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 45회 <신돈> -45회- #강안전의 마당 신돈, 온다. 이환관이 유나인과 히히덕거리고 있다가 신돈을 보더니 얼른 달려온다. 신돈: 전하께선 안에 계신가 이환관: 중전마마와 후원에 계시옵니다 신돈:..... 전각을 본다. 이환관: 전하께선 어젯밤에 중궁전에서 주무셨습니다 신돈: 그래? 싱긋 웃고 발걸음을 옮긴다. #대궐의 후원 신돈, 온다. 공민왕의 웃음 소리. 공민왕:(소리) 이번엔 내가 이겼습니다 바라보는 신돈. 투호 놀이를 하고 있는 공민왕과 노국공주. 항아리 속에 들어있는 파란색 화살과, 다른 항아리 속에 들어있는 빨간색 화살을 걷어오는 환관들. 공민왕: 한판씩 이겼으니 이번이 마지막 승부입니다 화살을 던지기 시작하는 공민왕. 노국공주도 따라서 던진다. 신돈:...... 바라보는 신돈. #영수전의 안 큰절을 올리고 있는 정비안씨. 유심히 보는 명덕태후. 명덕태후: 누구의 여식이라고 했느냐 김상궁: 죽성군 안극인의 여식이옵니다 명덕태후: 자태는 아름다운데 나이가 너무 어려 보이는구나 (덕녕공주에게) 안 그렇습니까 덕녕공주: 올 해 나이가 몇이나 됐느냐 정비: 열 셋이옵니다 명덕태후:(혀를 차는) 그 나이에 무슨 자식을 볼꼬 고개 돌려버리는 명덕태후. 김상궁:(정비에게) 물러가 계시지요 일어나 조심스럽게 나가는 정비. #동. 복도 나오는 정비. 익비를 비롯한 처녀들이 늘어서있다. #동. 안 명덕태후:(김상궁에게) 답답하구나. 열 여섯은 되야 회임을 하든지 말든지 할 게 아닌가 덕녕공주: 근자에 주상 내외분의 금실이 돈독하다고 합니다. 좀 더 기다려보신 연후에 명덕태후: 죽은 나무에 꽃이 피는 것을 봤습니까 덕녕공주:(민망한)...... 명덕태후: 다음은 누구냐 김상궁: 덕풍군대감의 여식이옵나이다 명덕태후: 들라고 해라 한숨 내쉬는 명덕태후. 문가의 박상궁에게 눈짓하는 김상궁. 문을 여는 박상궁. 익비가 들어온다. 명덕태후:(보더니 환해지며) 훤칠한 것이 튼튼해보이는 구나 큰 절을 올리는 익비. 명덕태후: 나이가 좀 들어 보이질 않습니까 덕녕공주:(웃어보이는) 절하고 일어나는 익비. 명덕태후: 덕풍군의 여식이라고 했느냐 익비:(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예, 태후마마 명덕태후: 대답 한번 시원 시원하구나 좋아서 웃는 명덕태후. #대궐의 후원 항아리 속에 꽂힌 화살을 헤아리는 최만생과 환관들. 공민왕: 누가 이겼느냐 최만생: 황공하오나 이번엔 중전마마께서 이기셨사옵니다 공민왕: 저런, 큰 일 났구나 노국공주: 전하께서 지셨으니 오늘 밤에도 내전에서 주무셔야겠습니다 공민왕: 투호는 안 되겠습니다. 다음 번엔 격구가 어떻겠습니까? 아니지 아냐. 내가 무슨 재주로 중전의 말타는 솜씨를 이기겠습니까 웃으며 뒤돌아본다. 신돈이 웃으며 서있다. 공민왕: 사부께서 훈수를 좀 두셔야겠습니다. 무슨 내기를 해도 중전을 이길 수가 없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무슨 내기를 해야 중전을 이길 수 있는지 묘안을 좀 짜보세요 신돈:(웃으며) 전하께서 일부러 져주시는 것이 아닙니까 공민왕: 일부러 지다니 신돈: 전하께선 중전마마와 함께 지내실 구실을 찾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까 공민왕: 나를 좀 도와달랬더니 면박만 주십니다 웃는 공민왕. 따라서 빙긋 웃는 신돈. #영수전의 마당 정비와 처녀들이 나와서 밖으로 나간다. 지켜보고 있는 김상궁. 익비:(다가와) 나 좀 보세 김상궁:(흠칫해서 본다) 익비: 자네가 내 얘길 잘해주면 내 나중에 후히 사례를 할 것이야. 아시겠는가 김상궁: 소인이 도와드릴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익비: 위에서 물으시면 좋게 아뢰달라 그 말씀일세 눈을 흘키는 익비. #동. 안 명덕태후: 덕풍군의 여식이 맘에 드네 덕녕공주: 후궁은 더 들여 뭘 하겠습니까. 전하께서 거들떠 보지도 않으시는데요 명덕태후:(못마땅) 덕녕공주: 혜비를 볼 때마다 가엾기가 그지 없습니다. 청상과부가 따로 없으니 명덕태후: 남녀간의 정분은 모르는 겁니다. 또 압니까. 덕풍군의 여식같은 괄괄한 계집아이가 주상의 눈에 띌지 #곤성전의 안 노국공주: 태후마마께서 사가의 규수들까지 대궐 안으로 불러들여 간택을 보셨단 말이냐 김상궁:(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노국공주:(초선에게) 그것 보시게. 그러니 내가 자넬 자꾸 재촉하는 것이야 초선: 염려마십시오 마마. 소인이 명산대찰마다 사람을 보내 치성을 드리라 했습니다 노국공주: 부처님의 힘만으로 되겠느냐. 차라리 용한 의원들을 불러 약을 짓게 하는 것이 낫지 초선: 그 일은 소인에게 맡겨주십시오 마마 웃어보이는 초선. #강안전의 안 탁자위의 문서들. 