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 46회 <신돈> -46회- #도성부근의 길 전령이 달려온다. #동. 다른 길 달려오는 전령. 전령: 멈추시오. 왕명이오 원의 사신으로 떠나는 이인복 일행이 멈춘다. 이인복의 앞으로 달려가 말을 멈추는 전령. 이인복: 무슨 일이냐 전령: 급히 개경으로 돌아오시라는 왕명입니다 이인복:(불길해서) 도성에 무슨 변이라도 났느냐 전령: 원나라 사신이 도착했습니다 이인복: 그래? 도성 쪽을 바라보는 이인복. #선경전의 마당 함거를 둘러싼 관리들. 최유가 안에 갇혀있다. 산발한 마치 짐승 같은 모습이다. 마치 우리 안에 갇힌 짐승을 보듯 왁자지껄 손가락질하며 떠드는 관리들. 불안해서 두리번거리는 원의 사신들. #강안전의 안 환한 얼굴의 공민왕. 유탁: 경하드리옵나이다 전하. 근심을 하나 더 덜으셨사옵니다 공민왕: 기황후가 유폐를 당했다니 믿어지지가 않소이다 유탁: 기황후가 황제에게 양위를 강요하자 패라첩목아란 자가 반란을 일으켜 기황후를 유폐시켰다고 하옵나이다. 전하, 선경전으로 나가시어 원의 사신을 맞으시옵소서 굽혀보이는 유탁. #선경전의 안 웅성거리는 대신들. 부지런히 귓속말을 주고받는 김원명과 경천흥. 희희낙락 웃어대며 이 사람 저 사람과 환담을 나누는 이인임. 외톨박이로 서있는 이춘부. 최영과 무신들은 뒷줄에 뭉쳐있다. 이인임: 전하께옵서는 앓던 이가 빠지듯 속이 시원하시겠습니다. 사사건건 전하께 시비를 일삼던 기황후가 실각을 했으니 김원명:(나서며) 황제께서 최유를 잡아 고려로 보내주셨으니 원과 화친할 좋은 기횝니다 이춘부:(나서며) 차제에 더는 원이 고려의 내정에 간섭하지 못하게 단단히 다짐을 받아야 할 겁니다 김원명: 원의 다짐을 받다니오. 최유를 잡아보내준 것만도 고맙게 생각을 해야지 경천흥: 맞소이다. 원과 화친할 기회를 놓쳐서야 되겠소이까 이인임: 원이 우리에게 패하지 않았다면 최유를 잡아보냈겠습니까. 차제에 원의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쳐놔야지요 (대신들에게) 안그렇소이까 와아 웃음이 터진다. 김원명:....... 씰룩이는 김원명. #강안전의 뜰 서성이는 공민왕. 시립한 이색과 최만생. 유탁: 전하. 원의 사신이 선경전에서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공민왕: 잠깐만 기다리세요. 내가 신돈을 오라고 했습니다 유탁:(이색을 본다) 이색: 황공하오나 전하, 신돈은 선경전에 들어갈 수가 없사옵니다 공민왕: 신돈은 내 사부니라. 왕의 스승이면 또한 대신들의 스승도 되는 것이 아니냐 유탁:(뭐라고 하려는데) 공민왕: 저기 오십니다 웃는 공민왕. 신돈이 온다. 공민왕: 어서오세요 사부님. 나하고 같이 선경전으로 가십시다 신돈:(본다) 공민왕:(장난치듯) 살다보니 희한한 일이 생겼습니다. 원의 황제가 최유를 잡아보냈어요 다시 웃어대는 공민왕. #영수전의 안 명덕태후와 마주앉은 노국공주. 명덕태후: 원나라 황제가 뜨끔했나 봅니다. 그러니 최유를 잡아보낸 것이 아닙니까 덕녕공주: 예, 전하의 복이십니다 명덕태후: 앞으론 기황후의 비위를 맞추지 않아도 되게 생겼습니다 웃어대는 명덕태후. 미소 짓는 노국공주. #선경전의 안 최만생: 전하께서 드시옵니다 왁자지껄하던 대신들이 자릴 잡는다. 공민왕과 신돈, 유탁과 이색이 들어온다. 웅성거리는 대신들. 용상에 오르는 공민왕. 공민왕:(앉더니 최만생에게) 의자를 하나 가져오너라 최만생: 예, 전하 이환관에게 눈짓한다. 달려가서 의자를 가져오는 이환관. 공민왕: 이리 가지고 올라오너라 이환관: 예, 전하 의자를 가지고 용상으로 올라간다. 공민왕: 옆에 놓거라 이환관, 의자를 내려놓고 계단을 내려간다. 공민왕: 사부님 신돈:...... 단 아래 서있는 신돈을 부른다. 공민왕: 이리 올라와서 내 옆에 앉으세요 수군대는 대신들. 김원명:....... 부르르 떤다. 그러나 나가지 못한다. 공민왕: 뭘 하고 계십니까. 어서 이리 올라와서 내 옆에 앉으시래도요 신돈: 황공하오나 전하 공민왕: 스승을 세워놓고 어찌 제자가 앉아 있겠습니까. 어서 올라오세요 신돈:...... 모두, 신돈을 본다. 신돈:..... 숙여보이더니 계단을 올라간다. 웅성거리는 대신들. 용상 옆으로 올라선 신돈. 공민왕: 앉으세요 사부님 신돈:..... 공민왕: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합니다. 어서 앉으세요 의자를 가리키는 공민왕. 신돈, 의자에 앉는다. 김원명:(참지 못하고) 전하 이춘부:(나서며) 성은이 하해와 같사옵나이다 김원명:(이춘부를 노려본다) 이춘부: 스승을 대하시는 전하의 겸손한 모습이 아름답고 또 아름답기 그지없사옵나이다 이인임:(나서며)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따라서 복창하는 서너 명의 대신들. 버티고 선 김원명과 경천흥 등. 김원명:...... 힐끔 최영을 돌아본다. 그대로 서있는 최영 등 무신들. 공민왕: 원의 사신을 들라해라 내지르는 공민왕. #영수전의 마당 안에서 나오는 노국공주와 덕녕공주. 덕녕공주: 전하의 보위가 더욱 튼튼해졌습니다. 