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사랑할 수 없다 날개 다녀오겠습니다
달려라 아내 마로니에 길 마지막 수업
무지개가 끝나는 곳 무지개 쓰러지다 물새야 물새야
탱자 꽃 환상살인  
환상 살인

[막] 一幕(1막)

한 밤의 충성과 함께 조명이 들어 가면 성민주가 하인혜에게
권총을 겨누고 있다. 권총을 부여잡은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하인혜에게서 서너발짝 떨어진 곳에 권중혁이 성민주를 말리려는
자세로 서 있다. 하인헤가 몸을 조금 움직인다.
[민수] (나직이) 움직이지 마세요, 쏘겠어요.
[중혁] 안돼
[민주] 비키세요. 안 비키면 당신먼저 쏘겠어.
[이혜] 미쳤니?
[민주] 그래요. 미쳤어요. 그러니까 제어머니를 쏘겠다는 것
아녜요.
(발작하듯 방아쇠를 잡아 당긴다.
[페이지] 003
두방의 총성. 하인혜가 두손으로 가슴을 쓰러안으며 쓰러진다. 순간 그러니까 성민주는 총을 쏘고 난 다음 얼굴을 찌푸르며 외 면한채 권중혁은 막 쓰러지려는 하인혜를 부축하려고 손을 내미 는데 세 사람의 동작이 정지한다. 잠시 사이. 조명이 무대 전체 에 들어 간다. 하인혜와 권중형은 퇴장한다. 무대에는 판사, 검 사, 변호사, 정리등이 등장해서 필요한 소도구를 배치하고 법정 을 꾸미기 시작한다. 법정이 다 만들어지면 성민주가 피고석에 가 남진우 옆에 앉는다. 그것을 신호로 전면무대의 조명이 꺼진 다.)
[서기] 피고인 성민주
(성민주 앞으로 나온다)
[판사] (서류를 뒤적이며) 에 피고인이 성민주임에 틀림이 없

[페이지] 004
가?
[민주] 네.
[판사] 올해 스물여섯이지?
[민주] 일곱입니다.
[판사] 여섯이 아니구?
[민주] 네.
[판사] 그런데 검찰조서엔 왜 여섯이리구 했지?
[민주] 일곱이라구 했더니 그럼 만으로 따지면 여섯이겠군 해
서.
[판사] 왜 사실을 따지지 않았나?
[민주] 여섯이든 일곱이든 저한텐 상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판사] 대학을 중퇴 했군. 왜 중퇴했지? (성민주 대답이 없
다.) 대답해 봐.
[민주] 돈이 없어서였읍니다.
[판사]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피고인의 모친은 유산만도
억대이상 남기고 있는데.
[페이지] 005
[민주] (머뭇거리다가) 그것은 어머니의 재산이지 제것은 아니
었읍니다.
[판사] 그럼 왜 모친의 도움을 거절했지?
[민주] 거절하지 않았읍니다.
[판사] 피고인을 도와주지 않았단 말인가?
[민주] 아니요. 돈 얘긴 제가 조심스러워서 않했고 어머니도
그만큼 신경을 써주셔서---
[판사] 피고인은 피고인의 모친과 한집에서 살지 않았나?
[민주] 집에 들어가 있기두 했지만 대개는 따루 하숙을 들었어
요.
[판사] 그럼 돈은 어디에서 났지? 직업도 없으면서? (대답이
없다.) 뭘해서 돈을 벌었어?
[민주] 그저 이것 저것
[판사] 이것 저것?
[민주] 네.
[페이지] 006
[판사] (끄덕이며) 하긴 요즘 세상은 요령부득이니까. 어떻게
해서들 먹구사느냐 하는 것은 말야. (다시 한번 끄덕이고) 그럼 뭣때문에 모친을 살해했지?
[민주] 네?
[판사] 피고인 모친한테 애당초 돈을 바라지 않았단 말야. 갑 자기 돈이 궁해졌는가? 아니면 이것 저것 생기던 돈줄이 어디선 가 끊어져 버렸던가?
[민주] (힘없이) 전 어머닐 죽이지 않았어요
[판사] 피고인이 범인이 아니란 말이지?
[민주] 전 않했어요 전.
[판사] 그럼 피고인은 왜 이 법정에 서 있지?
[민주] (딱하다는 듯이) 글쎄 저두 잘 모르겠읍니다.
[페이지] 007
[판사] 조용히들 하시오. (서기에게) 증거물 삼호를 이리 가져
오시요. (서기 권총을 판사에게 가져 간다) 피고인 이게 뭔지 알
겠는가? (서기 성민주에게 보인다)
[판사] 뭐지?
[민주] 권총입니다. (서기 권총을 판사앞에 놓고 제 자리로 돌
아 간다)
[판사] (권총을 들고) 이것이 피고인 것에 틀림이 없는가?
[민주] 네.
[판사] 이것으로 하인혜를 쐈지?
[민주] 아니오.
[판사] 아니란 말인가.
[민주] 네
[판사] 이 총이 아니란 말인가?
[민주] 그 총은 제것이지만 그 총을 쏜건 제가 아니란 말입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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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그럼 범행을 부인하는군? 그런가? (대답이 없다) 부인 하는 건가? 아닌가?
[민주] (나직이) 부인합니다.
[판사] (찌푸리며) 범행사실이 확실한데두 범행을 부인하면 피 고인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피고인은 모르는가?
[민주] 알고 있읍니다.
[판사] 그런데 왜 자꾸만 거짓말을 시키지?
[민주] 거짓이 아닙니다.
[판사] 또 (화가 나서) 좋아 (검사에게) 사건현장을 설명해 주
시오. (검사 무대밖에다 손짓한다. 하인혜. 형사주임 검시관 형
사 경찰 사진사등 등장 전면 무대에 조명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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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간다. 하여사는 피묻은 잠옷을 입고 전면무대 중앙에 총에 맞
고 죽은 자세로 눕는다. 그 주위에 형사주임 형사가 서 있고 검
시관은 시체를 검사하고 있고 권중혁은 이들과 좀 떨어져 서 있
다. 허공에 깨진 사진틀 한개 하인혜여사와 성민주가 나란히 웃
고 서 있는 사진이다. 경찰사진사가 서너 번 플래쉬를 터트린다)
[검시관] (시체검사를 끝내고 일어나며) 사망시간은 오후 열시
경 두 발 맞았군요. 처음것이 복부에 두번째가 심장이군요. 이게
치명상이에요.
[주임] 즉산가?
[검시관] 네. 심장이니까.
[주임] 음 그럼 사망시간이 범행시간이 되겠군. (생각하고)
[페이지] 010
총상 뿐인가.?
[검시관] 별다른 상천 없는데요.
[주임] 혹시 타박상 같은건 --- ?
[검시관] 없어요. 전혀
[주임] (사진사에게) 우선 사진이나 여기서 한장 찍을까? 응.
(플래쉬) 그리구 이쪽에서 (플래쉬) 응 이번엔 이 시체에서 정면
으로 한장 (플래쉬) 이젠 치첼 덥지.
[형사] (흰 보로 시체를 덮으며) 아름다운데요.
[주임] 뭐가? (시체를 가리키며) 이 여자.
[형사] 아니요. 저 잠옷에 빨갛게 물든 피 말에요. 마치 꽃이
핀것 같아요. 이 여자가 자기자신을 볼 수 있다면 죽은 자기 모
습에 넋을 잃고 취하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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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데요 이만하면 죽어 볼만도 하다구요.
[주임] 사람 어서 시체나 덮어
[형사] (시체를 덮으며 독백처럼) 죽었어두 여자는 여자란 말
야 (수건으로 권총을 들어 올리며) 이거 어떻게 하지요?
[주임] 수사 연구소로 보내. 지문 채취두 하구 (형사 끄덕이고
나간다.) 참 그총에 남은 실탄 있어?
[형사] 없어요.
[주임] 이리 가져와 봐. (형사에게서 총을 받아 탄창을 빼보면
서) 없군. 한방도 안 남았어.
[형사] 왜요? 그게 중요합니까?
[주임] 응 경우에 따라선 (총을 다시 주며) 자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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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발 들은 것이 아니구 (검시관에게) 사격거리가 얼마나 되지요?
[검시관] 글쎄요. 그 정돌겁니다.
[주임] (시체에서 거리를 재어 걷고) 그럼 여기쯤 이겠군
[검시관] 네 그 쯤
[주임]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자군. 혹시 이리로 도망치면서
쐈을 수도 있겠구 (권 중혁에게) 그렇지요? (대답이 없다) 권선
생 그렇지요?
[중혁] (천천히) 네?
[주임] 권선생과 하여사는 저기에 있었구 범인은 여기서
[페이지] 013
[중혁] 네
[주임] (알았다는 듯이) 여기서 심장이라면 보통 솜씨는 넘지.
[검시관] 어쩌면 우연히
[주임] 우연이 아닐거야. (문득) 근데 참 세발 이랬지.
[검시관] 두발은 하여사의 배와 심장에 맞았구 ---
[주임] 또 한 발은?
[사진사] 저기. (깨어진 사진틀을 가리킨다)
[주임] 음. 그렇군 한 발은 빗나갔지. (하며 사진틀을 가리킨
다. 중혁 돌아보지도 않고)
[중혁] 하여사의 아들이요
[주임] 아들이요
[중혁] 자식이라곤 저 애 하나뿐이지요.
[주임] 요즘은 집에 없었나요? (형사 두사람이 들것을 가지고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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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임] (중혁에게) 시체해부를 해야겠는데 양해하십시요.
[중혁] 좋도록 (주임 눈짓한다. 형사를 들것에 시체를 옮겨 싣
고 퇴장. 다른 사람들도 퇴장. 주임과 중혁만이 남는다.
[주임] (담배를 꺼내며) 피곤하시겠읍니다. 대충 정리는 된 셈
이니까 곧 쉬게 해 들이겠읍니다. 피십시요.
[중혁] 네.
[주임] (천천히 중혁을 살피며) 이제 범인이 누군지 대 주시지요.
[중혁] 갑자기 무슨 -.
[주임] 아까는 너무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아서. 허지만 시간을
끌면 끌수록 너무 범인에게만 유리해져서.
[중혁] (단호하게) 난 모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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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임]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몰라요? 그럴 리가 (화가 나서) 대체 뭣때문에 범인을 숨기는거요? 어서 대시오.
[중혁] (가만히) 모른다고 하지 않았소. (두사람 잠시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노려 본다. 정면무대 조명 어두어지면 다시 법
정. 권중혁이 증인석에 앉아 있다. 중혁은 지나칠 정도로 명쾌한
답변을 하기 때문에 사실이 아닌 것 같은 착각을 줄 지경이다.
[검사] 어째서 범인이 성민주라는 사실을 숨겼나요?
[중혁] 아무래도 믿기지가 않아서지요. 지금두 사실은 --- 믿을 수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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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그럼 범인을 은닉할 생각은 없었단말인가요?
[중혁] 네 (빙긋 웃고) 범인은 한 인혜 여사의 아들이구 그것
이 분명한 이상 문제는 간단하지 않습니까?
[검사] 몇시부터 사건현장에 있었지요?
[중혁] 현장에 말입니까? (여유 있게) 바루 직전이지요. 하여
사가 살해되기 직전 말입니다.
[검사] 그 방엔 왜 들어갔나요? 무슨 이상한 낌새라두 챘는가
요.
[중혁] 성민주가 그 방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좀 길게 느꼈어
요. 그래서 혹시나 하는 불길한 예감이 ---
[검사] 불길한 예감이라면? 무슨.
[중혁] 음. 두 사람은 평소에두 자주 다퉜구 뭐랄까요.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검사] 그것이 살의를 품을 말할 것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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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혁] 꼭 그렇다고 말할순 없지만
[검사] 뭣 때문에 다퉜지요?
[중혁] 글쎄요. 그건 ---
[검사] 밑도 끝도 없이 다투지마는 않았을 것 아니오.
[중혁] (잠시 생각하고) 성민주에게 여자친구가 생겼어요. 하
여사말은 질이 좋지 않은 애라두군요. 좋아 하는 눈치가 아니었
어요. 그래서 아마
[검사] 여자친구란 것은 어느정도의 관계를 말하는 것인가요?
그냥 친군가요? 아니면 애인?
[중혁] 꽤 깊은 관계로 알고 있읍니다.
[검사] 그 여자의 이름이 뭐지요?
[중혁] 그걸 제가 어떻게 ---
[검사] 그 여자를 본 적이 있읍니까?
[중혁] 저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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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오. 제가 알고 있는 것은 ---
[검사] 아뭏든 성민주에게는 돈이 궁해졌군요. 여자까지 달렸다면.
[중혁] (빙긋이) 글쎄요. 그런 셈인가요.
[검사] 성민주가 돈을 자주 요구하지 않던가요.
[중혁] 그건 잘 모르겠읍니다. 하지만
[검사] 하지만 그걸 수 밖에 없었겠지요?
[중혁] 단정 짓는건 아닙니다만.
[검사] (재판장에게) 이상입니다.
[변호사] (일어나며) 증인에게 보충심문이 있읍니다.
[판사] 좋습니다.
[변호사] (중혁에게 가서) 실례지만 하인혜여사완 어떤 관계지요?
[중혁] 어떤 관계라니요?
[페이지] 019
[변호사] 부부지간인가요?
[중혁] 아니오.
[변호사] 그럼?
[중혁] 그것을 제자신이 설명하시기에는 좀 (애매하게 웃으며)
말하자면 정부라고 하나요 그것을
[변호사] 동거중이었단 말이군요.
[중혁] 네
[변호사] 언제부터 인가요?
[중혁] 오래 됐읍니다. 한 사오년쯤
[변호사] 성민주 두 그 사실을 알구 있었던가요?
[중혁] 남의 눈을 피할만큼 불륜한 관계가 아니었어요. 우린
정식으루 결혼할 예정이었구
[민주] (벌떡 일어나며) 그것은 사실이 아녜요.
[판사] 피고인은 조용하시오
[변호사] (민주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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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 아니문? (민주 힘없이 다시 앉는다) 그말은 두 사람의
관계가 불륜했다는 뜻인가요? 그들이 결혼할 예정이 그렇다는 뜻
인가요? (민주 무엇인가 말할 듯이 애쓴다. 단념하고 시선을 떨
군다. 가만히 고개를 젓는다.)
[변호사] (단념하고 중혁에게) 증인은 성민주가 하여사 방에
있을때 어디 있었나요?
[중혁] 성민주가 찾아 왔기 때문에 저는 응접실에 나가 있었습니다.
[변호사] 두 사람은 아는 사이인가요?
[중혁] 네.
[변호사] 얼마나 됩니까?
[중혁] (민주를 힐끔 보고) 퍽 --- 오래 됐습니다.
[변호사] 성민주는 몇시쯤에 왔지요.
[중혁] 아홉시 삼십분 경이었다구 기억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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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쳤나요?
[중혁] 아니오 제가 피했기 때문에 ---
[변호사] 왜 피했나요
[중혁] 피차 만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에서 ---
[변호사] 거기엔 무슨 사정이 있었나요?
[중혁] (곤란해 하며) 개인적인 문제구 또 이 사건과는 별루
관련이 없는데 ---
[변호사] 그 개인적인 문제가 뭐지요? (대답이 없다) 대답해
주시요.
[검사] (일어나며) 재판장 변호인은 증인에게 대답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증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구 있습니다.
[판사] (변호사에게) 주의해 주십시요.
[변호사] (중혁에게) 그럼 성민주가 하인혜의 방에 들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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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무엇을 하구 있었나요?
[중혁] 기억이 없습니다.
[변호사] 증인이 방에 들어가니까 하인혜와 성민주는 무엇을
하구 있던가요?
[중혁] 제가 방문을 노크하니까 성민주가 문을 열어 주더군요
하여사는 의자에 앉어 있었구 몸을 비스듬히 앞으로 구브리고 있
었는데 몹시 다툰 사람처럼 불쾌한 표정이 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리로 막 가려는데 성민주가 제 앞을 막아서며 당신이 아직까지
여기 있었을 줄은 몰랐다구 하더군요. (빙긋 웃고) 좀 전에 변호
사님은 두 사람간의 개인적인 문제가 뭐냐고 따져 물으셨는데 뭐
흔해빠진 것이지요. 어머니를 독차지하고 싶어하는 아들과 그 어
머니에게 접근해 있는 성년의 남자 짐작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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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엔 그것이 어디 아낙네 애기거리나 되는가요. 거기에다
성민주는 홀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들이구 또 하여사에겐 돈이
충분했구
[변호사] (얼굴을 찡그리며) 그 다음을 계속해 주십시요.
[중혁] (얘기꾼 처럼) 제가 하여사에게 가서 무슨 일이래두 있
었느냐구 물었어요. 하여사는 나직히 저애는 미쳤어요 라구만 하
더군요.
[변호사] 하인혜가 그렇게 말했단 말이지요?
[중혁] 성민주가 권총을 빼어 든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어요.
(유유히 몸짓을 섞어 가면서) 하여사는 자리에서 일어섰구 내가
그에게 조금 나가서는데 성민주가 권총을 발사했어요
[변호사] 세 발인가요?
[중혁] 세 발입니다. 눈깜짝할 새에 하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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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죽어 있었어요. 내가 숨을 돌리고 사태를 파악했을 때는 이미
성민주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변호사] 도망쳤다는 말이군요.
[중혁] (어처구니 없이 웃으며) 전 아직두 꿈을 꾼 것 같은 마
치 아주 어려서 찍은 사진을 봤을 때 같은 기분에 사로 잡혀 있
습니다. 아직은 현실감이 없어요. 꼭 무슨 충격적인 영화의 한
씬을 본 것 같은 --- (잠시 사이)
[변호사] 증인은 살해동기가 단지 돈 때문이었다구만 생각하는
가요?
[중혁]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변호사] (말을 끊으면서) 무슨 다른 동기는 없었는가요?
[중혁] 글쎄요.
[변호사] 무슨 치정관계라든지 -----
[중혁] 살해동기에 대해선 사실 제 자신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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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입니다.
[변호사] 그럼 우연이 아니었을까요?
[중혁] 우연이라니요?
[변호사] 오발했다든가? 단지 위협이 목적이었는데
[검사] 일어나며 성민주가 고의로 총을 발사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요. 사전에 이미 치밀한 범행계획이 서 있었단 말이요.