공민왕: 이게 다 뭡니까 신돈: 일전에 전비를 헌납한 자들의 명단입니다 공민왕: 상을 주시려구 신돈: 예, 전하 공민왕: 알아서 하시게 신돈:(보는) 공민왕:(웃으며) 내가 만사를 사부님께 맡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시립한 이색을 보며 장난치듯) 아예 옥새를 내드리는 게 어떻겠느냐 이색:(흠칫) 공민왕: 그게 좋겠다. 번거롭게 일일이 고하고 윤허를 받고 하느니 이색: 전하 공민왕: 국법에 어긋나느냐 이색: 황공하옵나이다 공민왕: 허면 법을 고치면 될 것이 아니냐 이색: 전하 공민왕: 이렇게 하자 (정색하고 이색에게) 조정에서 내게 아뢸 것이 있으면 먼저 사부님께 고해 재가를 받은 다음 자네가 그걸 모아서 내게 가져오면 내가 옥새를 찍어주면 될 것이 아니냐 #동. 마당 신돈, 나온다. 묵묵이 따라나오는 이색. 신돈:(멈추더니) 스승께선 어찌지내고 계십니까 이색: 익재대감 말씀입니까 신돈: 내가 그 어른 신세를 많이 졌네 이색: 후학을 양성하시며 조용히 지내고 계십니다 신돈:(본다) 이색:........(저도 모르게 숙인다) 신돈: 고려 왕실이 날로 쇠약해지는 건 나라의 근본이 잘못된 탓일세. 태조대왕께서 고려를 창건하신 이래 불교를 국교로 삼아서 백성들이 따르게 했는데 그게 잘못된 것일세 이색:(본다)..... 신돈: 불가의 눈엔 임금 역시 티끌같은 존재가 아닌가. 그러니 백성들이 임금보다 부처님을 더 높이 모시는 거지 이색: 사부께선 스님이 아니셨습니까 신돈: 유림은 어떤가 이색:..... 신돈: 공맹의 도에는 충과 효가 우선이지.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를 바치는 걸 근본으로 삼고 있잖은가 대궐을 바라본다. 전각의 지붕들. 신돈: 바꿔야지....다 바꿔야하네. 전하께 충성을 바치는 신하들로 다 바꿔야 조일신과 김용의 난 같은 역모를 막을 수가 있네.... #대궐의 길 소년들이 히히덕거리며 열지어가고 있다. 바라보고 있는 이인복, 경천흥, 김원명, 이춘부 등. 경천흥: 어린 아이들을 데려다 뭐에 쓰시려는지 김원명: 모르셨소이까. 전하께서 대궐의 경비를 환관들에게 맡기셨다고 합니다 경천흥: 그럼 저 아이들이 새로 뽑은 환관들이란 말씀입니까 김원명: 더 기막힌 건 전하께서 직접 훈련을 맡으셨다는 겁니까 (웃는다) 이춘부: 오죽하면 전하께서 그리하시겠습니까. 김용의 난 때 대신들은 모두 도망을 치고 그나마 환관들이 남아 전하를 지켜드리지 않았습니까 경천흥: 그럼 무사들 중에서 환관을 고르셔야지 젖비린내 나는 어린 아이들을 골라 언제 대궐의 경비를 맡기겠소이까 이춘부: 때묻지 않는 어린 아이들이니 훈련을 잘 시키면 오직 전하께만 충성을 바칠 게 아니겠소이까. 으흠 가버리는 이춘부. 김원명:(씰룩이며) 저런 간사한 놈 같으니라구. 이춘부 저 놈이 편조의 몸에서 광채가 난다고 아부를 늘어놓더랍니다 (이인복에게) 큰일 낼 사람이에요 이춘부, 저 놈이 이인복:...... 일단의 소년들이 또 열지어 간다. 신음하는 이인복. #왕실의 훈련장. 최만생, 이환관 등이 어린 소년들에게 무예를 가르치고 있다. 좌대 위에 앉아 구경하고 있는 공민왕. 신돈이 시립했다. 최만생: 대궐에서 잔심부름이나 하는 것이 환관이 아니다. 유사시에는 전하를 지켜드리는 마지막 보루다. 흥왕사의 난 때 전하를 지켜드린 것이 우리 환관들이다. 자부심을 가지고 훈련에 열중해야 할 것이다 기염을 토하는 최만생. 공민왕:..... 소년들을 바라보며 빙긋 미소하는 공민왕. 공민왕:(신돈에게) 저 아이들은 나를 배신하지 않겠지요 사부님 신돈:.......(미소) 공민왕: 어떻소이까 내 생각이 껄껄 웃어대는 공민왕. 이환관이 어린 소년을 말 위에 태운다. 무서워서 떨고 있는 소년. 최만생: 웬 겁이 그리도 많으냐 말 궁둥이를 때린다. 달려가는 말. 말고삐를 움켜잡고 울음을 터뜨리는 소년. 장애물 앞에서 급히 멈추는 말. 말에서 떨어지는 소년. 달려가는 이환관과 환관들. 축 늘어진 소년을 들고 나가는 환관들.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는 공민왕. 신돈: 전하. 말을 타기엔 아직 어린 아이들입니다 공민왕: 말을 가져오너라 외치는 공민왕. 말을 대령하자마자 올라타는 공민왕. 공민왕: 나를 잘 보거라 겁에 질린 소년들이 공민왕을 바라본다. 공민왕: 내가 너희들에게 내 목숨을 맡기려고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너희들을 모두 일당백의 용사들로 만들 것이야 말을 몰아 달려가기 시작하는 공민왕. 장애물을 계속해서 넘어 달린다. 소년들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친다. 신돈:......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신돈의 -. #강안전의 안 엎드려 있는 공민왕. 이환관이 공민왕의 허리를 주물러주고 있다. 시립한 최만생. 이인복:......