편조를 내세우지 않아도 만사를 전하의 뜻대로 하실 수가 있는 게 아닙니까 노국공주:(미소) 덕녕공주: 편조에게 부림을 당하는 대신들의 심사가 편하겠습니까 노국공주: 그러니 힘을 더 실어줘야지요 덕녕공주:(본다) 노국공주: 권문세도가와 사대부들이 이 나라를 망쳐놨습니다. 그런데도 그를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노비의 자식이라고 신돈의 신분만 따지고 있습니다 덕녕공주:(웃으며) 신돈이 하는 일이 옳은 일이라고 해도 노국공주:(단호히) 옳은 일이면 따라야지요 #선경전의 안 용상을 바라보고 서있는 원의 사신들. 공민왕 옆에 앉은 신돈. 이색:(칙서를 읽는다) 최유가 사악한 마음으로 환관 박불화와 짜고 고려왕을 모략하고 급기야 덕흥군을 고려의 왕으로 봉하는 우를 범하였으나 이것이 크게 잘못된 것을 알고 바로잡는다. 강릉대군을 다시 고려왕으로 삼고 덕흥군을 폐한다. 불화의 군원인 박불화는 감숙으로 귀양을 보내고 최유를 고려에 보내니 고려왕은 더욱 충효에 독실하여 그 공훈을 기려 더욱 경건할 지어다 경천흥: 황은이 망극하옵나이다 김원명: 전하. 연경에 사신을 보내 황제폐하의 은혜에 사은숙배를 드리시옵소서 신돈: 어째서 덕흥군은 보내지 않으셨는가 놀래서 모두 신돈을 본다. 신돈: 최유와 박불화는 하수인에 불과하고 역모를 꾀한 것은 덕흥군이 아닌가 이색이 원의 사신에게 귓속말을 건넨다. 원의사신:(노해서) 황제폐하께서 고려왕을 복위시켜주었거늘 감히 황제폐하의 칙서를 두고 논하자는 것인가 신돈: 우리 전하께서 이미 고려의 국왕이시거늘 황제의 칙서가 무슨 소용인가. 원이 고려와 진정으로 화친을 원한다면 덕흥군을 잡아 고려로 보내줘야 할 것이다 웅성거리는 대신들. 부르르 떠는 김원명. #동. 앞 원현이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응양군이 원현의 등을 잡아 당긴다. 원현:(뿌리치며) 이 놈. 내가 누군줄 아느냐. 전하의 사부님이신 신돈거사님과 피를 나눈 형제 지간이니라 흠칫물러서는 응양군. 으스대며 다시 안을 들여다보는 원현. #동. 안 웅성거리는 대신들. 신돈:(일어나며 공민왕에게) 전하. 덕흥군을 잡아오셔야 합니다 공민왕:(버럭) 우선 최유를 저자에 돌려 백성들에게 보이게 한 후 참수하여 다시는 반역을 꾀하는 자가 없게 하라 #남대가의 거리 함거에 실린 최유. 돌을 던지고 조롱하며 욕설을 퍼붓는 백성들. 함거 안에다 침을 뱉는 백성들도 있다. #기황후의 처소. 안 기황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기황후를 지키고 있는 군졸들. 아유시리다라: 어머니 들어온다. 막는 군졸들. 아유시리다라: 비키지 못하겠느냐 이놈들 기황후와 아유시리다라 사이를 더 겹겹이 막는 군졸들. 아유시리다라: 조금만 참고 계십시오 어머니. 소자가 어머닐 구해드리겠습니다 군졸들이 아유시리다라를 몸으로 밀어낸다. 아유시리다라: 이 놈들. 내가 누군 줄 모르느냐. 내가 황상의 뒤를 이을 태자니라 밖으로 밀려나는 아유시리다라. 텅빈 방 안. 기황후:.....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남대가의 거리 춤추는 망나니. 칼에다 입에 담았던 물을 뿌리는 망나니. 칼을 치켜드는 망나니. 최유: 이 놈. 니 놈이 그 자리에 얼마나 앉아있는지 내가 죽어서도 지켜볼 것이다 최유의 목을 내려치는 칼. #초선의 집. 마당 원현: 말도 마시게. 우리 신돈 사부님께서 용상 옆에 의자를 갖다놓고 떡하니 앉아계시는 모습이 어찌나 당당하신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지지 뭔가 공철과 장정들, 고개를 끄덕인다. 원현:(눈물을 쓱 훔치고) 그 동안 고생들 많았네. 머잖아 우리들 팔자가 쫘악 필 것이네. 앞으론 노비도 없고 귀족도 따로 없는 공평한 세상이 올 것일세 왁자지껄 좋아서 떠드는 공철과 장정들. #동. 안방 밖에서 웃음 소리. 싱긋 미소 짓는 초선. 앞에 놓인 장부를 뒤적인다. 박서방: 이번달 수입이 배로 늘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그 동안 본 손해를 다 만회할 것 같습니다 초선: 돈이 모이면 차밭을 다시 사들여야하네 박서방: 차밭 주인들이 모두 권문세족들인데 팔겠다고 내놓겠습니까 초선: 팔게 만들어야지 박서방:....... 초선: 인삼과 차를 사고파는 권한을 전하께서 거사님께 주시지 않았나. 그걸 이용해야지 박서방: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신지 초선: 권문세족들이 갖고 있는 차밭에서 난 차는 한 잎도 사들이지 말게. 우리가 사주지 않으면 팔 데가 없으니 차밭을 팔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일세 #초선의 다점. 앞 박서방, 온다. 상인의 지시로 차를 담은 포대를 안으로 들여놓고 있는 인부들. 박서방: 잠깐 상인: 나오셨습니까요 박서방: 그건 웬 찬가? 상인: 일전에 말씀드린 호부시랑댁 차밭에서 난 박서방: 도로 내가시게 상인: 예? 박서방: 올 차농사는 질이 떨어져서 연경에서 들여오기로 했네 상인: 아이구 이러시면 어떡합니까. 