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 15회 <신돈> -15회- #소활동의 우물가 초선:...... 보일 듯 말 듯한 미소. 신돈을 바라보고 있다. 신돈:...... 마주보다 그 눈길을 피하듯 물 한 바가지를 떠서 꿀떡꿀떡 마시는 신돈. 신돈: 정말 물 맛 좋다. 연지정의 물 한 바가지를 떠 마시면 십 년은 젊어진다고 하더니 헛소문이 아닌가 봅니다. 당장 힘이 솟구치는 게 속이 다 후련합니다 웃어대는 신돈. 초선:(정색하고) 연지는 잇꽃에서 뽑아낸 붉은 안료를 이용해서 만듭니다 신돈:......(초선이 정색하니 할 수 없이 웃음을 거둔다) 초선: 헌데 연지정의 우물을 섞어서 만든 연지가 개경은 물론하고 가는 곳마다 평판이 좋아서 아버지는 금세 부자가 됐습니다. 그 소문이 퍼지자 소활동 일대는 연지 만드는 기술자들이 모여 촌락을 이루었지요. 그렇게 돈을 모은 아버지는 평소 꿈이었던 차 재배를 위해 경상도와 전라도의 차밭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신돈:...... 어느새 정색하고 듣고 있는 신돈. 초선: 차나무는 크게 천축에서 자라는 대엽종과 중국에서 자라는 소엽종으로 나누는데, 대엽종은 소나무처럼 키가 크고 굵기는 하지만 추위에 약해서 고려에서는 자라기가 힘이 들지요. 그래서 고려에서는 진달래처럼 키가 작고 가지를 많이 치는 중국의 소엽종을 키우고 있습니다. 특히 경상도 화개 지방에서 따 만든 유차는 왕실에서나 맛을 볼 수 있는 명품 중의 명품이지요 말을 마치고 가만히 눈물을 닦는 초선. 그 모습이 섬칫해서 보는 신돈. 초선: 용서하세요. 아버지 생각이 나서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신돈:(조심스럽게) 부친께선 이 세상 분이 아니십니까 초선:..... 눈물이 글썽한 채 미소. 신돈:...... 황급히 두 손 모아 합장하는 신돈. 초선: 차밭을 둘러보러 남도로 내려가볼까 합니다. 스님께서 동행을 해주시면 든든하겠습니다. 되겠는지요? 신돈:(흔쾌히) 그러지요 어려울 것이 무엇입니까 환하게 웃어보이는 신돈. #초선의 집. 앞 신돈과 초선, 온다. 지효가 문 앞에 서있다. 신돈이 반가워서 아는 척을 하려는데, 초선: 왜 안 들어가고 대문 앞에 서있니 지효: 보우선사님을 모시고 왔다가 돌아가는 길입니다 초선: 들어가자 (대문으로 간다) 지효: 그만 돌아가겠습니다 누님 신돈:(눈이 둥그래진다) 지효:(신돈에게) 고생이 많으셨지요 웃으며 합장하는 지효. 돌아서 간다. 초선: 아무리 출가를 했지만 집하고 인연을 끊을 작정이냐 대꾸없이 가버리는 지효. 가만히 한숨 내쉬는 초선. 신돈:(놀래서) 지효스님하고 남매지간이셨습니까 초선: 편조스님을 따라 서역까지 다녀왔다지요? 오히려 되묻는 초선. 신돈: 예. 인연이 이렇게 닿았습니다 기막히다는 듯 웃어보이는 신돈. #동. 안방 차를 데리고 있는 큰스님. 큰스님: 차 한잔 마시는데 무슨 격식이 있겠느냐고들 하지만 차맛도 차맛이지만 이것이 이 마음이라 (가슴을 두드려 보인다) 보우:(미소 짓고 있는) 큰스님: 밥 먹고 나서 무슨 숭늉마시듯 후르륵 후르륵 차를 마시는 사람들을 보면 난 원.....(혀를 끌끌찬다) 보우: 덕분에 우리 보살님께서 떼돈을 긁어모으고 있잖습니까 초선을 보며 웃는 보우. 보우: 또 그 덕분에 우리 보살님께서 곳곳마다 어려운 데를 찾아 시주를 듬뿍 듬뿍 하시구요 큰스님: 하긴 세상살이가 묘한 거라 (웃목의 신돈을 보더니) 너 이놈. 보살님한테 큰 절을 올려야 한다. 보살님 덕분에 살았으니 신돈:(환하게 웃어 보이며) 예, 스님 큰스님:(보우에게) 어디 늙은이 차 솜씨 좀 보시려우 찻잔 권하는 큰스님. 보우: 그나저나 언제 내려가실 겁니까 큰스님: 내일 내려가야지 보우: 모처럼 개경에 올라오셨는데 세상 구경이나 좀 하시고 내려가시지요 큰스님: 나 같은 늙은이가 세상구경을 해서 뭘 하나. 그저 욕지기나 치밀지 보우:(웃으며) 스님께서도 욕지기를 다 하십니까 큰스님:(비밀 얘기하듯) 늙으면 심술만 남는다구. 세상만사가 다 못마땅한 지라 보우: 스님께서 나서서 다 바로 잡으시지요 큰스님: 차 맛은 어떠우 보우: 불교가 바로 서면 나라도 바로 서지 않겠습니까 큰스님:(빤히 바라본다) 보우:.......(좀 무안해서) 편조도 그렇잖습니까. 스님께서 개경으로 올라오시자마자 죽을 자리를 빠져나왔으니 스님께서 나서시면 큰스님:(혀를 찬다).......차나 드시우 못마땅해서 끙끙거리며 돌아앉는 큰스님. #동. 대문 앞(밤) 나오는 보우. 초선이 따라서 나온다. 보우: 월선스님이 나서주시면 갈기 갈기 찢긴 불교가 하나로 통합이 되겠거늘 초선: 나설 분이 아니시지요 보우:...... 아쉬운 듯 뒤돌아보는 보우. 초선: 보우선사님이 앞장을 서시면 모두 따를 겁니다 보우:....... 신음하며 합장하는 보우. 따라서 합장하는 초선. #동. 마당(밤) 들어오는 초선. 반야가 쪼르륵 달려와 마루로 올라서는 모습이 보인다. 초선:..... 반야가 안방문을 여는 모습이 보인다. #동. 안방(밤) 자리 펴고 누우려던 큰스님이 방문 쪽을 본다. 반야가 서있다. 큰스님, 오라고 손짓한다. 