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 43회 <신돈> -43회- #흥왕사. 명덕태후의 방 안(밤) 공민왕을 가운데 두고 에워싸고 있는 명덕태후, 덕녕공주, 혜비. 박상궁, 유나인 등 궁녀들이 겹겹이 에워싸듯이 시립해 있다. 진땀이 흐르는 공민왕. 벌떡 일어나려고 한다. 명덕태후: 앉아계세요 주상 공민왕: 김용이 노리는 건 접니다 어마마마. 나 한사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습니다 명덕태후: 우리가 다 죽어도 주상께서는 살아계셔야 합니다 공민왕:(신음) 덕녕공주: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주상을 해치려면 이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죽여야 할 것이니 김용이 아무리 대담해도 그리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공민왕:...... 단념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일어나려고 한다. 명덕태후: 주상 공민왕: 김용이 군사를 이끌고 이리로 오면 제일 먼저 내가 묵고 있는 방을 찾을 겁니다 명덕태후: 중전께서 잘 알아서 하시겠지요 공민왕: 중전의 무예가 아무리 뛰어나도 환관 몇을 데리고 어떻게 저들과 대적하겠습니까 명덕태후: 불을 꺼라 망설이는 박상궁. 명덕태후: 불을 끄라고 하질 않느냐 박상궁 등이 불을 끈다. 어둠에 잠기는 방 안. 명덕태후: 우리는 다 죽을 각오가 돼있습니다. 중전께서도 마찬가질 겁니다. 그러니 주상, 여러 생각 마시고 살 궁리를 하세요. 그게 주상께서 하실 일입니다 공민왕:...... 신음하는 공민왕. #동. 큰방 앞(밤) 노국공주, 온다. 신돈이 기다리듯 서있다. 노국공주: 최영의 군사들은 언제 도착할 것 같습니까 신돈: 오늘 밤에 도착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노국공주:(신음) 신돈: 김용의 목표는 전하십니다. 그러니 적당한 때를 골라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노국공주: 안도치는 어찌하구요 신돈:..... 노국공주: 설마하니 신돈: 전하께서 살아계시는 한 김용의 살육은 멈추지 않을 겁니다 노국공주: 그렇다고 전하를 대신해서 죽으라고 한단 말입니까 신돈: 전하를 살리고 많은 인명을 구하는 길은 이 방법 뿐입니다 노국공주:..... 신돈:(괴롭게) 나무관세음..... 합장하고 가는 신돈. 노국공주: 편조스님 신돈:(멈춘다) 노국공주: 만일 내가 변을 당하면 스님께서 전하를 지켜주셔야 합니다 신돈:....... 노국공주: 전하와 함께....두 분이서 꿈꾸던 세상을 꼭 만드셔야 합니다 신돈: 만일 소승이 변을 당하면 중전마마께서 전하와 함께 그 일을 꼭 이루셔야 합니다 노국공주:...... 신돈:..... 마주보는 두 사람. #강안전의 안(밤) 주안상. 폭음하고 있는 김용. 김용:....날 너무 원망하지 마시오....이게 다 전하께서 나를 믿지 못한 탓이외다. 그렇게 정세운을 끼고 도셨으니 내 맘이 편치 않을 수밖에요 (한잔 벌컥 마시고) 전하께서 가시는 저승길은 외롭지가 않을 거외다. 내가 전하를 정세운과 함께 묻어줄 것이니 키득키득 웃는 김용. 웃음 속에 담겨 있는 두려움. 그 걸 잊으려는 듯 술병 째 들이키는 김용. #흥왕사. 명덕태후의 방 안(밤) 어둠 속의 공민왕. 명덕태후 등의 -. #동. 법당 앞(밤) 주위를 살피며 덜덜 떨고 있는 덕운. 왕사의 법복을 입었다. 신돈: 때맞춰 전하의 침소로 들어야하네 지효: 알겠습니다 신돈:(덕운을 본다) 덕운:(손 저으며) 염려마시게. 잘 할테니 신돈:(웃으며) 벌써부터 진땀을 흘리면 어떡합니까. 명색이 왕사님이신데 덕운: 염, 염려하지 마시래도 그런다 얼른 얼굴의 땀을 훔치는 덕운. #흥왕사. 부근의 길(밤) 김림과 순군들이 엎드려 있다. 멀리 보이는 절. 불빛이 보인다. 김수가 김림에게 기어온다. 김수: 언제 거행할 겁니까 김림: 불이 꺼지고 모두 잠든 연후에 김수: 전하의 침소를 알아냈습니까 김림:...... 대답 대신 흥왕사 쪽을 바라보는 김림. 여기저기 불이 꺼지고 있다. #흥왕사. 큰방 안(밤) 왕의 옷을 입고 앉아있는 안도치. 바라보는 노국공주. 그 눈길에 부끄러운 듯 웃으며 손을 입을 가리는 안도치. 노국공주:....... 문득 눈물이. #동. 다른방. 앞(밤) 경천흥이 두리번거리며 온다. 망설이더니,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김원명: 어딜 들어가시는가? 