비싼값을 치르고 가져온 찬데 박서방: 도로 물리시게 (인부들에게) 다시 내가거라 인부들, 눈치본다. 박서방: 뭘 꾸물대는 거야. 다시 내가라니까 인부들 차 포대를 수레에 싣는다. 상인: 나리. 사정 좀 봐주십시오 박서방: 내 허락 없이 차를 사들였다간 다신 이 장살 못해먹을 줄 알게 #어느 전각. 앞 초선:...... 신돈을 바라본다. 신돈:...... 초선:(싱긋 웃으며) 말들이 많았겠습니다. 거사님께서 전하 옆에 의자를 놓고 앉아계셨다니 신돈: 그 소문이 벌써 보살님 귀에 들어갔습니까 초선: 백성들이 희희낙락 좋아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웃으며) 노비의 자식에게 대신들이 허리를 굽혔으니 얼마나 통쾌하겠습니까 신돈: 차밭은 어찌됐습니까 초선: 시키시는대로 했습니다 신돈: 잘 하셨습니다. 전하께 차밭에 무거운 세금을 물리라고 말씀을 올렸습니다. 그리되면 팔지 않고는 못배길 겁니다 싱긋 웃는 신돈. #강안전의 안 공민왕: 미안합니다. 기껏 도성으로 돌아왔는데 다시 길을 떠나라고 해서 이인복:.....(바라보는) 공민왕: 무슨 일이 있어도 덕흥군을 잡아와야 합니다 이인복: 전하 공민왕: 생각을 해보세요. 덕흥군이 연경에 살아있는한 계속 말썽을 일으킬 겁니다 이인복: 황공하오나 전하, 덕흥군이 무슨 힘이 있어 분란을 일으키겠습니까. 게다가 덕흥군을 후원하던 기황후가 실각을 했으니 더는 말썽을 부리지 못할 것이옵니다 신돈:(들어오며) 원이 문제가 아니지요 이인복:(흠칫) 신돈: 김용이 언감생심 반역을 꿈꾼 것이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덕흥군을 고려의 국왕으로 세운다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민왕: 그렇지 신돈: 덕흥군을 잡아다 그 죄를 물어야 반역을 꿈꾸는 자들이 사라질 겁니다 이인복: 조정의 대신들을 의심하시는가 신돈: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 지금까지 크고 작은 역모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마음 속으론 전하를 고려의 국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까닭입니다. 원의 황제가 전하를 왕위에 세웠으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전하를 폐위시킬 수도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이인복:(신음) 신돈: 전하께서 고려의 유일한 국왕이시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리임을 뼛속 깊이 새겨주기 위해서라도 덕흥군을 잡아다 그 죄를 물어야 합니다 이인복: 오만하고 방자하기 그지 없는 것은 조정의 대신들이 아니라 자네가 아닌가 신돈:....... 이인복: 그 자리가 어디라고 용상 옆에 의자를 놓고 앉아 계셨는가 신돈: 그 자리에 제가 아니라 성산군께서 앉아계셨다면 그래도 말들이 많았겠습니까. 전하와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자리에 노비의 자식이 앉아 있는 것이 더 문제였겠지요 이인복:(신음) 공민왕:(싱긋) 신돈: 그 동안 권문세도가들이 전하보다 더 큰 권세를 누렸습니다. 더는 안 됩니다. 누가 신하고 누가 임금인지 분명히 가려야 할 겁니다 #대궐의 길 오는 이인복. 따라오는 이인임. 이인임: 그것보십시오 형님. 전하께 말씀을 올려봤자 이인복:(멈추더니) 처신을 똑바로 하시게 두 눈을 부릅뜨는 이인복. 이인임: 제가 뭘 이인복: 체신없이 편조의 비위를 맞춰? 흘키고 가는 이인복. 이인임:(뒤에다 대고) 편조가 곧 전하십니다. 대세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어요 이인복:...... 훽 돌아보는 이인복의 사나운 눈길. 찔끔해서 그 눈길 피하는 이인임. #강안전의 안 공민왕:......(바라보더니) 잘했다. 내 속이 다 시원하구나 신돈: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공민왕: 그 놈의 망극이니 황공이니 하는 소린 내 앞에선 하지마라. 그 소리만 들어도 신물이 난다 신돈: 황공하옵게도 소인이 전하와 나란히 앉았나이다 공민왕: 또 그 놈의 황공. 내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황공이니 망극이니 하는 대신들이 뒤돌아서면 원의 볼모로 끌려가 주색잡기나 하던 위인이 어쩌다 운이 좋아 임금이 된 주제에...... 신돈:(피를 토하듯) 전하. 더는 그런 수모를 당하시면 아니되십니다 공민왕:...... 신돈:....... 눈물이 치솟아 얼른 고개를 돌리는 신돈. 공민왕:......(바라보단) 염려하지 말거라. 이번엔 내가 한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을 것이야 신돈:......(바라본다)......(웃으려고 하는) 공민왕: 앞으론 아예 내 옆자리에 앉거라. 