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 44회 <신돈> -44회- #강안전의 뜰 김원명, 들어온다. 흠칫 놀란다. 이인복, 경천흥, 최영, 이춘부, 이인임을 비롯한 대신들이 서성거리고 있다. 김원명: 으흠 신음하더니 경천흥의 옆으로 간다. 김원명: 전하께서 무슨 일로 조정대신들을 대전으로 부르신 겁니까? 경천흥: 전하께서 고흥군을 문하시중으로 삼으셨습니다 김원명: 고흥군이라면 경상도 도순문사 유탁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경천흥: 그렇지요 김원명:(혀를 차는) 사람이 없어서 경천흥: 그뿐이 아닙니다. 전하께서 성산군의 아우인 이인임을 삼사우사로 삼으셨습니다 김원명:.... 본다. 이인임이 싱글벙글하며 이인복에게 귓속말을 건네고 있다. 김원명: 조정의 기강을 바로 잡는 감찰 자리는 형에게 맡기고, 나라의 재정을 관리하는 자리는 아우에게 맡겼습니다 경천흥: 더 기막힌 건 이춘부를 첨의 평리로 삼으신 겁니다 힐끔 이춘부 쪽을 눈짓하는 경천흥. 점잖을 떨고 있는 이춘부. 김원명: 허면 최영을 밀직사로 삼으셨다는 것도 사실입니까 경천흥: 예. 일찍이 무인을 밀직사로 삼은 예가 없었거늘 최영과 이색이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김원명: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잖으신가 경천흥:(바싹) 지금 대전에 누가 들어 있는 지 아십니까. 편조가 들어있소이다 김원명: 조정대신들을 다 불러다 놓고 고흥군을 문하시중으로 삼는 자리에 편조를 옆에 앉혀놨단 말입니까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지르는 김원명. 모두 김원명을 본다. 당황해서 헛기침하는 김원명. #동. 안 다과상. 공민왕: 차 맛이 어떻습니까 유탁: 으음 공민왕: 쓰다 달다 말씀이 없으십니다 유탁: 황공하옵나이다 전하 공민왕: 고흥군의 성격이 이렇네 웃으며 신돈을 보는 공민왕. 신돈:(빙긋) 공민왕:(유탁에게) 나는 고흥군이 말수가 적어서 좋아합니다 유탁: 전하. 소신은 문하시중의 대임을 맡을 자격이 없사옵니다 공민왕: 방금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나는 말만 앞세우는 사람들이 신물이 난다구요 유탁: 조정에 신보다 덕망 있는 대신들이 여럿 있사옵니다 공민왕:(막듯이) 내가 신돈을 사부로 삼을 작정입니다 유탁:(신돈 보지 않고) 사부라니오 공민왕: 신돈을 스승으로 삼아 가까이 두겠다는 말씀입니다 유탁: 선대왕들께서 고승을 모셔다 국사와 왕사를 삼았다는 전례는 알고 있사오나 사부를 따로 두셨다는 말씀은 들어본 적이 없사옵니다 공민왕: 문하시중께서 차맛은 모르시나 세상 돌아가는 물정은 잘 알고 계시나 봅니다 유탁: 으음 끝까지 신돈을 안 본다. 공민왕:(최만생에게) 궐 안에 사부께서 머물만한 곳을 찾아 보았느냐 최만생: 예, 전하 공민왕: 그래? (정색하고) 대전과 너무 멀어도 안 되고 너무 가까워도 안 된다 최만생: 예, 전하 공민왕:(신돈에게) 다행입니다. 대궐에 남은 방이 있다니 신돈: 전하. 소인은 궐 밖에서 지내는 것이 편합니다 공민왕: 내가 불편해서 그래 유탁:(번쩍) 공민왕: 한 밤중에 볼 일이 있으면 어떡하느냐. 그때마다 사람을 보내 불러와야 하니 유탁: 전하 공민왕:(유탁에게) 안 그렇습니까 문하시중대감. 좋은 책과 차는 항상 곁에 두고 있어야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하루의 피곤을 풀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좋은 스승도 마찬가지지요. 예. 옆에 두고 모셔야지요 신돈을 보고 웃는 공민왕. #동. 뜰 유탁이 나온다. 이인임:(얼른 가며) 경하드립니다 고흥군대감. 오랜만에 문하시중 자리가 주인을 찾았습니다 유탁: 으흠 이인임:(돌아보며) 앞으로 고흥군대감을 모시고 잘해보십시다 웃어대는 이인임. 최만생:(나오며) 두 분 밀직사사께선 안으로 드시랍니다 최영과 이색, 안으로 들어간다. 웅성거리는 대신들. 최만생: 남은 분들은 모두 돌아가시랍니다 김원명: 어허, 이게 무슨 망신인가. 기껏 오라 해놓고 그냥 가라 하시니 투덜거리는 김원명. 그러나 모두 모른척 흩어진다. #동. 안 시립한 이색과 최영. 최영:..... 힐끔 공민왕 옆에 앉은 신돈을 본다. 공민왕: 앞으론 병부와 군부의 일은 최영이 맡아서 고하고 조정의 일은 이색이 맡아서 고하라 허리굽히는 두 사람. 공민왕: 내가 신돈을 사부로 삼아 궐 안에 머물 곳을 마련해주었다. 급한 일이 아니면 사부와 먼저 상의한 후에 고하라. 알겠느냐 말없이 허리를 굽히는 이색과 최영. #중서문하성의 회의실. 김원명: 전하께서 조정 대신들을 모두 강안전으로 부르신 까닭이 뭡니까? 편조를 사부로 삼으시든 말든 그건 왕실의 사사로운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조정대신들을 다 불러 들이신 것은 편조를 높여주고 조정 대신들의 기는 꺾어놓자는 것이 아닙니까 이인임: 꼭 그렇게 곡해하실 일은 아니지요 김원명: 곡해라니요 이춘부: 곡해지요. 