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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1막
(밤이다. 철길 부근의 아파트 그 한방) (관리인은 소파에 기대어 마치 잠이 든 듯 움직이지 않는다. 준상은 테라스에 기대어서 밖을 보고 있다 아파트 계단에 중년 남자가 나타난다 두리번 거리더니 준상의 방 호수를 확인한다 벨을 누룰까 망서리는데 굉음- 기차가 달려와 고조되더니 이윽고 사라지면)
[준상] (중얼거리듯) 가버렸구나! 기차가 달려가 버렸어--- (사이) (아파트 계단의 중년 남자는 한층 더 올라가 버린다 갑자기 욕실에서 샤워소리 관리인 깜짝 놀라 깬다. 좀 취했다)
[관리인] 뭐 뭐라구요--- (사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준상] 아녜요
[관리인] 네?
[준상] 아니라구요
[관리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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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떡 일어나더니 욕실로 간다)
[준상] 고장에요
[관리인] 예?
[준상] 샤워!
[관리인] 아 고장이라고 그러셨읍죠 (다시 앉더니 얼결에 술병에 손이 간다 전화벨- 깜짝 놀래 술병에서 손을 떼는 관리인)
[준상] 고장에요
[관리인] 네?
[준상] 전화
[관리인] 아! 참 그렇습죠
(준상 안으로 들어와 의자에 앉는다 멍한 관리인 다시 술잔을 만지작 준상 보더니 술을 따라준다)
[관리인] 헤헤 이거 죄송해서 (받아서 반쯤 마시고) 커 독하다 양주는 독해서요--- 그 사람도 그랬죠 그 기차에 치어 죽은--- 독해요 기차가 사정없이 지나 갔읍죠 이리로 해서 여기까지 쭈욱! (가슴으로 해서 머리까지 반으로 잘라 보인다) 말두 마십쇼 너무 끔찍해서 누구 한 사람 가까이 가려 들지를 않습니다. 그려 시체가 산산조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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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 않았습니까? 거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구먼요 (몸을 떨며 나머지 술을 마저 마셔 버린다. 안주 하나 먹으며) 여기저기 살점이 더덕더덕 붙어 있으니 얼굴을 알아 볼수가 있나. 아마 진즉부터 그 철길에 누워 있었던 모양입죠 턱 버티고 누워선 자! 기차야 지나갈테면 가봐라! 하는 뱃장이니 하! 그 맺고 끊는 맛이 제법--- 안그렇습니까 선생님 (준상을 본다 준상 듣고 있는지 어쩐지 반응이 없다 욕실에서 샤워 소리가 다시 들려 온다)
[관리인] 하 저것이 또 오줌을 싸는구먼요. 안그렇습니까? 꼭 오줌싸는것 같지 뭡니까. 미친년 어떻다는 식으로 말입죠 헤헤--- (준상은 여전히 반응이 없다 관리인 쑥스러운 김에 손이 저절로 술병으로 간다 준상이 몸을 조금 움직인다 퍼뜩 손을 떼는 관리인)
[관리인] 아닙니다. 이젠 됐습니다. 이젠
[준상] 뭐라고 하셨습니까?
[관리인] 서양술은 너무 독해서 말입죠
[준상] 아 괜찮습니다. 아저씨한테 여러모로 신세를 지는 터인데 더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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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인] 그럼 (술을 따르며) 저 샤워 밝은 날 아침에 고쳐 드립죠
[준상] 그래 주시겠습니까? 전화가 고장이 나서 안그러면 전화로 기술자를 부를텐데 미안합니다.
[관리인] 원 별 말씀을 그까짓 것 땜에 기술자를 불러 뭘 합니까 제가 할 수 있습니다. 근데 전화가 고장입니까? (준상이 끄덕인다) 예! 고장입니까? (전화벨이 울린다) 아쿠 왔군요 (벌떡 일어난다)
[준상] 버려 두세요 고장입니다. 며칠째
[관리인] 그래두 혹--- 사모님이나 누가--- 예 혹 될지두 모르니까
[준상] 수화기를 들면 윙하고 끊어져요 다시 다이얼을 돌리면 처음처럼 윙 하구요
[관리인] 예 그렇구먼요. 그럼 전화국에 전활해서---
[준상] 전화가 고장인데 어떻게 연락을 합니까?
[관리인] 아 네 고장이라굽쇼? 제 처도 그렇습죠 이 나이 되도록 애가 없읍죠. 그래서 병원에 갔는데 둘 다 정상이래요 그래서 그날만 골라서 작업을 해 봤읍니다만 여전히 소식이 없어요. 아 네 제 처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읍죠. 세탁부로요 아 참 제가 언제 말씀 드렸던가요? 헤헤헤 제가 좀 대단히 취했나 봅니다. 정신이 자꾸 헛갈립니다. (관리인 소파에서 일어나려다 비틀 다시 주저앉는다 사이. 관리인은 끄덕 끄덕 졸기 시작한다 기차가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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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중년 남자가 단호하게 윗층 계단에서 나타나더니 곧장 준상의 방으로 와서 벨을 누른다 순간 고조되는 굉음. 뒤범벅이 된다 이윽고 기차 소리 멀어지고 중년 남자는 기다리고 섰다)
[준상] (쓸쓸하게) 지나갔구나. 기차가 달려가 버렸어 (갑자기 중년 남자가 문을 꽝꽝 두드린다)
[준상] (놀래) 누구요? (중년 남자 초조하게 서성대더니 다시 문을 꽝꽝 두드린다 준상 현관으로 간다)
[준상] 누구요?
[중년남자] 아 납니다.
[준상] 누구?
[중년남자] 또 왔습니다.
[준상] 아니 제기랄 여기가 아니라니까요
[중년남자] 아까부터 지금까지 찾아다니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요 문 좀 열어 주시오
[준상] 그럴 수가 없오.
[중년남자] 왜요?
[준상] 홀딱 벗고 있으니까
[중년남자] (화가 나서) 알았오. 딴데 가서 찾아가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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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쿵쾅거리며 아래로 내려간다 준상 갑자기 숨죽여 쿡쿡 웃는다 다시 관리인이 갑자기 무엇에 놀란 듯이 펄쩍 잠을 깬다)
[관리인] 뭐! 뭐요 뭐라구요?
[준상] 왜 그러십니까?
[관리인] 방금 무슨 소리가? (욕실에서 다시 샤워 소리가 들린다 준상 거실로 나온다)
[준상] 샤워에요
[관리인] (아직 얼떨떨해서) 에?
[준상] 욕실에서 나는 소리였다구요
[관리인] 저건 고장이 아닙니까?
[준상] 나왔다. 그쳤다 한다니까요. 거기다 지금 아내가 목욕을 하구 있구요.
[관리인] 누가 뭘 한다굽쇼?
[준상] 제 처가 목욕을---
[관리인] 아 그럼 저 속에 사람이 들었단 말입니까
[준상] 네
[관리인] 아니 언제부터요?
[준상] 아까부터 아저씨가 이 방에 들어오기 바로 전에요 제 아내가 목욕을 하러 들어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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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인] 원 농담두--- 저건 고장이라면서요?
[준상] 제 아내가 고장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관리인] 그게 아니굽쇼
[준상] 허기야 하루 이틀 새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니까 결혼한 이후 줄곧 그렇죠 한 시도 맘 편히 지낸 날이 없습니다.
[관리인] 내 참 제 말은 그게 아니구---
[준상] (관리인에게 바싹 다가서서) 아저씨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인데 우리 내기 하나 합시다.
[관리인] 갑자기 내기는 무슨? 그보다--- 거 왜 진작 그 속에 사모님이 들었다고 말씀하시지 않구선
[준상] 그러면 어떻습니까? 집사람이 저 속에 들었든 말든 (관리인을 잡아끌며) 자 이리로 (테라스로 끌고 간다) 내기를 하자면 상이 있어야겠는데 우선 그걸 정하기로 하죠?
[관리인] 도대체 무슨 내긴지?
[준상] 우선 상을 먼저 정한 다음에 옳지 이게 어떻겠습니까?
[관리인] 뭐지요?
[준상] 아저씨가 이기시면 제 처를 아저씨한테 드리기로 하죠
[관리인] 에?
[준상] 제 처도 아이를 못 낳기는 마찬가집니다만 그건 집사람이 고의로 그런 것이지 아저씨 경우처럼 저나 아내에게 결함이 있어서가 아네요. 그러니 만일 아저씨가 이기면 자연 소원도 풀게 되실 것이고---
[관리인] 에이 싫습니다. (방으로 도망친다. 욕실에서 샤워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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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진다) 아이쿠 야! (다시 테라스로 돌아오며) 그 흉한 말 집어치십쇼
[준상] 옛말에 씨암탉이란 말이 있잖습니까? 여자의 운명이 대체적으로 그렇거늘 흉 될 것이 뭐이 있습니까?
[관리인] 만일 내가 지면?
[준상] 그땐 아저씨의 아내를---
[관리인] (준상을 가르키며) 거기서?
[준상] 머리가 빠르십니다 그려 (바싹) 할까요?
[관리인] (머리를 긁적이며) 난 무슨 말인지 통
[준상] 저도 아저씨만큼 아내를 사랑하고 있읍니다만 그건 제 사정일 뿐 아내 사정은 아니라 그 말입니다. 그 뿐입니다. 그러니 꼬치 꼬치 캐지 마시구--- 자! (관리인을 방으로 떼민다)
[관리인] 잠깐 이러지 마시구 (준상을 피해서) 무슨 내긴지 그걸---
[준상] 아차! 내 정신 보게 정작 중요한 것을 빠트리다니 (잠시 생각하고) 저 욕실 문을 열어 보기로 하죠
[관리인] 누가요?
[준상] 물론 아저씨가요
[관리인] 내가 연다굽쇼? (준상 끄덕인다) 저 욕실 문을 말입죠? 사모님이 저 안에--- 하
[준상] 그럼 제 아내가 소리를 치겠지요?
[관리인] 물론 그렇겠읍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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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빙긋 웃고) 허지만 안칠지도 모르죠?
[관리인] 안치다니오?
[준상] 그 소리 말입니다. 그냥 빙긋 웃고 만다든가 혹은 그저 모른 척 한다든가 아니면 반길지도 모르구
[관리인] 그게 말입니까?
[준상] 왜요?
[관리인] 아! 소리만 치겠습니까 단박 제 멱살을 쥐고 경찰서로 가던가 그전에 선생이 날
[준상] 내 생각엔 그저 빙긋 웃고 말 것 같은데요
[관리인] 생사람 잡을 소리 마시래두요
[준상] 글쎄 빙긋 웃는데두요
[관리인] 글쎄 꽥이래두요 (하다가 정신이 나서) 날 놀리시는구먼
(준상 방으로 가서 술잔 가득히 술을 채워가지고 온다)
[준상] 자 이걸 마시고 기운을 내세요
[관리인] (눈치를 보다가 받는다) 선생이 하도 터무니없는 걸 가지구 우기시니 내 그럼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보입죠만 (단숨에 마신다 방으로 들어가기 전 욕실을 잔뜩 노려본다 한걸음 한걸음 조심조심 발을 옮긴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입맛을 다시며 테라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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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려는데 준상이 갑자기 관리인을 욕실 문 앞까지 밀고 간다. 관리인 엄벙대다 욕실문에 부딪힌다)
[관리인] (무턱 대고 절을 하며) 아이쿠 미안합니다. 제가 아닙니다. 실례했습니다. 예 (준상은 날쌔게 테라스로 돌아와 관리인의 그 꼴을 보고 웃음을 참는다. 관리인은 굽실대다가 욕실 안에서 아무 반응이 없자 준상쪽을 본다. 준상이 열어 보라고 손짓을 한다. 관리인 잠깐 망설이다가 욕실 문을 연다 안을 조금 들여다본다. 고개를 갸웃뚱 문을 홱 연다 흠칫 놀랜다)
[관리인] 이건! (준상에게 화가 나서) 누굴
[준상] 뭐가 잘못 됐어요?
[관리인] (욕실문을 꽝 닫고) 빈 탕이오!
[준상] 빈 탕이라니오?
[관리인] 아무도 없어요
[준상] 아 꽝이군요
[관리인] 꽝이요?
[준상] 빈 탕이란 말이죠! 제가 이겼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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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인] (어이가 없어서) 허허---
[준상] 이제 아저씨 부인은 제 차지가 됐군요
[관리인] 그만 가봐야 겠습니다. (현관으로 가다가) 내가 도깨비에 훌렸지
[준상] 제가 도깨비 같이 보입니까?