얼른 방문 닫고 쪼르륵 달려가 큰스님의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반야. 큰스님: 아이구 내 새끼. 할아버지하고 자고 싶었어 보듬어주는 큰스님. #동. 마당(밤) 안방을 바라보고 서있는 초선. 큰스님:(안에서) 우리 반야가 살이 포동포동 쪘구나.......(웃더니) 그래 뭐가 제일 맛 있더냐 반야:(소리) 꼬기 큰스님:(소리) 고기가 맛있었어 웃음 소리. 초선의 미소. #동. 대문 앞 박서방이 일꾼들과 함께 초선이 타고 갈 말에 안장을 얹고 또 한 말에는 짐을 꾸려싣고 있다. #동. 건넌방 짐 꾸리는 원현과 신돈. 원현: 대체 그 먼 길을 따라나서는 이유가 뭡니까 신돈: 세상 구경 좀 하려고 그러네 원현:(흘키듯 보는) 신돈: 왜 또 사람을 흘키시나 원현: 아예 이 집에 눌러앉을 눈치니 하는 소립니다 신돈: 좀 좋은가. 오갈 데 없는 신센데 먹여주고 재워주고 용돈까지 줄 눈치니. 더구나 생명의 은인이니 발품을 마다하겠나 #동. 마당 뒷채에서 나오는 신돈과 원현. 신돈:(안방에다 대고) 스님. 그만 나오시죠. 떠날 준비가 다 됐습니다 행랑채 쪽마루에 공철과 마주앉아 정신없이 밥을 퍼먹고 있는 덕운. 덕운: 반얄 달래느라고 정신이 없으셔 신돈: 원, 스님도 참 마루로 올라서는 신돈. 원현:(공철을 보더니) 공철스님은 여기 웬일이시오 공철:(놀리듯) 그렇게 말씀하시는 원현스님은 여기 웬일이시오. 내 덕분에 목숨을 건졌거늘 만나자마자 또 시비시오 #동. 안방 방문을 열고 선 신돈. 어이가 없이 바라본다. 훌쩍훌쩍 울고 있는 큰스님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는 반야. 큰스님: 그래 그래. 할아버지 안 울게. 약속하마. 할아버지 다시는 안 울 테니까 보살님 말씀 잘 듣고 있어야 한다. 알겠느냐 반야야 끄덕이는 반야. 큰스님: 아이구 내 새끼 다시 반야를 얼싸안고 훌쩍거리는 큰스님. 기가 막혀 웃고 마는 신돈. #동. 대문 앞 말의 안장과 짐 등을 점검하고 있는 공철. 박서방: 마님을 잘 모셔야하네. 전번처럼 삼십 육계 줄행랑을 놓지 말고 공철: 염려마십시오. 이번엔 산도적이 아니라 그보다 더 무서운 놈들이 덥쳐도 마님을 지켜드리겠습니다요 원현:(기가 막혀) 공철스님도 같이 가시오? 공철: 바늘 가는데 실 따라 간다는 말도 못 들어보셨나. 내가 없으면 소활동 마님께선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시네 안에서 초선과 신돈이 나온다. 공철: 마님. 오늘부터 소인이 모시겠습니다요 초선: 큰스님께선 덕운: 아, 반야가 안 떨어지겠다고 울고불고 해서 그 앨 달래느라고 늦으시는 모양입니다 웃어대는 덕운. #동. 마당 큰스님:(안방에 대고) 할아버지 간다 (안방을 기웃거리며) 할아버지 가는데 안 나와 볼 거야 박의처: 제가 들어가서 데리고 나올까요 스님 큰스님: 내버려두시게 훌쩍하고 돌아서 가다 다시 안방을 뒤돌아보는 큰스님. #동. 안방 큰스님:(소리) 할아버지 간다 고개 숙이고 앉아 눈물 뚝뚝 흘리고 있는 반야. #도성의 길 초선이 탄 말을 끌고가는 공철. 덕운은 큰스님을 업고 낑낑거리며 따라간다. 그 뒤를 따라가며 웃음을 참는 신돈과 원현. 덕운: 스님. 좋은 말 놔두고 왜 제 등에 업혀가십니까 큰스님: 니 놈이 바람을 막아주니 따뜻해서 그렇지 덕운: 허면 개태사까지 제 등에 업혀가실 겁니까 울상이 되는 덕운. 신돈: 덕운스님. 힘드시면 말씀하십시오. 제가 스님을 업어드릴 테니 덕운: 그래 주겠나 좋아서 웃는 덕운. 큰스님이 덕운의 목에 팔을 두르고 바싹 올라앉는다. 덕운: 아이구 제 목을 조르시면 어떡합니까 큰스님: 떨어질까봐 그래 이놈아 더 바싹 덕운의 등에 올라타는 큰스님. 신돈: 덕운스님은 좋으시겠습니다. 큰스님께서 그렇게 이뻐하시니 웃어대는 신돈. 말 위에서 빙긋 웃는 초선. 그렇게 신돈 일행이 도성을 빠져나간다. #영수전의 방 안 명덕태후:(바깥에 귀를 대고) 이게 무슨 괴이한 소리냐 김상궁:(난처) 명덕태후: 계집의 울음 소리가 아니냐 #대궐의 길 실성한 사람 같은 행색의 희비가, 털썩 주저앉아 통곡을 하고 있다. #영수전의 방 안 명덕태후:(버럭) 누가 저리 슬피 울고 있느냐고 묻질 않느냐 김상궁: 희비마마께서..... 명덕태후: 희비라니 김상궁: 강화도에 유배당한 아들을 살려달라고 저리 울고 계시옵니다 명덕태후: 누가 내 손주를 죽인다고 기가 막히다는 듯 캬악 하고 웃는 명덕태후. #대궐의 길 희비가 벌떡 일어나 어딘가로 가려고 하자 가로막는 응양군들. 희비: 이놈들. 물러서지 못하겠느냐. 내가 전하의 형수가 되는 사람이니라. 자칫 잘못 내 몸에 손이라도 됐다가는 주상께서 네 놈들의 사지를 찢어놓으실 게야. 알겠느냐 이 놈들 응양군들에게 대드는 희비. 그때마다 놀래서 물러서는 응양군들. 희비: 어디 어느 놈이 먼저 죽고 싶으냐. 니놈이냐 물러서는 응양군들. 희비: 옳지. 니 놈이 먼저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응양군 하나를 잡으려고 한다. 놀래서 뒷걸음질치다 자빠지는 응양군. 깔깔웃는 희비. 