전하께서 스승을 곁에 두시겠다는 게 어찌 왕실의 사사로운 일입니까. 나라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지요 김원명: 두 분께선 편조가 누군지 몰라서 이러십니까 이춘부: 그까짓 신분은 따져서 뭘 합니까. 사람의 됨됨이를 가려야지요 경천흥: 전하께서 최영과 이색을 불러 조정의 일을 먼저 편조에게 고하라고 하셨다는 말씀을 못 들었소이까 이춘부: 그러실 만도 하지요.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 세 번의 난을 겪으셨어요. 기철의 난은 그렇다치고, 조일신과 김용이 다 전하의 심복이 아니었습니까. 그러니 전하께서 우릴 믿지 못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김원명: 성산군께서도 그리 생각을 하십니까 이인복: 사리를 따져가며 하면 되겠지요 김원명: 사리에 어긋나니 하는 말이지요 이인복: 좀 더 두고 보십시다 김원명: 이런 수모를 당하고도 두고 보자니오 이인복: 지금은 입이 백 개라도 전하께 드릴 말씀이 없어요. 김용의 난으로 전하께서 아끼시는 정세운과 안도치를 잃으셨어요. 상심이 크시니 더욱 우릴 믿지 못하시는 겁니다 유탁:..... 신음하며 가만히 듣고 있는 유탁. #대궐의 길 최만생을 따라오는 신돈. 최만생: 대궐의 길이 비슷비슷해서 자칫하다가는 길을 잃기가 십상이지요. 이쪽으로 오십시오 앞서가는 최만생. #어느 전각. 마당 ‘전각.’ 바라보고 서있는 신돈. 최만생: 전하께서 대전과 멀어도 안 되고 너무 가까워도 안 된다고 하시니, 마땅한 곳을 찾느라고 애를 먹었습니다 신돈: 수고하셨네 최만생: 여기선 대전도 가까울뿐더러 궐 밖으로 나가는 후문이 바로 뒤쪽이라 사람의 눈을 피하는 번거로움을 덜기가 편하실 것입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앞서가는 최만생. 신돈:...... 다시 한번 전각을 바라보는 신돈. #동. 안 방문을 여는 최만생. 안으로 들어오는 신돈. 둘러본다. 단촐하게 꾸민 방 안. 최만생: 미처 방 안을 다 꾸미지 못했습니다. 필요한 집기를 말씀해주시면 오늘 안으로 들여놓겠습니다 신돈: 이만하면 됐네 최만생: 이 방엔 재미난 사연이 있습니다. 어느 선대왕께서 궐 밖의 여인을 자주 대궐로 불러 들이셨는데 남의 눈에 띄는 것을 피하려고 대궐 출입이 편안 여기다 전각을 지으셨다는 겁니다 신돈:(본다) 최만생: 무엇이든지 시켜만 주십시오 깊숙이 숙여보이는 최만생. #동. 마당 나오는 최만생. 힐끔 전각을 뒤돌아보더니 히죽 웃는다. #동. 안 신돈:..... 방 안을 둘러본다. 왕실의 가구들. 신돈:..... 부르르. 보우:(소리) 물러가라고 했느냐 신돈:(소리) 예. 스님께선 왕사의 자격이 없으십니다 #법왕사의 법당. 안(회상) 신돈: 나라가 위태로울 때 왕사님께선 뭘 하고 계셨습니까. 예. 물론 부처님의 자비를 구하셨겠지요 보우:(빠르게) 나무관세음.... 신돈: 부처님의 자비심만 가지곤 나라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홍건적의 창칼에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죄없는 백성들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보우: 그래서 나와 약속한 삼년 기한을 어기고 암자 밖으로 뛰쳐나왔느냐 신돈: 스님 (피를 토하듯 외치고)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난 소생의 소원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글을 배워 입신양명을 하는 것이었겠습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을 익혀 열반에 드는 것이었겠습니까. 그런 꿈은 꾼 적도 없었습니다. 하루라도 배불리 먹고 맘편히 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중생의 소원을 스님께선 어리석다 하시겠지요. 이승에서의 온갖 고통을 참고 또 참으면 저만치 부처님의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시겠지요 보우:......(눈 감는) 신돈: 스님께선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나라의 왕사님이시며 불가의 큰 어른이 아니십니까. 스님께서 한마디만 하시면 수많은 비구들이 들고 일어나 스님을 따를 겁니다. 스님께서 썩은 권력을 치라고 하시면 썩은 권력을 칠 것이고, 썩은 왕실을 치라고 하시면 왕실인들 뒤집어 엎지 못하겠습니까. 그런 권력을 가지고도 스님께선 목탁만 두드리고 계십니다 보우:...... 신돈: 그런 힘을 가지고도 쓰지 않는 것은 죄악입니다. 