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 34회 <신돈> -34회 - #초선의 집. 앞 몰려드는 백성들. 공철이 우쭐대며 백성들을 막고 있다. 백성: 이보시게. 이 댁에 임금님께서 행차를 하셨다는게 사실인가 공철: 그렇소이다. 편조거사님께서 병석에 누워계시다는 소리를 들으시고 병문안을 오셨소이다 왁자지껄 감탄감탄하는 백성들. #동. 마당 마루 앞에 늘어선 최만생, 이환관 등. 박서방, 박의처 등 장정들이 들떠있다. 원현: 편조거사님을 시기하는 놈들이 어디 한둘인가. 하마터면 그놈들 손에 우리 거사님께서 비명횡사를 하실 뻔 하질 않았나. 다행히 전하께서 그 실정을 낱낱이 아시게 됐으니 앞으론 어느 놈도 우리 앞길을 막을 수가 없을 걸세 왁자지껄 떠들고 웃어대는. #동. 안방 공민왕: 얼마나 다쳤느냐 신돈:...... 고개 숙이고 빙긋 미소한다. 공민왕: 말을 해보아라 초선: 표창을 어깨에 맞았사온데 독을 바른 표창이라 겨우 목숨을 구했사옵니다 공민왕: 저런 신돈: 대단치 않사옵니다 전하 공민왕: 우리 둘 사이를 갈라 놓으려고 위협을 한 게 아니라 아예 너를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니냐 초선: 다행히 뒤따라간 사람이 있었기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어도 공민왕: 내가 어느 놈의 소행인지 꼭 밝혀내고야 말 것이다 신돈: 이렇게 전하를 다시 뵈었으니 그것으로 됐습니다 공민왕: 무슨 소릴 하는 게냐. 너를 죽이려 한 것은 나를 죽이려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놈들이 내가 하려는 일을 한사코 막으려는 것이 아니냐 신돈:......(쓸쓸한 미소) 공민왕: 앞으론 내가 널 보호해줄 것이야 신돈: 전하 공민왕:(밖에다) 밖에 최환관 있느냐 #동. 마당 최만생: 예, 전하 공민왕:(소리) 궐에서 가져온 물건을 안으로 들여오너라 최만생: 예, 전하 이환관을 눈짓한다. 이환관이 천으로 감싼 물건을 최만생에게 건넨다. #동. 안방 공민왕: 부인 초선:(숙여보인다) 공민왕: 편조를 구해준 은혜를 내가 갚을 겁니다. 소원이 있으면 말씀을 해보시게 초선: 소인같은 장사치가 바랄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마음 놓고 장사나 하면 그만이지요 공민왕: 내가 편조와 함께 하려는 일이 바로 그거외다. 만백성이 더는 권문세도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내가 잘못된 나라의 법을 다 뜯어고칠 겁니다 최만생:(밖에서) 전하 공민왕: 들어오너라 최만생이 천으로 싼 물건을 들고 들어온다. 공민왕: 풀어라 최만생: 예, 전하 천을 걷어낸다. 안에서 관모와 관복이 나온다. 흠칫하는 신돈. 싱긋 미소하는 초선. 공민왕:(최만생에게) 전민변정도감의 수장은 품계가 어찌 된다고 했느냐 최만생: 황공하오나 전하 공민왕: 묻는 말에만 대답을 하거라 최만생: 경우에 따라 다르기는 하오나 전민변정도감의 수장이면 판사가 적당할 것이옵나이다 공민왕:(신돈) 갈아입으시게 신돈: 전하 공민왕:(일어나며) 이제부턴 누구도 너를 업수히 여기지 못할 것이야 밖으로 나가는 공민왕. 신돈:..... 엎드린 채 꼼짝 않는 신돈. #동. 마당 나오는 공민왕. 엎드리는 원현, 박서방, 박의처, 장정들. 공민왕: 소활동의 우물 맛이 일품이라고 들었다. 어디 물 한모금 먹어보자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박의처. 팔꿈치로 박의처를 쿡쿡 찌르는 박서방. 얼른 부엌으로 달려가는 박의처. 공민왕: 누가 원현스님이신가 원현:(놀래서 보는) 공민왕: 앞으로 나오너라 원현:...... 숨이 막히는 원현. 앞으로 나와 납작 엎드린다. 저도 모르게 부들부들 떤다. 공민왕: 편조와는 혈육과도 같은 사이라고 들었다 원현: 아니옵니다 전하. 소인은 편조거사님의 발가락 사이의 때만도 못한 존재이옵나이다 박서방 등이 재밌다는 듯 웃는다. 원현: 왜들 웃으시는가. 편조거사님은 중생을 구하러 온 미륵 보살님이시네 화가 나서 대드는 원현. 박서방: 누가 아니라고 했나. 공연한 역정을 내시긴 한바탕 다시 웃음이 터진다. 당황해서 공민왕을 바라보는 원현. 공민왕: 편조가 부럽구나. 자네같은 충복을 두었으니 껄껄 웃는 공민왕. 더욱 당황하는 원현. 박의처가 대접에 물을 떠서 갖고 온다. 얼른 받아 마시는 공민왕. 공민왕: 과연 물 맛이 좋구나 남은 물을 단숨에 마시는 공민왕. #동. 안방 관복. 신돈:.... 지키고 선 최만생. 초선: 입으시지요 신돈:...... 초선: 전하께서 내리신 관복입니다. 망설일 것이 무엇입니까 신돈:...... 다시 관복을 내려다본다. 관복. #대궐의 길 김원명이 급히 온다. 김원명: 나 좀 보시지요 안성군대감 김용:(흠칫해서 보는) 김원명: 큰일 났습니다. 나라가 망하게 생겼어요 김용: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 김원명: 안성군께선 아무 것도 모르고 계십니까 (바싹) 전하께서 편조가 묵고 있는 사가로 병문안을 가셨다는 겁니다 김용: 그래요 김원명: 세상에 이런 해괴망칙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일국의 국왕이 천민의 병문안을 가시다니 김용:.......