[변호사] (사이를 두고 중혁에게) 증인은 성민주가 세발 쐈다
고 했는데 정확한가요?
[중혁] 네. 세발이에요.
[변호사] 그 총에 몇 발이 장전되어 있었는지 아는가요?
[중혁] 모르겠군요.
[변호사] 그 총은 육연발 입니다.
[중혁] 허지만 애초에 세발밖에
[변호사] 그렇게 가정할 수 있겠군요
[중혁] (씩 웃으며)
[페이지] 026
[변호사] 그 총엔 여섯발이 다 장진되어 있었습니다.
[검사] (일어서며) 그것을 증명할 수 있소?
[변호사] (빙긋 웃고) 때가 오면 증명해 보이겠소.
[검사] 지금은 왜 안되요?
[변호사] (무시하고 중혁에게) 성민주는 사건현장에다 권총을
내버려두고 도망쳤지요.
[검사] (화가 나서) 변호인은 본검사를 모욕할 셈이요?
[변호사] (검사에게) 경찰에선 처음엔 성민주 피고인에게 여섯
발중에 쏘고 남은 세발의 행방을 추궁했소 아마 권중혁에게두 물
었을것이요. 허지만 그 행방을 찾아내지 못했소 그래서 총알은
세발밖에 장전돼 있지 않었다구 가정해버린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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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가정이 아니오 엄연한 사실이요.
[변호사] 무엇이 엄연한 사실이요? 우리가 모르는 것은 그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란 말이요. 사실은 언제나 숨겨져 있기를
즐기는 법이요. (자신있게) 본 변호인은 기필코 나머지 세발의
행방을 찾아내겠소.
[검사] 그럼 변호인은 검찰이 허위사실을 날조했단 말이요?
[판사] 자 진정을 하시오. 그것은 매우 중대한 사실같으나 차
차 밝혀가기로 합시다. (검사 자리에 앉는다)
[변호사] (중혁에게) 성민주가 왜 총을 버려 두고 갔다고 생각
하는가요?
[중혁] 아마 당황해서겠지요.
[변호사] 검사는 사전에 무슨 계획이 섰다구 하는데두요.
[페이지] 028
(중혁 난처하게 웃는다) 결정적인 증거를 남겨둘만한 예기치 못
한 사태가 있었는가요?
[중혁] (좀 기분이 상해서) 제가 목격한 것은 그 총이 방에 떨
어져 있었다는 것 뿐이에요.
[변호사] 총을 집어 보지는 않았는가요? (대답이 없다) 총알이
남았는가 확인해 보지 않았느냐 말이요.
[중혁] 어떻게 하시는 말씀이신가요?
[변호사] 사건이 벌어지구 경찰이 현장에 닿기까지는 한시간
정도의 공백이 있었습니다. (빙긋 웃고) 너무 길었다구 생각되지
않습니까?
[중혁] (답답하다는 듯이) 내가 신고를 하지 못한 것은 --- 충
격이 컸다구--- 아무래두 믿을 수 없었는데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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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무엇을 믿을 수 있었단 말입니까? 자기자신두 그 살
해현장에 참석해 있었다는 것인가요? 당신이 참여했던 어떤 행위
의 결과가 말인가요?
[중혁] (분에 못이겨) 하여사의 죽음말이요! (비웃음까지 띄
며) 당신이라면 그 경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냉정해질 수 있겠
어요? 그렇습니까? 만일 피가 있는 사람이라면 설사 그것이 자연
사태두 --- (하다가 감정이 폭발해) 이것 보시오 나는 하여사를
사랑하고 있었소 내 나이 마흔 다섯이요. 젊은 나이는 아니오.
다시 한번 생활을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더란 말이요. 그런
데 그런데 내가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들여서 설계한 꿈이 무너
진 것이요. 하여사가 죽었단 말이요.
[페이지] 030
하인혜가 어떻게 해서 살해되었는가는 나한텐 문제가 아니오 (힘
주어) 하여사는 이미 죽었소. 다시 살아나지 못하오. 그리구 ---
내 생애도 끝이 난 것인란 말이요.
[판사] 증인은 진정하시오.
[중혁] (자포자기가 돼서) 그래 나더러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웃으면서 무엇인가 다시 한번 찾아 나서란 말입니까? 나는 하여
사를 살해한 범인이 누구든 흥미가 없소. 설사 내가 죽였다구해
도 마찬가지요. 책임같은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요. (변
호사가 여전히 싱글거리며 자기를 보고 있자 흥분해서) 당신은
자신이 매우 현명하다구 영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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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구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 마치 자기만이 진실의 웃을 걸친
것이 아니라 입고 있다는 표정이신데 그렇게 자신만만하다면 내
청을 들어 주시오. 그렇다면 내 교수대에라두 대신 서 줄테니
--- (처절할 정도로) 내게 하여사를 돌려 주시오. 살려 내란 말
이요.
(사이)
[변호사] (태연하게) 증인에게 한가지만 더 묻겠소 솔직이 대
답하시오 법은 냉정한 사실만을 원하니까.
[중혁] 당신의 질문엔 대답하기 싫소.
[변호사] 경찰이 사건현장에 도착한 것은 몇시지요? (대답이
없다) 그럼 그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요. 현장에 계속 머물러
있었나요?
[페이지] 032
(대답이 없다) 좋습니다. 대답하지 않아두 중요한 것은 그런 것
이 아니니까 (빙긋 웃고) 재판장님 이상입니다.
[판사] 끝입니까.
[변호사] 네 오늘은
[판사] (중혁에게) 증인은 가도 좋소 (중혁 천천히 증인석을
내려 간다. 그는 갑자기 지쳐버린다. 피고석을 지나다 민주와 마
주친다. 민주는 물끄러미 중혁을 쳐다 본다)
[민주] (나직히) 한가지 --- 우린 서로 닮은 것이 있군요. (중
혁 잠시 민주를 바라보다가 방청석에 가 앉는다)
[판사] (서류를 뒤적이며)
[페이지] 033
다음은 하인혜 여사 살해사건에 관련되어 공범으로 구속 기소된
남건우 피고인에 대한 사실 심리를 계속하겠습니다. 남건우피고
인 앞으로 나오시오. (남건우가 피고석에 서면) 음 여행사에 다
닌다구 했지? 어디지 ?
[건우] 세계 여행사 입니다.
[판사] 외국회산가?
[건우] 네
[판사] 항공기 회산가?
[건우] 네
[판사] 비행기 많이 타겠군
[건우] 네 ?
[판사] 외국인 상대가 수월하겠군 (끄덕이고 나서) 피고인이
성민주에게 범행에 쓸 권총을 수교한 것은 사실이지?
[건우] 네
[페이지] 034
[판사] 피고인은 그 권총이 어디에 쓰일 것인지 몰랐는가?
[건우] 네.
[판사] 피고인은 권총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건우] 네?
[판사] 권총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말야 (건우 대답을 못
한다) 위험한 물건이라구 생각하지 않는가?
[건우] 그렇다구 생각합니다.
[판사] 그것을 소지하는 것이 불법인 줄도 알고 있는가?
[건우] 네
[판사] 그런데 아무리 성민주와 둘도 없는 친구지간이라구 하
지만 그 같은 위험한 물건을 함부로 구해줬단 말인가. (건우 고
개를 숙인다) 피고인의 행동이 무책임했다구 생각되지 않는가?
[건우] 네
[페이지] 035
[판사] (끄덕이며) 응 그렇겠지 (사이) 피고인은 권총을 주면
서 성민주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나?
[건우] 어디에다 쓸 것이냐구 묻긴 했습니다.
[판사] 그랬더니?
[건우] 대답이 없었어요. 다만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 맘이 놓
인다구만 해서 ---
[판사] 권총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놓인다니? 그건 무슨 뜻
이지?
[건우] 저는 처음은 성민주가 피해망상증이라두 걸렸나 했지만
가만 생각하니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판사] 어째서?
[건우] 그 즈음 성민주는 외국으로 떠날 계획이었구 몇달 전
보다 상태가 좋아 보였기 때문에 --- 외국에서는 개인이 총을 소
지하구 있는 것을 알구 있었기 때문에
[페이지] 036
[판사] 피고인이 그것을 어떻게 알지?
[건우] 영화에서 봤습니다.
[판사] 영화하구 현실은 다른 법이야 외국의 경우에도 총기소
지는 법률이 허용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건우] 허지만 성민주는 {이것으로 자살할 생각두 누굴 죽일
생각도 없어. 다만 가지고 있으면 필요해질 것 같애서} 라구만
했어요. 그래서 그런 심정이 혹시 막바지에 밀려본 사람이 가지
는 깐깐한 성격이려니 하구. (힘주어)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
이 없습니다.
(전면무대에 조명이 들어 온다. 술집이다. 조명이 떨어지는 곳
마다 한개의 테이불이 된다. 취객들의 소음. 웨이타의 소리. 여
자가 의자를 들고 들어와 그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문다.)
[페이지] 037
탱고 음악이 들린다. 웨이타의 [어서 오십시오] 성민주가 술에
취해서 음악에 맞추어 비틀대면서 들어 온다. 여자 그를 알아 보
고 반갑게 뛰어간다]
[여자] 어머 아까 그 손님
[민주] 날 기억하겠어?
[여자] 그럼요. 한번이래두 내 손님은 잊지 않아요.
[민주] 사람 얼굴 기억하는 천재를 가지셨구먼.
[여자] 거기다가 팁까지 두둑히 주시고 (돈을 꺼내며) 이것 봐
요. 아직 세보지도 못했어.
[민주] 돈이 좋아서 날 잊지 않았다면 내 또 줄까?
[여자] 어머 이이가 (웃으며) 그만해두 됐어요. 지나치게 돈을
많이 받으면 으례 사고가 생기거든요.
[페이지] 038
[민주] 아주 제법인데 (껴안는다)
[여자] 자 저리 앉으세요.
[민주] 앉어? 내가 왜 앉어?
[여자] 그럼 서 계시겠어요.
[민주] 난 서 있겠어 이 신성한 대지 위에다 두 발을 딱 붙이
고 서 있겠어. 웅장하게 아주 장엄하고 슬프게 말야 약간은 슬픈
얼굴로 말야.
[여자] 이것봐야 이건 땅이 아니라 시멘트예요. 시멘트
[민주] 아 시멘트
[여자] 그래요. 시멘트
[민주] 그럼 앉지. (두사람 앉는다)
[여자] 아까 그사람 갔어요.
[민주] 누구?
[여자] 친구분.
[민주] 갔어.
[여자] 어디루?
[민주] 어디긴 어디야 집이지. 지 색시한테
[페이지] 039
(고개를 흔들며) 아 술이 깨는데 나 술 좀
[여자] 안 돼요.
[민주] 안돼? 여기가 어딘데?
[여자] 술집?
[민주] 근데 왜 안돼.
[여자] 술이 당신을 마시겠어요.
[민주] 그럼 대신 너라두 마실까?
[여자] 마실 수만 있다면
[민주] 하 요것봐라. (사자흉내를 내며) 엠. 지. 엠 사자가 어
떻게 우는 줄 알아 흑백은 아흥 아흥 총 천연색은 아홍 아홍.
(두사람 부등켜 안고 웃는다.)
[여자] 근데 아까 그 사람이 준 것 뭐예요?
[민주] 뭐? (여권을 꺼내며) 응 이것?
[여자] 뭐지요? 그게.
[페이지] 040
[민주] (연설조로) 합법적이라구두 또 양심적으로 언제든지 도
망쳐도 좋습니다하는 증명서야.
[여자] 도망치다니 어디로?
[민주] 여기서 저기로
[여자] (짐짓) 비싸요 그것?
[민주] 암 비싸지 비싸구 말구
[여자] 당신 도망칠 생각이야
[민주] 응
[여자] 뭣때문에 도망치지?
[민주] 그걸 내가 어떻게 아니?
[여자] 돈은 많다면서
[민주] 많지 한국은행에 하지만 난 한푼도 없어.
[여자] 그럼 거지게?
[민주] 그래서 훔칠 계획이야.
[여자] 멋있는데
[민주] 너두 끼워줄까
[여자] 하. 하
[민주] (키득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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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도 정보가 밝아야 하거든 그래서 우리 엄말 털기루 했어.
우리 엄만 부자거든.
[여자] 에게 그럼 피장 파장이게.
[민주] 어째서?
[여자] 주머니돈이 쌈짓돈
[민주] (여자의 손을 잡아서 자기 주머니를 만지게 하며)
[여자] 어머 이것 총 아냐?
[민주] 왜 아냐 총이지.
[여자] 이걸루 뭘하지?
[민주] 이런 바보 사람을 죽이지
[여자] 하. 하. 거짓말
[민주] 거짓말은? (짐짓 재며) 난 이걸루 엄말 죽이겠어
[여자] 자기 엄마를?
[민주] 그럼
[여자] 그럼 안돼
[민주] 그럼 널 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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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게) 탕 탕
[여자] 저리 치워 (민주 신이 나서 키득거린다. 음악이 피아노
소리로 바뀐다)
[민주] 쏘기도 전에 질겁이니 넌 낙제다
[여자] 당신 정말 엄말 죽이겠어? 헤. 헤. 거짓말이지
[민주] (춤 추듯이 휘청거리며) 거짓말이 아녜요. 맹추 아가씨
난 엄마를 죽이겠어 왜냐하면 난 도망치구 싶어서. 엄마가 날 가
뒀거든. 철장속에 보이지도 않고 형체도 없는 감옥. 그것 빛갈이
없어 냄새만 나지. 구린내. 똥구린내. (코를 씰룩이며) 벌름 벌
름 벌름 (키득 거리며) 난 도망치겠어 멀리 아메리카로. 거기서
나는 돈을 마구 뿌리며 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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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흘리면서 살겠어. (노래를 흥얼거린다) 저 멀리 아메리카로
떠날 맘 간절하네 또 다시 만나자면 이별의 노래를 (노래를 민주
가 계속 부르는 동안 테이불을 나타내는 조명이 차츰 꺼지고 노
래가 끝날 즈음엔 민주가 앉아 있는 곳만 남는다. 취객들의 소리
도 사라진다)
[민주] (노래 계속)
-----·------
아름다운 나포리 잘 있어 잘 있길 원하네
[여자] (박수를 치며) 잘 부르네요. 참! 당신 (이상해서) 왜
그래요? 우는군요?
[민주] 저리 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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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어머 --- 참
[민주] 어머니 어머니 당신은 왜 이렇게 날 괴롭히십니까? 녜?
(갑자기 공포에 질리며) 아냐. 아냐. 너를 죽인건 내가 아냐 (부
르짓는다) 너는 우리 어머니가 죽였어. (허공을 휘저으며) 저리
가지 못해 없어져. 제발. 왜 날 이렇게 못살게 구는 거지. 난 널
사랑했어. 배신한건 내가 아니라 바루 너란 말야 너! 그런데 왜
날 괴롭히지. 왜 그렇게 날 노려보는거지. 아! 아! 죽여 버릴테
야 네 두 눈을 뽑아 버릴테야. (전면무대 조명 어두어진다. 피아
노 음악이 서글프게 상승된다. 잠시후 조명이 다시 들어가면 법
정이다. 증인석에는 여자가 앉아 있고 변호사가 보충심문 중이
다.)
[페이지] 045
[변호사]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여자] (민주를 가르키며) 저 사람은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꼭 미친 사람 같앴어요. 나중엔 막 눈을 뒤집어 까구 야단법석을
해서 혼줄이 다 빠졌드랬어요. (빙긋 웃고) 허지만 아침에 보니
까 얌전한 사람이었어요. 남자들이란 평소엔 골샌님 같다가두 술
만 좀 들어가면 개망나니가 돼지요. 남자들은 참 불쌍해요. 워낙
구속을 많이 받고 사니까 그럴법도 하지만요.
[변호사] 그럼 그날밤 증인의 집으로 데려갔었나요?
[여자] 저 남자요?
[변호사] 네
[여자] 그럼 어떻게 해요? 죽으라구 내버려 둘 수도 없구.
[변호사] 저사람이 총을 가지구 있었는데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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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으쓱하며) 네
[변호사] 무섭지 않았어요?
[여자] 무섭긴요? 저 사람 차를 타구 가는 내내 내 무릎에 얼
굴을 파묻고 얌전하게 잠이 들었는데요. 잠든 얼굴이 꼭 천진 스
런 어린애 같았어요. 장난 꾸러기 같구 아주 귀여웠어요.
[변호사] 당신은 저 사람을 그날 처음 만났다구 했는데 얼굴을
확실히 기억할 수 있는 가요.
[여자] 무슨 말씀이세요
[변호사] 혹시 잘못 봤다든가?
[여자] 아니오 아무리 내가 술집에 있는 계집이지만 같이 지낸
손님을 잊어 먹진 않아요. 저는요. 지금 이 생활 오년동안에 같
이 잔 남자를 대라면 한 사람두 빼놓지 않구 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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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가 어이가 없이 미소짓자) 정말이에요. 내 참
[변호사] 이런 걸 묻는 건 실례지만 혹시 사건과 관계가 있을
지두 몰라서 --- 혹시 ---
[여자] (친절하게) 뭔데요? 그렇게 더듬지만 마시고 말씀해 보
세요.
[변호사] 저 그날 밤 관계를 맺었나요.
[여자] (태연하게) 아니오. 술이 너무 취해서요.
[변호사] 누가요? 저 사람이요?
[여자] 둘 다요. 사실은 저두 좀 취했었거든요. 그날 밤은 아
주 기분이 잡쳤어요. 아무 일도 없이 지낸 밤은 웬지 멋진 기분
이 돼서 (한숨을 푹 쉬고) 남자들은 참 이상해요 아침에 집을 나
가면서 꼭 돈을 내밀거든요. 전 달라구두 하지 않았는데두요.
[페이지] 048
그렇지만 뭐 나두 돈이 필요하니까 못 이기는척 하구 받아 두지
요. 말하자면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니까요.
[변호사] 저 남자는 몇 시에 나갔나요?
[여자] 아침 일찍이
[변호사] 몇시 쯤 이지요.
[여자] 글쎄요. (씩 웃고) 사실은 --- 제가 늦잠을 자서 보지
못했어요.
[변호사] 아 그래요. (빙그레 웃고) 술은 얼마나 드시는가요?
