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 32회 <신돈> -32회 - #곤성전의 뜰(밤) 급히 오는 공민왕. 뒤따르는 최만생 등. 안도치:(달려오며) 전하 공민왕: 중전께선 어떠하시냐 안도치: 중전마마께선 하루종일 내불당에서 불공을 드리고 계셨사온데 하도 인기척이 없는 지라 공민왕: 웬 말이 그리 많으냐. 중전께선 어찌하고 계시냐고 묻고 있질 않으냐 덕녕공주:(안에서 나오며) 심려치 마세요. 중전께선 무사하십니다 공민왕:(마른침 삼키며) 중전께서....유산을 하셨습니까? 덕녕공주:....들어가보세요. 전하만 찾고 계십니다 공민왕:.... 전각을 바라본다. 불켜진 전각. #동. 안(밤) 방문이 열린다. 공민왕이 서있다. 안을 본다. 노국공주가 누워있다. 공민왕:.... 눈물이 치솟는다. #동. 뜰(밤) 당황해서 웅성거리는 환관들과 상궁들. 덕녕공주: 대비전에는 내가 고할 것이니 더는 소란 떨지 마라 다시 한번 전각을 바라본다. #동. 안(밤) 공민왕:..... 노국공주를 바라본다. 노국공주:.... 잠든 듯이 꼼짝 않는 노국공주. 공민왕: 납니다 노국공주의 손을 잡아쥔다. 노국공주:..... 문득 고개를 돌리는 노국공주. 공민왕:(웃으며) 그러기에 내가 뭐랬습니까. 진즉에 유산을 시켰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을 노국공주:..... 감은 두 눈에 눈물이 치솟는다. 공민왕:(웃으며) 중전께서 무사하니 다행입니다 노국공주:... 고개 돌린 채 눈물만 흘리는 노국공주. #영수전의 안(밤) 명덕태후:(찡그리며) 중전께서 유산을 했단 말입니까 덕녕공주: 예, 마마 명덕태후:(혀를 차는) 덕녕공주: 어의들 말로는 하마터면 큰 변을 당할 뻔했다고 합니다 명덕태후: 요란하기도 합니다 덕녕공주:(보는) 명덕태후: 여염집 아낙들은 밭일을 하다가 집에 들어와 해산하고 그 길로 다시 밭에 나가 하던 일을 마친다고 하질 않습니까 덕녕공주: 마마 명덕태후: 큰일입니다. 중전이 소생을 얻지 못하면 이 일을 어찌합니까. 나는 며느리 복도 없습니다 덕녕공주:..... 안쓰러운. #곤성전의 안(밤) 공민왕:(웃으며) 말씀을 해보세요 노국공주:(눈 감고 고개 돌린) 공민왕: 그까짓 아이를 낳지 못하면 어떻습니까. 정 못 낳으시면 후궁을 두면 되지 않습니까 웃어보이는 공민왕. 더 고개돌리는 노국공주. 공민왕:(손 더 꽉 잡으며) 하는 소립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후궁을 들이지 않을 것이니 염려하지 마세요 웃는 공민왕. #영수전의 안(밤) 명덕태후: 꼴을 못 본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덕녕공주:(웃으며) 그런 뜻이 아니옵고 명덕태후: 그 말씀이 그 말씀 아닌가 덕녕공주: 중전께서 건강을 회복하고 나면 명덕태후: 더는 못 기다립니다. 서둘러 주상께서 후사를 두시도록 해야지요 (기막혀 웃고) 후궁의 꼴을 못 보겠다니 #곤성전의 안(밤) 노국공주:(고개 돌린) 공민왕:(웃으며) 뭐라고 하셨습니까 노국공주: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공민왕:...... 노국공주: 어의들이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공민왕: 다음에도 또 아들을 낳으시면 돼지요 노국공주:......(비로소 본다) 공민왕: 그만 잊어버리세요 노국공주:..... 다시 터지는 울음을 참으며 고개 돌리는 노국공주. #동. 뜰(밤) 전각의 불빛. 공민왕:(소리) 나는 중전만 있으면 됩니다. 덕성부원군에게 장검을 겨누던 패기는 다 어디 두고 눈물만 흘리고 계십니까. 그만 벌떡 일어나 앉으세요 공민왕의 웃음 소리. #개태사 부근의 계곡(새벽) 얼음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 신돈이 그 물로 얼굴을 씻고 있다. 문득 일어나 산을 바라보는 신돈. 눈 덮인 산. 한껏 새벽공기를 들이마시는 신돈. #개태사. 큰스님의 방 안 큰스님: 올라가려고? 신돈: 예 큰스님:....(가만히 바라본다) 신돈:(웃으며) 며칠 더 있다 올라갈까요 큰스님: 보우가 다녀갔다 신돈:......(섬칫) 큰스님: 장생표를 모두 뽑아버리고 사찰의 재산을 다 내놓으라고 했다지? 신돈: 예, 스님 큰스님:.....(가만히 바라본다) 신돈: 전하께서 나라의 제도를 다 고치려고 하시는데 사찰만 피해 갈 수는 없잖습니까 큰스님 큰스님:(신음) 신돈: 다 내놔야지요. 그래야 백성들의 불심도 되살아날 것입니다 큰스님: 편조야 신돈:..... 큰스님:.... 신돈: 예, 스님 큰스님: 너 만한 나이 때 나 역시 절을 버리고 세상으로 나간 적이 있었다. 세상이 신음 소리로 가득차 있는데 나 혼자 절간에 앉아 득도를 한다고 부처님께서 반기시겠느냐 신돈:..... 큰스님: 허나 아무리 궁리를 하여도 세상을 바꿀 방법은 보이지 않고 내 마음 속엔 온갖 미움들만 가득찼느니라. 세상을 미워하지 마라 편조야. 너의 근본은 중이다 신돈:(웃으려고 하는) 큰스님: 그저 바꾸기만 하면 되는 게 세상이 아니다. 그저 바꾸자고만 하면 부처님께서 바꾸지 못하셨겠느냐. 