(눈만 꿈뻑거리는) 김원명: 안성군께선 대수롭지 않다는 기색이십니다 김용: 편조는 전하께서 연경에 계실 때부터 가깝게 지내던 인물이니 김원명: 어허,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십니까. 전하께서 편조의 사가로 병문안을 가신 것도 해괴망칙한 일이지만 그게 그걸로 끝이 나겠습니까. 전하께서 편조가 누군가의 습격을 받아 죽을 뻔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시고 크게 역정을 내시며 궐밖으로 달려나가셨다는 겁니다 김용: 으흐흠 (헛기침) 김원명: 조정에 큰 바람이 불게 생겼어요. 전하께서 편조를 죽이려 한 범인을 잡아내겠다고 아우성을 치시면 누군가 한 두 사람은 다치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 기세를 이용해 편조에게 전민변정도감을 맡기려고 하실 것이 아닙니까 김용: 그런 일이 있었소이까 김원명: 그런 일이라니오 김용: 어허 미련하기는. 편조를 죽여 무슨 이득이 있다고 (혀를 차며) 원 생각이 그렇게들 없을꼬 탄식하며 슬며시 자리를 피하는 김용. #다른 대궐의 길 김용, 온다. 슬며시 뒤돌아본다. 김원명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신음하듯 한숨을 내쉬는 김용. 김용: 이 일을 어쩐다 낑낑대는 김용. #초선의 집. 앞 관복을 입은 신돈이 나온다. 뒤따라 나오는 신돈. 백성들의 환호가 터진다. 원현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며 백성을 선동하고 있다. 신돈:..... 오히려 수줍다. 허리를 굽혀 보이고 마상의 공민왕을 바라본다. 공민왕:....... 말 위에 올라 기다리고 있다. 박서방이 말을 끌고온다. 원현이 얼른 말밑에 등을 대고 엎드린다. 와아 웃음이 터지는 백성들. #도첨의사사의 회의실 염제신: 그것 참 힐끔 이제현을 본다. 이제현: 으음 김원명: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옵니다 우정승대감. 전하께서 편조의 병문안을 가신 것을 그냥 덮어두면 백성들이 얼마나 기고만장 하겠습니까 이제현: 이제와서 어떻게 하겠소이까. 그냥 눈 감아 드리는 수밖에 염제신: 그나저나 누가 그런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는지. 그러지 않아도 편조를 두둔하지 못해 안달을 하시는 전하께 좋은 핑계 거리를 만들어 드린 게 아닙니까 김원명: 무슨 말씀이신지 염제신: 편조를 죽이려고 했다면서요 이제현: 그것도 그냥 덮어두십시다 김원명: 전하께서 덮어두시려고 하시겠습니까 이제현:(본다) 김원명: 두고보십시오.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시다가 불벼락을 맞으실 테니 염제신: 불벼락이라니 김원명: 천민이 귀족이 되고, 귀족이 천민이 되는 세상이 올 거란 말씀입니다 내지르고 밖으로 나가는 김원명. 염제신: 어허, 저, 저 사람이 (손가락질 하더니) 대감. 아무래도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닌 거 같습니다 이제현: 글쎄올습니다 염제신: 딱 부러지게 어느 한쪽을 고르세요 우정승대감 이제현:...... 한숨만. #동. 앞 김원명: 뭐라고 하셨는가 관리가 김원명의 귀에 귓속말. 김원명: 원 세상에. 편조란 자가 관복을 입고 전하를 따라 대궐로 오고 있단 말인가 #도성의 길 최만생 등의 호위를 받으며 오는 공민왕과 신돈. 환성을 지르며 그 뒤를 따르는 원현. 여기저기서 달려오는 백성들. 환하게 웃고 있는 공민왕. 공민왕:(신돈에게 몸을 기울여) 보거라. 얼마나 좋아하고들 있느냐. 내가 왜 진즉에 이 생각을 못했을꼬 웃는 공민왕. 신돈의 무거운 얼굴. 백성들에게 손을 들어보이는 공민왕. 더욱 환호하는 백성들. 공민왕:(웃으며 신돈에게) 웃거라. 그래야 백성들이 더욱 좋아할 것이야 신돈:...... 공민왕: 어서 웃으래도 편조야 신돈:..... 비로소 웃는 신돈. 환호하는 백성들. 원현이 신이 나서 춤을 덩실덩실 추며 따라간다. #초선의 집. 마당 초선:..... 마루에 서서 대궐쪽을 바라보고 있는 초선. 그런 초선을 바라보는 박의처. 박의처: 어째서 마님께서 지으신 옷을 입혀드리지 않으셨습니까. 그 위에 관복을 입으셨으면 초선: 오늘 같은 날 입혀 드리려고 지은 옷이 아니다 박의처:(이상해서 보는) 초선: 행여 거사님께서 전하의 버림을 받고 개태사로 내려가시게 되면 그 때 입혀 드리려고 지은 옷이다 활짝 웃으며 대궐 쪽을 바라보는 초선. 초선: 부디 소원을 이루십시오 합장하고 허리를 굽히는 초선. #대궐의 문. 앞 대궐의 문이 열린다. 공민왕과 신돈이 안으로 들어간다. 뒤따라 온 원현과 백성의 행렬을 막고 있는 응양군들. 궐문 안으로 들어가던 신돈이 뒤돌아본다. 손을 흔드는 원현. 신돈이 안으로 들어가고 대궐문이 닫힌다. 여전히 손을 흔들고 있는 원현. 응양군들이 백성들을 밀어내기 시작한다. 밀려나는 원현과 백성들. #선경전의 안 대신들이 모였다. 