[여자] 많인 못해요 그저 --- (손가락을 약간 벌려 보이며) 요
정도요? 한 --- 맥주로는 열병쯤 이건 주로 마시는 술 종류니까
그렇구 말걸리는 두되쯤 소주는 아마 한병? 그보다 좀 모자랄지
두 모르겠군요.
[페이지] 049
[변호사] 취했다는 건 어느 정도지요?
[여자] 응 그러니까 기분이 좋은 상태지요.
[변호사] 기분이 좋다는 것을 느낄만큼 말인가요?
[여자] 알쏭 달송한 질문만 하시네요.
[변호사] 내말은 주위를 판별할 정도인가 하는 것을 말하는 것
입니다.
[여자] 자꾸 술 얘기만 나오니까 한잔 생각이 간절히 나네요.
목두 컬컬하고 (키득거리며 웃다가 분위기가 엄숙하자 멋적게 웃
음을 거둔다.)
[변호사] 증인에게 다시 묻겠는데 에 - 주위를 판별할 정도였
나요? 솔직하게 대답 해 주십시요.
[여자] (머뭇거리며) 글쎄요 사실은 저두 쪼금은 취해 있었기
때문에 많이 취하진 않았지만요. 주위를 판별할 수 있었는지 어
쨌는지는 잘 기억이 없구요. 하여간 그것이
[페이지] 050
아침까지는 뒤죽박죽이 돼 버려서
[변호사] (말을 막으며) 재판장 이상입니다. 증인은 알콜 중독
자 같습니다.
[여자] 사람을 정말 어떻게 보구 하는 말에요? 술집에 있는 계
집이라구 정말! 내.
[판사] 증인은 조용히 하시오.
[변호사] 따라서 당 병원이 이 이상 알콜중독자의 증언에 귀를
기울일 하등의 필연성을 본 변호인을 느끼지 못하는 바입니다.
[검사] (불끈해서) 증인에게 몇가지 묻겠소 (여자에게 가 위협
적으로) 잘 생각해서 답변하시요 만일 허위 증언을 하면 위증의
죄로 처벌을 받게 되오. (다짐하듯이 사이를 두고) 그날 밤 같이
잔 남자가 저 남자임
[페이지] 051
틀림이 있는가요? 없는가요?
[여자] (딱해서) 글쎄요 그것이 (멋적게 웃으며) 긴것같기두
하구 아닌 것 같기두 하구
[검사] 확실히 대답하시오 아니면 아니다 (힘 주어) 그러면 그
렇다.
[여자] (자꾸만 민주를 보며) 아까 까지는 확실했는데 ---
[민주] (조용히) 맞습니다.
[검사] (번쩍해서) 뭐요
[민주] 저 여자 말이 모두 사실입니다.
[검사] 당신이었단 말이지요.
[민주] 네.
[검사] (의기 양양 해서)
[페이지] 052
재판장 이상입니다. (검사 장내를 한번 쑥 훑어보고 제자리에 앉
는다)
[판사] (여자에게) 증인은 이제 가도 좋습니다. (여자 일어난
다. 민주를 이상하다는 듯이 처다 본다. 민주는 움직이지 않는
다. 여자 퇴장)
[판사] (책상을 치면서) 오늘 공판은 여기서 끝내기로 하겠습
니다. 다음 공판을 오는 3월 17일 오후 두시에 열기로 하겠습니
다. (일어선다)
[서기] 기립 (판사,퇴장,사람들 흩어진다. 검사 서기에게 귓속
말을 주고 받으며 큰 소리로 웃는다. 변호사 민주의 어깨를 서너
번 툭 툭 쳐 준다. 그도 퇴장.
[페이지] 053
인지가 민주에게 다가간다. 시선이 마주친다. 민주 외면한다. 정
리가 민주에게 와서 수갑을 채운다. 정리 민주를 데리고 퇴장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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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第 二 幕 (제 이 막)

전막과 같은 장면. 법정. 증인석에는 인지가 앉아 있다. 민주
는 고개를 가만히 숙이고 있다. 판사는 지친 모습으로 서류를 뒤
적이고 있다. 검사는 연상 안경을 벗었다 꼈다 하고 있다. 변호
사는 팔장을 끼고 앉아 있다.
[판사] 성민주와는 언제부터 동거생활을 했나요?
[인지] 삼개월이 좀 넘었어요.
[판사] 정식으로 결혼했는가요?
[인지] 아니오.
[판사] 에. 성민주가 체포당한 현장에 증인두 같이 있었는가
요?
[인지] 전 집에 있었어요.
[판사] 그럼 하인혜가 성민주의 어머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
겠군요?
[페이지] 056
[인지] 네.
[판사] 성민주가 얘기하던가요?
[인지] 네.
[판사] 사건이 나기전인가요? (대답이 없다) 훈가요?
[인지] 어머니가 계시다는 건 알구 있었어요?
[판사] 그럼 성민주에게 살해당한 하인혜가 어머니라는 사실은
그 후에 알었단 말이지요?
[인지] 그 이는 죽이지 않았어요.
[판사] 묻는 말에만 대답하시오.
[인지] 네. (얼른) 그 이의 어머니가 죽었다는 것은요. 허지만
저인 아녜요.
[판사] 증인은 거짓을 댈 생각을 해선 안 돼.
[인지] 저는 거짓말은 안해요. (진심으로)
[페이지] 057
믿어 주세요. 저는 사실대로만 말하겠어요. 저이를 위해서지요.
(힘 주어) 저이는 정말 아무 죄두 없으니까요.
[판사] 죄가 있구 없구는 현망한 본 법정이 밝혀낼 것이구. 아
무튼 증인의 태도는 옳은 것 같다.
[검사] 재판장 증인에게 보충심문이 있읍니다.
[판사] 에 - 좋습니다.
[검사] (인지에게 가서) 증인은 하인혜가 살해 당한 것을 언제 알었나요 ?
[인지]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 새벽에요.
[검사] 신문을 보지 않었나요?
[인지] 아니오. 저희는 신문을 보지 않어요. 저이나 저는 끔찍
한 사건을 별루 좋아하지 않거든요.
[검사] 묻는 말에만 대답하시오.
[인지] 물으시는대로 말씀 드렸을 뿐인데요.
[검사] 그럼 어떻게 알었나요? 성민주가
[페이지] 058
그 사실을 말하던가요?
[인지] 네. [어머니가 죽었어] 그랬어요.
[검사] 그 말만 하던가요. 그 외에 무슨
[인지] 그말뿐이었어요.
[검사] 살해 당했다구 하던가요. 죽었다구 하던가요?
[인지] 죽었다구만 했어요.
[검사] 성민주가 사건이 벌어진 다음날 새벽에 당신을 찾아왔
다구 했는데 그것이 몇시 쯤이었지요?
[인지] 여섯 신가요? 아직 어둑어둑 할 때였어요.
[검사] 그때 얘기를 자세히 좀 해 주세요.
[인지] (민주를 한 번 보고) 그날은 새벽 일찍 잠이 깼어요.
전날 밤에 사나운 꿈을 꿨거든요. 저희가 글쎄 죽겠다구 약을 먹
었대요.
[검사] (놀래서) 성민주가 약을 먹었어요?
[인지] 네. 그래서 제가 깜짝 놀래가지고 소릴 막 질러대니까
저이 친구라는
[페이지] 059
사람들이 몰려와선 그 중 한 분이 저이를 들 처 업군 병원으로
냅다 달려 갔어요.
[검사] 지금 무슨 얘길하구 있소.
[인지] 꿈얘기요
[검사] 꿈얘기요? 지금 이 판국에 꿈 얘길 하구 있게됐오!
[인지] 검사님이 얘기해달라구 하지 않으셨어요?
[검사] 내가 언제? 내 말은 성민주가 새벽에 당신을 찾아 왔을
때 ---
[인지] 글쎄 지금 그 얘길하구 있는 중이에요. 이 얘기서부터
하지 않으면 인 돼요.
[검사] 계속하시오.
[인지] 병원에 닿으니까 병원이 어찌나 어둡고 더러운지. 약품
냄새가 코를 찌르구 곰팡이가 벽마다 더럭더럭 피어 있구. 글쎄
말두 못해요. 그런데 의사라는 사람은 어디서 ---
[페이지] 060
무슨 무당같은 옷차림을 하구. 색동저고리 같은 옷인데 아랫도리
는 여자 치마같앴어요. 그리구 생김새는 꼭 원숭이같이 얼굴에
솜털이 보숭보숭 나구.
[검사] 그 수식어는 빼구 대충 대충 하시오.
[인지] 미안해요. 허지만 중요한 얘긴걸요.
[검사] 어서 계속하시오.
[인지] 의사는 주머니 속에서 커다란 회중시계를 꺼내더니 심
각한 얼굴로 이마에 주름을 여럿 만들어 가지곤 그것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어요.
[검사] 뭐라고요?
[인지] 그래서 제가 [의사선생님. 지금 뭘 하구 계세요 ?]했
더니만 손으로 내 말을 막으며 쉿! 조용히] 하구는 하낫, 둘,
셋, 하며 숫자를 세기 시작했어요. 한참을 중얼중얼 주문을 외듯
그러더니 [쉰셋]하구는 [이젠 일곱뿐이 안 남았오] 그래요. [뭐
가요?]
[페이지] 061
[쉰셋. 쉰다선. 이 남자는 육십초가 지나면 죽을 것이오 쉰 일
곱, 쉰여덟] 내가 기가 맥혀서 [네 ?] 했더니 [쉰아홉, 예순! 죽
었다] 의사가 소리를 꿱 질렀어요. (베시시 웃고) 그랬더니 저이
가 슬거머니 일어나면서 [죽긴 내가 왜 죽어] 하지 않겠어요. 어
찌나 우숩고 놀랬는지. 눈물이 다 핑했어요.
[검사] 그래서 그 다음 어떻게 됐지요?
[인지] 그래서 꿈을 깼지요.
[검사] 그런데 성민주가 찾아 왔단 말이지요?
[인지] (시무룩해서) 네.
[검사] 문을 두드리던가요?
[인지] (다시 생기가 나서) 잠을 깨서 천정의 꽃무늬를 하낫.
둘 세고 있는데 누가 창문을 똑똑 두드렸어요.
[검사] 그것이 성민주였단 말이지요?
[인지]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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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증인의 방은 길가에 있는가요?
[인지] 문간방이에요. 저이가 문간방을 좋아해요. 술 먹구 늦
게 집에 오기 좋다구요.
[검사] 술을 자주 마셨나요?
[인지] (민주를 가르키며)
[검사] 그렇소. 성민주말요.
[인지] (수즙게 웃으며) 저인 술을 참 좋아해요. 가끔 저보다
술이 더 좋은가 보다구 생각했어요. 정말에요. 거짓말 아녜요.
[검사] 그래서?
[인지] (눈을 찌푸리며) 그래 창문을 여니까 밖에는 안개가 가
득히 끼어서 아무 것두 보이지 않었어요. 세상이 온통 뽀에요.
[누구세요?] 하구 물어두 아무두 대답하지 않아요. 그래 멍하니
안개를 보다가 마시다가 하구 있자니 차츰 차츰 창밖이 눈에 익
어 지고 저이가 저만치 서 있는 것이
[페이지] 063
보였어요. 그래 난 또 저이가 장난 치는 줄 알구서 [내가 모를
줄 아세요. 아까부터 봤어요] 했는데 저 이는 가만히 서 있기만
했어요. 아무래두 장난같지가 않아서) 왜 그렇게 서 계세요. 들 어 오세요 네? 하구는 얼른 창문을 닫구 뛰어 나가서 대문을 열 었어요. 근데 저이는 미치 송장처럼 뻣뻣해져서 온몸이 얼어가지 곤 제대로 몸을 가누지두 못했어요. 간신히 내가 펴준 자리에 눕 더니 당장 끙 끙 앓는 소리를 내질르지 않겠어요. 글쎄 나는 꿈
생각이 나서 오싹했는데. 저이가 [죽긴 내가 왜 죽어.]하며 벌떡
일어나며 싱긋 웃던 생각이 나서 좀 안심이 됐어요. 그래서 제가
물었지요. [어다서 오시는 길에요?] [어저께 술을 많이 마셨어
요?] 아무 대답두 안해요. 재가 근심스러워서 다시 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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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 [어젯밤엔 어디서 주무셨어요?] 했더니 [제발 좀]하구 저이
가 버럭 소리를 내지르지 않겠어요. 나는 그만 놀래서 숨을 죽이
고 옆자리에 앉아 있었더니 저이가 [어머니가 죽었어. 인지.] 하
드니 제 손에다 차거운 볼을 부벼대며 마구 울기 시작했어요. 나
는 그럴 때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건지 잘 몰라서 그저 (눈물이
글썽해서) [울지 마세요 울지 마세요] 했는데 저이가 자꾸만 엉
엉 울기만 해서 그만 나도 모르는 새에 따라 울고 말았어요. 웬
지 참을 수가 없었거든요. (민주는 멍하니 인지를 바라 보고 있다.)
[검사] (음칠해서) 그 다음 계속하시요.
[인지] 조금 있더니 저이는 잠이 들었어요. 잠 든 얼굴이 꼭
죽은 사람 얼굴같이 까매지구 히끗 히끗 얼룩이 져서.
[페이지] 065
이 사람이 그이일 리가 없어 하구 말해버릴번 했어요. 그러더니
저이는 몸이 좀 풀렸는지 식은 땀을 흘리며 늘어져 버리더군요.
그런데 아침에 꾼 꿈이 자꾸만 맘에 걸려서 안절부절을 못하겠는
데 글쎄 저이가 [아 쏘지 마세요] 하구 소릴 질러요. 그래 보니
까 저이는 두 손을 허공에 내 두르며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물
을 휘젓듯 하며 잠꼬대를 하는 중이 었어요. 그리곤 --- (머뭇거
린다.)
[검사] 그리고는 ---? 계속하시오.
[인지] 용서해 주세요. 어머니 제가 어머니를 죽였어요.
[검사] (독백처럼) 용서해 주세요. 어머니 제가 어머니를 죽였
어요.
[인지] (나직이) 또 이렇게 말했어요. (그 여자도 제가 죽였어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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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그 여자라니? 그 여자는 누구요?
[인지] (고개를 저으며) 나두 모르겠어요.
[검사] 저이는 그렇게 이틀 밤을 헛소릴 지르구 열에 들떠서
몹씨 앓더니 얼굴이 말이 아니게 야위워서 핼쑥해졌어요. 저이는
몸이 좀 나은 다음에두 통 말이 없었어요. 닷새 째 되는 날 아
침, 저이는 잠자코 집을 나섰어요. 그러면서 [네가 살길을 찾아
봐. 잘 있어] (열심으로) 허지만 그건 거짓말에요. 저이의 진심
이 아녜요.
[검사] 어디에 간다는 말은 안했는가요?
[인지] 며칠 후에 알고 보니 바루 그 날 저이가 경찰에 잡혔다
구.
[검사] 혹시 자수하겠다는 그런 말은.
[인지] 아무말두. 아무 말두 없었어요.
[검사] (잠시 생각하다가)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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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를 흠칠하고 제자리로 간다)
[변호사] (턱을 쓰다듬으며 일어선다) 몇가지만 묻겠는데요.
[인지] (아직 눈물이 글성해서) 네.
[변호사] (수건을 내 주며) 자. 이것.
[인지] 고맙습니다.
[변호사] 증인은 언제부터 성민주와 같이 지내게 됐읍니까?
[인지] 지난 유월이요. (수건을 변호사에게 돌려 주며) 여기
있읍니다.
[변호사] 두 사람은 어떻게 해서 만났지요?
[인지] 어떻게 만나다니요.
[변호사] (적당한 말이 없어) 응 직장에서 만나게 됐다든가.
혹은 그저 우연히 만났다든가 하는
[인지] 저 공원에서요.
[변호사] 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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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 제가 공원 긴 의자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저
이가 제 곁에 아무말두 없이 앉았어요. 날 유심히 처다 보더니
[그 노래 어디서 배웠지?]라구 물었어요. [왜요?] [글쎄] [그 저
배웠어요] [그저라루?] (인지의 대사가 진행되는 동안 법정의 조
명이 어두워지고 전면무대에 조명이 들어 간다. 공원이다. 밤.
밴치가 하나 놓여 있고, 객석쪽으로 난간이 있다 그러니까 객석
이 공원에서 내려다 보이는 야경이 되는 셈이다. 인지가 밴치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인지] (노래) 저 멀리 아메리카로 떠날 맘 간절하네 라라라
라라 라라라 머나아먼 나라로.
(민주가 등장. 벤치에서 발장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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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며 노래하는 인지를 유심히 보다가 옆자리에 앉는다. 인지가
노래를 끝낸다.)
[민주] 그 노래 어디서 배웠지?
[인지] (딴청하며) 왜요?
[민주] 글쎄
[인지] 그저 --- 배웠어요.
[민주] 그저라니?
[인지] (민주를 보며) 당신 여기 살아요?
[민주] 좀 전에 부르던 그 노래.
[인지] 난 여기 살아요. 여기가 내 집에요.
[민주] 그래?
[인지] (손가락으로 쿡 민주를 찌르며) 당신두 여기 살아요?
[민주] 아니.
[인지] 그럼?
[민주] 난 거지가 아냐
[인지] 나두 거지가 아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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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시시 웃고) 여긴 참 좋아요. 그지요?
[민주] 그렇군.
[인지] 여긴 별두 있고 공기도 따뜻해요.
[민주] 응? (하다가 웃으며) 별은 어디나 있지
[인지] 당신 아까 내 노래 훔쳐듣고 있었어요?
[민주] 아주 잘 불렀어.
[인지] 진짜?
[민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였어.
[인지] 에이. 거짓말. 내 목소리는 뚝베기 깨지는 소리래요.
[민주] 누가 그래?
[인지] 아저씨가요? (씩 웃고) 사실은 난 아저씨 집에서 살아
요. 아버지하구 엄만 죽었어요. 얼굴두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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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는걸요. 허지만 머 괜찮아요. 가끔 보구 싶기도 하지만 난 다
자랐으니까.
[민주] 그래 어른이지 근데 아저씨라는 분 좋은 사람?