악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을 부처님께서 불벼락을 내려 다 태워버리고도 남으셨을 것이다 신돈:(또 한번 웃으려고 하는) 큰스님: 편조야 신돈:......예, 스님 큰스님: 너의 근본은 중이다. 중이 아니면 내가 너를 세상으로 내보내지 않았을 것이야 지그시 눈을 감는 큰스님. 바라보는 신돈. 큰스님의 눈가에 치미는 마른 눈물. #동. 마당 나오는 신돈. 곰순네가 꾸러미를 내민다. 곰순네: 주먹밥이다. 가면서 먹어 신돈: 큰스님께서 마음이 허해지셨나 봅니다 덕운: 말두 마라. 요즘은 며칠 간격으로 까무러치시는 바람에 내가 십년 감수를 한다 곰순네:(눈물 지으며) 아무래도 오래 못 사실 것 같다 신돈:.....(방을 본다) #동. 큰스님의 방 안 큰스님:..... 쪼그리고 앉아있는. #동. 마당 신돈:.....(보더니 웃으며) 일년만 더 사시라고 하세요. 그러면 내가 세상을 다 바꿔놓을 것이니 곰순네: 그래. 덕분에 우리 같은 천것도 허리 좀 피고 살아보자 웃는 곰순네. #동. 부근 계곡 신돈, 계곡을 따라 내려온다. 큰스님:(소리) 편조야 멈추는 신돈. 큰스님:(소리) 너의 근본은 중이다 신돈:......(돌아보더니) 염려마십시오 스님. 일년 만 지나면 제가 개태사로 돌아와 스님을 모실 겁니다 활짝 웃고 부지런히 산길을 내려가는 신돈. #동. 큰스님의 방 안 지그시 눈 감고 있는 큰스님. 덕운:(신이 나서) 가는 곳마다 편조를 칭송하는 소리가 자자합니다. 권문세도가들에게 뺏긴 땅을 편조가 도루 찾아 준다니 얼마나 신이 나겠습니까. 어깨춤이 절로 난이 판이지요 웃어대는 덕운. #동. 부근 마을 어귀 신돈, 온다. 감무와 군졸들이 서성거리고 있다. 감무:(신돈을 보더니) 혹시 편조거사님이 아니십니까 신돈: 뉘신지 감무:(반색하며) 소인은 이 고을 감무인 최철용이라고 하옵니다. 편조거사님께서 개태사에 내려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옵니다 (군졸들에게) 뭘 하고 있느냐. 어서 가마를 대령하지 않고 (*감무 - 고려시대 군· 현에 파견되었던 지방관) 군졸들이 신돈 앞에 가마를 갖다댄다. 감무: 어서 오르시지요 편조거사님 신돈:(웃으며) 저 같은 천민이 어찌 가마를 타고 가겠습니까. 성의는 고맙습니다만 걸어서 가겠습니다 신돈, 굽혀 보이고 걸어서 간다. 감무: 편조거사님. 어서 가마에 오르시지요. 소인이 거사님을 편히 모시겠습니다 신돈의 뒤를 따라가는 감무와 가마. #동. 마을길 신돈, 온다. 뒤따라오는 감무와 가마. 기다리고 있던 백성들이 모두 땅바닥에 엎드린다. “고맙습니다 편조거사님. 거사님 덕분에 편히 살게 됐습니다.” 등등 신돈을 칭송하는 백성들.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신돈. 백성1:(달려와 엎드리며) 소인놈의 억울한 사정 좀 들어주십시오 거사님. 제 딸 년이 올해 열 일곱 살이온데 이 지방 호장이란 놈이 강제로 제 딸 년을 백성2: 소인은 논 열 마지기를 모두 뺏겼사옵는데 백성3: 소인의 노모를 살려주십시오 편조거사님 일제히 신돈을 에워싸고 매달리며 울부짖는 백성들. #초선의 집. 앞 활짝 열린 대문. 드나드는 사람들. 그 위에 초선의 웃음 소리. #동. 안방 초선: 그래서 산길을 돌아 개경까지 올라오셨습니까 신돈:(웃으며) 예. 그 바람에 며칠 더 늦어졌습니다 초선: 웬만하면 소원을 다 들어주고 올라오지 그러셨습니까 신돈: 억울한 사람이 어디 한 둘이겠습니까. 나라의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백성들의 눈물은 끝이 없을 겁니다 초선: 그렇지요 신돈: 내가 오늘 전하와 담판을 지으러 들어갈까 합니다 초선:(웃음이 그치는) 신돈: 우선 부원배들의 재산부터 백성들에게 다 돌려주고 나서 초선: 중전마마께서 유산을 하셨습니다 신돈:........ 초선: 소식을 못 들으셨지요 신돈: 중전마마께서 유산을 하시다니오 초선:(한숨 쉬며) 대궐 안이 그 일로 소란스럽습니다 #대궐의 길 신돈, 온다. 여기저기서 관리들이 신돈을 힐끔거리며 수군거린다. 모른 척 가는 신돈. #강안전의 뜰 신돈, 들어선다. 이환관:(달려나오며) 어서오십시오 편조거사님 신돈: 전하를 뵈러 들어왔네 이환관:(당황해서) 잠시만 기다려주시지요 신돈:(전각 보며) 안에 누가 들어계시는가 공민왕:(버럭 내지르는 소리) 무슨 소릴 그렇게 합니까. 벼슬을 내리는데 귀천이 따로 있다는 겁니까 #동. 안 염제신: 황공하오나 전하 공민왕: 듣기 싫습니다. 이 나라에 언제부터 그런 법이 생겼습니까 염제신: 편조는 원래 옥천사의 종이였던 공민왕:(버럭) 그래서 내가 이 일을 편조에게 맡기려 하는 겁니다. 종의 자식이니 지 뱃속부터 채울 궁리는 안 하겠지요 고개를 돌려버리는 공민왕.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염제신. 윗목에 앉아있는 김원명이 나선다. 김원명: 대비전의 뜻이옵니다 전하 공민왕:(본다) 김원명: 전민변정도감을 세워 부원배들에게 억울하게 땅을 뺏긴 백성들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것은 좋으나 그 수장은 조정대신들 가운데서 골라 맡기시는게 좋겠다는 대비마마의 말씀이 계셨사옵니다 (*전민변정도감 - 고려 후기 권세가들에게 점탈된 토지와 농민을 되찾기 위해 설치된 임시 관서) 공민왕:(부르르) 김원명: 황공하옵나이다 전하 숙여보이는 김원명. #동. 