[관리인] (화가 나서 꽥) 아니오 아무것도! (나가며) 제기랄! 귀도 밝다 (퇴장)
[준상] (뒤에다 대고) 그럼 하회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저씨! (준상 한참동안 기분좋게 웃는다 갑자기 외로워진다 욕실문을 열어본다 잠깐 나직이 웃는다. 문을 닫고 테라스로 간다 (사이) 전화벨이 울린다. 준상 전화기로 가 수화기를 들어본다 뚜뚜 하는 소리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탁자 위에서 술병을 들어 병채로 조금 마신다. 한숨)
[준상] 거기 아내가 없다구? 욕실에 내 눈에는 선한데--- (잠깐 사이 욕실에 샤워하고 있는 여인의 씨루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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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소리) 당신이 거기 서서--- 욕실 한 구석에 비켜서서 날 쏘아보구 있는 것이--- 언젠가는 때가 오면 그 차거운 욕실 바닥에 날 역시 눕히겠지 조용히--- 소리 없이--- (욕실 여인의 실루엣 사라진다. 준상 벌떡 일어선다 거닐며) 기다린다. 그때가 오기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린다. 당신은 그걸 바라겠지. 그 다음 자네 혼자서 달려가겠다. 그건가? (준상 쏘파에 벌렁 눕는다, (사이) 욕실에서 샤워 소리가 들린다 준상 꼼짝 않는다. 다시 샤워 소리 몸을 뒤척이더니 준상이 벌떡 일어난다)
[준상] 저런 빌어먹을! (준상 욕실로 달려들어간다 샤워를 잠그느라고 한참 싱갱이를 하다 조용해진다 현관문이 열린다 민혜옥이 이상하다는 듯이 들어선다)
[혜옥] (안에다 대고 조심스럽게) 방안에 누구 있어요 (반응을 기다린다. 조용하다) 누가 있어요? 당신에요? (방 가운데로 온다) 여보! 여보! (대답을 기다린다 역시 조용하다) 이상하다. 왜 현관문이 열려 있을까? 잠궜는데 분명히 (혜옥 욕실쪽을 본다 테라스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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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로 들어간다 욕실문이 열리고 준상이 나온다 테라스에 숨으려다가 현관쪽으로 간다 그만 두고 이번엔 침실문 바로 옆에 찰싹 달라붙어 몸을 숨긴다 혜옥이 침실에서 나온다 욕실로 가다 술병을 발견한다 가서 술병을 들어 살핀다 준상이 키득 웃는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혜옥 술병을 방바닥에 떨어뜨린다)
[혜옥] 누구!
[준상] (술병을 집어들며) 사라졌군 아깝게 아직 많이 남았었는데
[혜옥] 놀랬어요
[준상] 놀래?
[혜옥] 그럼 갑자기
[준상] 그렇다구 놀래?
[혜옥] 장난이 너무 심했어요
[준상] 놀래긴 내가 더 놀랬지 노크도 없이 당신이 들어섰으니 여자래두 끼구 있었으면 어떻게 됐겠느냐 말야 그러니 다음부터 꼭 노크를 잊지 말도록 (노크하듯이 혜옥의 머리를 가볍게 세번 친다) 근데 또 한번 놀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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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옥] 무슨 소리세요?
[준상] 당신이 다 놀랠 때가 있는가 하구 그래서 놀랬지
[혜옥] (정답게 웃으며) 누구라도 그런 경우엔 놀래겠어요 정말 놀랬어요 기침이래두 한번 하시지 않구선 앞으론 잊지 마세요 꼭!
[준상] 기침을?
[혜옥] 녜 (준상의 이마에다 가볍게 키스해 준다)
[준상] 허 또 놀랬군!
[혜옥] 이번엔 뭐에?
[준상] 당신의 친절에 대해서! 결혼한 이후 첨이지? 아마
[혜옥] 뭐가요?
[준상] 이 키스 이 다정하고 따뜻하고 애정에 가득찬 당신의 키스 말이지 원래 최고급품의 키스는 이마에다 하는 거라면서?
[혜옥] 그건 어째서요?
[준상] 제일 높은 데다 하는 거니까. (두 사람 마주보고 웃는다. 갑자기 두 사람은 눈물겹도록 행복해진다 순간 혜옥이 굳어진다 준상 테라스 쪽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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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당신 어딜 다녀오는 길이요? 집을 비워 놓고
[혜옥] (애써 웃으며) 친구한테요
[준상] 누구?
[혜옥] 그냥요. 일이 있어서요
[준상] 무슨 일! 누가 죽었나?
[혜옥] 네?
[준상] 초상집이래두 다녀오는 길인가 말야
[혜옥] 아니요 그렇진 않아요
[준상] 그럼?
[혜옥] 왜 그렇게 꼬치 꼬치 캐세요?
[준상]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혜옥] (할 수 없이 소파에 앉으며) 좋아요 또 문답을 시작할 셈이시면 자 물어보세요 선생님 대답해 드릴테니 제 정신 상태가 어떠냐구요? 좋아요 요즘은 아주 정상예요. 남편이 가끔 짖궂게 굴어서 탈이지만 그건 그래두 괜찮아요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예요 고백하겠습니다. 전 못되 먹었어요. 거짓말쟁이고 앙큼하고 쌍스러워요
[준상] 잠깐 여보!
[혜옥] 허지만 남편은 착해요 착하고 다정하죠 지나치게 자상해서 피해망상증 환자 같애요 그 증거로 선생님 제가 여기 있지 않아요 선생님 앞에 바로--- 여기에---
[준상] 원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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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옥] 이래두 모르시겠어요? 선생님! 제가 왜 일주일마다 마치 출근부에 도장이나 찍듯이 꼬박 꼬박 여길 찾아 와야 하는지요 모르세요? 남편이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니까요 그래두 모르세요? (준상은 굳어있다) 이젠 속이 후련하세요?
[준상] 왜 그럼 진작 거길 다녀 왔다구?
[혜옥] 당신두 참 그럼 내 입으로 말하란 말예요? 난 챙피하지도 않은 줄 아세요 일주일에 한번씩 정신 병원에 다녀오는 일이 뭐 자랑이나 되는 줄 아세요?
[준상] 그건 당신과 둘이 상의해서 결정한 일이 아니오
[혜옥] 당신이 그걸 원했잖아요.
[준상] 난 당신이 염려가 되어서 그랬을 뿐이요. 당신도 알다시피 아니 당신 자신이 환자니까 뭐 그렇다고 꼭 그렇다고 단정짓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전문의에게 진단을 받고 하면 그러는 동안 당신 상태도 차츰 안정이 되갈 것 같앴구 그래 거길 다니는 것이 자랑은 못돼두 챙피할 건 또 뭐 있오! 그건 당신이---
[혜옥] (독이 올라서) 의사가 뭐래는지 아세요? 이젠 그만 오래요 전 이상이 없다구요. 그러나 정말 노이로제에 걸리겠대요 그럼 내가 뭐라고 대답하는 줄 아세요? 선생님 전 이상입니
다. 이상이에요. 분명히 어딘가 이상이 있습니다. (사이) 의사는 웃고 말죠. 당신도 이런 말 들으면 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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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겠죠 허지만 저한텐 우스운 일이 아녜요--- 적어도 당신에게 있어서만은 난 미친년예요 (침실로 간다)
[준상] 여보!
[혜옥] (뿌리치고) 옷이나 갈아입어야 겠어요 (혜옥 침실로 들어간다)
[준상] (빙긋 웃고) 언제나 이 모양이구나 맨손으로 미꾸라지 잡는 격이지 잡을 듯 해서 손을 들어보면 어느 틈에 미끄러져 도망쳐 버린 다음이구 목덜미를 쥐었다 생각하면 도마뱀의 꼬리처럼 늘 공허한 비웃음만이 남게 되는 것이지 아무튼 좋다. 이게 어떤 싸움이라고 하루아침에 요정이 날 거라면 애당초 시작하지도 않았겠다. (준상 술병에 남은 술을 따라 테라스로 간다 야경을 바라본다 혜옥이 침실에서 나온다 준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다시 조용히 얼싸안고 준상의 어깨에 얼굴을 묻는다)
[헤옥] 미안해요 공연히 떠들어대서
[준상] 당신이--- 내가 필요할테지--- ? 응?
[혜옥] 언젠 안그런가요 전 당신이 필요했어요 이렇게 옆에 있어주시니까 그렇지 그렇지 않으면 벌써. (샤워 소리가 들린다. 혜옥 소스라치며) 뭐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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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뭐?
[헤옥] 저 소리!
[준상] 응 샤워야 고장인가 보군. 나오다 말다 제멋대로야
[혜옥] 그래요?
[준상] (짐짓) 내일쯤 누굴 불러올까 했는데
[혜옥] 부르다니? 누구를요?
[준상] 뭐 적당한 사람이 있겠지 기술자 말야 (일어나며) 신경 쓰이면 지금 고치구
[혜옥] 아 됐어요. 내일 하죠
[준상] 고치는거 어렵지 않아
[혜옥] (앉히며) 앉으세요 시장하실텐데 저녁 짓죠 (방으로 들어가는데)
[준상] 참 사람이 죽었드군
[혜옥] --- (퍼뜩 놀라서 멈춘다)
[준상] 저기 철길에서 저 아래 남잔가 본데 산산조각이야 기차가 한가운데로 지나간 모양이지? 자살이겠지 뭐
[혜옥] 그런가 보죠 끔찍하군요
[준상] (독백처럼) 끔찍하지 사람이 죽었으니
[혜옥] 뭐라구요?
[준상] 당신 오다가 못 봤오?
[혜옥] 아니요 조용하던데요
[준상] 그럼 치웠나보지. 그러구보니 참 아까 기차가 지나가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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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로 (혜옥 무심히 탁자 위에 놓인 잔을 만지작거린다 (사이)
[혜옥] (지나가는 말투로) 당신 아까 어디 숨어 계셨드랬어요
[준상] 왜?
[혜옥] 숨을 만한 곳은 다 찾아 봤는데두 안계셨으니 말예요.
[준상] 맞춰 봐
[혜옥] (테라스를 가리키며) 저기? (준상 고개를 젓는다) 그럼--- 저기? (침실 옆방을 가리킨다. 역시 준상 고개를 젓는다) 그럼 어디에요
[준상] 맞춰보래니까
[혜옥] 모르겠어요 (잠시 생각하다가) 그럼 욕실?
[준상] 하하
[혜옥] 설마---
[준상] 왜 거긴 숨을 곳이 못되나?
[혜옥] 그렇진 않지만--- 그럼 거기예요?
[준상] 아니 (혜옥 얕은 한숨) 그냥 여기 앉아 있었어!
[혜옥] 테라스에요? (준상 끄덕인다 혜옥 웃으며) 근데 왜 제가 못봤을까?
[준상] (가만히 웃는다) ---
[혜옥] 왜 가만히 계셨어요?
[준상] 생각해봐! 우습지 않나? 여기 있는 사람을 빤히 쳐다보구서두 몰라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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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옥] (완전히 안심이 돼서)--- 제가 그랬어요? 당신을 봤어요?
[준상] (끄덕이며) 그렇다니까?
[혜옥] 이상하군요 왜 그랬을까 (혜옥 갑자기 안심이 돼서 웃는다 점점 커져서 몸을 흔들며 웃는다 의자에 앉는다)
[혜옥] (탁자 위에서 관리인의 모자를 무심히 줏어 들며) 어머! 이건 여보! 이 모자 이것 좀 보세요
[준상] 뭘 말야?
[혜옥] 이게 왜 여기 놓여 있지요?
[준상] 글쎄
[혜옥] 그러지 말고 바로 대주세요?
[준상] 글쎄 뭘 말야!
[혜옥] 이 모자가 왜 여기 놓여져 있는지 그걸 말이예요
[준상] (혜옥을 힐끔 보며) 관리인 아저씨 것이군
[혜옥] 누구 껀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구요
[준상] (벌떡 일어나며) 글쎄 안다니까! 그 모자는 틀림없이 관리인의 것이고 또 저 탁자 위에 놓여져 있었다는 것도! 그래서 그게 어떻단 말이오 이까짓 모자가 무슨 상관이냔 말야 (혜옥에게서 모자를 뺏어 마구 찢고 구긴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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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팽개친다 혜옥은 한쪽 구석에 비켜서서 바라볼 뿐이다 (사이) 여전히 질려 있는 혜옥(사이) (아래쪽에서 중년 남자 등장 다짜고짜 방문을 두드린다 깜짝 놀라는 혜옥)
[혜옥] (준상에게) 누구세요?
[준] 또 왔군 (현관으로 간다)
[준] 아니라는데 왜 자꾸 그러는 거요
[남] 제발 좀 도와주시오
[준] 무얼 말요
[남] 당신하고 할 얘기가 있다구요 그러니 문 좀 열어요
[준] 벗구있다구 하지 않아요
[남] 아까 철길에서 남자가 죽었오. 자살인지 타살인지--- 근데 뭐라구 했죠?
[준] 난 모른다구요
[남] 벗고 있다구요
[준] 네
[남] 그럼 나도 벗을 테니 들어가게 해주시오 똑같은 조건이라면 챙피할 것 없잖소
[준] 내가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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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나두 아니요 난 신사요 좀 들어갑시다
[준] 이런 제기랄 벗고 있는 건 내 마누라야
[남] 이런 사기꾼 (중년 남자 화가 나서 문을 발로 꽝 찬다)
[준] 무슨 짓야 (문을 연다 잽싸게 도망치는 중년 남자 준상 문 도루 꽝 닫고 혜옥에게 온다)
[혜] 뭐하는 사람예요?
[준] 미친놈야
[혜] 네?
[준] 아까부터 누굴 찾고 있어
[혜] 누구요?