[인지] 네.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술만 안 취하며는요. 그
렇지 않으면 좋은 분예요. 아저씨는 물장사를 하는데요. 쇠붙이
구 옷감이구 마구 사들여요. (민주와 눈이 마주치자) 사실은 매
일같이 취하시긴 해요 허지만 ---
[민주] 매일같이 여기 오나?
[인지] (민주의 손을 잡아 끌며) 이리 오세요. (민주를 데리고
난간으로 간다) 저기 좀 보세요. 불빛이 예쁘지요. 저 집을 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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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킨다) 괭장해요.
[민주] (과장해서) 그래 멋 있군 (눈을 찡긋하며) 혼자만 재미
보는군.
[인지] 쉿 비밀에요. (난간 사이에 둘을 가르키며) 나 여기 좀
올려 주세요. (민주 인지를 번쩍 들어 난간위에 올려 앉힌다.)
고마워요. (숨을 몰아 쉬고) 난 장군에요.
[민주] 장군이라니?
[인지] 말 탄 장군이요. (객석을 가르키며) 저건 시청. 조것은
남대문 저기 저것은 동대문. 그 옆에 저것은 창경원 그리고 저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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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서울역 기차가 떠나고 머무는 곳이지 화통기차가 말야.
(짐짓) 근데, 한강은 어뎃지?
[인지] 당신은 바보군요. 한강은 --- 저어 뒤에 있어요. 저기
[민주] (머리를 치며) 참.
[인지] 저것. 큰 집 있지요. 창문이 쭉 수없이 많지요. 그건
방에요.
[민주] 방이라구?
[인지] 거기서 사람이 살고 있는 거에요.
[민주] 그래?
[인지] 난 방을 여러 개 만들겠어요. 이렇게 (열 손가락을 여
러 번 내밀어 보인다)
[민주] 그렇게나 많이?
[인지] 방은 많을 수록 좋아요. 당신에게두 하나쯤 남겨줄께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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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손을 잡으며) 고맙군.
[인지] (모르는척) 거기서 뭘 하는지 아세요?
[민주] 뭐지?
[인지] (웃음을 참으며) 기차놀이에요. 방마다 역이 되지요 시
골역두 있구 큰 역두 있어요.
[민주]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겠군.
[인지] (손을 뻐치며) 아니요. 나혼자 살아요.
[민주] 방이 그렇게 많은데?
[인지] 난 매일같이 다른 방에서 자죠. 나는 여행을 자주 하니
까. 또 좋아하구요. 방은 많을수록 편리하거든요. 누가 옆에 있
으면 싫어요. 귀찮구 성가시구 그리구 무서워요. 다른 사람과 같
이 자는 건 싫어요. 정말
[민주] (나직이) 사람은 혼자서는 살기 어려운 법이야.
[인지] 그럼 둘 씩 살아요?
[민주] 둘 씩두 살구 또 경우에 따라선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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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넷두 여럿이서두 살지
[인지] 허지만 난 달라요. 난 혼자가 좋아요. (이상하다는 듯
이 민주를 보며 당신두 우리 아저씨와 똑 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아저씨두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사람은 혼자 살아선 못써. 여
자는 더욱 그렇지 여지에건 남자가 필요해]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전 지금도 모르겠어요. (얼굴을 찌푸리며) 아저씨가 제 방에서
자고 나간 다음날은 큰일이 벌어져요. 아주머니가 제방에 들어
와선 저를 막 때려요. 어떤 땐 인두로 내 등을 지지기두 해요.
그러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어요. 그래서 소리를 지르며 울군 했
지요. 아주머니는 [너같은 기집년을 뒈져버려) 하구 저를 때려
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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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 혼자 가는 날은 편안해요. 그날 밤두 다음 날두 난 아
주 편안해요. (그녀는 멍해진다. 사이 픽 웃고는) 사실은 당신을
첨 봤을때 무서웠어요. 낯선 사람들은 무서워요. 절 한참동안 보
구 있었지요? 난 알구 있었어요. 일부러 모른척하구 있었던 거에
요. 근데 당신은 나쁜 사람같이 뵈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당신이
내 옆에 앉았을 때 전 기뻤어요. 낯선 사람들은 무서워요. 당신
두 낯선 사람이긴 하지요. 지금두 그건 그래요. 그렇지만 우린
곧 친해질 것 같아요. 안 그래요? (손을 내밀며) 나 좀 내려 주
세요. 가야겠어요.
[민주] 어딜?
[인지] 집에요 늦었어요
[민주] 아저씨한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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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 내려 주세요. (민주 인지를 내려 준다) 고마워요.
[민주] 정말 갈테야 ?
[인지] 네
[민주] 나하구 같이 가구 싶다면
[인제] 싫어요 (간다)
[민주] 이것 봐. 나하구 같이 가구 싶다면 말야 (그냥 간다.
민주 좀 큰소리로) 널 데려가 주겠어.
[인지] (멈춘다)
[민주] 너두 날 따라 가구 싶지? 사실은
[인지] (돌아 본다. 딱하다는 듯이) 당신 그렇게두 나하구 같
이 가구 싶으세요? (민주 끄덕인다) 당신은 내가 좋아요? (민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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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민주가 활짝 웃는다) 그럼 할 수 없군요. (체념하듯이 어
깨를 착 내린다) (민주 말없이 걷는다. 퇴장)
[인지] (물끄러미 민주를 보고 있다가) 같이 가요. 이것 보세
요. 거기서 좀 기다리세요. (뛰어서 따라간다. 조명 어두워진다.
조명이 밝아지면 다시 법정. 인지에 대한 증인 심문이 계속중이
다)
[변호사] 증인은 그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구 했는데 그것이
무슨 노래였지요?
[인지] 저이 말이 자기 여자친구가 그 노래를 좋아했대요. 근
대 그 여자가 죽었대요. 그러면서 내가 꼭 닮았다는 거에요.
[변호사] 그 여자와요?
[인지] 네 (잔득 긴장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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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내 애를 베게 하구 싶은 여자군} 그러면서 그 여자에게
꼭 자기 애를 낳게 할 작정이었는데 그 여자는 죽었구 그러니 괜
찬타면 제가 자기의 애를 낳아 줬으면 고맙겠다면서 ---
[변호사] 그래 --- 승락했는가요?
[검사] 이것 보시오. 이건 너무 하지 않소?
[변호사] 재판장 본인의 보충심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읍니다.
[판사] 아, 검사는 흥분하지 말구 자기 차례까지 기다리시오.
[검사] 이게 무슨 택시잡기 운동이나 되는가요? 차례를 기다리
게.
[판사] 자. 진정하시오.
[검사] 이 무슨 도깨비같은 소린지 모르겠소. 생면부지의 여자
에게 자기애를 낳게 하구 싶다니. 원! 이것 한가지만 보아두 성
민주의 인간성이나 도덕관이 어느 지경이라는 것이 일목요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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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는 것입니다.
(투덜거리며 제 자리에 앉는다.)
[변호사] (인지에게) 계속해 주시오.
[인지] (무섭다는 듯이) 그 여자는 --- 사실은 자살이래요. 약
먹구요. 정말 끔찍해요. 불쌍하기두 하지요. 그래서 제가 {왜 죽
었어요?}하구 물었드니 저이는 {애를 낳지 못했기 때문에} 하구
는 {그러나 네가 내 애를 낳아 주면 마찬가지지) 했어요.
[민주] (괴로워서) 그만 인지. 그만!
[인지] 왜요? 난 당신이 한 얘길 그대로 하는 것 뿐인데요.
[민주] 그건 그짓말이었어. 내가 널 속인거야
[인지] 아녜요.
[민주] 내가 널 속였대두.
[인지] 뭣때문에요? 왜 절 속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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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참을 수가 없어) 오 제발 저 여자를 내 쫓아줘요. 저
여자는 미쳤어요. 백치란 말에요. (잠시 사이)
[판사] (헛 기침을 하고) 증인에게 더 물어 볼 말이 있소?
[변호사] (민주를 잠시 보다가) 없읍니다.
[판사] (인지에게) 가도 좋소. (인지 증인석으로 내려 간다.
민주를 원망스럽게 쳐다 본다. 잠시사이)
[판사] 성민주피고인 앞으로 나오시오. (민주 앞으로 나간다)
피고인에게 몇가지 다시 묻겠는데 에. 피고인은 사건 당일인 팔
월 이십칠일 밤 열시경 어디에 있었지? (대답 없다) 어디에 있었
는가 말야? (대답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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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현장에 없었나?
[민주] (가까스로) 있었읍니다.
[판사] 몇시부터 몇시 사이지?
[민주] 저녁 아홉시 삼십 분부터 열시가 좀 넘도록 있었읍니
다.
[판사] 틀림이 없는가?
[민주] 면 분은 틀리겠지만 --- 네
[판사] 거기서 뭘 했지?
[민주] 어머니와 얘기하고 있었읍니다.
[판사] 무슨 얘기 ?
[민주] 그저 --- 이것 저것
[판사] 피고인은 툭하면 이것 저것인가! (헛 기침을 하고) 피
고인의 모친이 살해 당했을 때 두 같이 있었나?
[민주] 네
[판사] 피고인은 자기가 쏘지 않았다구 주장하는데
[민주] 쏘지 않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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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그럼 누가 쐈지?
[민주] 그건.
[판사] 대답해 봐. 피고인이 쏘지 않었다면 누가 쐈는가? 어서
(대답이 없다) 무슨 말못할 사정이래두 있는가?
[민주] 네
[판사] (좀 화가 나서) 뭐야 그것이?
[민주] 말할 수 없읍니다.
[판사] 뭐라구? (화가 나서 책상을 치며) 피고인은 법정을 모
욕할 셈인가?
[민주] 아닙니다.
[판사] 그럼 말 못할 사정이 뭐란 말야? 범행을 부인하지도 않
구 시인하지두 않구. 본관과 술래잡기라도 하자는 거야?
[변호사] (도우려고) 재판장! 피고인은 지금 매우 혼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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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에 있는 것 같습니다. 심문을 잠시 중단해 주십시요.
[판사] (쾌히) 좋습니다. 피고인 뿐만 아니라 본관 지금 매우
혼미한 상태에 있오.
[검사] (불쾌해서) 재판장
[판사] 뭡니까? 또
[검사] 신성해야 할 법정이 너무 문란한 것 같습니다.
[판사] 사람이 하는 일이니 어쩌겠오.
[검사] 그렇지만 어딘가 --- (하다가 체념하고) 본인은 하인혜
여사 살해사건에 관련해서 가정부로 있는 김옥희양을 증인으로
채택코저 합니다.
[판사] 허락합니다. (정리. 김옥희를 데리고 등장)
[판사] 당신이 김옥희씨입니까? (옥희 고개를 끄덕인다)
[페이지] 085
당신을 본 사건에 관한 증인으로 채택하였으니 그리 알어 주시기
바랍니다. (옥희 고개를 끄덕인다) 나이는?
[옥희] (얼굴을 붉히며) 열아홉에유.
[판사] 직업은 ?
[옥희] 식모유. 가정부라고도 하는가 보든디
[판사] 하인혜여사 살인사건을 아는가요?
[옥희] 예.
[판사] 사건이 벌어진 시간에 증인은 어디에 있었나요?
[옥희] 미장원에유.
[판사] 미장원이 어디 쯤 있지요?
[옥희] 바루 집 앞에유 엎드리면 코달덴디.
[판사] 미장원엔 왜 갔었지요? 머릴 만지러 갔었나요?
[옥희] 아 오밤중에 누가 머리를 볶으라 가요? 마실 갔었거뭔
요.
[판사] 그럼 그기서 총소리를 들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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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 (서너번 끄덕이며) 예.
[판사] 그래서 어떻게 했지요?
[옥희] 아 깜짝 놀래가지군 아이구머니나 이것이 웬 날벼락인
가 했드니 미장원 경자가 총소리 같다구 안하는가요. 그래서 어
디서 나는 소린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무래두 우리 집에서 나
는 소린 것 같단 말에유. 그래서 곧장 집으로 달려 갔구먼유.
[판사] 대문이 열려 있었던가요?
[옥희] 예 막 문을 들어서려는데 아저씨가 현관문에서 뛰어 나
와서
[판사] 아저씨란 누굴 말하는 것이지요?
[옥희] 누군 누군에유. 주인집 아들 말에유.
[판사] 그래서
[옥희] 그래서. 제가 아이구 아저씨 방금 사전에 뭔소리가 났
구먼요. 했지요.
[판사] 그때 성민주 옷에 피 같은 것이 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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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있지 않던가요?
[옥희] 성민주가 누구에유?
[판사] 음 그 주인집 아저씨말야.
[옥희] 작은 아저씨유 큰 아저씨유
[판사] 그래 작은 아저씨 말야
[옥희] 에! 그건 아저씨가 아녜유. 주인 아주머니 아들이지
(옥희 신이 나서) 지 집에는 아저씨가 둘에유. 작은 아저씨는 밖
에 나가서 살구 큰 아저씨는 집에서 살아요. 그리구 큰 아저씨는
아주머니 방에서 밤마다 안 자는가유 (피식 웃고) 목욕도 같이
해요.
[판사] 그래 그 작은 아저씨 옷에 피같은 것이 묻어 있지 않던
가 말야?
[옥희] 몰라요
[판사] 몰라 ?
[옥희] 캄캄 어둠 속에서 뭐가 보이기나 하
[페이지] 088
간다유
[판사] 현관에 불이 없는 가요?
[옥희] 있긴 있지만서두 워낙 정원이 넓어 싸니까.
[판사] 하여간 그 때 대문에서 만난 사람이 주인집 아들인 성
민주임에는 틀림이 없었단 말이지?
[옥희] 예
[판사] 그 다음 집에 들어가 보니 주인아주머니가 죽어 있었
구?
[옥희] 예
[판사] 그 때가 몇시가량 되었는가요?
[옥희] 한 열 시쯤 됐는가 모르겠네유.
[판사] 어떻게 시간을 기억하지요?
[옥희] 그참에 연속방송극이 끝나니께.
[판사] (지쳐서) 알았어
[검사] (일어서며) 재판장 증인 김옥희에 대하여 보충심문이
있읍니다.
[판사]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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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옥희에게 가서) 증인이 총소리를 듣구 집으로 가다 문
에서 성민주를 만났다구 했지요?
[옥희] 대문안에서에유
[검사] 정원이겠군 그럼?
[옥희] 예.
[검사] 그때 증인이 [총소리가 났어요] 했더니 성민주가 [어머
니가 죽었어 했다는데.
[옥희] 그랬는가 어쨌는가 ----
[검사] 그래서 증인은 뭐라구 했지요?
[옥희] 응. 아 하구 놀랜 것 같구만요.
[검사] 그랬드니 성민주가 뭐라고 하던가요?
[옥희] 뭐라구 하긴 했는디
[검사] {내가 죽였어} 하지 않던가요?
[옥희] (잠시 생각하고) {내가 쥑인 것이나 매 일반여} 했던
것 같에유. 에 맞아유.
[검사] (버럭) 내가 죽였다구 했다구 말하지 않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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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 (겁에 질려) 예
[검사] 그런데 왜 거짓말을 하지요?
[옥희] 지가 언제 거짓말을 했어요?
[검사] 지금 방금 내가 죽인 것이나 매 일반이다 라구 했다구
말하지 않았오.
[옥희] (부어서) 그랬어유.
[검사] 그러니 거짓말 아니냐 말야
[옥희] 그것이 어째서유? 매 일반이니께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
지 뭐에유. 전 참말로 거짓말 같은 건 안 해 봤어유.
[검사] (단념하고) 성민주가 그 사건이 일어나기 닷새전에 집
으로 찾아 와서 하인혜와 다퉜다는데 그것이 사실인가요?
[옥희] (짐짓) 하인혜가 누구에유.
[검사] 성민주의 어머니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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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 에. 주인아주머니유.
[검사] 그 얘길 좀 해 주시오.
[옥희] 예 (생각을 다듬어) 그러니께 --- 주인아주머니가 그
끔직 끔직한 일을 당하시기 며칠전이었어유. 아마 열두시두 훨쑥
넘었었을 거에요. 그래 지가 목욕을 마치고 지방으로 가려는디
아주머니 방에서 누가 고래 고래 고함을 치지 않겠어유? 하. 그
것 밤낮 쌈질은 왜 했쌌는가 하구 그냥 지나쳐버릴라는디 들려
오는 말소리가 아무래두 되련님 목소리 같에유. 마춤 잠도 안와
쌌고 심사도 살랑거려서 마루에 쭈구리구 앉아 얘기를 엿듣지 않
았겠어유. 첨엔 다시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좀 있더니만 되련님이
버럭 버럭 소릴 질러대고 (긴장해서) {모두 다 쥑여버릴 것이어}
해유.
[페이지] 092
그래 저는 깜짝 놀래가지군 지방으로 곧 바루 뛰어가 숨어버렸거
먼요.
[검사] 모두 죽여버리겠다 이랬단 말인가요?
[옥희]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 들어유. (전면 무대에 조명이
들어 간다. 낡은 대나무의자가 한개. 하인혜의 방. 하인혜 의자
에 앉아 있다. 민주는 그 옆에 서 있다)
[민주] 지난 봄 생각나세요? 전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었어요.
그리구 봄이 되자 집으로 돌아 왔어요. 밖에서 지낸 겨울은 몹시
춥드군요. 따뜻한 곳을 찾게 되고 그러자 집이 그리워지는 것이
었어요. 내게두 내가 살 집이 필요하구나. 그래요. 어느 봄 날
나는 갑자기 집으로 돌아 왔어요. 문을 미니까 문은 열려 있었어
요. 이게 우리 집이구나. 내가 여기서 살고 있었지. 그리구 여기
서 엄마와 함께 살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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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문을 열었어요. 아무도 없드군요. 신을 벗구 마루로 올라
갔어요. 변한 것은 한가지두 없었어요. 그 가구에 그 그림들. 내
가 늘 창가에서 앉아 있던 낡은 흔들의자. 이 모든 것들이 내 손
때가 묻고 내 눈길에 익숙했어요. 나는 왈칵 울음이 터질 것 같
애서 창밖으로 눈을 돌렸어요. 그랬더니 정원에는 온통 개나리가
뒤덮여 있어서 눈이 부시더군요. 이런 것이 행복이구나 나는 생
각했어요. (조용히 웃더니) 어머니의 방문을 열었어요. 방안은
한낮인데두 밤처럼 어두웠어요. 그리고 어머니 침대에는 한 남자
가 막 이불 속으로 숨는 중이었어요. 나는 문을 닫을 수도 없구
그렇다구 방안으로 들어설 수도 없어서 잠시 막연히 그대로 서
있었지요. 그러자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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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가 얼굴 하나 가득히 웃음을 뛰우시면서 말씀하셨어요. {돌
아 왔구나 얘야} 그런데 난 웃을 수가 없었어요. 어머니는 웃고
계시는데 전 웃을 수도 없었던 것이예요.