김용:(오며) 체통을 차리시지요 희비마마 희비: 체통? 내 아들이 죽게 생겼는데 무슨 놈의 체통 김용: 대궐에서 아무리 소란을 피워봤자 폐주를 살려줄 사람이 아무도 없소이다 희비:(악쓴다) 전하께서 내 아들을 살려주겠다고 약속을 했느니라 김용:(웃으며) 전하께서 무슨 힘이 있어 폐주를 보호해주시겠소이까 희비: 니 놈이 뭘 안다고 나서 김용: 전왕을 폐한 사람이 누군지 몰라서 이러시오이까. 원나라의 황후폐하십니다 희비:..... 김용: 그러니 폐주를 살리고 싶으면 연경으로 가서 황후폐하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늘어지셔야지 희비:(다시 주저앉으며) 내가 기황후에게 억만금을 갖다바쳤거늘 (땅을 치며 운다) 응양군들이 희비를 잡으려고 조여든다. 김용:(손 저으며) 내버려두어라. 실성한 대궐의 아녀자는 중전마마께서 거두실 것이니 김용, 간다. 따라가는 응양군들. 희비: 중전께서 거두신다? (정신 나서) 옳거니. 내가 그 생각을 왜 못했을꼬 벌떡 일어나 미친 듯이 달려간다. #곤성전의 방 안 노국공주:...... 그 얼굴 위에, 희비:(밖에서 외치는) 중전. 내 아들을 살려주시오. 중전께선 원나라의 공주시니 주상도 꼼짝을 못할 게 아니오 노국공주:(일어나려고 하는) 덕녕공주: 모른척 하세요 노국공주: 전왕의 모후 되는 대비께서 실성한 사람처럼 대궐 안을 헤매고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대궐의 안주인으로서 모른척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단호히 짜르고 나간다. #동. 뜰 노국공주, 나온다. 땅을 치며 울고 있돈 희비, 벌떡 일어나 노국공주에게 달려와 치맛자락을 붙잡고 늘어지며 아양을 떨 듯 웃는다. 희비: 충혜왕과 금상이 형제지간입니다. 그러니 중전과 나는 동서지간이지요. 또한 내 아드님께선 금상의 조카가 되시니 노국공주: 마마 마주앉으며 희비의 두 손을 잡는 노국공주. 노국공주: 누가 감히 전하의 조카를 죽이려고 하겠습니까. 만에 하나 그런 자가 있다면 전하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희비:(땅에 엎드리며) 중전께서 약속을 해주세요. 중전께선 원나라의 공주시니 주상께서도 꼼짝을 못할 게 아닙니까. 부탁입니다. 강화도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가엾은 어린 아들의 에밉니다. 내 아들을 살려주세요 중전 땅바닥에 이마를 찧고 또 찧는 희비.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그래도 이마를 계속 찧으며 애원하는 희비. #강안전의 방 안 공민왕:(버럭) 나더러 어떡하라고 이러시는 겁니까 노국공주:(대들듯) 대비께서 실성을 하셨습니다 공민왕:(노해서) 내가 약속을 했어요. 조카를 지켜주겠다고요. 그런데 희비가 믿지 않으니 낸들 어쩌겠습니까 노국공주: 전왕을 다시 대궐로 불러들여 전하의 곁에 두시면 될 것이 아닙니까 공민왕:(터질듯이) 전왕을 폐하여 강화도로 보낸 사람이 누군데요. 당신들 원나라 황실이 아닙니까 #동. 복도 초조한 안도치. 싱긋 미소 짓고 있는 최만생. 공민왕:(소리) 그렇게 희비 모자가 가엾으면 기황후에게 부탁을 해서 연경으로 데리고 가라고 하세요. 그럼 될 것이 아닙니까 #동. 안 노국공주:......(눈물이 글썽한) 공민왕:(고개 돌린) 노국공주:...(조용히) 전하 공민왕:(고개 더 돌리는) 노국공주: 전하께서는 어째서 말끝마다 원나라를 들먹이십니까. 여기는 고려의 땅이고 전하께서는 고려의 주인이십니다. 더 이상 원의 눈치를 보실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공민왕:(본다) 노국공주:(강하게) 전하께서 원의 눈치를 보시면 조정 대신들이 원의 눈치를 볼 것이고, 백성들 또한 원의 눈치를 살필 것입니다 공민왕: 나더러 원에 맞서 싸우라 그 말씀입니까 노국공주: 못할 것이 무엇입니까 공민왕: 고려의 군사가 몇이나 되는 지 그거나 알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노국공주:....... 공민왕: 한줌도 안 되는 군사를 가지고 원에 맞서 싸우라? 노국공주:.....(바라보는) 공민왕:(밖을 가리키며) 대궐의 곳간문을 열어보세요. 곳간마다 텅텅 비어 있습니다. 국고가 텅 비다시피 했는데 뭘 가지고 군사들을 먹이고 창칼을 만들어 전쟁터로 보낸단 말입니까 노국공주:...... 공민왕: 강화도에 유배당한 전왕의 목숨만 위태로운 게 아닙니다. 어느 놈이 내 수랏상에 독을 탈지 그것도 장담할 수가 없는 처지예요. 그런 나를 보고 원에 맞서 싸우라 하시는 겁니까 노국공주: 전하 이윽고 눈물. 그리고 미소. 노국공주:...... 공민왕: 말씀을 해보세요 노국공주: 뭘 두려워하십니까. 전하께는 전하의 백성들이 있지를 않습니까 공민왕:..... 노국공주: 원의 황실과 고려의 권신들이 아무리 전하를 감시하고 핍박해도 전하께는 전하의 백성들이 있습니다 공민왕:(웃으며) 참으로 딱하십니다. 