김원명: 전하께서 편조란 자에게 관복을 입혀 대궐로 데리고 들어오셨습니다. 이게 올바른 법이오이까 요란스러워진다. 김원명: 이는 전하께서 조정대신들을 제쳐놓고 편조와 정사를 논의하시겠다는 뜻이 아닙니까 또 다시 왁자지껄 떠들어댄다. 김용이 정세운의 옷깃을 슬며시 잡아당겨 구석으로 끌고간다. 김용: 자넨 어찌 할 작정인가 정세운: 으음 김용: 이번엔 전하의 의지가 확고하신 것 같네. 그러니 자네와 내가 전하를 도와드려야 하지 않겠나 정세운: 전민변정도감을 세워 양민들의 땅을 되찾아주시려는 전하의 생각은 옳으시나 굳이 그 자리에 편조를 앉히려고 하시는 것은 김용:(얼른) 물론 문제가 많지. 허나 어찌 하겠나. 전하께서 편조를 고집하시니 정세운: 조정대신들이 승복을 하겠는가 김용: 쉽지야 않겠지 정세운:(신음) 김용: 대신들의 반대에 부딪쳐 전하께서 꺾이시면 전하의 위엄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버릴 걸세. 그래서야 안 돼지. 자네와 내가 얼마나 고생을 해서 전하를 그 자리에 앉혀드렸나. 그러니 이번에도 우리가 전하를 지켜드리자는 걸세 정세운: 그렇게도 믿을 사람이 없으시단 말인가 김용: 믿을 사람이 없지 (바싹 붙어 주위를 보며) 보시게. 모두들 눈이 벌개서 지 욕심을 채우느라고 아우성들이 아닌가. 수틀리면 임금을 갈아치우자고 나설 위인들일세. 나도 물론 편조란 자가 마음에 들지 않네. 그 놈이 혼자서 깨끗한 척 그 요상한 세치 혀를 놀려 전하를 현혹시키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네. 허나 어쩌겠나. 전하를 위해서 우리가 나서는 수밖에 정세운: 나는 마음이 내키질 않네 김용: 이사람. 우리마저 등을 돌리면 전하께서 누구에게 의질 하시겠는가 정세운:(신음) 김원명: 두 분 정승께서 나서야합니다. 지금 당장 전하를 찾아 뵙고 편조의 관복을 벗긴 다음 대궐 밖으로 내치시게 만드셔야 합니다 왁자지껄. 이제현:..... 김원명: 어째서 말씀이 없으십니까 우정승대감 이제현: 전하께서 아직 아무 말씀이 없으시니 좀 더 기다려보세 김원명: 편조가 관복을 입고 입궐을 했습니다. 뭘 더 기다리신다는 건지 염제신: 우정승대감. 우리가 나섭시다 왁자지껄. 김용:(나서며) 전하께서 편조에게 벼슬을 내리는 걸 막을 수는 없소이다 김원명: 편조의 신분을 몰라서 그러십니까 김용:(비꼬듯) 옥천사 노비의 자식이라지요 웅성거리는 대신들. 김용: 허나 편조는 예삿 인물이 아닙니다 김원명: 하늘이 두쪽이 나도 그런 자와 머리를 맞대고 정사를 논의할 수는 없소이다 김용:(웃으며) 참으로 속들이 좁소이다 모두 김용을 본다. 김용: 태조대왕께서 고려를 창건하실 때 언제 신분을 따져 기용을 하셨습니까? 고려는 원래 귀천이 없는 나라였습니다. 그런 명분 가지고 왕명을 거역할 수는 없지요. 좀 더 그럴 듯한 명분을 찾으셔야지 껄껄 웃어대는 김용. 웅성대는 대신들. 이제현:...... 웃고 있는 김용을 가만히 바라본다. 급히 들어오는 이환관. 이환관: 우정승대감. 전하께서 추밀원의 승선들을 찾고 계시옵니다 (*추밀원 - 고려시대 왕명의 출납과 숙위를 맡아보던 관아) 김원명:(나서며) 전하께서 무슨 일로 승선들을 찾고 계신단 말이냐 김용: 답답하기는. 전하께서 편조를 전민변정도감의 판사로 삼으신다는 왕명을 내리려고 하시는 거겠지요 소란스러워진다. 싱긋 미소 짓는 김용. #강안전의 안 공민왕: 뭘 꾸물대고 있느냐. 승선들을 불러오라고 하질 않느냐 #동. 복도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최만생. #동. 안 공민왕:(웃으며) 이놈들이 모두 꽁무니를 빼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겠지. 어느 놈이 편조를 전민변정도감의 판사로 삼는다는 교지를 받아쓰고 싶겠느냐 신돈:..... 공민왕: 허나 염려하지 마라. 지놈들이 못쓰겠다면 내 손으로 쓸 것이니 신돈: 전하 공민왕: 아무말 하지 말거라. 네가 나 대신 칼침을 맞은 것이야 신돈:..... 공민왕: 내가 하려는 일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신돈: 전하 공민왕: 물러서면 안 된다. 니가 여기서 물러서면 이번엔 나를 죽이려고 들 것이야 신돈:.......(바라보는) 공민왕: 두고봐라. 내가 이번엔 권신들의 기를 꺾어 놓을 것이니 (웃고는) 아직도 오지 않았느냐. 대체 뭘 꾸물대고 있는 게야 경천흥:(밖에서) 전하. 신 추밀원의 판사 경천흥이옵나이다 #동. 뜰 경천흥: 전하께옵서 편조를 전민변정도감의 판사로 삼으시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옵니다 #동. 안 공민왕:...... 흠칫 밖을 보는 공민왕. 경천흥:(소리) 왕명을 거두어주시옵소서 전하 공민왕:(버럭) 판추밀원사는 안으로 들라 #동. 뜰 경천흥: 전하. 전민변정도감의 판사는 정삼품에 해당하는 관직이옵나이다. 그런 자리를 미천하기 그지없는 편조에게 하사하시려는 것은 성문을 지키는 수졸을 응양군의 대장으로 삼으시려는 것이나 다름이 없사옵나이다 공민왕:(전각문을 박차고 나오며) 이 나라 어느 법에 신분에 따라 벼슬을 제수한다고 적혀 있느냐 경천흥:....... 공민왕: 네 손으로 쓰지 못하겠다면 내 손으로 직접 쓸 것이야 안으로 달려들어가는 공민왕. #동. 