너와 내가 용상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숨들이 막히겠지 통쾌한 웃음. 그런 공민왕을 바라보는 신돈. #영수전의 안 김원명: 마마. 조정대신들과 사대부들이 그나마 체면치레를 하며 사는 것은 차밭에서 나오는 쥐꼬리만한 수입 덕분이었나이다 명덕태후:...... 김원명: 하온데 차밭에 무거운 세금을 물리면 남는 것이 무엇이 있겠나이까. 게다가 편조가 차를 사고 파는 상권을 독점하고 있으니 이러다간 차밭을 고스란히 뺏길 판이옵니다 명덕태후: 어쩌겠나. 주상의 신임이 두터우니 김원명: 명문세족과 사대부들을 다 적으로 돌리시고 전하께서 무사하시겠사옵니까 명덕태후:....... 끄응 신음하는 명덕태후. 김원명: 전하를 지켜드릴 분은 태후마마뿐이시옵니다. 편조와 전하를 갈라놓으셔야 하옵나이다 #숭문관의 마당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바라보는 신돈. 신돈: 숭문관 수리가 끝나면 옆에다 새 건물을 하나 더 지어야겠어요 이색: 이만하면 충분합니다. 성균관 학생이 이십 여인에 불과한데 더 큰 건물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신돈: 그것 가지곤 안돼지요. 성균관의 유생을 백 명으로 늘릴까 합니다 이색: 백 명이라니오 신돈: 그래야 조정에 물갈이가 됩니다 이색:...... 신돈: 부지런히 인재를 키우세요. 젊고 청렴한 유생들로 조정을 채워야 이 나라가 바뀝니다 이색: 그 많은 인원을 먹이고 재우고 가르치는 비용은 어디서 조달을 하시려구요 신돈:(웃으며) 전하께 나를 부자로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드렸더니 남대가의 상권을 주셨어요. 그러니 돈 걱정은 마세요 (정색하고) 공자께서 가르치시기를 나라의 근본은 충과 효라고 하셨다지요 이색: 하여간 덕분에 성균관이 제 역할을 다 하게 생겼습니다 떨어져 눈치만 보고 있는 임박, 김구용, 정몽중 등 유생들을 오라고 손짓하는 이색. 세 사람 온다. 이색: 인사를 올리시게. 전하의 사부가 되시는 신돈거사님일세 눈치보는 세 사람. 마지못해 숙여 보인다. 신돈: 자네들 손에 고려의 장래가 달렸네 웃으며 합장하고 돌아서 가는 신돈. 바라보는 이색과 유생들. 신돈, 보이지 않는다. 임박: 신돈을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김구용: 중이 유림에 호의를 베푸는 이유가 뭔지 이색:......(정몽주 보더니) 자네 생각은 어떤가 정몽주: 국왕에게 충성하는 새로운 세력을 양성하려는 게 아닐까요 이색: 으음 (끄덕인다) 임박: 유림이 불가와 손을 잡을 수는 없습니다 이색: 그렇다고 유림이 권문세도가와 손을 잡을 수는 더더욱 없잖은가 정색하고 유생들을 바라보는 이색. #강안전의 마당 신돈, 온다. 멈춘다. 지효가 서있다. 신돈을 보더니 가만히 고개를 돌려버리는 지효. 신돈:...... 전각을 바라본다. #동. 안 인장을 공민왕에게 올리는 최만생. 공민왕: 이게 무엇이냐 최만생:(우물쭈물) 보우: 왕사의 인장입니다 공민왕:(시침 떼고) 그런데요 보우: 소승은 왕사의 막중한 임무를 면하고 산으로 들어갈까 합니다 공민왕:(웃으며) 산으로 들어가시다니오. 보우왕사님 같은 고승께서도 더 닦을 수도가 남았단 말씀이십니까 보우: 떠나기 전에 한말씀 드리겠습니다 공민왕:(여전히 웃으며) 예, 말씀하세요 보우: 세상은 스스로 바뀌는 겁니다.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에 불과하옵니다 공민왕:(웃음이 사라지는) 보우: 나무관세음.... 합장해보이고 벌떡 일어나는 보우. 그런 보우를 비웃듯 바라보는 공민왕의 -. #동. 마당 보우, 나온다. 보우:(신돈을 힐끔 보더니 지효에게) 가자 앞서가는 보우. 따르는 지효. 신돈:..... 바라보더니 정중히 합장배례하는 신돈. #동. 안 공민왕: 인간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게 오만이라니 신돈: 보우스님의 말씀이 틀리지 않습니다 공민왕:(본다) 신돈:(미소) 공민왕: 허면 너는 왜 세상을 바꾸려고 하느냐 신돈: 망상에 사로잡힌 탓이옵니다 공민왕: 망상이라니 신돈: 전하. 소인이 전하와 함께 전민변정도감을 세웠을 때 소인이 전하께 전하 자신을 버릴 수가 있느냐고 여쭈었습니다. 기억을 하시는지요 공민왕:..... 신돈: 세상은 두 개의 얼굴을 하고 있사옵니다. 밝은 것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천민이 있으면 귀족이 있나이다. 빠른 것이 있으면 느린 것이 있고, 큰 것이 있으면 작은 것이 있나이다. 모두가 크다면 작은 것이 있을 수 없고, 모두가 빠르다면 느린 것이 있을 수 있겠나이까 공민왕:..... 신돈: 소인의 꿈은 노비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옵니다. 노비에게서 태어난 자식은 죄가 없어도 노비가 되는 세상은 공평한 세상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옵니다. 