백성들이 무슨 힘이 있다고 나를 지켜준다는 겁니까 노국공주:(피를 토하듯) 전하께서 백성들을 지켜주셔야지요 공민왕:....... 노국공주: 몽골의 황무지를 떠도는 부족들을 모아 테무진은 대원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작고 왜소하기 그지없는 몽골인들이 조랑말을 타고 만리장성을 넘어 중원을 정복했습니다. 그 힘이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전하 공민왕:(터질 듯이) 내가 원에 반기를 들자면 제일 먼저 당신을 버려야 한다는 걸 모르십니까 #동. 복도 안도치:........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최만생의 엷은 미소. #동. 안 노국공주:..... 공민왕:.....좋습니다. 말 나온 김에 다하지요. 내가 원을 배척한다고 하면서 원의 공주를 부인으로 두고 있다면 백성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원을 배척한다는 내 말을 믿겠습니까 노국공주:..... 공민왕: 나부터 깨끗해야지요. 그래야 백성들이 나를 믿고 따를 것이 아닙니까 노국공주: 저부터 버리세요 전하 공민왕:....... 노국공주: 저 먼저 버려야 고려의 왕다운 왕이 될 수 있다면 저는 기꺼이 전하의 버림을 받겠습니다 #동. 복도 문이 열린다. 노국공주, 나온다. 안도치: 중전마마 나가는 노국공주. 따르는 안도치와 박상궁 등. #동. 안 공민왕:...... 넋나간 사람같은. #곤성전의 뜰(밤) 고요한. #동. 안(밤) 노국공주:....... 덕녕공주: 금상의 아버님이 되시는 충숙왕께서는 시어머님 되시는 홍씨부인과 정혼하여 충혜왕과 금상 두 형제분을 낳으셨습니다. 허나 원의 부름을 받고 연경에 입조하여 황실의 공주와 혼인을 하였는데 그 분이 복국장공주십니다. 홍씨 부인은 하루 아침에 평민으로 전락을 하고 말았지요 (* 충숙왕(공민왕의 아버지) - 복국장공주) 노국공주:...... 덕녕공주: 금상의 조부가 되시는 충선왕께서는 계국대장공주와 정략결혼을 하셨고, 증조부가 되시는 충렬왕께서는 제국대장공주와 혼인하여 고려의 왕위를 지켰습니다. 저 또한 금상의 형님되시는 충혜왕과 혼인하여 충목왕을 낳았구요 (웃으며)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 충선왕(공민왕의 할아버지) - 계국대장공주, 충렬왕(공민왕의 증조부) - 제국대장공주) 노국공주:....... 덕녕공주: 고려의 국왕은 원의 공주와 혼인하지 않으면 왕위를 얻을 수도 또한 지킬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원나라 공주들의 도도함이 오죽했겠습니까. 충렬왕의 부인인 제국대장공주는 임금은 제쳐두고 정사를 도맡아 처리했고 임금인 충렬왕을 마치 손아래 사람처럼 부렸다고 합니다 노국공주:..... 덕녕공주: 그간의 사정이 이렇습니다. 허니 누가 원의 공주와 혼인한 임금을 임금으로 대접을 하겠습니까? 원나라 황실에 딸을 바친 친원파들은 고려의 주인인양 행세하고, 권신들은 왕의 눈치보다는 원의 눈치를 더 보는 지경입니다. 그러니 백성들이 임금을 어찌 생각할 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 아닙니까 노국공주: 내가 왜 그걸 모르겠습니까 덕녕공주:..... 노국공주: 그러니 나부터 버리시라는 겁니다 파르르 떠는 노국공주. #강안전의 뜰(밤) 초조하게 서성거리는 안도치. 최만생을 따라 김용과 정세운이 무장하고 온다. 안도치: 어서오십시오. 전하께서 두 분 장군님을 애타게 기다리고 계시옵니다 정세운: 전하께 무슨 일이라도 계신가 안도치: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정세운, 김용 안으로 가는데 최만생: 송구하오나 무장하신 채로는 대전에 드실 수가 없사옵니다 공민왕:(안에서) 그냥 드시라고 해라 당황해서 물러나는 최만생. 안으로 들어가는 김용과 정세운. 안도치: 최환관은 문밖에 나가 대전을 기웃거리는 자가 있나 살펴보시게 최만생: 예, 안환관 어른 말은 그렇게 하고 그냥 서있다. 안도치: 뭘 하고 계시나 최만생: 아, 예 안환관 어른 할 수 없이 밖으로 나간다. 사방을 살피는 안도치. #동. 안(밤) 칼을 풀러 앞에 놓고 부복한 김용과 정세운. 공민왕:.....(지그시 바라본다) 김용: 어명을 내려주십시오. 신들이 목숨을 걸고 전하의 영을 따르겠나이다 공민왕: 내가 보위에 오른지 석 달이 지나도록 한 일이 없습니다 정세운: 소인들이 어리석고 둔하여 공민왕:(막듯이) 내 잘못이오 정세운: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흐느끼듯 고개 숙이는 정세운. 공민왕: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권신들의 눈치만 보고 있소이다 김용: 어느 놈부터 때려잡을까요 전하 공민왕: 나부터 지켜주시오 김용: 어느 놈이 감히 전하에게 위해를 가한단 말씀이옵니까. 