경천흥:(흠칫) 김원명: 안에는 문하시중대감과 성산군밖에 없네 경천흥:(신음) 김원명: 전하를 위해서 죽는다고 누가 알아 주겠나 경천흥:(다시 신음) #동. 다른 방 안(밤) 홍언박:....... 버티고 앉아있다. 이인복: 문하시중대감과 저만 남았습니다 홍언박:...... 이인복: 대감께서도 퇴청을 하시지요 홍언박: 전하를 지켜드릴 사람이 없는데 나보고 어딜 가라는 말씀이신가 이인복:(바라보는) 홍언박: 그렇게 불안하시면 자네나 피신을 하시게 이인복: 문하시중대감께서는 너무 연로하십니다. 그러니 홍언박: 내가 명색이 문하시중이거늘 이런 날 살기를 바라겠는가 입을 꽉 다물어버리는 홍언박. #동. 앞(밤) 나오는 이인복. 신돈이 서있다. 이인복:(신음) 신돈: 아직 여기 계셨습니까 이인복:(바라보는) 신돈:(미소) 이인복: 미안하이 신돈:...... 이인복: 내가 자네와 전하를 도왔어야 했는데 신돈: 남은 날이 많습니다 이인복: 내가 요행 죽지 않고 살아 남는다면 앞으론 자넬 도울 것이야 신돈: 고맙습니다 성산군대감 이인복: 그러고보니 김용이란 놈이 충신이구만. 덕분에 고려를 다시 일으켜 세우게 됐으니 껄껄 웃는 이인복. #동. 큰방 안(밤) 여전히 웃고 앉아있는 안도치. 바라보는 노국공주. 졸리운지 하품을 하는 안도치. 놀라서 얼른 입 가리고 웃는다. 김상궁: 자리를 봐드릴까요 안도치: 마마. 소인은 졸려서 더는 못 앉아 있겠습니다. 황공하오나 마마, 자리를 좀 비켜주시지요 노국공주:(김상궁에게) 내 자리도 옆에다 보거라 안도치:(펄쩍 뛰며)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어서 태후마마가 계시는 곳으로 가시옵소서 마마 노국공주: 자네 혼자 자고 있으면 저들이 의심을 할 것이야 안도치:..... 노국공주: 뭘 하고 있느냐. 어서 자리를 보지 않고 안도치:......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안도치. #흥왕사. 부근의 길(밤) 환관 하나가 주위를 살피며 온다. 김수: 웬 놈이냐 놀라는 환관. 김수가 칼을 빼든다. 김림:(오며) 최환관이 아니냐 최환관: 예, 접니다 김림: 전하께서 어느 방에 묵고 있는지 알아냈느냐 최환관: 예 #강안전의 뜰(밤) 술병 들고 비틀거리며 나오는 김용. 참모들과 순군들이 대기하고 있다. 김용: 흥왕사에서 불길이 올랐느냐 참모: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김용: 흥왕사에서 불길이 치솟으면 그 길로 달려가 눈에 띄는 자들은 모두 죽여라. 남아 있는 대신들은 물론 태후든 대비든 다 죽이란 말이다. 특히 중전을 놓쳐선 안 된다. 중전이 몽골로 도망치지 못하게 꼭 잡아죽여야 한다. 알겠느냐 겁먹은 듯 눈치만 보는 참모와 순군들. 김용: 이 놈들.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됐느냐. 왜 대답이 없는 거야 칼을 빼서 마구 휘두르는 김용. 겁이 나서 피하는 참모들과 순군들. 김용: 명심하거라. 황제폐하의 영을 받들어 강릉대군을 죽이고 덕흥군을 고려의 새 국왕으로 받들려는 것이다. 알겠느냐. 대원제국의 황제폐하께서 고려의 왕실을 싹 쓸어버리라는 황명을 내리셨다 그 말이야. 황명이니라. 황명! 미친듯이 웃어대는 김용. #흥왕사. 부근의 길(밤) 살금살금 다가가는 김림과 순군들. #동. 큰방 안(밤) 나란히 펴진 금침. 안도치:..... 금침을 가만히 손으로 쓸어보는 안도치. 바라보는 노국공주. 안도치: 마마. 마마께서 우리 전하와 혼인을 하시던 날이 생각납니다 노국공주:....... 안도치: 그 때 중전마마께선 참으로 아름다우셔서 소인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인 줄 알았습니다 노국공주: 자네가 없었다면.......(치솟는 눈물) 안도치:.....(금침만 어루만지는) 노국공주: 내가 낯선 고려에 와서 어찌 살았겠나. 자네 덕분에 궁중 생활을 익히고 궁중의 법도를 배웠으니 안도치: 이젠 아무 걱정 하지 마십시오. 편조스님께서 돌아오셨으니.....(목이 메인다) 노국공주: 지금이라도 일어나 이 방을 나가시게. 살고 싶으면 안도치:(본다) 노국공주:(고개 돌리는) 안도치: 이 놈의 소원이 한가지 있사옵니다 노국공주:(본다) 안도치:(울면서) 편조스님이 돌아왔으니 두 분 전하께서 마음이 든든하실 겁니다. 그러니 소인은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나이다. 허나 마마께옵서..... 김상궁:(눈물 훔치며 고개 돌리는) 안도치: 마마. 소인은 전하와 마마께서 왕자님을 품에 안고 기뻐하시는 모습을 뵙고 싶었나이다 숨죽여 통곡하는 안도치. 