[인혜] (변명을 대려고 애쓰며) 그건 네가 --- 시간을 잘 못대
왔기 때문에 ---
[민주] 네. 그래요. 애초에 어머니한테 가는 것이 아니었어요.
[인혜] 넌 내 마음을 몰라. 내가 얼마나 괴로웠다구. 우린 언
제나 같이 지내지 않었니? 그런데 네가 불쑥 집을 나가 버렸어.
너만 내 곁에 있어줬어두 난 견딜 수 있었다.
[민주] 뭐을요?
[인혜] 변한 건 아무 것두 없어. 근데 왜 네가 날 구박주는지
모르겠다. (웃으며) 설마하니 네가 그사람 때문에 ---
[페이지] 095
[민주] (담배를 꺼내며) 어머니에게 남자가 있는 것이 어디 이
번이 처음인가요?
[인혜] 허지만 그건 네가 내 곁에 없었을때 뿐이었다.
[민주] 저 때문에 어머니에게 남자가 생겼다구요? 내. 참.
[인혜] 그래. 너만 있어 봐. 내가 뭣때문에 --- 얘 너두 알지
않니?
[민주] (익살스럽게) 어떤 여자가 여관방에서 나가기가 부끄러
워 자살을 했대요. 믿을 수 있어요?
[인혜] 얘가 뚱단지같이 무슨.
[민주] (담배를 깊숙히 마시고)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해요. 어
머니는 어둠이라고 (사이) 거기선 모든 것이 형체를 잃어요. 아
름다운 것두 더러운 것두 상상 속
[페이지] 096
에서만 살고 있을뿐. 그림자도 없어요. 그래서 나는 그 어둠을
사랑했어요.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저에겐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속임수가 마치 큰 죄나 되듯이 나를 얽거매었어요. (사
이) 그건 어머니가 만드신 것이지요. 저는 눈이 있어면서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으면서도 들을 수가 없었어요. (독기가 나서) 결
국 밀려 가는 것이지요. 저는 어머니에게 편승하고 어머니는 저
에게 편승하고 이젠 정말 진저리가 나요.
[인혜] 거짓말 마라. 우린 정직하게 살아왔다. 남을 어쩐 일두
없었어.
[민주] 어머니 이것만은 속이지 마세요. 어머니를 떠난 건 제
가 아녜요. 어머니가 그렇게 만드셨지요. 어머니가 절 내쫓으신
거지요.
[페이지] 097
(증오로 변하여) 당신은 회전목마의 한 가운데에 버리고 앉아서
세상이 빙빙 돌아가는 꼴을 보구 싶으시지요. 이죽거리구, 힐책
하고. 자기를 거역하는 것들을 때려 부시고 당신에게 순종하면
알맞은 먹이나 내던져 주고 --- 어디서 남자에 환장한 것이 (죽
음과 같은 침묵. 이윽고)
[인혜] 나 담배 한 대 다오. 내 것은 마딤 다 떨어졌구나.
[민주] 네 (담배 갑을 보며) 막 담배군요. 여깅어요.
[인혜] 한 가치뿐이면 네가 피렴.
[민주] 괜찮아요. (방바닥에서 담배를 줏으며) 전 이걸 피지
요.
[인혜] 그만 둬라. 내 응접실에 가서 가져오마.
[페이지] 098
[민주] 그만 두세요. (막는다)
[인혜] 그럼 식모 애를 부르자
[민주] (인혜를 뒤에서 안으며) 그만 두세요. (인혜를 고개를
뒤로 돌려 무슨 말인가 하려 한다. 그러나 이내 단념한다. 모자
간의 어떤 숙명적인 따뜻한 애정이 감돈다. 그것은 순순한 모자
간의 애정이다)
[인혜] (몸을 배치며) 참 성냥이 어딧드라.
[민주] 여기 --- 불 있어요.
[인혜] 왜 또 갑자기 시무룩해지니?
[민주] 아니에요 그저 좋아서.
[인혜] (민주의 어깨에 기대며) 자식두 제법 사내 냄새가 나는
구나. 아. 참 이것이 마지막 담배랬지?
[민주] 네 ?
[인혜] 애첩두 안 주는 담배를 내가 피우는구나.
[페이지] 099
[민주] 어머니두 (멋적게 웃으며) 난 마치 여관방에 갇힌 여자
의 심정에요.
[인혜] 건 또 왜 ?
[민주] 자꾸만 유예 당하고 있는거지요. 방안에 누워 있는 동
안만은 괜찮은 법이니까요. 허지만 밖으로 나갈순 없어요. 부끄
럽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미루면 미룰수록 여관을 나서기가 더
무서워져요.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기만을 노려볼 것 같애서지
요.
[인혜] 허지만 얘 일단 밖으로 나가면 문을 나서는 순간 끝이
난다. 그까짓것. 아무렇지두 않아. 한 번 나서기가 어렵지.
[민주] 어머니 생각두 그러세요?
[인혜] 그럼 어떻게 하겠니
[민주] 제 생각두 같애요 (여유를 두고)
[페이지] 100
그래서 전 결혼할 생각에요.
[인혜] 응, (사이, 애써서) 잘 생각했구나. 너두 이젠 안정할
때가 됐지. 가정이 없는 남자는 딱해 뵈드라. 마침 시기를 잘 마
췄어. 그래 누구냐
[민주] 말씀 드려두 어머닌 모르세요.
[인혜] 예쁜 여자니?
[민주] 참, 별 것을 다 물으시네요.
[인혜] 한번 만나보구 싶구나. 나야 뭐 네가 좋다면 좋은 거지
만 그래 그 여자 집에선 뭐라구 하니? 좋대?
[민주] 가족이 없어요.
[인혜] 그럼 고아야?
[민주] 홀가분해서 좋지 않아요?
[인혜] 허긴. 응 걱정할 것 없다. 방두 남겠다. 집안이 텅 비
니까 적적해서, 얘 그애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오렴. 아마 그애두
날 좋아하게 될거다. 그리구 나두.
[민주] (힘 없이) 어머니두 잘 아시지 않아요? 그 애가 이집에
와서 살게 되면 그앤 죽어버리든가 도망치구 말거에요.
[인혜] 어떻게 그런 소릴 --- . 얘 그러지 말고 집에 한번 데
리고 와 보렴 보구 싶구나.
[민주] 안돼요.
[페이지] 101
[인혜] 왜 ? 왜 말이냐?
[민주] 어머닌 참 딱두 하시네요. 그애를 여기 데려와서 어쩌
자는 거에요. 어머닌 벌써 잊으셨어요? 설마하니 그 일을. (나직
이 - ) 대답해 보세요. 어머니 녜?
[인혜] 갑자기 무슨 소리냐?
[민주] 모르시겠어요?
[인혜] 잊다니? 무슨 일을.
[민주] 백희 말에요. (인혜 공포에 질린다. 눈을 꿈벅이며 민
주를 가만히 응시한다. 차츰 나른해진다.)
[민주] (괴로와서) 잘못했어요. 어머니 내가 그 얘길 왜 또 꺼
냈을까요? 내가 미쳤지. 이미 지나간 일인데 잊어버리세요. 잊어
버리세요.
[인혜] 넌 마치 내가 그애를 이봐라 날 좀 봐. 넌 지금 무슨
말을 했지?
[페이지] 102
[민주] 아니라니까요. 아니에요. 제발.
[인혜] 오냐. 알았다. 넌 내가 그 애를 계획적으로 ---.
[민주] 정말 왜 이러세요?
[인혜] 지금이래두 늦지 않았어. 우리 분명히 하자. 그애가 뭣
때문에 죽었는가!
[민주] 어머니 제발, 날 좀 살려주세요. 제가 이렇게 빌겠어
요.
[인혜] 너나 나나 마찬가지다. 우린 똑같이 백희를 이용했어.
특히 나보다 네가 더 심했지, 너는 그 애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
어. 그렇지 않다면 그애를 병원에 데려갈리가 없지 않니?
[민주] (웃음을 터뜨린다. 울음같기도 한.)
[인혜] 넌 백희를 이용해서 이집을 떠나구 싶었지? 내가 모를
줄 아니? 그래 내가 가만히 안아서 장님마냥 손을 더듬거리기나
할 줄 알았니? 근데 또 네 꼴이라니? 난 네 소원대로 사색이다
돼서 너한테 빌었다. 다
[페이지] 103
시 집으로 돌아오리라구. 네 소원을 다 들어주겠다구 하지 않었
니?
[민주] (방기상태에서) 그래서 난 백희를 버렸어요. 하지만 어
머닌 백희를 용서하지 않았어요 그애를 죽이시고야 말았지요.
[인혜] 그래. 그랬다. 그것이 네 소원이었으면서 시침이를 떼
는구나 정말 뻔뻔스러운 것은 너란 말이다.
[민주] (진심으로) 나는 그애에게 사죄하구 싶었어요. 빌구 싶
었어요. 깽깽발을 하구 뛰라면 십리구 백리구 뛸 결심이었어요.
그리구 나를 구원해 달라구 부탁할 생각이었어요. 아시겠어요.
난 사람처럼 살구 싶었어요. 남들처럼 웃고, 어깨를 활짝 피고
거리를 걷고 싶었던 거에요.
[인혜] 너는 잘못이 없단 말이지?
[민주]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녜요.
[페이지] 104
[인혜] 허지만 얘. 속담에두 있지 않니? 여자가 반항을 하면.
[민주] (새파랗게 질려서.) 어머니!
[인혜] 왜 그러니? 그게 무슨 비밀이라구. 지금 와서 숨길 게
뭐있니? 세상이 다 아는 일을. (거의 정신이 나가서) 그앤 넌 싫
어했다, 네가 속은 거야. 그렇지않다면 그 일이 벌어진 후 너한
테 사정을 말하구 빌지 않았겠니? 도망처버리지 않았니? 더욱이
그 사내와 함께 말이다.
[페이지] 105
[민주] 모 --- 두 죽여 버리겠어. 모두 다. (그는 밖으로 뛰어
나간다. 인혜. 조각처럼 서 있다. 이윽고 의자에 힘없이 풀썩 주
저 않는다. 울음이 터지는 것을 간신히 참고 견디다. 권중혁이
조심스럽게 등장한다. 인혜에게 간다. 그녀의 어께를 손으로 잡
아 준다. 인혜는 손만을 움직여 중혁의 손을 잡는다. 인혜. 설움
이 복바쳐 오른다. 얼굴을 갑작히 중혁의 손에다 부빈다.)
[인혜] 여보, 난 어떻게 해요. 난. (중혁을 껴 안으며) 그앤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다시는 --- (중혁의 눈에도 눈물이 맺인
다. 그는 외면한다.) (전면무대 조명 어두워지고, 다시 법정, 검
사가 여전히 증인 심문을 계속하고 있다, 성민주는 옷을 갈아입

[페이지] 106
피고석에 앉아 있다.)
[검사] 모두 --- 죽여버리겠어. 성민주가 이렇게 말했단 말이
지요?
[옥희] 예
[검사] 재판장. (어께를 으쓱하며) 저는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제자리에 앉는다.)
[변호사] (벌떡 일어나며.) 재판장, 보충 심문이 있읍니다.
[판사] 좋습니다.
[옥희] 피곤해 죽겠는디 언제나 끝난당가?
[변호사] 증인에게 묻겠는데요, 한 가지만 미리 말해둡시다.
증인의 증언에 따라서 어쩌면 죄가 없을 지도 모르는 한 사람의
생명이 좌우된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그러니까 정확한 사실을 말
해야지 희미한 일을 가지구 사실처럼 말해선 안되오.
[검사] (일어서며) 변호사는 법정에서 증인을 교육시킬 셈이
오?
[페이지] 107
(판사에게.) 재판장. 이건 심문이 아니라 협박입니다.
[변호사] 재판장. 증인의 지능정도가 어느만큼인가는 증인의
답변태도로 봐서 명백합니다. 따라서 증인에게 주의를 한것 환기
시켜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판사] 계속하시오.
[변호사] (옥희에게) 증인은 내말을 알아 들으셨나요?
[옥희] 예.
[변호사] 사건이 일어나던 날 밤, 증인은 미장원에 있었다구
했지요?
[옥희] 예.
[변호사] 거기서 뭣을 하구 있었나요?
[옥희] 방송극을 듣구 있었다니께유.
[변호사] 방송극을 좋아 하나요?
[옥희] 예, 무척 좋아해유.
[변호사] 무슨 방송극이었지요?
[옥희] 그런 것두 대답해야 하나유.
[페이지] 108
[검사] 재판장. 변호사는 증인을 유도심문하고 있읍니다.
[판사] (변호사에게) 검사의 의견에 동감입니다.
[변호사] 좋습니다. (옥희에게) 미장원에서 총소리를 들었다구
했지요.
[옥희] 예, 몇 번이나 말해야 알어들어유. 참.
[변호사] 집에는 정원이 있다는데 얼마나 큰가요?
[옥희] 꽤 커유.
[변호사] (빙긋 웃고) 친구와 래듸오를 듣구 있으면서 길 건너
에 그것두 정원이 있는 깊숙한 집에서 나는 총소리를 들을 수 있
을까요?
[옥희] 그걸 지가 어떻게 알어유? (자신이 없어서) 그렇긴 하
지만요. 그것이 분명히 (싱긋 웃고) 틀림없는 사실에유.
[변호사] 뭐가요?
[페이지] 109
[옥희] 인자 막 방송극을 들을려구 라디오를 킬 참인디, 경자
가 무슨 총소리 같은 것이 났다구 해유, 그래 지가 잡것이 별 흉
한 말을 다 헌다구 해 줬지유. 그리구 방송극을 다 듣구 막 일어
설 참인디 탕 탕하구 총소리가 낫구먼유. 그래서 알았어유. (자
기 말에 만족해서 싱긋 웃는다.)
[변호사] (나직히) 몇 번 소리가 났지요?
[옥희] 한 대 여섯번은 될까 모르겠어유. 거짓말이 나녜요. 지
가 한번만 들었어두 장담은 안 해요.
[변호사] 그러니까 방송극이 시작되기 전에 총소리 비슷한 소
릴 들었단 말이지요?
[옥희] 예.
[검사] (일어나며,) 변호인은 증인을 유도심문하고 있읍니다.
중지시켜 주십시요.
[변호사] 이상입니다. (검사, 할 말이 없어져 다시 앉는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증인 김옥희
[페이지] 110
의 증언은 별루 신빙성이 없다는 점입니다.
[판사] 증인은 가도 좋소
[옥희] (애가 타서) 거짓말이 아니에유. 지기 뭣 때문에, 분명
히 이 두 귀로 ---. (하면서 정리에게 인도되어 퇴장.)
[판사] 피고인 성민주, 앞으로 나오시오. (민주 나온다.)
[판사] 증인 김옥희에 의하면 사건이 벌어진 날 열시경 피고인
을 대문에서 만났다는데 그것이 사실인가?
[민주] 몇 시인지는 잘 모르지만 대문에서 만난 건 사실입니
다.
[판사] 대문에서 만났으면 열시지 어째서 모른단 말인가?
[민주] 대문에서 만난 건 사실이지만,
[판사] 그럼 열시가 아닌가. 대문에서 만났다면 김옥희의 말이
맞는 것이구 김옥희의 말이 맞는다면 김옥희가 피고인을 열 시에
만났다니가 열 시가 아
[페이지] 111
니구 뭐야 말야? 안 그런가?
[민주] (할 수 없이.) 그렇습니다.
[판사] 그럼 피고인은 어째서 열시에 대문에서 김옥희를 만나
게 되었지?
[민주] 무슨 말씀이신지?
[판사] 김옥희를 만난 이유를 대라는 것이야.
[민주] 제가 좀 빨리 나가거나 김옥희가 좀 늦게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판사] (신이 나서) 그럼 피고인은 하인혜여사가 살해된 다음
현장에 잠시 머물러 있었군?
[민주] 예.
[판사] 왜 빨리 도망치지 않구 서성거렸지?
[민주] 어이가 없어서였읍니다.
[판사] 어이가 없어? 어이가 없을 법두 하지. (끄덕이고) 그렇
게 어이각 없을 걸 왜 그런 짓을 했어?
[민주] 판사님.
[판사] 피고인은 묻는 말에만 대답해 (민주 풀이 죽는다.)
[페이지] 112
그럼 대답해 봐.
[민주] 녜.
[판사] 대답해 보라는데 녜라니? (화가 나서) 내 말은 왜 하인
혜여사를 살해했는가 그 이유를 대란 말이야.
[민주] (딱해서) 이유가 어디 있겠읍니까? 판사님
[판사] 그럼 이유도 없이 죽였단 말인가? (대답이 없다) 그럼
좀 전에 증인 김옥희가 총소리가 두 번에 걸쳐났다구 하는데 그
건 어떻게 생각하지?
[민주] 저는 모르는 사실입니다.
[판사] 모르다니?
[민주] 그 여자의 말을 믿구 말구는 판사님 자유입니다. 하지
만 그것을 대구 안대구는 저의 자유입니다.
[판사] 그따위 말이 어딨는가! (민주 고개를 떨군다.) 피고인
의 그따위 불손한 태도가 더욱
[페이지] 113
피고인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모르는가?
[민주] 압니다.
[판사] 그럼 그따위 답변이 어디 있어!
[민주] (조용히) 김옥희 양의 증언은 허위입니다. 총알은 단
세 발 밖에 없었읍니다.
[판사] 그럼 김옥희가 허위 증언을 했단 말이지?
[민주] (애원한다.) 판사님 이젠 제발 재판을 끝내 주십시요.
죄가 있다면 벌을 내리시구 죄가 없다면 절 놓아주십시오. 사실
은 모두 드러나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사실대로 판결을 내려 주
십시오. ( 긴 사이.)
