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 42회 <신돈> -42회- #강안전의 뜰(밤) 피묻은 칼을 들고 정세운의 시신을 에워싼 안우, 이방실, 김득배. 공민왕의 서찰을 두 손으로 받쳐 든 형상을 하고 죽은 정세운. 마치 산사람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있다. 흑 숨을 들이마시는 김득배. 김득배: 우리가 경솔했소 안우: 그게 무슨 말이오. 우린 왕명을 따랐을 뿐이오 김득배: 생각해보시오. 정세운 같은 충직한 사람이 역모를 꾸몄다는 게.... 안우: 허면 이 밀지가 가짜란 말이오 정세운이 받쳐들고 있는 서찰을 가리킨다. 이방실: 분명 국왕전하의 필체외다 안우:..... 서찰을 집어 들려던 안우, 흠칫 놀란다. 두 눈을 부릅 뜬 정세운. 고개를 돌리고 서찰을 집는 안우. 그러나 서찰을 빼낼 수가 없다. 정세운의 손을 피려는 안우. 김득배: 조심하시오. 서찰이 훼손되면 우리가 살 길이 없소이다 안우, 조심스럽게 서찰을 정세운의 손에서 빼낸다. 그러자 허공에 들려있던 정세운의 두 손이 마치 산 사람의 손처럼 부르르 떨린다. 놀래서 물러서는 김득배와 이방실. 다시 칼을 겨누는 안우. 안우:........ 정세운의 두 손을 가슴에 얹어준다. 전각 뒤에서 그 모양을 훔쳐보고 있는 김림. 살금 빠져나간다. #대궐의 문. 안(밤) 달려오는 김림. 말 위에 오르더니, 김림: 대궐 문을 열어라 궐 문을 여는 군졸들. #동. 앞(밤) 김림이 말을 몰아 달려간다. #동. 병부의 회의실 안(밤) 서찰을 읽어보고 있는 안우. 초조하게 바라보는 안우와 김득배. 이방실:(신음) 김득배: 뭐가 잘못됐소이까 안우: 내가 이 서찰을 가지고 복주로 내려가 전하께 이 일을 고해야겠소. 두 분 장군께선 총병관 장군의 시신을 잘 보관해뒀다가 복주로 이송해오시오 김득배: 개경은 누가 지키고 우리 세 사람이 다 복주로 내려간단 말이오 안우: 전령을 보내 최영을 오라고 하시오 서찰을 잘 접어서 품에 넣는 안우. 안우: 아무래도 우리가.....김용에게 속은 것 같소이다 놀래서 마주보는 김득배와 이방실. #복주 행재소. 사랑방 안 앞에 놓인 원나라 옥새와 금보, 각종 금은 동인들. 환한 얼굴의 공민왕과 노국공주. 홍언박: 경하드리옵나이다 전하. 원의 옥새를 수중에 넣으셨으니 전하께서 천하를 수중에 넣으신 것이나 다름이 없사옵나이다 공민왕: 원나라 황실이 어지간히 급했나 봅니다. 홍건적의 기세에 옥새를 두고 도망들을 쳤으니 김원명: 황공하오나 전하, 그것이 원나라 황실에서 쓰는 옥새겠나이까 홍언박: 내가 살펴보니 분명 원의 황제가 쓰던 옥새더이다 김원명: 으흠 홍언박: 전하, 총병관 정세운이 홍건적에게서 노획한 금은보화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라고 하옵나이다 김원명: 다 돌려줘야지요 이인복: 돌려주다니. 누군한테 말이오 김원명: 홍건적이 원나라에서 강탈한 것이니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이인복: 그 동안 원이 고려에서 강탈해 간 것이 얼만데 그런 소릴 하시오 김원명: 전하. 원에 옥새를 돌려주시지요. 원과 화친할 좋은 기회가 아니옵니까 김용:(소리) 화친이라니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김용. 모두 놀래서 본다. 김용: 내가 그놈들을 모두 죽여도 시원치 않거늘 (엎드리며) 전하, 정세운이 참살을 당했다고 하옵나이다 흐느끼는 김용. 공민왕: 방금 뭐라고 했소이까 김용:(통곡) 공민왕: 정세운이 죽었다고 했소이까 김용: 전하, 홍건적을 몰아내고 개경을 수복한 직후 전리품을 두고 쟁탈전이 벌어졌다고 하옵나이다 홍언박: 원, 저런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있나 김용: 정세운이 그 꼴을 보고 노하여 모두 군법으로 다스리겠다고 하자 저들이 작당하여 정세운을 죽였다고 하옵나이다 공민왕: 누구 누굽니까. 정세운을 죽인 자들이 김용:(흐느끼며 눈치만 보는) 이인복: 최영과 이성계도 합세를 했단 말입니까 김용: 내가 그걸 어찌 알겠소 공민왕: 정세운을 죽인 자들을 모두 잡아들이세요. 내가 그놈들을 죽여 정세운의 원혼을 달랠 겁니다 김용: 황공하오나 전하, 사태가 만만치 않사옵니다. 정세운을 죽인 자들이 도성문을 굳게 잠그고 머잖아 연경에 있는 덕흥군이 고려의 새 국왕으로 온다고 떠들고 다닌다고 하옵나이다 홍언박: 이런 고얀 놈들이 있나 김원명: 허면 무신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게 아닙니까 경천흥: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전리품에 눈이 어두워 총병관을 죽이고 나서 문책을 당할 것이 두려워 김원명: 그러니 하는 소립니다. 