(바라보는) 공민왕: 하마터면 말에서 떨어질 뻔했습니다. 요즘은 힘이 전같지가 않아요. 대궐 안에만 있었더니 어떨 땐 걷기도 힘이 듭니다. 앞으론 사냥도 다니고 활쏘기도 다시 시작해야겠어요 이인복: 전하 공민왕:(이환관에게) 이놈. 힘은 뒀다 어디다 쓰려고 그러느냐 힘주어 공민왕의 허리를 주무르는 이환관. 공민왕: 그만 됐다 뿌리치고 일어나는 공민왕. 얼른 물러서는 이환관. 공민왕: 내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이 자리가 그렇습니다. 정사를 어떻게 볼까, 인사는 또 어찌할까 이 궁리 저 궁리를 골똘히 하다보면 속이 답답한 게 입맛이 다 떨어집니다. 헌데 만사를 사부에게 맡겨놓고 한발 뒤로 물러나 앉아있으니까 속이 다 시원합니다 이인복: 조정의 대소사를 편조에게 맡기신다는 게 가당한 일이옵니까 공민왕: 편조가 아니라 신돈입니다 이인복:...... 공민왕: 말끝마다 중이 정치를 한다고 트집을 잡길래 내가 신돈이란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웃으며) 하긴 한가지 트집 거리가 더 남았습니다. 노비의 자식이다 이인복: 조정대신들이 줄줄이 편조를 찾아가 재가를 받는 것이 공민왕:(버럭) 편조가 아니라 신돈이라고 했습니다 이인복: 그럴 수는 없사옵니다 공민왕:(지지 않고) 그러면 신돈에게 벼슬을 내릴까요 이인복:..... 공민왕: 생각 같아선 신돈을 문하시중으로 삼고 싶습니다 #동. 마당 나오는 이인복. 공민왕:(안에서 버럭) 노비의 자식이면 어떻습니까. 신돈 보다 더 깨끗한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세요 이인복:..... 신음. #동. 안 공민왕: 이인복은 다르게 봤더니 속이 좁기는 매 한가지가 아니냐 신음하는 공민왕. 힐끔 눈치를 살피는 최만생의 눈빛. #중서문하성의 회의실 전별지를 나눠보는 유탁, 김원명, 이춘부. 눈치를 살피고 있는 이색. 김원명: 세상에 이런 인사가 어딨나.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이름들이 수두룩하지 않은가 유탁:(신음) 김원명:(전별지 두드리며) 이 김사성이란 자가 누군가 이색: 남대가에서 무역을 하는 상인이라고 합니다 김원명: 그런 자를 호부의 원외랑으로 삼으셨단 말인가 이색:..... 김원명: 문하시중대감. 제가 명색이 호부의 수장인 판도판섭니다. 헌데 전하께서 저와는 상의도 없이 이런 인사를 내실 수가 있는 겁니까 유탁:..... 김원명: 그 뿐이 아닙니다. 격구를 잘한다고 환관 나부랭이한테 따로 벼슬을 내리고, 전하를 대신해서 죽었다고 안도치 같은 자에게 대부의 벼슬을 추증하다니 이건 전하께서 우리 같은 사대부를 욕보이려고 작심을 하신 게 아니겠습니까 이춘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인재를 고루고루 기용하시려는 전하의 김원명: 정신이 나가셨소이까. 이건 전하의 인사가 아니외다. 편조가 한 인사란 말씀입니다 이춘부: 누구의 인사든 귀천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는 건 좋은 일입니다 김원명: 어허, 이 양반이 기가 막힌 김원명. #어느 전각의 마당 안에서 나오는 신돈. 멈춘다. 이춘부가 현판을 앞에 놓고 엎드려 있다. 신돈: 첨의평리께서 웬일이십니까 이춘부: 소인이 대궐 뒷마당에 뒹굴고 있는 이 현판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신돈:........ 현판에 쌓인 먼지와 때를 손으로 닦는 이춘부. ‘전민변정도감’의 현판이다. 신돈:....... 이춘부: 사부께서 전하와 함께 전민변정도감을 세워 백성들의 한을 풀어주시는 모습을 뵙고 소인은 미관말직의 신분으로서 감히 나서지는 못하고 한없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신돈:(보일 듯 말 듯 찡그리는) 이춘부: 전민변정도감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고 도탄에 빠진 백성의 한을 풀어줄 수가 있습니다 눈물까지 흘리는 이춘부. 신돈: 그리 생각을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이춘부:(얼른 눈물 닦으며) 조정대신들이 사부님을 노비의 자식이니, 파계승이니 하며 뒤에서 수군대며 손가락질을 할 때마다 소인은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밉니다. 나라를 바로 세우고 정의를 세우는데 신분이 무슨 상관입니까 신돈:(빙긋) 이춘부: 지금 조정에선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번엔 절대로 물러나시면 안 됩니다. 지금 당장 전민변정도감을 세워 조정에 넘치는 탐관오리들부터 척결을 하셔야 합니다 신돈:...... 가서 이춘부의 두 손을 잡는다. 