노국공주:....... 눈물을 참고 또 참는. 퍽! 창을 뚫고 들어와 창살에 박히는 화살. 노국공주가 일어나서 휙 입김을 불어 불을 끈다. #동. 앞(밤) 최만생과 환관들이 김림과 김수를 맞아 싸우고 있다. 밀려나는 최만생 등. 도망치기 시작한다.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군들. 갑자기 서넛이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진다. 노국공주가 칼을 휘두르며 나온다. 주춤 물러서는 순군들. 김림: 중전이다. 중전부터 죽여라! 달려드는 순군들. 노국공주의 칼이 춤을 춘다. 쓰러지는 순군들. 김림: 두려워말라. 중전 한사람 뿐이다 김림과 김수가 칼을 빼들고 양쪽에서 노국공주를 공격한다.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다. #동. 큰방 안(밤) 이불 속에 누운 안도치. 밖에서 소란. 시립한 듯 서있는 김상궁. 안도치: 김상궁 김상궁: 예, 안환관 어른 안도치: 나는 괜찮으니 몸을 피하시게 김상궁:..... 안환관: 어서 피하시래도 김상궁:...... 요지부동인 김상궁. #동. 앞(밤) 점점 밀리는 노국공주. 칼을 떨어뜨린다. 김림: 죽여라 한꺼번에 달려드는 김림과 김수. 도망치기 시작하는 노국공주. 김림:(김수에게) 놓치지 마라 노국공주를 쫓는 김수. 김림:...... 방을 보더니 칼을 움켜쥐고 안으로 들어간다. #동. 안(밤) 뛰어드는 김림과 순군들. 김상궁:(막으며)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오느냐. 전하의 침소니라 김림:.... 김상궁의 머리채를 움켜쥔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이 든 척하는 안도치. 이불 밖으로 머리가 나와있다. 김림: 전하시냐 김상궁:(벌벌 떠는 시늉하는) 칼을 김상궁의 목에 갖다대는 김림. 다급하게 끄덕이는 김상궁. 김림: 죽여라 순군들이 이불 위로 칼을 내리꽂는다. 꽂고 또 내리꽂는다. 꼼짝 않는 안도치. 김림이 김상궁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끌고가 이불을 젖힌다. 안도치의 시신. 두 손을 가지런히 가슴에 포갰다. 김림: 틀림없는 전하렷다 김상궁:(끄덕이는) 김림이 김상궁을 내팽개치고 두 손으로 칼을 움켜쥐고 치켜 올렸다 내려 꽂는다. 김상궁:....... 고개 돌린다. 김림:....(미친 듯이 웃으며) 왕이 죽었다. 왕이 죽었다 #동. 앞(밤) 달려나오는 김림. 김림: 왕이 죽었다. 덕흥군이 고려의 새 국왕이 되셨다 미친듯이 외치는 김림. #동. 다른 방 안(밤) 김수가 뛰어든다. 홍언박:..... 혼자서 앉아있다. 김수: 문하시중대감이십니까 홍언박:...... 보더니 끄덕인다. 김수: 죄송합니다. 순군만호 김용장군께서 문하시중 대감을 꼭 죽이라고 했습니다 칼을 내려치는 김수. 꼼짝 않고 버티는 홍언박. 두 번째 칼. 나무토막처럼 그대로 꼬꾸라지는 홍언박. #동. 명덕태후의 방. 앞(밤) 순군들이 달려온다. 지키고 있던 환관들이 칼을 버리고 도망친다. 이인복이 버티고 서있다. 이인복: 내가 누군지 모르겠느냐 흠칫 멈추는 순군들. 이인복: 임금을 시해하고도 모자라 궁중의 아녀자들까지 죽이려고 하느냐 눈치보는 순군들. 이인복: 안성군에게 전하거라. 임금을 죽여 소원성취를 하셨으니 불쌍한 아녀자들까지 죽여서야 되겠느냐고 #동. 안(밤) 어둠 속의 공민왕과 명덕태후 등. 이인복:(소리) 썩 물러가지 못할까 #동. 앞(밤) 눈치만 보는 순군들. 노려보는 이인복. 지효와 왕사의 법의를 걸친 덕운이 스님들을 데리고 온다. 이인복:(보더니) 이 밤중에 보우왕사님께서 웬일이십니까 덕운:(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데) 지효: 전하께서 변을 당하셨다기에 우선 시다림부터 드리려고 달려왔습니다 이인복: 전하의 시신은 주지스님 방에 뫼셔 놓았습니다 지효: 나무아미타불......가시지요 목탁을 두드리며 독경하며 앞서가는 지효. 뒤를 따르는 덕운과 스님들. #동. 큰방 앞 김수가 달려온다. 김림: 얼마나 죽였느냐 김수: 대신들로 보이는 자들은 모두 죽였습니다 김림: 문하시중은? 김수: 죽였습니다 지효와 덕운이 독경하며 온다. 김림: 웬 중놈들이냐 지효: 보우왕사님이십니다 덕운을 가리킨다. 덕운:..... 염주를 돌리는 손이 덜덜 떨린다. 지효: 전하께서 붕어를 하셨다고 하니 불가의 장례법에 따라 시다림을 올리려는 것입니다. 그래야 전하께서 지옥불을 면하실 것이기에 안으로 들어가는 지효. 