살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할 것이 아닙니까 김용: 전하. 신이 순군부의 심복들을 골라 개경으로 보냈나이다. 개경의 사정을 자세히 알아본 연후에 대책을 세울 것이니 잠시만 기다려주시옵소서 (흐느끼며) 정세운이 죽다니. 신은 믿을 수가 없나이다 전하 통곡하는 김용. #선경전의 뜰 최영이 온다. 전각 위에서 서성거리는 김득배와 이방실. 김득배: 어서오시게 최장군 최영: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총병관께서 변을 당하셨다니 김득배: 전하께서 정세운이 역모를 꾸미고 있으니 지체없이 죽이라는 밀지를 보내셨네 최영: 역모라니오. 총병관 대감은 전하의 심복 중의 심복이 아닙니까 이방실: 왕명인 걸 어찌하나 최영:(신음) 김득배: 안우 장군이 전하의 밀지를 가지고 복주 행재소로 내려갔네. 곧 진위가 파악될 걸세. 이장군과 나는 총병관의 시신을 가지고 복주로 내려갈 것이니 최장군께서 개경을 지켜주시게 최영: 총병관 대감의 시신은 어디 있소이까 김득배: 이리오시게 선경전 안으로 들어간다. #동. 안 김득배를 따라 들어오는 최영. 정세운의 시신이 대 위에 반듯이 놓여있다. 최영:(신음) 김득배:(고개 돌리며) 아무리 눈을 감겨드리려고 해도 감겨지지가 않네 두 눈을 부릅뜬 정세운의 시신. 최영:..... 또 한번 신음하는 최영. #복주 행재소. 사랑방 안 노국공주: 김용의 말을 믿으십니까 공민왕:(신음) 노국공주: 따로 개경에 사람을 보내 자세히 알아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공민왕: 이색을 부르라 안도치: 예, 전하 #순군만호의 집무실. 마당 안으로 들어오는 김용. 초조하게 서성이는 김림. 김림: 숙부님, 큰 일 났습니다 손으로 입을 가리며 주위를 살피는 김용. #행재소. 사랑방 안 공민왕: 개경으로 올라가서 자세한 사정을 알아오너라 이색: 예, 전하 공민왕: 안성군 모르게 다녀와야 한다 이색: 예, 전하 #순군만호의 집무실. 안 김용:(웃으며) 정세운을 죽이고 나서야 의심을 하더란 말이지? 김림: 예, 숙부님. 아무래도 눈치를 챈 것 같습니다 김용: 어리석은 놈들. 설마하니 전하께서 정세운을 죽이라고 했을까. 하나밖에 남지 않은 전하의 충복이거늘 웃어대더니 가까이 오라는 손짓. 김림이 가까이 온다. 김용: 필경 세 놈 중 한 놈이 전하의 밀지를 가지고 복주로 내려오고 있을 것이야. 그러니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죽인다음 전하의 밀지를 가져오너라. 알겠느냐 김림: 예, 숙부님 (덜덜 떠는) 김용: 잘 되고 있는데 벌벌 떨기는 김림의 등을 두드려주며 웃어대는 김용. #선경전의 뜰 정세운의 관을 수레에 실었다. 최영:...... 바라보는. 김득배: 전하께서 환도하실 때까지 개경을 부탁하네. 가자 수레를 끌고 가는 군졸들. 그 뒤를 따르는 김득배와 이방실. 최영:.....(문득) 몸조심들 하십시오 김득배:(돌아보며) 염려마시게. 전하의 밀지가 위조라면 그걸 보낸 자가 문책을 당하겠지 최영:.......(신음) #어느 길 안우가 호위병을 거느리고 달려온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화살. 칼을 빼드는 안우. 안우: 웬 놈들이냐 순간 그 가슴에 꽂히는 화살. 말에서 떨어진다. 김림이 달려와 안우의 가슴을 뒤져 서찰을 꺼낸다. #행재소. 사랑방 안 서찰을 들고 머뭇거리는 안도치. 노국공주: 무슨 일이냐 안도치:(눈물부터 훔친다) 노국공주: 어서 아뢰거라 안도치: 총병관대감이 전하께 올리는 서찰이옵나이다 공민왕:(흠칫) 안도치: 짐작컨대 총병관대감이 생전에 쓴 마지막 서찰인 듯 하옵나이다 서찰을 올린다. 공민왕:(물끄러미 탁상에 올린 서찰을 내려다보며) 이것이 자네가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흔적이란 말인가 #순군만호의 집무실. 안 서찰을 확인하는 김용. 김용: 이것이 틀림없는 진품이렷다 김림: 제가 위조한 전하의 밀진데 그걸 몰라보겠습니까 김용: 수고했다 서찰을 잘 접는 김용. 김림: 태워버리시지요 숙부님 김용: 태우라니 김림: 우리가 위조한 것이 탄로나면 김용: 내가 봐도 틀림없는 전하의 필체거늘 누가 알아보겠느냐. 전하께서 읽어보셔도 자신이 쓴 것으로 착각을 할 지경이다 웃어대는 김용. #행재소. 사랑방 안 정세운의 서찰을 읽고 있는 공민왕. 바라보는 노국공주. 정세운:(소리) 전하, 신이 생각을 해보니 전하께서 이런 수모를 당하신 것은 신들의 어리석음이 큰 탓이었나이다. 