허나 노비가 없다면 어찌 귀족이 편안히 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소인은 노비가 없는 세상을 소인의 꿈이라고 말씀을 올리는 것이옵니다 공민왕:(웃으며) 나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신돈:......(바라본다) 공민왕:(웃으며) 내가 알아듣게 쉬운 말로 해보아라 신돈: 부처님께선 왕자셨으나 그 신분을 버리셨습니다. 범인의 생각으로는 부처님께서 왕위를 물려받아 그 자비심으로 나라를 다스렸다면 그 백성이 얼마나 편안했겠습니까. 허나 그 안락함이 또한 얼마나 오래갔겠습니까 공민왕: 백년이야 가겠지. 내가 잘못된 것을 다 바로잡고 선정을 베푼다면 태평성대가 백년도 못 이어지겠느냐 신돈: 가고 말고요 전하 공민왕:..... 신돈: 전하께서 다 버리실 각오가 돼있다면 백년의 세월을 못이어가겠습니까 웃어보이는 신돈. #도성의 성문. 앞 보우를 따라나오는 지효. 보우:(멈추더니) 그만 돌아가거라 지효: 소승은 왕사님을 따라가겠습니다 보우: 내 대신 법왕사를 지켜야지 지효:(눈물이 치솟으며) 왕사님께선 어째서 이런 수모를 당하고만 계십니까. 왕사님께서 한마디만 하시면 편조를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보우: 편조가 다 틀린 것이 아니다 돌아서가는 보우. 바라보고 서있는 지효의 눈물. #법왕사의 마당 지효, 온다. 지효:..... 부르르. 보우의 방에서 짐을 내오는 스님들. 덕운: 꾸물대기는. 지효스님 돌아오기 전에 다 옮겨야한다 지효:(버럭) 이게 무슨 짓입니까 덕운:(놀래서 보더니 웃으며) 저....그 뭐냐, 소활동 보살님께서 가끔 절에 들러 묵고 가시겠다고 해서 방을 치우고 있는 중일세 지효: 다 도로 들여놓으세요. 보우 왕사님 방입니다 돌아서 가버리는 지효.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덕운. 덕운의 눈치를 보는 스님들. 다시 들여놓으라고 손짓하는 덕운. 짐을 다시 안으로 들여가는 스님들. #강안전의 안 생각에 잠긴 공민왕. 바라보고 서있는 최만생. 공민왕: 설마하니 나보고 이 자리를 버리라고 한 건 아니겠지 최만생:.... 공민왕: 너는 어찌 들었느냐 최만생: 소인은 자세히 듣지 못했나이다 공민왕:....... 다시 생각에 잠기는 공민왕. 그런 공민왕의 눈치를 보는 최만생. #곤성전의 안(밤) 시립한 김상궁. 노국공주와 마주앉은 신돈. 노국공주: 어째서 전민변정도감을 다시 세우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신돈:(미소) 노국공주: 서두르셔야 합니다. 지금처럼 전하의 보위가 튼튼할 때 밀어붙이셔야지요 신돈: 이번에도 실패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겁니다 노국공주:(바라보는) 신돈: 이번엔 적과 우군이 누군지 분명히 가려 천천히 나아갈 겁니다 노국공주: 적과 우군이라니오? 신돈:...... 노국공주: 저들이 모두 한통속이라는 걸 모르십니까 신돈:...... 노국공주:(바싹) 권문세족이든 유림이든, 사대부든 불가든 그 누구든 믿으시면 안 됩니다. 지금은 전하의 위엄이 넘치고 명분에 밀리니 몸을 낮추고 있으나 전하께서 조금만 허점을 보이시면 다시 한데 뭉쳐 전하를 핍박하려고 들 겁니다. 마치 나무꾼이 폭풍이 몰아치면 나무 뒤에 몸을 숨겨 바람을 피했다가 바람이 잠잠해지면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쓰듯이, 지금은 전하를 방패삼아 바람을 피하고 있으나 언젠가는 다시 나무에 열린 열매를 서로 차지하겠다고 다툴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전하께서는 힘을 쓰실 수가 없습니다 신돈:...... 노국공주: 전하께서 힘이 계실 때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지금이 바로 그 땝니다 신돈:...... 노국공주: 대체 뭘 망설이고 계시는 겁니까 윽박지르듯 내지르는 노국공주. 여전히 미소로 답하고 있는 신돈. #동. 마당(밤) 나오는 신돈. 문득 괴롭다. #동. 안(밤) 생각에 잠긴 노국공주. 바라보는 김상궁. 노국공주:(가만히 한숨) 김상궁: 심려치 마시옵소서 마마. 조정에 사부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차츰 늘어나고 있다고 하옵나이다 노국공주: 전하께선 머지않아 권신들에게 휘둘리실 것이야 김상궁:........ 노국공주: 내가 전하의 아들을 낳아드리지 못했으니 그걸 트집삼아 분란을 일으키겠지 김상궁: 황공하오나 마마께서는 아직 젊으시옵나이다 노국공주: 나는 틀렸다. 그렇게 노력을 해도 소식이 없으니 김상궁:...... 노국공주: 하다 못해 후궁의 몸에서라도 후사를 얻으셨다면 내 맘이 편했을 텐데 전하께선 한사코 거들떠보지도 않으시니 김상궁: 전하께옵서는 중전마마밖에는 모르시옵니다. 소인들은 전하의 그런 모습을 뵈올 때마다..... 가만히 눈물을 훔치는 김상궁. 생각에 잠긴 노국공주. 노국공주:.....