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 의)
현대인의 특징적 비극성은 서정의 상실에 있다.
소포크레스에서 유진 오닐까지 이어진 고전적인 비극의 바탕은 _그것이 비록 신과 인간의 문제를 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_ 인간정신의 리리시즘에 근거하는 것이다. 아더밀러와 테네시 윌리암스는 미국적인 새로운 비극을 탄생시켰다. 그들은 신과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사회, 나아가서는 인간과 인간의 문제로 그 비극성은 제한했다. 그러나 그 바탕은 여전히 극적인 리리시즘에 근거한다. 탱자꽃은 평범한 인간들의 평범한 상처에 관한 기술이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다. 남에게 드러 내놓고 보여주고 영향을 미치기에는 너무나 하잘 것 없는 상처들. 그것을 통하여 현대인의 서정성을 회복하고자 한다.
[페이지] 001
(마을의 산쪽 아래에 있는 집이다. 대문 양 옆은 브로크 담인데 나머지 부분은 탱자나무로 담을 대신했다. 탱자나무 담과 면해서 정원이 있고 등나무 정자도 있다. 보통 여기다 평상을 놓고 수박도 먹고 그런다. 집은 왜정시대때 지은 모양으로 한옥은 한옥인데, 어딘지 일본식 냄새도 좀 난다. 정 원쪽으로 안방겸 사랑방이 있고, 넓직한 마루를 끼고 건너방이 있다. 그리고 꼬부라지면서 부엌과 방이 하나 더 있는데 이런 구조로 봐서 건너방이 옛날에는 안방이었고 안방겸 사랑방은 사랑채로만 썼던 것 같다. 객석에서 볼 수 있는 부분은 안방과 마루 그리고 부엌의 입구다.
부엌옆방도 식구가 줄어서인지 방을 허물고 벽면이 트인 헛간으로 쓰고있다. 농기구등이 놓여있지만 농사를 짓고 있는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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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전체는 좀 낡은 느낌이지만 간혹 수리를 한듯한 흔적이 있으며, 이 부분이 오히려 낡은 느낌이 든다.
안방끝과탱자나무 사이로 뒷뜰로 가는 길이 있으며, 헛간과 우물이 보인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대나무숲이 보인다. 안방 앞에서 마루까지 이어진 덧마루등에 고서화가 여럿 걸려있어서 이 집은 종가집다운 무거운 기분을 돋구어 주고 있다
[장] 제 1 장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여름날_구름 한점 없는 맑은
하늘인가 보다. 대문을 들어서는 당숙과명자)
[명자] 의사선생님 말씀으론 오늘 내일 사이에 또한번
충격이 있을거레요 그때 못견디시면 어려우신가봐요
[페이지] 003
[당숙] 성균이, 전균이한테두 연락을 했냐?
[명자] 네 언니들한테두 연락했구요 작은 아버지하고
고모님한태두 연락이 갔을거예요
[당숙] 지금은 어떡하고 계시냐?
[명자] 주무실거예요
[당숙] 사람은 알아 보시고
[명자] 네 말씀도 다 알아 들으시고 하는데 기운이
떨어지셔서 그런지 몸을 못 움직이세요 맥박이 뛰는거
같지두 않구요
[당숙] 정정하셨는데
[명자] 심장이 나빠지신거는 오래 됐어요
[당숙] 가만있어라 백구에 가서 일가 사람들한테
알려야겠다 이 근처서 니 어머니 신세 안진 사람
드물게다 이런 때라도 와서 들여다 봐야지 명자 니가
고생이 많다
[명자] 고생은요
[당숙] 다녀오마
[명자] 아저씨도 바쁘실텐데
[당숙] 손님들 오면 니 당숙모가 와서 거들어 줄거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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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숙 대문으로 나간다. 조금 따라가며 인사하는
명자. 얼른 사랑방으로 들어간다.)
[페이지] 005
[명자] (방안에서) 엄마 주무세요?
(밖에서 자동차의 경적소리 명자 반가워서 나온다
송찬 뛰어들어온다)
[송찬] 이모 이모
[명자] 송찬이도 내려왔구나 방학했지
[송찬] 네 이모 아빠가 차 어디 대느냐고 물어보래요
골목이 좁아서 못들어 오시겠대요
[명자] 학교 마당에 세우시라고 그래
[송찬] (뛰어 나가며) 아빠 학교 마당에 차
세우시래요
(명희와 송희가 들어온다)
[명자] 언니
[명희] 이것 좀 받아라 (가방 내민다) 웬 날씨가
이렇게 덥냐 사람 잡는구나
[명자] (가방 받으며) 마루가 시원해(가며) 형부가
용케 시간이 나셨네 새로 회사 차렸다면서
[명희] 회사는 무슨 얼어죽을놈의 회사냐 사장님
소리도 못듣고 기껏해야 소장님 소리밖에 못듣는거
[명자] (웃으며) 언닌 여전히 입이 험하구나
[명희] 그래두 니형부가 벌인 사업치곤 이번이 제일
[페이지] 006
실속이 있나보드라 한참 바뻤지
[명자] 요즘은 한가해요?
[명희] 여름철 아니냐 이 복날에 시집 장가 갈
생각이나겠니 찬바람이나 불어야노처녀.노총각 궁뎅이가
들석들썩 하겠지. 그래서 해수욕이나 가자고 짐싸들고
나서는데 연락이 왔길래 그길로 그냥 내려오는 거다
(송희에게) 이모한테 인사 안해?
[송희] 안녕하세요
[명자] 중학교 들어갔든가 송희가?
[송희] 작년에요
[명자] 콧수염이 다 났네
(과장해서 웃는 명자. 입이 튀어나온 송희)
[명희] 어머니 어느 방에 모셨냐
[명자] 사랑에요
[명희] 안방에 모시잖고 어떠시냐
[명자] 조금전에 의사 선생님이 또한번 다녀 가셨어요
주사 몇대 맞고 잠드셨어요
[명희] 갈태리 당숙은 왜그모양이시냐?
[명자] 만나셨어요?
[페이지] 007
[명희] 니 형부가 차까지 세우고 내려서 인살하는 데
대꾸도 없이 그냥 휑하니 가버리신다 원 집안
어른이라고
[명자] 그래두 아저씨가 제일 먼저 뛰어 오셨어
[명희] 한고빈 넘기셨나 보구나어머니가
[명자] 지금같애선 아주 좋으셔
[명희] 심장병이란게 다그런거다 쇼크가 왔다가도
금방 아무렇지두 않거든 그래서 별거 아닌가 보다 하고
있으면 또 쇼크가 오고
[명자] 의사 선생님도 그러시대
[명희] 시골의사가 뭘 아냐 차라리 니형부가 백번
낫겠다.(마루에 걸터 앉더니 송희에게) 다큰게 왜그래
할머니 아프신거 봐서 웬만하시면 동해안 데리고
간다는데
[송희] 누가 뭐래요(정원쪽으로 발길질하며 간다)
[명희] 공부할 생각도 안하고 그저 놀궁리 누구
닮아서 저 모양인지
[송희] 아버지 닮아서 그렇죠
[명희] 니 아버진 학교에서 일등만 하셨어
[페이지] 008
너무 머리가 좋아서 고생하신 양반야 니 아버진
[송희] 그럼 엄마 닮았겠죠 뭐
[명희] 뭐라구
[명자] (웃으며) 송희가 변성긴가 보구나 목소리가
굵직하네
[명희] 그래 머리 나쁜 니에미 닮아서 자랑이냐 니
성적표 이모한테 뵈줘
[송희] 마음대로 하세요 (뒷뜰로 가버린다)
[명희] 너 이리 와
[명자] 내버려 둬 언니
[명희] 꼬박꼬박 말대꾸 하는것좀 봐라 느물느물한건
니 형불 닮아 가지고 거기다 요즘 애들은 왜 그모양으로
발랑들 까졌냐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들 이 책가방
뒤져보니가 글쎄 기집애 사진이 나오지 뭐냐
[명자] 숙성들 하니까 그렇지 뭐 잘먹고 잘크니까
사춘기도 빨리오고 송희만 그런거 아니니까 내버려 둬
언니
[명희] 그냥 보통 사진이면 그냥두지 그런데 이건
빨가벗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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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징그러워라 (손 내젓는다)
(대문으로 들어서는 춘식과 송찬)
[송찬] 아빠 시골 오니까 좋다
[명자] 오셨어요 형부
[춘식] 학교 마당에 차 세워놨는 데 괜찮겠어 애들이
만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명희] 방학해서 학교가 조용할 거에요
[춘식] 큰 처남은 뭘하나 식당해서 번돈으로 골목길
좀 넓히잖고
[명희] 당신은 차걱정만 해요 어머니 안분 물어두
안보구
[춘식] 장모님이 쉽게 돌아가실 양반야 두고보라고
앞으로 십년은 거뜬히 사실거야 돌아가신다고 해서
내려왔다 올라갔다 서너번은 속고 나서야 세상
뜨실테니까..아 덥다
[명희] 차에다 에어콘 하나 사서 <<0>> <<달>>자니까
고집 부리더니 덥다는 소리가 나와요
[춘식] (화내듯) 이사람은 차에 대해서 뭘안다고
에어콘 달고 다니면 엔진이 나빠져 무식해서들 에어콘
달고 다니는 거지
[명희] 사람 편하자고 타고 다니는 자동찬데 그건
애껴서
[페이지] 010
뭘해요
[춘식] 자가용 타고 다니는 것도 고마운 줄 알아야지
[명자] 형부 시원한 보리차 갖다 그려요
[춘식] 그래
(명자는 부엌으로 들어가고 뒷뜰로 뛰어 가는 송찬.
춘식 정자 밑에 앉는다)
[춘식] 여기가 제일 시원하구나 몇년만이냐 유강리
내려와 본 게
[명희] 당신 혼자 내려오면 처가집에서 얼굴두 몰라
보겠우
[춘식] 마당 넓어서 좋다 이게 우리집이면 난 서울서
안살겠다 처남들 성격두 원
[명희]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당신이 성균이 대신
내려돠서 사시구려
[춘식] 봉덕에서 병원할때 생각이 나네 그때 일만
잘풀렸으면 이근 처에 터잡고 사는 건데
[명희] 자랑이라고 그 얘길 꺼내우
[춘식] 세상엔 돌팔이의사도 있어야 구색이 맞는거야
[명희] 생사람 안잡은 거나 다행으로 알아요
[페이지] 011
[춘식] 의대만 나오면 뭘해 환자는 나보다 못보는데
[명자] (부엌에서 나오며) 형부 냉장고에 얼음이
떨어졌어요
[춘식] 괜찮아(받아 마시고 어 시원하다(잔주고)
아이구 내 정신보게 장모님 한테 인사부터 드려야지
[명자] 주무세요 형부
[춘식] 이방인가 (말릴 사이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는
춘식)
[춘식] (방에서) 장모님 저 누워 계신분한테는
큰절하는 게 아니라고 해서 절은 생략하겠읍니다 좀
어떠세요 춘식입니다 저 알아보시겠어요 장모님
[명희] 주책. 주책
[명자] 형부가 어머닐 제일 좋 아하셨잖아요
[명희] 장모님 덕분에 장갈 들었으니 안그러겠냐
장인한테 장작개비로 매까지 맞은 사람이
[명자] 참 형부 성격도 좋으세요
[명희] 허긴 니 형분 법없이두 사는 사람이지
[명자] 난 다 생각나 언니 형부가 밤중에 술먹고 언니
[페이지] 012
내놓으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다가 아버지가 뛰어
나가시니까 길바닥에 넙죽 엎드려서 대성통곡 하셨잖아
[명희] 듣기 싫다 내가 거기 속아서 평생 고생만 한
사람이야
[명자] 그래두 몸만 나네 뭐
[명희] 내 성격이얼마나 예민했냐 처녀땐 마른 쭉째이
처럼 날씬했지 그런데 니형부하고 살다보니까 무뎌져
가지고 체중만 는다. 아이구 나두 좀 들어가 봐야겠다
(춘식이 나오며 명희못들어가게 말린다)
[춘식] 장모님 도루 잠드셨으니까 깨우지마 여보
[명희] 웬목소리가 그렇게 크세요 점잖지 못하게
[춘식] 사깃꾼 쳐놓고 목소리 큰 거 봤어 당신
자금자금 나긋나긋한 목소리 가진 녀석치고 옳바르게
사는 놈 못봤다 안그래 처제
[명자] 형부는 시원시원해서 좋으세요
[춘식] 사는 것두 시원찮은데 성격이라도
시원시원해야지 (평상에 앉아 담배 꺼내 피며) 그나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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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아들들은 콧배기도 안비치고 사위만 먼저 왔네
(밖에서 차의 경적소리)
[춘식] (벌떡 일어나며) 진균인가 보군 크락숑소리
들어보니까
(얼른 나가는 춘식 명자도 대문쪽으로 간다)
[춘식] (밖에서) 야 차 좋다 새차 샀구먼
(아이들 뛰어 들어와 명자에게 매달린다. 명희에게
인사하고 정희가 꾸러미 낑낑 들고 들어온다)
[명자] 이리주세요 언니
[정희] 수산 시장 들러서 생선좀 샀어요 비닐
봉지에다 얼음 채워서 가지고 왔으니까 아직 싱싱할
거에요
[명희] 왔어
[정희] 먼저 내려오셨네요(명자에게) 아가씨 얼른
냉장고에 넣으세요 상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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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자] 네 (애들에게) 뒷뜰에 가봐 송희.송찬이
내려왔어
(받아서 부엌으로 가져간다. 애들은 뒷마당으로)
[정희] (명희에게가며) 어머닌 어떠세요
[명희] 좀 좋아지셨나봐
[정희] 웅담좀 구해 왔는데 드실수 있을런지
모르겠네요
[명희] 비싼걸..