진즉에 편조와 손을 잡고 전하를 따랐다면 전하께서 이런 수모와 곤욕을 치르셨겠나이까. 공민왕:(노국공주에게) 정세운이 편조를 도와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노국공주:(눈물이 핑한) 다시 서찰을 읽는 공민왕. 정세운:(소리) 이번 전투에 누구보다 백성들의 도움이 컸나이다. 몽둥이와 농기구들을 들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장을 서는 백성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신은 한없이 부끄러웠나이다. 권문세도가들이 언제 저들을 사람 대접을 해준 적이 있었나이까. 눈물 씻는 공민왕. 정세운:(소리) 전하. 전민변정도감을 다시 세우시옵소서. 억울하게 노비가 된 백성들을 모두 풀어주어 양민으로 삼으시옵소서 공민왕:(터지듯) 자네가 내 옆에 있어야지. 그래야 내가 다시 편조를 불러 나라를 바로 세울 게 아닌가 통곡하는 공민왕. 바라보는 노국공주의 -. #순군만호의 집무실. 방 안(밤) 서찰을 읽고 있는 김원명.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힐끔 눈치보는 김용. 김원명: 이럴 수가 경천흥: 뭐라고 썼습니까 김원명: 전하께서 정세운이 역모를 꾸미고 있으니 지체 말고 죽이라고 쓰셨네 서찰을 내준다. 재빨리 훑어보는 경천흥. 김원명: 전하의 필체가 맞는가. 자네는 추밀원에서 왕명의 출납을 맡아봤으니 전하의 필체를 잘 알게 아닌가 경천흥: 맞는 듯 합니다 김용: 똑똑히 보시게 경천흥:(다시 읽는) 김용: 난 이것이 전하의 밀지라고 해서 처음엔 믿지를 않았소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전하께서 정세운을 죽이라고 하셨을 리가 없질 않소이까 (경천흥에게) 어떤가 경천흥: 틀림없는 전하의 필쳅니다 김용: 원 세상에. 뒤로는 밀지를 보내 정세운을 죽이라 해놓고 앞에서는 정세운이 죽었다고 눈물을 흘리시니 김원명: 난 믿을 수가 없소이다. 무슨 이유로 전하께서 정세운을 죽이려고 하셨는지 김용: 조일신을 벌써 잊으셨소이까 김원명:...... 김용: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그 일도 전하께서 다 꾸며낸 일이네 김원명: 하긴 조일신도 역모를 꾸밀 사람은 아니었지 김용: 조일신과 정세운을 죽이셨으니 다음엔 내 차례가 분명하네. 이 서찰을 내가 입수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내가 안우 등을 사주해서 정세운을 죽였다고 하실 분일세 경천흥: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습니까 김용: 어쩌겠나. 전하를 찾아 뵙고 따져 물을 수도 없는 일이고 서찰을 촛불의 불에 붙여 태우는 김용. 경천흥: 그걸 태우면 어떡합니까. 증거를 가지고 계셔야지 김용:(불 붙은 서찰 손에 들고) 전하께서 내가 쓴 것이 아니라고 하면 그만 아닌가 경천흥: 조정의 대신들에게 보여 진상을 알려야 할 것이 아닙니까 김용: 문하시중대감과 성산군이 모두 전하의 사람들인데 내 말을 믿겠는가. 어쩌면 세 사람이 짜고 한 일인지도 모르지 다 탄 서찰을 물대접 위에 던진다. 신음하는 경천흥. 김용: 정세운이 죽었으니 총병관 자리는 최영의 차지가 될 걸세. 정세운이 죽은 건 전하의 뜻을 거역한 탓이지 (바싹) 전하께서 환도를 하시면 최영을 시켜 우릴 다 죽이고 편조를 다시 불러들일 걸세. 그런 다음 원에 호의적인 대신들을 골라 모두 죽이고 그 재산을 나눠가지겠지 눈치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는 김용. #동. 마당(밤) 나오는 김원명과 경천흥. 경천흥: 상장군께선 어찌 하실 겁니까? 김원명:...... 경천흥: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김원명: 전하를 폐위시킬 수는 없지 경천흥: 기황후가 덕흥군을 고려의 왕으로 봉했다는 소문이 사실이면 김원명: 나는 반댈세. 전하께서 반원정책을 쓰시는 건 마땅치 않지만 그렇다고 덕흥군을 받아들일 순 없네 경천흥: 허면 안성군과는 어찌 하실 겁니까 김원명: 우선은 안성군이 하는대로 따라보세. 전하를 뫼시고 환도를 한 다음 돌아가는 사태를 봐가며 결정을 하세 #기황후의 처소. 안 기황후: 고려가 홍건적을 물리쳤단 말이냐 박불화: 예. 황후폐하 기황후: 홍건적의 세가 이십만이 넘는다고 하질 않았느냐 박불화: 예. 황후폐하 기황후: 고려왕의 기세가 대단하겠다. 