뜰 나오는 김원명과 염제신. 신돈이 서있다. 염제신:..... 허리 굽히는 신돈. 바로보지 못하고 헛기침하며 피하듯 가는 염제신. 또 한번 굽혀보이는 신돈. 김원명: 분수를 알라고 했다 신돈:..... 김원명: 전하께서 아무리 너를 두둔하셔도 결코 전하의 뜻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야 쏘아부치고 가는 김원명. 신돈:..... 미소 짓는. #대궐의 길 김원명:(오며) 대체 뭐가 무서워서 벌벌 떠십니까 염제신: 이 사람이 김원명: 지금 싹을 잘라놓지 않으면 큰 화가 닥칠 겁니다. 생각을 해보세요. 전하께서 전민변정도감의 판사 자리에 편조란 자를 앉혀놓으면 화가 거기서 끝날 것 같습니까. 머지않아 개똥이 쇠똥이 하는 노비놈들이 조정의 대신 자리를 다 차지하고 앉아 있을 판입니다 #강안전의 방 안 공민왕:(보더니) 실망했느냐 신돈:(미소) 공민왕: 내가 너를 전민변정도감을 세워 판사 자리에 앉히겠다고 하면 저렇게 벌떼 같이 일어나서 반대를 하니 신돈: 먼저 전민변정도감을 세우시지요 전하 공민왕:...... 신돈: 누가 판사 자리에 앉던 중요한 것은 백성들의 땅을 돌려주는 것이옵니다 공민왕: 모두가 한통속인데 그게 되겠느냐 신돈:..... 공민왕: 저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부원배들의 재산을 돌려주는 게 아니다. 그 불똥이 저희들에게 튈까봐 한사코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신돈: 전하께서 이미 다 알고 계시니 소인은 마음이 편하옵니다 공민왕: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너를 그 자리에 앉힐 거야. 나만 믿거라 신돈:..... 미소. #영수전의 안 명덕태후: 주상께서 고집을 꺾으시겠느냐 김원명: 꺾으셔야 하옵니다 명덕태후: 그러다 주상의 마음이 편조에게 더 기울기라도 하면 김원명: 마마께는 좋은 기회가 아니옵니까 명덕태후:(본다) 김원명: 전하께서 고집을 부리실수록 조정대신들과 권문세족들은 마마의 주위로 모여들 것이옵니다 (웃으며) 편조가 세도를 부릴수록 제 살이 떨어져 나갈 판이온데 누가 전하를 따르겠사옵니까 명덕태후: 허기사 땅을 내놓으라는데 좋아할 사람이 없겠지 김원명: 마마. 중궁전의 처지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잊지 마시옵소서. 중전께서 다시는 회임을 할 수가 없다면 그 자리를 얼마나 지킬 수가 있겠습니까 명덕태후:(끄덕이는) 김원명: 권력의 중심에 마마께서 서 계셔야 하옵나이다. 전하께서 심약하시니 그래야 나라가 편안하올 것이옵나이다 눈웃음 치는 김원명. 명덕태후: 알았다. 내가 자네가 하자는대로 할 것이야 김원명: 마마께서 하실 일이 한 가지가 더 있사옵니다 명덕태후:(바싹) 김원명: 중전께서 회임을 못하시니 하루빨리 후궁을 세워 후사를 얻으셔야 할 것이옵니다 비로소 소리내어 웃는 김원명. #곤성전의 뜰 안도치, 달려나온다. 신돈이 서있다. 안도치: 어서오십시오 편조거사님 신돈: 중전마마께서는 안에 계신가 안도치: 내불당에 납셔계시옵니다 (눈물 지으며) 요즘은 침식도 거르신 채 내불당에서 살고 계시옵니다 신돈: 상심이 크시겠네 안도치: 차마 마마를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눈물 닦는 안도치. #내불당. 안 불상. 노국공주, 바라보고 앉아있다. 팔랑이는 촛불과 타오르는 향. 노국공주:(마음의 소리) 차라리 제 목숨을 가져가시지요....아들을 낳아 전하의 후사를 이을 수가 없다면 제가 무슨 염치로 전하의 사랑을 구할 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지은 전생의 죄가 얼마나 크기에 이렇게 다 뺏어가기만 하십니까. 쿤란태자를 잃은 슬픔보다는 전하를 얻은 기쁨이 더 컸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보다는 전하께서 고려의 강건한 군주가 되시는 것이 더 기뻤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전하의 아이를 뺏어가셨습니까 #동. 앞 전각을 바라보는 신돈. 가만히 합장배례한다. #동. 안 노국공주:(마음의 소리) 한번만 더 전하의 아이를 갖게 해주십시오. 그 아이를 낳다 제가 죽어도 좋습니다. 아이를 안고 기뻐하시는 전하의 모습을 뵐 수 있다면 저는 죽어도 좋습니다 #동. 앞 신돈:..... 그 눈에 흐르는 눈물. #강안전의 안 공민왕:(고개 돌린) 명덕태후: 왜 말씀이 없으십니까 주상 공민왕:..... 명덕태후: 더는 미룰 수가 없습니다 공민왕: 중전은 아직 젊습니다 명덕태후: 더는 회임을 할 수가 없다고 하질 않습니까 공민왕:(다시 고개 돌린다) 명덕태후: 어의들의 말을 못 들으셨습니까. 중전이 회임을 한다고 해도 해산을 할 수가 없다고 하질 않습니까. 