[준] 철길에서 죽은 남자
(아연해지는 혜옥 무슨 말인가 더 묻으려는데 준상 분주히 서성거리는데 불쑥)
[준] (태연해지려고 애쓰며) 당신에게 꼭 한가지만 묻겠오 이것만은 솔직하게 대답해 줘
[혜] (중얼거리듯) 철길에서 사람이 죽었다구요?
[준] 당신이 가졌던 아이말야
[혜] 여보!
[준] 얘기 꺼낸 김에 다 해버립시다. 속이나 후련하게 (혜옥을 무시하고 얘기를 난폭하게 진행한다) 병원에 갔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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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무척 놀랬었지 난 당신이 거기 있을 줄은 까맣게 모르구 엉뚱한 곳으로만 당신을 찾아다녔지. 난 당신이 영 집을 나가버린 줄 알았거든 며칠 후에 돌아오겠다던 사람이 보름이 넘도록 깜깜소식이니 (사이) 간호부가 대뜸 이러더군 사내 애였습니다. 그리군 웃어 나도 웃
었지 "이거 잘못했습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낳는건데" (사이) "참 몇 달이죠?" 간호부 말이 "육 개월 사모님이 하도 조르셔서 위험했어요" 고맙습니다. (사이) 나는 한걸음에 이층 입원실로 뛰어 올라갔지 "누구 맘대로 지워 누구껀데 지가 뭔데 지 멋대로" "십삼호실이랬지? 십삼호실 응 여기군" 문을 왈칵 열었지 (사이) 당신 그때 자고 있었지 예뻤어. 고통으로 초췌해진 모습이 (사이) 여기까진 틀림이 없겠지? (사이)
[준] (끄덕이고) 좋아 근데 문젠 그 다음부터지
[혜] (애원하다) 여보! 지금와서 왜 새삼스럽게
[준] 자 이제 묻겠는데 왜 그 애를 지웠는지 그걸 말해줘
[혜] 몸이 베겨나질 못해서라구 했지 않아요. 제가 워낙 약해서--- 어려서부터--- 여보! 제발 (혜옥 몸을 떤다 물끄러미 혜옥을 바라보는 준상)
[준] 당신 또 만나구 온거지 (사이)
[준] 그런 관계가 언제부터지? 나보다 훨씬 전인가 아니면 나하구 결혼한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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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옥] 아녜요
[준상] 그럼 결혼하기 전부터?
[혜옥] 그게 아니라니까요
[준상] (벌떡 일어나 혜옥을 심문하듯이 왔다 갔다 하며) 그건 사실이야 무슨 말인가 하면 그 남자 하구 당신말야 여지껏 모른 채 해온건---
[혜옥] 몇번 말해야 알아들으세요! 전 병원에 다녀왔다니까요 병원에!
[준상] 병원?
[혜옥] (기가 죽어서) 정말이예요 거기 말구 제가 어딜---
[준상] 내 말해줄까? 네가 어딜 갔다 왔는지?
[혜옥] 말해주세요!
(사이. 준상 힘없이 돌아선다)
[준상] 네 입으로 말해주길 기다렸지
[혜옥] (매달리며) 대보세요! 대시면 되지 않아요
[준상] 뭐라구?
[혜옥] 아시면서 왜 물어요! 안다면서요 (준상이 반응이 없자 방바닥에 쓰러진다) 미우면 그냥 밉다고 하세요 절 버리면 되지 않아요? 당신 말대로가 아녜요! (소파에 쓰러진다)
[준상] (애원한다) 여보! 날 좀 봐! 왜 날 그렇게 못 믿지? 왜 한가지두 나한테 말해주지 않는거요 왜! 내 도움을 청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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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느냐 말야? 내가 이렇게 기다리고 있지 않소 당신이 말해 주기를 그래서 내가 진정한 당신의 남편이 되기를 그것이 내 소원이야 그게 뭐가 잘못이요 남편이 제 아내에게 남편 구실 좀 하겠다는데 그게 뭐이 그리 잘못이냔 말요? 응?
(준상 체념하고 일어난다. 옷걸이에서 상의 내려들고 혜옥의 모습을 잠시 응시하다가 현관으로 간다 혜옥 준상의 기척에 놀라 얼굴을 든다. 아직은 차마 정면으로 보지 못한다)
[혜옥] (나직히) 가지마세요 여보! 가지마세요 제발! (준상 잠시 망서리다 나가버린다 혜옥 현관으로 달려간다 이미 문이 닫힌 후다. 혜옥 현관 도어의 핸들을 부여잡은 채 굳어진다 (사이) 퍼뜩 무엇인가 걸려서 욕실로 달려간다 그러나 욕실 도어가 손잡이만을 움켜쥔 채 꼼짝 않는다 다시 테라스로 뛰어간다 아래를 기웃거리며 준상의 모습이 보이나 살핀다 보이지 않는다. 그때 욕실에서 샤워 소리. 혜옥 욕실로 달려간다 샤워 소리 뚝 그친다 순간 정지하는 혜옥, 두렵다는 듯 머리를 내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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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춤 주춤 욕실에서 물러선다 무언가 둔탁하게 부딪는 소리 혜옥 귀를 막는다. 둔탁하게 부딪는 소리 더욱 빨라진다 그 리듬에 맞추어 괴로워하는 혜옥 혜옥 드디어 비명을 내지르고 만다 혜옥 침실로 뛰어든다 (사이) 무대는 비었다. 조용하다 이윽고 침실문이 다시 열리고 축 늘어진 혜옥이 다시 나타난다 그 늘어진 손에 호신용의 자그마한 권총이 쥐어져 있다. (사이)
[혜옥] 할 수 없었어요 정말 죽을 결심이었는데 차마 할 수 없었어요 두렵지도 않았는데 왜? 왜 (사이) 내가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아버지 그래섭니까? 대답해 주세요 그 여자 때문인가요? 차라리 저더러 그이에게 다 말해버리라고 말해주세요 말하고 나면 시원할지도 몰라요. 용서해 줄지도 모르잖아요. 그게 사랑인지 누가 압니까? 네? (혜옥 쓰러진다 기절한 듯이 움직이지 않는다 어느새 준상이 들어와 포켓에 손을 찔러 넣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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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자기는 관계가 없다는 듯이 혜옥을 바라보고 있다 오랫동안 참아온 사랑의 기다려온 사랑의 온화함이 준상을 감싸고 있다 준상이 현관문을 열고 조용히 퇴장한다 욕실에서 샤워
소리가 다시 들리고 이어서 전화벨이 울린다. 혜옥은 여전히 죽은 듯이 쓰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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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2막
(방안은 벽등만 켜져 있어 어둡다 혜옥이 테라스에 앉아서 역시 빈 술잔을 손에 들고 창 밖 풍경에 시선을 주고 있다 자동차의 햇 라이트 불빛이 이따금 혜옥을 스치고 지나간다 관리인이 구겨진 모자를 현관에 켜진 불빛에 요모조모 비춰보며 입맛을 다신다 모자를 써본다. 역시 입맛이 쓰다)
[관리인] (모자를 다시 벗으며) 모자꼴이 이게 원, 모자가 무슨 죄가 있다고 글쎄 원 성미두 기분이 좋으면 좋았지 모자가 글쎄 안그렇습니까? 아주머니 (반응이 없다) 분위기가 화기애애 했읍죠 제 에편네 얘기에 철길에서 죽은 남자며 그리구 내기까지 했읍죠
[혜옥] (퍼뜩) 뭐라구요?
[관리인] 방긋이냐 꽥이냐 양단간에 하나를 헤헤 그래 선생님은 방긋이라시고 저는 꽥입죠 근데---
[혜옥] (꿈속에서처럼) 철길에서 누가 어쨌다구요?
[관리인] 아! 그 얘기 말입니까? (모자를 옷걸이에 걸고) 그 남자가 뛰어들었읍죠 일곱시가 조금 넘었으니가 으스름 해질 무렵입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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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옥] 어디서?
[관리인] 이쪽입죠 (테라스로 간다)
[혜옥] 철교요?
[관리인] 아니 아니 거기가 아니굽쇼 저쪽 다리께서 이쪽으로 꺾어지는 철길 말입니다. 바로 요 밑
[혜옥] 아 (의미없이 끄덕인다) (샤워 소리가 갑자기 들려온다 혜옥 섬칫 놀래 일어서려는데) 고장입니다. 나오다 말다 해요 미친년 뭣처럼--- (혜옥 도로 앉는다(사이) 전화벨이 울린다 혜옥이 일어선다 관리인 손을 내저으며)
[관리인] 고장입니다. 수화기를 들면 윙합니다. (전화벨이 계속 울린다) 고장인데 그럴리가 없는뎁쇼 (투덜대며 가서 받는다) 여보십쇼 여보--- 제기랄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고장인뎁쇼 모든 것이 저도 구멍이 났읍죠 얘기가 온통 (배를 어루만진다 소파에 앉는다 갑자기 글적이기 시작한다)
[혜옥] (꿈속에서처럼)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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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버리다니 모두 타버리다니 (문득 여인의 간드러진 웃음소리)
[혜옥] 무서운 일이었죠 너무나 끔직했어요
[관리인] 예? 뭐라굽쇼? (사이)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관리인 갑자기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한다) 허긴 선생님이 고마운 분이죠 사무실에 무료히 앉아 있자니 자연 심심했는데 선생님의 목소리가 뭐라고 투덜대며, 그래 보니 선생님이 웬 남잘 부축해 가지고 계단을 내려오시겠읍죠 "이봐 정신차려! 이봐 정신차려" 그래 달려나갔읍죠 술이 몹시 취했던 모양이에요 그냥 뻗어서 허우적대며 인사불성인데 아마 대낮부터 마신 모양이라 세상에 팔자도 늘어졌지 하구 생각되어서--- 허지만 말입죠 그 친구 그냥 뻗었어요. 선생님이 무척 애가 타는지 날보고 계면쩍게 웃으셨어요 헤헤 하시며 (사이) 한참 있다 선생님이 다시 계단으로 올라가시드니 그 친굴 바래다 드리구 말입죠 좀 있다 절 부르셨어요 술이나 한잔하라구 그리군 이
모양 입죠 (사이) 하셨구--- 이 모양입죠 그러구 내길 했는데 이게 빙긋도 아니요 꽥도 아니요 무승부라 하마터면 제가 아주머님을--- 헤헤 이게 순 뱃장이라 제기랄 빙긋이면 어떻구 꿱이면 어떻냐 이거죠 제기랄 것 (관리인 소파에 기대어 어느새 푸푸거리며 잠이 든다 (사이) 혜옥은 여전히 꿈속에 취해있다)
[혜옥] 여보! 내 몸엔 독사의 피가 흐르고 있어요 네---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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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혜옥] 예 나는 독사였어요 남을 죽이는 무서운 독이 내 몸엔 있어요 (사이)
[혜옥] 정원 잔디밭은 햇빛이 따뜻했어요 거기서 보이는 것은 페허 타버린 벽이며 부서진 계단--- 난 딩굴면서 그것들을 바라 봤어요 저건 내것이다 잊어선 안돼 잊어선
(사이 기차가 달려오기 시작한다)
[혜옥] 허지만 타버렸어요 타버리구 또 타버렸어요 (사이)
[혜옥] 아! (신음) 모두 죽어버려! 타버려 사라져 버리라구 (귀를 막으며) 여보! 저 소리 제발 멈추게 해줘요 여보! 제발---
(혜옥의 환청을 덮치는 기차의 굉음 혜옥은 늘어진다. 평화스럽다. 관리인이 잠을 깬다)
[관리인] (허우적거리며) 아 (치를 떨더니 이윽고 진정하고 혜옥에게) 뭡니까?
[혜옥] (모른 척) 뭐가요?
[관리인] 방금 전에 무슨 소리가 무슨 벼락치는 소리가 말입죠?
[혜옥] 아! 그거요 (빙긋 웃고) 기차에요
[관리인] (맥이 풀려) 에? 기차요? 기차라--- (푸푸거린다. 전화벨이 울린다. 공연히 화를 내며) 원 고장이래두 자꾸만 따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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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네 (달려가 수화기를 들더니 냅다) 고장입니다. 이 전환--- (수화기를 내려놓으려다가) 뭐라구요? 왜 고장이냐구요? (잠시 얼떨떨하다) 이게 고장입죠 이 전화가 말씀입죠 댁이 누구냐구? 나요 이 아파트의 관리인인데 (사이) (욕설을 들었는지) 뭐요? 싱거운 소리 말라구요? 여보쇼 고장이라면 고장인 줄 알지
[혜옥] (의아해서 일어나며) 어디서 온 전화예요?
[관리인] (수화기를 막고) 이 전화가 고장이라니까 도무지 믿질 않는구먼요 자길 놀려먹는다굽쇼 (다시 수화기로) 누구요? 없어요 없어 없대는데두 그런 사람이 여긴 없단 말야! 거기가 병원이 아니라 게보다 더한 곳이래두 내가 한번 없다고 한 사람은 없어 (혜옥 멈칫 한다) 글쎄 민혜옥이란 사람 여긴 없어 여자든 남자든
[혜옥] (굳어지며) 네? 누구요? (급히 전화기로 간다)
[관리인] 이것 보쇼 원래는 이 전화가 고장인데 된 것만두 고맙지 없는 사람을 나보고 (혜옥이 관리인에게서 수화기를 막 뺏으려는데 관리인이 펄쩍 뛴다)
[관리인] (수화기에다) 뭣이 어쩌구 어째! 뭐같은놈! 허어 이 자식봐라
[혜옥] (뺏으러 들며) 아저씨 그 수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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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인] (혜옥을 뿌리치며) 가만 계십쇼 (수화기에다)야 임마! 그래 난 개 뭐 같은 놈이다 그럼 네놈은--- 뭐 뭐라구! 공자님--- 토막
[혜옥] (거의 울상이 돼서) 아저씨 제발 그 수화길 왜 이러세요 이리 그 수화기를 이리 내라니까요!