[정희] 그까짓거 비싸면 얼마나 바싸겠어요 어머님만
좋아지시면 얼마나 좋겠어요
(밖에서 진균과 춘식 들어온다)
[춘식] 학교 운동장에다 차를 세우지 그래 애들이
만질텐데
[진균] 만지래죠
[페이지] 015
[춘식] 한번은 낚실 갔더니 애들이 차에다 못으로
낙설 해놨잖아 칠을 새로 할수도 없고 애 먹었어
[진균] 누님 내려오셨군요
[명희] 일찍 내려왔구나
[진균] 어머니 좋아지면 다
[춘식] 이 사람아 학교 운동장에다 차 세워 차에다
낙서하면 속상해
[진균] 대형 차 새로 바꿨어요
[춘식] 나야 그냥 그 차지
[명자] (부엌에서 나오며) 작은 오빠
[진균] 냉수 한대접 떠와라 요즘도 유강리 물 맛 좋지
[명자] 한바가지 떠다 줘
[전균] 그래
(명자 뒷마당으로 간다)
[정희] 어머님 먼저 뵈야죠 여보
[전균] 물좀 마시고
[명희] 요즘도 그렇게 바쁘냐 집에 전화 한통 없고...
[전균] 죽겠어요 바이어들이 계속 들어오는 바람에
[춘식] 이사람아 돈 그만 벌고 인생좀 즐기면서 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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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균] 자리 잡을려면 아직 멀었어요 이제야 겨우
한숨 돌렸어요
[춘식] 신문에 보니까 쉐타수출이 잘 된다고 하든데
[전균] 실속이 있어야죠
[춘식] (담배 꺼내며) 담배 피려나
[전균] 끊었읍니다.
[춘식] 무슨 맛으로 살려고...
[명희] 방금 피우고 또 피워요
[전균] 매형 담배 끊으세요 요즘 미국에선 말이죠
담배 안끊으면 은행에서 융자를 안해준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거든요
[춘식] (비로소 기가 되살아 나며)사람이 천년 만년
사나 이사람아 그런식으로 욕심을 부리니까 세상이
복잡해지는거야
[명희] 엉뚱맞게 소린 왜 지르시우
[춘식] 난 돈많은 사람 부럽지 않드라 돈 많으면 뭘해
그거 관리 하느라고 머리나 아프지
[명희] 돈 없어서 편하시겠우
[춘식] 욕심 욕심 이 욕심이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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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만년 살것 처럼
(담배 피워 무는 춘식. 명자가 바가지에 물 떠 가지고
온다)
[명자] 시원할거야 오빠
[전균] 고맙다 (마시고)물맛은 안변했구나 (다시
마신다)
[정희] 여보 어머님 부터 뵈야죠
[전균] 알았어
(전균, 정희 방으로 들어간다. 방에 조명 들어간다.
노모 누웠고 그 앞에 나란히 서는 전균과 정희)
[춘식] 아_공기좋다 난 돈 좀 벌어서 이 근처다 땅
사서 살련다
[전균] 어머니 저 내려왔읍니다 전균입니다.
[정희] 절 받으세요 어머님
[춘식] (담배 피다 말고 소리친다) 누워계신 분한테
절하는거 아냐 이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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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제 2 장
(이른 저녁 송찬. 송희, 요숙.요동이 불꽃놀이를 하고
있다. 장난감용 폭죽이 터진다. 마당에는 모깃불이 타고
있다. 마루에는 명희와 정희, 명자가 앉아 여름 과일을
깎고 있다. 평상에는 전균과 춘식이 앉았고 성균이
헛간쪽에 팔 대고 기대섰다 다시 폭죽이 터진다)
[명희] 좀 조용히들 못해 할머니 편찮으신데
[명자] 내가 데리고 나가서 놀 게 내버려줘 언니
(명자 아이들 한테로 간다)
[명자] 우리 방죽에 가서 불꽃놀이 할까
(아이들 좋아한다. 뒷뜰로 해서 나간다)
[명희] 송찬아 모기에 물리지 마라 시골 모기는
무서우니까
[페이지] 019
[춘식] 거 간섭좀 하지 말고 내버려 둬요
[명희] 송찬인 피부가 안좋아서 물러터져요
[정희] 애들은 막 키워야 건강해요 고모
[명희] 올케나 막 키우든지
[춘식] 사람 면박 주긴요
[명희] 내 성격 나쁜거 이제 아셨우
[춘식] 살찐 사람은 성격이 느긋하다고 하는데
저사람은 예민해가지고 (성균에게) 큰처남 저사람
성격이 왜 저렇게 예민해
[명희] 둔하니까 당신하고 살았죠
[성균] (돌아서며 감회에 젖어) 이 헛간 말입니다.
매형 원래는 여기가 방이었잖습니까 치문 할아버지께서
동경에 다녀오시니까 할머님이 안방 옆에다 방을 하나
들이셨드래요 집이 길쭉해진거죠 그걸 보시고 치문
할아버님이 부엌옆에다 방을 또 하나 꾸미셨대요 그러니
집 꼴이 어떻게 되겠읍니까 영어의 티자 같은 꼴이
된거죠 (웃고는) 사람들이 물어보니까 할머니 버릇을
고쳐 놓으려고 그랬다 하시드래요
[페이지] 021
[춘식] 장인어른한테 그양반 얘길 많이 들었지 참
대단하신 양반이지
[성균] 이 유강리 일대가 왜정 초기에만 해두 모두
갈대밭이었죠 홍수가 나면 강줄기가 바뀌곤 했어요
그런걸 치문 할아버지께서 방죽을 쌓아서 강줄기를
고정시켜놓고 <<0>> << >>답을 만드신거에요
[명희] 도끼차고 노름판을 휩쓴 양반아니냐
[정희]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명희] 옛날엔 목천 다리께 까지 소금배가 들어왔대
치문 할아버지하고 소금장수들 하고 배위에서 투전판이
벌어지면 할아버지께서 판돈을 싹 쓸어버리고 하시니까
나중엔 힘으로 뺏으려고 하더래요 그럼 허리에 찬
도끼를 휘두르면서 배를 뒤집어 엎어 버리고 헤엄을
쳐서 나오셨대나
[춘식] 정말 대단하신 양반이지
[성균] 매형 누님이 어려서 얼마나 고집불통이였는지
아세요. 어머니한테 야단을 맞으면 이 헛간에 쪼구리고
앉아서 하루종일 울었어요 나중엔 질려서아무도 누님을
야단치지 못했죠
[페이지] 020
[춘식] 맞어 그런 사람하고내가 산다고
[성균] 그나 저나 매형의 판단으론 어떠세요
[춘식] 장모님?
[명희] 니 매형이 뭘 아시냐
[성균] 병원 조수일을 오년 넘게 하시지 않었읍니까
[춘식] 시골의사 보다야 내가 낫지
[명희] 그래서 경찰서까지 잡혀가셨우
[춘식] 그러야 의사 면허가 없다고 잡혀간거지 그리고
보면 세상에 안해본 일이 없구나 변산가서 한약방두 한
삼년 했지 보험회사 대리점, 청량이에 탁주공장도
해봤고 한참 장사가 잘 됐는데 어떤 고약한 녀셕이
개천물로 막걸리를 빚어서 파는 바람에 거덜이
났고...안해본 일이 없어
[성균] 그러고보면 매형두 고생 많이 하셨죠
[춘식] 고생이랄거 뭐 있나 사람이 그러면서 한평생
사는거지 무슨 일이든 고생이다 싶으면 더 고생이
되는거고 그러려니 생각하면 다 그렇고 그런 것이고..
[명희] 달관하셨우
[춘식] 달관했으니까 결혼 중매솔 차린거 아닌가
[페이지] 022
[정희] 참 그게 뭐에요 고모 콤퓨터 중매라는 게요
[명희] 콤퓨터 시집 장가 보내주는 거지 뭐긴 뭐
[성균] 매형 그거 재밌겠어요 콤퓨터 중매라는 거
말입니다.
[춘식] 시집 장가야 콤퓨터가 보내주나 사람 인연이
보내주는 거지 길거리에서 옷깃만 스쳐두 인연이라고
하질 않나. 그런데 세상 인심이란게 못돼서
콤퓨터로이상적인 배필을 찾아 준다니가 너도 나도
달려드는거야 덕분에 차도 한대 사서 굴리고 다니지만
[정희] 어떻게 하시는 건데요 고모부
[춘식] 학력, 가문, 건강, 취미, 재산 하여간
있는대로 다 콤퓨터에 집어넣고 원하는 대로 골라잡는
거지 여즘 처럼 사람 안보고 배경만 보고 시집 장가가는
시대엔 안성맞춤이야
[전균] 나쁘다고 할수만도 없잖습니까
[페이지] 023
[춘식] 나쁘지
[전균] (재밌어서) 왜요
[춘식] 영혼이 없는거라
[전균] 그것두 집어 넣으면 되지 않습니까 영혼에
급수를 매겨서 그건 안됩니까? 매형이
[춘식] 그것만 발명하면 재벌 되겠다
[명희] 저렇게두 전균이가 당신 놀리는 거에요
[춘식] (짐짓 놀라며) 작은 처남 날 놀렸나?
[전균] 아닙니다 매형(웃는)
[춘식] 까짓것 놀리든지
(병룡이 까불거리며 들어온다)
[병룡] <<00>> <<병식>>아저씨가 성균씨 좀 오시래요
[성균] 나?
[페이지] 025
[병룡] 춘식씨도 같이 오시래요
[명희] 병룡이너 말조심해나이두 어린게 춘식씨가
뭐냐
[병룡] 촌수로 따지면 조카사윈데 어떻게해
[명희] 이이구 저놈의 입하고
[병룡] 전균씨두 내려왔네 회사일이 바쁠텐데.
[전균] 요즘은 무슨일 하나
[병룡] 카수도 하고 농사도 짓고
[명희] 병룡이 요즘도 술집같은데서 노래 부르고
다니냐
[전균] 노래 하나는 질팡지지. 이따가 한오백년이나
뽑아봐.
[정희] 노래는 언제 배우셨대요
[전균] 꼬마 할아버지가 못하는 게 있나 소리 잘하고
춤도 잘추고
[정희] 아이구 재주도 많으셔.
[명희] 머리깍고 중된다고 절에 들어가더니 언제 내려
왔대
[병룡] 빨리갑시다 병식이 아저씨가 화내시기전에
[성균] (마지못해) 다녀오마
[명희] (문수에게) 당신은 조금만 들어와 위장도
안좋으면서
[병룡] 아이구 앞장이나 서지 말구 (전균에게)
갑시다.
[페이지] 026
[전균] 바이어들 때문에 허구헌날 술이다. 집에와선
좀 쉬자.
[정희] 그양반 술 마시면 안돼요
[병룡] 그나저나 학교 마당에서 있는 반쩍번쩍하는
차가 전균씨차요. 좋습디다.
[성균] 가지
[병룡] 오랫만에 유강리 최씨일가가 한자리에 다
모였군. 신통하게.
(성균 앞서 간다. 따라가는 춘식)
[병룡] 밤눈 어두우면 발밑 조심해요 웅덩이 생겼던데
[성균] 당숙은 요즘도 술 잘 하시냐
[병룡] 면장 그만두고 뭐 할일이 있어야지 술이나
마시는 거지
(병룡 성균 밖으로 나간다)
[명희] 성균이 장사가 잘 안되는 거 아니냐
[정희] 바로옆에큰 왜식집이 생겨서 손님을 다
뺏긴대지 뭐예요
[명희] 둘러 봤어?
[정희] 시내나가면 종종 들리죠
[명희] 올케가 너무 크게 벌리드라니.
[페이지] 027
전균이 니가좀 들여다 보잖고
[전균] 시간이 있어야죠
[명희] 사장님이 밑에사람한테 일시키고
[정희] 월급쟁이 사장이눈치볼게 좀 많아요
[명희] (팔목딱치며) 아이구 이 모기봐라 어느새
피를 한모금 빨아먹었구만. 시골모기가 독하다니까.
[전균] (벌떡 일어나 서성거린다) 참 대단한
양반이시지.
[명희] 누구 얘기냐?
[전균] 서른다섯인가 여섯에 명자낳고 얼마있다가
아버님 세상 뜨셨죠 정치하신다고 논밭 다 팔아
넘기시고...
[명희] 아버지 얘긴 뭣하러꺼내냐
[전균] 생각나우 누이 어머닌 눈물 한방울 안
흘리셨어. 아버님 묻고 집에들어오니까 어머니 혼자
장작을 패고 개셨어. 장작한번 안패주더니 하필이면
엄동설한에 돌아가시느냐고
[정희] 울타리뜯어 때라는 얘긴 뭐예요 고모
[명희] 읍내살때 얘기지. 어머니가 아버지 나가시는데
땔감이없다고 하시니까 미친년아 울타리뜯어서 때면
될거 아냐 하셨대지 아마.
[정희] (웃으며) 대단하셨군요
[전균] 철뚝 너머에 방죽이 하나 있었지.
[페이지] 028
우리논에 물댄다고 만들어논건데 땅이라곤 그거 하나
남았어. 어머니가 리어카를 하나 구해오시더니 흙퍼다
방죽을 메꾼다는 거야 동네 사람들이 모두 웃었지. 그거
언제 메꿔서 농사 짓겠느냐고 겨우내 흙날랐지
봉덕산까지가서 얼어붙은 땅 파헤쳐서 형님이랑 나랑
모두 손발이 얼어터져 가지고...누이 생각나요...
봉덕산 흙퍼다가 방죽 메꾸던 일 말에요
[명희] 그래두 얘 어머니 그 억척 아니셨으면 그때
모두 결단 나고 말았어.
[전균] 아무튼 대단한 양반이셨지(정희에게) 고등학교
졸업하든 해였어 어머니 한테 서울 올라 가겠다고
하니까 그때 돈 천이백원 내주시더군 그거 가지고밤에
기차타고 서울 올라가는데 피눈물이 나드군. 그<<0>>
<< 러>>고도 대학까지 졸업했으니 나두 참.
[정희] 어머님 혼자서 사남매를
키우셨으니오죽하셨겠어요 그 얘긴 좀 그만하세요
[전균] (가만히 웃더니) 그래두 난 유강릴
잊어본적이없어.
[페이지] 029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았지
(밖에서 폭죽터지는 소리 아이들떠드는 소리. 방에서
신음 소리 같은 것이 들린다)
[명희] 어머니 깨셨나보다.
[전균] 당신이 좀 들어가봐
[정희] 자꾸 주무셔야 편한데.
(정희 마루로 올라선다)
[명희] (따라올라가며) 난어머니 옆에서 한숨
자야겠다.
(밖에서 폭죽 소리. 명자의웃음소리)
[명희] (밖에 다 대고) 명자야 얘들 좀 조용히 시켜
(소리치고사랑방으로 들어간다. 정희도 따라
들어간다. 애들 떠드는 소리. 안에서 정희의
소리."어머니 저예요 절 알아보시겠어요?" 전균은 새삼
감회에 차서 뒤뜰쪽으로 어슬렁 거린다. 명자가
들어돈다. 전균은 달쳐다 보는 모양이다.)