세상을 바꿀 힘을 가지고 있는데도 내세의 영화만 기다린다면 그건 스님의 탐욕이요 죄악입니다 보우: 부처님께서 허망하고 또 허망한 것이 이 세상이라고 하셨느니라. 어쩌면 너의 소원대로 잠시 그러한 세상이 올 지도 모르나 그건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 신돈: 허상이라도 좋습니다. 하루라도 단 하루라도 중생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나는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보우:........ 지그시 눈을 감고 앉은 보우의. #어느 전각의 방 안(현실) 신돈:...... 부릅뜬 두 눈. #영수전의 안 명덕태후: 말도 마라. 며느리한테 망신만 당했다 김원명: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태후마마 명덕태후: 내가 무슨 재산이 있느냐고 하니까 죽을 때 가지고 가실 거냐고 하더라 김원명: 원, 저런 명덕태후: 할 수 없지. 시어미 대접을 안 해주겠다고 하니 내가 허릴 굽힐 수밖에. 가까이 오시게 김원명, 가까이 간다. 귓속말을 건네는 명덕태후. 김원명:(펄쩍 뛰며) 아니 되십니다 마마 명덕태후: 내가 시키는대로 하거라 김원명: 차라리 전하를 만나 뵙고 담판을 지으시지요 명덕태후: 주상이라고 내 편을 들어주겠느냐. 한통속이거늘 김원명: 편조가 한번만 손을 벌리겠습니까 명덕태후: 얼마나 내놓으라는 건지 한번 두고 보자꾸나 #동. 앞 나오는 김원명. 경천흥: 태후마마께선 뭐라고 하십니까 김원명:(한숨) 경천흥: 내놓으시겠다고 하십니까 김원명: 큰일날 소리. 태후마마께서 무슨 재산을 모으셨다고 펄쩍 뛰는 김원명. #어느 전각의 안 신돈:...... 지그시 바라보는. 이인임:(손 내저으며) 말도 마시게. 조정에 난리가 났네. 노비의 자식이 전하의 사부라니. 이게 될 법이나 한 소린가 (웃으며) 모두 입들이 댓발이나 나왔네그려 신돈:(싱긋) 이인임: 그나저나 우리가 자넬 찾아온 것은 다름이 아닐세 이춘부를 힐끔 보더니 품에서 땅 문서를 꺼내 내놓는 이인임. 이인임: 내 재산의 반일세. 전하께서 좋은 일에 쓰시겠다고 하시니 우선 반을 가지고 왔네 신돈: 고맙습니다 이인임:(헛기침 하고 이춘부에게) 하실 말씀이 계시면 하시게 이춘부:....(신돈을 유심히 바라본다) 신돈:......(싱긋) 이춘부:(옷깃을 여미고 무릎을 꿇더니) 과연 미륵보살이십니다 이인임:(기막혀보는) 이춘부: 사람들이 편조거사님 온 몸에서 광채가 난다고 하여 믿지 않았사온데 오늘 가까이서 보니 제 눈이 부셔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신돈:.....(또 한번 싱긋) 이춘부: 선친께선 평생을 청렴을 미덕으로 여기고 사신 까닭에 자식들에게 남겨준 재산이 없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소인 역시 모은 재산이 없습니다 신돈: 제 눈엔 첨의평리 대감 몸에서 광채가 납니다 싱긋 웃는 신돈. #동. 마당 나오는 이인임과 이춘부. 이인임: 옛말에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고 하더니 대감을 두고 한 말입니다 이춘부:(가슴을 두드리며) 실은 나도 조금 가져왔소만 대감께서 두툼한 땅 문서를 내놓는 바람에 손이 부끄러워 그만 뒀소이다 이인임:(비아냥거리듯) 그러셨소이까 앞에 김원명이 온다. 이인임: 판도판서 대감께서 여긴 웬일이십니까? 김원명:(당황해서 헛기침) 이인임: 태후전의 심부름을 오셨습니까? 김원명: 나는 따질 것이 있어서 왔소이다 내뱉고 안으로 들어가는 김원명. #동. 복도 들어오는 김원명. 방을 보더니 망설이는 김원명. 헛기침을 한다. 안에서 반응이 없다. 연방 헛기침을 해대는 김원명. #어사대부의 방 안 이인임, 들어온다. 이인임: 형님. 편조의 입이 쩌억 찢어지게 갖다 바치고 오는 길입니다 이인복:(신음) 이인임: 나오면서 보니 김원명이 들어오더이다. 태후전에서도 별 수가 없는 모양이지요 (웃는데) 이인복: 쓸데 없는 일을 하셨네 이인임: 두고 보십시오. 앞으로 편조의 세상이 올 겁니다. 벌써부터 조정 대신들이 편조의 눈치를 보느라고 급급합니다. 오늘 이춘부와 함께 편조를 만나러 들어갔는데 이춘부가 이러는 겁니다. 사부님 몸에서 광채가 나는 바람에 눈을 뜰 수가 없다구요. 듣고 있자니 구역질이 나서 혼이 났습니다 웃는 이인임. 이인복:...... 가만히 한숨 내쉬는 이인복. #어느 전각의 방 안 김원명:...... 끄응 신음하며 신돈의 눈치를 보는 김원명. 신돈:...... 보일 듯 말 듯한 미소. 김원명:..... 또 한번 신음하더니 품 속 여기저기서 땅문서를 꺼내놓는다. 싱긋 웃는 신돈. 김원명: 태후마마께서 신신당부를 하셨네. 무슨 뜻인지 아시겠는가 신돈:..... 김원명: 태후전의 위신을 생각해서 비밀로 해주시게 신돈: 그러시지요 김원명: 명심하시게. 이번 한번만일세 부르르 떠는 김원명. #곤성전의 마당 덕녕공주, 온다. 분주히 오가는 상궁과 나인들. 찻상을 안으로 들여간다. 바라보는 덕녕공주. 