[판사] (엄숙하게) 에. 그럼 이것으로서 오늘 공판을 끝내기로
하겠읍니다.
[변호사] 재판장
[판사] (무시하고 더 큰 소리로) 그럼 다음 공판은 구월이십오
일 오전 열시에 열기로 하겠읍니다.
[페이지] 114
[서기] 기립 (판사 퇴장)(방청석의 사람들 흩어지고 검사와 변
호사도 퇴장. 정리가 민주에게 가 수갑을 채운다.그를 끌고 나가
려는데 인지가 민주의 팔에 매달린다.)
[정리] (인지를 떼며) 저리 비키시오.
[인지] (다시 매달리며) 잠간만, 한 마디만,
[정리] 안돼요. 저리 비켜요.
[인지] 순경아저씨, 부탁에요, 한 마디만,
[정리] (밀며) 난 순경이 아니에요. 할 말이 있으면 면회신청
을 내요. 아무튼 여기선 피고인과 얘기 할 수 없으니 저리 비켜
요.
[인지] 이건 중요한 얘기에요. 저이에게 꼭 얘기해야 해요.
(다른 정리가 인지를 붙잡는다. 정리는 민주를 데리고 복도로 나
간다. 복도에 조명 들어가고 법정은 어두워
[페이지] 115
진다. 인지 정리에게서 빠져나와 민주의 발에 매달린다.)
[인지] 여보, 내 말 한 마디만 들어요. 당신은 죽으면 안 돼요
[정리] 아니, 이 여자가 정말,
[인지] 당신은 죄가 없어요. 그러니 없다구 말하세요. 우기기
래두 하세요. 거짓말이래두 시키세요.
[정리] 정말 저리 못 가겠소.
[인지] (정리를 밀치며) 건드리지 마세요. (다시 민주에게) 당
신 벌써 잊으셨어요. 저에게 애를 낳게 하구 싶다구 하구선, 내
가 당신의 애기를 낳아드릴게요.
[정리] (어이가 없어) 미친 여자군.
[민주] (나직이.) 둘아가 인지.
[인지] (투정부리듯이) 당신은 거짓말쟁이군요. 정말 거짓말이
었어요.
[민주] (외면하고) 인제 알았어? 그러니 다
[페이지] 116
신 여기 오지마.
(민주 앞장 서 간다. 정리, 인지를 흘겨보고는 뒤따라간다.)
[인지] (주저 앉은 채로)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
랑해요. (독백처럼) 당신의 애를 밴 걸요. (갑작기 소리친다.)
모르세요 나는 당신의 애를 가졌어요. 당신의 어린애 말에요.
(민주 우뚝 선다. 천천히 돌아서 정말이냐는 듯이 쳐다본다. 인
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민주 고개를 젓드니 퇴장한다. 인
지 멍하니 그 뒤를 바라보고 있다.
[페이지] 117

[막] 제 3 막

전막과 같은 장면. 법정은 어딘가 빈 것처럼 집중이 안되어 있
다. 검사가 형사주임에게 증인보충신문중이다.
[검사] 범인이 누군지 대지 않았단 말이지요?
[주임] 모른다고 잡아뗐읍니다.
[검사] 신고는 누가 했나요?
[주임] 주민들이 총소리를 듣구. 그러니까 신고를 받고 사건현
장에 도착한 것은 사건 발생후 약 삼십분이 경과한 후 였읍니다.
[검사] 권중혁씨가 신고를 한 것이 아니구요?
[주임] 녜.
[검사] 하인혜 여사 집에는 누구 누구가 있었읍니까?
[주임] 하인혜 여사는 침실 한 가운데에 저- 소파 곁에 쓰러져
있었다오. 권중혁씨는 창가에서 이렇게 등을 돌리고 밖을 내다보
고 있었읍니다.
[페이지] 118
[검사] 아무 말두 않하던가요?
[주임] 범인은 이미 도주했다구만 하더군요.
[검사] 그렇게 물었는 가요?
[주임] {사건현장에 계셨나요?} 했더니 {나와 저 여자 그리구
범인 이렇게 세사람뿐이었어요.} 했읍니다.
[검사] 저 여자는 식모애를 가르킨건가요?
[주임] 아니오. (손가락질해 보이며) 이렇게 하인혜여사를 가
르켜 보였읍니다. 그래서 아- 범인 체포는 문제 없군- 하구 생각
돼서 곧 현장조사에 나섰지요.
[검사]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묻겠읍니다. 권중혁씨의 태도
에서 뭐 이상한 것을 느끼지 못했는가요?
[주임] (간단히-) 없읍니다. 덧붙인다면 권중혁씨는 매우 충격
을 받은 것 같았구 또 상심 때문에 얼굴이 안돼 보였읍니다.
[페이지] 119
[검사] 이상입니다.
[주임] (일어나며-) 이제 됐읍니까?
[변호사] 잠간. 몇가지 이상한 점이 있는데- (주임. 다시 증인
석에 앉는다.) 실례지만 경찰에 몇 년가량 근무하셨나요? (주임
난처하게 웃는다.) 말씀해 주시오.
[검사] 재판장. 변호인은 증인에게 인격 모욕을 가하구 있읍니
다. 대체 그것이 이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이요?
[변호사] 확실히 관련이 있오.
[판사] 에- 변호인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시오.
[변호사] 본인은 증인의 증언 가운데 몇가지 맹점을 발견해 냈
읍니다. 그래서 증인이 얼마만한 수사경력을 가지고 있나 묻는
것입니다.
[판사] (끄덕이고 주임에게-)
[페이지] 120
증인은 답변하시오.
[변호인] 몇 년가량 근무하셨지요?
[주임] 십 년쯤입니다.
[변호사] 처음부터 수사관이었나요?
[주임] 아닙니다.
[변호사] 그럼?
[주임] 수사계에 근무하기 시작한 것은 이년 전 경위로 승진하
구서부터지요.
[변호사] (재판관에게) 재판장, 이점을 유의해 주십시오. (다
시 증인에게) 우선 사건현장에 닫자마자 왜 범인을 먼저 추궁하
지 않았지요?
[주임] (기분이 나빠서) 결국 알아내지 않았읍니까?
[변호사] 잊고 있었던 건 아닌가요?
[주임] 아니오.
[변호사] 사건현장에는 범인이 없었다구 했는데 어째서 범인이
그 방 안에 없었다구 생각했지요?
[페이지] 121
[주임] 그건
[면호사] 권중혁씨가 범인이라구 생각되진 않던가요?
[검사] 재판장.
[판사] (변호사에게) 본 사건의 피의자는 성민주요. 이 점을
잊지 마시오.
[변호인] 알겠읍니다. (다시 주임에게) 방 안에 들어섰을 때
당신말대로 권중혁씨가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구 했는데 어떤
표정이었지요? 그리구 심문이 진행되는 동안 어떻게 변해갔나요?
[주임] 모르겠읍니다.
[변호사] 모르다니오?
[주임] 창밖을 보고 있었다구 하지 않었읍니까? 그 표정을 보
기 위해서 제가 창밖에 나가서 얘기할 순 없는 노릇이구 (비웃음
을 띠고)
[페이지] 122
대체 심문 당하고 있는 사람의 표정같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읍
니까? 경찰관은 심리학자가 아니에요.
[변호사] 그럼 당신은 피의자를 심문할 때 언제나 사람 뒷통수
에다 대구 질문합니까?
[주임] (화가 나서 판사에게) 재판장님. 이런 모욕적인 질문엔
더 이상 답변할 수 없읍니다.
[판사] (주임에게) 증인으로 채택된 이상 증인은 본 법정의 심
문에 답변해야 할 의무가 있오. 변호사. 계속하시오.
[변호사] (판사에게 답례하고) 권중혁이 하인혜여사의 정부라
는 사실을 맨 나중에야 알았다구 했는데
[주임] (비틀려서) 그렇소.
[판사] 증인은 변호인의 질문에 공손히 대답하시오.
[변호사] 권중혁이 하여사의 시체를 손가락질해
[페이지] 123
가르키며 저 여자라구 했을때 이상하다구 생각되지 않았나요?
[주임] 아니오.
[변호인] 전혀?
[주임] (망서리며) 조금은 이상하다구 생각했읍니다.
[변호사] 그럼 처음엔 남편이라구 생각했나요?
[주임] (빙긋 웃고, 자신에 차서) 그럼, 그 시각에 여자 침실
에 있는 남잘 누구라구 생각하겠어요.
[변호사] 시체를 손가락질해 보였는 데두?
[주임] (어리둥절해서) 뭐라구요?
[변호사] (성민주를 한 번 쳐다보고 빙긋 웃는다) 사건현장에
권총이 떨어져 있었나요?
[주임] 녜.
[변호사] 어디 있던가요?
[주임] 문가에 범인이 총을 쏜 지점에요.
[변호사] 범인이 총을 쏜 자린 어떻게 알아냈지요? 총이 그자
리에 떨어져 있었기
[페이지] 124
때문인가요?
[주임] 아니요.
[변호사] 그럼 권중혁씨가 그렇게 진술했기 때문인가요?
[주임] (화가 나서) 수사관은 바보가 아니예요.
[변호사] 어떻게 알았는지 대 보시오.
[주임] 사격거리라든가 그밖에
[변호사] 그밖에? (대답이 없다) 알았읍니다. 그럼 (판사 앞에
가 권총을 들고 다시 증인에게 가) 이 권총을 어디서 보았지요?
[주임] 사건현장에서요.
[변호사] 누구 소유지요.
[주임] (퉁명하게) 범인 것이겠지요.
[변호사] 그럼 성민주의 소유란 말이군요?
[주임] 녜
[변호사] 이 권총에서 성민주의 지문을 채취했
[페이지] 125
나요? (대답이 없다) 여기서 누구의 지문을 채취했는가요?
[주임] 아무 것두
[변호사] 아. 그럼 범인은 범행 후엔 총의 거죽을 깨끗이 닦아
냈군요. 말하자면 수건같은 것으로
[주임] 범인은 장갑을 끼구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변호사] 흰 장갑인가요? 검은 장갑인가요?
[주임] 그걸 내가 어떻게 압니까?
[변호사] 그것만은 권중혁씨가 말해주지 않던가요? (대답이 없
다. 주임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는다.) 또 한가지. (사이
를 두고) 이 총에 실탄이 남아 있었던가요?
[주임] (여전히 땀을 닦으며) 아니오.
[페이지] 126
[변호사] 범인은 세 발을 쐈다구 했지요?
[주임] (고개를 끄덕이며) 한 발은 빗나가구. 한 발은 배에 그
리구 나머지 한 발은 ---
[변호사] 심장이지요. 그것이 치명상이었구. 그럼 남어지 세
발은 어디로 갔지요? 육연발 권총에 탄알은 세 발 밖에 애초에
장진돼 있지 않았던가요? (대답이 없다) 남어지 세발은 어디로
갔지요!
[검사] (벌떡 일어나며) 성민주는 그 권총에 세 발밖에 장진되
어 있지 않았다구 이미 진술하고 있오.
[변호사] 천만에요. 그 권총에는 --- (나직이) 여섯 발이 장진
되어 있었오.
[판사] (긴 침묵) (변호사에게) 변호인은 지금 매우 중대한 반
증을 제시했는데 무슨 근거래두 있는가요?
[변호사] (여유 있게) 먼저 말씀 드릴것은 본 사건의 수사초점
이 빗나가 있었다
[페이지] 127
는 점입니다. 그것은 경험이 부죽한 무능한 수사관이 범인을 충
분한 검토도 없이 일방적으로 속단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본 사건을 뒷바침해 주는 증인들의 애매모호한 태도에도 잘 나타
나 있읍니다. 뿐만 아니라 검사 자신두 이 사건에 대해서 이상한
편견을 가지구 있읍니다. 그 편견이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인지는
여기서 밝힐 필요가 없읍니다만 검사에게 바라건데 한 사건의 정
면외에 그 사건의 측면과 배경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우려 달라는
것입니다.
[검사] (불끈해서) 나를 허수아비로 아시오!
[변호사] (상관 않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인혜는 성민주의 친
어머니입니다. 아무리 현대사회가 혼란과 붕괴직전에 직면해 있
다손치드래두 자기의 친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사실은 일반 살인
사건과는 그 양상이 다른 법입니다.
[페이지] 128
따라서 본 변호인은 이 사건이 지니는 또 하나의 가능성 다시 말
해서 그 배경을 파악하기 위한 방법으로 살해당한 하인혜여사의
정부인 권중혁을 다시 한번 증인으로 신청하는 바입니다.
[민주] (일어나며) 변호사님. 그것은 취소해 주십시오.
[판사] 아. 피고인은 가만 앉아 있어. (변호사에게) 좋습니다.
증인신청을 허락합니다. (권중혁이 등장한다. 그는 여유있게 약
간 미소까지 띄우며 증인석으로 간다)
[민주] 변호사님 부탁입니다. 제발 중지시켜 주십시오.
[변호사] 난 사실을 알구 싶어요.
[민주] 무슨 사실 말입니까?
[변호사] 사건의 진상말에요?
[민주] 사실은 없읍니다. 사실은 없어요.
[페이지] 129
(중혁이 증인석에 앉는다.)
[검사] (벌떡 일어나며) 재판장 증인 심문에 이의가 있읍니다.
[판사] 뭐지요?
[검사] 권중혁에 대한 증인 심문은 이미 충분히 끝냈다고 생각
하는데요.
[판사] 어째서요?
[검사] 권중혁은 사건현장에 있었던 유일한 증인입니다. 그는
범인이 누군가 이미 확실히 진술한 바 있읍니다. 변호사두 권중
혁에 대한 증인심문에서 이의가 없다고 하지 않았읍니까? 그런데
지금 새삼스레이 다시 ---
[변호사] 재판장! (걸어나가서) 물론 권중혁에 대한 일차 증인
심문에 대해서는 본 변호인두 이의가 없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민주만을 진범으로 가상한 위치에서의 증인심문이었읍니다.
[페이지] 130
[검사] 성민주만을 범인으로 가상하다니? 그건 무슨 뜻이오?
[뱐호사] (무시하고) 재판장. 지금까지 진행 되어온 사실심리
와 증인심문에서 밝혀진대로 성민주가 범인이라는 물적증거는 추
상적인 면이 없지 않습니다.
[검사] 그럼 제 삼의 인물이 숨겨져 있다는 말입니까?
[변호사] 그럴지도 모르지요. (중혁에게 가서) 증인이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에 하여사의 방에 들어간 것은 이상한 낌새를 채서
라구 했는데 증인이 한 말을 기억하는가요?
[중혁] 녜.
[변호사] 또 성민주에게 질이 좋지 않은 여자친구가 생겨서 자
주 돈을 요구한다구 하여사가 했다는 말도 기억하는가요?
[중혁] 녜.
[변호사] 둘 다 사실이가요?
[중혁] 사실입니다. 허지만 ---
[페이지] 131
(민주를 보며) 그것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읍니다.
[변호사] 무슨 말인가요?
[중혁] 그런 일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내막은 잘 모르겠
어요.
[변호사] 그럼 그 이상한 낌새는 뭣을 말하는 것인가요? 성민
주가 하여사에게 돈을 요구하러 왔구 그것이 뜻대로 안 되면 폭
력을 쓸지도 모른다. 그것인가요? 사실이 그런가요?
[중혁] (나직이) 성민주가 하여사를 살해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었어요.
[변호사] (비웃듯이)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꼴이군요. (정
색하고) 그럼 무슨 다투는 소릴 들었나요?
[중혁] (변호사를 잠시 쳐다보다가) 아니오
[변호사] 도대체 성민주와의 개인적인 문제는 뭣입니까? 이 사
건과는 관련이 없다
[페이지] 132
구만 하는데 밝힐 수 없는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나요? 그렇다면
그 비밀은 뭐지요? 그것을 말해주시오! (중혁 굳어진다. 고통의
빛. 무언가 결심한 듯이 입술을 꼭 깨문다.)
[중혁] 사실은 성민주를 만나기 위해서 그 방에 들어갔어요.
왜냐 하면 그 사건 이후 두 사람은 얘기할 기회가 한 번두 없었
구. 그래선지 성민주는 나를 미워하는 눈치였어요. 차라리 증오
하구 있었다는 표현이 더 알맞겠지요. 하여간 나는 민주를 만나
내 입장을 설명하구 그 집을 떠날 결심이었지요. 그랬더니 사태
는 제가 생각하구 있었던 것 보다는 심각해져 있었어요. 그것은
젊은 사람과 늙은이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간격 같았읍니다.
(법정의 조명 어두어지고 정면 무대에 조명 들어오면 하인혜의
방.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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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와 민주가 얘기중이다. 지금부터 벌어지는 장면은 희극적인 색
채를 띈다. 과장된 몸짓. 중력을 잃은듯한 움직임. 그 불실감은
허위에서 온다기보다 어떤 동작을 유심히 관찰할 때 생기는 어색
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
[민주] (우스꽝스럽게) 생각나세요? 아버지가 바람 피시다 산
통 깨시던 일. 난 그만 감 세개에 군침을 삼키고 아버질 배신했
지요. 유다는 동전 몇닢에 예수를 팔았다드니 난 감 세개에요.
[인혜] 나두 놀랬지 너야 이 에미보다 아버질 더 따랐으니. 그
러니 말이다.
[민주] 전 두구두구 그 일을 후회했어요.
[인혜] 왜?
[민주] 그것이 값 나가는 정본줄 진작 았았드라면 세 개가 아
니라 열개를 요구하는 것이었는데 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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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혜] 저런
[민주] 내 혈관 속엔 두 개의 강이 있어요. 하나는 아버지의
구정물강, 하나는 어머니의 젖빛 강, 나는 어머니의 강을 사랑해
요. 그 산뜻한 향료 냄새, 비누거품, 아니 그 오만을 나는 사랑
해요. 미워하면서도 미워할 수가 없어요. 어머니 어머니두 제가
좋으시지요?
[인혜] (웃으며) 아니. 난 네가 싫다.
[민주] (웃으며) 그래서 백희를 죽이셨지요?
[인혜] 자기를 지키는 것이 뭣이 나쁘냐?