[관리인] (악이 나서) 말리지 마십쇼 이런 놈은 그냥--- 아 임마! (관리인 수화기에다 대고 마구 욕설을 퍼붓는다 관리인의 욕설과 혜옥의 애원이 뒤범벅이 되어서 옥신각신 하다가 관리인이 그만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관리인 투덜거리며 물러서고 혜옥은 아연해져서 잠시 어이가 없다. 혜옥 수화기를 든다)
[혜옥] 여보세요 여보세요 (할 수 없이 수화기를 내려놓고 관리인을 쏘아본다. 관리인 어느새 술병에 손을 대고 있다)
[혜옥] (독이 나서) 나가요!
[관리인] 에?
[혜옥] (달려와 술병을 뺏어 던지며) 나가란 말예요 지금 당장
[관리인] 뭐가 잘못 되었는갑쇼? (혜옥 어이가 없어 그만두고 테라스로 다시 돌아간다 관리인 술병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모자를 쓰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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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인] (울상이 되어서) 제가 좀 취했읍죠 그래 정신이 헷갈려서 그 전화 말씀입죠 민혜옥을 찾았읍죠 아주머니가 아니구요 네 그렇습죠만 (모자를 쓴다 입맛이 써서) 이놈의 모자 어랍쇼 뚜껑이 구멍이 뚫렸나? (문득 생각이 나서) 선생님 말입죠 오늘 저녁은 안들어 오실 모양입죠 지금이 몇신데 아직 안들어 오시니 (현관으로 가며) 그럼 전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편히 쉬세요 (현관으로 간다)
[혜옥] (측은한 생각이 들어서) 아저씨!
[관리인] 네?
[혜옥] 아깐--- 소리쳐서 미안했어요 마침 전화를 기다리구 있었거든요 미안해요 아저씨!
[관리인] (헤벌어져서) 글쎄 그것이 고장이었는데 정말 드릴 말씀이 면목이 (현관문을 열며) 제기랄 그놈의 전화만 아니었어두 (관리인 투덜대며 나간다 (사이) 혜옥 움직이지 않는다. 쓸쓸한 미소가 감돈다 가만히 몸을 웅크린다 고양이처럼 갑자기 샤워 소리 혜옥 욕실을 응시한다)
[혜옥] 누구 누구죠? (샤워 소리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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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층에서 중년 남자 단호하게 와서 문 앞에 선다 자신있게 벨을 누른다 소리나지 않는다 기다리고 섰는 남자 벨을 다시 누른다. 자신 만만하다 반응이 없자 이번에 자신있게 문을 꽝 꽝 두드린다 깜짝 놀래서 일어나는 혜옥 남자 다시 문 꽝 꽝 혜옥 문으로 달려가 문손잡이 꽉 잡고 밖에 귀를 기우린다)
[남] 또 왔오! 아직 못 찾았오! 이번엔 꼭 당신을 만나야겠오
[혜옥] (겁에 질려) 누구에요?
[남] 어랍쇼?
[혜옥] 집을 잘못 찾으셨어요
[남] 아닙니다. 분명히 여긴데 실례지만 아주머니 혹시 욕실에 계신 거 아닐까요?
[혜옥] 누가요?
[남] 에 맞습니다. 홀딱 벗구 있다고 말씀하셨으니까요
[혜옥] 가세요. 당신 이상한 사람이죠 경찰서에 전화할거예요
[남] 미안합니다. 난 그 남자를 만나야 합니다. 사실은 여자를 찾고 있거든요
[혜옥] 예? (놀래서 물러서는 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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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옥] 여자? (사이) 어떤 여자죠?
[남] 제기럴 문 좀 열어요 문!
(발로 꽝 찬다 비명지르는 혜옥 남자 아래로 도망쳐 버린다)
[혜옥] (돌아가며 방안의 불을 모두 킨다) (좀 진정이 되는 혜옥 갑자기 테라스로 달려간다 덧문을 닫는다 숨이 가쁘다 그때 밖에서 계단을 올라오며 웃고 떠드는 남녀의 소리 부둥켜안고 등장하는 준상과 여자)
[여] 아직 멀었어요
[준상] 다 왔어 여기
(혜옥 반가워서 문쪽으로, 준상 발로 문을 찬다)
[여] 부자 없어요?
[준상] 무슨 부자?
[여] 딩동댕
[준상] 딩동댕? 없어! (발로 또 걷어찬다 굳어있는 혜옥)
[준상] 돌아왔습니다. 하준상이가 그러니 열려라 깨! (혜옥 울음을 터질 듯 침실로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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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빌어먹을 (열쇠를 꺼내 여자에게 보이고 문연다)
[여] 당신 꼭 사깃꾼 같애요
[준상] 벼락 맞을 소리, (두 사람 들어간다 모두 취했다)
[준상] (입을 막으며) 쉿! (여자 따라서 한다) 여기서부턴 위험지대 한눈팔다 울지말구 웃으면서 두리번 (살피고) 없는데!
[여자] 누가!
[준상] 적군이 허지만 방심은 금물, 적은 만만치가 않어. 첫째 방이 너무 밝구. 둘째 지나치게 조용하거든, 이건 필시 음흉한 모략 어딘가 함정이 숨겨져 있을게야 (살피며 방 가운데로 온다)
[여자] 아니 이 집에 당신말구 누가 또 있어요?
[준상] 쉿 조용히 (히죽대며) 까딱하다가 생명이 위험해. 죽는 게 소원이면 마음대로 하시구
[여자] 이거 기분 나쁜데 자주 이러면 가겠어요 (돌아선다)
[준상] (앉으며) 마음대로 허지만 들어오는건 당신 자유지만 나가는건 쉽지가 않을걸세 괜히
뒷통수 얻어맞고 뻗기 전에 여기 얌전히 앉아 계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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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당신 날 속였군!
[준상] 속은 놈이나 속인 놈이나 (침실에 대고) 죽은 놈이 억울하지 안그래? (벌떡 일어나) 자! 그만 숨박꼭질 그만 하구 정체를 밝히시지 난데! 당신 남편 하준상인데 말야 (혜옥 침실에서 나온다)
[준상] 늦었읍니다. 부인! 사실인즉은 빈 낚시에 망둥이가 물렸읍죠 (여자를 얼싸 안으며) 제법인데 망둥이라니
[여자] (준상을 밀치며) 뭐예요. 사람을 속이다니
[준상] 하 보기보다는 순진하시다 이런 말씀이군
[혜옥] (조용히) 누구예요? 저분
[준상] 참 통성명이 늦었군. 국적을 밝혀라! 대포를 쏘기 전에 여긴 내 아내. 당신 함자가 어떻게 되드라 아무튼 여긴 여기구 내 아내구 이쪽은 여잔대 아니지 이쪽도 여잔데
[혜옥] (준상을 부축하며) 당신 너무 취하셨어요. 방으로 들어가세요. (여자에게) 쥔을 돌봐 주셔서 고마워요. 안녕히 돌아가세요.
[여자] 잠깐 사정이나 말예요 제집은 수유린데 근데 저분이 "집으로 가자" 그래요 네 집이든 내 집이든 집이야 마찬가지가 아니냐 그래 염치없이 따라오구 말았죠 미안 그러니 하룻밤 신셀 좀
[혜옥] (기가 차서)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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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그럼 당신 임자가 있어?
[여자] 어머! 이이가 그럼 내가 임자 없는 나룻밴줄 아세요?
[준상] (여자를 포옹하며) 그래 그래 네 말이 맞다 요즘 세상에 임자 없는 물건이 어디 있게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휴지 조각 하나에도 주인이 있기 마련이지. 근데--- 난 아냐
[여자] 당신은 임자가 없어요
[준상] 글쎄 그게 분명치가 않어! 여보! 당신이 대답해 주구려
[혜옥] 제발 조용히 좀 하세요 누가 듣겠어요
[준상] 누가? 여기 우리말구 누가 또 있어? 아 참 그렇지 셋이 아니고 넷이렸다 (여자에게)아까 통성명 할제 하나 그만 빼먹었다.
[여자] 누굴?
[준상] (혜옥을 바라본다)
[혜옥] 누가 또 있다구 이러세요
[준상] (혜옥의 머리를 가리키며)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 당신 그 머릿속에 들어앉아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사람
[여자] 아 사모님이 유성기로군요
[준상] 유성기라니?
[여자] 어려서 말예요 유성기가 하도 신기해서 물으면 그 속에 꼬마 사람이 살고 있지. 노래 잘하는 귀여운 꼬마가
[준상] 아따 이 아가씨 천잴세 난 예쁘고도 영리한 여잔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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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뿐인 줄 알았드니 (준상이 요란스럽게 여자를 포옹한다 혜옥이 침실로 간다 준상이 날쌔게 혜옥을 가로막는다)
[혜옥] 비키세요.
[준상] 안 비키면?
[혜옥] 제발
[준상] 안 비키면 경찰을 부를테야? 응? 경찰을 불러서 어쩌자구?
[혜옥] 여보! (준상이 주춤 물러선다) 술을 마시건 집안을 때려 부시건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여자를 데리구 들어오셔도 상관않겠어요 무슨 짓이든 당신이 하구 싶으신 대로 하세요 허지만 나만은 가만 내버려 주세요 제발!
(혜옥 테라스로 뛰어간다 사이 준상 히죽대며 물러선다)
[여자] 왜 그래요? 저 여자
[준상] 울어!
[여자] 울어요? (준상이 끄덕인다) 왜 울어요?
[준상] 이런 슬프니까 울지
[여자] 저 여자가 당신을 사랑해요?
[준상] 왜 여자들은 사랑하면 우나?
[여자]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왜 이런 말이 있잖아요 단물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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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아먹고 쓴 물만 남았다
[준상] 요거 순 독설간데 (탁자 위에 술병을 발견하고) 이게 웬 술이야? 하하 부인께서 술을 마셨겠다. 무서웠던 게지? 무서웠던 모양이야 (여자에게) 술이 도로 깨는데 한잔하겠어?
[여자] 난 됐어요
[준상] 그러지 말구 자!
[여자] 싫어요
[준상] (혜옥에게) 그럼 당신? (혜옥 반응 없다. 준상 한잔 따라 마신다 여자가 하품을 한다. 그리곤 베시시 웃는다) (전화벨이 울린다)
[준상] (벌떡 화를 내며) 저놈 아직두 울어대 부셔버릴까 보다
[여자] 뭐요?
[준상] 고장이거든
(전화벨이 계속 울린다 혜옥이 일어난다 여자가 먼저 받는다)
[여자] 여보세요 여보세요(수화길 놓으며) 이런 정말 고장일세 (혜옥에게) 저 미안하지만 여기 부엌이 어디에요? 목이 마른데
(혜옥 대답 없다)
[여자] 목이 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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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퍼득 욕실을 가리키며) 아 저기 목욕탕에 물이 나와 (여자 비칠대며 욕실로 간다 혜옥이 놀래 달려가 여자를 막는다)
[혜옥] 왜 이래요?
[여자] 물
[혜옥] 나가요 이 집에서
[준상] 그 여잘 내버려 둬.
[혜옥] 당신 정신이 있어요 이런 식으로 사람을 골리다니
[준상] 물 좀 마시겠다는데 왜 이러지?
[혜옥] 안돼요 거긴
[준상] 왜 무슨 곡절이 있나? 저 속에 뭐가 들었길래 봐선 안될 것이라도 들어 있나?
[혜옥] (주춤)
[준상] 뭐야? 저 속에 든게? 대체 저 속에 뭐가 들었는가 말이야
(혜옥 도망친다 준상 잡는다)
[혜옥] 날 놓아줘요 날!
[준상] (혜옥을 마구 흔들며) 내가 아무것두 모른는 줄 알어? 누굴 눈뜬장님으로 아느냐 말야! 그래 의사가 당신에게 뭐라구 했어? 정상이라구? 그러니 그만 오라구 거짓말 날 좀 봐!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란 말야 당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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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갔다 왔는지 그걸 대란 말이야 (준상이 혜옥을 마구 흔든다 혜옥은 준상의 몸을 두손으로 두드리며 몸을 빼내려 애쓴다 준상의 손을 문다 비명치는 준상 도망친다 준상이 다시 혜옥을 붙잡는다 혜옥 힘없이 늘어진다)
[준상] (애원하듯이) 무엇 때문에 난 끊임없이 당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하고 또 당신은 공포에 떨어야 하는가 말아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러니 사실대로 말해 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신이 무슨 짓을 했건 아무 말 안할테니 그러니 당신 입으로 말을 해봐 사정이 이렇게 된것이라구 그러니 날 도와 달라구--- 그렇게 말해보란 말야 응 여보!