김상궁:(오며) 대비마마 덕녕공주: 웬 찻상들이냐 김상궁: 중전마마께서 조정대신들의 부인들을 불러 보고 계시옵니다 덕녕공주:...... 전각을 본다. #동. 안 찻상을 받고 있는 대신들의 부인들. 노국공주: 홍건적의 난을 겪으셨으니 나라의 소중함을 잘 아셨을 겁니다. 그 수모는 고사하고 생사가 묘연하질 않았습니까. 복주로 피난을 가시는 전하의 모습이 어찌나 초라한 지 나도 모르게 피눈물이 흐르더이다 고개를 들지 못하는 부인들. 노국공주: 진즉에 국력을 키워 외침에 대비했다면 전하께서 그런 수모를 당하셨겠습니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내 몸에 걸치고 있는 온갖 패물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더이다 저도 모르게 손이 낀 가락지를 손으로 덮어 감추고 가슴에 단 노리개를 손으로 가리는 부인들. 노국공주: 아녀자의 미덕은 검소함에 있습니다. 아무리 청렴결백한 관리라고 해도 부인이 사치를 즐기면 어찌 깨끗할 수가 있겠습니까 부인들을 노려보는 노국공주. 더욱 몸둘바를 모르는 부인들. #동. 마당 부인들이 나온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도망치듯 간다. 바라보는 덕녕공주. 김상궁: 안으로 드시지요 대비마마 #강안전의 안 공민왕:(웃으며) 그래요? 허면 신돈이 소원대로 부자가 됐겠습니다 이인복: 전하께선 모르시는 일이었습니까 공민왕: 나는 몰랐습니다 이인복:(바라보는) 공민왕:(정색하고) 가만히 있어도 너도 나도 재물을 갖다 바치는데 어떡하겠습니까. 임금인 나보다 신돈을 더 무서워하다니, 참 고약한 인심입니다 #곤성전의 안 수북히 쌓인 가락지와 패물, 노리개를 정리하고 있는 김상궁과 박상궁. 싱긋 웃고 있는 노국공주. 덕녕공주: 비싼 찻값을 받으셨습니다 노국공주: 더 내놔야지요 덕녕공주: 원망이 자자합니다 노국공주: 누구의 원망 말씀입니까 덕녕공주: 신돈이 묵고 있는 전각이 무너질 정도로 대신들이 드나들고 있다고 하질 않습니까 노국공주: 나는 백성들의 원성이 높다고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덕녕공주: 이런 일은 하시려면 당당하게 하셔야지요 노국공주: 저들이 모은 재산이 당당하게 모은 것입니까 덕녕공주:...... 노국공주: 홍건적의 난 때 백성들은 수레가 없어 늙은 부모와 병든 가족을 버리고 피난을 갔다고 합니다. 권신들은 수레에 금은보화를 잔뜩 싣고 피난을 갔고요. 재물이 인명보다 귀합니까? 그러니 백성들의 원망이 드높은 겁니다 고개를 돌려버리는 노국공주. 가만히 한숨을 내쉬는 덕녕공주. #어느 전각의 방 안 수북이 쌓인 땅문서들. 이인복:(보더니) 꽤나 모으셨으이 신돈:...... 이인복: 그걸 하루에 다 모으셨는가 신돈: 예, 성산군대감 이인복: 그걸 어디다 쓰시려구 신돈: 기황후가 덕흥군을 고려의 왕으로 봉했습니다 이인복:..... 신돈: 그간은 홍건적에게 길이 막혀 군사를 보내지 못했으나 길이 트였으니 덕흥군을 앞세워 고려를 침공할 것입니다 이인복: 그 일은 염려마시게. 지금의 군사만으로도 그 정도는 막을 수 있네 신돈:...... 이인복: 내가 듣기론 기황후가 덕흥군에게 내준 군사는 고작 일 만에 불과하다고 하네 신돈: 덕흥군이 문제가 아니지요. 차제에 요동의 심장부로 진출을 해야 합니다 이인복:(바라본다) 신돈: 군사를 먹일 양식만 든든하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이인복:(웃으며) 이 사람. 고려가 요동을 넘보면 원이 가만히 있겠나. 국력을 쏟아 고려를 칠 것이 아닌가 신돈: 그럴 여유가 있겠습니까 이인복: 원은 아직 대국일세 신돈: 원은 머지않아 망할 것입니다. 한족들의 반란이 게속되는한 결국은 원의 근거지였던 몽골로 쫓겨날 것입니다. 허면 요동땅은 무주공산이 아닙니까 이인복:......(바라보는) 신돈: 고려의 군사를 늘려야 합니다. 고구려의 영토였던 요동땅을 수복할 기회는 이번 뿐입니다 번뜩이는 신돈의 눈. #동. 마당 나오는 이인복. 전각을 뒤돌아보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는다. 가려는데 들어오던 경천흥이 당황해서 몸을 돌린다. 이인복: 찬성사대감께서도 전하의 사부님을 뵈러 들어오셨나 경천흥: 나는 편조에게 바칠 땅이 한 뼘도 없소이다 내지르는 경천흥. 안으로 들어간다. 바라보고 서있는 이인복. #동. 안 신돈:(노려보는) 경천흥:(마주 노려보는) 신돈: 아직도 나를 미워하시오? 경천흥: 개꼬리를 삼년 묵힌다고 황모가 되겠느냐 신돈:(빙긋) 경천흥: 전하께선 너를 중용한 것을 반드시 후회하게 되실 것이야 신돈: 내가 마음만 먹으면 이 자리서 공을 죽이고도 남는다는 것을 모르시는가 경천흥: 해보시게 신돈: 기개가 장하시외다 경천흥:(노려보는) 신돈: 그만한 기백이면 천하를 얻을 수도 있겠거늘 기껏 한다는 일이 노비의 자식을 시샘하는 일이오이까. 재주가 아깝소이다 경천흥: 나는 재주라곤 고집 뿐이니 나를 설득할 생각은 마시게 신돈:.......(바라본다) 경천흥:......