박불화: 폐하, 고려에 사람을 보내 황후폐하께서 머잖아 덕흥군을 고려왕으로 삼으실 거라는 소식을 전했사옵니다 기황후: 홍건적까지 물리친 강릉대군이 순순히 그 자리를 내놓겠느냐 박불화: 그렇게 만들어야지요 기황후: 고려에 믿을만한 사람이 있느냐 박불화 황후폐하께서 언질만 주시면 목숨을 걸고 강릉대군을 제거할 자들이 한둘이 아니옵니다 기황후: 덕흥군을 부르라 박불화: 예, 황후폐하 환해져서 나가는 박불화. 아유시리다라: 황후폐하, 고려와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기황후: 염려하지 말거라 아유시리다라: 홍건적을 물리친 고려군을 적으로 삼으시는 것은 기황후: 그러니 고려왕을 바꾸려는 게야. 고려가 더 강성해지면 두고두고 후환거리가 될 것이야 박불화: (들어오며) 드시지요. 덕흥군, 들어온다. 납작 엎드린다. 덕흥군: 황후폐하, 이 은혜를 평생 잊지 않을 것이옵나이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시늉하며 힐끔힐끔 기황후를 바라보는 덕흥군. 기황후:....... 싱긋 웃는 기황후 #동. 뜰 거들먹거리며 나오는 덕흥군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최유와 유인우 최유: 어찌됐습니까. 덕흥군 대감 덕흥군: (놀리듯) 알아맞춰 보시게 최유: 언질을 받으셨습니까? 덕흥군: 맞았네.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덕흥군. 유인우: 경하드리옵니다. 덕흥군 대감 최유: 덕흥군 대감이 뭡니까. 국왕전하시지요 웃어대는 세 사람. #행재소. 문 앞 순군들이 달려와 겹겹이 에워싼다. 뒤이어 마차와 가마들을 운반해 온다. #동. 명덕태후의 방 안 명덕태후: 지금 당장 도성으로 올라갈 차비를 하란 말이냐 김상궁: 예, 태후마마 명덕태후:(웃으며) 진즉에 서둘렀어야지 #동. 사랑방. 마당 김림 등 무장한 순군들을 데리고 오는 김용. 김용: 전하, 어가를 대령했나이다 #동. 사랑방 안 공민왕:...... 김용:(소리) 서두르시옵소서 전하 공민왕: 이 놈이 (부르르) 안도치: 참으시옵소서 전하. 김용이 거느리고 있는 순군들이 행재소를 겹겹이 에워사고 있사옵나이다 김용:(소리) 전하. 꿈에도 그리시던 개경으로 돌아가는 길이옵니다 김용의 웃음소리. #동. 마당 웃고 있는 김용. 노국공주가 온다. 간편한 옷으로 갈아 입었다. 노국공주: 개경으로 돌아갈 준비를 끝내셨다구요 김용: 예, 중전마마. 이 비좁은 행재소에선 전하의 체통이 말이 아니온지라 노국공주:(최만생에게) 환관들 가운데 무예가 뛰어난 자들을 골라 나를 따르라고 일러라 최만생: 예, 마마 김용: 황공하오나 중전마마, 환관들을 골라 어디에 쓰시려는지요 노국공주: 안성군께선 전하나 잘 뫼시세요. 나는 따로 갈 곳이 있습니다 (최만생에게) 뭘 하고 있느냐 최만생: 예, 마마 황급히 달려가는 최만생. 노국공주:(김용에게) 안성군 덕분에 전하께서 금의환향을 하십니다 노국공주의 비웃음. 개의치 않고 웃어대는 김용. #동. 회의실 이인복: 김용의 속셈을 알 수 없는데 전하의 호위를 맡기는 것은 김원명: 안성군은 전하의 충복입니다. 정세운마저 죽임을 당한 이 마당에서 누구를 믿고 전하를 보위해 드리겠습니까 이인복: 정세운을 죽인 자들이 누군지 그걸 먼저 밝혀야 합니다. 그런 연후에 환도를 하셔도 늦지 않소이다 김원명: 아니지요, 아니지요. 하루라도 빨리 전하께서 환도를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민심을 수습할 수가 있어요 (홍언박에게) 어찌하시겠습니까 문하시중대감 홍언박: 전하께서 승낙을 하셨으니 따르는 수밖에요 이인복: 정 그렇다만 김용을 파직하거나 순군만호부를 딴 사람에게 맡기든지 해야 할 겁니다 경천흥: 군권이 이미 안성군 수중에 들어 있습니다. 지금 그 자릴 바꾸려들면 안성군의 불만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김용이 들어온다. 당황하는 홍언박 등. 김용: 뭘 하고들 계십니까. 어가가 떠날 준비를 다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둘러 어가를 수종할 준비들을 하세요 눈을 부라리고 나가는 김용. 홍언박: 가십시다. 우리라도 전하를 지켜드리는 수밖에 #복주의 길 선두에 선 김용과 김림, 순군들. 공민왕의 화려한 어가가 따른다. 환호하는 백성들. 어가를 에워싼 홍언박, 이인복, 김원명, 경천흥 등 대신들. 그 뒤를 따르는 명덕태후의 마차. 명덕태후:(덕녕공주에게) 중전의 모습이 보이질 않습니다 덕녕공주: 환관들을 데리고 먼저 떠났다고 합니다 명덕태후: 좀 전에 말을 타고 간 사람이 중전이었습니까 덕녕공주: 예, 마마 명덕태후:(혀를 차며) 원, 저런. 