안 문 열고 들어오는 공민왕. 책상에 앉더니 전교를 휘갈겨 쓴다. 그런 공민왕을 바라보는 신돈. #동. 뜰 공민왕이 나온다. 버티고 서있는 경천흥. 공민왕: 왕명이다. 편조를 전민변정도감의 판사로 삼는다고 썼으니 도첨의사사로 가져가거라 전교지를 훽 경천흥에게 던지는 공민왕. 경천흥의 가슴에 맞고 땅에 떨어지는 전교지. 그대로 꼼짝않고 서있는 경천흥. #선경전의 안 김원명: 장하다. 조정에 충신이 판추밀원사 한사람 뿐이 아닌가 술렁이는 대신들. 김원명: 우정승대감. 경천흥이 왕명의 부당함을 들어 전하와 맞서고 있다고 합니다. 보고만 계실 겁니까 이제현:...... 김원명: 우정승께선 우리와 생각이 다르신 모양이니 좌정승께서 나서시지요 염제신:(당황해서) 전하께서 내리신 전교를 받아들이지 않은 전례가 있는가 김원명: 일찍이 이런 전교를 내린 임금이 계셨습니까? 정세운: 말씀이 과하시네 김원명: 과한 것은 전하의 전교지요 정세운:(버럭) 왕명의 부당함을 아뢸 수는 있으나 왕명을 거역할 수는 없는 것일세 김원명:(대신들에게) 경천흥이 외롭게 전하의 부당하심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도와주지 않으면 무슨 일을 당할 지 모릅니다 김용:(슬며시 나서며) 설마하니 전하께서 경천흥을 죽이기야 하시겠나 웅성거리는 대신들. #강안전의 뜰 땅에 떨어진 전교지. 그 앞에 무릎 꿇고 버티고 있는 경천흥. #동. 안 공민왕: 아직도 밖에 있느냐 최만생: 예, 전하 공민왕:(웃으며) 참으로 끈질긴 자가 아니냐 신돈: 전하. 이쯤에서 그만 물러나시지요 공민왕:(정색하고) 아직도 내 뜻을 모르겠느냐 신돈:..... 공민왕: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정차 내가 나라의 제도를 다 바꾸겠다고 하면 어디 경천흥 뿐이겠느냐. 조정 대신들이 다 들고 일어날 것이야 신돈:.... 공민왕: 벌써부터 그런 마음 약한 소릴 하면 내가 누굴 믿고 이 일을 하겠느냐 신돈:.... 공민왕을 바라보는 신돈의 눈에 감격의 빛이 스치고 지나간다. #도첨의사사. 회의실 염제신: 날이 어두워지고 있소이다 이제현:..... 염제신: 그만 대감께서 중재에 나서시는 것이 이제현:.... 버티고 앉은. 염제신: 이럴 때 성산군이 있었으면 속시원히 일을 해결했을 것을 한숨 내쉬며 이제현의 눈치를 본다. #강안전의 뜰(밤) 여전히 무릎 꿇고 앉아 버티고 있는 경천흥. 김용이 온다. 경천흥을 보더니 혀를 끌끌 찬다. #곤성전의 안(밤) 노국공주: 전하께서는 어찌하고 계시느냐 안도치: 편조와 강안전에 들어계시옵니다 노국공주: 판추밀원사가 아직도 왕명을 거역하고 있단 말이냐 안도치: 예, 마마 노국공주: 조정대신들은 안도치: 물러날 기세가 없사옵니다 노국공주: 전하를 거들고 나서는 대신이 한 사람도 없단 말이냐 안도치: 예, 마마 노국공주:(가만히 한숨) 덕녕공주: 중전께서 전하께 말씀을 올리시지요 노국공주:...... 덕녕공주: 전하께서 너무 급하십니다 노국공주: 급하다니오 덕녕공주: 조정대신들을 다 적으로 돌리고 전하께서 왕위를 보존하실 수는 없습니다 노국공주: 전하께선 그 동안 부원배들의 핍박을 받아 하루도 편히 지내신 날이 없습니다. 헌데 부원배들을 다 처단하고 나니 이제는 조정대신들이 반기를 들고 나서지 않습니까 덕녕공주: 역대 선왕들이 조정대신들의 눈치를 본 것이 금상보다 못해서 그랬겠습니까 노국공주:..... 덕녕공주: 때로는 전하께서도 신하들에게 허리를 굽히셔야 합니다. 그래야 그 자리를 보존하실 수가 있습니다 노국공주: 전하께서는 허리를 굽힐 만큼 굽히시고 사셨습니다. 이번만은 누가 이 나라의 주인인지 분명히 하셔야지요 덕녕공주: 백성들의 편만 드시니 하는 말씀이지요 노국공주: 저는 백성들이 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말씀을 드린 겁니다 덕녕공주:...... 노국공주: 예. 이 나라의 주인은 백성들이구말구요. 그러니 편조를 내세워 저들을 다 누르려고 하시는 겁니다 가만히 고개 돌리는 노국공주. 그런 노국공주를 바라보며 가만히 한숨을 내쉬는 덕녕공주. #강안전의 안(밤) 김용:(웃으며 신돈에게) 참으로 대단하시네 신돈:.... 김용: 이쯤에서 자네가 한발 물러서는 것이 어떻겠는가 공민왕: 그런 말을 하려고 드셨는가 김용: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전하. 다만 보고 있기가 하도 딱한 지라 공민왕: 내가 편조를 전민변정도감의 판사로 삼는다고 하니까 조정대신들이 모두 뜨끔했을 것이야. 그 중에는 편조를 죽이려던 자도 끼어있을 것이니 김용: 설마하니 편조를 죽이려던 자가 조정대신들 중에 있겠나이까 공민왕: 허면 누가 편조를 죽이려고 했겠소이까 김용:(웃으며) 전하. 옛말에 강한 것이 먼저 부러지고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하였나이다 공민왕: 그래서요 김용: 이렇게 하시지요 신돈을 힐끔 본다. 신돈:...... 공민왕: 말씀을 해보세요 김용: 전민변정도감을 세우는 일은 시급한 일이 아니옵니다. 하오니 우선 편조에게 다른 관직을 제수하시고 공민왕: 그럴 수는 없소이다. 내가 편조에게 벼슬을 내리고 싶어서 이러는 것이 아니고 백성들에게 땅을 돌려주고 싶은 거외다 김용:......