(고개 돌리는) 신돈: 머잖아 또 한바탕 난리가 터질 거외다 경천흥:(본다).... 신돈: 기황후가 보낸 군사들이 덕흥군을 앞세워 고려를 침공할 거외다. 그러니 찬성사께서 서북면 도원수를 맡아주셔야겠소이다 경천흥: 나는 병법을 모르는 사람이요 신돈: 최영을 데리고 가시면 반드시 이길 거외다 경천흥: 허면 최영에게 그 자릴 주면 될 것이 아니오 신돈: 군권을 무신들에게 줄 수는 없소이다 경천흥:(노려보는) 신돈: 전하의 뜻이외다 못을 박는 신돈. #대궐의 길 경천흥, 온다. 김원명: 편조가 서북면 도원수 자리를 줬다는 게 사실입니까 경천흥:(흠칫) 김원명: 편조의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죽거리듯 웃는 김원명. #강안전의 안 공민왕: 경천흥이 뭐라고 하더냐 신돈: 쾌히 승낙하였습니다 공민왕:(노국공주에게) 그것보세요. 모두 쩔쩔매지를 않습니까 노국공주:(미소) 내친 김에 요동까지 나가야지요 공민왕: 그래야지요 웃으며 신돈을 보는 공민왕. 신돈:....... 보일 듯 말 듯한 미소. #기황후의 처소. 안 기황후:(버럭) 아직도 압록강을 건너지 못했다니 대체 덕흥군과 최유는 뭘 하고 있다는 게냐 박불화: 황공하오나 황후폐하, 겨우 일 만의 군사로는 고려군과 대적할 수가 없는 지라 기황후: 일 만이 아니라 오천의 군사만 빌려줘도 고려 왕을 잡아올 수가 있다고 하질 않았느냐 박불화: 황공하오나 황후폐하, 김용의 반란이 실패로 끝난 이후 고려 조정에서 호응하던 자들이 눈치만 보고 있는 지라 기황후:(신음) 박불화: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황후폐하. 매서운 추위가 물러가고 나면 조만간 결판이 날 것이옵니다 #요동의 최유의 군막. 앞 추위에 떨고 있는 원나라 군사들. 군불을 피워놓고 불을 쪼이고 있다. 유인우, 온다. 유인우: 이 놈들.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겠느냐 호통을 치는 유인우. 도망치는 원군들. #동. 군막. 안 들어오는 유인우. 유인우: 대체 언제 압록강을 건널 겁니까 최유: 개경에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소이다 유인우: 김용이 대역죄로 참수를 당했는데 누구의 연락을 기다린다는 겁니까 최유: 강릉대군에게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외다 덕흥군: 그만 연경으로 돌아가세 최유:(버럭) 연경으로 돌아가면 기황후 손에 죽습니다 덕흥군:(찔끔해서) 공연한 일을 벌여가지고 최유: 우리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데 그런 마음 약한 소리를 하십니까 유인우: 결단을 내리시오. 추위와 굶주림 때문에 도망치는 군졸들이 나날이 늘고 있소이다 최유: 대체 조소생이란 놈은 뭘 하고 있는 게야 #고려군. 군막. 안 이인임: 전황이 어떻습니까 경천흥: 적이 꼼짝을 안하고 있으니 알 수가 없소이다 이인임: 전하께선 어째서 압록강을 건너 적을 치지 않느냐고 재촉이 빗발 같습니다 경천흥: 그래서 장군을 보내셨소이까 이인임:(웃으며) 난리를 하도 겪은 전하시니 외방에 나가 있는 장수를 믿지 못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경천흥: 군의 사기가 말이 아니외다. 총병관 정세운의 죽음도 그렇고, 그 일로 안우, 김득배, 이방실 등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을 두고 말들이 많소이다 이인임: 그렇겠지요 경천흥:(눈치 보며) 심지언 새 임금을 모시자는 소리까지 들립니다 이인임:(밖을 살피며) 신중히 생각해서 압록강을 건너야 할 것입니다 (바싹 디밀며) 지금 임금은 옛 임금이고 덕흥군은 새 임금이외다. 어리석은 백성들은 다만 편안하고 배부른 것만 따지지 어찌 정의와 불의를 판단하겠습니까 경천흥: 무슨 말씀이신지? 이인임: 그런 말들이 나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웃어넘기는 이인임. 최영과 이성계가 들어온다. 이인임: 으흠 시치미를 뗀다. 경천흥: 동북면은 어찌 되었소? 최영: 말씀을 올리시게 이성계: 쌍성총관부의 총관이었던 조소생이 여진족을 규합해서 국경을 넘으려고 했으나 군량이 떨어져 다시 요동으로 도망쳤습니다 경천흥: 조소생 걱정은 덜었군 최영: 지금 당장 압록강을 건너 적을 쳐야 합니다 이인임: 우리도 군량이 넉넉지 못하오. 거기다 추위에 떨고 있으니 이성계: 적의 군세는 일 만을 넘지 못합니다 이인임: 압록강을 건너는 건 신중히 결정해야 하오. 압록강 너머는 원의 영토가 아닌가 최영: 전하께서 바라시는 건 요동을 수복하는 겁니다 이인임: 전하의 뜻대로만 할 수는 없지 최영:....(신음) 경천흥: 최유가 먼저 압록강을 건너 공격해올 때까지 기다립시다 #압록강 부근의 길(밤) 최영과 이성계가 천천히 말을 몰아온다. 멈추는 최영. 어둠 속에 잠겨 있는 강을 바라본다. 그런 최영을 바라보는 이성계. 