피난을 올 때는 경황이 없어 말을 탔지만 지금은 뭐가 급해서 말을 탑니까 또 한번 혀를 차는 명덕태후. #어느 길 무장한 최만생 등 환관들을 데리고 말을 타고 달려가는 노국공주. #어느 암자 부근의 민가 앞. 먹거리가 든 바구니를 들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박의 처. 말발굽소리에 본다. 멀리 달려오는 마필들. 놀래서 바구니를 떨어뜨리고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박의처. #동. 마당 박의처: 마님. 마님 초선:(나오며) 웬 수선이냐 박의처: 얼른 피하셔야겠습니다. 말을 탄 사람들이 이리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초선:(바깥 보더니) 오셨나보구나 옷매무새를 여미고 밖으로 나간다. #동. 앞 달려와 멈추는 말. 노국공주가 타고 있다. 허리 굽히는 초선. 노국공주: 편조스님은 초선: 여기서부터 걸으셔야 하옵니다 노국공주:(최만생에게) 여기서 기다리거라 말에서 내리는 노국공주. 노국공주: 어느 길인가 초선: 따르시지요 초선이 앞서간다. 노국공주:...... 초선이 가고 있는 산길을 바라본다. #어느 암자. 앞 초선과 노국공주가 온다. 암자를 지키고 있던 박서방이 달려와 허리를 굽힌다. 노국공주: 여기냐 초선: 예, 마마 노국공주:..... 암자를 본다. 밀봉한 문. 초선: 편조스님. 중전마마께서 오셨습니다 #동. 안 신돈:....... 고요한. 노국공주:(소리) 편조스님. 밖으로 나오셔야겠습니다 #동. 앞 노국공주: 전하께 남은 사람은 이젠 편조스님밖에 안계십니다 초선: 마마 노국공주: 밖으로 나오세요 편조스님. 나와 함께 대궐로 가셔야겠습니다 초선: 황공하오나 마마, 편조스님께선 삼년 기한으로 문 없는 암자 안에 드신 겁니다 노국공주:(아랑곳 없이) 홍건적의 난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전하께선 왕위를 잃으실 지도 모릅니다 #동. 안 신돈:....... 노국공주:(소리) 무신들이 서로 다투다 정세운을 죽였습니다. 정세운마저 없으니 누가 전하를 지켜드리겠습니까 신돈:...... 괴로운. #동. 앞 노국공주: 좋습니다. 스님께서 밖으로 나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암자를 향해 앉는 노국공주. 초선: 마마 노국공주: 모두 물러가거라 버티고 앉는 노국공주. #동. 안 신돈:...... 보일 듯 말 듯 한숨을 내쉬고 다시 눈을 감는 신돈. #어느 관아의 문. 앞(밤) 관아를 겹겹이 지키고 있는 순군들. 정세운의 시신을 실은 수레가 온다. 말을 타고 호위하는 김득배와 이방실. 순군: 멈춰라. 어가가 묵고 계시는 곳이다 이방실: 나는 서북면도지휘사 이방실이다. 총병관 정세운 장군의 시신을 가지고 왔다고 전하거라 #동. 어느 방 안(밤) 엎드린 사내. 김용: 원나라 황제폐하께서 덕흥군을 고려 왕으로 책봉했다는 게 사실이냐 사내: 예, 안성군대감. 덕흥군을 옆에서 모시는 취성군께서 이 밀서를 전하라 하셨습니다 품에서 밀서를 꺼내 내민다. 재빨리 뜯어보는 김용. 사내: 취성군께서 덕흥군대감이 안전하게 개경으로 들어와 고려 왕으로 즉위식을 올릴 수 있게 도와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습니다 김용:(재빨리 읽고) 염려마시라고 전하게. 덕흥군께서 개경에 도착하시기 전에 내가 대궐 안을 깨끗이 청소를 해놓을 것이야 숨죽인 웃음. 김림:(밖에서) 숙부님. 숙부님 김용:(밀서 감추며) 무슨 일이냐 김림:(밖에서) 큰일 났습니다. 김득배와 이방실이 정세운의 시신을 가지고 왔습니다 김용: 이놈들이. 명을 재촉하고 있구나 벌떡 일어나는 김용. #어느 관아의 뜰(밤) 횃불들이 켜졌다. 정세운의 관. 공민왕:.......(바라본다) 고개를 돌리는 대신들. 공민왕: 뚜껑을 열라 황급히 뚜껑을 여는 순군들. 다가가는 공민왕. 멈춘다. 관속에 두 눈을 부릅뜨고 누워있는 정세운. 김득배:(울며) 눈을 감겨드려도 감지를 않는 지라..... 공민왕:.... 불쑥 손을 내밀어 정세운의 눈을 가려주는 공민왕. 공민왕:(눈치 본다) 흐느끼는 김득배와 이방실. 공민왕: 편히 가시게. 못난 사람을 주인으로 섬긴 탓에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시네그려 오열과 함께 손을 치우는 공민왕. 정세운의 눈이 감겼다. 공민왕: 누구냐. 정세운을 죽인 자가 누구냐 김득배: 죽여주시옵소서 전하 김득배와 이방실이 무릎을 꿇는다. 공민왕: 너희들이 정세운을 죽였단 말이냐 이방실: 소장들은 왕명을 따랐을 뿐이옵니다 공민왕: 왕명이라니 김용이 김림과 순군들을 데리고 달려온다. 김용: 이런 고얀 놈들이 있나. 