그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는 덕운과 스님들. 김수: 안성군께서 임금을 죽이고 나면 불을 질러 알리라 하지 않았습니까 김림:(순군들에게) 대궐에서도 잘 보이게 불을 크게 질러라 순군들, 달려간다. #동. 안(밤) 독경하는 지효와 덕운과 스님들. 김상궁이 안도치를 깨끗이 닦아주고 있다. #대궐의 누각(밤) 김용:...... 대궐 밖을 바라보고 있다. 멀리서 불길이 밤하늘에 치솟는다. 미친듯이 웃기 시작하는 김용. #흥왕사. 부근 언덕(밤) 장작을 쌓아놓고 불을 지르고 있는 순군들. #강안전의 뜰(밤) 김용이 온다. 술렁이고 있는 참모들과 순군들. 김용: 왕이 죽었다. 나를 따르라. 흥왕사로 가서 남은 놈들을 모두 죽여 황제 폐하에게 바쳐야 할 것이야 #도성의 성문. 안(밤) 김용이 기마병을 데리고 달려온다. 그 뒤를 따라오는 순군들. 김용: 성문을 열라. 전하를 구하러 흥왕사로 가야 한다 성문이 열린다. 밖으로 달려나가는 김용과 기마병들. #동. 앞(밤) 달려 나오는 김용과 기마병들. 함성이 일어나며 성문 위에서 돌과 창을 던지는 백성들. 뒤따라 나오던 순군들이 혼란에 빠진다. 김용: 이놈들이 말머리를 돌린다. 성문이 닫히고 있다. 김용: 성문을 열고 저놈들을 모두 죽여라 성문으로 달려가는 김용. 쏟아지는 돌멩이와 창과 화살. 뒷걸음질 치는 김용의 말. #동. 안(밤) 순군을 에워싼 백성들. 단검을 겨누고 눈치만 보는 순군들. 원현이 공철과 함께 나선다. 원현: 안성군이 황명을 빙자하여 우리 국왕전하를 시해하려고 하였으나 전하께서는 무사하시다 웅성거리는 순군들. 원현: 지금부터 김용을 따르는 자는 전하께서 반역죄로 다스릴 것이다. 허나 순순히 무기를 버리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왕명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자는 그 죄를 면해줄 것이다 눈치보는 순군들. 원현: 살고 싶으면 어서 무기를 내려 놓아라 하나둘씩 무기를 내려놓는 순군들. 공철: 집으로들 돌아가시오 이윽고 도망치기 시작하는 순군들. 환호하는 백성들. #동. 부근 길(밤) 도망쳐오는 김용. 서너 명의 기병과 서너 명의 참모 만이 따를 뿐이다. 급히 멈추는 김용. 앞에서 달려오는 말. 겁이 나서 칼을 쓱 빼드는 김용. 가까이 오는 말. 김림이다. 김림: 숙부님 김용: 김림이냐 김림:(와서 멈추며) 숙부님을 마중하러 왔습니다 김용: 왕이 죽지 않았다는 게 사실이냐 김림: 죽었습니다. 제 손으로 분명히 죽였습니다 김용: 으음. 틀림없으렷다. 중전은 김림: 찾고 있는 중입니다 김용: 가자. 중전을 놓쳐선 안 된다 앞서 달리는 김용. 그 뒤를 따르는 김림과 순군들. #흥왕사의 큰방. 앞(밤) 김용과 김림이 온다. 김용:(흠칫 멈추는)..... 최영이 버티고 서있다. 김용: 자네가 여긴 웬일인가? 최영: 안성군께선 웬일이십니까 김용:..... 당황해서 주위를 살핀다. 김수와 순군 서넛이 포박당해 무릎이 꿇려있다. 김용:(얼른)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전하를 시해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오는 길이네 최영: 그러십니까 김용: 전하께서는 최영:..... 김용: 전하께서는 무사하신가 최영: 안성군께서 한발 늦으셨습니다 김용: 이놈들인가 (김수를 가리키며) 이놈들이 전하를 시해했는가 김수: 안성군대감 김용: 이런 죽일 놈들 달려들어 단칼에 김수를 베는 김용. 남은 순군들도 죽인다. 김림: 숙부님 김용: 너도 한패냐 김림: 전 숙부님이 시키는대로 김용: 이놈 김림을 베는 김용. 입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김림. 김용:(칼을 던지고 방을 보더니) 전하.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전하께서 변을 당하시다니. 전하 눈물을 쥐어짜며 방으로 들어가는 김용. 최영:..... 비웃음. #동. 방 안(밤) 방문을 열고 들어와 꼬꾸라지듯 얼굴을 바닥에 처박는 김용. 김용: 전하 엎드려 통곡하던 김용. 고개를 조금 들어 주위를 살핀다. 흑 놀라서 울음이 그치더니 고개를 든다.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나란히 앉아있다. 김용: 전하가 아니십니까 놀래서 좌우를 본다. 신돈과 이인복이 앉아있다. 김용: 살아계셨습니다 전하 (웃으며) 소신은 그것도 모르고 김용 앞에 단검을 던지는 공민왕. 김용, 공민왕을 본다. 