(신음) 하오시면 전민변정도감을 세우시되 그 수장을 조정대신들 가운데서 고르시고 편조에게는 공민왕: 그 일을 공정하게 할 사람은 편조 밖에는 없습니다 김용:(눈 부릅뜨고) 전하. 조정대신들이 모두 반대하면 전하께서는 그 일을 하실 수가 없사옵니다 공민왕: 다 물러나라고 하세요 김용:(흠칫) 공민왕: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편조와 함께 이 일을 할 겁니다 김용:.....(신음하며 신돈을 본다) 신돈:......(싱긋) 김용:(한숨 쉬며) 전하의 뜻이 정 그러시다면 공민왕: 안성군도 물러날 겁니까 김용: 그럴리가요. 소신은 전하께서 불 속으로 뛰어들라고 하셔도 한점 망설임 없이 그리 할 것이옵니다 공민왕: 고맙소이다 김용:(신돈에게) 성은이 하해와도 같으이. 전하께서 자넬 그렇게 믿고 계시니 자네가 부럽구만 웃어대는 김용. 순간 번뜩이는 신돈의 눈빛. 움칠해서 그 눈을 피하는 김용. #영수전의 안(밤) 명덕태후: 저런 고얀 일이 있나. 노비의 자식이 주제 넘게 정삼품 벼슬을 탐하고 있단 말이냐 김원명: 그 자가 노리는 것이 어찌 정삼품 벼슬이겠나이까 명덕태후: 허면 김원명: 조정을 한바탕 뒤엎어 놓겠다는 것이겠지요 명덕태후: 그게 무슨 말이냐 김원명: 편조란 자가 기회 있을 때마다 천민이 춤을 추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다닌다고 하옵나이다 명덕태후: 천민이 춤을 추다니 김원명: 제 놈이 임금이 되겠다는 소리가 아니옵니까 명덕태후: 원, 저, 저런 #도첨의사사. 회의실(밤) 염제신: 그래 전하께선 뭐라고 하시더이까 김용: 일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염제신: 심상치가 않다니오 김용:(이제현에게) 우정승대감, 전하께선 편조뿐만 아니라 조정의 요직에 두루두루 인재를 골라 기용을 하실 작정이신가 봅니다 염제신: 소나 개나 막 골라 쓰시겠다는 겁니까 김용: 그런 셈이지요. 노비의 자식을 정삼품에 기용하신 전하께서 누군들 마다하시겠습니까 염제신: 안 될 소리 김용: 지금 당장 우정승께서 안 나서시면 전하께서 큰 봉변을 당하시겠어요 염제신: 옳거니. 소나 개나 다 쓰시겠다는데 가만히 보고 있을 조정 대신이 누가 있겠나 김용: 어찌하시겠습니까 우정승대감 이제현:...... 깊은 시름. #강안전의 뜰(밤) 이제현, 온다. 이환관 달려온다. 이환관: 어서오십시오 우정승대감 이제현:..... 무릎 꿇고 있는 경천흥을 본다. 그 앞에 놓여있는 전교지. 이제현: 전하께서 내리신 전교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거두시게 경천흥:...... 이제현: 어허 마지못해 전교지를 집어 받드는 경천흥. 이제현: 자넨 물러가 있게 경천흥:(꼼짝 않는) 이제현:(한숨 쉬더니) 이리 내시게 손 내미는 이제현. 신음하는 경천흥. #동. 안(밤) 공민왕에게 큰 절을 올리는 이제현. 공민왕: 그냥 앉으시래두요 이제현:..... 아랑곳 없이 절하고 전교지를 앞에 놓는다. 공민왕: 그게 뭡니까 이제현: 전하. 전하께서 신하를 골라 쓰시는 데 따로 법이 있다고 할 수는 없나이다 공민왕:........ 힐끔 신돈을 본다. 신돈:.....(숙여보이는) 이제현: 하오나 조정대신들이 다 반대 하는 일을 하실 수는 없사옵니다 공민왕: 그래요 이제현: 이렇게 하시지요 전하. 우선 전민변정도감을 세우시옵소서. 그 수장은 부족하오나 소신이 맡겠사옵니다 공민왕: 내가 편조를 그 자리에 앉히려는 것은 이제현: 소신이 만사를 편조와 상의하여 할 것이옵나이다 공민왕:........ 흠칫해서 신돈을 본다. 또 한번 숙여보이는 신돈. 이제현: 전하. 소신의 충정을 굽어 살피시옵소서 엎드리는 이제현. 흐느끼듯 그 어깨가 떨리고 있다. #대궐의 문. 앞 원현, 박서방, 공철과 백성들. 대궐문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대궐문이 열린다. 신돈이 나온다. 환호성을 지르는 백성들. 대궐문이 닫힌다. 웃으며 서있는 신돈. 관복을 벗었다. 순간 조용해지는 백성들. 원현:(달려가더니) 관복은 어찌하고 다시 누더기 옷을 걸치셨습니까 신돈: 염려하지 마라. 우리 뜻이 다 이루어졌으니 원현:(미심쩍어 보는) 신돈:(백성들에게) 전하께서 전민변정도감을 세워 백성들의 억울한 사정을 다 들어주시기로 하였소이다 다시 함성이 터지며 덩실덩실 춤을 추는 백성들. 웃으며 바라보고 서있는 신돈. #도성의 길(밤) 환호하는 백성들. 여기저기서 불꽃이 터진다. #초선의 집. 마당(밤) 장정들에게 국밥을 먹이고 있다. 신바람이 난 박서방과 공철. 시무룩해서 보고 있는 원현. 공철: 소원성취를 했는데 원현스님은 어째서 시무룩하시오 원현: 나는 관복을 입고 계신 편조거사님을 보고 싶었네 박서방: 권신들에게 뺏긴 땅을 다 돌려주신다는데 뭐가 걱정인가. 자, 마시세 왁자지껄 먹고 마시는 장정들. 여전히 시무룩한 원현. #동. 안방(밤) 상인들과 마주앉은 초선. 상인1: 뭐든지 편조거사님을 통하면 다 이뤄지게 됐습니다 초선:(미소) 상인2: 우선 그 놈의 가구소부터 폐하라고 하십시오. 그 놈의 등살에 어디 장사나 해먹겠습니까 상인1: 가구소 뿐인가. 