왕명을 빙자해서 정세운을 죽였단 말이냐 (김림에게) 이놈들을 당장 끌고가 참수를 해라 김림: 예 순군들과 달려들어 김득배와 이방실을 끌고 간다. 이방실: 전하. 전하께서 정세운을 죽이라는 왕명을 내리지 않으셨사옵니까. 억울합니다 전하 이인복:(나서며) 두 사람을 풀어주지 못할까 흠칫 멈추는 김림과 순군들. 이인복: 전하께서 두 사람을 친국하신 연후에 죽여도 늦지 않을 것이야 김용: 뭘 꾸물대고 있느냐. 어서 끌고 가지 않고 다시 끌고가는 김림과 순군들. 공민왕: 멈추거라 김용:(막으며) 전하. 김득배와 이방실을 지금 당장 죽이지 않으면 역도들이 몰려올 것이옵니다 (김림에게) 어서 끌고 나가 저놈들을 참수하지 못할까 다시 김득배와 이방실을 끌고 나가는 김림과 순군들. 이방실: 살려주시옵소서. 억울하옵나이다 공민왕:...... 김용을 노려본다. 김용:....... 두 눈을 부릅뜨고 마주본다. 홍언박: 이놈. 어느 안전이라고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게냐 김용:(싱긋 웃으며) 노욕이 지나치십니다. 그 나이에 문하시중까지 해먹었으면 고마운 줄을 아셔야지 홍언박: 이, 이 놈이 부들부들 떤다. 김용: 전하 공민왕:....... 김용: 소신이 먼저 대궐로 들어가 전하를 맞을 준비를 하겠나이다. 전하께서는 여기서 편안히 주무시고 천천히 올라오시지요 허리 굽혀 예를 올린 다음 순군들에게 눈짓한다. 김용을 따라 우르르 가는 순군들. 홍언박 등 대신들과 안도치, 이환관 등 남는다. 공민왕:....... 우뚝 서있다. 대신 몇 명이 슬그머니 도망을 친다. 이인복: 어딜 가는 게요 공민왕: 내버려두시게 이인복: 전하. 정세운을 죽인 건 김용이 분명하옵나이다 공민왕:(김원명에게) 어째서 저들을 따라가지 않는가 김원명: 소신은 전하와 생각을 달리할 뿐 역신은 아니옵니다 공민왕:(경천흥을 본다) 경천흥: 죽어도 전하를 따르겠나이다 엎드리는 대신들. 공민왕:..... 관을 본다. 정세운의 모습. 공민왕:(관 위에 손을 얹으며) 자네가 날 지켜주시게 눈물을 흘리며 웃어보이는 공민왕. 홍언박: 전하 따라서 부르며 흐느끼는 대신들. #어느 암자. 앞 박서방, 온다. 암자 앞에 앉아있는 노국공주. 시립하듯 서있는 초선. 박서방: 꼬박 밤을 세우셨습니까요 마님 초선:....... 박서방:(노국공주에게 가며) 중전마마. 편조스님은 밖으로 나오지 않으실 것이옵니다. 우리 마님께서 암자를 지키고 계시다 홍건적에게 봉변을 당할 뻔 하셨는데도 꼼짝도 안하신 편조스님이십니다 노국공주:...... 박서방:(소리) 하마터면 우리 마님께서 목숨을 잃을 뻔 하셨습니다 초선: 자넨 물러가 있게 박서방:(분해서) 편조스님 때문에 두 사람이나 목숨을 잃었습니다요 초선: 물러가래도 박서방:..... 할 수 없이 물러가 씨근거린다. 초선:...... 노국공주를 바라본다. 노국공주:...... 초선: 중전마마. 그만 일어나시지요. 편조스님은 이 세상 분이 아니십니다 노국공주:..... 전각을 바라본다. #동. 안 신돈:....... #동. 앞 벌떡 일어나는 노국공주. 품에서 단검을 꺼내더니 암자의 문을 찍기 시작한다. 초선:(놀래서) 중전마마 계속 단검으로 문을 찍어 구멍을 내는 노국공주. #동. 안 구멍이 뚫릴 때마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 신돈:...... 수없이 구멍이 뚫리더니 밖에서 문을 뜯기 시작한다. 덜컹거리는 문짝. 신돈:...... 이윽고 문이 열린다. 환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 신돈:...... 여전히 미동도 않는 신돈. #선경전의 안. 최영이 참모들과 서있다. 김용:(버럭) 도성의 경비가 문젠가. 홍건적을 쫓아가 다시는 고려를 넘보지 못하게 섬멸을 시켜야 하지 않는가 최영: 총병관대감께서 변을 당하셨는지라 김용: 당장 서북면으로 출동을 하시게. 전하는 내가 뫼실 것이니 최영: 도성의 치안이 완전치가 못합니다. 도적떼가 들끓고 있을뿐더러 김용: 도성의 치안은 순군만호부가 담당할 것이야 #동. 뜰 나오는 최영과 참모들. 회랑에 숨어서 보고 있는 이색. 바라보더니 가만히 한숨을 내쉬는 최영. #동. 안 용상. 김용:.... 바라본다. 씨익 웃는다. #대궐의 길 최영을 따라오는 이색. 이색: 안성군에게 도성을 맡기면 안 됩니다. 전하께서 무슨 변을 당하실 지 모릅니다 최영: 조정대신들이 어가를 뫼시고 올라오고 있는데 변이야 당하시겠소이까. 그보다는 홍건적이 더 문제지. 요동으로 쫓겨간 홍건적을 원의 대군이 기다리고 있으니 갈 곳 없는 홍건적이 다시 고려를 침공하려 할 것이외다. 가자 참모들을 데리고 떠나는 최영. 이색:..... 난감하다. #선경전의 안 슬그머니 용상의 계단에 발을 올려놓는 김용. 