[혜옥] (힘없이) 뭘요! 내가 뭘 했길래
[준상] 겁낼게 뭐 있어. 난 당신의 남편인데 그래 나까지도 믿을 수가 없단 말인가? 그래 이래두 내 마음을 몰라 무턱대고 집을 나서고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들이 내게는 지겹도록 않은 줄 알았어 삼년을 한 이불속에서 나란히 벼개를 베고 누었어도 어쩌다 몸깃을 스친 이름모를 사람보다 못한 내 아내가 내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줄 알어? 응?
(준상 맥이 풀린다. 혜옥을 놓아준다. 혜옥이 허둥지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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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로 가 테라스 벽에 기댄다. 힘없이 주저앉는다. 사이 여자는 겁에 질려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서 있다. 준상이 여자를 보고 키득댄다)
[준상] 놀랬겠군! 도깨비놀음 같에서 (여자 끄덕인다) 병이야 가끔 발작하지
[여자] 술이 다 깨버렸어요 (준상은 쇼파에 앉아 술을 마신다. 조금씩 비웃듯이 웃어가며 혜옥쪽으로 간다)
[여자] 여보세요 저 부인 괜찮으세요?
[준상] 내버려 둬
[여자] 이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계면쩍게 웃고) 사실은--- 제 남편이 도망쳐 버렸어요 바로 오늘 아침인데 잠을 깨보니 남편이 없어요 하루종일 누워 있었죠 그래 술이래두 마시면 날까 하구 나왔는데 그만 거기서 댁의 쥔을 만났죠 나두 취했구 또 집에 들어가자니 웬수같구 해서 아내가 없다니 없겠지 설사 있어도 갈만하니까 가자는 것이겠지--- 미안해요 부인(혜옥은 여자의 말에 반응이 없다 전화벨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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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또 저놈의 전화야 (부셔버릴듯이 달려간다) 여보세요 (사이) 네? 어디요? 뭔데요- (여자에게) 이번엔 진짠데 (수화기에다) 누구요? 네 있긴 합니다만 (혜옥을 힐끔 보고) 말씀하시죠 제가 나중에 네 뭐 괜찮읍니다. 지금 자구 있지 않았으니까요 네 (사이 혜옥은 긴장하고 있다) 네 네? 누가요? (사이) 그래요. 네에 알겠읍니다. 아침 일찍--- 고맙습니다. (준상이 수화기를 내려놓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혜옥] (긴장해서) 어디서 온 전화예요?
[준상] 응?
[혜옥] 그 전화 어디서-
[준상] 옆집 김교수댁에서 더 늦기 전에 앰브런스를 보내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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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구
[혜옥] 그 전화 혹시
[준상] (짐짓) 내가 취했었나? 여보 내가 심하게 떠들어댔나? (여자에게) 전화야 옆집에서 돼지를 잡는다구 (욕실로 간다) 아 참 여긴 안되지 정신두 (침실로 간다)
[혜옥] 여보 잠깐만
[준상] (못 들은척) 아무래두 속이 좋지 않은데 (들어간다 혜옥 할 수 없다는 듯 체념의 빛)
[여자] (홧김에 술을 마시고) 쳇 비겁하게 꺼져 버렸군 나혼자 버려두고 이게 뭐야 (혜옥에게) 담배 있어요? (혜옥 담배를 준다) 얼마전부터 집에 전화가 걸려와요 근데 내가 받으면 아까 저 전화모양 아무 소리가 없어요 어쩌다 주인이 받으면 되는 모양인데 첨엔 몰랐죠 한두 차례 그런 일이 계속되더니 어젯밤에 또 전화가 왔어요 남편이 받게 내버려뒀다 뺐어 들었죠 그래 싸움이 났죠 생전 처음 남편한테 따귀를 한대 맞았구 그게 또 서러워서 한바탕 그랬드니 또 이번엔 이 쪽을 따악! (실없이 웃는다) 웃읍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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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옥 조금 웃는다) (멀리 기적이 울고 이어 철교를 건너는 소리) 여자 일어나 테라스로 간다)
[여자] 저기 철교가 있어요? (혜옥이 끄덕인다) 저 소릴 듣구 있으면 마음이 이상해지는군요 아무데구 무작정 떠나가 버리면 그럼 속이 후련해질지도 모르겠어요 (혜옥과 마주 앉는다 갑자기 웃는다) 우리 꼴이 궁상맞군요 (혜옥 조금 웃는다) 이것도 무슨 인연인가 보죠? (문득) 근데 저기- 정말 누가 들었어요?
[혜옥] 어디?
[여자] (욕실을 가리키며) 저기 (혜옥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마침내 끄덕인다) 그럼--- 정말에요? (혜옥 또 끄덕인다) 아니 누가요?
[혜옥] 죽은 사람에요
[여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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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옥] 남잔데 죽었어요
[여자] 저 속에요? 죽은 사람이---
[혜옥] 믿을 수 없지요? 허지만 사실에요
[여자] (웃으며) 설마--- 날 놀리시는군요
[혜옥] 정 못 믿으시겠다면--- 가서 직접 보세요
[여자] (일어난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앉으며) 허지만 그럴수가---
[혜옥] 사실인걸요 (여자 일어나 욕실로 간다 문 앞에서 망서린다 혜옥을 본다 키득댄다 손잡이를 잡는다 갑자기 무서워서 혜옥에게 다시 온다)
[혜옥] 왜 그러세요? 열어보지 않구
[여자] (웃는다)
[혜옥] 정 못 믿으시겠다면 내가 다 얘기해 드리죠 (사이) 오늘 낮이었어요 욕실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갑자기 누가 내 입을 막어요 (사이)--- 그 사람이드군요 그 사람한텐 어쩔 수 없었어요 처음부터 그랬으니까요 (사이) 그런 식으로 날 찾아와선 내 몸을 요구하곤 욕망이 채워지면 가버리고는 했어요 (사이) 갑자기 내 몸에 차거운 것이 닿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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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난 알몸이 돼 있었어요 그런데 그 때 노크 소리가 났어요 처음엔 약하게--- 그리곤 점점 크게 난 길바닥에 내팽개처진 것 같은 부끄러움을 느꼈어요 난 그 사람을 힘껏 밀쳤어
요. 그 사람 어이없이 샤워 파이프에 머리를 부딪치고는 힘없이 넘어졌는데 (혜옥 망연히 서 있다 순간 실극 및 샤워 소리 사라진다)
[여자] (침을 삼키며) 그래서--- 죽었어요? (혜옥 끄덕인다) 밀었는데요? 머리를 부딪쳤 밀었는데요? 머리를 부딪혔을 뿐인데요? (혜옥 끄덕인다) 허지만 그럴수가--- 괜히 날 놀리시는군요
[혜옥] (체념한 듯이 웃으며) 사실에요 모든 것이---
[여자] (욕실을 가르키며) 그럼--- 저속에 지금두 (혜옥 끄덕인다) 시체가--- ? (혜옥 끄덕인다 여자 헤설피 웃으며) 허지만 어디 (침실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린다 여자 기겁을 한다 혜옥을 붙잡고 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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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에서 준상이 투덜거리는 소리)
[여자] (한숨을 쉬고) 난 또 그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되어 나오는 줄 알구서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는다) (침실에서 준상이 나온다 옷을 여전히 입은 채다 준상은 토기가 나는지 입을 막고 곧장 욕실로 달려가 들어가 버린다. 너무 재빠르게 이 일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혜옥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준상이 사라진 후다)
[여자] (준상을 쫓아가며) 안 안돼요. 거긴 거긴 그 남자가 아니 시 시체가--- (하다 그만 운다) (욕실에서 준상이 토하는 소리가 들린다 혜옥은 체념한 듯이 테라스로 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버린다. 여자는 이제 벌어질 일에 참으며 호들갑을 떤다)
[여자] (혜옥에게 가서) 저러다 기절을 하면 어떻게 하죠 잘못해서 죽기라도 하면. 방정맞은 소리지만 복권에 당첨되서 죽는 사람도 있거든요 (혜옥이 머리를 감싸쥔다 여자 여전히 기가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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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런걸 시체 말로 차 치구 포 친다 하는 거죠 양수겹장이라구두 하구요 욕실에서 죽은 남자와 그 죽은 남자를 보고 놀래서 죽은 또 한사람의 욕실에서 죽은 남자 재밌는데요. 아주 아주
[혜옥] (결국 참지 못하고) 제발--- 조용히
[여자] 내 말이 틀렸나요? (욕실에서 수돗물 소리가 나고 잠시 후 준상이 나온다 상의는 입지 않고 있다 욕실에다 벗어놓은 듯 술이 좀 깨는지 여자 준상에게 간다)
[여자] 이런 살아버렸네
[준상] (어이가 없어) 누가 죽었어?
[여자] 당신이
[준상] 내가? (여자 끄덕인다) 내가 왜 죽어?
[여자] 아무렇지도 않아요? 속이 좀 메스껍다든지 그 쇼크 먹구 머리가 좀 어떻게---
[준상] 무슨 소린지 (쇼파에 앉는다) 공연히 밑지는 기분이라 참고 있었는데 그거 토해 버리니까 살 것 같군
[여자] (따라오며) 정말--- 이상이 없어요? 저 욕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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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상한 물체를 못 보았는가 말예요?
[준성] 거기 비행접시라도 떴나?
[여자] 그렇다면 이상한데 그럼 벌써 귀신이 되어서 사라져 버렸나? 그렇지 않다면 그게 귀신이라두 되어 연기처럼 그 곳을 빠져나가지 않았다면 (손뼉을 치며) 아 알겠다 이게 바루 그 겁준다는 얘기구나 (혜옥에게) 시이 그럼 진작 그냥 들어가서 자라 하실 것이지 한참 헤맸지 뭐예요 그래 이 모양으로 사람 겁을 주시다니 아무튼 덕분에 술이 싹 깨버렸어요 (하품하고) 제 방은 어디죠? 그만 자야겠는데
[혜옥] (침실로 가며) 이리 오세요
[여자] 거긴
[혜옥] 괜찮아요 우리가 여기서 지내죠 방이 하나 뿐이라
[여자] 미안해서 (준상에게) 제가 유부녀라는 사실을 잊지말아 주시기를 (혜옥 여자를 데리고 침실로 들어간다 준상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다 침실에서 여자의 키득대는 소리 준상은 움직이지 않는다 피곤한 모습 준상의 얼굴에 괴로운 표정이 감돈다 침실에서 혜옥의 "불을 꺼드릴까요"하는 소리와 여자의 "그냥 놔두세요 전 무섬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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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아서" 하는 소리 좀 있다 여자의 "아이 꺼주세요 끄는게 좋겠어요 미안해요"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이) (계단 쪽에 후라쉬 불빛 중년 남자가 두리번거리며 등장 여기저기 후라쉬를 비춰본다 준상의 방 홋수를 확인한다 안도의 숨을 내쉬고 후라쉬를 끈다 문에다 귀를 바싹대고 엿듣더니 가만히 노크한다 준상 흠짓 놀란다 중년 남자 다시 노크 준상 다가간다)
[남자] (숨죽여) 여보쇼 여보쇼 (부르고 문에다 귀 갖다 댄다)
[준상] (역시 낮은 목소리로) 누구요? (묻고는 문에다 귀 갖다 댄다 이하 같은 동작 되풀이 되며 속삭이는 목소리)
[남자] 뭐라구요?
[준상] 누구냐구?
[남자] 나요 나 모르시겠오?
[준상] 아직 못 찾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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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누굴 놀리는거요 좀 들어갑시다
[준상] 깨벋고 있다고 하지 않았소
[남자] 아직두 말요?
[준상] 이제야 겨우 본격적으로 벗기 시작했오
[남자] 저런 (사이) 좀 들어갑시다.
[준상] 나 혼자 아니오
[남자] 그럼 언제나 만날 수 있는 거요?