[명자] 작은 오빠
[전균] (마치 놀란 사람처럼 후다닥 탱자 나무담에서
손떼며 떨어진다)
[페이지] 030
[명자] 집에내려오니까 어때?
[전균] 좋구나
[명자] 자주 좀 내려와 봐. 머리두 식힐겸
[전균] 집에 다녀갈때마다 그 생각이다만 서울
올라가면 또 잊어버리곤 한다. 앞으론 자주 내려올
생각이다만 어머니 세상뜨시고 나면 또 힘들어
지겠구나.
[명자] 어머닌 오래사실거야 재작년에도 이러셨잖아.
[전균] 효도 한번 못받아보시고 너 볼 면목이없다.
[명자] 엄마가 작은오빠 얘길 제일 많이 해 작은
오빠가 제일 고생 많이 했다고
[전균] 어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시니.
[명자] 평소엔 하루종일 말 한마디 안하고 지내시다
띄금없이불쑥 작은 오빠 얘기 꺼내신다.
[전균] 그나저나 담은 왜 쌓다가 말았니. 대문 옆에만
브로크담이니까 보기 흉하다.
[명자] 큰 오빠가 돈내서 대문 세운거 아니우 엄마가
대문은 무슨 대문이냐고뭐라고하셨는데도
[전균] 허긴 유강리 집은 탱자 나무담이 제격이지
(평상으로 오며) 그래 명자 넌 어떠냐
[명자] (웃기만)
[페이지] 031
[전균] 정서방 한테선 소식없고
[명자] 잘 산대
[전균] 호적에두 올렸고
[명자] 그랬나봐
[전균] 그러지말고 은숙인 니가 데리고키우지그러냐
[명자] (웃는)
[전균] 어머니 돌아가셔두 유강리 집은 어차피 니가
지키고살어야 할거 아니냐
[명자] 지금쯤은 내 얼굴두 잊어 버렸을 거야 키워
주는 사람이 부모지 뭐
[전균] (뭐라고 하려니까)
[명자] (막듯) 착하대 그여자 정서방이 여자복은
있나봐 착한 여자만났대
[전균] 착하긴 착한 여자가 멀쩡한 남의 가정을
[명자] 정서방이 한 일이지 그여자 잘못 이 뭐 있어
[전균] 니가 그 모양이니까(미안해서 한다는 소리가)
재혼하든지, 다잊어버리고
[명자] (부엌으로 가려고 한다)
[전균] 답답해서 그래 니 생각하면
[명자] (돌아본다) 작은 오빠 혹시 복균이 오빠 소식
못들었어.
[전균] 복균이
[명자] 통 못들었어.
[전균] 복균인왜
[명자] 엄마가 복균이오빠 보고 싶다고 하시드라
얼마전 부터 자주 복균이 오빠소식을 물으셔 엄마가
얼마나 이뻐했어. 복균이 오빨.
[전균] 그 자식 얘기 꺼내지 두 마라
[명자] 소식 아주 끊어졌구나.
[전균] 니말마따나 어머니가 그녀석을 얼마나
이뻐해줬니. 집에서 재워주고 밥 멕여주고. 친자식
이상으로 길러줬는데 온다간다 말한마디 없이 사라진
녀석 아니냐 거기다 집에 있는 돈 까지 훔쳐가지고
그것두 보통 돈이냐 농협에 빚갚을 돈인데 그때문에
얼마나 곤란을 겪었니.
[명자] 그거확실한게 아니잖아. 복균이 오빠가
돈가져간거 본 사람두 없고
[전균] 복균이 말고 누가 그돈에손 댔겠니.
[페이지] 033
[명자] 엄마는 그렇게 생각안하셔
[전균] 그렇지 않다면 연락을 끊고 살리가없잖니 하다
못해 편지라도 한장부쳤을거고
[명자] 작은오빠두 집에 한번 내려오기가 그렇게
어렵잖아. 사는 게 쉽지않을 거야 세상에 복균오빠혼자
뿐인걸
[전균] 하여간 복균 이 얘긴꺼내지 마라
[명자] 어쩌면 복균이 오빤 소원대로 외항선의 선장이
됐을 지도 몰라. 그게 꿈이었잖아. 한번 배를 타고
나가면 몇년씩 걸릴때도 있다니까 그래서 연락을 못
하는지도..
[전균] 편지는 보낼수 있잖아 편지는
(전균이 화를 내니까 놀래서보는 명자. 전균도 당황.
당숙과 성균 춘식 병룡이 들어돈다)
[전균] 안녕하셨어요 아저씨.
[당숙] 쉐타 공장하는 전균이 맞지.
[전균] 예 당숙모님두 편안하시죠
[당숙] (성균에게) 명자가 좀 더 봐가면서 연락하자고
하는걸 내가 서둘러 하라고 시켰네.
[페이지] 034
[춘식] 잘하셨읍니다. 이럴때라도자연스럽게 온식구가
모이는 거 아니겠읍니까.
[성균] 죄송합니다. 장남이 돼가지고
[당숙] 그동안 명자가 고생많았네
[명자] 술상 봐와요 큰오빠
[당숙] 많이 했다. 그만둬라. 명자가 그동안 고생이
많아지.
[춘식] 그럼은요 그럼은요
[당숙] 혼인 잘못해서 집에와 있으니까 형수씨 모시는
게 당연지사겠지만 자네들이 너무 무심했네
[춘식] 막내 이모 걱정 말어 내가좋은 자리 골라 볼
태니까
[병룡] 정말 뭐하고 있는 거예요 결혼상담소 소장님이
명자하나 시집못보내주고
[춘식] 그거 뭐 마음만 먹으면
[명자] 상 좀 봐올께요 (얼른 부엌으로 들어간다)
[성균] 술은 그만두고 코피나 한잔식 마시자.
[춘식] 코피좋지
(춘식도 정자쪽에가서 앉는다. 병룡은 덧마루에 가서
주저앉는다)
[페이지] 035
[당숙] (평상에 앉으며) 성균이
[성균] 예
[당숙] 이건 내 생각인데 형수씨가 일흔은 아직
못채웠지만 내년이면 고희고 허니 그때까지만
살아계시면 오죽 좋겠나 만은 인명이 어디 마음대로
되는 것인가 각오 단단히 하고
[춘식] 어허 그것참 정정하시<<0>> <<든>>양반이
[당숙] 차제에 제법 결실을 갖춰서 장례절차를 밟는게
어떤가 당신께서는 종종 꽃상여 말씀을꺼내셨고 그러니
꽃상여도 번듯하게 만들고
[춘식] 길재 영감님이 세상 뜨셨다면서 꽃상여 만들
사람이나 있나 모르겠구요
[당숙] 사람 없을라고
[성균] 그렇게 하죠
[당숙] 일은 내가 알아서 준비할테니까 자네가
전균이하고상의해서
[성균] 알겠읍니다.
[당숙] 그나저나 이 큰집을 지킬 사람이 없으니
[춘식] 큰처남이 내려와서(보더니) 허긴 그것도
어렵고
[당숙] 집지키고 사는 일이 쉽지가 않은게야.
[페이지] 036
(대문으로 간다)
[성균] 가시게요
[당숙] 아침 일찍들리겠네 밤중에라도 일 생기면 사람
보내고
[성균] 예
[춘식] 코피 드시고 가셔야죠
[당숙] 이 큰 집이 빈집이 되게 생겼으니 가네
(헛기침 하고 나가는 당숙 인사를 한다)
[병룡] (괜히 화나서) 집지킬 사람 없을까봐 걱정도
팔자네
[성균] (갑자기 마치 발작하듯) 주제넘게끼어들지좀
말어
(모두 놀래서 성균을 바라본다)
(소리쳐 놓고는 오히려 당황하는 성균 피하듯
담장쪽으로 가는데)
[병룡] 왜 그래 성균씨 성균씨답지않게 웬 열등감야.
[성균] 뭐라고(험악하다)
[병룡] 국회의원 출마한다고 큰소리 뻥뻥 치던
최성균씨가 그립구만
[페이지] 037
[성균] ....
[병룡] 사람이 지금 곧 죽어도 패기가 있어야지.
최씨네 장손이 되가지고 참새도 죽을때는 짹 하고
죽는다대
(병룡 휑하니 나가 버린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다. 모두 어이가 없다)
[춘식] (웃으며) 처제 코피 안됐어 (전균에게)
작은처남 이리와 성균이도 이리와앉고
(장승처럼 서있는 성균 커피잔 들고 나와 보는 명자
꼼짝않고 서있는 성균. 모두 성균 본다.이윽고 고개 푹
숙이는 성균. 아이들이 뛰어들어와여기저기 폭죽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무대어두워지면서 어둠속에 불꽃만이
남는다)
[페이지] 038
[장] 삼장
(이른아침) (평상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는 성균)
(뒷뜰쪽에서 명자가 나온다)
[명자] 벌써 일어나셨어요
[성균] 어머닌 어떠시냐
[명자] 더 나빠지신 거 같진 않아요
[성균] 고생 많구나
[명자] 오랫만에 집안에 사람이 북적거리니까 마음이
놓여요 사람은 모여서 살아야 하나봐요 (웃는다)
[성균] (고개 숙인다)
[명자] 오빠 너무 그러실거 없어요 서울생활이 바쁘다
보면
[성균] 내가 큰 죄를 졌다
[명자] 오빠
[성균] 이럴줄 알았으면 어머닐 모시고 올라가는건데
[명자] 어머닌 서울서 못사세요 며칠전까지 밭에나가
김을 매고 그러셨어요 어머닌 여기가 편하세요
[페이지] 039
[성균] 세상일이 내뜻대로만은 되지가 않아. 나라고
왜 유강리를 잊고 있었겠니 단 하루도 유강릴
잊어본적이 없어. 조금만 일이 풀리면 다 정리해서
내려올 생각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미루다가 보니까
이제는..
[명자] (웃으며) 유강릴 잊지않고 있으면 됐어 오빠
어디서 살든 무슨 상관이야 그리워 하는 마음만
간직하고 살면되는거지
[성균] (물끄러미 보더니) 정서방은 재혼했다면서
[명자] 어머니가 저 때문에도 더 아팠을거에요
[성균] 은숙인 잘 크고
[명자] 그 여자두 만나봤어요 사람은 참해뵈데요
친자식처럼 키워주겠다고 했어요
[성균] 정서방 그 녀석이
[명자] (막듯) 나한테도 잘못이 많았어 오빠
애기엄마가 사춘기 소녀처럼 불가능한 꿈이나 꾸면서
사는데 지겹지 않은 남편이 어딨겠어 밤새도록
소설책이나 들여다보고 아침엔 늦잠이나 자고 (웃으며)
새언니가 그러면 오빤
[페이지] 040
가만있겠어요
[성균] 허긴 정서방처럼 평범한 남자는 너하고
어려웠겠지. 걱정마라 어머니 돌아가시면 뭐 생활비야
전균이 하고 나하고 못내주겠니 혼자살렴
[명자] 커피 한잔 타 드려요?
[성균] 그래
(명자 부엌으로 들어간다)
(성균 기분이 좀 좋아진다)
(대문으로들어서는 병시과 경자)
[고모] 아이구 성균아 어머니 어떠시냐
[성균] 고모님 오셨어요
[고모] 이직 별일없지
[성균] 그럼요 어머님이 쉽게야 세상을 뜨시겠어요
[경자] 무슨 대답이 그래요 여보
[성균] 어제 밤늦게라도 내려오라고 했잖아
[경자] 가게문 닫고 새벽에 시장볼거 윤씨한테
일러두고 그러느라고 늦었어요
[성균] 당신이 맏며느리야 어제 밤에 어머님이
일당하셨으면 어쩔뻔 했어
[페이지] 041
[고모] 내가 밤차타고 같이 내려가자고 했다 그애보고
뭐라고 하지 마라
[성균] 매사에 당신하는 일이
[경자] 그렇게 저하는일이 못마땅 하시면 살림이나
하라고 집안에 들어앉시면 되잖아요.
[성균] 누가 당신더러 장사하랬어
[경자] 어머 이이봐 이젠 숫제 나보고
[성균] 제수씨 얼굴보기 민망해 맏며느리가 되가지고
[경자] 당신 정말 말 다했어요 제가 꾹 참고 살려니까
[고모] 왜들 이러냐 어른 앞에서 부부싸움부터
벌이자는거냐
(부엌에서 나와 난처해서 보고 있는 명자)
[경자] 고모님 이이 말하는거 들으셨죠 저는
살아보겠다고 하루종일 식당에서 종업원들 관리하랴
손님 좀 어떤지 걷어보랴 나오지도 않은 웃음까지
웃어가면서 바둥거리는데 기껏 한다는 소리가...(울먹)
[고모] 성균이 말이 좀 심했다 니 처는 살아보려고
애쓰는데
[페이지] 042
[성균] 전 이사람한테 그런 고생 하라고 강요한적
없읍니다 설마 산입에 거미줄치겠어요
[경자] 거미줄 안칠거 같애요 당신처럼 한숨이나 푹푹
쉬고 앉아 있으면요 깡통차고 길거리 나앉기 딱 알맞죠
[성균] 죽이되든 밥이되든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당신은 집에서 살림이나 해
[경자] 그렇겐 못해요
[성균] 이 에편네가
[경자] 고모님 요즘두요 이사람 후배니 뭐니하는
건달패들이 하루에도 수십명씩 찾아와요 와서는 먹고
마시고 그나마 외상 달아 놓는건 양반이구요 형님 잘
먹었읍니다 이빨 쑤시면서 차비까지 얻어가는
판국이에요 제가앉아서 체면이고 뭐고 다 집어 팽개치고
핥키고 양양거리고 하니까 요즘은 발길이 뜸하지만요
(성균에게) 도대체 당신 나이가 몇인데 의리찾고 그래요
깡패들도 아닌데 무슨놈의 의리에요 의리는.