해산을 하다 중전이 변이라도 당하면 어쩌시겠습니까 공민왕:.... 명덕태후: 주상께서 그렇게 아끼시는 중전을 잃어서야 되겠습니까 #곤성전의 안 혜비:....... 숙이고 서있다. 노국공주: 앉으시게 혜비:(굽혀 보이는) 노국공주: 앉으시래두 혜비:(앉는다) 노국공주: 내가 부탁이 있어서 자넬 들어오라고 했네 혜비:(숙이는) 노국공주: 전하의 아이를 낳아주시게 혜비:(흠칫 놀라서 본다) 노국공주:(웃으며) 자네가 아들을 낳아 전하의 후사를 이으면 내가 자넬 제이 왕비로 봉할 것이야 김상궁: 황공하오나 마마, 고려 왕실엔 정궁은 한분 뿐이시옵니다 노국공주: 그래 혜비: 중전마마. 소인은 노국공주: 아무 말씀 마시게. 내가 그렇게 정했으니 전하를 뫼실 준비를 하시게 #동. 복도 나오는 혜비. 혜비:..... 환하게 웃는다. #동. 안 노국공주:..... 고개 돌리고 앉은. 김상궁:(눈치 보는) 노국공주:(가만히 한숨을 내쉰다) 김상궁: 마마. 우정승대감의 여식이 후사를 낳으면 마마의 처지가 매우 어려워지시옵나이다 노국공주:(웃으며) 어쩌겠느냐. 자식을 얻는 것은 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니 #영수전의 안 명덕태후: 중전께서 그리 말씀을 하시더란 말이냐 혜비: 예, 대비마마 명덕태후: 잘됐다. 중전의 투기가 심한 듯해서 걱정이 태산같았거늘 (웃더니) 아들을 낳거라. 주상께서 몽골의 피가 섞인 후사를 둬서야 되겠느냐 웃는 명덕태후. #강안전의 안 공민왕: 안 될 말씀입니다 노국공주: 전하 공민왕: 내불당에 앉아서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불공을 드리는 줄 알았더니 기껏 그런 궁리를 하고 계셨습니까 노국공주:...... 공민왕: 나는 내 뒤를 누가 잇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노국공주: 전하. 전하께선 부원배들을 처단하시고 왕권을 공고히 하시었습니다. 하오나 명색만 그러할뿐 전하께서는 무엇하나 이루신 것이 없으십니다 공민왕:...... 노국공주: 전민변정도감을 세워 권신들이 차지한 백성들의 땅을 돌려주는 일도, 그 일을 편조에게 맡기려는 일도 권신들의 반대에 부딪혀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계십니다 공민왕:(신음) 노국공주: 신첩은 전하의 짐이옵니다 공민왕: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노국공주: 전하께서 무엇보다 먼저 부원배들을 내치신 것은 원과의 관계를 끊고 고려의 주권을 찾고자 하신 것이 아니옵니까. 전하께선 원의 제도를 다 버리시고 고려의 제도와 풍습을 다시 세우셨습니다. 그런 전하께서 신첩을 감싸고도시면 전하를 원의 부마라고 비웃는 소리가 끊이질 않을 것이옵니다 공민왕: 원의 부마라니오 노국공주: 전하께서 원의 공주를 부인으로 두셨으니 원나라 황실의 부마가 되는 것이옵니다 공민왕:(신음) 노국공주: 전하께서 신첩을 버리지 못하시면 편조에게 힘을 실어줄 수가 없습니다. 전하의 흠집을 남겨두고 어찌 권신들의 탐욕을 나무라실 수가 있겠사옵니까 공민왕:..... 노국공주: 강경히 하시옵소서 전하. 지금 전하께서 백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시면 권신들이 부원배 못지않게 전하를 핍박할 것이옵니다 공민왕: 내가 후궁을 두는 것과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씀입니까 노국공주:.... 공민왕: 내가 고려 왕실의 후손 가운데 후사를 정할 겁니다 노국공주: 전하께서 그리 말씀하시면 전하의 후사를 놓고 수많은 왕손들이 경쟁을 할 것이옵니다. 어디 왕손들뿐이겠습니까. 조정 대신들은 저마다의 이익을 쫓아 이 사람 저 사람 왕손을 내세우며 경쟁을 할 것이니 전하께서 장차 무슨 힘으로 이 나라를 통치할 수가 있겠습니까 공민왕:..... 노국공주: 신첩이 불행히도 전하께 아들을 낳아드리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전하께서 신첩을 버리지 않으시면 그보다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공민왕:(신음) 노국공주: 편조를 세워 권신들을 누르십시오 전하. 저들이 편조에게 승복을 한다면 누가 감히 전화의 위엄을 거역하겠습니까 공민왕: 아무리 그렇게 말씀하셔도 소용없습니다. 천하없는 후궁을 들여도 나는 손끝하나 대지 않을 겁니다 #초선의 집. 안방 원현: 왜 안 된다는 겁니까 신돈:.... 원현: 김용은 전하의 심복이 아닙니까. 그런 자가 누구보다 앞장서서 부원배들의 재산과 노비를 빼돌렸습니다 (더 대들며) 김용의 집부터 뒤져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권신들이 꼼짝을 못합니다. 전하의 심복도 뒤를 캐는데 다른 놈들이 끽 소리나 하겠습니까 신돈:......(신음) #동. 대문 앞 원현이 나온다. 뒤따라 나오는 공철과 장정들. 공철: 편조거사님께서 승낙을 하셨습니까 원현: 염려말고 날 따르게. 김용은 고사하고 우정승, 좌정승의 집까지 다 뒤지세 원현, 불끈해서 간다. 