앞으론 권신들 눈치 볼 거 없이 장사판을 벌이자고 왁자지껄 마시는 상인들. 바라보는 초선의 미소. #곤성전의 안(밤) 시립한 안도치와 김상궁. 마주앉은 공민왕과 노국공주. 노국공주: 잘하셨습니다 전하 공민왕:.....(싱긋) 노국공주: 신첩은 전하께서 물러나실까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릅니다 공민왕: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우정승께서 약속을 지키실런지 노국공주: 생각이 깊으신 분이니 미봉책을 쓴 것은 아닐 겁니다 공민왕: 허긴 그렇습니다. 우정승이 약속을 안 지키면 그 때 가서 다시 편조에게 벼슬을 내리면 그만이지요 웃는 공민왕. #이제현의 집. 전경(밤) 고요하다. 이제현:(소리) 말씀을 해보시게 #동. 사랑방 안(밤) 신돈:..... 이제현:.... 신돈: 태조태왕께서 고려를 창건하셨을 때 백성이 다 편안하였습니다. 저마다 경작할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지어 배불리 먹었습니다. 허나 세월이 가면서 권문세도가들이 백성들의 땅을 조금씩 거둬들이더니 어느새 백성들은 땅을 잃고 권문세도가들의 소작농으로 전락을 하였습니다 이제현:....... 신돈: 허나 지금의 실정은 어떻습니까. 소작농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고 모두 권문세도가들의 노비로 전락을 하였습니다 이제현:(가만히 끄덕이는) 신돈: 경작할 땅은 고사하고 자식을 낳아도 대를 이어 노비의 신세를 면할 수 없으니 이들이 무슨 흥이 나서 전하와 나라에 충성을 바치겠습니까. 고려가 팔십 년 넘게 원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팔자거니 체념하고 지낸 것이 다 그런 까닭이옵니다 이제현: 땅만 돌려주면 다 해결이 되겠소이까 신돈: 노비 문서도 폐해야지요 이제현:...... 신돈: 노비는 주인을 섬기지 나라를 섬기지 않습니다. 장차 나라에 환란이 생기면 누가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해 싸우겠습니까. 불이 나도 주인의 우환이요, 외침이 있어도 나라의 우환이올 뿐이지요 이제현: 그걸 하루 아침에 다 바꿀 수가 있겠소이까. 차츰 차츰 해 나가야지 신돈: 하루 아침에 바꾸지 않으면 천년이 지나도 바꿀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현:....... 신돈: 나라의 재정이 빈약한 것이 무슨 까닭입니까? 권문세도가들이 지방의 토호들과 짜고 세금을 거둬 제 배를 먼저 불리고 그래도 남는 것이 있으면 나라에 바치니 나라는 점점 가난해지고 권문세도가만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까 이제현:(신음) 신돈: 먼저 권문세도가들이 전하를 멸시하는 버릇부터 고쳐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나라의 제도가 바로 서야 합니다. 능력이 없어도 권문세도가에 태어나면 조정에 나가 벼슬을 이어받고 자손대대로 특권을 이어가는 제도부터 바로 잡아야지요. 불교도 그렇습니다. 명문가의 자제가 아니면 구족계를 받을 수 없으니 중이 나라와 중생보다는 먼저 가문의 이익을 생각하고 취하는 것입니다 이제현:(신음) 신돈: 이걸 바로 잡기 위해서는 세습을 끊고 과거를 통해 새로운 인재를 발굴해야 합니다. 신분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기용해야 가문보다는 먼저 나라를 생각하는 신하들이 늘어날 것이 아닙니까 이제현:(웃으며) 참으로 할 일이 많으시이 신돈: 원의 국력이 날로 쇠해가고 있습니다. 머잖아 중원이 요동을 칠 것입니다. 쌍성총관부를 수복하고 원의 파사부를 공략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지금의 원의 형세를 보면 그 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제현:(정새하고 본다) 신돈: 무인들은 어떻습니까. 전장에 나간 장수들이 왕명을 거역하는 일이 다반삽니다. 군권만 손에 쥐면 하루아침에 대궐을 뒤집어 놓을 수 있다는 무신들의 방자함이 아직도 남아 있는 까닭이 아닙니까. 조일신의 난이 그 좋은 본보기지요. 원의 국력이 쇠하면 북방의 야만족과 왜구들이 더욱 기승을 부릴 텐데 무신들의 오만함을 무엇으로 다스릴 수가 있겠습니까 이제현:(한숨) 신돈: 지금의 제도로는 안 됩니다. 전하께서 나라를 새로 창건하신다는 각오로 다 새롭게 하지 않으면 고려의 명운은 그것으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이제현:...... 신돈: 저를 도와주십시오 우정승대감. 대감께서고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제현: 생각이 같다니 신돈:...... 이제현: 나는 나라의 근본은 불교가 아니라 공맹의 도리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세 신돈: 충과 효가 공맹의 근본이 아니옵니까 이제현:..... 