여기 대호군과 소인이 대궐의 안팎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으니 심려치 마시옵소서 공민왕:.....(바라본다) 김용: 소인들을 믿어주시옵소서 공민왕: 정방의 제조가 기철이지요 김용: 그러하옵나이다 전하 공민왕: 내가 정방을 폐한다고 하면 기철이 뭐라고 하겠소이까 김용: 전하께서 정방을 폐한다 하시면 그것으로 끝이지 제 놈이 감히 전하께 불복하겠나이까 정세운: 간단한 일은 아니지요 김용: 복잡할 것도 없소이다. 차제에 전하께 승복하지 않는 자들을 찾아서 하나 둘씩 척격을 해나가시면 공민왕: 좋습니다. 내가 두 분 장군을 믿고 하고 싶은 일을 해 나가겠습니다 #도성의 길(밤) 인적이 끊긴. 김용이 말을 타고 온다. 주위를 살피더니 말머리를 돌려 골목길로 들어선다. #기철의 사랑방. 안(밤) 기철: 정방을 폐하시겠다? 김용: 잘된 일이 아닙니까 기철:(힐끔 본다) 김용: 정방은 조일신이 탐내는 자립니다 기철: 조일신 그 놈이 내 자리를 노린단 말씀이요 김용: 어디 그 자리 뿐인 줄 아십니까. 연경에서 같이 전하를 보위하여 동고동락을 했으니 조일신은 내가 누구보다 잘 알지요 기철: 나는 가만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고 있어라......그 말씀이요 김용: 그렇지요 기철: 으음 의심의 눈초리. 김용: 전하께서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정세운과 조일신 나 세 사람 뿐입니다. 허나 정세운은 우직한 성격이라 죽는 날까지 강릉대군을 모실 위인이고 문제는 조일신이지요 기철: 혼자서 다 해먹겠다? 김용: 조일신은 성격이 급한 위인이니 조금만 궁지에 몰리면 스스로 제 무덤을 팔 잡니다. 덕성부원군께선 느긋하게 기다리시지요 웃어대는 김용. #김용의 사랑방. 안(밤) 조일신: 이 사람 안성군. 왜 날 피하시는가 김용: 피하다니 조일신: 우리 두 사람이 한 약속을 잊으셨나. 자네는 친위군의 수장이 되어 전하의 수족을 묶고 나는 조정을 장악하여 우리 두 사람이 고려를 일으켜 세우자고 굳게 약속하질 않았나? 김용: 그 약속이야 잊지 않고 있지 조일신:(바싹 다가 앉으며) 전하께서 자네와 정세운을 불러 뭐라고 하시든가 김용: 별 말씀 없으셨네 조일신: 이 사람. 날 속일 셈인가 김용: 뻔하지 않은가. 전하께선 자나깨나 신세한탄이시지 조일신:......(노려본다) 김용: 별 말씀 없으셨대도 그러신다 조일신: 설마하니 내일 조회에서 정방을 폐하시겠다 하시는 건 아니겠지 김용:(흠칫)....... 조일신: 이보게 안성군. 조만간 정방이 내 손에 들어오게 돼있네. 허면 조정대신은 물론 기철의 심복들까지 내 밑으로 넘어오게 돼있어. 그리되면 대궐의 안팎을 우리 사람들로 채울 수가 있네. 그런 터에 지금 정방을 폐하면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말잖는가? 김용: 글쎄. 전하의 심중을 내가 어찌 알겠나 조일신: 칼 차고 대전을 드나드는 사람은 자네 뿐이 아닌가. 그런 자네가 전하의 심중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 김용: 글쎄 난 모른대도 그러신다 허허 웃는 김용. #동. 집 앞(밤) 나오는 조일신. 조일신:(집을 노려보며) 이 놈 어디 두고 보자. 내가 일을 성사시키고 나면 반드시 네 놈을 제일 먼저 쳐죽일 것이니 #선경전의 안 기철이 권겸, 노책 등 부원배들과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히히덕거리고 있다. 염제신:(못마땅해서 이제현에게) 기철이 희희낙락하는 걸 보니 정방을 폐지하자는 말씀은 나오지 않을 듯합니다 이제현: 글쎄요. 두고 보십시다 이인복: 별 말씀 있으시겠습니까. 속시원하게 털어놓으실 분이 서너달이 지나도록 원의 눈치만 살피고 있겠습니까 이제현:.... 못마땅한 듯 흘킨다. 이인복: 그렇지 않습니까. 야생마와도 같은 원의 공주를 왕비로 두셨으니 이제현: 이 사람이 이인복: 헌데 찬성사의 안색이 안 좋습니다 이인복이 눈짓하는 곳에 조일신이 젊은 관리들과 수군거리고 있다. 이인복: 조일신이 요즘 전하께 자주 대든다지요 염제신: 대든다니. 그걸 말씀이라고 하시나 이인복: 허면 조일신이 전하를 희롱한다고 하올까요 이제현: 어허 혀를 차는 이제현. 이인복: 예. 소인은 입 다물고 있겠습니다 헛기침 하는 이인복. 최만생:(들어오며) 전하께서 납시옵니다 공민왕이 급히 들어와 용상에 오른다. 김용과 정세운이 무장하고 따라 들어와 용상 밑 좌우에 버티고 선다. 안도치는 멀찌감치 떨어져 공민왕을 바라보고 서있다. 공민왕:(앉으며) 최우를 비롯한 무신들이 정방을 설치하여 대소신료의 인사는 물론 지방 관아의 말단 관리까지 임명하였소이다. 권력을 잡은 무신들이 제멋대로 국왕을 갈아 치우고 심지어는 시해하는 일을 서슴지 않으니 원의 침공을 받아 굴복하게 된 연유가 거기서 시작된 것입니다 술렁이는 대신들. 권겸: 원의 침공을 받아 굴복했다니 (앞으로 나서며) 전하. 고려는 오랫동안 상국의 황은을 입어 태평성대를 누려왔나이다 공민왕: 오늘부터 정방을 폐하고 모든 인사를 내가 직접 하겠소이다 권겸: 전하 공민왕:(웃으며) 복안부원군께서는 관모를 벗어 보시지요 권겸:...... 