우르르 그 뒤를 따르는 공철과 장정들. #동. 안방 신돈:..... 초선: 뭘 망설이십니까 신돈: 개태사에 내려가기 전에 부원배들의 재산과 그 재산을 빼돌린 조정대신들의 목록을 적어 전하께 드렸습니다 초선: 그러셨지요. 그런데요 신돈: 그걸 두고 조정에서 논의가 분분한 모양입니다 초선:(웃으며) 전하께서 전민변정도감을 세우실 것 같습니까 신돈: 세우시고 말고요 초선:(웃으며) 전하께는 아직 그럴 힘이 없으십니다 신돈:(본다) 초선: 벌써 남대가의 상인들이 반이 넘게 저들 손에 넘어갔습니다 신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초선: 노회한 권신들이 전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보고만 있겠습니까 #김용집. 사랑방 안 눈치 보고 있는 상인들. 김용: 원 의심은. 자네들은 돈만 벌면 그만이 아닌가. 안 그런가 이 사람들 상인1: 그거야 그렇습지요 김용: 편조는 오래 가지 못하네. 생각들을 해보게. 전하께서 편조의 신세를 지긴 하셨으나 조정 대신들을 다 적으로 돌리시고 편조의 손을 들어주시겠나 상인2: 허면 전민변정도감을 세운다는 건 다 헛소문입니까 김용: 세우는 시늉만 하시겠지 상인1: 그럼 편조에게 부원배들의 재산을 백성들에게 나눠주라고 한 것도 다 헛소문이란 말씀입니까 김용: 부원배들이 죽어나간지 벌써 달포가 지났네. 헌데 소문만 무성할 뿐 진척이 없질 않은가 수군거리는 상인들. 김용: 내가 연경에서부터 전하를 뫼셨네. 전하의 속내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네 밖에서 소란. 김용:(밖에다) 웬 소란이냐 노비:(밖에서) 대감마님. 웬놈들이 떼거지로 몰려와서 곳간 문을 열라고 아우성입니다요 김용: 뭐야 (상인들 보며) 이놈들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벌떡 일어나 나간다. 수군대는 상인들. #동. 곳간. 앞 곳간을 지키고 있는 노비들. 원현: 이놈들. 비키지 못할까. 안성군대감의 곳간을 샅샅이 뒤지라는 편조거사님의 명령을 받고 왔느니라 눈짓하는 원현. 공철과 장정들이 달려들어 노비들을 끌어낸다. 김용: 물러서지 못하겠느냐 이놈들 김용이 관군들을 데리고 나타난다. 김용: 이놈들을 모두 순군옥에 가둬라 관군들이 달려들어 원현과 공철, 장정들을 두드려 패기 시작한다. 공철이 도망친다. 그 뒤를 따라 도망치기 시작하는 원현과 장정들. 김용: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초선의 집. 앞 허둥지둥 달려오는 공철. 안으로 달려들어간다. #순군옥의 감옥 안 원현과 장정들을 감옥에 처넣는 옥리들. 원현: 이놈들 내가 누군 줄 아느냐. 편조거사님께서 니놈들을 가만 두지 않을 것이야. 편조거사님께서 전하께 이 일을 고하면 안성군 아니라 안성군 할애비라도 용서치 않으실 것이야 악쓰는 원현. #초선의 집. 안방 숨을 헐떡이며 보고 있는 공철. 초선: 내버려두라니오 신돈:(웃으며) 원현스님은 고생을 좀 해야 정신을 차릴 겁니다 공철: 편조거사님. 그러다 원현스님이 맞아죽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이러십니까 신돈: 안성군이 그렇게는 못할 것이야 웃는 신돈.. #도첨의사사의 회의실 김용: 이놈들이 내 집 곳간을 뒤지려고 하기에 내가 몽땅 순군옥에다 처넣었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망신입니까 염제신: 그렇게까지 할 게 뭐 있소이까. 그저 혼이나 좀 내주고 타일러서 돌려보낼 것이지 김용: 이놈들이 내 집 곳간만 뒤지러 온 게 아닙니다. 우정승, 좌정승의 곳간도 다 뒤지겠다고 떠들고 다닌다는 겁니다 염제신: 저, 저런 놈들이 있나 김용: 우정승대감 이제현:....... 김용: 전하께 말씀을 올리세요. 편조를 그냥 놔두시면 전하의 곳간문도 열어보자고 할 놈들이라고요 염제신: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고 말고 김용: 원 종놈의 자식 하날 누르지 못하셔서야 눈 부릅 떠 보이고 나가버리는 김용. 염제신: 우정승대감. 무슨 대책을 세워야하지 않겠습니까 이제현: 으음 염제신: 우정승께선 어찌 쓰다달다 말씀이 없으십니까 이제현: 으음 한숨만 내쉬는 이제현. #강안전의 안 공민왕: 인당과 강중경이 같은 병마사가 아닙니까. 그런데 인당이 강중경을 참수했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이인복: 인당은 서둘러 파사부를 치자고 하고 강중경은 신중히 하자고 맞섰는데 인당이 갑자기 칼을 빼서 강중경의 목을 쳤다는 것이옵니다 공민왕: 원 세상에 이인복: 인당이 강중경의 목을 친 것은 의견이 달랐기 때문이 아니옵니다. 서로 공을 세우려고 다투는 바람에 공민왕: 내가 인당과 강중경 모두에게 부월을 내렸습니다. 헌데 내 허락도 없이 출전을 앞둔 장수의 목을 쳤다는 겁니까 이인복: 그 뿐이 아니옵니다. 