신돈: 근본이 어찌 됐든 그건 새로운 생각입니다. 새로운 생각이 아니면 고려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현:..... 지긋이 신돈을 바라본다. 이글이글 타고 있는 신돈의 눈빛. #기황후의 처소. 전경 -. #동. 안 기황후:(본다) 이인복이 꼿꼿이 서있다. 박불화: 허리를 굽히시오 이인복:......(비로소 굽힌다) 박불화: 아뢰시게 이인복: 서북면병마사 인당이 국왕전하의 어명을 어기고 압록강을 건너 원의 영토인 파사부를 공격하였나이다. 이에 군령을 어긴 인당의 목을 베어왔사오며, 파사부와 팔참에 머물고 있던 고려군은 이미 압록강 이남으로 다 물렸사옵나이다 박불화:(말을 자르며) 순서가 잘못되셨소이다. 황후폐하의 친정 식구들을 모두 참살한 그 죄부터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 아니오 이인복: 황후폐하, 영안왕대부인께선 무사하시니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기황후:....... 이인복: 대부인마님은 안전한 곳에 피신을 시켜놓았사옵나이다. 원하신다면, 대부인마님을 안전하게 연경까지 모셔다 드리겠나이다 기황후: 기씨 집안의 씨를 말려놓고는 어머니를 살려두었으니 고마워해라? 이인복:...... 기황후:(웃고) 그래, 내 오래비를 죽인 이유나 한번 들어보자 이인복:(보더니) 덕성부원군의 죄과는 황후폐하께서도 이미 다 알고 계실 것이 아니옵니까? 제가 이 자리서 일일이 다 열거를 하올까요? 박불화: 이 놈 무엄하구나! 어디서 황후폐하를 농락하려는 게냐 이인복:(지지 않고) 덕성부원군을 죽인 이유를 들자면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라기에 드리는 말씀이외다. 원나라의 권세를 믿고 전하를 능멸한 죄, 사병을 양성해 사직을 위태롭게 한 죄, 정방을 만들어 인사권을 휘두른 죄, 백성들의 토지를 착취하고 재산을 갈취한 죄..... 박불화: 이 놈. 그 입을 닥치지 못하겠느냐 기황후: 내버려두어라 박불화:(본다) 기황후: 어차피 죽기를 각오하고 왔을 것이니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게 내버려두어라 (이인복에게) 내 말이 틀렸느냐 이인복: 그러하옵나이다. 소인이 개경을 떠날 때 이미 노모에게 작별인사를 드렸나이다 기황후: 그랬겠지 (싱긋 웃는다) 이인복: 황후폐하. 우리 국왕 전하께서는 원을 적으로 삼으려는 것이 아니옵니다 박불화:(나서려는데) 기황후: 그런 자가 내 오래비들을 다 죽이고 원의 영토를 침범했단 말이냐 이인복: 덕성부원군의 죄는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고 쌍성총관부는 원래 고려의 영토였나이다 기황후: 이미 죽은 내 오래비들을 살려내라고는 하지 않겠다. 허나 쌍성총관부는 제자리에 돌려놔야 할 것이야 이인볻: 그렇게는 못하옵나이다 황후폐하 기황후: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내가 고려왕을 폐하고 덕흥군을 그 자리에 앉힐 것이야 이인복: 고려의 백성들을 다 죽이실 작정입니까 기황후: 내가 못할 것 같으냐 이인복: 황후폐하께서는 고려인이십니다 기황후:(박불화에게) 저자를 끌어내라. 내가 황제폐하의 윤허를 받아 고려에 군사를 보낼 때 저자의 목을 베어 덕흥군이 들고 가게 할 것이야 박불화가 눈짓한다. 환관들이 달려들어 이인복을 끌고 간다. #동. 뜰 환관들에게 끌려나오는 이인복. 덕흥군과 최유가 기다리고 있다. 이인복: 이 놈. 니 놈이 언감생심 고려왕이 되기를 바라느냐 덕흥군이 얼른 최유의 뒤에 숨는다. 이인복: 니 놈이 원의 주구가 되어 고려로 돌아가면 백성들이 니 놈을 갈갈이 찢어 죽여 그 피와 고기를 먹고 마실 것이야 끌려가는 이인복. 덜덜 떠는 덕흥군. 최유: 뭐가 무서워서 이러십니까. 가만히 앉아 있어도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 오게 생겼는데 덕흥군: 강릉대군이 순순히 왕위를 내놓겠는가 최유: 안 내놓고 배길 재간이 없지요. 대원제국의 황후폐하께서 덕흥군대감을 고려 왕으로 삼으시겠다는데 웃어대는 최유. #동. 안 기황후:..... 박불화: 잘하셨습니다 황후폐하. 덕흥군을 고려 왕으로 삼으시면 후환이 없을 것이옵나이다 기황후:....... 가만히 한숨. 박불화: 심려치 마시옵소서 황후폐하. 웃으며 기황후의 눈치를 살피는 박불화. 깊은 시름에 잠긴 기황후. #개태사의 마당 덕운, 뛰어들어온다. 덕운: 스님. 스님. 큰스님 곰순네:(달려오며) 아이고 조용히 좀 해요. 큰스님 잠드셨는데 깨우지말고 덕운:(뭐가 좋은지 히히덕거리며 웃는다) 곰순네: 오늘은 마을 내려가서 뭘 얻어먹고 왔길래 헤헤벌죽 하시누 덕운: 임금님이 편조에게 큰 벼슬을 내리셨대요 (웃으며) 자나깨나 내 걱정이 뭔지 알우 곰순네: 공술 얻어 마실 궁리나 하겠지 덕운스님이 무슨 걱정이 있누 덕운: 편조가 개태사로 돌아오면 큰스님께서 편조에게 이 절을 주실 게 아니우. 헌데 편조가 출세를 했다니 앞으론 두 다리 쭉 뻗고 자게 생겼우 (웃더니) 스님. 큰스님 방으로 달려간다. 기막혀 혀를 차는 곰순네. #동. 큰스님의 방 안 문 열고, 덕운: 스님. 주무세요 들여다본다. 