[준상]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남자] 좀 들어갑시다 좀 만나요
[준상] (화가 나서 큰소리로) 이런 제기랄 홀딱 벗구 있다니까
[남자] 그럼 관둬 (남자 화가 나서 발로 문 꽝 차고 후라쉬 키고 분주히 퇴장 준상 숨죽여 웃는다 쇼파에 벌렁 눕는다 침실에서 담요를 들고 혜옥이 나온다 준상을 본다 준상 잠이든 척 혜옥 바라보다가 방안의 불을 끈다 준상에게 담요를 덮어준다 옆에 앉아 물끄러미 지켜본다 (사이) 준상이 끙 하며 몸을 움직인다)
[혜옥] (애정에 차서)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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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눈을 떠 혜옥을 본다 갑자기 눈물이 치솟는다 혜옥 외면한다 혜옥 입술을 깨문다 무슨 말인가 하려다 그만두고 다시 눈을 감아 버린다)
[혜옥] 여보 미안해요 (사이) 다 아시고 계시죠 당신은 그러면서 모른 체 하시는거요
(준상 조용히 웃기 시작한다)
[준상] (와락 혜옥을 포옹한다) 아무 말도 여보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맙시다 지금은 해야 소용이 없오
(두 사람 포옹한 채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는다)
[혜옥] 행복해요 (힘껏 매달리며) 안아주세요 힘껏 더 힘껏 (준상 그대로 한다) 생각해 봤어요 지나간 모든 것들을 당신을 기다리면서 밤은 외로웠어요 쓸쓸했어요 오늘따라 당신이 어
떻게 기다려졌는지 안들어오시는 줄 알았어요 나혼자 밤을 새워야 하는구나 하구 생각하니 눈물이 핑하지 않겠어요 글쎄 그래 돌아가며 방안의 불을 모두 켜놓구 있었는데 그런데 당신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어찌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정말예요 당신에게 매달려 어린애처럼
엉엉 울어버리고 싶었어요 투정부리고 장난치면서 오늘밤은 그렇게 지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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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체온을 느끼구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자신이 들어서니까--- (사이) (설움이 복받쳐 준상의 포옹에서 풀려나 버린다)
[준상] 여보 지금두 지금두 늦지 않었오
[혜옥] (준상의 입을 막으며) 그만 아무 말씀 마세요 (쓸쓸히 웃고) 생각나세요 당신하구 제가 처음 만나던 때
[준상] (안타까워서) 여보 왜 당신은 자꾸만---
[혜옥] 당신--- 꼭 난파선 같었어요 곧 침몰할것처럼 내게 다가와서는 무조건 명령만 해대였죠 먹어야 산다 그러니 먹어라 또한 자주 웃자 웃기 싫으면 울자 (웃는다) 그런데 요즘은 왜 안그러세요 (혜옥을 보며 고소하며) 당신은 길모퉁이에 우두커니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 마치 서러운 사정이라도 있다는 듯이 당신 왜 거기 서 있어 아까부터 당신을 보구 있었는데 좀 이상하군 그래
[혜옥] (준상이처럼) 갈곳이 없어서 그래요
[준상] 집이 없어?
[혜옥] 예 없어요.
[준상] 그럼 나하고 같이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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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옥] 싫어요
[준상] 집이 없다면서?
[혜옥] 그래두 싫어요
[준상] (몸을 갑자기 피하며) 빌어먹을
[혜옥] (놀래서) 왜 그러세요? 갑자기
[준상] (안타까워져서) 그래 그것이 무슨 소용이야 지나간 일들이 무슨 소용이란 말야 당신과 내가 어떻게 만났건 어떻게 해서 당신이 여기서 살게 되었건 지금 와서 그것이 무슨 소용이냐 말야 (비웃으며) 기억이 나느냐구? 당신이 그렇게 원한다면 내 얘기해 줄까? (침착해지려고 애쓰며) 당신은 이 방에 들어서자마자 쓰러져 버렸어 당신은 며칠 밤을 그렇게 앓았지 헛소리를 내지르며 뭔가 두려워하면서 (나직이) 용서하세요 내가 당신을 죽였어요
[혜옥] 거짓말예요
[준상] 타고 있다 타고 있다 타고 있다!
[혜옥] 거짓말
[준상] 계속할까?
[혜옥] 그만 여보 제발
[준상] (갑자기 안된 생각이 들어서) 당신을 괴롭힐 생각은 없어 허지만 한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해둡시다.
[혜옥] (지쳐서) 또 무엇이 남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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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이건 우리 두 사람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니까 사실대로 얘기해 줘 (혜옥 힘없이 끄덕인다 준상 욕실을 가르키며) 누구지?
[혜옥] (힘없이) 누구라니오?
[준상] 저 속에 죽어있는 남자가 누구지?
[혜옥] 거기--- 누가 있다구 이러세요 아까부터
[준상] (기가 막혀 눈물이 핑해서) 참 딱두 하시지 아직두 숨길 생각이시라니 정말 불쌍한 여자로구만
[혜옥] (반사적으로) 난 정말 모른다니까요
[준상] 빌어먹을 그렇다면 네 두눈으로 똑똑히 보렴 (준상 혜옥을 끌고 욕실로 간다)
[혜옥] 놓아주세요 제발
[준상] 보라는데 왜 이래 당신이 모른다니 직접 보라는데 (준상이 욕실문을 연다 혜옥 비명을 지른다 준상 맥없이 혜옥을 붙잡아준다 사이)
[혜옥] (체념이 돼서) 결국--- 보시구 말았군요 보시지 않았으면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준상] 당신은 상관이 없다구 말해 봐 저 남잔 모르는 사람이라구 당신이 죽이지 않았다구 응? (혜옥 대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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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었군 그럼 빌어먹을 아니길 바랬었는데 당신이 대답하지 않을 때마다 당신은 모르구 있기 때문이라구 생각하구 다짐했는데 그게 사실이었군 (사이 갑자기 화를 내며) 그럼 그렇다면 왜 여지껏 숨기구 있었어 뭣 때문에!
[혜옥] (지쳐서) 당신 저를 잘 알구 있지 않으세요? 제가 어떤 여잔지 전 하잘 것 없는 여자
예요 싸구려 악기 같에서 누구나 쉽게 불수는 없어도 다루기 따라서는 손쉽게 사용할수 있는 그런 여자죠 그래서 그 사람은 그 요령을 터득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를 멋대로 유린했구 저 역시 막상 그 사람 품에 들어서는 마음이 평온해지곤 했어요 (준상에게 대들며) 그래요 그것이 바로 저예요 작부 같은 여자 그것이 바로 저였어요 그러나 내 몸쯤 그 사람이 희롱했댔자 대단한 일이 아녜요 돈주고 산 여자나 마찬가지니까요 당신도 절 희롱하세요 유린하세요 짓밟아 보세요 돈만 내시면 돼죠 그래 제가 뭣이 대단한 여자였던가요 당신 양복의 단추만큼이나 중요해 본적이 있었던가요? (준상, 묵묵히 혜옥을 바라보고 있을 뿐) 왜 대답을 못하세요. 그 사람을 왜 죽였느냐구? 그걸 몰라서 물으세요? 당신이 쓸데없는 질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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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풀이하고 있을 때 모든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당신은 모르신단 말예요 그렇다면 너무 하셨어요 아무리 싸구려 악기 같은 여자지만 난 당신의 아내예요 설마 절 버리자는 건 아니죠 넌 너구 넌 사람을 죽였구 그러니까
[준상] 그러니까 사실을 대라는 거야
[혜옥] 무슨 사실을 대라구 자꾸 이러시는 거예요 사실은 분명하죠 저기 욕실에 한 남자가 죽어 있어요 그리구 범인은 나구요 죽인 것은 나구요
[준상] 그걸 말이라구 그럴 누가 모른대! (준상이 협박하듯이 혜옥을 노려본다 혜옥 질식할 것 같다 탁자 위의 술병을 집으려고 간다)
[준상] (술병을 뺐으며) 안돼
[혜옥] (목이 타서) 한모금만 여보
[준상[ 안된대두
[혜옥] (단념하고) 그럼 나 담배 (사이) (준상이 담배를 한가치 준다 혜옥이 준상을 원망스레 쳐다본다 준상 담배를 혜옥이 받지 않자 두 개피를 한꺼번에 입에 문다 불을 붙친다 혜옥에게 준다 말없이 담배만 피우는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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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옥이 준상의 얼굴에다 담배 연기를 조금씩 내뿜는다 준상, 혜옥이 내 뿜는 그 연기를 마신다 순간 혜옥이 왈칵 준상에게 안긴다 사이)
[혜옥] (포옹한 채) 졸리워요--- 피곤해요 여보
[준상] (조심스럽게) 여보 물론 당신 심정은
[혜옥] 제발
[준상] 허지만 여보- (체념하고) 알겠오 (혜옥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한숨 자요 기분이 좀 나지겠지 푹 자요 아무 생각 말구서 (일어난다)
[혜옥] (잡으며) 옆에 있어 주세요 저 잠들 동안만 무서워요 (준상 앉는다) 됐어요 안심이군요 (다시 조용해진다 혜옥 미소를 띈 채 준상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든다 사이)
[준상] (빙긋 웃고) 여보 사실은--- 그 사람을 만났드랬오 민동필씨 말이오 갑자기--- 말하지 않구선 견딜 수가 없구료 나중에 얘기할 작정이었는데 첨엔 너무 놀래서 글쎄 그 사람이 살아있다니 설마 했었는데 그 모양을 하구 (사이) 이십년간 죽었다던 민동필씨가 불에 타죽었다던 당신의 아버지가 버젓이 살아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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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괴물딱지같은 바퀴달린 쇠의자를 타고 산송장이 되어 있다니 그걸 누가 짐작이나 했겠어? 응 여보 (쓸쓸히 웃고) 참 전화 말야 아까 걸려온 그 전화--- (혜옥을 본다) 여보 잠이 들었오? (혜옥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혜옥 몸을 뒤척인다) 그래 자구료 지금은--- 좀 있으면 아침이 오겠지 그럼 끝장을 내야하는 거요 모든 것을 저 욕실에서 죽은 남자며 민동필씨의 죽음이며- 나두 당신두 모두--- 그래서 싸움이 끝나고 이 길고 괴로운 밤이 걷히고 새로운 아침이 되면--- 여보 제발 행복해집시다 빌리다 내가 이렇게--- 제발--- 행복해집시다 우리---
(준상 눈을 감는다 혜옥 깊은 잠에 빠졌다 사이 갑자기 샤워 소리가 조용히 들려온다 그러나 그 소리는 전처럼 난폭하지가 않고 한없이 포근하고 부드러운 음조를 띄웠다. 애틋한 가락이 마치 잠속에 빠져드는 준상과 혜옥의 의식의 표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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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3막
(아침이다 아침 햇살이 화사하다 무대는 비어 있다 방안은 말끔하게 치워져 있다 현관문이 열리고 준상이 들어온다 전화기를 들고 있다 부엌에서 혜옥이 나온다)
[혜옥] (명랑해져서) 다녀오셨어요 그래 뭐래요 고장이래요
[준상] (전화기를 들어 보이며) 이건 이상이 없다는데 고장이 아니래
[혜옥] 그럼 아마 전화국에서 잘못된 모양이죠
[준상] 그런가 보지 (전화기를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 근데 돌아오는 길에 철길로 해서 왔는데 말야 거기도 이상이 없더군
[혜옥] 거기라니요?
[준상] (빙긋이 웃고) 철길 말야 누가 연탄재를 뿌려 놨겠지 말끔히 지워 버렸더군 그 핏자국 말야
[혜옥] (의아해서) 무슨 말씀이세요 무슨 핏자국을
[준상] 당신 몰라? 철길에서 죽은 남자 난 당신이 알고 있었는 줄 알았는데
[혜옥] 아 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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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그래 그 남자말야 (끄덕이며) 경찰이겠지 시첼 치운 게 하긴 날이 밝으면 얼마나 끔찍하겠어 나부터 걱정이었지 출근길에 그 산산조각이 난 시체를 보게 되면 기분이 어떨까 하고 잘됐지 아무튼 잘됐어 (담배를 한 개 꺼내 물면서) 배고픈데 아침 안됐오?
[혜옥] (준상을 의혹에 차서 보다가 얼결에) 녜 프로판 깨스가 고장이에요 연탄불을 피웠는데 잠깐만 기다리세요 (부엌으로 간다)
[준상] (문득) 고장이야?
[혜옥] 네?
[준상] 그 프로판 깨스
[혜옥] 예 왜요
[준상] 아니 그럼 고쳐야지 (혜옥 긴장이 풀려 피식 웃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준상 담배에 불을 붙인다 침실에서 여자가 부스스한 얼굴로 나온다 준상 여자를 보자 웃음이 터진다)
[준상] 아니 당신 아직 여기 있었어
[여자] (화가 나서) 당신 아주 악질예요
[준상] 질이 나쁘기야 피장파장이지
[여자] 이게 뭐예요 내 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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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당신 꼴이 어때서
[여자] 잠을 깨보니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망진창예요 그래 곰곰이 지난밤 일어났던 일을 생각해 봤죠 (생각을 정리하듯이) 어제 아침 잠을 깨보니 남편이 없어졌다 그래 쓸쓸해서 하루종일 방에 그냥 누워 있었다 저녁이 돼도 안돌아와서 화가 났다 화가 나서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와서--- 술을 마셨지 그래 여기저기서 마셨다 마셨는데--- 마셨는데
[준상] 취했다.
[여자] 옳아요 취했다 (울상이 돼서) 취해서 당신을 만났죠 그 다음 여길 왔구 근데 와보니 사모님이 계셨구 또 마셨구 저기 욕실에 귀신이 있다는 둥 날 놀려대서 그만 잤는데 깨보니
이게 뭐예요 글쎄 나갈 수가 있나 그렇다고 그냥 누워 있을 수가 있나
[준상] 듣고보니 그도 딱한 사정이군 (준상 웃는다 여자 욕실로 간다) 어딜가?
[여자] 세수는 해야죠 이 꼴로 나갔다간 낮도깨빈줄 알겠어요
[준상] (빙긋 웃고) 조심해 그 속에도 도깨비가 들었으니
[여자] 상관없어요 같은 도깨비 신센데
[준상] 그말 운치가 있어 좋았다 (준상 키득댄다 여자 욕실문 손잡이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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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칫하다 입맛을 다신다 연다 기겁을 하며 욕실문을 닫더니 쭈빗거리더니 결국 비명을 내지르고 만다 부엌에서 혜옥이 뛰어나온다 준상은 못 본체 시침이를 뗀다)
[헤옥] 무슨일에요?