신돈: 고맙습니다. 나를 믿어주시니 환하게 웃어보이는 신돈. 신돈의 두 손에 얼굴을 묻으며 흐느껴 우는 이춘부. 또 한번 싱긋 웃는 신돈. #강안전의 복도 유탁이 서있다. 공민왕:(안에서) 내가 만사를 신돈과 먼저 상의하라고 하질 않았느냐 #동. 안 공민왕: 헌데 문하시중께서 무슨 일로 대전엘 드셨다는 게냐 최만생:(난감한) 공민왕: 원 그렇게 마음이 약해서야 (놀리듯) 기황후가 박불화에게 자정원사라는 큰 벼슬을 내렸다. 원나라 재정이 환관 손에 들어있다는 게야. 내가 네 놈을 그만한 자리에 앉혀주려고 했더니 혀를 차는 공민왕. 유탁:(밖에서) 전하, 소신 문하시중이옵나이다 공민왕: 들어오시라고 해라 최만생, 살았다싶어 얼른 달려가 방문을 연다. 복도의 유탁, 그 자리에 부복한다. 유탁: 지금은 전시이옵나이다. 우리 군사들이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원과 맞서고 있사옵니다 공민왕: 덕흥군이 아직 살아 있습니까 유탁: 전하 공민왕: 그럼 큰 일이 아닙니까. 고려에 임금이 둘이나 있으니 유탁: 전하. 국정을 쇄신하시려는 전하의 뜻은 잘 알겠사오나 우선 원을 물리치신 연후에 공민왕:(버럭) 기황후가 덕흥군을 고려의 왕으로 봉해 군사까지 딸려서 보낸 까닭을 모르시겠습니까. 경들이 나를 임금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속까지 나를 임금으로 보는 대신들이 대체 몇이나 됩니까 #고려군의 군막. 안(밤) 경천흥: 압록강을 건널 수는 없소이다 최영: 덕흥군과 최유, 유인우는 모두 고려의 신하들입니다. 그런 자들이 원과 내통하여 반역을 도모하고 있으니 압록강이 아니라 연경이라도 쳐들어가서 잡아오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인임: 그건 장군이 단순한 무인이라서 그렇소이다. 공연히 원과 분란을 일으켜서 좋을 게 뭡니까 최영: 원이 역적들을 돕고 있어요. 분란은 원이 자초한 겁니다 경천흥: 기다려보십시다. 급한 건 우리가 아니라 덕흥군이 아닙니까 이인임: 맞소이다. 저들이 압록강을 넘어오지 않는 한 적이라 할 수는 없지요. 안 그렇소이까 도원수대감 웃어대는 이인임. 밖에서 함성. 놀래서 벌떡 일어나는 이인임. 뛰어들어오는 이성계. 이성계: 적이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동. 앞(밤) 최영과 이성계가 나온다. 우왕좌왕하는 군졸들. 최영: 말을 가져 오너라 이성계: 장군께선 여기 계시지요. 소장이 날이 밝기 전에 적을 섬멸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재빨리 말에 오르는 이성계. 이성계: 나를 따르라 달려가는 이성계. 와아 함성을 지르며 따르는 군졸들. #압록강 부근(밤) 유인우가 창을 휘두르며, 유인우: 여기 계신 덕흥군이 고려의 새 임금이시다. 새국왕전하를 위해 목숨을 바쳐라 환성을 지르는 군졸들. 말 위에서 덜덜 떨고 있는 덕흥군. 최유: 웬 겁이 그렇게 많으십니까 덕흥군: 추워서 그래 이 사람아. 무서워서가 이나라 유인우: 나를 따르라 유인우가 말을 몰아 달려간다. #고려군의 군막. 안(밤) 이인임: 최장군께선 어째서 출정을 안 하시오 최영: 이성계 혼자서 충분합니다 이인임: 젊은 무장한테 지휘권을 맡겼단 말입니까 최영: 이성계를 따르는 이 천의 결사대가 있습니다.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정예병들이외다 #어느 협곡(밤) 어지럽게 맞붙은 원군과 고려군. 쉴새 없이 화살을 날리는 이성계. 미친듯이 창을 휘두르는 유인우. 수없이 쓰러지는 고려군. 이성계:..... 유인우를 본다. 재빨리 화살을 먹여 쏜다. 밤하늘을 날아가는 화살. 유인우의 가슴에 맞는다. 말에서 떨어지는 유인우. 고려군의 함성. 말에 엎드린 유인우를 끌고 도망치는 원군들. 이성계: 한 놈도 살려보내선 안 된다. 적을 섬멸하라 아귀처럼 부르짖는 이성계. #강안전의 뜰(밤) 사방에 들을 밝혔다. 마당에 식탁을 늘어놓고 연회가 벌어졌다. 먹고 마시는 대신들과 무장들. #동. 안(밤)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앉아있고, 옆에 신돈이 앉아있다. 술상을 받고 앉은 유탁과 이인복. 뒤쪽에 경천흥과 이인임, 최영, 이성계가 앉아있다. 공민왕: 걱정거리가 다 사라졌습니다. 홍건적도 물리쳤겠다, 내 자리를 넘보던 덕흥군도 다시 연경으로 도망을 쳤겠다, 이젠 백성들을 위해 선정만 베풀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유탁: 성은이 해하와 같나이다 공민왕: 이번에도 이성계의 공이 컸다면서요. 가까이 오라 이성계, 가까이 온다. 공민왕:(신돈에게) 언젠간 압록강을 건너 요동을 정벌할 게 아닙니까. 그 때를 대비해서 이성게와 같은 젊은 장수들을 양성해야 할 겁니다 (웃으며) 사부께서 이성계에게 나 대신 술 한잔을 따라주시지요 신돈:...... 