공민왕: 네 사지를 찢어죽여야 할 것이나 김용:(숨이 막히는) 공민왕: 네가 연경에서 나를 보필했던 정리를 생각하여 시신만은 온전히 묻어주마 김용: 어째서 신에게 자결을 하라 하시옵나이까. 신은 전하를 구해드리러 공민왕: 정세운을 죽이고 시치미를 떼더니 이번엔 나를 죽이려 하고도 변명을 늘어놓을 작정이냐 김용: 전하, 억울하옵나이다 엎드려 운다. 공민왕:(부르르) 김용: 전하. 신이 정세운을 죽인 것은 정세운이 기황후와 은밀히 서신을 주고 받으며 전하 대신 덕흥군을 왕으로 세우려 한 탓이옵나이다. 전하, 이걸 보십시오 (품에서 서찰 꺼내며) 이건 덕흥군이 정세운에게 보낸 서한이옵나이다. 여기에 쓰기를 공민왕: 저 놈을 끌고 나가 혀를 짤라버려라. 지놈의 혀를 짤라 땅 속에 깊이 묻어 다시는 죽어서도 요상한 소리를 늘어놓지 못하게 하라 #동. 앞(밤) 김용을 끌고 나오는 최영과 참모들. 김용: 전하. 제 말을 더 들어보시옵소서. 지금 신을 죽이시면 덕흥군에게 왕위를 빼앗기십니다. 기황후의 명으로 덕흥군과 최유가 원의 대군을 이끌고 고려로 오고 있나이다. 전하, 신을 살려주시옵소서 허공에 번뜩이는 칼날. #동. 안(밤) 김용의 비명소리. 공민왕:....... 눈을 감아버리는 공민왕. 김용:(소리) 분하다 이놈 #동. 앞(밤) 가슴을 움켜쥐고 피를 흘리는 김용. 김용: 원의 황제가 너를 폐하였으니 너 역시 머지않아 덕흥군 손에 죽을 것이다 꼬꾸라지는 김용. 김용: 죽어서도......내가 네 놈을 저주할 것이야 무수한 칼이 김용을 찌른다. #동. 안(밤) 공민왕:..... 감은 두 눈에 눈물이 배어나온다. #동. 앞(밤) 두 눈을 부릅뜨고 죽은 김용. #영수전의 뜰 김원명, 온다. 안에서 웃음 소리. 멈칫하는 김원명. 이환관이 달려와 허리를 굽힌다. 김원명: 안에 누가 들어 계시느냐 이환관: 중전마마마께서 들어계시옵니다 김원명:..... 찡그리며 전각을 쳐다보는 김원명. #동. 안 다과상. 명덕태후:(웃으며) 비온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고, 내가 며느리를 다시 봤습니다. 그 난리 통에도 살 길을 찾아냈으니 (웃으며 노국공주에게) 그 동안 이 시어미에게 서운한 것이 많았지요 노국공주: 당치 않으시옵니다 명덕태후: 서운하셨을 겁니다. 사사건건 트집만 잡았으니 노국공주:(미소) 명덕태후: 앞으론 바깥 일에는 간여를 안할 겁니다. 내가 살면 얼마를 더 살겠습니까. 만사를 중전에게 맡겨놓고 한가롭게 여생을 마칠까 합니다 (웃는다) 덕녕공주: 두 분 마마의 화기애애한 모습이 정말 보기가 좋습니다 명덕태후:(불쑥 한숨쉬며) 이럴 때 손주가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꼬. 손주 재롱이나 보면서 힐끔 노국공주를 본다. 고개 숙이는 노국공주. 덕녕공주:(얼른) 그게 인력으로 되는 일이겠습니까 명덕태후: 하긴 그렇지 (한숨쉬더니 노국공주의 얼굴 보고 웃으며) 늙은이 욕심이거니 하고 잊어버리세요. 주상의 뒤를 이을 후사가 없으니 대가 끊어지나 싶은 게 서운해서 한번 해본 소립니다 #강안전의 안 ‘술상.’ 신돈과 이인복, 최영이 공민왕과 마주앉았다. 뒤쪽에 이성계가 앉아있다. 공민왕:(술병 들더니) 내가 정세운을 위해서 한잔씩 따르겠습니다 (이인복에게) 받으세요 이인복:(술잔 받쳐든다) 공민왕:(따르며) 조일신은 성미가 급하고 김용은 영리했으나 정세운은 우직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평생 한 눈을 판 적이 없는 충신이었어요. 김용이 시기할 만도 하지요 술이 넘친다. 어쩔 줄 모르는 이인복. 공민왕:(술병 거두며) 미안합니다. 정세운의 얼굴이 떠올라 술잔이 넘치는 것도 몰랐습니다 이인복: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공민왕:(최영에게) 자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흥왕사의 귀신이 될 뻔했다 최영: 신이 어리석어 김용의 말만 믿고 도성을 떠나는 바람에 전하께서 공민왕:(술 따라주며) 김용이 갖고 있던 기황후의 밀서에 덕흥군을 고려 왕으로 삼아 최유와 함께 보낸다고 써 있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또 한번 난리를 겪게 생기지 않았느냐 최영: 북방의 경비는 튼튼하오니 심려치 마시옵소서 전하 공민왕:..... 이성계를 본다. 공민왕: 자네가 이자춘의 아들인 이성계냐 이성계: 예, 전하 공민왕: 가까이 오라 이성계:(최영을 본다) 최영: 가까이 오시게 이성계, 공민왕 앞으로 온다. 공민왕:(잔에 술 따르며) 전쟁에 나가 한번도 진적이 없다지? 최영: 예, 전하 공민왕: 받거라 술잔 내민다. 