최영: 자네는 김용의 난을 어찌 생각하나 이성계:.... 최영: 왕명도 없이 김용이 정세운을 죽였다고 생각하나 이성계:... 최영: 솔직하게 대답을 해보게 이성계: 소장은 장군의 명령을 따를 뿐입니다 최영: 내 명령이 왕명과 다르다면 이성계:..... 최영: 그래도 따를 건가 이성계: 장군을 따르라는 것이 아버님의 유언이셨습니다 최영: 으음 (신음하며 강을 바라본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군이 일치단결을 해야하네. 그래야 국난을 극복할 수가 있어 이성계:...... 묵묵히 바라보는. 최영: 전하께선 정치적 수완이 뛰어나신 분일세. 조일신이 난을 일으킨 것도, 김용이 역모를 꾸민 것도 난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네. 그 때마다 전하께선 정적들을 제거하셨으니까 이성계: 장군께선 무인들의 희망이십니다 최영:(보더니) 누구보다 자네가 내 곁에 있어 든든하네 말머리를 돌려 달려가는 최영. 바라보고 서있는 이성계. #강안전의 안 공민왕: 대체 경천흥은 뭘 하고 있는 겁니까. 그 동안 보내준 원병과 군수품이 얼만데 아직도 적의 동정만 살피고 있느냐 그 말입니다 유탁: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공민왕:(이인복에게) 신돈과 나와 중전이 거둬들인 돈이 얼만 지나 아십니까. 그걸 다 삼사우사에게 보내줬습니다. 그만한 돈이면 요동을 사고도 남았을 겁니다 이인복:....... 공민왕: 군의 기강이 무너졌어요. 적과 싸울 생각은 않고 편안히 앉아서 군수품이나 빼먹고 이인복: 전하 공민왕: 홍건적의 난 때도 그랬잖습니까. 의병들이 아니었으면 지금도 복주에서 피난 살이를 하고 있었을 겁니다 #동. 마당 나오는 유탁과 이인복. 신음하는 이인복. 유탁: 잘 참으셨네 이인복:(터지듯) 편조의 말만 믿으시니 신음하며 입을 꽉 다무는 이인복. #영수전의 안 명덕태후: 누가 왔다고 했느냐 박상궁: 신돈이라고 하였나이다 명덕태후: 신돈이라면 편조가 아니냐 (부르르 떨더니) 그 자가 무슨 일로 날 보자고 한다는 게냐 #동. 앞 김원명이 오다 흠칫 놀라서 피한다. 박상궁의 안내로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신돈. 김원명:..... 놀래서 보는. #동. 안 명덕태후:(고개 돌리며) 말씀을 해보시게 신돈: 태후마마께 감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명덕태후:(힐끔 본다) 신돈: 마마께옵서 군비에 쓰라고 선뜻 사재를 내놓으시는 바람에 일이 수월하게 풀렸습니다 명덕태후: 엎드려 절 받길세 신돈: 태후마마, 노여움을 푸시옵소서 명덕태후: 망신을 그렇게 줘놓고 노여움을 풀라니 신돈: 황공하오나 마마, 이걸 도로 받아주십시오 보에 싼 문서를 내놓는다. 명덕태후:(힐끔 본다) 신돈: 마마께서 내놓으셨던 땅문서들이옵나이다 명덕태후: 그걸 왜 도로 가져왔느냐 신돈:(웃으며) 소인이 언감생심 태후마마의 재산을 넘봤겠나이까. 태후전에서 먼저 전비를 내놓으셔야 조정대신들이 따를 것이기에 명덕태후: 으흠 (싫지 않다) 신돈: 소인을 용서해주시고 받아주시옵소서 일아나서 넙쭉 절하는 신돈. 그런 신돈과 문서가 든 보자기를 번갈아보는 명덕태후. #동. 앞 나오는 신돈. 김원명이 엉거주춤 서있다. 신돈: 분수를 아셔야지 김원명:(번쩍) 신돈:(웃으며) 분수를 아시라고 했네 부르르 떠는 김원명. 또 한번 싱긋 웃고 가는 신돈. #동. 안 명덕태후:(웃으며) 막되먹은 자는 아닌가 보더라 김원명: 마마. 그 놈이 땅문서를 돌려준 것은 명덕태후: 경위야 어찌 됐든 돌려받았으니 된 것이 아니냐 김원명:(신음) 명덕태후: 지 놈이 먼저 허리를 굽혔으니 좀 더 두고 보자꾸나 한숨쉬며 땅문서를 살펴보는 명덕태후. #대궐의 후문. 안 문 열고 들어오는 이환관. 이환관: 들어들 오세요 원현과 공철, 박서방, 덕운이 들어온다. 덕운: 편조 덕분에 대궐 구경을 하게 생겼구나 원현: 편조라니오. 전하께서 신돈이란 이름을 하사하셨습니다 덕운: 신돈. 그래, 신돈 그저 좋아서 허허대는 덕운. 이환관: 이리들 오시지요 앞서가는 이환관. 따라가는 네 사람. #곤성전의 뜰 가마가 와서 멎는다. 가마문 여는 박의처. 초선이 내린다. 안에서 달려나오는 김상궁. 김상궁: 어서오세요 마님 초선: 중전마마께선 편안하신가 김상궁: 예, 마님. 안으로 드시지요 초선을 모시고 들어가는 김상궁. #어느 전각의 방 안 신돈: 또 한번 거들먹거리고 다녔다간 다시는 네 놈 꼴을 안볼 줄 알거라 원현:(입이 나온) 신돈: 앞으로 삼년 동안은 벙어리 시늉을 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야. 알겠느냐 원현:....... 신돈: 왜 대답이 없는 게야 원현:......(겨우) 예 덕운:(놀리듯) 내 그럴 줄 알았다. 야단을 맞는 게 당연하지 신돈: 덕운스님도 마찬가지십니다 덕운:(흠칫) 신돈: 법왕사에 들어가거든 몸가짐을 바로 해야 할 겁니다 덕운: 여, 여부가 있겠나 (얼른) 예, 염려하지 마십시오 신돈: 박서방 박서방: 예 신돈: 여기 적혀있는 남대가의 상인들을 불러다 서약서를 받아놓게. 