[성균] 말이면 다야
[페이지] 043
[명자] (뛰어들며) 오빠
[경자] 내가 없는말 꾸며냈어요
[성균] 나는 나 최서균이는
[경자] 왜요 국회의원 출마라도 하시겠다는거에요
[명자] 언니가 좀 참아요
[고모] (엉뚱하게) 성균이 아직도 미련 못버렸냐 니
아버님 닮지마라 오라버님 민 의원 선거에 세번
떨어지는 바람에 유강리만 거덜났는데 아니 내가
오라버니 뒷돈 대주다 니 고모부한테 쫓겨날 뻔 했어
[성균] 아버님이 고모보고 그냥 도와달라고 했읍니까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고모] 이거보게 조자룡이 헌 창 휘두르듯 닥치는대로
사람잡네
[경자] 고모님 모른척 하세요 이사람하고 다퉈봤자
고모님만 피곤하세요(마루로 간다)
[성균] 어딜가 당신
[페이지] 045
[경자] 어머님한테 인산 그려야죠
(마루에 나와섰는 정희)
[정희] 내려오셨어요 형님
[경자] 미안해 동서 번번히 내대신 고생시켜서
[정희] 별말씀을요 형님두. 저야 집에서 살림밖에
더해요 형님은 바쁘시니까
[경자] 알아주니 고맙군 (사랑으로 들어가는 경자,
화가나는 성균)
[경희] 고모님 내려오셨어요
[고모] (성균에게) 내가 공치사 듣자는게 아냐
선거하신다고걸핏하면 니아버님이 값도 안나가는 그림
나부랭이 들고오셔가지고 날 괴롭히고 하셨다
[성균] 그게 지금은 꽤값이 나가는 그림들 아닙니까
[고모] 너 또 그 추사 병풍얘기 꺼내는거냐
가짜래드라 니 고모부가 인사동에 들고 나가서
물어보니까 표구값도 안처준대 세상인심.. 왜
이모양이냐 그저 저 섭섭한것만 내세우고 백번을
잘하다가도 한번 못해주면 그저
[명자] 고모님방에나 들어가 보세요
[고모] 밤차타고 고생하면서 내려 왔더니 니오래비
하는 소리좀 들어봐
[페이지] 046
[명자] 오빠 왜 맘에도 없는말을 해서 고모님
섭섭하게 하세요
[고모] 아이구 그만둬라 누가 공치사 받겠대
[성균] (한숨) 죄송해요 고모 잊어버리세요
[고모] 그건 내가 할소리야 유강리 장손이 돼가지고
그냥 마음속에 꽁하니.. (마루로 올라서는 고모)
[정희] 고모님은 자꾸만 젊어지세요
[고모] 주름이 쪼글쪼글하다 (화나서 성균 한번 더
흘키고 방으로)
[성균] (멍하니 섰다)
[명자] 그런다고 오빠 마음이 시원해져? 왜그래 참지
못하고
(방에서 고모가 우는소리)
[고모] (방에서) 다왔우 언니 어저께 까지 멀쩡하든
양반이 이게 왠일 이유 그래 평생 고생만 하더니
어디손좀 잡아봅시다 아이구 가엾기도 해라 유강리
시집올때는 이손이 곱기두 하더니
[명희] (방에서)고모 어머니 충격 받으세요
[고모] 올여름엔 제주도 구경이나 같이갈려고했더니
[페이지] 047
어쩌나 어쩌나
(성균 정자쪽으로 가더니 담배꺼낸다)
[명자] (딱해서) 장사가 정말 안되는거에요 오빠
[성균] 올가을까지 견뎌보고 그래도 전망이 없으면
집어 치울까한다
[고모] (방에서) 아이구 어쩌나 가엾어서 어쩌나
[성균] (터지듯) 넌 그래 어려서 잘몰라 아버지가
민의원 선거에 세번 떨어지고 나시니까 빚쟁이들이
집으로 몰려와서 빗자루 몽뎅이 까지 집어내가드라
집안이 풍자박산이 났는데 그런 와중에도 전날밤에
우리집에 와서 남아있는 골동품 몇개를 잽싸게 보자기에
싸가지고 나가신 양반이야 저양반이
[명자] 고모 들으시겠어
[성균] 그리곤 아버님 돌아가시는날 까지 우리집하고
발딱 끊고 사셨어 저 양반이 한번은 내가 대학 등록금이
모자라서 고모 청파동살때 찾아가니까 천 원짜리 석장을
봉투에 넣어서 주시드라 돈만원이면 등록금 내고도
남는때였는데 내가 청파동 언덕길을 내려서 얼마나
울었는지아니
[명자] 그런식으로 세상에 원한을 품고 살면 오빠만
[페이지] 048
괴로워져 세상이 오빠마음 같지 않다고원망하면 뭘해
[성균] (한숨)
[명자] 아무도 원망하지마 오빠 원망하지마
[성균] 다 내가 못난 탓이지 거기다 난 운도 없어
하는일마다.. 벌받는거다 내가
[명자] 또 그런소리
[성균] 난 뭐든지 우쭐대면서 살아왔어 아버진 항상
날 데리고 다니셨지 국민학교 다닐때 부터 아버진 날
데리고 읍내에 나가셨다 사람들이 모두 쩔쩔맸지
학교선생님들두 이사장 아들이니까 쩔쩔맸고 그바람에
성격을 버린거야 일이 잘못되면 난 내탓이 아니라고
생각했지 세상이 잘못됐거나 그저 재수가 없는거라고
돌려버렸다. 그래 난 운이 나뻤던게 아냐 내가 그렇게
만든거야
[명자] 오빠 성격엔 장사가 맞질 않아요 잘못이라면
그게 잘못이죠
[성균] 전균인 집에서 돈 한푼 갖다 쓴 적이 없어 난
전균이 몫마저 축을 낸거고..
[페이지] 049
[명자] 작은오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성균] 내나이 마흔셋이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나이가 된거다 이젠
(성균 대문밖으로 나가버린다)
(안타깝게 바라보는 명자)
(방에서 춘식이 급하게 나온다)
[춘식] 내정신보게 천하태평으로 늦잠을 자고
있었으니 (마루의 자석식 전화의 핸들을 돌린다) 아
교환 서울 전화좀 부탁합시다 칠팔이에 공공공팔
공이세개 팔번 여긴 이백 오십오번 부탁합시다 (수화기
내려놓고) 처제 나 냉수 한컵 부탁해
[명자] 아침은 안하시구요
[춘식] 생각없는데 어젯밤에 과음을 했는지
(명자 부엌으로 들어간다)
(벨소리)
[춘식] (전화] 아 여보세요 미쓰김? 나야 나
이춘식인데.. 아 여보세요 통화중 통화중 미쓰김 그래
난데 나 오늘 못올라갈거같애 그러니까 미쓰김이..
여보세요 나 이런 (핸들 돌린다) 이것봐 교환 교환
통화중이라니까 통화중
[페이지] 050
아 서울 서울 나 이것참
[명자] (냉수들고 나오며) 전화가 잘 안돼요
[춘식] 아 이거 자꾸 끊어지니 오늘 중요한
중매건이있는데
[명자] 어디 선이 잘못됐나 봐요 읍내 나가서 거셔야
[춘식] (전화) 아 미쓰김 이봐 교환 급한 용무가
있어요 서울좀 (명자에게) 나오는데 아 미쓰김 나야 나
나 이춘식이라니까 그래 오전에 대학강사 하는 박여사가
오신다고 했어 거 왜 삼선물산 백사장하고 그래 그거 꼭
성사시켜야돼 나 시간나면 애들 데리고 동해안 들러서
올라갈테니깐 그리고.. 아 교환통화중..통화중
[명자] (웃는다)
[춘식] 안되겠군 읍내 나가서 걸고와야지
(전화끊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명자에게 냉수받아
마신다 방에서 고모 나온다)
[고모] 어디가 이서방
[페이지] 051
[춘식] 읍내에 전화좀 하러 갑니다
[고모] 잘됐네 목욕좀 가야겠는데 자네 차가지고 왔지
밤새도록 기찰타고 왔더니 끈적끈적 거리는게
[춘식] 가시죠
[고모] (나오더니 명자보고) 사람이 그러면 못쓴다
성균이 말이다 니 아버님이 추사병풍 하나 갖다
놓으시고 나한테서 얼마나 가져가셨는지 아니 따지고
들거없다 내가 입다물고 사니까 그렇지 말꺼내놓기
시작하면
[명자] 오빠 성격이 불툭해서 그래요 고모한테
미안해서 어쩔줄 모르든데요 뭐
[고모] 사람이 듬직해야지 니 아버님이 다른건 몰라두
경망하진 않으셨어 듬직하셨지 남한테 오핼 받으셔두
아버님 입으로 나 그런적 없오 하고 변명한번 안하셨다
닮으려거든 그런걸 닮아야지
[춘식]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고모님이
저러시는거보니까 처남이 잘못했다
[명자] 다녀오세요 형부
[춘식] 한량아니십니까 고모님 남자로 태어나셨으면
천하의 한량이시죠 (과장해서 웃는다)
[페이지] 054
(두사람 밖으로 나간다. 바라보다 가만히웃는 명자
노래를 흥얼거리듯 담장께로 간다. 만지작 거리며
먼곳을 바라본다 대문을 기웃거리는 복균. 선물
꾸러미를 들었다. 조심스럽게 마당으로 들어선다.
기웃거린다. 감회에 젖어 가만히 한숨 내 젓는다.
명자가 복균을 본다. 복균 마루쪽으로 가다가 명자를
발견한다)
[명자] 복균오빠
[보균] (어설픈)
[명자] 복균 오빠죠
[복균] 명자구나
[명자] 오빠 (달려가서 복균 손 덥썩 잡는다. 그
바람에 선물 꾸러미를 놓칠뻔한 복균)
[명자] 왜 그렇게 통 소식이 없었어요
[복균] 욕 많이 했지
[명자] 십년넘게 소식두 없더니 첫마디가 뭐 그래요
[페이지] 055
[복균] 욕먹을 각오하구 찾아왔지.명잔 옛날
그대로구나
[명자] 애기엄마에요 이젠
[복균] 그 그렇게 됐나?이거 믿어지지 않는데.
[명자] 큰오빠랑 작은오빠랑 모두 내려와 계세요
서울서 살거든요
[복균] 그래
[명자] 어저께 밤에두 오빠 얘기 많이 했어요
[복균] 난 집안이조용하길래
[명자] 어머니가 아프세요
[복균] 어머님이
[명자] (글썽해서) 보고 싶었어요 복균오빠
[복균] 그래서 모두 내려 왔군
[명자] 큰 오빤 잠깐 나가고 작은오빤 자고
있을거에요 작은오빠 작은오빠 (부른다)
[복균] 어머니한테 인사부터 드려야지
(방에서 나와서 바라보는 경자. 복균 멋적게 인사)
[명자] 새언니에요 성균이 오빠
[복균] 아 예 안녕하세요 복균이라고 합니다
[페이지] 056
[경자] 그러시군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성균] (나온다) 누가 왔냐
[명자] 복균 오빠에요
[성균] (복균본다)
[복균] 나야..(웃으며) 복균이다 많이 변했지
[성균] 야 임마 연락좀 하면서 살아라
[복균] 어머님이 편찮으시다면서
[성균] 노환이시지 뭐
[명자] 어머니 사랑방에 계세요
(복균 마루로 올라간다. 사랑방에 불켜지고 들어서는
복균)
[명희] 아이구 이게 누구야 복균이 아냐
[복균] 절 알아보시겠어요 누님
[명희] 옛날 그대로네 그래 어디가서 뭘 해먹고
살았는데 그렇게 소식이 없었냐
[복균] 죄송합니다
[명희] (노모에게) 어머니 복균이왔어요 친 자식처럼
이뻐하든 복균이왔어요
[복균] 절 받으십시요 어머니
[페이지] 057
(절하려고 한다)
[명희] 가만있어봐. 누워서 절 받는거 아니랜다 올케
어머니좀 일으켜 드리자.
(명희와 정희가 노모를 일으켜 앉힌다. 큰절하는
복균, 마당에서 바라보는 명자 기쁘다. 마루에 걸터앉은
전균 부엌옆에 서있는경자)
[전균] 뱃장하난 옛날 그대로구나 썩을놈
(복균이 절하고 가까이 가서 노모의손잡고)
[복균] 어머니 복균입니다. 염치없이 이제야
나타났읍니다
(반응없는 노모)
[복균] 하루 한시도 어머니 생각을 안하고 산날이
없읍니다. 어머닐 잊어본적이 없어요
(노모 손잡고 고개 푹 숙이는 복균 흐느껴 우는
모양이다. 명자 기쁨과 설움이 한꺼번에 복바쳐서
가만히 눈물 닦는다)
[페이지] 058
[장] 제 4장
(이른 밤. 평상에서는 술판이 벌어졌다. 부엌에서
음식 만드느라고 분주한 모양이다. 명자가 안주갖고
온다)
[명자] 복균 오빠 청국장예요
[복균] 야 오래간만에 제대로 담근 청국장을 먹어
보겠군. 이냄새 비로소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야.
[명자] 어머니가 나뻐지시기 전에 담궈 놓은거에요
청국장 담그실때마다 복균오빠 말씀을 하셨어요
[복균] (맛보고) 그래 바로 이맛인데 이게 진짜
청국장이지
[춘식] 야 처제 복균이가 오니까 안주 부지런히
내오는군. 어젯밤엔 김치 깎두기 뿐이더니 (웃는다)
[명자] 많이 드세요복균오빠 (부엌으로 가는 명자)
[춘식] 이사람이 이거 신행왔을 때 제일 앞장서서 날
꺼꾸로 매단 친구야
[페이지] 059
[복균] 누님이 죽는소리 해서 많이 봐준겁니다
[전균] 그때가 좋았지 누이 생각나요
(마루에서 고모,명희 참외랑 깎아먹고 있다)
[전균] 복균이랑 큰매형 꺼꾸로 매달고 돈 내놓으라고
두들겨 패니까 점잖게 지필묵을 찾더니 일금 십만원이다
하고 쓰는 바람에 매만더 맞았잖우 (웃으며)
큰매형다웠죠
[춘식] 아 그 패기 다 어디로 가고
[명희] 그런 소리마라 요즘도 약주만 하시면 지필묵
찾으신다
[춘식] 참 작은처남 언제 우리집에 한번 오라고 내가
자네한테 주려고 글씨 하나 써놨으니까
[전균] 그래요 받으러 가야겠는데요.
