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김용:(끄덕이며) 밥 한끼는 배불리 먹여주겠다고 했지 신돈:(바싹 다가가며) 상호군대감 김용:(코를 막으며 찡그리는) 신돈: 오갈 데 없는 늙은이들하고 병든 아이들이 모여 사는 데가 있는데 조석 끼니가 막연한 지라 김용: 가난 구제는 나라에서도 못한다고 하는데 자네가 하려구 신돈: 그러니 상호군대감의 신세를 지려는 것입지요 김용:(혀를 차며) 서역까지 가서 불도를 닦았다고 하더니 어디 오라는 절도 없는가. 그 꼴이 원 (찡그리며 혀를 찬다) 신돈: 오라는 데는 많지요. 허나 갈 곳이 없는 지라 김용: 오라는 데는 많은데 갈 곳이 없다 (웃으며) 그것 참 재미있는 말이구나 웃어대는 김용. 따라서 웃어대는 신돈. #동. 대문. 앞 나오는 신돈. 원현:.... 못마땅해서 고개 돌린다. 신돈: 이것 보시게 원현스님. 은병 하나를 얻어 나왔네 은병을 보여주며 좋아하는 신돈. #남대가의 거리 신돈, 온다. 심란해서 따라오는 원현. 신돈:(멈추더니) 십시일반이요,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하질 않나. 내가 오늘부터 권문세도가의 집을 순방할 걸세. 잘하면 원현: 창피하지도 않으십니까 신돈: 창피하다니 원현: 권문세도가의 집을 드나들며 동냥질이나 하자고 그 먼 서역까지 다녀왔느냐 말입니다 신돈: 굽실거린다고 돈이 나오는 게 아니지. 내가 이래뵈도 서역에 가서 불경을 공부하고 온 떠돌이 중입니다, 하고 말씀을 올리면 어허 그러십니까, 하고 요 돈이 나온다 그 말이지 돈을 보여주며 웃는 신돈. 원현:(비아냥거리듯) 대체 이 놈의 세상은 언제 뒤집어 엎을 겁니까 신돈: 그거야 지금 당장이라도 뒤집어 엎을 수가 있지. 보시겠나 원현스님 엎드려 두 다리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신돈. 신돈: 따라하시게. 그럼 세상이 거꾸로 보일 테니 웃는 신돈. 그 눈에 거꾸로 달려오고 있는 장정들. 신돈을 손가락질 하며 “저 놈이다. 잡아라” 하는 소리. 신돈, 일어난다. 가구소의 장정들이 달려오고 있다. 신돈이 투덜대고 있는 원현의 등덜미를 나꿔채듯 움켜쥐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장정: 이번엔 놓치지 마라 신돈을 쫓는 장정들. #어느 골목 달려오는 신돈. 둘러보더니 원현을 어느 정자 밑에 밀어넣는다. 신돈: 꼼짝 말고 계시게. 이번에 잡히면 죽고 살아남지 못할테니 원현: 편조스님 도망치는 신돈. 장정들이 몰려온다. 납작 엎드리는 원현. #어느 골목길 신돈, 달려온다. 앞을 가로막는 장정들. 옆길을 본다. 달려오는 장정들. 사방이 막혔다. 한숨 내쉬고 멈추는 신돈. 신돈을 둘러싸는 장정들. 그러나 신돈이 두려운지 빙빙 돌기만 한다. 그러더니 서넛이 칼을 빼들고 동시에 달려든다. 피하며 치는 신돈. 꼬꾸라치는 장정들. 연거푸 덤비는 장정들. 피하는 신돈. 그러나 칼날 하나가 신돈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다. 피가 배어 나온다. 신돈:....... 바닥에 떨어진 칼을 집어든다. 흠칫 물러나는 장정들. 칼날을 세우는 신돈. 그 눈에 살기가 번뜩인다. 큰스님:(소리) 이놈 편조야. 더는 살생하지 말라고 하잖았느냐 움칠하는 신돈. 장정들이 조여든다. 다시 칼을 움켜쥐는 신돈. 큰스님:(소리) 이놈. 내 말이 안 들리냐 편조야 신돈:..... 진땀이 흐른다. 칼을 내던진다. 우르르 달려드는 장정들. 신돈을 순식간에 포박해서 끌고간다. 원현이 온다. 끌려가고 있는 신돈. 원현: 편조스님. 편조스님 울부짖듯 뒤쫓는 원현. #감옥. 안 신돈과 원현을 포박해서 끌고오는 장정. 신돈: 원현스님도 참. 거기 꼼짝 말고 숨어 있으라는데 뭣하러 기어나왔소 원현:(대들듯) 죽어도 같이 죽기로 약속을 했잖습니까 감옥문 여는 옥리. 신돈: 우리가 언제 그런 약속을 했단 말인가 원현: 내 맘 속으로 약속을 했습니다 기가 막힌 신돈. 장정: 며칠 있으면 죽을 놈들이 다투기는 원현과 신돈을 감옥 안에 내동댕이 치는 장정. 감옥 바닥에 나뒹구는 신돈과 원현. <신돈 제13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