[민주] 그애 방에 그 남자를 들여보낸것두 어머니의 음모였어
요. (그렇지 않느냐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인혜] (헤죽이 웃으며 역시 끄덕인다)
[민주] 아! 난 어머니가 좋아요. 난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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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를 닮았으니까요. 내 핏줄속엔 당신의 그 오만이, 범할 수 없
는 기품이 숨겨져 있지요. 그것은 타협이 없어요. 오직 세상을
비웃고 살뿐 외로운 거지요. (잠시 사이. 차분하게) 아침마다 어
머니가 제 방에 들어 오셔요. 저는 늦잠을 자구 있어요. 어머니
는 제 몸을 몹시 심하게 흔들어요. 눈을 뜨면 방안은 알맞게 어
둡구요. 저는 게으르고 싶고 어머니는 한사코 절 일으키시고 그
리구 전 담배가 무척 피구 싶어요. 그러면 어머니는 창으로 가서
커튼을 활짝 걷어올려요. 그럼 화사한 아침 햇살이 마치 꽃다발
처럼 내던져지고. 나는 실눈을 해가지고 잔뜩 불평스런 주름을
짓구. 근데 --- 전 그 밝음이 갑자기 무서워져요. 나는 그 햇살
이 내 몸을 온통 태워서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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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맣게 끄슬려 죽은 내 몸둥이를 상상해 내요. 결국 난 타 죽고
만다는 --- (황홀해져서) 나는 태양 가까이에 던져저요. 아무것
두 없어요. 나 혼자에요. 거기엔 어머니두 없어요. 나 혼자에요.
나는 난생 처음 혼자가 되는 거에요. 그리구 --- 그리구 난 죽어
요. (인혜에게 매달리며) 어머니, 어머니. 그렇게 되지 않게 해
주세요. 부탁에요. 난 어두운것이 좋아요. 이대로가 좋아요.
[인혜] 너두 알지 않니?
[민주] 녜. 알아요. 알구 말구요. 사실은 어머니두 제가 도망
칠까봐 겁이 나시지요? 그렇지요?
[인혜] 아니 겁나지 않다.
[민주]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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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좋아서) 난 인지와 헤어지겠어요. 아 걱정마세요. 애초
부터 그 애가 좋아서 그런 것이 아녜요. 그 애는 꼭 바보같구 아
무 것두 모르구 --- (인혜의 손을 잡구 흔들며) 어머니, 약속해
주세요. 이제부턴 저하구 단 둘이서만 살아요. 저 남자두 내 보
내구. 우리 단 둘이서만요 녜?
(두 사람 행복하게 웃는다. 이 때 녹크소리)
[민주] (춤 추 듯이 문으로 가며) 누구세요. 잠간만 기다리세
요. 자 들어오세요. (중혁이 들어온다. 민주 굳어진다. 이 순간
부터 이들의 동작은 냉정한 혈실성을 띄운다)
[민주] (물러가며) 아니 당신이 --- 바루 당신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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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혁] 내가 방해가 됐군. (나가려 한다)
[민주] (문을 막으며) 당신이었군. 어머니의 새 남자란 바루
당신이었군.
[중혁] 난 지쳤어. 자네처럼 나한테두 집이 필요하다네.
[민주] 흥. 뻔뻔스럽게. 이불 속으로 잘두 숨어들더니. 당신이
(멱살을 쥐며) 백희는 죽었다는 걸 그새 잊었어요. 당신은 상관
이 없단 말인가요? 아무래두 우리 어머니의 침실은 잊을 수가 없
던가요? (바닥에 밀치며) 더러운 자식. 색마 늙은 개.
[인혜] (끼어들며) 아니. 얘 왜 이러니. 응?
[민주] 어머니두 저리 비키세요. 어머닌 벌써 잊으셨어요? 백
희의 몸을 더럽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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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어머니와 나, 그리고 종당에는 백희까지두 배신한 저 더러운
자식을! (인혜를 밀치며) 비키세요. 어머니 제발 저리 (권총을
꺼낸다)
[인혜] 아니 저애가!
[중혁] 날 쏠텐가?
[민주] 그럼요. 쏘지요. 쏘구말구요.
[중혁] 그래야만 맘이 풀리겠다면. 열번이구 스무 번이구 맘대
로 쏘게나. 허지만 그 전에 내 얘길 좀 들어.
[민주] 내가 못쏠줄 아세요. 열 번 아니라 천 번이래두 내 쏘
지요.
(방아쇠를 당긴다. 실탄이 없다. 민주 재빨리 실탄 케이스를
꺼내 장진한다. 다시 겨눈다.)
[인혜] (비명치듯이) 아니야. 그사람이 아냐.
[중혁] 여보!
[인혜] 내가 한 짓이야. 내가 시켰어. 백
[페이지] 140
희를 내쫑기 위해서 저이를 강제로 그애 방에 들여보낸 거야.
[민주] (믿기지가 않아서) 뭐라구요? 어머니가? 그럴리가
[인혜] 그래 그래 그렇다니까 그러니 그 총을 저리 치우렴.
[민주] (인혜에게 겨누며) 정말에요? 어머니 ? 그것이 정말이
었어요? 그럼? 거짓말이 아니구요. 그것이 어머니가 --- 어머니
가 --- (인헤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민주 방아쇠를 당긴다. 공
포다) (다음 장면은 1막의 처음 장면과 같다. 권중혁이 그를 말
리려고 몸을 움직인다)
[민주] 움직이지 마세요. 쏘겠어요.
[중혁] 안 돼
[민주] 비키세요. 안 비키면 당신 먼저 쏘겠어.
[인혜] 미쳤니?
[페이지] 141
[민주] 그래요. 미쳤어요. 그러니까 제 어머니를 쏘겠다느 것
아녜요!
(두 방의 총성. 사진틀이 깨지는 소리. 동작이 1막과 같이 정
지한다. 잠시 사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면 중혁이 쓰러지는 인
혜를 부축한다. 민주는 비명과 함께 총을 내 던진다. 그리고 쓸
어져 울기 시작한다. 사이. 다시 불신감에 가득 찬 과장된 몸짓
이 시작된다. 인혜가 중혁의 부축을 뿌리치고 민주에게 달려간다
잠간 멈춰서 민주를 내려다보다가 옆에 쭈그리고 앉는다. 사이)
[민주] (나직이) 잘못했어요. 어머니 잘못했어요.
[인혜] 나두 이젠 네 맘을 알겠다. 왜 진즉 얘기하지 않구. 이
에미가 그렇게도 믿기지 않은? (민주의 얼굴을 처들어 손으로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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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닦아주며) 어린애같이 울긴
[민주] 나는 어머니 곁에 있구 싶었어요.
[인혜] 안다 내가 모르는지 아니? 자식두 술이 잔뜩 취해선 여
자친구들이나 집으로 끌어들이구 내 속이 얼마나 상했다구. 허지
만 이젠 걱정 없다. 우린 이렇게 같이 있지 않니? (민주를 안으
며) 엄마는 행복하다.
[민주] 언제까지나 여기 있겠어요. 여기 살겠어요.
[인혜] 백희도 잊구?
[민주] 녜. 잊겠어요.
[인혜] 다시 옛날처럼
[민주] 다시 옛날처럼요.
[인혜] 그래 잘 생각했다.
[민주] 근데 --- 저 남잔 어떻게 하지요?
[인혜]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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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중혁을 가르키며) 저 사람
[인혜] 응, 우리하군 상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제 살길은 자신
이 찾아가기 마련이다. 짐승이나 똑 같애 그러니 걱정할 것 없
다. 어린애도 아닌걸. 넌 별 걱정을 다 하는구나.
[민주] (웃으며 중혁에게 간다) 이것 보세요. 늙은 양반 우리
어머니 말씀 들으셨지요. 들으셨으면 거기 게딱지같이 서 있지만
마시고 나가 주세요. 왜 그리구서 계서요. 등을 보이구 나가기가
민망한가요? 굽어진 어깨를 보이기가 부끄러운가요? 그럼 내 눈
을 감아드릴까요? 아저씨
[중혁] (조용히) 가지 허지만 ---
[민주] 아직두 무슨 얘긴가 남았어요? 어떤 사연입니까? 꼭 들
어줘야 하나요? 아저씨.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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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혁] 내가 백희를 범한 것은
[민주] 정말? 어디서
[중혁] 내 얘길 마저 들어. 자기 것을 고집하려면 남의 얘기도
들어줘야지. (민주 주춤한다. 긴 사이) 스물 셋이었던가 하는 한
창 젊은 나이에 나는 약혼자가 있는 어느 여자를 알게되었어. 그
리구 사랑하게 되었지. 그 여자두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들었
지. 우린 틈이 나는데로 교외의 으쑥한 여관을 찾아 정신 없이
시간을 허비하고 다녔어. 그 여자는 낮에는 현숙한 한 남자의 정
신적 지주였고 밤에는 깜짝 놀랠만큼 음탕한 여자였어. 그런데
--- (괴롭게) 그런데 내가 소유하고 있는것이 그 여자의 일부분
뿐이었다는 것을 이해하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더란 말일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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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그것이 도대체
[중혁] 그 여자의 약혼자는 어느모로 보나 나보다 월등한 남자
였어. 그 남자는 그때 동경에 유학중이었는데 그 남자가 서울에
돌아오는 날 나는 마지막으로 그 여자와 함께 역으로 나갔지. 프
랫트홈 기둥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서 새벽열차에서 내리는 그 남
자품에 안기는 여자가 내게는 마치 지옥과 천당의 거리라도 저만
할까 싶을만큼 깊고도 멀게만 느껴지더군. (사이) 나는 몇 번 죽
을 고비를 넘겼지. 나는 내가 소유한 것이 그 여자의 살냄새를
잊기 위해서 나는 개뿔이래두 쥐고 싶은 심정이었어 [모선에서
모선으로 옮겨타기 위해서 잠간 머무는 작은 배] 그 여자의 약혼
자가 내게 한 말이야. 그러니까
[페이지] 146
나는 그 작은 배. 풍랑에 뒤집히고말 작은 배 였어. 그리군 세
월이 흐럼에 차츰 그 말이 이해가 되더군. 그것이었구나. 신기루
처럼 나를 현혹시켰던 그 여자의 냄새란 것이 시장기가 넘쳤을
때 먹은 승냥이 고기였구나 하는 . (조금 웃으며) 지금은 물론
그 여자를 잊었지. 괴롭지도 않네. 허지만 아직두 아직두 말일세
내 핏 속 어딘가에 그 여자의 냄새는 남아 있다네. 그래서 간혹
그것은 간질처럼 내 몸을 파먹어 들어가는 거야. 내 스스로 내
몸을 찢어발기는 것이란 말일세.
[민주] 당신은 무슨 얘길 (화가 나서) 교묘한 덫을 치고 나더
러 다시 걸려들라는 수작이로군.
[중혁] 이것이 바루 내가 백희를 범하고 만
[페이지] 147
변명이야. 그런데 이 보게. 난 또 한 번 깜박했다는 걸 오늘에야
알았단 말일세
[민주] 무슨
[중혁] 하인혜는 역시 내 것만은 아니더란 말일세 (웃으며) 나
뿐건 자네나 내가 아닐세 자네 어머니지. 저 여자지. (민주가 던
진 권총을 천천히 집어든다) 움직이지 말게. 아직 이것으로 누굴
쏠 것인가를 결정진 것은 아니네. 나까지두 포함해서 말야. (빙
긋 웃으며) 자넬 쏠까? 그것두 좋겠지. 하인혜를 소유하기 위해
선. 허지만 그랫다간 저 여자의 몸둥아리 속엔 온통 자네의 귀신
들로 들끓을테니 그랬다간 셋이서 동침하는 꼴이구.
[페이지] 148
(총을 자기 이마에다 천천히 갖다 댄다. 사이.) 아니지, 아냐.
나두 아냐. 내가 죽어선 더욱 안되지. 내가 살라고 하는 노름인
데 내가 죽어서야 쓰나. 나는 우선 살고 봐야 하지않겠는가 말
야. 암 현명한 생각이지.
[민주] 그럼
[인혜] (나직이) 안 돼요. 모두 미쳤어요.
[중혁] (천천히 권총을 겨누며) 약고 약아 빠진 여자. 생전 처
음으로 당신은 지금 --- 누군가 갖기를 열망하는 자의 --- 한 여
자가 되는군.
(권총이 발사된다. 세 방의 총성이 아슴프레하게 들린다. 인혜
천천히 쓰러진다. 아연해서 서 있는 민주. 중혁의 미친 듯한 음
산한 비웃음소리만이 무대가 어두워져도 오래도록
[페이지] 149
계속된다. 다시 조명이 들어가면 법정 증인석에는 여전히 권중혁
이 앉아 있다. 변호사가 보충심문 중이다.)
[중혁] (교묘하게) 애초에는 하인혜를 쏜 것이 아니었읍니다.
성민주가 심하게 제 욕을 해댔기 때문에 홧김에 그만 --- 그런데
---
[변호사]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하인혜가 죽어 있더라 그
말이군요 (중혁 끄덕인다) 그 때 성민주는 가만히 있던가요?
[중혁] 너무 충격이 심했는지 울지두 못했어요. 그 자리에 풀
석 주저앉더군요. 나는 겁이나서 총을 그대로 든채 서있었어요
[변호사] 얼마동안이나 그렇게 있었읍니까?
[중혁] 한 십분쯤 그랬는데 성민주가 갑자기 어린애처럼 울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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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내가 어머니를 죽였어. 내가] 하더군요. (민주를 보
며) 성민주는 죄가 없어요. 하인혜를 살해한 진범은 바로 저예
요.
[변호사] 증인은 지금까지 왜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지요?
[중혁] 두려웠기 때문이겠지요. 허지만 난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기두 합니다.
[변호사]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니요?
[중혁] 나는 그 사실의 외곽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제가 성민주에게 총을 쏜 이유이기도 하지요.
[변호사] 증인은 그 사실의 핵심 속에 있었으면서두 그것을 부
인하는가요?
[중혁] 아니지요. 나두 그것은 인정해요. 허지만 그것이 나에
겐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했었다는 말입니다. 구체적인 현상두 아
니었구 내가 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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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란 실감이 도무지 들지를 않았어요. 그것은 제가 총을 쏘고나
자 확실해졌어요. 나는 제삼자였구 저쪽은 중심이었읍니다. 나는
비켜서 있어야 할 곳에 버티고 있었던 꼴이 된 셈이지요. 나는
그것을 이해하려고 애 썼읍니다. 허지만 되지 않았어요. 내 위치
는 어느 쪽인가 하면 보구 있는 쪽이었지 보이구 있는 면은 아니
었어요. (빙긋 웃고) 허지만 지금은 이해가 되는군요. 하인혜의
죽음이 내게 주는 의미를 나는 지금에야 깨달은 것이구.
[변호사] 그럼 증인이 애초에 성민주를 향하여 총을 쐈다구 했
는데 살해 동기는 뭣이었던가요?
[중혁] 그것은 내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지요?
[변호사] 증인은 그때 생며의 위험을 느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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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중혁] 녜
[변호사] 그럼 성민주가 증인을 살해할 기미가 보였으므로 그
것을 막기 위해 정당방위를 했단 말인가요?
[중혁] 녜, 나는 내 생명의 위기를 느꼈읍니다.
[변호사] 과잉방어라구 생각지 않는가요?
[중혁] 아니오. 오히려 늦어 있었지요.
[변호사] 늦어 있었다면 이미 성민주가 증인에게 총을 발사했
다는 뜻인가요?
[중혁] 내가 성민주를 향하여 총을 겨뉴을때는 이미 그의 총탄
이 내심장에 관통한 후였읍니다. 나는 벌써 죽어 있었어요.
[변호사] 뭐라구요?
[중혁] (나직이) 나만한 나이가 되면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로
부터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지요. 소속할 세
계가 없는 자들은 마치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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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주지 않은 화초같애서 곧 시들어 버리구 말지요. 그것은 황량
은 황량한 벌판에 버려진 한마리의 들쥐와도 같습니다.
[변호사] 그럼 증인은 성민주에 의해서 자기의 소속할 지역을
상실 했다는 말인가요?
[중혁] 그렇지 않습니다. 성민주는 나보다두 먼저 떨어져 나갔
지요. 그리구 그는 다시 복귀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어요. 허지
만 그가 갈곳에 내가 있었어요. 나는 한 번 실패한 사람입니다.
나는 그것을 회복하는데 십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성민주는 조급하게 굴었지요. 허지만 나는 강했어요. 이미 패배
했었기 때문에 성민주보다는 유리했구, 결국 그가 지구 말았지
요. 그러나 상처는 제것이 더 컸어요. 다만 나는 그것을 드러내
놓지 않구 감췄기 때문에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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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았을 뿐이지요.(사이)
[변호사] (중혁에게 목례를 하며) 본 변호인은 성민주를 대신
하여 사건을 진상을 알려주신 권중혁씨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
구. (여유를 두고) 성민주 피고인을 위하여 변호비를 대오신 사
건 의뢰인을 본 법정에까지 끌어 들인 것을 개인적으로 사과드리
는 바입니다. (판사에게) 이상입니다. (변호사 제자리로 돌아간
다. 법정 경의의 감탄사로 소란스러워진다.)
[판사] (조용히) 증인 권중혁을 하인혜여사 살해사건의 피의자
로 구속기소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문제는 본 법정 소관이 아니니
까 검사께서 처리하여 주십시요. 그리구 동일한 사건의 경우 또
다른 피해자가 나타났을 경우에도 본 법정의 소관 밖이라고 해석
됩니다. (조명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검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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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혁을 데리구 전면 무대로 나온다. 두 사람은 복도를 걷는
다.)
[검사] 당신을 이해할 수가 없군요. 난 아직두 성민주가 범인
이라구 생각하구 있으니까 말요.
[중혁] 그것은 당신들의 문제겠지요. 나는 상관할 바가 없어
요.
[검사] 자청해서 손해를 보다니 ---
[중혁] (빙긋히) 손해가 아녜요.
[검사] 손해가 아니라구요? 일생을 망치는데두 말요.
[중혁] 내 생각엔 이렇군요. (자신있게)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속아보자구요. 인생이 살만한 것이냐 하는 문제가 아니구, 내가
그것 가까이 설 수 있는가 하는 불실한 여자였지만 헤어지면서
잘 가라는 말 한마디 쯤 해 두고 싶은 (중혁 미소한다. 검사 이
해할 수 없다는 표정. 조명 어두워졌다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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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법정에 들어간다.)