두 손으로 받쳐드는 이성계. 일어나 뒤로 물러나 앉는다. 공민왕:(웃으며) 수줍음이 많은 청년이구나 이성계: 망,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숙여 보이는 이성계. 공민왕:(신돈 보더니) 편조는 중이냐 속이냐 신돈:(미소) 공민왕: 보우 왕사와 약속한 삼년 기한을 지키지 못했으니 불가와의 인연은 끊어진 게 아니냐 신돈:(미소) 공민왕: 그러니 자네도 한잔 받거라 신돈, 술잔을 집어든다. 공민왕:(술병 들고) 법명이 편조라 했겠다. 허면 이름을 다시 지어야겠는데 뭐라고 지으면 좋을꼬. 옳거니 아비의 성이 신씨라 했겠다. 그러니 성은 신씨로 하고, 이름은 세상을 밝게 비추라는 뜻으로 밝을 돈자를 쓰면 어떻겠느냐. 신돈? 내 생각이 어떠냐 신돈: 전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니 기꺼이 따르겠나이다 공민왕:(술 따르며) 언제나 이 놈의 세상이 환하게 밝아질꼬 신돈의 잔에 술이 넘친다.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잔을 받쳐들고 있는 신돈. 계속 넘치는 술. 그 모양을 바라보는 이인복. #영수전의 안 김원명: 마마. 마마께서 소인들을 살려주셔야겠습니다 명덕태후: 염려하지 마라. 내가 주상을 구해줬는데 주상께서 내 말을 거역하시겠느냐 김원명: 전하께선 편조를 더욱 가까이 하실 것이옵니다 명덕태후: 또 그 놈의 중 얘기냐 김원명: 중전마마께서 편조가 칩거하고 있는 암자까지 찾아가 편조를 데려왔사옵니다. 그러니 명덕태후: 중전이 무슨 면목으로 나서겠느냐. 주상의 대가 끊어지게 생겼는데 김원명:....... 명덕태후: 그러지 않아도 내가 중전에게 침을 한방 놓았다. 내가 늘그막에 손주도 없이 무슨 낙으로 살겠느냐고 김원명: 마마의 손에 여러 목숨이 달려 있나이다. 편조를 다시 대궐에 불러들이면 명덕태후: 염려하지 말래도 그런다 #강안전의 안 공민왕:(잔을 들고) 이건 술이 아닙니다. 피라고 생각을 하세요. 술이 아니라 정세운과 안도치의 핍니다 먼저 마시는 공민왕. 따라서 마시는 신돈, 이인복, 최영. 이성계:....... 공민왕을 바라본다. 공민왕이 본다. 얼른 술잔을 들어 마시고 내려놓는 이성계. 공민왕: 내게 남은 사람은 세 사람 뿐입니다. 세 분이 힘을 합해서 나를 지켜주세요 지그시 미소 짓더니 이성계를 힐끔 바라보는 공민왕. 당황해서 얼굴을 붉히는 이성계. #곤성전의 안 덕녕공주: 편조를 다시 대궐로 불러들일 생각이십니까 노국공주:..... 덕녕공주: 편조는 승복을 입고 있어도 벗고 있어도 노비의 자식입니다 노국공주: 김용이 죽었다고 전하를 거역하는 무리들이 자취를 감추겠습니까. 원과 기황후가 있는한 전하를 시해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무리들이 끊이지를 않을 겁니다 덕녕공주: 편조가 권력을 잡으면 김용에 비하겠습니까 노국공주:...... 덕녕공주: 바닷물은 마실수록 갈증이 난다고 합니다. 편조가 그와 같습니다. 권신들의 배를 채우는데는 한줌의 재물로도 넉넉하지만 노비의 배를 채우는 데는 세상을 다 주어도 모자랄 겁니다 노국공주: 그렇다면 편조에게 세상을 다 주어야지요 고개를 돌려버리는 노국공주. #대궐의 길 최영과 이성계 온다. 최영: 전하께서 자넬 이쁘게 보셨네 이성계: 소장은 장군을 따를 뿐이옵니다 최영: 나를 따르다니? 전하께 충성을 바쳐야지 웃으며 이성계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가는 최영. 이성계:....... #강안전의 안 공민왕: 이젠 됐느냐 신돈:...... 공민왕: 내가 너를 내 사부로 삼아 대궐에서 살게 할 것이다. 허면 누가 널 건드리겠느냐 신돈: 전하. 소원이 한 가지 있사옵니다 공민왕:..... 신돈:..... 공민왕: 말을 해보아라 신돈: 소인을 부자로 만들어 주십시오 공민왕: 부자가 되고 싶다 신돈: 예, 전하 공민왕:(웃으며) 재물이 탐이 나서 다시 환속을 했느냐 신돈: 그렇사옵나이다 전하 공민왕: 내가 어찌하면 널 부자로 만들어줄 수가 있겠느냐 신돈: 남대가의 상권을 소인에게 주시옵소서 공민왕:...... 신돈: 남대가에서 돈이 되는 것은 차와 인삼이옵나이다. 전하께서 소인에게 차와 인삼을 사고 파는 이권을 주시면 소인은 삼년 안에 고려에서 제일 가는 부자가 될 것이옵니다 공민왕:(웃으며) 내가 좋은 스승을 두었다고 생각했더니 알고 보니 장사꾼이었더란 말이냐 신돈: 소원을 들어주시는 겁니까 전하 공민왕: 들어주고 말고 신돈: 고맙습니다 전하 일어나는 신돈. 허리굽혀 절하고 나가는 신돈. 공민왕:.....(바라본다) 문이 닫힌다. 공민왕: 부자가 되고 싶다? 