술병을 집어들어 이성계의 잔에 따른다. 경천흥: 황공하오나 전하, 승전고를 올리고 돌아온 장수에게는 전하께서 직접 어주를 내리시는 것이 관례이옵나이다 공민왕:(무시하고) 군력을 키워 요동을 정벌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는 기황후가 고려의 내정에 간섭하지 못할 겁니다 (이성계에게) 들거라 이성계: 전하께 충성을 바치겠나이다 벌컥 들이키는 이성계. #기황후의 처소. 안(밤) 납작 엎드려 벌벌 떠는 덕흥군과 최유. 고개 돌리고 앉은 기황후. 박불화: 황후폐하, 지고 이기는 것은 병가지상사라 하였나이다 기황후: 시끄럽다. 군사 일만만 내어주면 고려왕을 잡아오겠다고 큰 소릴 치더니 그래 살아서 돌아온 자가 십여인에 불과하단 말이야 최유: 꽁꽁 얼어붙었던 강물이 갑자기 녹아 물이 넘치는 바람에 퇴로가 막혔었나이다 기황후: 압록강을 건너기만 하면 고려군이 항복을 할 거라고 하질 않았느냐 최유:..... 기황후: 덕분에 강릉대군의 기세만 올려준 꼴이 아니냐 최유: 황후폐하,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시오면 기황후: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라 고개를 돌려버리는 기황후. #동. 마당(밤) 나오는 덕흥군과 최유. 덕흥군: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기황후의 눈밖에 났으니 최유:(신음) 덕흥군: 공연한 부스럼을 긁어가지고 #동. 안(밤) 기황후:..... 생각에 잠긴. 박불화:.......(눈치보는) 기황후: 계집 같은 손을 가지고 잘도 꾸려 나가는구나 (싱긋 웃으며 박불화에게) 강릉대군말이다 박불화: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옵나이다 황후폐하 기황후: 진즉에 죽였어야 했는데...... #강안전의 뜰(밤) 최영과 이성계가 안에서 나온다. 환성을 지르는 무장들. 축배를 들며 법석을 떤다. 술잔을 건네던 경천흥과 이인임이 아니꼬운듯 바라본다. 김원명: 도원수께서 공을 뺏기셨소이다 경천흥: 으음 이인임: 전하께서 무신들을 추켜세우시다간 큰 낭패를 보시지. 저놈들은 힘만 생기면 아예 임금을 깔아뭉개려는 속성이 있거든 김원명: 지금은 무신들을 시기할 때가 아니지요. 최영에게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경천흥: 무신들에게 힘을 실어주다니오 김원명: 편조를 상대할 세력은 무신들 밖에 없습니다. 우리 힘으론 편조를 막을 수가 없어요 경천흥:...... 신음하며 전각을 본다. #동. 안 신돈: 성산군께서 연경엘 한번 더 다녀오셔야겠습니다 이인복: 연경엘 다녀오라니 신돈: 유인우는 죽었다고 하니 그만두고 덕흥군과 최유를 잡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민왕: 옳거니. 그 두 놈을 잡아다 참수를 해야 내가 두 다릴 쭉 뻗고 편히 잘 것이야 이인복:(공민왕에게) 더 이상 기황후를 자극할 필요가 있겠사옵니까 신돈: 덕흥군과 최유를 살려두면 계속 분란을 일으킬 겁니다. 그러니 성산군께서 이인복:(버럭) 요동을 정벌하자는 게 가당한 일입니까 신돈: 못할 것도 없지요 이인복:....... 신돈: 아니 무슨 일이 있어도 요동땅을 찾아와야 합니다 유탁: 전하. 근자에 홍건적의 난을 비롯하여 전화가 그치지 않았나이다. 이런 때에 또 다시 전쟁을 준비하시는 것은 신돈: 중원을 홍건적이 차지하는 것을 구경만 하실 작정이십니까 유탁:...... 신돈: 중원은 한족의 손에 넘겨줘도 요동은 찾아와야 합니다 공민왕: 성산군께서 연경엘 다녀오세요 이인복:...... 신음. #동. 마당(밤) 취기들이 올랐다. 술잔 들고 최영에게 가는 김원명. 김원명: 장군은 좋겠소이다. 외방에 나가 있으면 아니꼬운 꼴을 안보고 사시니 최영: 무슨 말씀이신지 김원명: 좀 지내보시면 알 거외다 웃어대는 김원명. 이인임에게 가더니 귓속말을 건네며 최영을 보며 히죽거린다. 찡그리며 술을 들이키는 최영. 이성계가 온다. 이성계: 소장, 여기서 장군께 하직 인사를 올려야겠습니다 최영: 벌써 돌아가려구 이성계: 조소생이 살아있는 한 동북면을 하루도 비워놓을 수가 없습니다 최영: 자네가 내 곁에 있어 든든했는데 이성계: 장군께 무슨 일이 생기면 그 날로 달려오겠습니다 최영:(끄덕이는) 이성계 그럼 인사하고 문쪽으로 간다. 이성계의 참모들이 이성계를 에워싸고 따른다. 최영:..... 바라보고 서있는. 김원명:(어느새 와서) 우린 최장군만 믿소이다 최영:(보는) 김원명: 조만간 조정이 편조의 무리들로 꽉 찰 것이외다 음흉하게 웃어대는 김원명. #초선의 집. 앞 상인들로 북적거린다. #동. 마당 책상을 내놓고 앉아있는 원현. 수북이 쌓여있는 면장들. 공철이 면장을 흔들며, 공철: 면장을 가지고 오지 않은 분들은 집에 가서 가지고 오시오. 