공민왕:...... 싱긋 웃으며 내려다본다. 권겸, 대들 듯이 관모를 벗는다. 변발을 하고 있다. 공민왕: 경양부원군께서도 앞으로 나와 관모를 벗어보시지요 노책: 전하께서는 무슨 뜻으로 관모를 벗어보라 하시는지요 공민왕: 부끄럽습니까 노책: 부끄럽다니오. 상국을 사모하여 상국의 풍습을 따르는 것이 뭐가 부끄럽다는 겁니까 관모를 벗는 노책. 역시 변발이다. 공민왕: 덕성부원군께서도 관모를 벗어보시지요 기철: 으흠 웅성거리는 대신들. 공민왕: 부끄러워하실 것 없습니다. 나 역시 연경에서 변발을 하고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기철: 그러시옵나이까 공민왕: 원의 볼모로 끌려간 철부지가 뭘 알았겠습니가 기철: 어전에서 관모를 벗는 것은 소인들이 처음인 듯싶습니다 관모를 벗는 기철. 변발이 아니다. 웅성거리는 대신들. 더욱 놀라고 당황하는 권겸과 노책. 공민왕: 덕성부원군께서 오랑캐의 변발을 하지 않고 계시니 내 마음이 든든합니다. 오늘 이후로 변발을 금할 것이니 따르지 않는 자는 모두 참할 것입니다 권겸: 경양부원군대감. 우리는 나가십시다. 전하께서 변발한 사람들은 모두 참한다니 우리는 연경으로 가서 사는 수밖에요 노책: 그러십시다. 황후폐하를 만나 뵙고 살려달라고 매달리는 수밖에요 밖으로 나간다. 눈치를 보던 부원배 서넛이 황급히 권겸을 따라 나간다. 공민왕:(뒤에다 대고) 변발한 머리가 다 자라기 전엔 이 어전엔 발끝하나 들여놓지 마시오 #동. 뜰 나오는 권겸과 노책. 노책: 이런 망신이 있나 권겸: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어허, 어디 두고 보자 씩씩거리며 가는 권겸과 노책. 관모를 꽉 붙잡고 눈치보고 서있는 부원배. 권겸: 뭐가 무서워서 벌벌들 떠십니까 (선경전을 가리키며) 며칠이나 해먹을 거라고 #동. 안 공민왕: 내 조카가 왕위를 잃고 강화도에 유폐돼 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조카에게 내 옥새를 돌려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나 내가 뜻한 바가 있어 잠시 그 일을 뒤로 미룰까 합니다 숙연해지는 대신들. 공민왕: 팔십 년입니다. 십 년이면 강신이 변한다고 하는데 팔십 년을 원의 속국으로 살아왔습니다. 내가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반드시 바로 잡고 조카에게 왕위를 돌려줄 겁니다 염제신: 전하 흐느끼며 부복한다. 뒤따라 부복하는 대신들. 혼자서 뻐쩡하게 서있는 기철. 공민왕: 무릎을 꿇어라. 내가 고려의 국왕이니라 기철: 으흠 주위를 둘러본다. 모두 부복했다. 용상을 바라보는 기철. 버티고 선 정세운, 험악한 눈빛으로 칼집에 손을 댄다. 김용을 보는 기철. 지그시 눈을 감아보이는 김용. 기철:...... 끄응 신음하며 무릎을 꿇는다. 공민왕: 내가 희비를 강화도로 보내 내 조카를 돌봐드리라고 했소이다 염제신: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따라하는 대신들. 공민왕: 내가 잠시 어린 조카의 보위를 빌린 것이니 전왕 역시 고려의 국왕입니다. 누구든 내 조카를 위해하거나 위해하려는 자가 있다면 그 자를 대역죄인으로 다스릴 것입니다 위압하듯 대신들을 훑어보는 공민왕. 눈물 훔치고 있는 안도치. #어느 전각. 앞 희비: 뭣들 하느냐. 어서 가마를 대령하지 않고. 내가 내 아드님을 뵈러 강화도로 갈 것이야 가마를 급히 가지고 오는 환관들. 희비: 이놈들. 나를 업수히 여기더니 꼴 좋다. 언젠가 내가 내 아드님을 모시고 대궐로 돌아올 것이야 (가마에 타서) 가자 가마를 들어올리는 가마꾼들. #곤성전의 안 노국공주:....... 안도치: 용상에 높이 앉으시어 마치 천군만마를 호령하듯 대신들을 질타하시는 전하의 모습을 뵈었으면 중전마마께서도 속이 다 후련하셨을 것이옵니다. 어찌나 통쾌하고 신이 나는지 소인은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고 싶었나이다 노국공주:..... 안도치의 수다를 가만히 듣고 있는 노국공주의 두 눈가에 미소 대신 눈물이 빛난다. #어느 냇가 냇물에서 물을 긷고 있는 원현. 일어나면 공철이 불을 피워 음식을 만들고 있고, 언덕바지 맡에서 덕운이 큰스님을 이불 같은 걸로 감싸주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공철에게 물을 갖다주는 원현. 공철:(힐끔 큰스님 돌아보고) 모두 월선스님, 월선스님 하길래 대단한 스님인 줄 알았더니 원 원현:..... 큰스님을 본다. 이불에 쌓여 뭐가 불만인지 손을 빼서 덕운을 때리는 큰스님. 큰스님: 아 이놈아. 춥다는데 이불은 왜 자꾸 들춰 덕운: 스님도 참. 발바닥이 얼음장처럼 차겁잖습니까. 이러시다 동상이라도 걸리면 어쩌시려구요 큰스님의 발바닥을 두 손으로 부지런히 부벼주는 덕운. 큰스님:(때리며) 그러게 왜 사람을 물에 빠트려 덕운: 스님께서 빨리 가자고 하도 발버둥을 치시니까 큰스님: 끝까지 잘했다고 말대꾸지 이놈 계속 덕운을 때리는 큰스님. 