어이없다는 듯이 웃는 공민왕. #동. 뜰 나오는 신돈. 이인복이 기다리고 있다. 이인복: 전하께 부자가 되고 싶다고 아뢰셨는가 신돈: 들으셨습니까 이인복: 진심일 리는 없을 것이고 신돈: 허면 전민변정도감을 다시 세울까요? 이인복:....... 신돈: 두 번 다시 그런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이인복: 전하께서 자넬 다시 부르신 건 그 때문이 아닌가 신돈: 전하께서 원하시는 게 뭐겠습니까 이인복:...... 신돈: 전하께선 가난하십니다. 온갖 부를 권신들이 다 쥐고 앉아 있는데 전하께서 무슨 수로 그걸 다 뺏으시겠습니까. 그러니 전민변정도감을 세우시려는 게 아닙니까 이인복: 그거야 백성들의 땅을 찾아주자는 게 아닌가 신돈: 성산군대감. 조정의 일은 성산군대감께서 맡으시지요 이인복:(신음) 신돈: 전하께서 최영을 같이 불러 형제의 예로서 대한 것은 무신의 난을 경계하신 겁니다. 한번 권력의 맛을 본 무신들이 끝까지 전하께 충성을 바치겠습니까. 기회가 있으면 또 반기를 들 겁니다. 조일신과 김용이 다 그것을 꿈꾸다 죽은 것이 아닙니까 이인복: 전하께서 믿으시는 것은 자네 뿐일세 신돈: 조일신과 정세운, 김용이 다 죽었습니다. 모두 전하의 충복들이 아니었습니까. 소인은 그 뒤를 이을 생각이 없습니다 이인복: 전하를 믿지 못하겠다? 신돈: 믿지 못하는 건 전하십니다 이인복:...... 신돈: 용상에 앉아계신 전하께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대신들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이번엔 누구 차례냐고 묻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까 이인복:......(바라보더니) 자네가 그런 사람이었나 신돈: 잊으셨습니까. 소인은 노비의 자식입니다 이인복:..... 신돈: 월선 스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신 덕분에 월선스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직전에야 정식으로 구족계를 받은 노비의 자식입니다. 그런 소인이 권력을 탐하겠습니까 이인복:...... 신돈: 소인은 부자가 되는 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전각을 향해 허리를 굽히는 신돈. 신돈: 전하. 고맙습니다 돌아서 가는 신돈. 바라보고 서있는 이인복. #대궐의 길 신돈, 온다. 관리들이 황급히 인사를 한다. 그때마다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맞절을 해대는 신돈. #삼사우사의 방 안 최영: 그럴리가요 이인복:...... 최영: 편조가 전하께 그리 아룄단 말씀입니까 이인복: 무슨 꿍꿍이 속인지 최영:(신음하더니) 하긴 한번 뜨거운 맛을 봤으니 겁이 나기도 하겠지요 이인복: 그럴 위인이 아닐세, 편조는 최영:..... 이인복: 세상을 뒤집어놓고 싶은 게 편조가 아닌가 신음하듯 한숨을 내쉬는 이인복. #초선의 집. 뒷채 마당 술판이 벌어졌다.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는 박의처. 술 마시고 고기 뜯는 원현과 공철 등이 부러워 침을 꿀꺽 꿀꺽 삼키고 있는 덕운. 공철: 덕운스님도 한 점 드시죠 고기 덩어리를 내미는 공철. 저도 모르게 손을 내미는 덕운. 원현: 스님이 고기를 먹으면 되나 얼른 손을 치우는 덕운. 원현: 덕운스님도 아예 파계하고 속세로 내려오시죠. 편조스님도 다시 승복을 벗었는데 어떻습니까 덕운: 개태사는 누가 지키고 원현: 별 걱정을 다 하십니다. 그러지않아도 중이 넘쳐나서 탈인데 덕운스님이 환속을 한다고 누가 잡겠습니까 덕운: 하긴 넘쳐나는 게 중이지 (웃더니) 에라 모르겠다 덥썩 고기 한 점 집어들어 뜯어 먹기 시작하는 덕운. 그 바람에 웃음이 터진다. #동. 안방 초선:(곱게 흘키며) 제가 그렇게 졸라도 암자 문을 걸어잠그고 한마디 대꾸가 없으시더니, 그렇게 쉽게 밖으로 나오십니까 신돈:(미소) 초선:(웃으며) 중전마마께서는 참 대단하신 분입니다. 그렇게 굳게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여셨으니 신돈: 그게 그렇게 서운했습니까 초선:.......(바라보더니) 홍건적들이 암자로 들이닥쳤을 땐 꼼짝 없이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암자 안에서 미동도 안하시길래 스님께서 성불을 하셨는 줄 알았습니다. 예, 서운했습니다 신돈:....... 