내 허락없이 차와 인삼을 사고 팔았다간 죽고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박서방: 예, 거사님 신돈: 정신들 바짝 차려야하네. 조그만 허점만 보여도 남대가의 상인들이 등을 돌릴 거야. 그러니 우리 모르게 어느 권문세도가와 줄을 대고 있는지 낱낱이 파악하고 있어야 하네 원현: 염려마십시오. 이번엔 낌새만 보여도 모두 잡아다 주리를 틀 것이니 신돈:.....(바라본다) 원현:...... 입 다무는 시늉. #곤성전의 안 찻상. 몸소 차를 달이고 있는 노국공주. 바라보고 앉은 초선. 노국공주: 드시게 찻잔을 내주는 노국공주. 초선:(받아들면서) 소인은 편조스님의 결심이 확고해서 무문암의 문은 부처님만이 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헌데 중전마마께서 그 문을 여셨습니다 노국공주: 전하와 함께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어야 할 분이 어두운 암자 안에 갇혀 있으니 답답할 수밖에. 그러니 내 손으로 그 문을 열었네 초선: 잘하셨습니다 웃고 마시는 초선. 노국공주: 내가 자네에게 부탁이 있네 초선: 예, 마마 노국공주: 혹여...... 망설인다. 초선: 말씀을 하십시오 마마 노국공주:(힐끔 김상궁을 본다) 김상궁: 자리를 비워드릴까요 마마 노국공주: 아니다 (한숨 쉬더니) 김상궁도 들어두는 게 좋을 것이야 초선: 무슨 부탁이길래 그렇게 망설이십니까 마마 노국공주: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나는 아이를 가질 수가 없을 것 같네 초선: 마마께선 아직 젊으시옵니다 노국공주: 전하께서 내 처소엔 들지를 않으시니 초선:(짐짓 놀라는) 노국공주: 전하의 애정이 식은 것이 아닐세. 전하께선 여전히 날 아껴주시지. 오히려 너무 아끼시니까 나를 멀리하시는 것일세 초선: 무슨 말씀이신지 소인은 노국공주: 자네도 잘 알고 있는 일이 아닌가. 나는 아이를 가지면 죽는다고 하질 않았나 초선: 하오시면 전하께서 일부러 피하신다는 말씀이시옵니까. 마마께서 회임을 하셨다가 변이라도 당하면 어쩌시나 염려가 되시어 노국공주: 그렇지 초선:(가만히 한숨) 노국공주: 그래서 부탁을 하자는 것이야 #동. 마당 김상궁과 나오는 초선. 초선: 난 중전마마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네 김상궁: 눈치를 못채셨습니까 초선: 그저 부탁한다고 한숨만 내쉬시니 김상궁: 전하께서 후사를 얻지 못하시면 태후전에선 후궁들을 들이실 것이 아닙니까 초선: 혜비가 있잖은가 김상궁: 전하께서 혜비의 처소를 찾지 않으십니다 초선:......(보더니) 그래서 사가의 여인을 구해달라는 말씀이신가 김상궁: 그렇게라도 후사를 얻으면 초선:..... 전각을 본다. #동. 안 찻잔을 앞에 놓고 우두커니 앉아있는 노국공주. #동. 마당 초선:..... 바라보는. 김상궁: 답답해서 하시는 말씀이시겠지요 초선: 딱도 하셔라 한숨 내쉬고 가마에 오르는 초선. 가마문 닫는 박의처. 김상궁:(박의처에게) 살펴가세요 허리 굽힌다. 박의처: 예, 김상궁마마님 마주 허리 굽히는 박의처. 초선:(소리) 가마문을 여시게 얼른 가마문 여는 박의처. 초선, 내려서 안으로 들어간다. 바라보는 김상궁과 박의처. #대궐의 후문. 밖 안에서 나오는 원현과 공철, 박서방, 덕운. 공철: 형님은 좋으시겠습니다. 거사님을 뫼시고 대궐 안에서 같이 사시게 됐으니 원현: 손발을 묶어놓고 입에다가는 재갈을 물리겠다고 하시는데 좋을 게 뭐 있겠나 덕운: 네 놈 생각을 해서 그러시는 게야. 꼭 미친놈처럼 날뛰고 다니니 원현: 덕운스님이야말로 좋으시겠습니다. 잘하면 법왕사 주지가 되게 생겼으니 덕운: 그렇게 큰 절이 내 입으로 들어오겠느냐. 나는 꿈도 안 꾼다 손을 내젓더니 좋아서 허허 웃는 덕운. #곤성전의 안 초선: 전하께서 마마를 멀리하시는 뜻은 알겠으나 만에 하나 전하께서 후궁의 몸이든 사가의 여인의 몸이든 따로 후사를 얻으시면 마마의 처지가 매우 어려워지실 것입니다 노국공주:(웃으며) 전하께선 그럴 분이 아니시다 초선: 행세께나 하는 남정네들은 소실을 두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사옵니다. 하물며 전하께서는 나랏님이 아니십니까 노국공주:......(바라본다) 초선: 황공하오나 전하의 보령이 마흔을 넘겼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오. 남녀간의 정이란 노국공주: 내가 왜 그걸 모르겠느냐 초선:....... 노국공주: 나 역시 전하께서 딴 여인을 마음에 두고 계신게 아닌가 해서 의심을 한 적이 있었다 초선: 마마. 나비가 꽃을 찾아 날아드는 것은 아름다운 꽃의 자태와 향기 때문이옵나이다 노국공주: 허면 전하께서 내게 싫증을 내시고 있단 말이냐 초선: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노국공주:..... 