[판사] (난처하다는 듯이) 본관은 하인혜여사 살해사건의 피의
자가 두 사람으로 늘어난 점에 대해서 매우 유감으로 생각합니
다. 왜냐하면 또 하나의 피의자 권중혁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본
사건은 그 양상이 복잡미묘 해졌을 뿐만 아니라 피의자가 성민주
한 사람일 때보다 오히려 그 진상을 규명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의 복잡미묘성은 영구히 그 진
상을 밝혀내지 못할지두 모르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변호사] (일어나며) 재판장
[판사] (살았다는 듯이) 말씀하시오.
[변호사] 본 변호인은 지금 즉시 하인혜여사 살해사건의 공판
을 중지할 것을 요청합니다.
[검사] 그것은 안될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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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사] 어째서요?
[검사] 권중혁이 진범이라는 확증이 어디있단 말이오?
[변호사] 그럼 성민주가 진범이라는 무슨 확증이래두 있단 말
이오?
[검사] 그러니까 보 재판을 중지할 수가 없다는 것이오. 만일
성민주를 놓아줬다가 권중혁이 진범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변호사는 그 책임을 지겠오?
[변호사] 재판장. 본인은 존중 받아야 할 한 인간의 권리가 부
당한 방법에 의해서 침해 당하고 있는 것을 엄중히 항의하는 바
입니다.
[검사] 어째서 이것이 권리침해란 말이오. 국가는 범죄사건의
용의자를 체포 재판할 권리를 가지고 있오.
[변호사] 성민주는 범행사실을 부인하고 있오. 뿐만 아니라 성
민주가 진범이라는 결정적인 물적증거는 아직두 나타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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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 않소. 그런데 권중혁이 범행을 자백하고 나선것이오.
[검사] 허지만 성민주가 진범이라는 증거가 없듯이 권중혁도
마찬가지 아니오.
[변호사] 우리는 지금 성민주의 범행사실을 심리하고 있는 것
이오.
[민주] (벌떡 일어나며) 범인은 바로 나에요! 내가 어머니를
쏜 것이에요. 몇번이나 말씀 드려야 아시겠읍니까? 제발 재판을
여기서 끝내주십시오. 내가 범인에요. 나는 죄를 졌어요. 그러니
벌을 주시면 그만아녜요. (정리가 민주를 억지로 앉힌다)
[판사] 도대체 알 수가 없군 너두 나두 범이라니. 이러다간 온
통 세상이 범인으로 가득 차겠군. (머리를 휘졌는다)
[검사] 재판장. 성민주 피고인에게 보충심문할 것이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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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잠시 생각하다) 에. 하시오.
[검사] (흥분해서) 에. 피고인은 이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는
가?
[민주] 어떤 사실 말입니까?
[검사] 피고인이 범인이냐 아니냐 하는 사실말야.
[민주] (화가 나서) 방금 말씀 드리지 않았읍니까?
[검사] 그럼 권중혁은 가짜란 말요?
[민주] 그 사람이 가짜든 진짜든 내 알봐가 아닙니다. 제가 범
인이냐 아니냐 하는 그점을 밝혀주십시요.
[검사] 그래서 묻는 것이야. 범인은 누구냐 말야?
[민주] 저예요. 저예요 저예요 (법정에다 대고) 당신들은 귀먹
어리인가요? 이것 보세요. 난 성민주에요. 난 권중혁이 아닌 하
인혜여사를 살해한 성민주란 말에요. 그리구 당신들은 바루 나를
재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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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요. 그러니 내가 어떤 놈인인가? 그것을 결정지어 달라
는 말입니다.
[검사] (화가 나서) 내가 그걸 모르는 줄 아는가? 바루 그 사
실을 규명해 내기 위해서 우리들이 여기 있지 않느냐말야.
[민주] 그럼 됐어요. 모든 것은 확실해 졌군요.
[검사] 확실해지다니?
[민주] 당신들이 사건의 진상을 아직두 모르시겠다면 제가 다
시 한 번 설명해 드리지요. 사건의 진상은 바루 이렇단 말에요.
나는 어머니를 쏘았구 어머니는 맞았어요. 어머니는 죽었구. 나
는 살아 있어요. 이것뿐예요. 이것이 전부랄 말에요. (괴로워서)
어머니 말씀해 주세요. 누가 당신을 쏘았는가 말씀해 주세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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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침묵)
[변호사] (민주에게) 피고인에게 몇가지 묻겠오.
[민주] (풀이 죽어서) 말씀해 보세요. 뭐든지 대답해 드리지
요. 제가 알구 있는 것은.
[변호사] 백희가 누구지요?
[민주] (표정이 굳어지며) 그것만은
[변호사] (조용히) 모든 것을 말하겠다고 하지 않았오. (대답
이 없다.) 좋소. 난 당신이 어머니를 살해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
겠오. 그러나 왜 당신이 어머니를 살해 했는가 하는 원인을 규명
해야겠오.
[민주] 당신들이 알구 싶은건 누가 제 어머니를 죽였는가 하는
사실이 아닌가요? 그래서 전 사실을 말했읍니다.
[변호사] 법률은 형벌을 주기 위해서 만들었오. 그러나 정당한
형벌을 주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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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의 동기를 파악해야 하는거요. 변호인의 임무는 있는 죄도
없게 만드는 것이 아니오. 다만 자신이 저지른만큼의 죄의 댓가
를 법으로부터 받게 만드는 것이오. 그리구 사건의 배후에 있는
인간들의 문제를 찾아내어 법률에 그것을 호소하는 것이오. 내말
이해하겠오? (그는 민주의 반응을 살핀다.)
[민주] (체념하듯이) 백희는 제 약혼자였읍니다. 그러니까 작
년 봄 일이었어요. 백희가 애를 뱄지요. 나는 대뜸 떼버리라구
말했어요. 나는 백희와 약혼은 했지만 사랑한 것은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내가 백희를 집안에 끌어들인 것은 단지 어머니를 골려
주기 위서니까요. 그러나 어머니는 태연하셨구 그래서 그 즈음
난 백희와 약혼한 것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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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후회하구 있었지요. 백희는 처음엔 싫다구 몇 번 하드니만 제
가 하도 강경하게 나서니까 할 수 없이 애를 떼기로 승낙했어요.
(사이) 어느날 저녁 해가 져서 어둬지자 우리는 간판두 없는 한
산부인과 병원을 찾아갔어요. 백희는 병원앞까지 오더니 제 어깨
에 머리를 기대고 제 손을 힘주어 쥐어잡고는 무섭다고 하더군
요. (사이) 우리는 계단을 올라갔어요. (삐거덕거리는 소리) 목
조계단은 너무 낡아서 발을 옮겨디딜 때마다 삐거덕 소리가 나더
군요. 삐거덕. 삐거덕. 그때마다 우리는 소스라쳐 놀랬구. 그리
곤 마주보고 숨죽여 웃었어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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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문을 열었읍니다. 여위고 귀가 홀쭉한 늙은 남자가 무표정하
게 우리 두 사람을 훑어보더군요. 의사는 아무 말 없이 백희를
데리고 수술실로 들어갔어요. 백희는 마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는 사람처럼 자꾸만 뒤돌아보고 돌아보고 하더군요.
(의사가 수술대 앞에서 메스를 번쩍이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조
금 있더니 의사가 수술실의 포장을 들치고 나오더니
[의사] 여섯달인데요.
[민주] 벌써 그렇게 됐어요? 나는 무심히 반문했지요.
[의사] 곤란한대요. 좀
[민주] 의사는 이마에 굵은 주름을 잡으며 말했어요. 내가 사
뭇 난처한 표정을 짓고 서 있었더니 의사가 내 곁에 바싹 다가
서면서
[의사]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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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그래요?
[의사] 비용이 좀 --- 하자
(비웃음소리)
[민주] 나는 의사가 요구하는 대로 돈을 내줬어요. 그러자 수
술이 시작 되었지요. (음산한 불빛. 메스를 움직이는 의사의 손
길이 점점 빨라진다.) 나는 담배를 피워 물었어요. 남자란 참 편
리하구나. 나는 담배를 피면서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자의 신음
소리) 신음소리가. 백희의 신음소리가 조금씩 조금씩 물이 스미
듯이 방안으로 새어들기 시작했어요.
[의사] 조금만 참아요.
[민주] 신음소리는 점점 커져 갔어요.
[의사] 애를 배기는 쉬워도 키우기는 힘드는 법이오.
[민주] 난 쥐구멍에라도 숨구 싶도록 부끄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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웠어요. 난 눈을 감았어요. 그리구 숫자를 헤기 시작했어요. 하
낫, 둘, 셋, 넷, 하구. 숫자를 헤면서 제발 그 소리가 그쳐주기
를 기다렸어요. 그렇게 스물 몇인가를 헤다가는 잊어버리구 그래
서 하나부터 다시 헤어나가구 그리구 있는데 어느세 신음소리도
그쳐있었어요. 그래 가만히 눈을 뜨고 주위를 살피자니, 그 때
의사가 고무장갑을 낀 손에 뭣인가를 들구서 내 앞으로 막 다가
오는 순간이었어요. (의사가 조그만 핏덩이를 들어 올린다.) (민
주 손을 내저으며) 아 저리 치워요. 저리 (무대 어두워지고 의사
퇴장) (민주도 머리를 감싸쥐고 무엇인가 피하려는 듯 머리를 흔
든다)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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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생각했어요. 백희가 나오면 잘못했다구 빌자. 애를 하
나 만들어서 이번엔 무슨 일이 있어두 낳자. 여길 떠나자면 떠나
자. 그리구 다시는 어머니한테 들어가지 말자. (사이) 그러나 백
희가 창백하구 초췌한 모습을 수술실에서 비치자 나는 그렇게도
다짐했던 말들을 결국은 한 마디도 하지 못하구 말았어요. 문득
이런 말이 떠오르더군요. [여자는 애를 죽이면서 애정도 죽인
다.] (긴 사이) 내가 처음으로 그 여자를 사랑하기 시작하자 나
는 다시 혼자가 돼 버렸어요. 그리구 얼마 있다가 --- 백희는 죽
었어요.
[검사] (불쑥 나서며) 그 여자는 왜 죽었지요? (민주가 홱 검
사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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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인가요?
[민주] 녜 자살했어요. 어떻게 죽었는지 알구 싶으세요? 소주
한 병을 마시구 수면제를 먹구, 그래두 못믿기어서 방안에다 연
탄 두 개를 피어놓고 죽었어요. 백희는 단 한 번에 성공했지요.
백희는 나같은 놈하곤 달라요. 용기가 있고 결단성이 있고 거기
다 혼자 죽는 법까지 알고 있었거든요. 물론 당신하구두 다르지
요. (발광하듯) 여러분, 그밖에 또 뭐 알구 싶으신 것이 없나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무엇이든지.
[판사] (책상을 치며) 피고인은 조용히 해.
[민주] (재판관에게) 재판관님에게는 뭣을 말씀 드릴까요? 백
희가 왜 죽었느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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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이래요. 어머니의 정부가 백희를 겁탈했기 때문이지요.
그자는 어머니의 괴뢰에요. 그러니 어머니 장단에 놀아날 수 밖
에요. 싫어도 좋아해야 하고 명령에 복종해야 돼요. 그래서 백희
는 죽었어요. 그래서! (정리가 민주를 제지한다. 민주 뿌리치고
검사에게) 당신에겐 이것을 알으켜 드리지요. 어머니가 왜 백희
를 미워했는지. 어머니는 여왕이에요. 나는 졸개지요. 숨을 쉬라
면 쉬구, 죽으라면 죽지는 못해두 흉내는 내지요. 나는 못하는
짓이 없어요. 말하자면 유능한 조수지요. 약싸빠르고 간사하구
음흉하구 치사해요. 그런데 백희가 애를 뱄어요. 큰일이지요. 한
왕국의 여왕이 둘이 된 셈이니까요. 왕관은 하나 뿐인데 옥좌는
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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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둘 중 누군가는 당연히 음모에 옭아들어 숨이 끊어지는
거지요. (비웃음에 차서) 그래 당신이라면 어쩌시겠어요? 당신의
딸들이 뭇 사내와 멋대로 놀아났다면 당신은 어쩌시겠어요. 그냥
못 본척 얼굴을 돌리시겠어요? (키득거리며) 저같으면 그년의 머
리채를 휘어잡고 거리에다 내팽개치겠어요. 그리고 동네방에 외
치고 다니지요. {여기 부정한 계집이 있다. 너희들 가운데에 설
사 죄가 있는자가 있드래두 치고싶으면 이 계집을 돌로처도 복
받으리라}
[검사] (질려서) 이자는 미쳤어. 정리. 정리.
(정리 두 사람이 동시에 민주를 붙잡는다.)
[민주] 그래요. 나는 미쳤어요. 미쳤으니까 제어미를 죽였지
요.(버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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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혜여사를 누가 죽였느냐구요? 그걸 누가 안대요. 죽인 사람
은 아무도 없는걸. (정리가 그를 끌고간다. 끌려가면서) 여러분
저를 보십시요. 어미를 죽인 자식이올시다. 불쌍한 죽은 어미의
자식이올시다. (정리 그를 피고석에 간신히 앉힌다. 민주 울음을
터뜨린다)
[판사] (사이) 피고인은 조용히 해. 피고인이 법정을 소란케
하구 본관을 비롯하여 검사 변호사에게 행한 모욕은 현행법상 피
고인에게 처벌을 가할수는 있으나 본관의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
니었음을 참작하여 특별히 불문에 붙힌다. 그러니 피고인은 앞으
로의 행동은 각별한 유의가 있기를 바란다.
[민주] (담담해져서) 녜.
[판사] 그리구 피고인에게 한 가지만 더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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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를 주겠다. 본 법정이 요구하는 것은 하인혜가 누구에게. 어째
서. 어떻게 죽었느냐 하는 사건의 진상인 것이야. 피고인의 개인
적인 생활이 특히나 건드리기 싫은 과거의 상처가 이러한 이유로
해서 늘처지기두 하구. 그 아픔을 드러내놓게두 되는 것이야. 여
기에 대해서는 본관두 개인적인 동정을 금치 못하나 법은 그 사
실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서 피고인의 감정적인 문제를 해결
하진 못하는 것이지. 이점을 잊지말기를. 피고인은 무슨 다른 할
말이 있는가? (민주 조용히 일어난다. 그리고 나직이 얘기를 시
작한다.)
[민주] (멍하니 허공을 보며) 재판장님. 저는 가끔 제자신에게
이렇게 반문합니다. 너는 자유스럽냐? 너는 생활하구 있느냐? 너
는 미래를 가지고 있느냐? 저는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시
묻지요. 네가 아니라구 부정한다면, 그럼 너를 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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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고 있는것이 뭐지? 전 이번엔 대답합니다. 어머니. 내 어머니
라구. (사이) 저는 오랫동안 어머니 속에서 살아왔어요. 어머니
는 저에게 있어서 힘이었구 막연한 것들의 추상이었읍니다. 무한
한 가능성들이 모연진 힘이었읍니다. 그것을 거역하는 것은 저에
겐 죽음이나 마찬가지 였지요. 허지만 그 속에 살고있는 동안에
도 실상은 죽어있었던 것이지요. 그것을 이해하기까지에는 너무
나 많은 시간이 필요해서 내가 그것으로 부터 탈주를 원하자 그
것은 이미 불가능해져 있었읍니다. (신념을 가지고) 나는 누구의
힘두 빌리지 않겠어요. 나는 어머니를 쐈으니까요. 내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행했으니까요. 어머니를 살해했으니까요. (침착하
게)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 어머니의 죽음을 뺏길 수 없는 까닭이
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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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감에 취해서) 그래요. 그렇습니다. 하인혜여사를 살해한 자
는 권중혁이 아니고 성민주입니다. 바루 접니다. 그 누구도 하인
혜의 죽음과는 상관이 없읍니다. 왜냐하면 자유라는 것은 --- 그
것을 소유하고 있는자들의 것이 아니고 --- 그것을 열망하고 있
는자들의 것이기 때문에 --- (긴 침묵)
[판사] (헛기침을 하고) 에, 그럼 이것으로써 사실심리와 증인
심문을 모두 끝마치기로 하겠읍니다. 다음 공판은 시월 오일 오
후 두시에 열기로 하며 검사의 논고와 변호사의 변론을 듣기로
하겠읍니다.
[서기] 기립!
(판사퇴장, 검사는 제자리에 앉아있고 변호사는 민주를 응시한
다. 정리가 민주에 가 수갑을 채운다. 인지가 민주에게 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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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오지 말랬는 데두.
[인지] 걱정이 되서 그래요.
[민주] 내걱정 할것 없어. 당신몸이나 잘 돌봐. (인지가 손을
흔든다. 민주가 완전히 사라지자 그자리에 쓰러져 울음을 터뜨린
다. 검사가 인지에게 가 그녀를 일으킨다. 착잡한 표정.)
[인지] 고맙습니다. (인지 퇴장) (변호사는 웃고있다. 검사는
멍청히 서 있다. 변호사가 앞을 질러가자 검사가 손을 조금 들어
보인다. 변호사 멈춘다)
[검사] 당신 생각은 어떻소? 이, 이, 사건말이요.
[변호사] (천천히 검사를 응시한다. 빙긋 다시 한번 웃고) 전
팔을 깔구 자는 묘한 버릇이 있어요. 벼개에 얼굴을 파 묻지 않
으면 왠지 불안해서. 근데 가끔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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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면 한 팔이 어디로 없어져 버려요. 나는 깜짝 놀래서 남
은 한 팔로 없어진 다른 한 팔을 열심히 찾지요. (흉내낸다.) 근
데 아뿔사! 그것은 바루 내옆에 있어요. 나는 그것을 가만히 들
어봐요. 그러면 묵직한 느낌이 들군 해요. 하, 요것이 내팔이구
나. 나는 생전 처음 내 팔을 만져보는 이상한 혼란에 잠시 빠져
들어요. (사이) 사실은 언제나 이래요. 살아 있는 것은 으례 실
감이 안나는 법이지요. (변호사 퇴장)
---幕(막)---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없다 날개 다녀오겠습니다
달려라 아내 마로니에 길 마지막 수업
무지개가 끝나는 곳 무지개 쓰러지다 물새야 물새야
탱자 꽃 환상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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