원현:(미소).....대단한 어른이시지 밥 짓는 걸 거드는 원현. 공철: 내 눈엔 볼품 없는 늙은이구만 원현:(보더니) 니 놈이나 나같은 놈은 큰스님 발가락 사이의 때 만도 못한 존재야 공철: 하긴 보우선사님도 쩔쩔 매시는 걸 보면 대단한 양반 같긴 한데 다시 큰스님 쪽을 보는 공철. 마치 망녕이 난 듯 발을 주무르는 덕운의 머리통을 때리며 투덜대는 큰스님. #어느 언덕 차밭이다. 초선: 이게 다 아버지 땅이었습니다. 연지를 팔아 돈이 모이면 아버진 땅을 사서 차나무를 심고는 하셨지요 신돈:...... 바라본다. 초선: 어디 여기 뿐인가요. 경상도와 전라도의 차밭은 거의가 아버지 소유였습니다 신돈: 그 많은 땅을 다 뺐겼단 말입니까 초선: 이 차밭이 아버지가 제일 애끼던 곳이었습니다 신돈: 그런데 어쩌다 초선: 이 곳을 지나던 권문세도가가 차밭을 보고 탐이 나서 이 곳 현화사 주지와 짜고 강탈을 하다시피 뺏어가버렸지요 신돈:(웃으며) 스님이 무슨 힘이 있어 땅을 뺏어갔다는 겁니까 초선: 현화사 주지가 왕사여서 권력이 대단했지요. 현화사가 가지고 있는 땅만 해도 고을 하나를 넘었고 그 땅은 경작하는 노비만 해도 수백 명이 넘었습니다 신돈:.....(쓸쓸한 미소) 초선: 편조스님은 수많은 양민이 노비로 전락한 까닭을 모르고 계신가 봅니다 신돈:(바라보는) 초선: 땅을 독점한 권문세도가들이 농민들에게 소작을 주지 않고 노비로 삼았지요. 노비가 되기를 거부하는 농민들에겐 땅 한 평 내어주지를 않았구요 신돈:..... 가만히 초선의 얘기를 듣고만 있는 신돈. #어느 길 이불에 꽁꽁만 큰스님을 덕운이 업고 가고 있다. 초선의 말을 끌고 따라가는 공철. 원현은 짐 실은 말을 끌고 간다. 신돈:..... 덕운의 등에 업혀가고 있는 큰스님을 바라본다. 잠든 큰스님의 얼굴. #개태사 부근의 밭(신돈의 의식) 큰스님이 낑낑대며 땅에 박힌 장생표를 뽑고 있다. 깊이 박혀서 빠지지를 않는다. 덕운: 스님. 왜 이러십니까. 장생표를 뽑아서 뭐에 쓰시려구요 (*장생표; 절 소유의 토지라는 걸 표시하게 위해 세운 표지물) 큰스님: 이놈아. 이걸 누가 여기다 박아놓으라고 했느냐 덕운: 스님도 참. 여기가 다 개태사 땅인데 장생표를 박아놔야 저놈들이 못 건드리죠 농민들이 멀리서 구경을 하고 있다. 큰스님: 개태사 땅이라니. 중이 하루 두 끼만 먹으면 족하지 이 넓은 땅을 경작해서 하루에 몇 끼를 먹을 작정이냐 낑낑대며 장생표를 뽑는다. 덕운: 스님. 제발 그만두고 들어가세요 말린다. 큰스님: 이놈이 욕심은 (뿌리치고) 편조 너 이놈 뭘 하고 있느냐 어린 편조가 곰순네와 보고 서있다. 큰스님: 너도 이리 와서 힘 좀 써라 어린신돈:....... 큰스님: 아, 뭣들 하고 있어. 이리 와서 이걸 같이 뽑자니까 어린 편조와 곰순네가 와서 큰스님과 같이 장생표를 뽑는다. 그 바람에 뒤로 벌렁 나자빠지는 큰스님. 큰스님: 아이구 시원하다 (구멍을 가리키며) 이거 봐라. 구멍이 뻥 뚫린 게 앓던 이 빠진 것처럼 시원하지 않으냐 #어느 길(현실) 신돈:..... 덕운의 등에 업힌 큰스님을 바라본다. 잠든 큰스님. #개태사 부근의 밭(신돈의 의식) 신이 나서 장생표를 뽑고 있는 어린 신돈과 곰순네. 농민들도 합세해서 여기저기 박혀있는 장생표를 뽑기 시작한다. 나뒹구는 장생표들. 보고 있던 큰스님이 만세를 부른다. 큰스님의 재촉에 할 수 없이 울상인 채로 만세를 부르는 덕운. #다른 길(현실) 큰스님을 꽁꽁 싸서 두 팔로 안고 가는 신돈. 마치 갓난아이처럼 두 손으로 앞으로 모으고 잠든 큰스님. 배내짓을 하듯 싱긋 싱긋 웃고 있는 큰스님. 신돈:...... 절로 흘러내리는 신돈의 눈물. 앞서가는 초선의 말. 뒤따르는 원현과 공철. 그런 모습이 여러 다른 여러 길을 가고 있다. 그 위에, 초선:(소리) 그 많은 땅과 차밭을 다 뺏기고 나서야 아버지는 월선스님을 만나셨지요. 스님께서 장생표를 모두 뽑아버리고 개태사의 땅을 모두 농민들에게 돌려주셨다는 얘길 듣고 아버진 남은 땅을 모두 개태사에 시주를 하셨습니다. 얼마 후 아버진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는데 월선스님이 절 찾아와 땅을 돌려주셨습니다. 그 땅을 팔아 아버지가 꿈꾸던 세상을 만들어 보라구요 #어느 갈림길 큰스님을 업고 언덕길로 올라가는 덕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서있는 초선과 신돈, 원현, 공철. #다른 차밭 차밭. 그 차밭을 바라보고 있는 초선. 그런 초선을 바라보고 있는 신돈. 초선: 하나 남아있는 차밭입니다. 덕분에 오늘의 부를 이루었지요 신돈: 아버지께서 꿈꾸던 세상이 어떤 세상이었습니까 초선:.......(본다) 신돈:....... 초선: 스님께선 세상을 바꿔보고 싶다고 하셨다지요 신돈:.....(마치 허탈한 듯 웃어보이는) 초선: 어찌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신돈:.....(웃음이 사라진다) 초선:....땅입니다 신돈:...... 초선: 농민들에게 땅을 돌려주어야 세상이 바뀝니다 신돈:...... 