초선: 마마. 한번만 더 시도를 해보시지요 노국공주: 뭘 말이냐 초선: 회임을 하신다고 죽는 병에 걸린 것은 아니옵니다. 무사히 순산을 하실 수도 있사옵니다 노국공주: 나는 각오가 돼있다. 전하의 아이를 낳을 수만 있다면 어떤 위험도 감수를 할 것이야 초선:..... 가만히 노국공주를 바라보다 미소 짓는 초선. 노국공주:(수줍어하며) 전하께선 내 처소에 드셨다가도 밤이 되면 대전으로 나가신다. 어쩌다 내가 전하의 손이라도 잡을라치면 냉정히 뿌리치시며 나는 자식이 필요 없소이다 하시니 초선: 이렇게 하시옵소서 마마 노국공주:...... 초선:(웃고 있는) 노국공주: 어떻게 말이냐 몸을 바싹 기울이는 노국공주. #어느 전각의 방 안 신돈: 어쩌자고 그런 말슴을 드렸습니까 초선:......(정색하고 마주보는) 신돈: 중전마마께선 전에도 회임을 하셨다가 목숨을 잃을 뻔 하지 않으셨습니까 초선: 중전마마께선 서른을 넘기셨습니다 신돈:...... 초선: 올해를 넘기시면 회임을 하시고 싶어도 못하시는 나이가 되십니다 신돈: 전하께선 양자를 들이실 생각이십니다 초선: 그래선 안돼지요. 중전마마께서 후사를 낳아드리지 못하면 더는 힘을 쓰실 수가 없습니다 신돈: 그렇다고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를 일을 초선:(막듯이) 거사님 신돈:....... 초선: 거사님께서 대궐에 들어와 전하의 사부가 되신 것은 모두가 중전마마의 힘이옵니다. 전하께선 우유부단한 분이시니 대신들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했을 것입니다 신돈: 전하께선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초선: 세간에선 전하를 그리 보고 있습니다. 조일신을 시켜 덕성부원군을 죽이려다 안 되니까 조일신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고, 정세운의 세력이 커지니까 신돈: 말씀을 가려하세요 초선:....... 신돈: 보살님마저 그런 유언비어를 믿고 있다니 고개 돌려버리는 신돈. 초선: 거사님께선 고려 왕실을 위해서 무문암을 나오셨습니까? 신돈:(고개 돌린) 초선: 큰스님의 뜻을 저버리고 속세로 다시 나온 것이 고려 왕실의 영화를 위해서였습니까 신돈:......(가만히 본다) 초선: 중전마마께서 왕자를 낳으셔야 합니다. 비록 해산을 하다 목숨을 잃는 한이 있어도 왕자를 낳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중전마마께서 거사님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십니다 신돈:...... 신음. #동. 앞 나오는 초선. 전각을 본다. #동. 안 신돈:....... 또 한번 신음. #동. 마당 초선:..... 신돈의 신음소리. - [신돈 33회 중에서] - #초선의 집. 안방(새벽)(회상) 정성껏 신돈의 얼굴을 닦아주는 초선. 눈 감은 채 한숨을 내쉬는 신돈. 초선: 정신이 좀 나십니까 신돈:...... 다시 잠든 모습이다. 빙긋 웃고 다시 수건에 물을 적시는 초선. 신돈:(소리) 마마.... #곤성전. 마당(현실) 초선:....... 눈물이 핑돈다. #동. 안(밤) 시립한 김상궁. 술상. 공민왕:(웃으며) 어째서 오늘 밤엔 내 얼굴도 쳐다보질 않으십니까 노국공주:...... 공민왕: 화가 단단히 나셨습니다 또 웃는다. 노국공주:(김상궁에게) 너는 나가 있거라 물러가는 김상궁. 공민왕: 김상궁까지 물리고 왜 이러십니까 노국공주:......(본다) 공민왕:.......(섬칫) 노국공주:.....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노국공주. 공민왕: 눈물은 왜 흘리십니까 웃으며 노국공주의 눈물을 닦아주려는 공민왕. 그 손을 뿌리치며 돌아앉는 노국공주. 공민왕:...... 놀래서 본다. 노국공주: 전하께선 신첩을 나무토막 대하듯 하십니다 공민왕:(웃으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노국공주: 오늘 밤은 어느 계집을 품에 안고 주무실 겁니까 공민왕을 노려보며 파르르 떠는 노국공주. #동. 복도(밤) 김상궁:...... 귀 기울이고 있는. 공민왕:(소리) 중전께서 투기를 다 하십니까? 노국공주:(소리) 누가 손을 잡아달라고 했습니까 공민왕:(소리) 내 얼굴을 좀 보세요 중전 김상궁:..... 빙긋 웃는다. #동. 마당(밤) 전각의 불빛. 노국공주:(소리) 글쎄 놓으시래도요 공민왕:(소리) 하늘에 두고 맹세합니다. 나는 부인 외에는 한눈을 판 적이 없습니다 노국공주:(소리) 이젠 거짓말도 잘 하십니다 공민왕:(소리)(웃으며) 정말 중전께서 투기를 하시는 겁니까 공민왕의 웃음 소리 높아지더니 잠잠해진다. #동. 복도(밤) 김상궁:...... 방문에 귀를 바짝 갖다대는. #동. 마당(밤) 전각의 불이 꺼진다. <신돈 44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