물 만난 고기들처럼 날뛰겠지....저마다 비어있는 보위를 놓고 다툴 게 아니냐. 피비린내 나는 권력다툼이 벌어지고 전하께선 일찌감치 힘을 잃게 되실 것이야 (한숨 쉬다) 내가 죄인이다. 내가 전하의 발목을 잡고 있는 덫이니라 김상궁:...... 노국공주:(힘있게) 서둘러야 한다. 전하께서 후사를 얻지 못하신다면 지금 다 바로 잡으셔야 한다. 전하께서 누구에게 왕위를 물려주든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야 하느니라..... #이인복의 집. 앞 김원명, 온다. 흠칫 멈춘다. 대문이 활짝 열려있다. 김원명:..... 신음하더니 안으로 들어가는 김원명. 그 모양을 숨어서 엿보고 있는 공철. #동. 후원 정자 청지기를 따라오는 김원명. 정자 위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이인복, 최영, 경천흥. 기생들이 시중을 들고 있다. 김원명: 대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인복: 역적모의를 하자는 것도 아닌데 대문을 걸어 잠글 일이 뭐가 있겠소이까 김원명: 하긴 그렇지요 웃으며 올라가 자리잡고 앉는 김원명. 이인복: 오늘 이 자리는 최장군께서 찬성사로 영전하신 것을 축하하는 자리외다 김원명: 나도 소식을 들었습니다 (최영에게) 그 동안 외방에서 고생이 많으셨소이다 최영: 무거운 갑옷을 벗고 앉아있으니 몸이 편하긴 한데 마음은 편하지가 않습니다 김원명: 아니, 그건 왜요 최영: 장수는 전선에 나가 있어야 마음이 편한 법입니다 경천흥: 그럴 나이는 지나셨지요. 전선은 젊은 장군들한테 맡기시고 이제부터는 조정 안에 들어와 군이나 관리하면서 편히 지내셔야지요 김원명: 하여간 내가 찬성사대감께 술 한잔 올려야겠습니다 이인복: 후래삼배라 했으니 상호군께서 먼저 받으셔야지 (웃으며 기생들에게) 올리거라 기생이 김원명의 잔에 술을 따라준다. 경천흥:(기생에게) 조심해 따르거라. 그 어른이 무서운 분이시다. 대궐의 경비를 담당하는 응양군의 대장이시니 전하의 생사를 쥐고 계신 분이니라 김원명: 그러고보니 그래서 전하께서 최장군의 군복을 벗기고 찬성사를 삼으셨구만. 안 그렇소이까 성산군대감. 대궐은 내 수중에 들어있고 야전군은 최장군의 손에 들어있으니 불안하셨겠지 이인복: 잔이나 비우시게 김원명: 예, 성산군대감 (단순에 마시고) 두 번째 잔은 여기다 따르거라 큰 대접을 집어드는 김원명. 경천흥: 아예 술병째 드시지요 김원명: 내가 이 놈의 세상을 통째로 마셔버리고 싶소이다 대접에 따른 술을 벌컥벌컥 들이마시는 김원명. #어느 전각. 안 엉거주춤 앉은 이인임. 묵묵이 앉은 신돈. 그런 이인임을 힐끔 보는 원현. 이춘부: 뭘 하고 계시나. 그렇게 다시 뵙고 싶다고 조르더니 쑥스러워하기는 이인임: 정식으로 인사를 올리지요. 소인은 이인임이라고 합니다 이춘부: 성산군 이인복의 친아우시지요 신돈:(가만히 바라보더니) 다시 뵈도 형제분의 외모가 판이하십니다 이인임:(웃으며) 그렇게 말들을 합니다 이춘부: 외모만 다른 게 아니지요. 생각하는 바도 다르고 시국을 보는 관점도 다르지요 (바싹 앉으며) 사부님. 이 사람과 저는 사부님을 모시고 생사를 같이하기로 했습니다 이인임: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입니다만 거둬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엉거주춤 엎드려 절을 하는 이인임. 비웃듯 보는 원현. #동. 마당 나오는 이춘부와 이인임. 이춘부: 어떤가. 다시 뵈니 이인임: 나를 보는 눈길이 곱지가 않더이다 이춘부: 그럴 리가. 한 사람이 아쉬운 판에 자네가 제 발로 찾아왔는데 이인임: 내가 절을 하면 저도 맞절을 해야지. 그냥 팔짱 끼고 내 인사만 받는 모양이 이춘부: 그럴만하지 뭘 그러나. 전하 다음 가는 분이신데 웃어대는 이춘부. #동. 안 원현: 성산군에 비하면 인품도 지조도 한참 떨어지는 하치로 보였습니다 신돈:...... 원현: 이춘부도 그렇지요. 평판이 나쁩니다 신돈: 썩은 음식엔 파리가 들끓는 법이다 원현:..... 신돈: 그래야 그 덕분에 썩은 음식이 말끔히 치워질 게 아니냐 싱긋 웃는 신돈. 원현: 백성들이 바라는 건 그게 아닙니다 신돈:...... 원현: 정치 따윌 배울 생각은 마시지요. 백성들은 사부님을 미륵보살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부님께서 권모술수를 쓰고 배우셔야 되겠습니까 못마땅해서 고개 돌리는 원현. 신돈:..... 싱긋. #이인보긔 후원 정자 기생들을 물렸다. 이인복: 전하께서 하시려는 개혁들은 모두가 옳소이다. 고려의 내정을 바로 잡지 못하면 이 나라는 희망이 없소이다. 원이 아니라도 고려는 망하고 말 것이외다 심각한 최영, 김원명, 경천흥. 이인복: 허나 편조는 아니외다. 편조와 전하가 지금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거외다. 전하께선 왕실을 튼튼히 하고 군주의 위엄을 세워 고려를 지키려고 하시나 편조는 고려의 흥망에는 관심이 없는 자외다 김원명: 천민이 춤추는 세상. 