[명희] 아이구 하는 소리야 술깨고 나면 더
찢어버리는거
[춘식] 표구해서 사장실에다 걸어놔
[전균] 뭐라구 쓰셨읍니까
[춘식] 동풍후박이라
[전균] 그건 무슨뜻입니까 매형
[페이지] 060
[명희] 동풍은 흔하지도 않고 박하지도 않다 그런
뜻이랜다.
[춘식]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어
[명희] 식당개 삼년에 라면 끓인다고 합디다 니 매형
덕분에 유식에 털이 났지 뭐냐 (모두 웃는다)
[고모] 그런말은 어디서 배웠냐 재밌구나
[명희] 애들이 어디서 줏어듣고 들어와선 하는 바람에
배를 쥐고 웃었지 뭐에요
[고모] 그 뭐냐 식인종 얘기도 아냐 난 그게 더
재밌더라
[명희] 식인종 얘긴 또 뭐예요 고모
(부엌에서 정희가 전 부친거 가지고 마루로 온다)
[정희] 자동 판매기 말씀이군요(접어 놓으며)홍어좀
부쳤어요 고모님
[고모] 전균네는 그 얘기 아는가보구나
[정희] 아이구 고모님두 그게언제적 얘긴데요
(부엌으로 들어간다)
[명희] 뭐예요 고모 자동판매기가요
[페이지] 061
[고모] 식인종들이 그 뭐냐 에레베이터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니까 야 자동판매기다 그랬다나 어쨌다나
[명희] (깔깔웃으며) 오라 단추를 누르니까 문이
열렸단 말이죠 (웃는)
[고모] 아이구 이거 너 웃음 한번 질팡지다
(계속 웃는 명희. 술잔 주고 받는 남자들)
[전균] 누이나 고모나 남자로 태어났어야 해
[춘식] 뒤끝도 없지 자네 누이가
[복균] 성균형 제잔 받으십시오
[페이지] 063
[성균] 살긴 어디 살고
[복균] 요즘은 부산에 자릴 잡았어요
[성균] 부산 살면서 연락 한번 안했어 난 자네가 죽은
줄만 알았지
[복균] 부산에 자리잡은건 일년두 안됐어요 그동안
쭈욱
[성균] 해외라도 나가 있었나?
[복균] 내 꿈이 외항선 타는거 아니었니
[춘식] 뱃 사람인가 자네
[복균] 배도 한 십년 탔읍니다.
[춘식] 참치잡이 배 같은거 말인가?
[복균] 아닙니다 주로 상선이나 화물실은배를 탔어요
덕분에 안가본데가 없죠
[춘식] 야 이 사람 부럽군 난 돈좀 모아서 마누라하고
세계일주나 한번 하고 죽었으면 원이 없겠는데
[명희] 아이구 사람잡는 소리 하지두 마세요
세계일주는 무슨...
[춘식] 세계일주 하자는데 사람 잡는소린
[명희] 공연히 되지도 않을소리해서 사람 마음
심란하게 하지 말란 말에요
[페이지] 063
[고모] 복균이 이리좀 와라 심심한데 배타고 돌아다닌
얘기나 해봐
[복균] 별거 있나요 고생만 했죠
[고모] 그래두 구경은 많이 했을거 아니냐
[복균] 그런 셈이죠 (평상에서 일어난다) 제가 탄
배는 주로 파나마 국적의 상선이었는데 요 선원들
말로는 오나시스가 주인이라고 하더군요 고모님
오나시스 아시죠?
[고모] 알지 마국 대통령 부인하고 산 남자 아니냐
[명희] 에구 복두 많네
[복균] 남미에서 유럽쪽을 항해했는데 부두에
정박하면 모두들 술을 마시러 가거나 여잘 사러 갑니다.
[명희] 하여간 남자들은
(복균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좀 과장이 많다. 명자가
부억에서 나와 듣기 시작한다)
[복균] 허지만 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배에서
안내렸어요 아무도 없<<0>> << >>갑판에 올라가서항구의
야경을 바라보는 겁니다. 밤안개 사이로
[페이지] 065
반짝이고 있는 불빛들을 바라보고 있는게 좋아요 한번은
남미에 갔을땐데요 부에노스 아이레슨가요 하여간
그랬는것 같애요 선원들을 따라 술집엘 갔었죠 거기에
싸움이났는데 한녀석이 총질을 해대는 바람에 죽을번
했읍니다. 선원들은 그런 생활을 즐겨요 바다는 아주
단순하고 지루하죠 여기서 생각하듯 낭만적인게 아녜요
육개월이상 항해를 하고 나면 모두 반쯤 미쳐버립니다.
거기엔...죽고사는게 큰 문제가 안돼요 가끔 충동적으로
바닷속에 뛰어드는 녀석들도 있읍니다. 며칠이 지나도록
동료가 자살한 것도 모르고 항해를 계속해 나가죠
결국은... 결국은 거기선 모든게 무의미 해요 감옥이죠
감옥이나 같습니다.
[명희] 무슨 얘기가 그렇게 심각하냐 재미난 일들도
많았을텐데 그런 얘기나 할것이지
[복균] 뱃 사람들은 과장이 많죠 세계 각지를 항해
하니까 굉장한거 처럼 허풍을 떱니다. 허지만 그 생활은
비참해요 물론 지나가고 보면 다 아름답게 느껴지지만요
[페이지] 066
(부억옆에 서 있는 명자를 발견한 복균)
[복균] 그래 지나가고 나면 아름답지 그렇지 않으면
세상 살기가 얼마나 힘들겠어
[명자] 허지만 그런 생활속엔 모험이 있잖아요
[복균] (웃으며) 그렇게 따지면 우리가 사는 이
모든게 모험이야
[춘식] 그래 자넨 배에서 무슨 일을 했나?
[복균] (장난스럽게) 우리 명자 아가씨가 상상하듯이
외항선의선장도 아니었읍니다. 막일부터 시작했죠 갑판
청소에서부터 기관실의조수, 어떨땐 주방장 노릇도
했구요 오년쯤 지나니까 갑판장 감투를 하나
씌워주더군요 그 생활은 거기서 끝났읍니다.
[성균] 다신 배를 안탈 생각인가?
[복균] 네
[성균] 지금은 뭘하고 있나?
[복균] 친구하고 조그만 건설회살 시작했어요
[춘식] 이 사람 떼돈 버는군
[복균] 아직은 건설회사라기보다 집장사 같은거죠
연립주택 같은걸 지어서 팝니다.
[페이지] 067
먹고 살만은 하죠
[고모] 뭘 한다고 자네가?
[복균] 연립주택도 짓고 상가도 지어서 팔고
그럽니다.
[고모] 그거 잘됐네 유강리 집이나 헐고 새로
지어주지 그래
[전균] 원 고모님두
[고모] 니 어머니가 복균일 얼마나 이뻐했냐 (일어나
마당으로 나오며) 아니할 말로 자네가 슬그머니
유강리를 떠나고 나서 이상한 소문이 떠돌았어
[전균] 그 얘긴 꺼내지도 마세요 고모
[고모] 뭐 어떠냐 지나간 일이네 복균이가 이러고
나타난거 보니까 돈가져갈 사람이 아니구만
[복균] 무슨 말씀이세요 고모님
[고모] 농협에 갚을돈을 누가 훔쳐갔지가
오비이락이라고 자네가 유강릴 떠나고 나서 그런 일이
생겼으니 모두 자넬 의심할수밖에 허지만(방
가르키며)저 양반은 끝내 자넬 감싸줬네 그럴 아이가
아니라고 역정까지 냈지
[복군] 그런일이...있었군요
[페이지] 068
[전군] 그러니까 가면 간다고 말을하고 가야지 우리집
신셀 그렇게 지고서 아무말 없이 종적을 감췄으니 오핼
받을만도 하지
[복군] (웃음며) 난 전혀 몰랐어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은줄을 알았겠나
[명사] (마음이 놓여 웃으며) 오빠 술더 가져와요
[춘식] 좋지!
[명희] 그만 마셔요 장모님 일 당하셨는데 술냄새를
풀풀내면서 다니 시려우
[춘식] 장모님은 돌아가실 양반이 아냐 내가 아까
맥박을 짚어 보니까 앞으로 십년은 더사시겠드라
[명희] 오죽이나 좋겠우
[춘식] 복균이 자네 유강리 양자나 다름없잖은가
장모님 일어나시면 집도 새로 고치고 마당에 잔디도
쫘악 깔고
[고모] 저 탱자나무 다 뽑아버리고 보르크 담도 새로
세워라
(복군 탱자나무 본다)
[고모] 저놈의 거무틱틱한 나무는 죽지도 않고 잘사네
[페이지] 069
[복군] 오월이 지났으니 벌써 탱자꽃이 피었다가
졌군요
[고모] 꽃이라 원...
[복군] (가서 어루만지며) 유강리가 생각나면
제일먼저 떠오르는게 이 탱자나무였어요 이 세상 나무란
나무는 다 말라 죽어도 이 탱자나무 만은 살아난거에요
(다시 보며) 겨우 어머니 찾아뵙고 용서를 빌려고
했는데 저렇게 누워 계시니 정말 면목이 없읍니다.
(문득 쓸쓸히 웃는 복군 그 바람에 분위기가 조금
무거워진다. 아이들이 밖에서 뛰어 들어 온다)
[송찬]이모 이모 불꽃놀이 하자
[명희] 밖에들 나가서 놀아 할머니 편찮으신데
[송찬] 이모 불꽃놀이 하자
[명자] 조용히 하고 (애들 데리고 뒷뜰로 간다)
[명희] 그만들어가서 자 모자 끌리지 말고
[복군] 명잔 어디서 사나
[페이지] 070
[전군] 그동안 어머니하고 집에 쭈욱 있었지
[성군] 다 내가 못나서
[전군] 뭐 형님 잘못입니까
[성군] 내가 강제로 시집을 보낸거 아니냐
[전군] 정서방 애긴 그만하세요 인간이 못되먹은걸
어떡합니까
[춘식] 처제 걱정은 말어 아 내가 결혼상담소
소장인데 까짓거 마음만 먹으면 처제 시집한번 더
못보내겠나 돈많고 착한 홀애비 하나 골라서
[명희] 하필이면 왜 홀애비유 이왕이면...
[춘식] 아 총각두 얼마든지 있지 요즘엔 별 희안한
일두 다 많으니까 과부가 하루 아침에 처녀로 둔갑을
하고
[고모] 말만 하지말고 좋은데 알아보든지 저 양반
세상 떠나면 명자혼자 이집 지키고 살수도없는 일이고
[전군] 지일 지가 알아서 하겠죠
[복군] 안됐군 꿈도 많더니
[전군] 그게 탈야 제기랄 무슨 얼어죽을 놈의 꿈이야
[페이지] 071
[복군] (본다)
[전군] 복군이 너두 그거 고쳐 요즘도 허황된 꿈이나
꾸면서 사는거 아니냐
[복군] (웃으며) 그럴 기운도 없어졌다.
[춘식] 맞어 기운 없은면 꿈도 못꿔요
(뒤뜰에서 불꽃놀이 아이들 탄성)
[명희] 이녀석들이 그냥!
(일어나서 뒷뜰로 간다)
[명희] 조용히들 못해!
(불꽃놀이)
[고모] 참 복균이 노래한번 불러봐라 그 뭐냐 오페라
노래 있잖아 별은 빛나고냐 그 뭐냐 한번 뽑아봐
[전군] 고모님 노는거 좋아하시는건 여전하시군요
[고모] 한번 뽑아봐라라라 - 라라
(고모 하잉으로 흉내 모두 웃는다)
[성군] 한곡조 뽑아봐 복균아 고모님 소원이신데
[고모] 박수!
(박수치고 좋아한다.
[페이지] 072
모두 복균 본다 복균 마당 복판에 선다. 명자가
뒷뜰에서 나오다 본다. 복균 느닷없이"별은 빛나고" 를
부르기 시작한다. 점점 자신의 노래에 취해서 열창하는
복균 노래가 끝나고 환성이 터져 나온다. 복균 마치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듯 멍하니 서 있다)
[페이지] 073
[장] 제 5장
(늦은밤 사랑방에 불이 커졌고 노모 일어나 앉았다
부축하고 있는 명숙 앞에는 명희, 고모, 저희, 경자가
미움을 떠서넣어주고 있다)
[경자] 미음드세요 어머니 (받아먹는다)
[고모] 아이구 이제 살았우 살았어 얼굴색두 제대로
돌아왔고
[경자] 더 드세요 어머니(미음 떠 넣어주고 방에서
웃음소리 나오며 불이 꺼지고 그 모양을 바라보고 있는
명자 가만히 미소하고 기분이 좋다. 건너방에선 술들을
마시는 모양이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저도 모르게
"별이 빛나고" 를 가만히
[페이지] 074
불러보는 명자. 복균이 밖에서 들어오다가 명자를 본다
모르고 점점 크게 노래를 부르는 명자 복균이 따라서
부른다 깜짝 놀래서 보는 명자)
[복균] 명자한테 약속을 했었지 언덕위에다 빨간
벽돌로 이층집을 지어서 명자한테주겠다고
[명자] 잊어버리지 않으셨어요
[복균] 명자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될거라고 믿었는데-
[명자] 애기 들으셨어요?
[복균] (가만히 끄덕인다)
[명자] 난 너무 꿈이 많았어요 마치 유리로 만든
성에서 공주님 처럼 살고 있는내 자신을 꿈꾸면서요
그래요 난 너무 현실적이 못됐어요
[복균] 몇살이지? 딸애가?