쌍성총관부를 함락한 유인우는 군사를 거둬 돌아와야 할 날이 지났는데도 쌍성총관부에 남아있는 여진족을 정벌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귀환을 미루고 있사옵니다 공민왕:(신음하더니) 인당과 유인우를 다 불러들이세요 이인복: 전장에 나가 있는 장수들이 왕명을 따르겠사옵니까 공민왕: 왕명을 따르지 않다니오. 인당과 유인우가 대체 누구의 신하란 말씀입니까 이인복: 전하. 무신의 난 이래 전장에 나간 장수들이 왕명을 거역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옵니다. 인당이 전하의 허락없이 강중경을 참하고 유인우가 쌍성총관부의 새 주인 양 행세하는 것이 다 그 때문이옵나이다 공민왕:(신음) 이인복: 전하. 지금은 전하께서 무엇보다 왕권을 공고히 하셔야 할 때이옵나이다. 그래야 문신과 무신들이 아울러 전하께 승복을 할 것이옵니다 공민왕:..... 또 한번 신음하는 공민왕. #동. 뜰 나오는 이인복. 김원명이 싱긋 웃는다. 이인복: 어째서 웃으시는가 김원명: 속이 다 시원해서 웃었습니다 이인복:(노려보는) 김원명: 전하께서 물정을 모르시고 편조만 감싸고도니 답답하지 않습니까 이인복: 나는 그런 뜻으로 올린 말씀이 아니네 쏘아부치고 가는 이인복. 김원명: 결국은 그 말씀이 그 말씀 아닙니까 이인복:(본다) 김원명: 전하께서 누구를 의지해야 하시는지 분명히 말씀을 올리신 겁니다 또 한번 빙긋 웃는 김원명. 신음하는 이인복. #압록강 부근의 군막 안(밤) 부관들과 작전 계획을 짜고 있는 최영. 인당이 화가 나서 들어온다. 인당: 개경에선 아직 아무런 전갈이 없는가 최영: 압록강 이남에 새 진지를 구축해 원의 침공에 대비하라는 왕명입니다 인당: 무슨 소릴 하는 게야. 압록강 너머로 도망친 원군을 추격해 모두 섬멸을 시켜야 할 게 아닌가 최영:.... 인당: 오늘 밤에 압록강을 건너 원의 잔당을 소탕한다 돌아서 나가려는 인당. 최영: 장군. 압록강 너머는 원의 영톱니다 인당:(돌아서며) 원의 영토이기 전에 고구려의 영토였다 최영: 압록강을 건너려면 왕명이 있어야 합니다 인당: 압록강을 건너가 원의 파사부를 공격해 점령하지 않으면 이번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할 수가 없다 최영: 압록강 이남의 원군을 모두 내쫓았으니 이미 승리를 거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인당:(미친듯이) 쌍성총관부를 공격한 유인우는 조소생의 목을 가지고 개경으로 돌아갈 판인데 나보고 빈손으로 돌아가라는 말이냐 (칼을 뽑아들고) 오늘 밤에 압록강을 건넌다. 군령을 어기는 자는 모두 참수할 것이야 미친 듯이 날뛰는 인당. #삼사의 앞 이인복: 압록강을 건넜다니 김첨수: 부사 최영이 비밀리에 전령을 보냈는데 서북면병마사 인당이 밤중에 압록강을 건너 원의 팔참을 공격해 주요 기지인 삼참을 모두 점령했다는 겁니다 이인복: 압록강을 건너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이제현의 집. 사랑방 안(밤) 이제현:(신음) 이인복: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제현: 전하께는 고하셨는가 이인복: 아직 고하지 못했습니다 이제현:(신음) 이인복: 경우에 따라선 인당이 압록강을 건너 원의 영토를 침공한 것을 전하께선 모르고 계시는 것이 좋을 듯해서 이제현: 그게 무슨 말인가 이인복: 덕성부원군과 부원배들을 처단한 지가 서너달이 지났는데도 원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어쩌면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제현: 으음 이인복: 홍건적의 난으로 시달리고 있는 원인지라 그 정도는 덮어두고 싶은 지도 모릅니다 이제현: 기철과 기륜은 기황후의 오래비들이 아닌가 이인복: 기황후는 형제를 잃는 것 보다 고려를 잃는 것이 더 두려울 것입니다. 허나 고려군이 압록강을 건너 원의 영토를 침공했다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이제현: 아무래도 전하께 고하고 자네가 연경엘 한번 다녀와야겠네 이인복: 빈 손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이제현:(본다) 이인복: 부원배들을 처단한 것은 납득시킬 수가 있습니다. 허나 원나라 영토인 파사부를 공격한 것은 이제현: 무슨 선물을 가져가야 하겠나 이인복: 전하께 인당의 목을 달라고 하십시오 이제현:(흠칫) 이인복: 인당이 왕명을 어겼으니 그 책임을 물으라 하십시오 이제현:...... 깊은 한숨. #동. 집 앞(밤) 이인복, 나온다. 기다리고 있는 김첨수. 김첨수: 우정승대감께선 뭐라고 하십니까 이인복: 자네가 쌍성총관부엘 좀 다녀와야겠네 김첨수:(긴장) 이인복: 유인우장군을 만나 서둘러 개경으로 돌아오라고 하게 김첨수: 유인우가 여진족의 본거지를 정벌하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는데 말을 듣겠습니까. 왕명이라면 몰라도 이인복: 왕명이라고 유인우가 듣겠는가. 왕명으로 환국을 재촉했다가 유인우가 듣지 않으면 전하의 체통이 크게 깎일뿐더러 결국은 유인우에게 반란의 빌미를 제공할 것이야 김첨수: 큰일입니다. 