그걸 꿈꾼다지요 이인복: 어찌하면 전하와 편조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을지. 그 대책을 강구해야겠소이다 경천흥: 묘책이 있습니다 모두 본다. 경천흥: 전하의 보령이 서른을 넘기셨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전하의 뒤를 이을 왕자를 세워야 할 것이 아닙니까 김원명: 옳거니. 내가 왜 그 생각을 진즉 못했을꼬 경천흥: 전하께 왕자를 봉하시라고 압력을 넣으면 최영: 중전께서 회임을 못하시는데 어떻게 후사를 세운단 말입니까 김원명: 전하께서 덕흥군을 잡아오려고 하시는 이유를 모르시겠소이까. 중전께서 왕자를 낳지 못하고 후계자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면 다시 덕흥군을 고려의 임금으로 세우려는 자들이 나타날까봐 그걸 두려워하는 거외다 최영:(신음) 김원명: 지금 왕실엔 전하의 뒤를 이을 마땅한 인물이 없습니다. 중전께선 회임하시기 글렀고 지금 후궁을 들인다고 해도 언제 왕자가 태어날 지 모릅니다 (주위 살피고) 내 생각엔 실은 중전보다 전하께 문제가 있는 것 같소이다 최영: 전하께 더 문제가 있다니오 김원명: 전하께서 중전을 애지중지하신다고 설마하니 혜비의 몸에 손도 안 대셨겠소이까 최영: 허기사 김원명: 내 손에 장을 지지겠소이다, 전하께서 자식을 얻으시면 (더 바싹) 이렇게 하십시다 이인복:.....(번뜩이는) 김원명: 전하 못지 않게 편조를 후원하는 사람이 중전입니다. 헌데 전하께 왕자를 봉해야 한다고 압력을 넣으면 중전의 입지가 좁아질 것입니다. 왕자를 낳지 못한 주제에 무슨 면목으로 뒷전에 앉아 정사에 간여를 하겠습니까 최영: 그렇다고는 하나 전하의 후계를 논하기 시작하면 분란이 끊이질 않을 겁니다. 연경에 있는 덕흥군이 다시 말썽을 피울 것이고 김원명: 전하의 힘이 지금처럼 넘치면 우리가 모두 죽습니다. 우리가 죽는 것은 괜찮으나 고려의 장래가 어찌 되겠소이까. 편조 같은 자가 마음대로 국정을 요리할 것이 아닙니까. 누가 압니까. 편조의 말대로 천민이 춤을 추는 세상이 올지 두 눈을 부릅뜨는 김원명. #영수전의 복도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서있다. 방 안에서 웃음 소리. 김상궁:(얼른) 태후마마. 전하께서 저녁 문후를 드셨사옵니다 명덕태후:(안에서 웃으며) 뫼셔라 방문 여는 나인들. #동. 안 들어오는 공민왕과 노국공주. 얼른 일어나 자리를 피하는 익비와 정비. 명덕태후:(웃으며) 어서오세요 주상. 내가 이 아이 때문에 웃고 있습니다 공민왕:.......(본다) 명덕태후:(익비와 정비에게) 뭘 하고 있느냐. 전하께 인사를 올리지 않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리는 익비와 정비. 명덕태후: 앉으세요 공민왕과 노국공주, 앉는다. 명덕태후:(익비에게) 니가 덕풍군의 여식이라고 했느냐 익비: 예, 마마 명덕태후: 헌데 그런 우스개 소리는 어디서 들었느냐 익비: 남대가의 찻집에서 들었사옵니다 명덕태후: 양갓집 처녀가 그런 곳도 드나드느냐 익비: 여염집 처자처럼 차려 입고 가면 알아보는 사람이 없사옵니다 명덕태후: 원, 저런 (웃으며) 주상. 저 아이들을 가까이 두고 지내보세요. 어찌나 하는 얘기들이 재밌는지 내가 웃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공민왕:......(힐끔 노국공주를 본다) 노국공주:.....(미소 짓고 있는) 명덕태후: 젊어지셔야지요 주상께서도. 안그렇습니까 중전 웃어대는 명덕태후. #동. 마당 나오는 공민왕 노국공주. 혜비가 서있다. 공민왕:(노국공주를 보더니) 어머니도 참 (한숨 쉬며) 중전에게 무안해서 혼이 났습니다 노국공주:(미소) 무안해하실 게 뭐 있습니까 공민왕: 어린아이를 후궁으로 들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노국공주: 제왕이 여러 후궁을 들이는 건 흉이 아닙니다 공민왕: 나는 여색을 밝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슬며시 역정을 내며 앞서가는 공민왕. 노국공주:..... 문득 쓸쓸한. 그런 노국공주를 바라보는 혜비. #중서문하성의 회의실 유탁:(신음) 이인복: 생각을 해보십시오. 만일 전하께서 후사를 두지 못하시면 그 자리를 놓고 치열한 다툼이 벌어질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그 전에 누구든 왕자로 봉해 왕실의 안정을 기해야 합니다 유탁: 그런 말씀을 어찌 올린단 말씀이신가 이인복: 문하시중대감 유탁: 난 못하네. 무안해하시는 중전마마의 모습을 나는 뵐 수가 없네 고개 돌려버리는 유탁. #영수전의 안 김원명: 중전마마의 안색이 붉어지더란 말씀이지요? 명덕태후: 저도 무안하고 미안했겠지 김원명: 슬며시 그 말씀도 흘리시지요 명덕태후:(본다) 김원명: 종친 가운데 왕자를 봉하시라고 명덕태후: 그럴수야 있나. 주상의 피가 섞여야지 김원명: 노여워하지 마시옵소서 태후마마. 연경에 있는 덕흥군이 또 말썽을 부릴까봐 드리는 말씀입니다 명덕태후: 기다려보게. 