쪼구리고 고개를 푹 떨구고 앉아있는 큰스님. 덕운: 편조가 큰 벼슬을 받았대요 스님 큰스님:....... 고개 숙인채 꼼짝 않는다. #동. 마당 방문 닫는 덕운.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동. 방 안 큰스님:...... 앉은 채로 꼬꾸라지듯 방바닥에 머리를 박는 큰스님. #선경전의 안 공민왕:.... 대신들을 둘러보는 공민왕. 어색한 대신들. 단 아래 신돈이 서있다. 공민왕: 과인이 전민변정도감을 세워 그 일을 우정승에게 맡겼습니다 술렁이는 대신들. 공민왕: 달리 하실 말씀이 계십니까 염제신: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김원명 등이 마지못해 복창한다. 공민왕: 그 동안 권문세도가들에게 강제로 빼앗긴 땅을 모두 찾아 백성들에게 돌려줄 것입니다. 또한 노비로 삼은 양민의 신원을 모두 풀어줄 것이니 그리들 아세요 염제신: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모두 따라한다. 공민왕: 또한 이 일을 과인이 편조로 하여금 우정승을 돕게 하였습니다 술렁이는 대신들. 공민왕: 편조에게 합당한 벼슬을 내려야 하겠으나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간하는 사람이 많으니 편조에게 내리려던 전민변정도감의 판사직을 거두어들이겠으나 과인이 편조에게 억울한 백성들의 사정을 들어 이 일을 행할 것입니다 더욱 술렁이는 대신들. 공민왕: 내가 편조고, 편조가 또한 나와 같소이다. 궐 안에서나 궐 밖에서나 편조를 나를 대하듯 하셔야 할 것입니다 염제신:(놀래서) 전하 공민왕:(밖에다) 동북면 병마사 유인우와 쌍성총관부의 천호 이자춘을 들라고 해라 웅성거리는 대신들. 유인우와 이자춘, 이성계가 들어온다. 공민왕: 내가 왕명을 어긴 서북면 병마사 인당의 목을 베어 군령을 세웠다. 너는 어찌하여 쌍성총관부의 고려 유민과 귀화한 여진족을 위무하라는 어명을 어기고 그들을 적으로 만들었느냐 유인우:.... 당황해서 둘러보는 유인우. 공민왕: 저자를 당장 끌어내어 왕명을 어긴 죄로 참수하라 밖에서 응양군들이 달려들어와 유인우를 끌고나간다. 얼결에 끌려나가는 유인우. 공민왕의 기세에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공민왕이 용상에서 내려온다. 공민왕: 이자춘이라고 했느냐 이자춘: 예, 전하 공민왕:(이자춘의 두 손을 잡아쥐며) 자네 덕분에 내가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쌍성총관부를 수복하였다 이자춘: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공민왕: 네가 이성계냐 이성계:(굽히는) 공민왕: 네 용맹은 내가 익히 들었다 이자춘: 과분하신 칭찬이시옵나이다. 아직 미거하기 짝이 없는 공민왕:(용상으로 오르며) 이자춘을 대중대부 사복경으로 삼는다. 또한 도성에 집 한 채를 내려 이자춘의 충정을 기라고자 하니 그리 행하라 경천흥: 황공하오나 전하, 불가하옵나이다 공민왕:(싱긋 웃으며) 이번엔 또 뭐가 잘못됐다는 겁니까 경천흥: 항복한 외방의 장수는 도성 안에서 살 수가 없나이다 공민왕: 그런 법이 있었소이까 경천흥: 황공하옵나이다 전하 공민왕: 하면 도성 밖에 집 한 채를 마련해주면 될 것이 아닙니까 경천흥: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조아리는 경천흥. 싱긋 웃는 공민왕. 경천흥: 황공하오나 전하, 선경전은 조정대신들이 전하를 뫼시고 막중한 국사를 논하는 자리이옵나이다. 그런 자리에 관복이 아닌 누더기를 걸친 공민왕: 누더기라고 했느냐. 내 눈엔 경들이 입고 있는 옷이 누더기로 보입니다 #전민변정도감의 앞 현판이 걸렸다. 공민왕:(바라보더니) 마음에 드느냐 신돈:(숙이는) 공민왕: 추상같이 하거라.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눈물을 흘리는 백성이 있어서는 안 되느라 신돈: 예, 전하 뒤따라 온 대신들을 돌아보는 공민왕. 헛기침을 해대는 대신들. 공민왕:(신돈에게) 전장에 나가 있는 장수는 급한 일이 있으면 먼저 행하고 나중에 복명을 해도 괜찮다고 했다 (경천흥에게) 내 말이 틀렸소이까 경천흥: 맞사옵나이다 전하 공민왕:(신돈에게) 백성들의 억울한 사정을 듣다 일이 급박하면 선참후계하듯 먼저 죄를 묻고 나중에 고하거라 사색이 되는 대신들. 공민왕: 들어가십시다 우정승대감 앞서 들어가는 공민왕. 이제현이 따르고, 마지못해 따르는 염제신. 신돈:......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들을 손님 맞듯 일일이 허리를 굽혀 맞는 신돈. 김용:(지나가다) 어째 으스스하이. 안에 염라대왕이라도 모셔놨다 웃어대더니 헛기침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허리굽힌 채 싱긋 웃는 신돈. 허리를 편다. 마당이 텅 비었다. 신돈:...... 현판을 바라본다. ‘전민변정도감’ 신돈:...... 활짝 웃는 신돈. <신돈 34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