[명자] 그런 애긴 그만둬요
[복균] 명잘 닮아서 이쁘겠군
[페이지] 075
[명자] 어떨땐 그 애가 보고 싶어서 미칠거 같애요
허지만 그앨 내가 키우는건 나뻐요 날 닮으면 어떡해요
이룰 수 없는 불가능한 꿈이 꾸면서 살게 할순 없잖아요
[복균] 왜 갈라섰어 후회하면서
[명자] (피하듯 담장쪽으로 간다)
[복군] (기다리듯 섰다)
[명자] 그 사람은 절 믿질 않았어요 내 마음속에
누군가 들어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자꾸만 생각을
해보게 됐어요 그 사람과 나 자신을 나도 모르게 동시에
속이고 있는게 아니냐 하구요 같은 일들이 계속됐어요
그 사람은 점점 난폭해지기 시작했구요 결국은 자신의
상상을 움직일 수 없는 현실로 믿어버렸어요 누구냐고
따지기 시작했죠 나 말고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냐구요
[복균] (웃으면)환상만큼 강한 현실은 없지 현실은
오히려 환상쪽에 가깝고 허지만 사람들은 조처럼 그걸
인정하려고 들질
[페이지] 076
않거든 사람이 죽는 다는것도 마찬가지야 난 여러번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죽음이 주는 육체적인 고통은
두렵지가 않았어 두려운건 죽음의 환상이야 실제로는
보이지도 않고 볼수도 없는 죽음의 모습 그걸
상상한다는건 정말 고통스럽더군 그 사람도 그것 때문에
난폭해진거겠지. 명자가 부정한 여자라고는 믿지
않았을거야 오히려 그걸믿었으니까 명자가 그걸
부인해주길 바랬겠지
[명자] 그래요 그랬는지도 모르죠
[복균] 허지만 명자는 그렇게 해주지를 않았고
[명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쳤어요 그래요 좋아한는
사람이 있어요(사이) 이번엔 아니라고 대답하라고
강요하기 시작했어요. 방금 한말은 사실이 아니라고...
(복균을 본다 미소 같은) 전 갑자기 기뻤어요 내
마음속에 스스로 감춰놓은 비밀을 알아낸거 같은 기쁨을
느꼈어요 (물끄러미 명자를 바라보는 복균
[페이지] 077
(무언가 기다리고 있는 명자 가만히 정자에 않는
복균)
[명자] 오빤 어떠세요?
[복균] (본디)
[명자] 애가 둘,셋?
[복균] 하나
[명자] 겨우요
[복균] 결혼을 늦게 했어
[명자] 딸?
[복균] 아들이야
[명자] (웃으며)오빤 성공할줄 알았어요 그때가
좋았는데 큰오빠랑 작은 오빠랑 셋이 어울리면 얼마나
굉장했어요
[복균] 세상천지가 다 우리 꺼였지
[명자] (갑자기 괴로워서)왜 사람들은 지나가버린
시절들을 그리워 하면서 사는지 모르겠어요 (고개 푹
숙이고 섰다. 마치 울음을 참듯이)
[복균] 명자가 나한테 보낸 편지가 있었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선가 그걸 얼마전까지 가지고 있었지
[페이지] 078
[명자] 어머 그러셨어요
[복균] 뭐라고 썼는지 기억나?
[명자] 뭐라고 썼죠 내가?
[복균] 내가 바다를 그리워 하면 세상은 바다가
된다.내가 강을 그리워 하면 세상은 강이 된다. 내가
산을 그리워 하면 세상은 산이된다.
[명자] (막 웃으며) 내가 그렇게 썼어요
[복균] 세월이 흘러가는것이 미울때가 많았지 내가
할수만 있다면 세월을 밧줄로 꽁꽁 묶어서 그 자리에
잡아두고 싶었어 세상은 그래 세상은 내가 그리워
한다고 해서 산이나 강이나 바다가 되는게 아냐 세상은
내가 그리워 하는데로 되지가 않아
[명자] (얼른)오빨 다시 만나서 기뻐요
[복균] 허지만 마음속에 무언가를 그리워 하면서
산다는건 좋은거야 항상 꿈을 잃지 않고 (명자 마치
들뜬 처녀처럼 두손을 뒷짐지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페이지] 079
[복균] 무척 이집에 와보고 싶었지 내 어린시절의
추억이 몽땅 담겨있는..,
[명자] (노래 계속 부르고)
[복균] 외로울땐 더 생각이 나더군 명자가 여섯살
땐가 전군이 하고 살구나무에 올라갔다가 내 밑으로
떨어졌지 부러진 팔에다 기브스를 하고 또 살구나무에
올라갔다가 어머니한테 종아리 맞던 생각이 나는군.
그건 내가 어려서 받아본 유일한 사랑이있어 그게 힘이
됐는지도 몰라 어려운 일을 겪을때마다 난 그 생각을
하곤 했어
[명자] 오빠 한테서 소식이 없길래 우린 오빠가
배를타고 멀리 돌아다니고 있다고 믿었어요 작은 오빤
복근 오빠가 선장이 되가지고 불쑥나타날거라고 하셨죠
오빤 항상 엉뚱했으니까요 기뻐요 오빠가 잘 됐다니까요
[복균] 나두 명잘 다시 만나서 기뻐
[명자] 오빤 내 유일한 희망이었어요 오빠가.. 만일
오빠마저
[페이지] 080
(뒷뜰에서 아이들이 살금살금 나와서 갑자기 폭죽을
터뜨린다. 깜짝 놀라는 두사람 아이들 좋아라고 대문
밖으로 도망친다)
[복균] 개구장이들이군
(웃는복균 두사람 아이들을 쫓듯이 대문 밖으로
나간다. 사랑방에서 경자가 나온다. 걱정이 많다.
정희가 따라 나온다)
[정희] 뭐 걱정있으세요 형님?
[경자] 가겔 이틀씩이나 비워났으니
[정희] 밑에 사람이 해먹어야 얼마나 해먹겠어요
[경자] 그게 아냐 새벽에 수산시장에 가서 생선을
직접 사와야 되거든 남 시키면 좋은 생선 다 뺏기고
[정희] 힘드시다면서요
[경자] 원체 큰집들이 많이 생기니까 자본 없는
사람은 장사도 못 해먹겠어
[정희] 그집 이름이 뭐드라 형님 가게 옆에 새로
[페이지] 081
생긴 크긴 정말 크데요
[경자] 가봤어?
[정희] 그 집에 게로 모였거든요 생선도 비행기로
직접 날라온다고 하대요 제주도에서 (웃으며)미안해요
형님 가게에서 모일까 했는데 계원들이 구경삼아
가보자고 하는 바람에
[경자] 오늘 밤차로 올라갔으면 좋겠는데-
[정희] 어머님이 저러신데 어떻게 올라가겠어요
[경자] 올라갔다가 어머님이 더 나뻐지시면
[정희] 형님 어머님 돌아가시면 이집 내려와서 사시지
그래요 읍내에다 조그만 의식집 차려놓고요 공장이
여럿생겨서 여기 두 장사가 잘 되나 보든데요
[정자] 애들 학교는 어떻게 하고
[정희] 학교아 어디서 다니던 어때요
[경자] 그럼 동생이나 내려와서 살지 그래 쉐타
공장두 옮기고
[정희] 제 말을 뭐 그렇게 받으세요
[경자] 어떻게 들었는데?
[정희] 아녜요
[페이지] 082
[경자] 왜 말꼬릴 감춰?
[정희] 그만두세요(부엌으로 가더니)형님 뭐 저한테
유감이 있으세요
[경자] 뭐라고
[정희] 저는요 형님을 도와드리려고 마음속으로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줄 아세요
[경자] 뒤로는 내욕하고 다니는것 나 알고있어
[정희] 어머나 기가 막혀서
[경자] 고모님한테랑 그랬다면서 내가 손 크고욕심
사나워서 아주버님이 고생하신다고
[정희] 없는말 지어내지 마세요 전 그런말 한적
없어요
[경자] 그래 내가 손크고 욕심 사나워서 집안 망해
먹었다. (기가 막혀서 어쩔줄 모르는 정희 전균이
방에서 나온다)
[전균] 왜 그래 당신
[정희] (경자에게) 그래요 내가 소문내고 다녔어요
내가 죽일 년에요
[페이지] 083
(울음 터지며 정자쪽으로 달려가 쭈그리고 우는 정희)
[전균] 무슨 일이 있었읍니까 형수님
[경자] 제가 옹졸해서 그래요 (부엌으로 돌아가버리는
경자 전균 정희쪽으로 간다. 방에서 성균이 나오다
본다. 여전히 쭈그리고 울고있는 정희)
[전균] 방까지 돌리겠어 나이가 몇인데 어린애처럼
우는거야 당신
[정희] 성남서 고생할때 형님이 어떻게 사나 한번
들여다 본적이 있었어요
[전균] 그 애긴 왜 꺼내
[정희] 그때 얼마나 고생했어요 요숙이 막
낳았을때예요 제대로 먹질 못해서 젖두 안나오고 우유
살돈도 없어서 애가 주먹만 했어요 그때 누구 한사람
도와줬어요? 서울 갈 차비가 없어서 세식구가 단칸방에
누워서 친정만 쳐다보면서 굶었잖아요
[페이지] 084
[전균] 그만두지 못해
[정희] 피맺힌 고생했어요 남한산성에 올라가서
세식구 약먹고 죽자고 까지 했잖아요 그러면서도 제가
언제 형님 원망하는 소리 한마디 했어요 전 안했어요
고생을 했으면 제가 더 했죠
[전균] 형수님이 당신보고 뭐라고 하셨는데 이러는
거야
[정희] 몰라요 몰라 나는요 시댁에서 쌀 한가마니얻어
먹어본적이 없는 사람에요 (울면서 뒷뜰로 달려가는
정희)
[전균] 어머니 아프신때 울음소리 낼꺼야
(따라가는 전균 우두커니 서서 듣고 있던 성균 힘없이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부엌에서 경자가 나온다)
[경자] 저좀 보세요 여보
[성균] 쓸데없이 왜 제수씨한테
[경자] 저 하고 얘기좀 해요
[페이지] 085
(경자쪽으로 끌고간다)
[경자] 저 오늘 밤차로 올라가야겠어요
[성균] 정신 나갔어
[경자] 아주 가겔 망쳐먹고 싶어요
[성균] 어머니가 지금...
[경자] 당신은 여기 계세요 나혼자 올라갈테니까요
[성균] 당신이 맏며느리야
[경자] 돈많은 동생 있잖아요 자가용 타고 내려오면서
우리한테 전화좀 걸면 안돼요
[성균] 나 이렇게
[경자] 나요 그런 설움 당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요
[성균] 당신 왜 그래? 왜 시동생을 잡아먹지 못해서
이래?
[경자] 잡아먹다니요?
[성균] 형제간에 의 갈라놓지마
[경자] 의 갈라진게 누구 때문인데요
[성균] 이 여폐네가
[경자] 밤차타고 올라갈거에요 새벽한시 몇분차가
있다니까 그거 타고 올라가야 겠어요
[페이지] 086
[성균] 그러다 오늘밤에 어머니 돌아 가시면?
[걍지] 그럼 다시 내려오면 되잖아요 내가 여기
있다고 어머니 병세가 달라지겠어요
[성균] 마지막 가시는 길야 제발
[춘식] (방에서 나오며)큰처남 뭐하는 거야? 술판
깨지겠어
[경자] (성균에게 춘식 들으라고) 어머니 편찮으신데
술은 무슨 술에요 잔치집 오셨어요 (부엌으로 들어가
버린다)
[춘식] 들어와 큰처남
[성균] 네 들어가 계십시오
(안에서 당숙이 나온다
[춘식] 벌써 가시려구요
[당숙] 오늘밤은 무사히 넘길거 같으니 가봐야지
(당숙 마당으로 내려서고 방에서 나오는 고모와 명희
부엌에서 나오는 경자)
[경자] 전이랑 새로 부치고 있는데요
[당숙] 나오지들 말어
[성균] 좀더 계시죠 드릴 말씀두 있고
[당숙] 저 어른 소원이 당신 살았을제 이렇게
[페이지] 087
모여서 사는 거였는데...
[고모] 서울 색시 시골로 시집와서 고생만 했죠 뭐
[당숙] 참 무던한 양반입니다.
[고모] 우리같은 시누이 올케 사이도 없었을 거에요
오빠가 하는짓이 밉다가도 올케 마음씨가 고와서
참은적이 한두번이 아녜요 성균이 오해하지 마라 니가
정 그러면 추산지 뭔지 와서 병풍 가져가거라
[경자] 고모님 그건 잊어버리세요
[고모] 사람이란 백번 잘하다가도 한번 못해주면
고까운 소리 듣는다니까
[당숙] 참 장례는 기독교식으로 가행을 해야겠죠
[고모] 언니가 언제 교회 나갔나요
[당숙] 믿는다고하셨어요
[명희] 어머니 말씀 좀 들어보라죠 아저씨가
어머니한테 예수님 믿으면 천당갑니다 하시니까요
어머니가 천당은 내가 가고싶어 한다고 가나 오라고
해야 가지 그러시더래요
(모두 웃고 헛기참 하는 당숙)
[고모] 그거 명언이다 오라고 해야가지 마음대로
못가는 게 천당 아니냐
[페이지] 088
참 오라버닌 언제부터 교회나가셨어요
[명희] 장로님이시잖아요
[고모] 그래두 어머닌 불교식으로 모셔야 한다
아버지도 그렇게 모셨는데
[당숙] 성균이 하고 상일 해봐야겠지만 성균네도 교횐
나가고 하니
[고모] 난 반대에요
[명희] 고모님두 참
[춘식] 당신은 왜 나서
[명희] 어머니가 교회 나가시겠다고 하셨단 말에요
[춘식] 아 교회식이면 어떻고 볼교식이면 어때 마지막
가는 길이 다 마찬가지지
[고모] 장례는 불교식으로 거행해야지 안그러면 세상
떠난 오라버니가 대성통곡하우 언니가 떼맞춰 제삿상 다
차리고 했는데
[경자] 어머님이 언젠가 한번 내려왔더니 걱정
하시데요 나 없으면 제삿상 차릴 사람두 없겠구나
하시면서요
[춘식] 장모님이 젯밥 못 얻어자실까봐 걱정이태산
같으셨구만
[당숙] 제삿상 걱정한거 없어 작년부터 그만뒀으니까
[페이지] 089
[고모] 아니 왜요
[당숙] 그러 미신이니까
[고모] 조상숭배두 미신인가
[당숙] 하여간 가족회일 열든지 이게 다 집안끼리
오가지 않아서 생기는 일 아닌가
[고모] 하여간 옛날 식대로
[당숙] (막듯이 언설조로) 인공때 빨갱이 세상이 되서
날뛰는데 그놈들도 저양반만은 못건드렸어 형님이
반공청년단 했다고 눈이 시뻘개가지고 찾아 다니는데
막상 이집안은 못뒤졌거든 그놈들이 마당에
들어설라치면 그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호통을 치는게야
이놈들 뉘집 마당에 들어서느냐
[고모] 오빤 그때 다락위에 숨어 계셨고
[당숙] 그놈들이 막판에 밀려가면서 저 양반을
봉덕까지 끌고 갔었지 인민위원장하든 맹식이놈이
저양반을 죽이려고 따발총을 갈겼는데 그때 마침 쌕쌕이
비행기가 날아오는 바람에 급소를 피했지 배에 한방울
맞고도 집까지 기어오신 양반야
[성균] 그때 입은 상처 때문에 어머니 고생 많이
하셨읍니다
[페이지] 090
식사도 조금씩 밖에 못하시구요
[당숙] 자식들이 차례차례 유강릴 떠나고 나니까
퍽이나 적적하셨던 모양야 걸핏하면 방죽에 올라가서
신작로께를 물끄러미 쳐다 보고 계시더니
[고모] 성균이가 집을 지켜야 하는데
[당숙] 자식들이 부모 마음 알아주나
[고모] 좀 자주 내려오면 안되냐?