군령이 서질 않으니 이인복: 지금 같은 혼란기엔 무인들이 힘을 쓰게 돼있네. 모르긴해도 무신정권 때의 영화를 꿈꾸는 자들이 적지 않을 것일세 (신음하고) 지금 당장 떠나시게 김첨수: 예, 성산군대감 어둠 속으로 달려가는 김첨수. 또 한번 신음하는 이인복. #강안전의 복도 이제현이 서있다. 안에서 공민왕의 웃음소리. 최만생: 전하. 우정승대감께서 들어계시옵니다 공민왕:(안에서) 뫼셔라 #동. 안 들어오는 이제현. 흠칫한다. 공민왕이 신돈과 다과상을 앞에 놓고 웃고 있다. 공민왕: 어서오세요 우정승대감. 그러지 않아도 편조와 우정승대감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밖에다) 다과상을 하나 더 들여오너라. 앉으세요 이제현:(앉으며) 무슨 말씀을 나누고 계셨는지 공민왕: 우정승께선 성리학을 공부하셨다면서요 이제현:(흠칫) 공민왕:(웃으며) 공맹의 가르침을 따르자면 그 근본이 충과 효라는 것이 맞습니까? 이제현: 예, 전하 공민왕: 편조가 저보고 공맹의 도를 따르라고 합니다 이제현:(신돈을 본다) 신돈: 나라의 근본을 튼튼히 하자면 젊은 학자들을 양성해야한다고 말씀을 드렸을 뿐입니다 이제현:(웃으며) 스님이셨던 분이 유학에도 관심이 깊으신가보네 공민왕: 원의 지배를 받는 동안 임금을 가벼이 보는 풍조가 널리 퍼져 있지 않았습니까. 조정 대신들은 임금보다 제 일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고 백성들을 임금보다 권문세도가들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왕명이 바로 설 수가 없지요. 안 그렇습니까 우정승대감. 인당이 왕명을 어기고 원의 영토를 침공한 것은 나라 생각보다는 일신의 공명을 얻고자 함이 아니었겠습니까 이제현:(흠칫해서) 아시고 계셨사옵니까 공민왕: 인당의 일을 쉬쉬하고 있는 걸 잘 압니다. 미안해서겠지요. 전장에 나가 있는 장수가 왕명을 어겼으니 내 얼굴을 보기가 얼마나 미안했겠습니까 이제현: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공민왕: 성산군이 충신입니다. 자청해서 연경엘 다녀오겠다고 했다지요 이제현:(당황해서) 예, 전하 공민왕: 연경에 가면 기황후에게 곤욕을 치를 텐데 그래도 자청을 하니 성산군이 충신이 아닙니까. 충신이라? (웃으며)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입니다 (웃는) 이제현: 전하 공민왕:(웃으며) 예, 말씀을 해보세요 이제현: 성산군이 인당의 목을 달라고 합니다 공민왕:(선뜻) 줘야지요 이제현:(흠칫 본다) 공민왕: 압록강을 건넌 죄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내 허락 없이 강중경을 참수했으니 그 죄가 하나요, 왕명을 어기고 강을 건넜으니 그 죄가 둘입니다. 그러니 인당을 충신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대궐의 길 신돈, 온다. 이제현이 기다리고 서있다. 굽혀보이는 신돈. 이제현: 젊은 선비를 양성해야한다고 말씀을 올린 건 무슨 뜻인가 신돈: 소인은 다만 충과 효를 나라의 근본으로 삼으라고 말씀을 올렸을 뿐입니다 이제현:..... 신돈: 전하께는 때묻지 않은 순수한 젊은이들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이제현: 다 바꾸겠다? 신돈:....... 이제현: 그런 뜻인가 신돈: 우정승대감께서는 권신들과 부원배 중 어느 쪽이 더 위험한 무리라고 생각을 하시옵니까 이제현:..... 신돈: 원이 망하면 부원배들의 횡포는 어차피 끝이 났을 겁니다. 허나 권신들의 횡포는 이제현:(막듯이) 너무 나서지 말게 신돈: 소인은 우정승대감을 한편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현:(노해서) 한편이라니 신돈: 중국에도 오백년 가까이 계속된 왕조는 없었습니다. 아무리 튼튼한 나무를 베어 기둥을 세워도 그 뿌리가 썩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옵니까 이제현:...... 신돈: 기둥이 썩어 무너지려는 집을 전하께서 홀로 등으로 받치고 계시옵니다. 기둥을 새로 갈아주면 전하께서 그 고생을 하고 계시겠습니까 이제현:(신음) 신돈: 그럴 바엔 아예 새 집을 짓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는 게 역모입니까? 우정승대감께서도 그 생각에 괴로운 것이 아니옵니까 싱긋 웃으며 허리굽히는 신돈. 간다. 이제현:.... 움직이지 못하는 이제현. #쌍성총관부의 연회장(밤) 연회가 벌어졌다. 유인우:(김첨수에게) 자네도 한 잔 들게. 오늘은 실컷 마시고 내일은 여진족을 쫓아 두만강을 건널 것이니 김첨수:(힐끔 이자춘을 본다)..... 이자춘: 병마사대감. 패주하는 적을 끝까지 쫓는 것은 병법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유인우: 무슨 소릴 하는 게야. 차제에 여진족의 뿌리를 뽑아버려야지. 