내가 주상을 재촉해서 어린 후궁들을 들이라고 할 것이니 #곤성전의 마당 가마가 와서 멎는다. 가마문 여는 박의처. 내리는 초선. 초선: 따라오너라 약봉지를 들고 따라가는 박의처. #동. 안 약봉지. 노국공주:..... 초선: 드셔보십시오. 용하다는 의원한테서 지어온 약이옵니다 노국공주:(가만히 한숨) 초선:(김상궁에게) 약을 달여 올리시게 #동. 수랏간 약탕관. 김상궁: 어디서 구해오셨습니까 박의처: 마님께서 중국에까지 사람을 보내 구해오신 약초들입니다 김상궁: 그래요 박의처: 제발 효험을 보셔야 할 텐데 약을 짜는 박의처. #동. 안 약. 노국공주:....(바라보는) 초선: 드시지요 마마 노국공주: 고맙네. 이렇게 신경을 써주시니 초선: 당치 않으시옵니다. 소인 뿐 아니라 만백성이 마마의 회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약사발을 집어드는 노국공주. 입으로 가져간다. 바라보는 초선과 김상궁. 서 너 모금 마시던 노국공주가 갑자기 멈춘다.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초선. 노국공주:...... 입안에 있던 약을 넘기려던 노국공주가 갑자기 윽 구토를 한다. 김상궁: 마마 토기를 참느라고 애쓰는 노국공주. 김상궁: 괜찮으시옵나이까 마마 노국공주:........으윽 이윽고 참지 못하고 약을 토해내는 노국공주. #동. 마당 김상궁:(안에서) 마마 비명을 지르는 김상궁의 목소리. 놀래서 보는 박의처. 김상궁이 달려나온다. 김상궁:(유나인에게) 당장 어의를 불러오너라 달려가는 유나인.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김상궁. 박의처: 뭐가 잘못됐습니까 김상궁: 마마께옵서......(우왕좌왕하더니 나인들에게) 대전에도 고하고 태후전에도 고하거라. 중전마마께서 약을 드시다 혼절을 하셨다고 이리저리 달려가는 나인들. #동. 안 노국공주를 품에 안고 있는 초선. 초선: 마마. 정신을 차리십시오 마마 노국공주:.... 또 다시 토기가 치밀어 헛구역질을 하는 노국공주. 초선: 마마 노국공주를 품에 안고 어쩔 줄 모르는 초선. #어느 전각의 마당 안에서 나오는 신돈. 초선이 서있다. 신돈을 보더니 울음이 터진다. 초선: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신돈:...... 초선: 중국에까지 사람을 보내 회임에 좋다는 약을 구해 마마께 올렸는데 약에 독초라도 들었는지 마마께서 토사곽란을 일으키셨습니다 신돈:..... 어느새 달려가고 있는 신돈. #곤성전의 마당 달려오는 신돈. 마당에 가득한 환관들과 나인들. 어의들이 부리나케 드나들고 있다. #동. 안 누운 노국공주. 명덕태후: 다시 한번 짚어보아라 어의: 예, 태후마마 조심스럽게 노국공주의 진맥을 잡는 어의. 귀를 기울인다. 마른침 삼키는 공민왕. 명덕태후: 틀림 없느냐 어의:(손 떼고) 예, 태후마마 명덕태후: 분명 회임을 하셨단 말이지 어의: 그렇사옵나이다 태후마마 명덕태후:(환하게 웃으며) 경하드립니다 주상.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중전께서 변이라도 당하셨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공민왕:..... 너무 반가워 눈물이 글썽이는 공민왕. 덕녕공주: 경하드립니다 전하 공민왕: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눈물이 글썽해서 환하게 웃는 공민왕. #동. 마당 바라보고 서있는 신돈. 뒤에서 여전히 눈물 닦고 있는 초선. 안에서 김상궁이 나온다. 김상궁:(신돈을 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기뻐하십시오. 중전마마께옵서 회임을 하셨습니다 신돈:(마치 무너지듯) 나무관세음..... 저도 모르게 합장한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동. 복도 나오는 명덕태후와 덕녕공주. 명덕태후: 이젠 한시름 놨습니다. 중전이 회임을 했으니 주상의 혈통을 잇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웃는 명덕태후. 미소짓는 덕녕공주. #동. 안 공민왕:..... 노국공주를 바라본다. 노국공주:..... 공민왕을 보더니 가만히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리는 노국공주. 공민왕: 중전께서 수줍음을 다 타십니까 더 고개 돌리는 노국공주. 노국공주의 손을 꼭 잡아쥐는 공민왕. 공민왕: 고맙습니다 중전. 덕분에 신돈과 내가 더 힘을 얻게 생겼습니다 노국공주:..... 비로소 공민왕을 보는 노국공주. 그 눈에 고이는 눈물. #동. 마당 명덕태후와 덕녕공주가 나오며 환담을 나눈다. 따라서 웃고 떠드는 환관들과 나인들. 눈물을 닦으며 합장하고 또 합장하는 초선. 신돈:...... 전각을 바라보는 신돈. 이윽고 눈물처럼 환하게 웃는다. #동. 안 노국공주의 눈물을 닦아주는 공민왕. <신돈 46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