제 풀에 흠칫 놀라는 김용. 그러더니 웃는다. 성큼성큼 용상으로 올라가는 김용. 밑을 내려다보는 김용. 텅빈 안. 김용: 전하. 기황후가 덕흥군을 고려의 왕으로 봉했다고 합니다. 허니 전하께서 죽어주셔야 하겠습니다 칼을 빼서 용상 위를 후려치는 김용. 미친듯이 웃어대는 김용. #어느 암자. 앞 뻥 뚫린 문. 마주보고 선 노국공주. 안에서 신돈이 성큼 밖으로 나온다. 초선과 박서방이 엎드린다. 신돈: 나무관세음보살 합장한다. 노국공주: 편조스님께서 나 때문에 부처님과 한 약속을 어겨 벌을 받아야 하신다면 내가 대신 받겠습니다 신돈: 불벼락을 맞으실 텐데요 노국공주: 그보다 더한 벌이라도 받겠습니다 신돈: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중전마마 노국공주:...... 신돈: 전하를 구하러 오셨습니까. 백성을 구하러 오셨습니까 노국공주: 백성을 구하러 왔습니다 신돈: 하오시면 부처님의 불벼락은 소승이 맞겠습니다 합장하고 허리를 깊이 숙이는 신돈. 노국공주:....... 바라보는 노국공주의 기쁨. 초선:.... 바라보는 초선의 슬픔. #도성부근의 길 어가가 온다. 두 갈래 길이다. 앞에서 달려오는 김림과 순군들. 이인복과 김원명이 말을 달려 김림을 맞는다. 이인복: 어가니라. 어느 행차라고 길을 막느냐 김림: 오늘은 도성 안으로 들어가실 수가 없습니다 이인복: 전하께서 천리 길을 달려오셨느니라. 당연히 대궐로 들어가셔야 할 것이야 김림: 도성의 치안이 불안할뿐더러 대궐의 전각들을 미처 수리하지 못했는 지라 당분간 도성 밖에 머물러 계시라는 안성군대감의 전갈이십니다 김림이 손짓하자 순군들이 길을 겹겹이 막고 선다. 다른 길을 가리키는 김림. 이인복이 공민왕에게 간다. 김림과 마주선 김원명. 이인복: 전하, 김용이 수하를 보내 길을 막고 있사옵니다 공민왕:...... 경천흥: 전하. 신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길을 열겠나이다 공민왕: 여기서 가까운 절이 어디냐 이색:(오며) 흥왕사가 가깝습니다 공민왕: 흥왕사라 이색: 황공하오나 전하, 흥왕사보다는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시는 것이 안전할 것이옵니다 홍언박: 그렇게 하시지요. 최영과 이성계가 도성으로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셨다가 대궐로 드시는 것이 공민왕: 흥왕사로 가자 말을 몰아 다른 길로 접어드는 공민왕. 명덕태후의 마차도 다른 길로 접어든다. 명덕태후: 대체 어디로 가는 거냐. 대궐로 가지 않고 밖에다 내지른다. 안도치, 달려온다. 안도치: 오늘 밤은 흥왕사에서 머무신다 하시옵나이다 명덕태후: 개경이 바로 지척이 아니냐 짜증을 부리는 명덕태후. 다른 길로 접어든 어가를 지켜보고 있는 김림과 순군들. 김원명:(김림에게) 상전에게 전하시게. 분수를 아시라고 말머리를 돌려 어가를 따라가는 김원명. #강안전의 뜰 달려오는 김림. 순군들의 삼엄한 경계. 안으로 들어가는 김림. #동. 안 김림, 들어온다. 보료 위에 너부러져 있는 김용. 김용: 어디로 갔느냐 김림: 흥왕사로 간 듯 합니다 김용: 흥왕사? (웃더니) 편조와 죽고 못살더니 죽을 자리를 절간으로 골랐구나 김림: 숙부님. 순군들 가운데 불안해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김용: 조정의 늙은 대신들과 궁중의 아녀자들을 처치하는데 걱정할 게 뭐 있느냐 일어나서 문으로 가더니 뒤돌아본다. ‘보료.’ 김용: 덕흥군같은 얼간이한테 주기엔 아까운 자리가 아니냐 씰룩이는 김용. #동. 뜰 나오는 김용. 순군들이 모여든다. 김용:(밀서를 꺼내 흔들며) 원나라 황제 폐하의 칙서다. 덕흥군을 고려의 새국왕으로 봉했으니 금상을 폐하고 덕흥군을 고려의 국왕으로 옹립하라는 황명이시다 웅성거리는 순군들. 김용: 오늘 밤 흥왕사로 가서 금상을 죽이고 저항하는 자는 대신은 물론 환관 나부랭이까지 모두 그 자리서 참수하라. 알겠느냐 웅성거리는 순군들. 김용: 황명을 어기는 자는 이 자리서 참수할 것이다 겁에 질리는 순군들. 김용: 이 칼로 황명을 받들 것이니, 이 칼에 대고 충성을 맹세하거라 먼저 엎드리는 김림. 김림: 황제폐하 만세 황급히 따라서 엎드리는 순군들. 웃어대며 허세를 부리는 김용. #초선의 집. 앞 원현과 공철이 온다. 주위를 살피고 안으로 들어간다. #동. 마당 아직 부서진 집안. 덕운이 스님 서넛과 마당에 불을 지펴 군불을 쪼이고 있다. 원현: 여기서 뭘 하고 계십니까 덕운스님. 개태사로 내려가지 않으시고 덕운:(손 내저으며) 말도 마라. 편조스님이 하산을 하셨대 원현:(놀라서) 보우스님과 약속한 삼 년 기한은 어찌하구요 덕운: 그러게 말이다. 