이번에 면장을 새로 발급 받지 못하면 아예 장살 해먹을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요 가지고 온 면장을 확인하는 상인들. 원현: 다음 관리 하나가 앞으로 나오더니 꾸벅 절을 한다. 손을 내미는 원현. 상인: 소인이 누군지 모르시겠습니까. 소인이 김사성입니다 원현: 뉘신지 상인: 저번에 호부에서 원외랑 벼슬을 받은 원현: 아, 난 또 누구시라고 상인: 덕분에 우리 남대가 상인들이 요즘은 가슴을 쫙 피고 다닙니다. 우리 같은 상인들도 벼슬아치가 될 수 있으니 원현: 그게 다 우리 신돈 사부님 덕분이지요 (일어나서) 내 말 똑똑히 들으시오. 신돈 사부님께서 면장을 새로 발급해주시는 것은 세금이나 받아먹자고 그러시는 게 아닙니다. 그 동안 권문세도가에 붙어서 횡포를 부리던 거상들을 몰아내고 상권을 골고루 나눠주자는 겁니다. 그러니 신돈 사부님의 뜻을 잘 받들어서 돈을 좀 벌거든 좋은 일에 쓰셔야 합니다. 아시겠소이까 옳다고 맞장구를 치는 상인들. 안에서 초선이 나온다. 우르르 달려가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해대는 상인들. 웃으며 밖으로 나가는 초선. 따르는 박의처. #동. 앞 나오는 초선. 얼른 가마문 여는 박의처. 초선: 지효스님한테 내가 오늘 밤에 보우왕사님을 뵈러 간다고 전하거라 박의처: 예, 마님 가마문 내리는 초선. 박의처: 다녀오십시오 마님 절하는 박의처. 초선의 가마, 간다. #초선의 다점. 앞 가마, 온다. 멈춘다. 안에서 쪽문을 들어올리고 내다보는 초선. 붐비는 다점. 끝없이 안으로 들어오는 물건을 점검하고 있는 박서방. 초선:......... 싱긋 웃고 쪽문을 내린다. 가마, 간다. #어느 전각. 안 각종 서류들. 일일이 훑어보고 수결을 하는 신돈. 이색:...... 바라보고 서있다. 신돈: 말들이 많다지요 이색:...... 신돈: 노비의 자식에게 수모를 당하느니 차라리 사직서를 올리고 낙향해서 농사를 짓겠다는 사람들이 많을 게 아닙니까 이색:...... 신돈:(보더니) 숭문관 자리가 어떻겠습니까 이색: 무슨 말씀이신지 신돈: 유생들을 양성해야 내가 보기 싫어서 내던진 빈 자리들을 채울 것이 아닙니까 이색: 성균관을 다시 세우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신돈: 그래야지요 이색: 그러자면 과거도 부활해야 하는데 그게 되겠습니까 신돈: 지금의 조정대신들은 엄밀히 따지면 자격이 없어요. 과거를 통해서 등용된 사람들이 아니고 아비의 관직을 물려받은 자들이 대부분이 아닙니까 이색: 반발이 클 것입니다. 저희의 스승이신 익재 대감께서 여러 차례 시도를 하셨으나 신돈:(일어나며) 나가보십시다. 어디다 성균관을 세우면 좋을 지 머뭇거리며 서있는 이색. 신돈:(보더니) 공자께서는 천하만대의 스승이십니다. 내가 부처님을 공양하듯 공자를 스승으로 모실 겁니다 빙긋 웃어 보이는 신돈. #곤성전의 방 안 노국공주: 이게 다 무엇이냐 초선: 부적입니다 마마 노국공주: 약을 구해오랬더니 부적은 초선: 이래야 소원을 이루십니다 마마 노국공주:...... 초선: 마마께서 회임을 못하시는 것은 전하께서 마마를 멀리하신 탓도 있사옵니다만은 귀신들이 장난을 치는 까닭이라고 하옵나이다 노국공주:(웃으며) 망칙한 소리도 다 하는구나 초선: 마마.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노국공주:..... 초선: 궐 안에 마마의 회임을 원치 않는 귀신들이 가득 차 있다고 하옵나이다 노국공주: 나는 그런 건 믿지 않는다. 원나라 황실에서도 라마승의 말을 믿고 저주를 푸는 부적을 쓴다고 하더라만 초선: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회임을 하셔야 하옵니다 노국공주:(한숨) 초선: 머잖아 조정에 큰 풍운이 일 것이옵나이다. 전하와 편조스님에게 대항하는 무리들이 큰 세력을 이루어 사생결단을 하자고 덤빌 것이옵니다. 그런 때에 마마께서 회임을 하시면 전하와 편조스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노국공주: 그게 정말 효험이 있겠느냐 초선: 다른 건 몰라도 태후전의 기운만은 막아줄 것이옵니다 노국공주: 으음 내키는 않는. 초선: 마마께선 그저 모른 척 하고 계시옵소서 한껏 웃어보이는 초선. #숭문관의 마당 둘러보는 신돈. 신돈: 이 자리가 어떻겠습니까? 이색: 여긴 숭문관 자리가 아닙니까 신돈: 성균관을 세우고 과거 제도를 부활시키면 따로 숭문관을 둘 필요가 없잖습니까 이색:....... 신돈: 재주와 학문이 뛰어난 인재를 뽑아 왕을 돕게 한다는 핑계로 권문세도가의 자제들이 숭문관을 독차지 했어요. 그러니 정실이 통한 겁니다. 앞으론 과거에 합격한 사람만 등용을 시킨다면 아비 덕에 정승 판사가 되는 꼴불견은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이색:.......