[성균] 사는게 어디 뜻대로 되야죠
[당숙] 난 그만 가봐야겠네
(어느새 평상에 앉았던 당숙 일어난다. 좀 지루했던
사람들 얼른 인사주고 받는다. 당숙 가려다 문득 사랑방
바라본다 사랑방에 조명 들어가고 노모의 모습)
[당숙] 저양반 돌아가시고 나면 유강리 토박이는
아무도 안남는 셈이군 딴집은 사변나고 나서 옮겨온
사람들이고
(모두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 숙이거나 외면하다)
[당숙] (더 취해서) 형님이 서울 색시 얻어서 데리고
내려온다고 해서 모두 난리가 났었지
[페이지] 091
읍내에서 가말 얻어가지고 형수씨 모셔 오는데 가마에서
내리는 색실보니 양장을 했어 뾰족구두를
신고...(웃더니) 큰어머님이 대노 하셔가지고
호령호령... 그 양반 돌아가시기 전까진 시집살이
호되게 하셨지
(모두 사랑방을 쳐다본다 노모의모습. 문득 춘식이
졸음을 이기다못해 아 하고 하품을 한다 모두 쳐다
보니까 쑥스러워서 웃는 춘식 마당도 어두워지고
사랑방의 불빛만이 오래도록 남아 있다)
[페이지] 092
[장] 6장
(깊은 밤 평상에 쭈그리고 잠이든 전균 마당에
모깃불이 타다말고 꺼져간다 성균이 대문으로 들어선다
전균을 발견한다 착잡하다 부시시 담배 꺼내 피워문다
코를 골다말고 인기척에 푸푸거리며 깨는 전균)
[전균] 어이구 내가 깜박 잠이 들었네
[성균] 밤이슬 맞고 자면 몸에 해롭다
[전균] 몇시네 됐어요
[성균] 새벽 두시 돼갈거다
[전균] 벌써 그렇게 됐어요
[성균] 들어가자 (가는데)
[전균] 형님 형수님 바래다 드리고 오시는 길입니까
[성균] 가갤 오래 비워 둘 수가 없어서 어머니두 좀
나아지신거 같고
[전균] 저두담배 한대 주세요
[페이지] 093
(성균 담배 준다 피워 무는 전균)
[전균] 형님 오시면 얘기나 할까하고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어요 으시시한대요 웬안개죠 (뒷뜰쪽 대숲에서
피어오르는 밤안개를 바라본다)
[전균] 형님 아무래도 어머니가 돌아가실 모양예요
[성균] 의살말로는 좋아지시고 있다는데
[전균] 형님 기다리다가 뒷뜰에 나가봤더니 대숲에
뱀이 기어 다니고 있겠죠
[성균] 뱀?
[전균] 아버님 돌아가시던 날 밤에도 그랬어요
어머니가 뒷뜰에 쭈구리고 앉아 계시더니 아버님
세상떠나시려나 보다 하시지 뭐에요 보니까 대나무마다
뱀들이 칡넝쿨처럼...
[성균] 불길한 소리 마라
[전균] 미신이긴 하지만
[성균] 안개가 많이 끼는 습한 날씨엔 뱀들이
기어나오는 법야
[전균] 어머니가 오래 사셔야 하는데
(담배 깊숙히 마시는 전균 성균은 덤덤하다)
[페이지] 094
[전균] 형님 제가 그동안 너무했읍니다
[성균] 너야 잘못한게 뭐 있냐
[전균] 오해두 좀 있었구요
[성균] 내가못나서 그래
[전균] 형님 원망한 적은 없읍니다
[성균] 어머니 가슴에다 내가 못을 쳐드렸어 양복점
하다 걷어치우고 집엘 내려왔다 도와달라고떼를
쓰다시피 했지 산하고 논 있는거 팔아서 내주시더라
[전균] 잊어 버리세요
[성균] 한마디만 하시드라 삼대를 이어 살아온 집인데
토지개혁때 반 날라가고 아버지가 나머지 날리시고.. 난
못들은척 했다 그리곤 서울로 올라가 버렸다 생각해
봐라 그돈은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가 피땀
흘려 모으신거야 장남인 내가 어머닐 도와드리진
못할망정
[전균] 잊어 버리세요 형님 저두 이번에 내려와서
느낀게 많습니다
[성균] 마흔셋이다 이젠 빼두 박두 못할 나이가
[페이지] 095
된거야
[전균] 형님 글쎄 잊어버리세요
[성균] 나라고 왜 생각이 없었겠니 최씨집안의
장손으로서...
(말문이 막히는 성균. 헛간쪽으로 가더니 벽에 기대
얼굴을 묻는다)
[전균] 형님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드래도 이집은
지켜야겠어요 제가 돈을 좀 낼테니까요 집도
수리하고... 애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흙냄새 맡으니까 펄펄 날아다니지 뭡니까 허긴 저두
서울서 고생 하면서도 유강리 흙냄새를 잊어 본 적이
없었어요 유강리 우리집 얼마나 좋습니까 형님 제가
돈을 낼께요 마당에 잔디도 깔고 담도 새로 쌓겠어요
브로크담이 반만 서 있으니까 보기 흉하잖습니까 (점점
감격해서) 형님 저한테 맡기세요 뒷뜰에 정자도 새로
짓구요 그럼 여름방학때 애들이라도 보내서 같이 어울려
지내게하면서로 우애도 생기고 어린시절의 추억도
생길거 아닙니까 우리 어린시절은 좋았죠
[페이지] 096
정말 좋았죠 (아주 감격해서 성균도 뒤에서 얼싸
안는다) 형님 서로 오가면서 지내죠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면 우리 뿐이잖습니까 우리형제 뿐에요
[성균] (돌아선다)
[전균] 형님 힘을 내세요 서로 도우면서 삽시다
[성균] 그래 나도 느낀게 많다
(마주 보는 형제 다시 감격해서 포옹 밤안개 자꾸
피어 오르고)
[전균] 들어가시죠 자꾸 으시시 해지는데요 술이
깨나봐요
[성균] 그러자 어머니가 편히 잠드셨는지모르겠다
(두사람 서로 부축하듯 휘청 거리며 마루로 올라간다
사랑방 보더니 성균 꾸벅 절한다)
[성균] 편히 주무세요 어머니
(건너방으로 들어간다 대문쪽에서 보고 섰는 명자와
복균)
[명자] 화해하셨나 봐요 오빠들이요
[페이지] 097
[복균] 무슨 일이 있었나
[명자] 좋지 않은 일이 좀 있었어요 어머니 덕분에 다
좋아진 셈이죠
[복균] 그래 어머니한텐 그런 힘이 있으셔
[명자] 복균 오빠두 그걸믿으세요 우리 어머니한테
그런 힘이 있으시다는걸요
[복균] 믿고 말고
[명자] 그사람하고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오니까
어머닌 아무 말씀도 없으셨어요 내 꼴만봐도 사정을
짐작하셨겠죠 보름쯤 지나서 정서방이 찾아왔어요 그
사람이 하는 푸념만 듣고 계시더군요 나중엔 악담까지
퍼붓고 집안 기물까지 때려 부수고 하는데도 어머닌
꼼짝 않고 앉아만 계셨어요 그 사람이 가고 나니까
한마디 하셨어요 예미처럼 참고 살거 없다
[복균] 어머니 다우시군
[명자] 허지만 마음이 아프셨나 봐요 저한테 내색은
안하셔두 밤새도록 잠든 내얼굴을 몇번이고 들여다
보시고 들여다 보시곤 하셨어요 그래두 어머니한테 힘이
있으세요
[페이지] 098
세상을 살아가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으세요 마음이
(마음이 달뜨는 명자 그런 명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복균)
[페이지] 099
[명자] 너무 늦었나봐요 뒷깨에 따로 방 치워났어요
주무세요
[복균] 읍내에 방을 얻어놨어
[명자] 왜요 모처럼 오셨는데 집에서 주무셔야죠
[복균] 새벽차로 내려가려고
[명자] 그냥 가시려구요
[복균] 벌어놓은 공사판이 있는데 너무 오래
비워둘수가 없어 내려갔다가 다시 와서
[명자] 어머니 일어나시면 한번 더 만나뵙고 가셔야죠
[복균] (웃으며)어머니가 아직 살아계시면 집을 헐고
새집 지어드리려고 했어
[명자]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면에서 여러번 사람이
나와서 집을 새로 짓든지 고치라고 했지만 어머닌
대꾸도 안하셨어요 대청기둥을 어루만지시면서 유강리
손때가 윤기가 나도록 묻어있는 집을 왜 허무느냐구요
[복균] 내가 또 실수를 할뻔 했군 어머닐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 그것
뿐이었거든 (웃더니) 참 어머니가 그걸 정말 믿지
않으셨나
[페이지] 100
[명자] 뭘요
[복균] 내가 유강리 떠나고 나서돈이 없어진거
[명자] 어머닌 안 믿으세요 한번도 복균 오빨
의심하신적 없으세요
[복균] ...그러셨군
[명자] (웃으며)왜 그 얘길 꺼내세요 복균 오빠하곤
상관도 없는 일이잖아요
[복균] 날 믿어준건 어머니 뿐이시군
[명자] 저두 믿지 않았어요
(명자를 가만히 바라보는 복균 그 시선을 견디지 못해
담장 쪽으로 가는 명자)
[복균] 사람이 막바지에 밀리면 마음이 편해지는 거야
[명자] (본다)
[복균] 명잔 내 말뜻을 잘 알거야 명자도 그런 경험이
있을테니까 벼랑끝까지 밀려가면서도 꿈을 주려고
애쓰거든 도저히 도망칠 구멍이 없다는걸 발견하고
나서도 그걸 인정하질 않지 그러다 갑자기 내가 살아
있다는걸 느끼지 내가 살아 있다는걸 느끼는 순간
세상은
[페이지] 101
아주 비참하게 느껴지고 그 다음엔 내가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되버리는거야 죽는다는 건
대단치가 않아 희망을 버리고 나면 그런 미련들도
사라져 버려
[명자]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 거에요
[복균] 차거운 길바닥에 웅크리고 죽어있는 내모습을
어느날인가는 보고 마는거야 가마니를 덮어 띄워놓은
그런 꼬락서니를
[명자] 그만하세요 오빠
[복균] 허지만 난 마지막 희망에 매달리기 시작했어
젊은날에 내가 사랑했던 어떤 사람과 했던 약속...그
약속을 생각해 내고 난 아직 내가살아 남을만한
인간이라고 믿기 시작했지
(문득 두려움 때문에 물러서는 명자)
[복균] 명자한테 거짓말을 한다는건.... 그랬다간
두고두고
[명자]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복균] 부산에 자릴 잡았다는건 사실이 아냐
[명자] 오빠
[복균] 난 세상을 떠돌아다니면서 살았어 안해본 일이
없지 배두 타봤지 명자가 상상하는
[페이지] 102
외항선의 선장이 아니라 오징어 잡이 배를 타고 막일을
했어 난 부에탄 아이게스가 이 세상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몰라 그런 도시의 이름들은 내 인생과는
상관이 없었어
[명자] 그만두세요 제발 (도망치듯 피하는 명자)
[복균] 안해본 일이 없었지 하는 일마다 실패를 했고
난 명자에게 성공한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 유강리
근처에다 땅을 사서 명자하고 약속한대로 빨간 벽돌로
이층집을 짓고
[명자] (거의 울듯이) 제발 그만하세요 복균오빠
제발이요
[복균] (격양되서)십년이야 난 사람을 죽일뻔 했고
십년동안 교도소에서
(울음 터지듯 탱자나무 담장으로 뛰어가는 명자.