[여자] (욕실을 손가락으로만 가리키며) 저기--- 저속에---
[혜옥] (질려서) 욕실문을 열어 봤군요
[여자] 저쪽 구석에 무슨--- 문을 여는데 무슨 시커먼 것이
[준상] 거기 뭐가 있다고 그래
[여자] (살았다 싶어 준상에게 가며) 아녜요 분명히 봤어요
[준상] 그럼 정말 도깨빈가---
[여자] 도깨비가 아니구요---
[혜옥] (정신없이 여자에게 대들며) 당신이 뭐예요 뭔데 여기 저기 마음대로 들춰보고 수선이예요 수선이! 부끄럽지도 않아요 오밤중에 남의 집에 들어와선 해가 낮이 되도록 늦잠을 자구 그러고도 뭐가 부족해서 이상한 말을 해대느냐 말예요 나가요 어서 나가!
[준상] 당신 왜 그래? 이 여자가 무슨 착각을 한 모양인데 (준상 욕실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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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옥 긴장한다 욕실안에서 준상의 "난 또 이건 내 웃도리 아냐 빌어먹을" 하는 소리가 들리고 준상이 욕실에서 나온다 여자에게 상의를 흔들어 보인다 여자 욕실을 들여다본다)
[준상] 뭐가 보여?
[여자] (고개를 흔들며) 아무것도
(준상이 웃기 시작한다 여자 계면쩍어서 현관으로 간다)
[준상] 세수는 해야지?
[여자] 아니 목욕탕에 가서 하겠어요
[준상] 목욕탕? 여긴 아닌가?
[여자] (화가 나서) 공중목욕탕 말예요! (나가려다가 탁자 현관으로 간다 아무래도 성이 안풀려) 당신--- 정말 순악질예요 (여자 나간다 준상 혜옥을 바라본다 혜옥은 아직 어리둥절하다 준상이 침실로 들어간다 혜옥 욕실로 달려간다 열어 본다 다시 닫고 욕실 문에 기대어 넋을 잃는다 침실에서 준상이 권총을 가지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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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담담하게) 이 권총 총알이 한방 들었다구 그랬던가? 필요해질 것 같아서 가지고 있다면서 당신이 그랬지? (괴롭게 웃고) 필요해질 것 같다 운명처럼 하긴--- 알 것도 같다 짐승들은 자기가 죽는 시간을 미리 안다지? 그래서 그때가 오면 조용히 순명한다지? (침착을 되찾고) 그래서 이 총을 꺼내 왔는데 어때? 내 예감이 틀렸어? 지금이 바로 그 필요해진 상태인것 같은데 (혜옥이 조용히 다가와 준상의 등에서 두 팔로 목을 두른다) 문제는--- 이것이 필요한 자가 누구냐 하는 것이겠지 나를 쏘고 자기 쏘고 시체에다 쏘고 아니면 혜옥을 피하며) 누구야? 필요한 자가 (혜옥을 노려본다 혜옥이 준상의 가슴에 조금씩 파고든다 준상 몸을 피한다 혜옥 놓치지 않는다 혜옥 나직히 웃는다 준상 혜옥이 하는 대로 내버려둔다)
[혜옥] 놀랬어요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준상] (꼼짝 않는다)
[혜옥] 우린 드디어--- 공범자가 됐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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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끄덕이며) 그래 공범자
[혜옥] (준상을 똑바로 쳐다보며) 철길에서 죽은 남자가--- 바로 그 남자?
[준상] (힘없이 끄덕인다)
{혜옥] (준상을 얼싸안으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내셨어요 이젠 살 것 같애요 말씀해 주세요 어떻게 당신이 그런 생각을 해내셨는지
[준상] 어제 저녁에--- 일곱시쯤인가 집에 돌아와 보니 현관문이 열려 있어 당신 무척 당황했던 모양이지?
[혜옥] 어머? 그랬어요? 문이 열려 있어요?
[주상] 당신을 찾았었어 그래 어디 잠깐 나간게지 하고 여기 앉아 막 담배를 꺼내 물 참인데 소리 비슷한 것이 저쪽에서
[혜옥] 신음소리가요?
[준상] (끄덕이고) 욕실이더군 들어갔지
[혜옥] (놀래며) 여보 그럼 그때 그 사람이 죽어 있지 않았어요? 그 사람이?
[준상] 날 쳐다보더군 의식이 드는 모양인가 보다 했는데 이내 다시 기절해 버리는군 어떡한다 필시 당신짓인가 본데 그 사람 그냥 거기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병원으로 데려가자니 그랬다간 당신이 애먹겠고 에라 모르겠다 그 길로 들쳐 없고 철길로 나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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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옥] (공포에 질려) 그 사람 아무 말도 없었어요
[준상] 누구?
[혜옥] 그 사람 말예요
[준상] 몹시 괴로운 표정이었는데 아마 의식이 드는지 자꾸 내 손을 잡으려구 들더군 하도 측은해서 손을 잡아줬더니 그만 까무라쳐 버렸어 (한숨쉬고) 그때 숨을 거뒀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구 설사 숨이 남아 있었다 해도 철길행임에는 어쩌는 도리가 없었을 테니까 그
사람 숨을 거뒀다구 생각하는게 피차 괴롭지 않겠지
[혜옥] (나직히) 잘하셨어요
[준상] 당신--- 지금 뭐라구 했오?
[혜옥] 잘 하셨다구요!
[준상] (다가가며) 뭐라구
[혜옥] (도망치며) 살인자 사람을 죽였어 귀여운 살인자
[준상] (다가가며) 닥치라구 닥치지 않으면 너두 죽여
[혜옥] (도망치며) 이젠 아셨겠죠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공포에 질린 내 마음 아니 죽였다고
믿었기 때문에 숨죽여 떨던 내 마음
[준상] (다가가며) 농담하지 말라구 정말 화낼 테야
[혜옥] (탁자 위로 도망치며) 괴로우세요 그럼 비명을 질러 보세요 그래도 괴로우면 저 벽에다 머리를 부딪쳐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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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흘려보세요 그럼 잊을지도 몰라요
[준상] 정말 닥치지 못해 (사뭇 때릴 기세로 준상이 덤빈다 날To게 도망치는 혜옥)
[혜옥] 허지만 어림없어요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세요 마치 딸꾹질하듯 수없이 심장이 멎고 또 멎었다구요
[준상] 마지막 경고야 닥쳐
[혜옥] (얼른 피해서 소파 위에 올라서서) 절 똑바로 쳐다보세요 이제부터 가르쳐 드릴 테니까요 하루도 빠짐없이 낮이나 밤이나 일하고 있을 때나 잠잘 때나 당신이 숨쉬고 있는 동안은 두고두고 가르쳐 드리겠어요 내 고통 다 드리겠다구요
[준상] 날 속이다니 없애 버릴 테야 (준상이 달려든다 혜옥 비명치며 준상에게 몸을 던진다 준상 혜옥 몸을 안고 쓰러진다 뒹구는 두 사람 깊은 포옹 밀착한 채 움직이지 않는다 긴 사이 두 사람 떨어진다 나란히 누워 평화롭다 사이)
[혜옥] 미안해요 당신도 알죠 사실은 여보 얼마나 기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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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요 우린 이젠--- 같아요 똑같애요--- (사이)
[준상] 민돈필이 누구야
[혜옥] (꿈꾸듯) 당신인줄 알았어요 철길에서 누가 죽었다길래
[준상] (같은 어조다) 민동필이 누구야?
[혜옥] 누구요?
[준상] 민동필
[혜옥] (벌떡 일어나며) 여보!
[준상] (결력하게) 대라구 대 민동필이 누군지 사람까지 죽였잖아 그런데도 몰라 그런데도 민돈필이 누군지 몰라 (난폭하게 혜옥을 잡아 흔드는데 관리인 허겁지겁 뛰어 올라와 벨을 누른다)
[준상] 빌어먹을 (화가 나서 준상 문으로 달려간다)
[준상] 또 왔어 잘못 찾아 왔다고 몇 번이나 말해야 알어 모가질 비틀어 버리기 전에 어서 꺼져라 (문을 연다 관리인 놀래서 서 있다 준상 웃음이 터진다)
[준상] 난 또 누구라고
[관리인] 그 남자 만나셨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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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그 남자라니요
[관리인] 선생을 찾아 헤메 다녔는데요
[준상] 날요?
[관리인] 네 밤새도록 이 아파트를 왼통 뒤지구 다녔다는군 그래서 그래서 여길 알으켜 줬는데 안왔던가요?
[준상] 밤새도록 미친놈처럼 오르락 내리락한게 그 사람이로군
[관리인] 전화가 고장이라나요 아참 전환 고쳤읍니까?
[준상] 예
[관리인] 미친년은요?
[준상] 네?
[관리인] 목욕탕말예요 아직도 오줌쌉니까
[준상] 하하 아저씨도
[관리인] 그럼 갑니다 (간다)
[준상] 아 아저씨 그 남자 만나면 이리로 보내요
[관리인] 모가질 비틀어 놓겠다면서요
[준상] 제기랄 귀도 밝다 (준상 방문 꽝 닫는다 관리인 퇴장 혜옥 멍하니 서 있다 사이 갑자기 준상이 조용히 입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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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그 사람을 만났어 민동필씨 말야
[혜옥] (넋을 잃고) 누굴 만나셨다구요?
[준상] 며칠 전인데 당신에게 말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당신이 말할 때까지 기다리는게 좋겠다 싶더군 결국 내가 먼저 말해 버리고 말았지만
[혜옥] 그럼?
[준상] 그래 (긴 침묵)
[혜옥] (가늘게 경련 한다)
[준상] (조용히) 오랫동안 찾아 헤맸지 당신을 만나구 내내 당신에게 뭔가 숨겨진 비밀이 있는데 그것이 당신과 내 사이를 딱 가로막고 서서는 둘 사이를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는 사실
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고부터는 쭈욱 (키득 웃고) 근데 이게 뭐야? 찾고 보니 산송장이라 이건 귀가 있으니 듣길 하나 입이 있으니 말을 하나 어떻게 해보는 재간이 있어야지 눈물을
머금고 후회 일은 더욱 난처해진 셈이지 그래 당신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데 이것 보게 사람
이 죽어 버렸어 점입가경이라더니 어디 돌아가는 꼴을 두고보자 작정하고 있는데 하 이런 당신마저 벙어리 시늉이야 골치가 지끈덕거려서 살수가 있어야지 (준상 머리를 감싸쥐고 괴로워한다 기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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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꾸고) 자. 여보 그러니 말 좀 해봐 그간의 사정을 속 시원히 말이나 해봐
[혜옥] 만나셨다면서 뭘 말예요?
[준상] 또 시작이군 벙어리랬잖아 산송장이더라구
[헤옥] 산송장이니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글쎄
[준상] 가서 그 사람 입을 열든지 당신이 입을 열든지 어떻든 얘길 좀 해보란 말야! 이 사람아
[혜옥] (독이 나서) 난 못해요
[준상] 왜 못해?
[혜옥] 당신하곤 아무 상관없는 일예요
[준상] (딱해서) 왜 상관이 없어 당신은 내 아낸데 내 아내가 그 사람 때문에 숨박꼭질을 하
고 있는데!
[혜옥] 그럼 됐지 뭐가 또 부족해서요 병원엘 가라면 미친년 시늉을 해드렸구
[준상] (혜옥을 잡으며) 당신 정말 미쳤군 정말 미쳤어
[혜옥] 미쳤어요 미쳤으니 이걸 놓으세요 그러다 당신까지 미쳐요 (뿌리치고 현관으로 간다)
[준상] (막으며) 어딜가?
[혜옥] 비키세요
[준상] 못가 거긴 못가!
[혜옥] 가야돼요 비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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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가면 그만이야 당신이 이번에 가면 끝장이 나는 거야
[혜옥] 제발 절 보내 주세요 그 사람은 제가 필요해요 제가 보살펴 주지 않으면 당신 말대로 산송장이나 다름없어요
[준상] 나 역시 당신이 없으면 산송장이나 마찬가지야
[혜옥] 왜 이러세요? 누구 죽는 꼴을 보시려구
[준상] 못나간다는데 왜 이래! 거긴 못 간다는데
(혜옥과 준상이 옥신각신 다투고 있는데 관리인이 벨을 누른다)
[준상] 누구야?
[관리인] 또 왔읍니다. 관리인입니다.
[준상] 그런데요
[관리인] 큰일났습니다 사람이 죽었어요
(준상 가서 문연다)
[준상] 죽다니요 누가요?
[관리인] 그 남자 말입니다. 방금 전까지 저한테 찾아와서 그 남자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런데 어느새 옥상엘 올라가서 실순지 고읜지 아래로 떨어져서
[준상] 안됐군요 (문 닫는다)
[관리인] 사모님을 찾았어요
[준상] 뭐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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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인] 에 선생님이 아닙니다 선생을 찾아서 사모님을 만나게 해달라는 거예요
[혜옥] (그 자리서) 누굴 찾았다구요?
(준상 얼른 문을 닫는다)
[관리인] 병원에서 왔다구요
[혜옥] 병원?