(바라보는) 신돈: 여기다 성균관을 중축합시다 넙쭉 엎드려 땅에 머리를 조아리는 신돈. 신돈: 마음을 다해 중영하겠나이다 그런 신돈을 바라보는 이색. #강안전의 안 공민왕: 성균관을 세워서 무얼하게 신돈: 앞으론 과거에 급제한 사람만 관직에 기용을 하셔야 합니다 공민왕: 권문세도가들이 좋아하겠느냐 신돈:(빙긋) 공민왕: 저들이 싫어할 일들만 골라서 하는구나 유쾌하게 웃는 공민왕. 신돈: 이색을 대사성으로 삼아 성균관을 이끌게 하시옵소서 공민왕:(찡그리며) 이색은 익재대감의 제자가 아니냐 신돈: 공명정대한 인물이옵니다 공민왕: 이제현이 배운 게 많다고 항상 나를 업수이 여겼다 신돈: 그럴리가요. 이제현은 공민왕: 먹물께나 먹은 놈치고 교만방자하지 않은 놈들을 못봤다 신돈: 권문세도가들을 몰아내는 길은 이 방법 밖에는 없사옵니다 공민왕: 어느 세월에 신돈: 이미 과거에 급제하고도 하릴없이 지내는 사람들이 많사옵니다. 전하께서 성균관을 다시 세우시면 그들을 모두 기용할 수 있는 명분이 서는 것이옵니다 공민왕:......(비로소 정색하고 신음) 신돈: 불안하십니까 전하 공민왕:(가만히 한숨) 신돈: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 난이 끊이지 않는 것은 조정의 기강이 무너진 탓이옵니다. 인사를 쇄신하시어 낡은 것은 모두 파하고 새롭게 하셔야 조정의 기강이 바로 설 것이옵나이다 공민왕: 유생들을 믿어보라? 또 한번 신음하는 공민왕. #숭문관의 마당 이색을 에워싼 유생들. 김구용: 신돈은 중이 아닙니까 정몽주: 믿을 수 없습니다 이색: 자네 생각은 어떤가 임박: 신돈은 파계승이라고 들었습니다. 불가를 떠난 사람인데 딴 뜻이야 있겠습니까 이색:(망설이는) 임박: 유가와 불가가 손을 잡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잖습니까 이색: 신돈을 의심하는 사람이 많은데 유림이 그 욕을 함께 들을까봐 그러지 임박: 유림이 일어날 좋은 기횝니다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유생들. 깊은 생각에 잠기는 이색. #강안전의 마당 나오는 신돈. 이인복이 기다리고 서있다. 허리굽혀보이는 신돈. 이인복: 연경으로 떠나기 전에 전하께 인사를 드리러 들어왔네 신돈: 어려운 일을 부탁드렸습니다. 이번엔 기황후가 대감을 살려보내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이인복: 천운에 맡겨야지 어쩌겠나 신돈:....... 허리굽히고 가는 신돈. 이인복: 자네가 잘못 생각하는 걸세 신돈:(멈춘다) 이인복: 이색을 내세워 성균관을 세우고 과거에 급제한 자에게만 벼슬을 주겠다? 신돈:..... 이인복:(웃는다, 유쾌하게) 신돈:(씰룩) 이인복: 이보시게 (정색하고) 자네는 누구나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게 아닌가. 천민도 귀족도 동등한 신돈:...... 이인복: 유림 역시 그런 세상을 꿈꾸는 줄 아는가? 유림이 원하는 건 지금보다 더 엄격한 신분사횔세. 대체 과거제도가 뭔가? 학문을 배우고 유식한 자들만이 벼슬 길에 오르는 특권을 주겠다는 게 아닌가. 헌데 천민이 무슨 재주로 과거에 급제를 한단 말인가 신돈: 썩은 탐관오리에 비하겠습니까 이인복: 자네 손으로 자네 발등을 찍는 게야, 유림과 손을 잡는 건 신돈:....... 이인복:..... #강안전의 안 공민왕: 미안합니다. 번번이 어려운 부탁만 드려서 이인복: 황공하오나 전하, 세간에 김용의 난을 두고 말들이 많사옵니다 공민왕:.... 이인복: 김용이 전하의 밀지를 빙자해 정세운을 죽인 것은 공민왕: 또 그 소립니까. 내가 김용을 사주해서 정세운과 눈에 거슬리는 무신들을 죽였다? 이인복: 전하께서 그런 오해를 받으시는 것은 지금처럼 편조를 내세워 전하의 뜻을 펼치려고 하시는 까닭입니다 공민왕:(흠칫) 이인복: 군주란 공명정대하고 당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은 전하께서 신을 사지로 보낸다고 생각지 않으나 조정대신들은 전하께서 신을 버린다고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허나 신은 전하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사옵니다. 굳이 기황후의 손을 빌려 신을 죽이려 하실 까닭이 뭐가 있겠습니까 공민왕: 기황후를 대적할 사람이 없으니 성산군을 보내는 겁니다 이인복:.....(바라보는) 공민왕:(슬며시 고개 돌리는) 이인복: 전하께서는 이 나라의 군주십니다. 만사를 뜻대로 하시옵소서 일어나 큰절을 올리는 이인복. #어느 전각의 방 안 면장들을 살펴보는 신돈. 무릎 꿇고 단정히 앉아 바라보는 원현. 신돈: 일전에 김용의 편에 붙었던 상인들은 다 골라냈느냐 원현: 예. 