바라본다. 점점 그 입가에 감도는 미소. 초선이 그 미소에 답하듯 빙긋 웃어보인다. 그러자 신돈이 웃기 시작한다. 세상을 향해 던지듯 껄껄대며 웃기 시작한다. #강화도 가는 길 마차를 호위해서 달려가는 응양군들. 희비:(얼굴 내밀며) 왜 이리 더디 가느냐. 어서 달리지 않고 말을 재촉하는 응양군들. 희비:(마차 안에서 흔들리며) 어미가 갑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어미가 전하를 지켜드리러 갑니다 #동. 어느 초가. 마당 응양군과 마차가 와서 급히 멎는다. 부엌에서 나오던 최상궁의 당황한 모습. 희비: 전하. 어미가 왔습니다. 전하 방 안으로 들어간다. 최상궁이 도망치기 시작한다. 이상해서 바라보는 응양군들.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최상궁. 멀리 도망치고 있는데 초가 안에서 희비의 비명 소리가 길게 울린다. 뒤이어 통곡 소리. #동. 방 안 독살당한 충정왕의 시신을 안고 통곡하고 있는 희비. 마치 짐승처럼 울부짖고 있다. #연경. 기황후의 처소. 안 풍악소리. 아유시리다라가 장막 틈으로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고려의 어린 소녀들이 곱게 치장하고 서있다. 호기심에 차서 보고 있는 아유시리다라. 기황후:.......(싱긋) 박불화: 고려의 권신들이 앞을 다투어 태자 전하께 딸들을 바치고 있사옵니다 기황후: 고려왕이 변발을 하지 말라고 했다지 박불화: 예, 황후폐하 (웃으며) 큰 뜻이야 있겠습니까 기황후: 몽골의 직접 통치를 받고 있는 한족들은 변발을 하지 않거늘 고려의 명문세족들 가운데 변발을 하고 있는 자들이 있었단 말이냐 박불화:(의외라 본다) 기황후: 변발을 금할 것이 아니라 변발을 하고 있는 자들을 잡아들여 참수를 했어야지 (한숨 쉬더니) 자네 짓인가 박불화:(당황해서 눈치 보는) 기황후: 전왕을 독살한 게 자네 소행이냐고 물었네 박불화:(웃으며) 전왕을 독살하여 공을 세우고 싶어하는 자가 한 둘이겠나이까 기황후: 하긴 박불화: 황후폐하의 뜻대로 고려왕의 손발에 족쇄를 채웠으니 기황후: 이리 나와 보거라 장막 뒤에 숨어있는 아유시리다라에게 손을 내미는 기황후. 아유시리다라가 나와서 기황후의 무릎에 앉는다. 어린 소녀들을 바라보는 기황후. 기황후: 어미가 이 중에서 태자비를 골라주마 순진하게 웃는 아유시리다라. 기황후: 명심하거라. 태자의 몸 속엔 고려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싱긋 웃으며 어린 소녀들을 바라보는 기황후. #도성의 길(밤) 인적이 끊긴 길을 신돈과 초선 일행이 들어선다. 둘러보는 신돈. 박서방이 달려온다. 박서방: 마님. 무사히 당소하셨습니다요 초선: 도성에 무슨 일이 있느냐 박서방:(눈물 지으며) 강화도에 유배당한 전왕께서 독살을 당하셨다고 합니다 초선: 저런 박서방: 서둘러 집으로 가셔야겠습니다. 강화도에서 전왕의 시신을 옮겨오는 중이라서 요란한 말발굽 소리. 박서방, 초선의 말고삐를 잡아 골목으로 끌고 간다. 응양군들이 뚜껑없는 마차를 끌고 온다. 신돈:...... 바라본다. 원현: 피하세요 편조스님. 위험합니다 신돈을 잡아당기는 원현. 신돈을 칠 듯이 달려오는 군마와 마차. 신돈을 스치고 지나간다. 마차 위에 놓인 관. 신돈:..... 그 시선에 멀어지는 마차. 그 너머로 어둠에 쌓인 대궐의 지붕들. 신돈:(무릎 꿇더니 합장하며) 전하께선 참으로 외롭고 외로우시겠습니다 #선경전의 안(밤) 공민왕: 도착했느냐 최만생: 예, 전하 공민왕이 용상을 내려와 문쪽으로 간다. 그 뒤를 따르는 대신들. #동. 뜰(밤) 나오는 공민왕. 뒤따르는 이제현, 기철 등 대신들. 공민왕:..... 멈춰서 뜰을 본다. 횃불에 쌓인 마차. 그 위에 놓인 관. 웅성거리는 대신들. 공민왕: 관을 열라 찬물을 끼얹은 듯한 침묵. 공민왕: 관을 열라 하지 않느냐 응양군들이 달려들어 관뚜껑을 열기 시작한다. 두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는 공민왕. 차마 못보고 얼굴을 돌리는 대신들. 조일신이 공민왕을 노려보며 이를 갈고, 기철은 싱긋 웃고 있다. 관뚜껑을 연 응양군들이 물러선다. 공민왕:..... 계단을 내려간다. 김용: 전하 공민왕:......(내려간다) 김용: 어쩌자고 전왕의 시신을 보려고 하시옵니까 공민왕:........ 계단을 내려가는 공민왕. 더는 말리지 못하는 김용. 마차로 다가가는 공민왕. 마차 위의 관이 두둥실 공민왕으로 다가온다. 멈추는 공민왕. 관. 관 속에 반듯이 누운 충정왕. 공민왕:(미친 듯이 외친다) 내 머리 위에 지옥의 불덩어리를 내리쳐라. 조카를 독살한 숙부가 머리 위에 왕관을 쓰고 있느니라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는 공민왕. 염제신: 전하 엎드려 통곡하는 대신들. 통곡하는 공민왕. 관속의 충정왕. 전각 위에서 바라보고 있는 노국공주. <신돈 15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