[준상] 알았으니 가요 (준상 문을 꽝 닫는다)
[혜옥] 아저씨 병원이라니 무슨 병원 이예요?
(관리인 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며)
[관리인] 병원입죠 누가 죽었대요 그래서 사모님한테 그걸---
[준상] 앗따 알았대두 그런다 (준상 문을 꽝 닫는다 관리인 중얼거리며 퇴장 준상 빙긋 웃고 돌아선다)
[헤옥] (의심이 나서) 뭐예요?
[준상] 아무것도 아냐 (준상 웃음을 참는다 혜옥 의심이 나서 다가온다)
[혜옥] 당신 지금 뭘 숨기구 계시죠? 찾아왔다는 사람이 누구죠 죽었다는건 누구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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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미친놈이야
[혜옥] 거짓말
[준상] (머리를 탁 치며) 아뿔싸 이것 보게 내 정신이
[혜옥] 왜 그러세요?
[준상] 당신 수작에 또 넘어갔군 으레 이 모양이지 (정색하고) 그 민동필씨 얘긴데 당신 아버지말야 그 얘길 마저 해줘야겠어
[혜옥] 그 얘기라면 다 했어요 (안절부절못하며) 이상해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겼어 내가 이
러구 있을 때가 아닌데.
[준상] 당신 왜 그래? 그러지 말고 여기 좀 앉지 (쇼파에 앉친다)
[혜옥] 여보 부탁예요 절 보내주세요 금방 돌아와요 아무일 없으면 금방
[준상] 보내 주긴 하겠는데 그전에 얘길 좀 먼저 해줘야겠어 그러고 나서 가서 죽든지 돌아오던지 맘대로 하구료
[혜옥] 물어보세요 무엇이든지 (사이)
[준상] (빙긋 웃고) 민동필씬 왜 죽었지?
[혜옥] 뭐요?
[준상] 왜 민동필씨가 죽었느냐구? 다시 말해서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누구에게 어떡하다 죽었는가 그 말이지 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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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대줘
[혜옥] 죽었다니요? 당신 눈으로 그 분을 보셨다면서요?
[준상] 그럼 내가 말을 잘못했나? 그러니까 왜 그 꼴이 됐느냐 말야? 왜 산송장이 되어 있지 않으면 안되었는가 하는 그 얘기
[혜옥] 여보
[준상] (험악해져서) 당신 정말 끝까지 이러기야 저 총으로 당신도 나도 그 자도 죽일 수 있어 내참 정신 보게 총알은 한방 뿐이랬지
[혜옥] (할 수 없이) 얘기하죠 꼭 알아야 하시겠다면 아버진--- (준상의 눈치를 보며) 어려서 집에 불이 났어요 사정은 잘 모르겠는데 그때 아마 잘못되셔서
[준상] 왜 불이 났지?
[혜옥] 여보 그걸 내가 어떻게
[준상] 저절로 났나?
[혜옥] 화인은 모른다지 않아요
[준상] 근데 당신이 왜 숨넘어가는 시늉을 하지? 당신 아버지가 그 꼴이 된 게 당신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구?
[혜옥] 생각해 보세요 그럼--- 단 한 분 계신 아버님이 그 모양이 되셨는데
[준상] 사실은 그게 아니지!
[혜옥] 그게 아니면요!
[준상] 그 불이 말야 저절로 난게 아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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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옥] 아! (비명치며 도망친다 준상이 잡는다)
[준상] 말하면 그만이야 더 이상 숨길게 뭐 있어! 속시원히 말해 보라니까! 그 불이 어떻게 해서 났는가! (혜옥 늘어진다 준상 놓아준다 혜옥 기어서 도망친다 준상은 멍하니 보고 있다 혜옥 기진해서 멈춘다 사이 혜옥 서서히 모든 것을 체념해 버린다 미소가 떠오른다 과거속에 빠져든다) (사이)
[혜옥] (꿈속에서 하듯) 정원 잔디밭엔 햇볕이 따뜻하게 내려 쪼이고 있었어요 여보 난 거기
서 행복했어요 나 혼자 있는 동안은 말예요 혼자 있으면 모든 것이 괜찮아 보여요 (사이) 나이가 들었어요 쓸쓸하다 이렇게 넓은 집안에 나 혼자 살고 있다니--- 허전하다 말동무가 그리워졌고 쳐다보고 있을 사람이 필요해졌어요 단지 하나뿐인 거기 나 하나 만이 빈 의자처럼 뎅그란이 남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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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여보 당신은 아세요? 당신은 그렇게 살아보셨어요? 말이 하고 싶어서 견디지 못할 때가 있어 보셨어요? (사이) 주말이 되면 아버지가 찾아오세요 일주일 내내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살았어요 "오시는구나 아버지가" (사이) 단 한 분--- 내게 말을 건네주시고 쓰다듬어 주시고 그리고 나를 알아주시던 아버지 그럼 아버진 웃으시면서 말없이 내 손을 쥐어 주시고는 그리고는 가버리셨어요 그 여자와 아버지의 젊은 여자와 함께 말예요 여보 그럼 나만이 남겨져서는 그 텅빈 넓은 집안에 나는 꼭 유령같이 남겨져서는--- 그럼 그 여자의 웃음소리가 나직히 들려와요 그 여자의 비웃는 소리가--- (사이) 어느 날--- 두 사람은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어요 난 밤이 되기를 기다렸죠 그리곤 램프 불을 켜 들고 제 방을 나섰어요 벽 가득히 제 조그만 몸둥이의 그림자가 채워져서는 걸음을 옮겨 디딜 때마다 펄럭이군 했죠 으악! (사이) 불이 타고 꺼져 가는 동안 그 짧은 순간에 두 사람의 생명과 그리고 나의 작은 생명까지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어요 방안에 램프를 던져 넣고 방문을 밖에서 채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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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에 이미 내 생명도 죽어 버렸던 거예요 귀도 먹어 버리고 눈은 타 버려서 아버지의 비명도 살려 달라는 외침도 내게는 들리지 않았던 거예요 (사이) 듣고 나니 이제 시원하세요? 그래 다 듣고 나니까 시원하시냐구요 이게 저랍니다. 아버지를 죽인 여자랍니다 사람을 죽인! (사이 침묵 막연해져 있는 두 사람 이윽고 혜옥이 현관 쪽으로 나선다)
[혜옥] (비웃듯이) 이젠 가도 되죠? 가도 되면 가겠어요 (대답이 없다) 안돼요? 가면 왜 대답이 없으세요 당신에게 묻고 있는 거예요 가도 되느냐구요?
[준상] (멍해서) 어딜?
[혜옥]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그분은 제가 필요하다구 제가 없으면 산송장이라구요 그러니 제발 가라고 해주세요 사정하는 거예요 지금!
[준상] 그 사람은 당신이 필요하다치고 그럼 난 아무렇게나 돼도 좋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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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준상이는 죽던 말던 당신에겐 상관이 없단 말인가? 그래
[혜옥] 어쩌면 그런 소릴 당신이 왜 죽어요? 민혜옥이가 당신의 뭔데
[준상] 내 아내지 난 당신의 남편이고
[혜옥] 그만두세요 다 그만 두란 말예요! (혜옥 현관으로 달려간다 준상이 날쌔게 잡는다)
[혜옥] (몸부림치며) 놓아요 이걸 놓아줘요
[준상] 못간대두 못간대두
[혜옥] 그럼 나더러 어떻게 하라구요?
[준상] 여기 있으면 돼 여기
[혜옥] (울부짖으며) 못해요 난 못해요 모두 벗겨놓고 나더러 어떻게 살라구 당신 얼굴을 어떻게 보며 밤마다 튀어나올 죽은 남자의 망령은 어떻게 하라구요
[준상] 여보 날 좀 봐 날보고 대답해 줘 당신 날 사랑하지? 당신도 날 사랑하고 있지?
[혜옥] (가까스로) 사랑해요
[준상] 누굴?
[혜옥] 당신을
[준상] 얼마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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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옥] 한없이 한없이
[준상] 그 누구보다도
[혜옥] (끄덕이며) 그렇다니까요 (준상 맥이 풀린다 혜옥의 눈물을 닦아준다)
[준상] 그럼 됐어 이젠 안심이군 (활기를 되찾고)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지 내가 당신의 공범자가 되는 순간 그 사람도 죽었고 그 남자도 죽었어 민혜옥이도 하준상이도 이젠 우린 어두운 과거속에서 벗어난 거야 새 출발이지 이제부터는 여보 듣고 있어 당신 이젠 거기 가 봐야 소용없어 죽었어
[혜옥] 죽다니 누가요?
[준상] 민동필씨 말이야 죽었어 죽었어 민동필씨
[혜옥] 정말예요?
[준상] (끄덕인다)
[혜옥] 당신이 죽였군요 그렇죠?
[준상] (대답이 없다 그는 완전히 지쳤다)
[혜옥] (신음하며 현관으로 달려간다)
[준상] (다시 막는다)
[준상] 가봐야 소용없다는데
[혜옥] 손대지 마세요 대면 죽여버릴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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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차라리 죽여 죽이고 가
[혜옥] 놓으라니까요! (혜옥 탁자 위의 권총을 집어든다 준상을 겨눈다)
[준상] 쏠테야? 쏘겠으면 쏴 민동필씨는 죽었으니까 왜 죽었느냐구? 내가 만나서 우리가 살기 위해선 당신이 죽어줘야겠다고 말했어 산송장이 살아서 살아야 될 사람을 괴롭히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라구 (총성 혜옥이 방아쇠를 당겼다 준상 배를 쓸어안고 쓰러진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군 채 움직이지 않는다) 혜옥 총을 던지고 준상에게 달려든다)
[혜옥] 여보 정신차려요 여보 죽으면 안돼요 죽으면 당신이 죽으면 나 혼잔--- 나두 죽어요 정신을 차려요 여보 (준상이 겨우 얼굴을 반쯤 쳐든다) 괜찮아요? 여보 정신이 좀 나세요? 어디에요? 상처가 커요 의사를 부를까요? 의사를 부르죠 전화걸께요 (일어나 전화기로 간다)
[준상] (아무렇지도 않게) 그 전화 고장이래도
[혜옥]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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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고장이야 전화 말야
[혜옥] 당신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준상] 당신 보기보다는 맘이 약하군 제대로 겨누지 못했어
[혜옥] (절망이 돼서) 날--- 속였군요
[준상] 당신의 진심을 알려줘서 고마워 당신이 날 그냥 버려두고 달려가 버렸으면 난 머릴 이대로 방바닥에 박은 채 영영 일어나지 않을 작정이였는데 여자란 결국 여자라 (웃는다 재채기 한 손은 여전히 옆구리를 부여 쥐고 있다 혜옥 다시 방아쇠를 당긴다 총알이 없다 총을 준상에게 내던진다)
[혜옥] 더러워요 더러워 사람을 이 모양으로 비참하게 만들다니 당신을 저주해요 영원히 영원히 저주하면서 살겠어요! (현관으로 간다)
[준상] 여보 돌아오는 거지 (혜옥 멈춘다) 잠깐 다녀오는 거지 날 버리는게 아니지 (혜옥 나가 버린다) 여보 대답해줘 돌아온다구 금방 돌아오겠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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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따라가다 고통이 치미는 듯 넘어진다 상처가 크다 배에서 손을 떼어본다 피 괴롭게 웃는다)
[준상] 가버렸구나 달려가 버렸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달려가 버렸어 그러니까 시작은 당신이 하고 끝은 내가 낸다니까 결국 사람을 죽인 건 당신이 아니구 나지 바로 나지 바보같은 하지만 이번만은 이 모진 목숨만은 제발 당신이 거두어 주구려 마지막 부탁이니 여보 (일어나 현관으로 가며) 여보 내 말이 들려? 들리면 돌아와서 내 숨을 거둬가 줘 당신은 아무 죄가 없으니 제발 돌아와서 (고통이 심해져 넘어진다) 여보 난 다만 당신의 고통을 나눠 갖자는 것뿐이었오 당신을 사랑했으니까 내가 알지도 못하는 당신의 비밀 때문에 당신과 내가 멀어져 가는 것이 괴로웠을 뿐이오 뭣 때문인지 알기나 해야 할 것 아니오 무엇 때문에 내 아내가 괴로워하고 있는지 그 정체만이라도 (일어나 테라스로 달려간다 엎어지며 자 빠지며 겨우 테라스 난간에 다다른다 밑을 내려다본다) 여보 뛰고 있구려 조심해요 넘어지지 말구 조심해요 서두르지 말고 아젠 아무도 당신을 쫓고 있지 않으니까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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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오 끝내 나만을 소유할 수 없었던 당신의 세계로 당신만의 세계로 (의식이 멀어진다) 마음이 편해지는구나 막상 잃어버리고 나니 한결 마음이--- (웃는다) 결국--- 이번에도--- 나 혼자서--- 여보 너무 가혹하군요 여보 내 목숨마저도--- 내가 거둬들여야 하다니--- 나 혼자--- 나의 임종을 지켜야 하다니 (준상 조용히 미소진 채 움직이지 않는다 기차의 굉음이 준상의 죽음을 삼키듯이 지나쳐 간다)
-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