한 놈도 남김없이 다 솎아냈습니다 신돈: 소활동 보살 모르게 차와 인삼을 사고 파는 상인들을 엄중히 감시를 해라 원현: 예. 염려마십시오 공손한 원현. 신돈:...... 힐끔 본다. 머리를 긁적이는 원현. 신돈: 그렇게 얌전히 앉아있으니 얼마나 보기가 좋으냐 (다시 서류 점검하는) 원현:.....(보고 있더니) 환속을 하시려면 제대로 환속을 하시지요 신돈:(본다) 원현: 장가도 들고 가정을 이뤄야 제대로 환속을 하신 게 아니겠습니까? 신돈:(다시 서류 뒤적이는) 원현:(다가 앉으며) 소활동마님은 어떻습니까? 그 정도 배포를 지닌 여인이래야 사부님을 제대로 내조를 해주실 게 아닙니까 (웃으며) 장가를 들어서 아이도 낳고 그래야 스님 냄새가 싹 가실 겁니다. 아무리 하늘을 나는 새를 떨어뜨리는 권세를 가지면 뭘 합니까. 내 처자식 귀한 줄 알아야 권세도 제대로 쓰는 법입니다 신돈: 가짜 도사 노릇을 하고 다니더니 말솜씨가 제법 늘었구나. 그래 그 동안 얼마나 사람들을 속여 먹였느냐 원현: 속이다니오. 전 진짜로 사람의 병을 고쳐주고 다녔습니다. 작은 병이라도 자꾸 큰병이라고 하면 정말 큰 병에 걸리지만, 죽을 병도 살 수 있다고 자꾸 일러주면 낫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신돈: 그럼 내 병도 고쳐줄 수 있느냐 원현:(얼른 다가 앉으며) 무슨 병에 걸리셨는데요 신돈:....... 원현: 상사병이라도 걸리셨습니까 신돈: 넘겨짚기는 그 놈 서류 다시 뒤적인다. 원현: 소활동마님 같은 분도 드뭅니다. 형님이 죽으라 하면 눈도 깜빡 않고 죽을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 분을 놔두고 상사병이라니오. 형님도 참 힐끔 신돈의 눈치를 보더니 웃어보이는 원현. 못들은 척 서류만 뒤지는 신돈. #곤성전의 안 노국공주:...... 바라본다. 혜비:.....(고개 숙인) 노국공주: 대비전에서 후궁들을 고른다지 혜비:(본다) 노국공주: 자네 처지가 괴롭겠네 혜비: 소인은 오래 전에 죽은 사람입니다 노국공주:...... 혜비: 한 때는 중전마마를 원망했으나 지금은 편안합니다 노국공주: 자네라도 회임을 했으면 좋았을 것을 혜비: 마마께서 왕자님을 낳으셔야지요 노국공주: 그렇게 노력을 해도 소식이 없으니 한숨 짓는 노국공주. 힐끔 보며, 노국공주:(웃으며) 내가 사방에 부적을 구해서 붙였네 혜비:(마음 아픈) 노국공주:......부적이 문젠가. 그보다 더한 짓이라도 하고 싶으이 #법왕사의 마당(밤) 초선, 온다. 기다리고 서있는 지효. 덕운은 뒤에서 눈치만 슬금슬금 본다. 초선: 왕사님께선 안에 계십니까 지효: 대체 어쩌자고 이러십니까 노한 음성을 겨우 누르는 지효. 초선:..... 지효: 왕사님은 불가의 표상이십니다. 그런 어른을 내쫓으려 하다니오 초선: 그래서 제가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지효:..... 초선: 나무관세음보살 덕운도 얼른 따라서 합장을 한다. #곤성전의 안(밤) 술상. 공민왕:(웃으며) 중전께서 그런 일까지 하셨단 말씀입니까 노국공주: 초선이 하도 권하기에 공민왕:(바라본다).... 노국공주:(민망해서 고개 돌리는) 공민왕: 많이도 변하셨습니다. 중전의 어느 모습이 예전의 그 모습입니까 노국공주:...... 눈물이 글썽한. 그런 노국공주를 바라보는 공민왕. 그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며, - 몽골의 초원을 달리던 노국공주 - - 술잔을 내던지는 노국공주 - - 신혼 초야의 모습들이 - 공민왕:..... 노국공주: 송구하옵니다 전하. 저는 아무래도 글렀나봅니다 가만히 눈물 짓는 노국공주. 공민왕: 이리오세요 손을 내밀어 노국공주를 끌어안는 공민왕. 안기는 노국공주. 공민왕: 내 탓입니다. 내가 조일신과 김용과 정세운을 다 죽였으니 천벌을 받는 겁니다 #법왕사. 보우의 방 안 초선: 벌써 짐을 다 꾸리셨습니까 보우: 짐이랄 것이 뭐가 있겠느냐. 짐이라면 이 몸뚱아리가 짐이지 초선: 그냥 법왕사에 계시지요 보우:(버럭) 요귀니라 편조는 #동. 앞(밤) 깜짝 놀라 두 손을 모아 싹싹비는 덕운. 지효:...... 보우:(소리)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고 죽을 것이야 더 깜짝 놀라는 덕운. #동. 방 안 두 눈을 부릅뜬 보우.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초선. #곤성전의 마당(밤) 신돈:.... 전각을 바라보고 서있다. 전각의 불빛. #동. 안(밤) 공민왕의 품에 안긴 노국공주. 그런 노국공주를 어루만져주는 공민왕. #동. 마당(밤) 신돈:....... 전각을 바라보는 신돈. 신돈:(마음의 소리) 행복하셔야 합니다.....저를 위해서도....고려를 위해서도........ <신돈 45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