우두커니 서있는 복균 이윽고 진정하는 명자)
[명자] 신문을 봤어요 조그맣게 오빠 이름이.. 난
두려웠어요 다른 사람들이 봤을까봐요
[페이지] 103
(대들듯이) 오빠 입으로 그런 말할 필요 없잖아요
옛날의 복균 오빠처럼... 그냥 큰소리나 치고요
우스꽝스런 말로 사람들이나 웃기고요.... 그랗게
돌아갈수도 있었잖아요 왜 오빠 입으로 그런 말을
꺼내는 거에요
[복균] 명잔 이제 소녀가 아니야 얘기 엄마야
[명자] 뭐라구요
[복균] 명자가 바다를 그리워 한다고 세상이 바다가
되나 명자가 산을 그리워 한다고 강을 그리워 한다고
세상이 산이돠고 강이 되느냐고 아무리 그리워 해도
아무것도 되지않는 세상을 꿈 처럼 살수는 없는거야
[명자] (낮게) 가세요
[복균] 은숙이 데려다 키워 그 사람은 그앨 키울
능력이없잖아 더 이상 거짓말 속에서 살지말고
[명자] (외친다) 가세요 빨리 가세요 가요 가
(담장에 얼굴 쳐박듯 하는명자 복균 천천히
나가버린다 명자 고개든다. 사랑방 본다)
[명자] 어머니... 내가 바다 그리워 하면 세상은
바다가
[페이지] 104
되는거죠 내가 산 그리워 하면 세상은 산이 되구요 강
그리워 하면 세상은 강이되구요 그렇죠 어머니
[장] 7장
(아침, 전화 걸고 있는 춘식)
[춘식] 교환 교환 통화중 야 미스김 그거 어떻게 됐어
강여사하고 박사장 뭐라고 아 그거 잘 되게끔 콤퓨터에
자료를 입력시켜 놨는데 뭐라고 잘 안들려 여보세요
통화중 통화중 (핸들 돌리고) 아 교환 통화중이라는데
왜 자꾸 끊어 어즈쪽에서 끊었지 이봐 교환 교환
(화나서 핸들 돌린다)
[명희] (사방에서 나오며) 아이구 좀 조용히 하세요
[춘식] 이놈의 전화가 자꾸 끊어지잖아
[명희] 어머니 일어나 앉으셨어요
[춘식] 아 교환 교환 서울 좀 대달라니까 아니 이
아가씨가 어디다 대고 신경질야
[명희] 끊으세요 그만 (수화기 뺏어 끊어버린다)
[페이지] 105
[춘식] 아무래도 안되겠군 읍내에 나가서 전활 걸고
와야지 (대문쪽으로 간다)
[명희] 어딜 가세요 여보
[춘식] 전화 걸러 간다니까 강여사하고 박사장 중매가
깨지면 올 여름엔 사무실 유지비두 뽑기 힘들어
(나가며) 읍내아 나간김에 세차두 하고 올게
[명희] (따라가며) 나좀 보세요 무작정 나가지
마시구요
(급히 따라 나가는 명희 사랑방에 조명 들어간다 노모
부축해서 죽 먹이는 정희
[정희] 천천히 드세요 어머니
[고모] 살았오 이젠 그냥 쉽게 쓰러질 사람이 아니지
[정희] 더 드세요 어머니
[고모] 어서 일어나셔야죠 언니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호령좀 해보시구려
[정희] 어머님이 그냥화색이 도세요
[고모] 그래 염라대왕 만났더니 뭐라고 그래요
(웃고는)죽었다 살아났으니 백살도살겠우
(웃음소리 들리며 어두워진다 당숙과 성균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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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숙] 이번 일을 거울 삼아서 두고두고 후회가 되지
않도록 하게 말씀은 안하셔두 마음속으로야 얼마나
섭섭하셨겠나 자식이 장성하면 부모 품을 떠나기
마련이지만 그동안 너무나 소원했어
[성균] 그러지 않아도 집사람하고 상의를 해서 서울
살림을 정리할까 합니다
[당숙] 그렇게 까지 할건 없고 어디사는거야 무슨
상관 있나 나도 자식을 일곱이나 키웠네만은 그중
가깝게 사는 게 대전서 중학교 선생하는 만균이 뿐이야
점점 세상사는 게 복잡다양해지까 저 살길 찾아서 멀리
떨어지기도 하는 거지 허지만 길도 좋아졌겠다
반나절이면 내려오고 또 반나절이면 올라 가질 않나
얼굴좀 자주 디밀고 아주머님 적적하지 않게 해드려.
[성균] 명심하겠읍니다 아저씨
[당숙] 오늘은 좀 선선하구만
(안에서 고모 나온다)
[고모] 전균이 못봤냐
[성균] 읍내에 친구를만나러 차 몰고 나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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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 더워지기 전에 떠나자고 하더니
[성균] 오늘 서울로 올라가시게요 고모님
[고모] 니 고모부 혼자 계시니 올라가봐야지 (안에다)
요숙이 에미 좀 나와봐라
(정희 나온다)
[고모] 풋고추하고 호박잎 챙겨놨니
[정희] 뒷뜰에 시원하데다 놔뒀는데요
[고모] 챙겨라 전균이 들어오면 곧바로 올라가게
[정희] 네 (뒷뜰로 가는 정희)
[당숙] 며칠 말동무나 해주고 올라가든지
[고모] 심장병 환자는 가만히 누워있는 게 좋아요
흥분하면 제일 나쁘니까 그리고 성균이 서울 올라오거든
우리집에 한번 들려라
[성균] 고모님 병풍 얘긴 잊어버리세요 제가
잘못했읍니다
[고모] 밝힐건 밝혀야지 내가 왜 죄진 기분으로 사냐
(뒷뜰로 가며) 얘 나중에 갈르기 좋게 호박잎이랑 고추
따로따로 챙겨
(고모 뒷뜰로 사라지고 성균평상에 힘없이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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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숙] 성균이 실망할거 없다 니 고모 욕심이야
알아주는 욕심 아니냐 그만큼 억척을 떨었으니 그집
자식들이 편하게 사는 것이고 니고모 세상 사는 주장이
그런데 어떻게 하겠냐
[겅균] 제가 잘봇생각했어요 유강리 떠나는 게
아니었는데...
[당숙] 내가 어제 다 모였을때는 이 얘길 안했지만
종친회에서 운영하든 학교를 도에 넘길 깨다
사립국민학교는 지원을 못해주겠다고 해서 선생들
월급도 제대로 못줬지 집안에서 거두는 돈으로
꾸려나가는것도 한두해고 해서 학굘 넘기기로 했는데
도에서는 재단에 속해있는 재산은 가져가도 좋다고
하드라 각 매리에 산도있고 꽤 됐지 그런데 아주머님이
극구 반대를 하시는 게야 치문 할아버지께서 학교를
세우신 뜻도있고 형님이 민의원선거하면서 이것저것 다
팔아서 선거자금 댔어도 학교 재산엔 손끝하나 대지
않으셨다는 게야 그런데 학교는 재정이 어려우니까
넘기고 재산도 아까우니까 종친회에서 가지자는건
장삿꾼 뱃보밖에 안된다는 거지 (사랑방 보며)훌륭하신
어른이시다 저 어른 뵐때마다 나같은 사람은 지금까지
살아온 게 부끄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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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 아저씨 이번에 성울 올라가면 무슨일이 있어두
가겔 정리하고 유강리로 내려 오겠읍니다
[장수] (웃으며) 어린아이처럼 감격하기는
[성균] 약속을 하겠읍니다 아저씨
[당숙] 자네 생각이 정 그렇다면그렇게 하면
되는것이고 하여간 이번에 서울 올라가면 전균이하고
상의해서 선산이나 가꿔놓게 그래야 아주머니 마음이
놓이시지
(명희와 춘식이 들어온다)
[명희] 그렇게 불러도 뒤도 안돌아 보고 차몰고
가더니 왜 도루 오셨우
[춘식] 어차피 장모님한테 인사드리고 떠나야 하는데
가다가 읍내에 들러서 전활걸어야겠어
[명희] 그러자고 불렀어요 성미는
[춘식] (당숙에게) 오셨어요
[당숙] 올라갈 사람들은 올라가게 서둘러서
[춘식] 휴가고 뭐고 다 망쳤어요 서울로 곧장
올라가야 겠어요
[당숙] (성균에게] 나 가마 일 생기면 명자가또 연락
하겠지 (당숙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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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희] 저 양반은 무슨일만 하면 꼭 집안어른 행세
하드라
[춘식] 짐 가지고 나와 우선 차에 실어놓게
[명희] 어머니한테 인사부터 하구요
(명희 방으로 들어간다. 뒷뜰에서 고모와 정희 꾸러미
들고 나온다)
[정희] 시골 고추라 아주 맵게 생겼어요
[고모] 재래종 아니냐
[춘식] 고모님두 지금 올라가실겁니까
[고모] 전균이 차타고 올라가야지
[춘식] (성균에게) 작은처남두 지금 올라갈건가
[정희] (얼른) 네 저희두 올라가야죠
[춘식] 자넨
[성균] 전 봐서 오후에
[춘식] 내차 타고 올라가지 그래
[성균] 기차가 편합니다
[명희] (방에서) 여보 좀 들어와보세요
[춘식] 아이구 장모님한테 인사 드려야지 (춘식
방으로 들어간다)
[고모] 전균이 들어오거든 차에다 실아놔라 (방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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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 (눈치보더니) 큰아버지 죄송해요 어저께밤엔
제가형님한테 큰실수를 했어요
[성균] 별 말씀을요
[정희] 저도 모르게 성남서 고생 하든일이 생각나서
(밖으로 요숙 요종 뛰어들어온다 송찬과 송희도따라
들어온다)
[요숙] 엄마 엄마 아빠 오셨어 빨리가자
[정희] 할머니한테 인사드려야지
[요숙] 빨리가자 빨리
[송희] 엄마 우린 안가요
[춘식] (가방들고 나오며) 이거 차에다 실어라
[송찬] 해수욕장 가는거에요
[춘식] 차에다 싣기나 해
(송찬 송희가방들고 신나서 나간다 요숙과 요종도
푸성귀싼 보따리 들고 따라 나간다)
[춘식] (성균에게) 장모님 아주 좋아지셨는데
(웃으며) 그러길래 내가뭐래 서너번은 속아서 내려 왔다
올라갔다 해야 된다고 했지
[명희] (나오며 가방 내민다) 이것두 실으세요
신선할때 빨리 올라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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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들고 나간다. 명자와 병룡 들어온다)
[병룡] (사이다병 여럿들고) 춘식씨 사이다라도
마시고 올라가요
[명희] 저녀석 또 버릇없이 춘식씨 찾는다
[병룡] 촌수로따지면 조카사윈데 선생님 할까 어디가
이쁘다고
[명희] 저놈의 주둥아리
(방에서 고모 나온다)
[고모] 짐 다 차에다 실었냐
[정희] 네 고모님 나가세요
[고모] 전균이 왔지
[정희] 네 고모 저희 가방 에디다 두셨죠
[명자] 찾아 드릴께요
[송찬] (뛰어 들어오며) 엄마 빨리 오시래요
[명희] 알았어
[정희] 고모 저희 가방 못찾으셨어요
(밖에서 크락숀 소리)
[병룡] 잘들만나 잘들해
[고모] 나먼저 나간다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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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 고모 저희가방
[명자] (나오며) 여깅어요
[정희] 고마워요 고모 (얼른 돈꺼내) 참 고모 이거
용돈 쓰세요
[명자] 괜찮아요 언니
[정희] 많이는 못드려요 쓰세요
[병룡] 명자씨 부자됐네
(밖에서 크락숀 소리)
[송찬] 엄마 엄마
[명희] 나간다니까 명자야 용돈두 못주고 간다 어머니
잘좀 봐드려.
(명희 정희 나간다. 전균과마주친다)
[정희] 왜들어오세요
[전균] 어머니한테 인사드리고 떠나야 차타고 있어
(정희는 나가고 전균은 방으로 들어간다 우두커니
서있는 성균 나가보는 명자)
[병룡] 갈 사람들은 빨리 가야지 (사이다 따서
마신다) 성균씨 사이다나 마셔
(성균 대꾸없다. 병룡 유행가 가락 흥얼 거리며
사이다 마신다)
[전균] (방에서 나오며) 자주 내려 올께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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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조리 잘 하세요 (마당으로 내려선다)
[전균] 명자야 무슨일 생기면 얼른 연락해 너만 믿고
올라간다
[명자] 걱정마 오빠 당분간 별일 없을거야
[전균] 어머니 거동이 편해지시면 서울로 모시고
올라와 큰병 원가서 종합진찰 받어보게
[명자] 알았어요
[전균] 형님 나중에 올라가시겠어요
[성균] 먼저 올라가
[전균] 형님 (다가간다) 어젯반에 한 얘기 안
잊어버리셨죠 일시적인 감정으로 꺼낸 얘기가 아녜요
이집을 누가 지키든 돈좀 들여서 번듯하게 꾸며놓죠
[성균] 그러자
(밖에서 크락숀 소리)
[성균] 어서 가봐
[전균] 좋은 경험 했어요 마음이 한결 가쁜한대요
(명자에게) 부탁한다
(크락숀. 서둘러 나가는 전균 움직이지 않는 세사람,
이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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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떠나는 소리. 점점 멀어진다)
[명자] 오빠 아침 잡수셔야죠
[성균] 지금 생각없다 참 복균이가 안보이는구나
[명자] 새벽차로떠났어요
[성균] 말두 안하고
[명자] 대전에 볼일이 있대요 저녁때 다시 들리겠다고
했어요
[성균] 싱겁긴
[병룡] 저도 염치가 없었겠지
[명자] (본다)
[병룡] 유강리 돈 훔쳐가지고 도망간 주제에 양심이
편했겠어 아무도 없는줄 알고 기웃거리다가 집안식구 다
모여 있으니까 내뺀거지
[성균] (화내며) 니가 뭘 안다고 나서
[병룡] 그때돈 십오만원이면 논 열 필지는 샀겠다
[성균] 알지도 못하면서 나서지 말란말야
[병룡] 왜 나한테 성을내고 그러셔 성균씨 아무리
나이어린 아저씨지만 아저씨구만 이집엔 촌수도 없냐
(병룡, 까불까불 나가버린다)
[성균] 저 녀석이..
[페이지] 116
[명자] 그러지마 오빠 병룡이 아저씨 가엾은 사람야
[성균] 지가 뭘 안다고 복균이 욕을 하고 나서
[명자] 동네선 소문이 그렇게 났으니 할수없지 뭐
[성균] (본다 순간적으로 말이 튀어 나가려고 하다가
힘이 빠지면 평상에 털썩 주저 앉는다)
[명자] (물끄러미 바라보고)
[성균] 그돈은 복균이가 훔친게 아냐
[명자] 뭐라구요..뭐라고 했어요 오빠
[성균] 한참 우쭐대고 다닐때였지 후배들 밥먹여 주고
술값내주고 마치 영웅이나 된듯이 우쭐대고 다닐때였어
[명자] (막듯이) 오빠
[성균] 그돈은 어머니 몰래 내가 갖다 쓴거야
그래놓곤 난 겁이나서 며칠동안 집에도 못 들어왔지
그런데 복균이가 돈을 훔쳐갖고 도망쳤다는 소리가
들리더라 난 살았다 싶어서
[명자] 그만둬 오빠
[성균] 어머니한테 지금이라도 말씀 드려야지 (마루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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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자] 그런다고 뭐가 달라져
[성균] (멈춘다)
[명자] 지나가버린 일들은 아무 소용이 없는거야 그건
살아있는게 아냐 죽은거야
(성균 사랑방으로 들어간다 벽에 기대 앉아 있는 노모
그앞에 무릎꿇는 성균)
[성균] 어머니
(고개 푹 숙이는 성균. 우는 모양이다 바라보고 있는
명자)
[명자] (놀라며) 누구세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는데 귀를 기우린다 뒷뜰쪽 본다)
[명자] 거기 누가 있어요 누구세요 (뒷뜰 쪽으로
다가간다)
[명자] 복균 오빠?
(뒷뜰로 달려 간다. 여전히 무릎꿇고 앉아있는 성균
움직이지 않는 노모. 명자가 힘없이 다시 나온다.
그리곤 고개 푹숙이고 꾸역꾸역 소리없이 울기
시작한다.(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