큰스님께서 아시면 편조를 혼내주겠다고 환생을 하실 판이지 안에서 박서방이 나온다. 박서방: 사람을 좀 모아야겠네 공철: 얼마나요 박서방: 많을수록 좋지 원현: 사람을 모아서 어디다 쓰시려구요 박서방: 모이시게 손짓하는 박서방. 원현과 공철이 머리를 맞댄다. 귓속말을 주고 받는다. 군불 쬐며 머리를 내밀고 기웃거리는 덕운. #흥왕사의 마당(밤) 환관들이 칼을 갈고 있다. 최만생이 힐끔거리며 온다. 이환관:(마른 침 삼키며) 칼은 왜 갈라고 하십니까 최만생:(힐끔 본다) 이환관: 오늘 밤에 난리가 터진다는 게 사실입니까 최만생: 대궐에 들어와 편히 살았으면 그 보답을 해야지 힐끔거리며 가버리는 최만생. #동. 뒷채 마당(밤) 최만생, 온다. 김원명: 나 좀 보세 최환관. 최만생: 예, 대감마님 김원명: 편조가 돌아왔다는 게 사실인가 최만생: 전하와 독대를 하고 계십니다 김원명: 으음 (신음하는) #동. 큰방 안(밤) 신돈:..... 덥수룩한 신돈. 그런 신돈을 바라보다 눈물이 글썽해서 고개를 돌리는 공민왕. 신돈: 전하 공민왕: 내가 자넬 볼 면목이 없네 노국공주: 시간이 없습니다 전하 공민왕:.....(신돈을 본다) 신돈: 오늘 밤에 김용이 전하를 죽이려 할 것입니다 공민왕: 알고 있네 신돈:....... 공민왕: 어찌하면 이 위기를 면할 수가 있겠나 신돈: 소인에게 맡겨주십시오 전하 #동. 다른 방 안(밤) 김원명, 들어온다. 홍언박, 이인복, 경천흥이 앉아있다. 김원명: 큰일 났습니다. 흥왕사까지 따라왔던 대신들의 모습이 보이질 않습니다 홍언박: 으음 김원명: 다들 어디로 갔는지 이인복: 도망들을 쳤겠지요 경천흥: 전하를 안전한 곳으로 피신을 시키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인복: 전하께서 갈 곳이 어디 있겠소이까 김원명: 문하시중대감. 무슨 대책이든 세우셔야 할 것이 아닙니까 홍언박: 어쩌겠소. 김용이 죽이면 죽는 수밖에 김원명: 그걸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문하시중대감 #동. 큰 방(밤) 신돈:...... 바라본다. 김상궁의 도움으로 머리를 감아올리고 있는 안도치. 안도치: 좀 살살 하시게. 머리채를 당기지 말고 뭐가 재밌는지 웃어대는 안도치. 그런 안도치를 측은한 듯 바라보는 신돈. #동. 명덕태후의 방 안(밤) 공민왕을 가운데 두고 모여앉은 명덕태후와 덕녕공주, 혜비. 박상궁, 유나인 등이 시립해 있다. 노국공주: 태후마마. 무슨 일이 있어도 전하를 지켜드리셔야 합니다 명덕태후:(마른침 삼키는) 노국공주: 만에 하나 김용을 막지 못해 여기까지 찾아오면 덕녕공주: 염려 마시게. 우리들이 다 죽어도 전하를 지켜드릴 것이니 노국공주:..... 공민왕을 본다. 공민왕: 중전께서도 여기 계세요 노국공주: 신첩이 안도치와 함께 있어야 김용이 속을 겁니다 #동. 큰방 안(밤) 왕으로 변신한 안도치가 수줍게 보료 위에 앉아있다. 바라보는 신돈. 김상궁: 영락없는 전하십니다 안도치: 큰일 날 소리. 빈말이라도 그런 말씀은 마시게 (나무라고 신돈을 보며) 이만하면 그놈들이 속고도 남겠지요 편조스님 신돈:...... 안도치: 나는 죽어도 괜찮습니다 신돈: 밖에서 소란이 일어나면 뒷문으로 나가 몸을 숨기세요 안도치: 그랬다간 그놈들이 전하를 찾으러 흥왕사를 뒤지고 다닐 겁니다 신돈: 오늘 밤 늦게 서북면도순찰사 최영이 군사를 이끌고 올 겁니다. 그 때까지만 김용을 속이면 전하께서는 안전하실 겁니다 안도치: 제 염려는 마세요 편조스님. 제가 미처 피하지 못해 그놈들이 절 죽이려 하면 편조스님께서 도술을 부려 구해주시면 될 것이 아닙니까 (웃더니) 일이 잘못돼서 제가 죽더라도 편조스님 원망은 하지 않을 겁니다 웃어 보인다. 바라보는 신돈. 웃다가 가만히 눈물을 손으로 훔치는 안도치. 안도치:(김상궁에게) 어떤가 김상궁. 미물의 짐승도 섬기는 주인을 닮는다고 하네. 나는 전하의 그림자 끝만 닮아도 여한이 없겠네 김상궁: 몸조심하세요 안환관 어른 눈물 짓는 김상궁. #강안전의 안(밤) 김용: 무예가 출중한 자들을 골라 먼저 흥왕사로 떠나거라 김림:(마른침) 김용: 전하를 죽이거든 흥왕사에 불을 질러라. 그러면 내가 남은 군사들을 데리고 가서 모두 쓸어버릴 것이니 #도성의 문. 안(밤) 김림이 군사들을 데리고 온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서로 반대편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원현과 공철. 마주보고 끄덕인다. #흥왕사의 큰방 안(밤) 안도치:..... 마치 새색시처럼 미소를 머금고 앉아있다. <신돈 42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