초선: 허나 어쩌겠습니까. 어차피 끊어진 이승에서의 인연인데..... 가만히 고개 돌리는 초선. 그런 초선을 지그시 바라보는 신돈. 불쑥, 신돈: 보살님께서 한가지 해주실 일이 있습니다 초선:(본다) 신돈: 나를 위해서 돈을 좀 벌어주셔야겠습니다 초선: 무슨 말씀이신지 신돈: 가엾은 것이 백성들이자 무지몽매한 것도 백성들이지요. 평생을 권신들에게 부림을 당하면서도 권신들이 던져주는 한조각 먹이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또한 백성들이 아닙니까. 그러니 내가 돈을 좀 벌어서 백성들을 배불리 먹여야겠습니다 초선: 그러자면 권력이 있어야지요 신돈: 돈이 바로 권력이지요 초선:...... 신돈: 내가 전하께 남대가의 상권을 달라고 했습니다. 보살님께서 그걸 이용해 돈을 좀 벌어주셔야겠습니다 싱긋 웃는 신돈. #동. 마당 나오는 신돈. 별채에서 마셔대는 원현 등의 왁자지껄한 소리. 싱긋 웃는 신돈. 신돈: 알아보셨나 박서방: 예, 스님 신돈: 김용에게 붙어 나를 모함하던 남대가의 상인놈들을 한 놈도 빠짐없이 찾아내야 하네 박서방: 예, 스님 #동. 안방 초선:.......(싱긋 웃더니) 이제야 세상 이치를 깨달으셨습니까 환하게 웃는 초선. #김원명의 집. 앞 대문이 열리더니 김원명이 얼굴을 내민다. 신돈이 서있다. 김원명: 웬일로 내 집을 다 찾으셨습니까.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안으로 들라고 손을 내미는 김원명. 버선발이다. #동. 사랑방 안 상석에 앉은 신돈. 부복하듯 엉거주춤 앞에 앉은 김원명. 신돈: 천한 노비의 자식이 주인 대신 상석에 앉아 있으니 마음이 편치가 않습니다 김원명: 별말씀을요 신돈: 하긴 이 자리가 원래 죽을 자리지요 김원명: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처분만 기다리고 있질 않습니까 신돈:......(갑자기 싱긋 웃으며) 전하께는 잘 말씀을 드렸습니다. 흥왕사의 난 때 대신들이 도망을 친 것은 당연한 게 아니냐구요 김원명: 으음 (바로 못 보는) 신돈: 나라도 그랬겠습니다. 평생 모은 아까운 재산을 남겨두고 아무리 임금이지만 대신 죽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소생은 원래 가진 것이 없으니 전하를 지켜드린 것이고 (웃으며) 덕분에 소인은 팔자가 좀 피게 생겼습니다 웃어대는 신돈. 고개를 돌리며 신음하는 김원명. 신돈:(바싹 디밀며) 대감께선 얼마나 모으셨습니까 김원명:(흠칫해서 본다)...... 신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반만 내놓으시지요 김원명: 나는 국록만 먹고 산 사람이외다 신돈:......(바라보는) 김원명: 으음 (다시 고개 돌리는) 신돈: 허면 할 수 없지요. 전하께 그리 고하는 수밖에 벌떡 일어나는 신돈. 김원명: 얼마나 내놓으면 되겠소이까 신돈: 국록만 먹고 사셨다니 대신 몸으로 떼우셔야 되겠습니다 방문으로 가는 신돈. 김원명:(일어나며) 네 이놈. 네 놈이 태후마마의 재산까지 넘본단 말이냐 신돈:(돌아보더니) 태후마마의 재산이라 하셨소이까 김원명: 어디 니 마음대로 해보아라 이 놈 #곤성전의 복도 달려들어오는 명덕태후. 허리굽히는 김상궁. 명덕태후: 어서 고하거라 김상궁: 예, 마마 명덕태후: 아니다 직접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명덕태후. #동. 안 명덕태후:(들어오며) 이런 고얀 일이 있나. 편조를 시켜 나를 위협하다니 노국공주:(웃으며) 무슨 일로 그리 역정을 내십니까 어마마마 명덕태후: 몰라서 물으시는가 노국공주:(웃으며) 앉으시지요 마마 명덕태후:(앉으며) 내가 김원명이한테 맡겨놓은 재산은 위급할 때에 주상과 왕실을 위해서 쓰려고 모아둔 것이야. 헌데 그걸 내놓으라니. 기가 막혀서. 주상께서 에미한테 그러실 리는 없고 필경 자네 생각이렷다 노국공주: 그걸 다 지고 가시겠습니까 명덕태후: 지고 가다니 노국공주: 전하와 왕실을 위해 쓰시려고 모아둔 재산이라면 더는 갖고 계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명덕태후:(입이 딱 벌어지는) 노국공주:...... 빙긋 웃는. #법왕사의 법당. 안 불상. 보우:..... 신돈:..... 뒤에서 노려보듯 앉은 신돈. 보우: 물러나라? 신돈: 예. 스님께선 왕사의 자격이 없으십니다 보우:......(스르륵 두 눈을 감는) 신돈:....... 번뜩이는 신돈의 눈빛. <신돈 43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