그래야 고려의 북방이 두고두고 편할 것이야 (참모들에게) 자네들은 나만 따르면 될 것이야. 여진족을 섬멸하고 우리가 요동의 새주인이 돼야 할 게 아닌가. 자, 드세 왁자지껄 술잔을 나누는 유인우와 참모들. #동. 성문. 밖(밤) 말을 타고 오는 김첨수. 따르는 이자춘과 이성계. 김첨수: 큰일입니다. 유인우가 말을 듣지 않으니 이자춘: 야심이 큰 사람입니다 김첨수:(본다) 이자춘: 여진족을 정복하고 나면 쌍성총관부를 고려에 돌려줄 마음이 없는 듯 합니다 김첨수: 그래서 내가 왔소이다 이자춘: 두만강 너머로 도망친 조소생이 여진족을 규합해서 반격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유인우에게는 오히려 그게 좋은 기회지요 김첨수: 고려 유민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자춘: 모두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유인우는 믿을 수 없으니 김첨수: 성산군께 자세히 전하겠습니다 말을 몰라 달려가는 김첨수. 바라보고 있는 이자춘과 이성계. 이성계: 아버님. 차라리 유인우의 목을 쳐버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자춘: 두고 보자. 우리에게도 좋은 기회니 싱긋 웃고 말머리를 돌리는 이자춘. 달려가는 이자춘을 바라보는 이성계. #기황후의 처소. 안 박불화: 황후폐하. 고려군이 압록강을 건너 파사부를 공격했다고 하옵나이다 기황후:(힐끔 본다) 박불화: 그래도 두고 보실 작정이십옵니까 황후폐하 기황후: 고려에서 사신이 올 것이 아니냐 박불화: 황후폐하 기황후: 고려왕이 뭐라고 변명을 하는지 두고 보자꾸나 박불화: 파사부만이 아니옵니다 황후폐하. 쌍성총관부를 점령한 고려군이 여진족을 쫓는다는 핑계로 수시로 요동 땅을 넘나들고 있다고 하옵나이다 기황후: 그러니 고려 왕의 변명을 들어보자는 게야 박불화: 덕성부원군이 비명횡사를 하였나이다. 더구나 황후폐하의 생모이신 영안왕대부인께서는 생사가 묘연하옵고 기황후: 그만큼 부귀영화를 누렸으면 됐다 박불화:(놀래서 보는) 기황후: 내가 진즉에 내 형제들을 연경으로 데려다 놓지 못한 것이 잘못이지 박불화: 황후폐하. 황후폐하께서는 아직도 고려의 국왕을 폐할 힘을 갖고 계시옵니다 기황후: 강릉대군을 폐하고 덕흥군을 고려의 국왕으로 세우란 말이냐 박불화:...... 기황후: 언젠간 홍건적이 고려를 침공할 것이야. 덕흥군 같은 자가 며칠이나 버티겠느냐.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말겠지 (싱긋 웃더니) 뭐라고 할까. 고려가 뭐라고 변명을 늘어놓을지 생각할수록 재밌지 않으냐 또 한번 빙긋 미소하는 기황후. #동. 뜰 나오는 박불화. 최유: 황후폐하께선 뭐라고 하십니까 박불화:...... 힐끔 덕흥군을 바라본다. 덕흥군:..... 헛기침하며 제법 점잖을 떠는 덕흥군. 최유: 황후폐하께서 군사를 내주시겠다고 하십니까 박불화: 기다려보시랍니다 최유: 어허 답답하기는. 황후폐하께선 뭐가 무서워서 주저를 하시는지 덕흥군: 기다려보시게. 서두를 게 뭐 있나. 어차피 고려는 내 수중에 들어있는 거나 마찬가진데 (웃으며) 안 그렇소이까 자정원사 박불화: 그렇구말구요 기가 막혀 웃는 박불화. #초선의 집. 마당(밤) 초선: 어딜 가셨다구? 박의처: 안성군을 만나러 가셨습니다 초선: 안성군이라니? 박의처: 원현스님을 풀어달라는 부탁을 하시러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초선: 혼자 가셨단 말이냐 박의처: 예, 마님 초선: 으음 박서방: 무슨 일이 있습니까요 마님 초선: 괴이한 소문이 떠돌고 있길래....박서방 박서방: 예, 마님 초선: 자네가 따라가보게. 거사님이 안성군 집에서 나오시거든 곧장 집으로 모셔오게 박서방: 예, 마님 #도성의 길(밤) 신돈, 온다. 문득 멈춘다. 신돈:..... 주위를 둘러보는 눈. 담과 지붕들. 고요하다. 신돈:..... 다시 가는 신돈. #강안전의 안(밤) 공민왕:(웃으며) 말씀을 해보세요 노국공주:......(바라보는) 공민왕: 갑자기 약속을 하라니, 무슨 약속을 하라는 건지 노국공주:.....(웃으며) 아닙니다 전하. 제가 무슨 염치로 전하께 약속을 하라 하겠습니까 공민왕: 말씀을 하세요. 무슨 약속이든 할 테니 노국공주:(밖에다) 밖에 안환관 있느냐 안도치:(밖에서) 예, 마마 노국공주: 안으로 뫼셔라 공민왕:...... 이상해서 방문을 본다. 스르륵 열리는 방문. 흑 숨이 막히는 공민왕. 방문에 곱게 단장한 혜비가 서있다. #도성의 길(밤) 오는 신돈. 인기척에 멈추는 신돈. 번뜩이는 눈. 휘익 표창 하나가 날아온다. 피하는 신돈. 기둥에 꽂히는 표창. 표창이 날아온 쪽으로 몸을 돌리는 신돈. 그러자 여기 저기서 표창이 날아온다. 몸을 솟구쳐 피하는 신돈. 순간 표창 하나가 신돈의 팔둑에 꽂힌다. 땅에 떨어져 몸을 낮추는 신돈. 팔을 움켜쥐고 사방을 둘러본다. #강안전의 안(밤) 혜비:...... 방문 앞에 서있다. 공민왕:...... 노국공주를 본다. 노국공주:...... 가만히 웃어보이는 노국공주. <신돈 32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